육조대사법보단경(六祖大師法寶壇經)
迷聞經累劫,悟則剎那間。」
미혹한 자는 듣고 누겁을 지나지만 깨달은 자는 찰나 사이뿐이다.」
師復曰:「今於大梵寺說此頓教,普願法界眾生,言下見性成佛。」
대사가 또 말했다.「오늘 대범사에서 이 돈교를 설하니, 널리 법계 중생이 말 아래에서 성을 보고 성불하기를 원한다.」
時韋使君與官僚道俗,聞師所說,無不省悟。一時作禮,皆歎:「善哉!何期嶺南有佛出世!」
그때 위사군과 관원, 재가인들이 대사의 설법을 듣고 성오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일제히 예를 행하고 모두 찬탄하여 말했다.「좋도다! 뜻밖에 영남에 부처가 출세하셨구나!」
疑問第三
의문제삼
一日,韋刺史為師設大會齋。齋訖,刺史請師陞座,同官僚士庶肅容再拜,問曰:「弟子聞和尚說法,實不可思議。今有少疑,願大慈悲,特為解說。」
어느 날, 위자사가 대사를 위해 성대한 재회를 베풀었다. 재가 끝나자 자사는 대사를 자리에 오르게 청하고, 관원·사인·백성과 함께 숙용하여 재배하며 물었다.「제자가 화상의 설법을 들으니 참으로 불가사의합니다. 지금 약간의 의문이 있으니 화상께서 크게 자비를 베푸시어 특별히 해설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師曰:「有疑即問,吾當為說。」
대사가 말했다.「의심이 있으면 물어라. 내가 너를 위해 설하겠다.」
韋公曰:「和尚所說,可不是達磨大師宗旨乎?」
위공이 말했다.「화상께서 설하시는 것은 혹시 달마대사의 종지가 아닙니까.」
師曰:「是。」
대사가 말했다.「그렇다.」
公曰:「弟子聞:達磨初化梁武帝,帝問云:『朕一生造寺度僧、佈施設齋,有何功德?』達磨言:『實無功德。』弟子未達此理,願和尚為說。」
위공이 말했다.「제자가 듣건대 달마가 처음 양무제를 교화하셨는데, 무제가 물었습니다.『짐이 일생 동안 사원을 건조하고 사람을 제도하여 출가시키며 보시하고 재를 베풀었으니 어떤 공덕이 있는가.』달마가 말했습니다.『참으로 공덕이 없다.』제자는 이 도리를 알지 못합니다. 화상께서 저를 위해 해설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師曰:「實無功德,勿疑先聖之言。武帝心邪,不知正法。造寺度僧、佈施設齋,名為求福,不可將福便為功德。功德在法身中,不在修福。」師又曰:「見性是功,平等是德。念念無滯,常見本性,真實妙用,名為功德。內心謙下是功,外行於禮是德。自性建立萬法是功,心體離念是德。不離自性是功,應用無染是德。若覓功德法身,但依此作,是真功德。若修功德之人,心即不輕,常行普敬。心常輕人,吾我不斷,即自無功;自性虛妄不實,即自無德。為吾我自大,常輕一切故。善知識!念念無間是功,心行平直是德。自修性是功,自修身是德。善知識!功德須自性內見,不是佈施供養之所求也。是以福德與功德別。武帝不識真理,非我祖師有過。」
대사가 말했다.「확실히 공덕이 없다. 전대 성인의 말을 의심하지 마라. 무제는 마음에 편사가 있어 정법을 알지 못했다. 사원을 건조하고 사람을 제도하여 출가시키며 보시하고 재를 베푸는 것은 복을 구하는 것이라 하며, 복을 가지고 공덕으로 삼을 수 없다. 공덕은 법신 가운데 있고 복을 닦는 데 있지 않다.」대사가 또 말했다.「성을 보는 것이 공이고 평등이 덕이다. 생각마다 체애가 없고 항상 본성을 보며 진실한 묘용이니 이를 공덕이라 한다. 내심에 겸하하는 것이 공이고 외면의 행위가 예에 합하는 것이 덕이다. 자성이 만법을 수립하는 것이 공이고 심체가 생각을 떠나는 것이 덕이다. 자성을 떠나지 않는 것이 공이고 운용하면서 염착하지 않는 것이 덕이다. 만약 공덕법신을 구하고자 하면 다만 이것을 따라 행하면 참 공덕이다. 공덕을 닦는 사람은 마음에 사람을 경만하지 않고 항상 널리 공경한다. 만약 마음에 항상 사람을 경만하여 '나'의 집착이 끊이지 않으면 스스로 공이 없고, 자성이 허망하여 참되지 않으면 스스로 덕이 없다—그것은 스스로 높고 크다 하여 항상 일체를 경시하는 까닭이다. 선지식이여! 생각마다 끊김이 없는 것이 공이고 심지가 평직한 것이 덕이다. 스스로 자성을 닦는 것이 공이고 스스로 몸을 닦는 것이 덕이다. 선지식이여! 공덕은 반드시 자성 안에서 보아야 하며 보시공양으로 구해 얻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복덕과 공덕에 분별이 있다. 무제가 진리를 알지 못한 것이지 우리 조사에게 과오가 있는 것이 아니다.」
刺史又問曰:「弟子常見僧俗念阿彌陀佛,願生西方。請和尚說,得生彼否?願為破疑。」
자사가 또 물었다.「제자는 항상 승려와 재가인이 아미타불을 염하여 서방에 왕생하기를 원하는 것을 봅니다. 화상께서 말씀해 주시오. 저곳에 태어날 수 있습니까. 저를 위해 의혹을 깨뜨려 주시기를 원합니다.」
師言:「使君善聽,惠能與說。世尊在舍衛城中,說西方引化。經文分明,去此不遠。若論相說,裡數有十萬八千,即身中十惡八邪,便是說遠。說遠為其下根,說近為其上智。人有兩種,法無兩般。迷悟有殊,見有遲疾。迷人念佛求生於彼,悟人自淨其心。所以佛言:『隨其心淨即佛土淨。』使君東方人,但心淨即無罪。雖西方人,心不淨亦有愆。東方人造罪,念佛求生西方。西方人造罪,念佛求生何國?凡愚不了自性,不識身中淨土,願東願西。悟人在處一般,所以佛言:『隨所住處恆安樂。』使君心地但無不善,西方去此不遙。若懷不善之心,念佛往生難到。今勸善知識,先除十惡即行十萬,後除八邪乃過八千。念念見性,常行平直,到如彈指,便覩彌陀。使君但行十善,何須更願往生?不斷十惡之心,何佛即來迎請?若悟無生頓法,見西方只在剎那。不悟念佛求生,路遙如何得達。惠能與諸人,移西方於剎那間,目前便見。各願見否?」
대사가 말했다.「사군은 잘 들어라. 혜능이 너를 위해 설하겠다. 세존이 사위성에서 서방정토를 설하여 인도교화하셨으니, 경문이 분명히 말하기를 저곳은 여기에서 멀지 않다 하셨다. 만약 사상에 대해 말하면 리수가 십만팔천인데, 그것은 바로 사람 몸 가운데의 십악팔사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멀다고 한다. 멀다고 하는 것은 하등근기에 대해 말하는 것이고, 가깝다고 하는 것은 상등지혜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사람은 두 가지가 있으나 법에는 두 모양이 없다. 미혹과 깨달음에 차별이 있고 성을 봄에 빠르고 느림이 있다. 미혹한 사람은 염불하여 저곳에 왕생하기를 구하고 깨달은 사람은 스스로 자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그러므로 부처가 말씀하셨다.『그 마음이 청정하면 불토도 청정하다.』사군은 동방인이다. 마음이 청정하면 죄가 없다. 비록 서방인이라도 마음이 청정하지 않으면 똑같이 허물이 있다. 동방인이 죄를 짓고 염불하여 서방에 왕생하기를 구하면, 서방인이 죄를 지으면 또 염불하여 어느 나라에 왕생하기를 구하겠는가. 범우한 사람은 자성을 요달하지 못하고 자기 몸 가운데의 정토를 알지 못하여 동쪽을 원했다가 서쪽을 원한다. 깨달은 사람은 있는 곳이 다 같다. 그러므로 부처가 말씀하셨다.『그가 어디에 머물든 항상 안락하다.』사군은 다만 심지에 불선이 없으면 서방이 여기에서 멀지 않다. 만약 불선한 마음을 품으면 염불왕생도 이르기 어렵다. 지금 여러 선지식에게 권한다. 먼저 십악을 제거하면 십만 리를 간 것과 같고, 다시 팔사를 제거하면 팔천 리를 지난 것과 같다. 생각마다 성을 보고 항상 평직을 행하면 이름이 탄지처럼 빨라 당하에 미타를 본다. 사군은 다만 십선을 봉행하면 어찌 다시 왕생을 원하겠는가. 십악의 마음을 끊어 없애지 않으면 어느 부처가 와서 맞이하겠는가. 만약 무생의 돈법을 영오하면 서방을 봄이 찰나 사이뿐이고, 영오하지 않고 염불하여 왕생만 구하면 길이 멀어 어떻게 이르겠는가. 혜능이 여러분을 위해 서방을 찰나 사이에 옮겨 오겠다. 눈앞에 있다. 대중이 보기를 원하는가.」
眾皆頂禮云:「若此處見,何須更願往生?願和尚慈悲,便現西方,普令得見。」
대중이 모두 정례하여 말했다.「만약 여기에서 볼 수 있다면 어찌 다시 왕생을 원하겠습니까. 화상의 자비를 원하오니 서방을 나타내어 모두가 보게 해 주십시오.」
師言:「大眾!世人自色身是城,眼耳鼻舌是門,外有五門,內有意門。心是地,性是王。王居心地上,性在王在,性去王無。性在身心存,性去身壞。佛向性中作,莫向身外求。自性迷即是眾生,自性覺即是佛。慈悲即是觀音,喜捨名為勢至,能淨即釋迦,平直即彌陀;人我是須彌,貪欲是海水,煩惱是波浪,毒害是惡龍,虛妄是鬼神,塵勞是魚鱉。貪瞋是地獄,愚痴是畜生。善知識!常行十善,天堂便至。除人我,須彌倒;去貪欲,海水竭;煩惱無,波浪滅;毒害除,魚龍絕。自心地上覺性,如來放大光明;外照六門清淨,能破六慾諸天;自性內照,三毒即除;地獄等罪一時銷滅,內外明徹不異西方。不作此修,如何到彼?」
대사가 말했다.「대중이여! 세간 사람의 자기 색신은 한 좌의 성이다. 안이비설은 성문이니 밖에 다섯 문이 있고 안에 한 의문이 있다. 마음은 땅이고 성은 왕이다. 왕이 심지에 머무니 성이 있으면 왕도 있고 성이 가면 왕도 없다. 성이 있으면 몸과 마음이 존재하고 성이 가면 몸이 허물어진다. 부처는 자성 가운데 지어야 하며 몸 밖에 구하지 마라. 자성이 미혹하면 곧 중생이고 자성이 깨달으면 곧 부처다. 자비는 곧 관음이고 희사를 세지라 하며 청정이면 석가요 평직이면 미타다. 인아의 견해는 수미산이고 탐욕은 해수며 번뇌는 파랑이고 독해는 악룡이며 허망은 귀신이고 진로는 어별이며 탐진은 지옥이고 우치는 축생이다. 선지식이여! 항상 십선을 행하면 천당에 이른다. 인아의 견해를 제거하면 수미산이 무너지고, 탐욕을 없애면 해수가 고갈하며, 번뇌가 없어지면 파랑이 멸하고, 독해를 제거하면 어룡이 절적한다. 자기 심지 위의 각성은 곧 여래가 큰 광명을 놓는 것이다. 밖으로 비추어 육문을 청정하게 하여 육욕의 제천을 깰 수 있고, 안으로 스스로 비추면 삼독이 곧바로 제거되며, 지옥 등의 죄가 일시에 소멸하여 내외가 명철하여 서방과 다르지 않다. 이같이 닦지 않으면 어떻게 저곳에 이르겠는가.」
大眾聞說,瞭然見性,悉皆禮拜,俱歎善哉。唱言:「普願法界眾生,聞者一時悟解。」
대중이 이 말을 듣고 요연히 성을 보아 모두 와서 예배하며, 제성으로 찬탄하여 좋다 하고, 쌍하여 이르기를,「널리 법계 중생이 듣는 자는 모두 당하에 영오하기를 원한다」고 했다.
師言:「善知識!若欲修行,在家亦得,不由在寺。在家能行,如東方人心善;在寺不修,如西方人心惡。但心清淨,即是自性西方。」
대사가 말했다.「선지식이여! 만약 수행하고자 하면 재가에 있어도 된다. 반드시 사원에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재가에서 수행할 수 있으면 동방인의 심지가 선한 것과 같고, 사원에 있으면서 닦지 않으면 서방인의 심지가 악한 것과 같다. 다만 마음이 청정하면 그것이 곧 자성의 서방이다.」
韋公又問:「在家如何修行?願為教授。」
위공이 또 물었다.「재가는 어떻게 수행해야 합니까. 가르쳐 주시기를 원합니다.」
師言:「吾與大眾說無相頌。但依此修,常與吾同處無別;若不依此修,剃髮出家於道何益?頌曰:
대사가 말했다.「내가 대중을 위해 한 수의 무상송을 설하겠다. 다만 이것을 따라 닦으면 항상 나와 같은 곳에 있어 분별이 없는 것과 같고, 만약 이것을 따라 닦지 않으면 머리를 깎고 출가해도 도에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송에 이르기를,
「心平何勞持戒,行直何用修禪!
마음이 평평하면 어찌 계를 지키는 데 수고하겠으며, 행위가 바르면 어찌 다시 선을 닦겠는가.
恩則孝養父母,義則上下相憐,
은을 말하면 부모에게 효순봉양하고, 의를 말하면 상하가 서로 체휼하며,
讓則尊卑和睦,忍則眾惡無諠,
양을 말하면 존비가 화목하고, 인을 말하면 많은 악사가 일어나지 않는다.
若能鑽木出火,淤泥定生紅蓮。
만약 찬목취화처럼 공부를 하면, 우니 속에 반드시 홍련화가 난다.
苦口的是良藥,逆耳必是忠言,
입에 쓴 것은 양약이요, 귀에 거슬리는 것은 반드시 충언이다.
改過必生智慧,護短心內非賢。
과실을 고치면 반드시 지혜가 생기고, 자기 단점을 엄호하면 마음은 현인이 아니다.
日用常行饒益,成道非由施錢,
일상생활에서 항상 사람에게 이익 되는 일을 하라. 도를 이루는 것은 전재를 보시하는 데 있지 않다.
菩提只向心覓,何勞向外求玄。
보리는 다만 마음속에서 찾아야 하니, 어찌 힘을 들여 밖에서 현묘를 구하겠는가.
聽說依此修行,西方只在目前。」
이 말을 듣고 이것을 따라 수행하면 서방정토가 눈앞에 있다.」
師復曰:「善知識!總須依偈修行,見取自性,直成佛道。時不相待,眾人且散,吾歸曹溪。眾若有疑,卻來相問。」
대사가 또 말했다.「선지식이여! 모두 이 게송을 따라 수행하여 자성을 보고 직접 불도를 성취하라. 시광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으니, 대중은 잠시 흩어져라. 나는 조계로 돌아간다. 만약 의문이 있으면 다시 와서 나에게 물어라.」
時,刺史官僚、在會善男信女,各得開悟,信受奉行。
그때 자사·관원 및 회중에 있던 선남신녀가 각기 모두 오해를 얻고 신수봉행했다.
定慧第四
정혜제사
師示眾云:「善知識!我此法門,以定慧為本。大眾!勿迷,言定慧別。定慧一體,不是二。定是慧體,慧是定用。即慧之時定在慧,即定之時慧在定。若識此義,即是定慧等學。諸學道人,莫言先定發慧、先慧發定各別。作此見者,法有二相。口說善語,心中不善。空有定慧,定慧不等。若心口俱善、內外一如,定慧即等。自悟修行,不在於諍。若諍先後,即同迷人,不斷勝負,卻增我法,不離四相。善知識!定慧猶如何等?猶如燈光。有燈即光,無燈即闇。燈是光之體,光是燈之用;名雖有二,體本同一。此定慧法,亦復如是。」
대사가 대중에게 개시하여 말했다.「선지식이여! 나의 이 법문은 정과 혜를 근본으로 삼는다. 대중이여! 미혹하지 마라. 정과 혜를 별개라 하지 마라. 정혜는 일체이지 둘이 아니다. 정은 혜의 본체요, 혜는 정의 작용이다. 바로 혜가 있을 때 정이 혜 안에 있고, 바로 정이 있을 때 혜가 정 안에 있다. 만약 이 뜻을 알면 이것이 정혜를 평등하게 배우는 것이다. 학도하는 사람들이여, 먼저 정이 있어 혜를 발한다거나, 먼저 혜가 있어 정을 발한다고 말하여 둘을 각별하게 하지 마라. 이런 견해를 짓는 자는 법에 두 가지 상이 있게 된다. 입으로 좋은 말을 하면서 마음속이 선하지 않고, 공연히 정혜의 이름만 있고 정혜가 평등하지 않다. 만약 마음과 입이 다 선하고 내외가 일여하면 정혜가 평등하다. 스스로 깨닫고 수행하는 것은 다툼에 있지 않다. 만약 선후를 다투면 미인과 같아서 승부의 마음이 끊이지 않고, 도리어 '아'와 '법'의 집착을 증장하여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을 벗어나지 못하리라. 선지식이여! 정혜는 무엇에 비유할까. 등과 빛과 같다. 등이 있으면 빛이 있고 등이 없으면 흑암이다. 등은 빛의 체요, 빛은 등의 용이다. 이름은 비록 둘이나 본체는 본래 같다. 이 정혜의 법도 또한 이와 같다.」
師示眾云:「善知識!一行三昧者,於一切處行住坐臥,常行一直心是也。《淨名》云:『直心是道場,直心是淨土。』莫心行諂曲,口但說直;口說一行三昧,不行直心。但行直心,於一切法勿有執著。迷人著法相、執一行三昧,直言:『常坐不動,妄不起心,即是一行三昧。』作此解者,即同無情,卻是障道因緣。善知識!道須通流,何以卻滯?心不住法,道即通流;心若住法;名為自縛。若言常坐不動是,只如舍利弗宴坐林中,卻被維摩詰訶。善知識!又有人教坐,看心觀靜,不動不起,從此置功。迷人不會,便執成顛。如此者眾,如是相教,故知大錯。」
대사가 대중에게 개시하여 말했다.「선지식이여! 일행삼매라 하는 것은 일체 처소에서 행주좌와에 항상 한 곧은 마음을 행하는 것이다. 《정명경》에 이르기를『곧은 마음이 곧 도장이요, 곧은 마음이 곧 정토다』하였다. 마음의 행에 첨곡함이 없이 입에 다만 정직을 말하지 마라. 입에 일행삼매를 말하면서 직심을 행하지 않는 것을 말하지 마라. 다만 직심을 행하여 일체법에 집착이 없어야 한다. 미인은 법상에 집착하고 일행삼매를 집착하여 곧바로 말하기를『항상 앉아서 움직이지 않고 망심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일행삼매다』한다. 이런 해를 짓는 사람은 곧 무정물과 같아서 도리어 장도의 인연이 된다. 선지식이여! 도는 반드시 통창유동해야 하니, 무슨 까닭에 도리어 막는가. 마음이 법에 머물지 않으면 도가 통창유동한다. 마음이 법에 머물면 이를 스스로 묶는 것이라 한다. 만약 항상 앉아 움직이지 않는 것을 옳다 하면 사리불이 숲속에서 연좌한 것이 위마힐에게 꾸짖은 바 된 것과 같다. 선지식이여! 또 사람에게 좌선을 가르쳐 마음을 보고 정을 관하여 움직이지도 일어나지도 않게 하여 여기에서 공부하게 하는 자가 있다. 미인이 깨닫지 못하고 집착하여 전도가 된다. 이런 사람이 심히 많으니, 이렇게 서로 전수하는 것은 큰 잘못임을 알아야 한다.」
師示眾云:「善知識!本來正教,無有頓漸,人性自有利鈍。迷人漸修,悟人頓契。自識本心,自見本性,即無差別,所以立頓漸之假名。善知識!我此法門,從上以來,先立無念為宗,無相為體,無住為本。無相者,於相而離相。無念者,於念而無念。無住者,人之本性。於世間善惡好醜,乃至冤之與親,言語觸刺欺爭之時,並將為空,不思酬害,念念之中不思前境。若前念今念後念,念念相續不斷,名為繫縛。於諸法上念念不住,即無縛也。此是以無住為本。善知識!外離一切相,名為無相。能離於相,即法體清淨。此是以無相為體。善知識!於諸境上,心不染,曰無念。於自念上,常離諸境,不於境上生心。若只百物不思,念盡除卻,一念絕即死,別處受生,是為大錯。學道者思之。若不識法意,自錯猶可,更誤他人;自迷不見,又謗佛經,所以立無念為宗。善知識!云何立無念為宗?只緣口說見性,迷人於境上有念,念上便起邪見,一切塵勞妄想從此而生。自性本無一法可得,若有所得,妄說禍福,即是塵勞邪見,故此法門立無念為宗。善知識!無者無何事?念者念何物?無者無二相,無諸塵勞之心。念者念真如本性。真如即是念之體,念即是真如之用。真如自性起念,非眼耳鼻舌能念。真如有性,所以起念;真如若無,眼耳色聲當時即壞。善知識!真如自性起念,六根雖有見聞覺知,不染萬境,而真性常自在。故經云:『能善分別諸法相,於第一義而不動。』」
대사가 대중에게 개시하여 말했다.「선지식이여! 본래 정교에 돈과 점이 없고 다만 사람의 근성이 스스로 이와 둔이 있을 뿐이다. 미인은 점차 닦고 오인은 돈연히 계입한다. 스스로 본심을 알고 스스로 본성을 보면 차별이 없으므로 돈점은 다만 가명이다. 선지식이여! 나의 이 법문은 이전 대로부터 먼저 무념을 종으로 삼고 무상을 체로 하며 무주를 본으로 한다. 무상이란 상 가운데서 상을 떠나는 것이다. 무념이란 념 가운데서 념이 없는 것이다. 무주란 사람의 본성이니, 세간의 선악호추 및 원수와 친인이 있어 언어가 촉범하고 속이고 다툴 때, 함께 공으로 보아 보답을 생각하지 않는다. 념념 가운데 이전 경계를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전념·금념·후념이 념념 상속하여 끊이지 않으면 이를 계박이라 한다. 제법 위에서 념념이 머물지 않으면 곧 계박이 없다. 이것이 무주를 본으로 하는 것이다. 선지식이여! 밖으로 일체상을 떠나는 것을 무상이라 한다. 능히 상을 떠나면 법체가 청정하다. 이것이 무상을 체로 하는 것이다. 선지식이여! 여러 경계 위에서 마음이 물들지 않는 것을 무념이라 한다. 자기 생각 위에서 항상 여러 경계를 떠나 경계 위에서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다. 만약 다만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생각을 다 제거하면, 일념이 끊어지면 곧 죽어 다른 곳에 수생하리니 큰 잘못이다. 도를 배우는 사람은 잘 생각하라. 만약 법의 뜻을 알지 못하면 스스로 그르치는 것은 오히려 괜찮지만, 또 남을 권하여 그르치게 한다. 스스로 미혹하여 보지 못하면서 또 불경을 비방하니, 그러므로 무념을 종으로 세운다. 선지식이여! 무슨 까닭으로 무념을 종으로 세우는가. 다만 인연 있는 사람이 입으로 견성을 말하면서 미인이 경계에 념이 있어 생각에 곧 사견을 일으키고, 일체 진로망상이 여기에서 생기기 때문이다. 자성은 본래 얻을 법이 하나도 없는데, 만약 얻을 것이 있다 하여 망령되이 화복을 말하면 이는 곧 진로사견이다. 그러므로 이 법문이 무념을 종으로 세운다. 선지식이여! 「무」는 무슨 일을 없애는가. 「념」은 무슨 것을 생각하는가. 「무」는 이상이 없고 여러 진로의 마음이 없는 것이다. 「념」은 진여본성을 생각하는 것이다. 진여가 곧 념의 체요, 념이 곧 진여의 용이다. 진여자성이 념을 일으키되 안이비설로 념하는 것이 아니다. 진여에 체성이 있으므로 능히 념을 일으키며, 진여가 만약 없으면 안목과 색성이 당시 허물어지리라. 선지식이여! 진여자성이 념을 일으키면 육근이 비록 견문각지가 있으나 만경에 물들지 않아 진성이 항상 자재하다. 그러므로 경에 이르기를『능히 선하게 일체법상을 분별하되 제일의에서 움직이지 않는다』하였다.」
坐禪第五
좌선제오
師示眾云:「此門坐禪,元不著心,亦不著淨,亦不是不動。若言著心,心元是妄,知心如幻,故無所著也。若言著淨,人性本淨,由妄念故,蓋覆真如。但無妄想,性自清淨;起心著淨,卻生淨妄。妄無處所,著者是妄。淨無形相,卻立淨相,言是工夫。作此見者,障自本性,卻被淨縛。善知識!若修不動者,但見一切人時,不見人之是非善惡過患,即是自性不動。善知識!迷人身雖不動!開口便說他人是非長短好惡,與道違背。若著心著淨,即障道也。」
대사가 대중에게 개시하여 말했다.「이 문의 좌선은 본래 마음에 집착하지 않고 또 청정에도 집착하지 않으며, 또 부동도 아니다. 만약 마음에 집착한다고 말하면 마음은 본래 허망하다. 마음이 환과 같음을 알므로 집착할 것이 없다. 만약 청정에 집착한다고 말하면 사람의 본성은 본래 청정하나, 망념의 까닭으로 진여를 가리우니, 다만 망상이 없으면 본성이 저절로 청정하다. 마음을 일으켜 청정을 집착하면 도리어 '청정'의 망을 낳는다. 망은 처소가 없고 집착하는 그것이 곧 망이다. 청정은 형상이 없는데 도리어 청정상을 세우고 이를 공부라 한다. 이런 견해를 짓는 자는 자기 본성을 장애하고 도리어 '청정'에 묶이게 된다. 선지식이여! 만약 부동을 닦으면 일체 사람을 볼 때 사람의 시비선악과환을 보지 않는 것이 곧 자성부동이다. 선지식이여! 미인은 몸이 비록 부동하나 입을 열면 곧 남의 시비장단호오를 말하니 도와 서로 위배된다. 만약 마음에 집착하고 청정에 집착하면 곧 도를 장애하는 것이다.」
師示眾云:「善知識!何名坐禪?此法門中,無障無礙,外於一切善惡境界,心念不起,名為坐;內見自性不動,名為禪。善知識!何名禪定?外離相為禪,內不亂為定。外若著相,內心即亂;外若離相,心即不亂。本性自淨自定,只為見境,思境即亂。若見諸境心不亂者,是真定也。善知識!外離相即禪,內不亂即定。外禪內定,是為禪定。《菩薩戒經》云:『我本元自性清淨。』善知識!於念念中,自見本性清淨,自修自行,自成佛道。」
대사가 대중에게 개시하여 말했다.「선지식이여! 무엇을 좌선이라 하는가. 이 법문 가운데는 막힘도 걸림도 없다. 밖으로 일체 선악경계에 심념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좌라 하고, 안으로 자성의 부동을 보는 것을 선이라 한다. 선지식이여! 무엇을 선정이라 하는가. 밖으로 상을 떠나는 것이 선이요 안으로 흩어지지 않는 것이 정이다. 밖에서 만약 상에 집착하면 내심이 곧 어지럽고, 밖에서 만약 상을 떠나면 마음이 어지럽지 않다. 본성은 본래 스스로 청정하고 스스로 안정되나, 다만 경계를 보고 경계를 생각하는 까닭에 어지러운 것이다. 만약 여러 경계를 보면서 마음이 어지럽지 않으면 그것이 진정이다. 선지식이여! 밖으로 상을 떠나는 것이 곧 선이요, 안으로 어지럽지 않은 것이 곧 정이다. 밖은 선이요 안은 정이니 이를 선정이라 한다. 《보살계경》에 이르기를『나의 본원 자성이 청정하다』하였다. 선지식이여! 념념 가운데 스스로 본성청정을 보고 스스로 닦고 스스로 행하여 자기 불도를 성취하라.」
懺悔第六
참회제육
時,大師見廣韶洎四方士庶,駢集山中聽法,於是陞座,告眾曰:「來,諸善知識!此事須從自事中起,於一切時,念念自淨其心。自修自行,見自己法身,見自心佛,自度自戒,始得不假到此。既從遠來,一會於此,皆共有緣。今可各各胡跪,先為傳自性五分法身香,次授無相懺悔。」眾胡跪。師曰:「一、戒香。即自心中無非無惡、無嫉妬、無貪瞋、無劫害,名戒香。二、定香。即覩諸善惡境相,自心不亂,名定香。三、慧香。自心無礙,常以智慧觀照自性,不造諸惡;雖修眾善,心不執著,敬上念下,矜恤孤貧,名慧香。四、解脫香。即自心無所攀緣,不思善、不思惡,自在無礙,名解脫香。五、解脫知見香。自心既無所攀緣善惡,不可沈空守寂,即須廣學多聞,識自本心,達諸佛理,和光接物,無我無人,直至菩提,真性不易,名解脫知見香。善知識!此香各自內燻,莫向外覓。
그때 대사는 광주·소주 및 사방의 선비와 백성이 산중에 모여 법을 듣는 것을 보고, 이에 좌에 올라 대중에게 말했다.「오라, 여러 선지식이여! 이 일은 반드시 자기 몸에서 일어나야 하니, 일체시에 념념이 스스로 그 마음을 청정하게 하라. 스스로 닦고 스스로 행하여 자기 법신을 보고 자심의 부처를 보며, 스스로 제도하고 스스로 계를 지켜야 비로소 헛되이 이곳에 온 것이 아니게 된다. 이미 멀리서 와서 여기에서 한번 모였으니 모두 인연 있는 것이다. 지금 여러분은 모두 호궤하라. 내가 먼저 너희를 위해 자성의 오분법신향을 전하고 다음으로 무상참회를 주겠다.」대중이 호궤했다. 대사가 말했다.「첫째는 계향이다. 곧 자심에 비가 없고 악이 없고 질투가 없고 탐진이 없고 겁해가 없는 것을 계향이라 한다. 둘째는 정향이다. 곧 여러 선악경상을 보고도 자심이 어지럽지 않은 것을 정향이라 한다. 셋째는 혜향이다. 자심에 장애가 없고 항상 지혜로 자성을 관조하여 여러 악을 짓지 않으며, 비록 여러 선을 닦으면서도 마음에 집착하지 않고, 윗사람을 공경하고 아랫사람을 생각하며 고아와 궁핍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을 혜향이라 한다. 넷째는 해탈향이다. 곧 자심이 반연할 것이 없어 선을 생각하지 않고 악을 생각하지 않아 자재무애한 것을 해탈향이라 한다. 다섯째는 해탈지견향이다. 자심이 이미 선악에 반연할 것이 없어도 공을 탐닉하여 정을 지키는 것도 허락하지 않으니, 곧 반드시 널리 배우고 많이 들어 자기 본심을 알고 제불의 이치를 통달하며, 화광하여 접물하고 나도 없고 남도 없어 직지보리에 이르기까지 진성이 변하지 않는 것을 해탈지견향이라 한다. 선지식이여! 이 향은 각각 안에서 훈수할 것이며 밖을 향해 구하지 마라.」
「今與汝等授無相懺悔,滅三世罪,令得三業清淨。善知識!各隨我語,一時道:『弟子等,從前念今念及後念,念念不被愚迷染。從前所有惡業愚迷等罪,悉皆懺悔,願一時銷滅,永不復起。弟子等,從前念今念及後念,念念不被憍誑染。從前所有惡業憍誑等罪,悉皆懺悔,願一時銷滅,永不復起。弟子等,從前念今念及後念,念念不被嫉妬染。從前所有惡業嫉妬等罪,悉皆懺悔,願一時銷滅,永不復起。』善知識!已上是為無相懺悔。云何名懺?云何名悔?懺者,懺其前愆,從前所有惡業,愚迷憍誑嫉妬等罪,悉皆盡懺,永不復起,是名為懺。悔者,悔其後過,從今以後,所有惡業,愚迷憍誑嫉妬等罪,今已覺悟,悉皆永斷,更不復作,是名為悔。故稱懺悔。凡夫愚迷,只知懺其前愆,不知悔其後過。以不悔故,前愆不滅,後過又生。前愆既不滅,後過復又生,何名懺悔?
「지금 너희에게 무상참회를 주어 삼세의 죄를 멸하고 삼업으로 하여금 청정을 얻게 하겠다. 선지식이여! 각각 말을 따라 함께 읽어라.『제자 등은 전념·금념 및 후념에서 념념이 우미에 물들지 않고, 종전의 모든 악업·우미 등의 죄를 모두 참회하겠습니다. 원컨대 일시에 소멸하여 영원히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옵소서. 제자 등은 전념·금념 및 후념에서 념념이 교광에 물들지 않고, 종전의 모든 악업·교광 등의 죄를 모두 참회하겠습니다. 원컨대 일시에 소멸하여 영원히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옵소서. 제자 등은 전념·금념 및 후념에서 념념이 질투에 물들지 않고, 종전의 모든 악업·질투 등의 죄를 모두 참회하겠습니다. 원컨대 일시에 소멸하여 영원히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옵소서.』선지식이여! 이상이 무상참회이다. 무엇이 참이며 무엇이 회인가. 참이란 그 전의 허물을 참하는 것이다. 종전의 모든 악업, 우미·교광·질투 등의 죄를 모두 다 참하여 영원히 일으키지 않는 것을 참이라 한다. 회란 그 후의 허물을 회하는 것이다. 지금부터 이후 모든 악업, 우미·교광·질투 등의 죄를 이제 이미 깨달아 모두 영원히 끊고 다시 짓지 않는 것을 회라 한다. 그러므로 참회라 칭한다. 범부는 우미하여 다만 전의 허물을 참할 줄만 알고 후의 허물을 회할 줄을 모른다. 회하지 않는 까닭으로 전의 허물이 멸하지 않고 후의 허물이 또 생긴다. 전의 허물이 이미 멸하지 않고 후의 허물이 거듭 생기면 어찌 참회라 하겠는가.」
「善知識!既懺悔已,與善知識發四弘誓願,各須用心正聽。自心眾生無邊誓願度,自心煩惱無邊誓願斷,自性法門無盡誓願學,自性無上佛道誓願成。善知識!大家豈不道,眾生無邊誓願度。恁麼道,且不是惠能度。善知識!心中眾生,所謂邪迷心、誑妄心、不善心、嫉妬心、惡毒心,如是等心,盡是眾生。各須自性自度,是名真度。何名自性自度?即自心中邪見煩惱愚痴眾生,將正見度。既有正見,使般若智打破愚痴迷妄眾生,各各自度。邪來正度,迷來悟度,愚來智度,惡來善度;如是度者,名為真度。又煩惱無邊誓願斷,將自性般若智,除卻虛妄思想心是也。又法門無盡誓願學,須自見性,常行正法,是名真學。又無上佛道誓願成,既常能下心,行於真正,離迷離覺,常生般若。除真除妄,即見佛性,即言下佛道成。常念修行,是願力法。
「선지식이여! 이미 참회를 마쳤으면 여러 선지식과 함께 사홍서원을 발한다. 각각 반드시 바른 마음으로 들어라. 자심의 중생이 무변하니 서원하여 다 제도하겠다. 자심의 번뇌가 무변하니 서원하여 다 끊겠다. 자성의 법문이 무진하니 서원하여 다 배우겠다. 자성의 무상불도이니 서원하여 이루겠다. 선지식이여! 여러분은 모두『중생무변서원도』라고 말하지 않는가. 이렇게 말하지만 혜능이 제도하는 것이 아니다. 선지식이여! 심중의 중생이란 소위 사미심·광망심·불선심·질투심·악독심, 이와 같은 마음이 다 중생이다. 각각 반드시 자성으로 스스로 제도해야 하는데, 이를 진도라 한다. 무엇을 자성자도라 하는가. 곧 자심의 사견·번뇌·우치의 중생을 장차 정견으로 제도한다. 이미 정견이 있으면 반야지를 사용하여 우치미망의 중생을 타파하여 각각 스스로 제도한다. 삿됨이 오면 바름으로 제도하고, 미혹이 오면 깨달음으로 제도하고, 어리석음이 오면 지혜로 제도하고, 악이 오면 선으로 제도한다. 이렇게 제도하는 것을 진도라 한다. 또『번뇌무변서원단』은 장차 자성의 반야지로 허망한 사상심을 제거하는 것이다. 또『법문무진서원학』은 반드시 스스로 견성하여 항상 정법을 행해야 하니, 이를 진학이라 한다. 또『무상불도서원성』은 이미 능히 항상 마음을 낮추어 참된 도를 행하여 미혹도 떠나고 깨달음도 떠나 항상 반야를 생하여 참도 제거하고 망도 제거하면 곧 불성을 보아 곧 언하에 불도를 이룬다. 항상 수행을 생각하는 것이 이 원력법이다.」
「善知識!今發四弘願了,更與善知識授無相三歸依戒。善知識!歸依覺,兩足尊。歸依正,離欲尊。歸依淨,眾中尊。從今日去,稱覺為師,更不歸依邪魔外道,以自性三寶常自證明,勸善知識歸依自性三寶。佛者,覺也。法者,正也。僧者,淨也。自心歸依覺,邪迷不生,少欲知足,能離財色,名兩足尊。自心歸依正,念念無邪見,以無邪見故,即無人我貢高,貪愛執著,名離欲尊。自心歸依淨,一切塵勞愛欲境界,自性皆不染著,名眾中尊。若修此行,是自歸依。凡夫不會,從日至夜受三歸戒。若言歸依佛,佛在何處?若不見佛,憑何所歸,言卻成妄。善知識!各自觀察,莫錯用心。經文分明言自歸依佛,不言歸依他佛。自佛不歸,無所依處。今既自悟,各須歸依自心三寶,內調心性,外敬他人,是自歸依也。
「선지식이여! 이제 이미 사홍서원을 발했으니, 다시 여러 선지식에게 무상삼귀의계를 주겠다. 선지식이여! 귀의각은 양족존이요, 귀의정은 이욕존이요, 귀의정은 중중존이다. 오늘부터는 '각'을 스승이라 칭하고 다시는 사마외도에 귀의하지 않으며, 자성삼보로 항상 스스로 증명한다. 선지식을 권하여 자성삼보에 귀의하라. 부처는 곧 깨달음이요, 법은 곧 바름이요, 승은 곧 청정이다. 자심이 각에 귀의하면 삿되고 미혹함이 생기지 않고 소욕지족하여 능히 재색을 떠나니 이를 양족존이라 한다. 자심이 정에 귀의하면 념념에 사견이 없고, 사견이 없는 까닭으로 인아공고와 탐애집착이 없으니 이를 이욕존이라 한다. 자심이 정에 귀의하면 일체 진로애욕의 경계에 자성이 다 물들지 않으니 이를 중중존이라 한다. 만약 이 행을 닦으면 이것이 스스로 귀의하는 것이다. 범부는 깨닫지 못하여 아침부터 저녁까지 삼귀계를 받는다. 만약 귀의불이라 말하면 부처가 어디에 있는가. 만약 부처를 보지 못하면 무엇을 의지하여 귀의하는가. 이 말은 도리어 망어가 된다. 선지식이여! 각각 관찰하라. 뜻을 그릇 쓰지 마라. 경문이 분명히 이르기를 스스로 귀의불이라 하고 다른 부처에 귀의한다 하지 않았다. 자기 부처에 귀의하지 않으면 의지할 곳이 없다. 이제 이미 스스로 깨달았으니 각각 반드시 자심의 삼보에 귀의하라. 안으로 심성을 조복하고 밖으로 타인을 공경하는 것이 스스로 귀의하는 것이다.」
「善知識!既歸依自三寶竟,各各志心,吾與說一體三身自性佛,令汝等見三身瞭然,自悟自性。總隨我道:『於自色身,歸依清淨法身佛。於自色身,歸依圓滿報身佛。於自色身,歸依千百億化身佛。』善知識!色身是舍宅,不可言歸。曏者三身佛,在自性中,世人總有;為自心迷,不見內性。外覓三身如來,不見自身中有三身佛。汝等聽說,令汝等於自身中,見自性有三身佛。此三身佛,從自性生,不從外得。何名清淨法身佛?世人性本清淨,萬法從自性生。思量一切惡事,即生惡行;思量一切善事,即生善行。如是諸法在自性中,如天常清,日月常明,為浮雲蓋覆,上明下暗。忽遇風吹雲散,上下俱明,萬象皆現。世人性常浮游,如彼天雲。善知識!智如日,慧如月,智慧常明。於外著境,被妄念浮雲蓋覆自性,不得明朗。若遇善知識,聞真正法,自除迷妄,內外明徹,於自性中萬法皆現。見性之人,亦復如是。此名清淨法身佛。善知識!自心歸依自性,是歸依真佛。自歸依者,除卻自性中不善心、嫉妬心、諂曲心、吾我心、誑妄心、輕人心、慢他心、邪見心、貢高心,及一切時中不善之行,常自見己過,不說他人好惡,是自歸依。常須下心,普行恭敬,即是見性通達,更無滯礙,是自歸依。何名圓滿報身?譬如一燈能除千年闇,一智能滅萬年愚。莫思向前,已過不可得;常思於後,念念圓明,自見本性。善惡雖殊,本性無二,無二之性,名為實性。於實性中,不染善惡,此名圓滿報身佛。自性起一念惡,滅萬劫善因;自性起一念善,得恆沙惡盡。直至無上菩提,念念自見,不失本念,名為報身。何名千百億化身?若不思萬法,性本如空,一念思量,名為變化。思量惡事,化為地獄;思量善事,化為天堂。毒害化為龍蛇,慈悲化為菩薩,智慧化為上界,愚痴化為下方。
「선지식이여! 이미 자성삼보에 귀의했으면 각각 지심하여, 내가 너희에게 일체삼신자성불을 설하겠다. 너희로 하여금 삼신을 보고 요연히 스스로 자성을 깨닫게 하겠다. 모두 따라 읽어라.『자기 색신에서 청정법신불에 귀의한다. 자기 색신에서 원만보신불에 귀의한다. 자기 색신에서 천백억화신불에 귀의한다.』선지식이여! 색신은 집이니 귀의한다 말할 수 없다. 앞의 삼신불은 자성 가운데 있어 세간 사람이 모두 가지고 있으나, 자심이 미혹하여 내성을 보지 못하고 밖에서 삼신여래를 찾아 자기 몸 가운데 삼신불이 있는 것을 보지 못한다. 너희는 내 말을 들어라. 너희로 하여금 몸 가운데서 자성에 삼신불이 있음을 보게 하리라. 이 삼신불은 자성에서 난 것이지 밖에서 얻은 것이 아니다. 무엇을 청정법신불이라 하는가. 세간 사람의 성은 본래 청정하여 만법이 자성에서 난다. 일체 악사를 사량하면 곧 악행이 나고, 일체 선사를 사량하면 곧 선행이 난다. 이와 같이 여러 법이 자성 가운데 있으니, 하늘이 항상 맑고 일월이 항상 밝으나 뜬 구름에 가려 위가 밝고 아래가 어두운 것과 같다. 문득 바람이 불어 구름이 흩어지면 상하가 다 밝아져 만상이 다 나타난다. 세간 사람의 성이 항상 뜨어 유랑하는 것이 저 하늘의 구름과 같다. 선지식이여! 지는 해와 같고 혜는 달과 같아 지혜가 항상 밝다. 밖에서 경계에 집착하여 망념의 뜬 구름이 자성을 가리면 밝지 못하다. 만약 선지식을 만나 참된 법을 듣고 스스로 미망을 없애면 내외가 명철하여 자성 가운데 만법이 다 나타난다. 견성하는 사람도 또한 이와 같다. 이를 청정법신불이라 한다. 선지식이여! 자심이 자성에 귀의하는 것이 참 부처에 귀의하는 것이다. 스스로 귀의한다는 것은 자성 가운데 불선심·질투심·첨곡심·아아심·광망심·경인심·만타심·사견심·공고심 및 일체시의 불선한 행을 제거하는 것이다. 항상 자기 허물을 보고 남의 좋고 나쁨을 말하지 않는 것이 스스로 귀의하는 것이다. 항상 마음을 낮추어 널리 공경을 행하면 곧 견성통달하여 다시 체애가 없으니 이것이 스스로 귀의하는 것이다. 무엇을 원만보신이라 하는가. 비유하면 한 등불이 천 년의 어둠을 없앨 수 있고 한 점의 지혜가 만 년의 어리석음을 멸할 수 있다. 이전을 생각하지 마라. 이미 지난 것은 얻을 수 없으니, 뒤를 항상 생각하여 념념이 원명하면 스스로 본성을 본다. 선과 악이 비록 다르나 본성은 둘이 없다. 둘 없는 성을 실성이라 한다. 실성 가운데서 선악에 물들지 않는 것을 원만보신불이라 한다. 자성이 한 생각 악을 일으키면 만 겁의 선인을 멸하고, 자성이 한 생각 선을 일으키면 항하사의 악이 다 없어진다. 무상보리에 이르기까지 념념이 스스로 보아 본념을 잃지 않는 것을 보신이라 한다. 무엇을 천백억화신이라 하는가. 만약 만법을 사량하지 않으면 본성이 허공과 같다. 한 생각 사량하면 변화라 한다. 악한 일을 사량하면 지옥으로 화하고, 선한 일을 사량하면 천당으로 화하며, 독해는 용사로 화하고, 자비는 보살로 화하며, 지혜는 상계로 화하고, 우치는 하방으로 화한다.」
自性變化甚多,迷人不能省覺,念念起惡,常行惡道。迴一念善,智慧即生,此名自性化身佛。善知識!法身本具,念念自性自見,即是報身佛。從報身思量,即是化身佛。自悟自修自性功德,是真歸依。皮肉是色身,色身是舍宅,不言歸依也。但悟自性三身,即識自性佛。吾有一無相頌,若能誦持,言下令汝積劫迷罪一時銷滅。頌曰:
(대사가 이어서)자성의 변화가 심히 많으니 미인은 능히 성찰하여 깨닫지 못한다. 념념에 악을 일으켜 항상 악도를 행한다. 한 생각을 돌이켜 선을 향하면 지혜가 곧 생기니 이를 자성화신불이라 한다. 선지식이여! 법신은 본래 갖추어져 있어 념념에 자성이 스스로 보는 것이 곧 보신불이다. 보신에서 사량하면 곧 화신불이다.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자성공덕을 닦는 것이 참 귀의이다. 가죽과 살은 색신이요, 색신은 집이니 귀의한다 말하지 않는다. 다만 자성삼신을 깨달으면 곧 자성불을 안다. 내게 한 수의 무상송이 있으니 능히 외워 지니면 언하로 너희의 누겁 미죄를 일시에 소멸하리라. 송에 이르기를,
「迷人修福不修道,只言修福便是道,
미인은 복을 닦고 도를 닦지 않으면서 복 닦는 것이 곧 도라고만 말하도다.
佈施供養福無邊,心中三惡元來造。
보시공양의 복은 무변이나 심중의 삼악은 원래 짓고 있도다.
擬將修福欲滅罪,後世得福罪還在,
복 닦음으로 죄를 멸하려 하나 후세에 복을 얻어도 죄는 여전하도다.
但向心中除罪緣,名自性中真懺悔。
다만 심중에 죄의 인연을 제거하면 각각 자성 가운데 참된 참회로다.
忽悟大乘真懺悔,除邪行正即無罪,
문득 대승의 참된 참회를 깨달아 삿됨을 없애고 바름을 행하면 곧 죄가 없도다.
學道常於自性觀,即與諸佛同一類。
도를 배우는 자는 항상 자성을 관하면 곧 제불과 같은 부류가 되도다.
吾祖惟傳此頓法,普願見性同一體,
우리 조사는 다만 이 돈법을 전하니 널리 견성하여 일체가 되기를 원하도다.
若欲當來覓法身,離諸法相心中洗。
만약 장래에 법신을 찾고자 하면 여러 법상을 떠나 심중에서 씻어라.
努力自見莫悠悠,後念忽絕一世休,
힘써 스스로 볼 것이며 유유히 하지 마라. 후념이 문득 끊어지면 일생이 그치도다.
若悟大乘得見性,虔恭合掌至心求。」
만약 대승을 깨달아 견성을 얻고자 하면 경건히 합장하여 지심으로 구하라.」
師言:「善知識!總須誦取,依此修行,言下見性。雖去吾千里,如常在吾邊。於此言下不悟,即對面千里,何勤遠來。珍重!好去。」
대사가 말했다.「선지식이여! 모두 반드시 외워서 이것을 따라 수행하면 언하에 견성하리라. 비록 나를 떠나 천 리를 가도 항상 내 곁에 있는 것과 같고, 이 언하에서 깨닫지 못하면 마주 대해도 천 리이니 어찌 멀리 오는 수고를 하겠는가. 진중하라. 잘 가라.」
一眾聞法,靡不開悟,歡喜奉行。
온 대중이 법을 듣고 깨닫지 않은 자 없이 환희봉행했다.
機緣第七
기연제칠
師自黃梅得法,回至韶州曹侯村,人無知者(他本云,師去時,至曹侯村,住九月餘。然師自言:「不經三十餘日便至黃梅。」此求道之切,豈有逗留?作去時者非是)。有儒士劉志略,禮遇甚厚。志略有姑為尼,名無盡藏,常誦《大涅槃經》。師暫聽,即知妙義,遂為解說。尼乃執卷問字,師曰:「字即不識,義即請問。」尼曰:「字尚不識,焉能會義?」師曰:「諸佛妙理,非關文字。」尼驚異之,遍告裡中耆德云:「此是有道之士,宜請供養。」有魏(魏一作晉)武侯玄孫曹叔良及居民,競來瞻禮。時,寶林古寺,自隋末兵火已廢,遂於故基重建梵宇,延師居之。俄成寶坊,師住九月餘日,又為惡黨尋逐,師乃遯於前山。被其縱火焚草木,師隱身挨入石中得免。石今有師趺坐膝痕,及衣布之紋,因名避難石。師憶五祖懷會止藏之囑,遂行隱於二邑焉。
대사가 황매에서 법을 얻은 뒤 소주 조후촌에 돌아오니 아는 사람이 없었다.(다른 본자에는 대사가 갈 때 조후촌에 아홉 달 남짓 머물렀다 한다. 그러나 대사가 스스로 말하기를「삼십여 일도 안 되어 황매에 이르렀다」하셨으니, 구도가 그리 절박한데 어찌 머물렀겠는가. 갈 때 머물렀다는 것은 옳지 않다.)유생 유지략이 있어 그를 후하게 예우했다. 지략에게 고모가 출가하여 비구니가 되었으니 법명이 무진장이었고, 항상 《대열반경》을 외었다. 대사가 잠깐 듣고 곧 그 묘의를 알아 마침내 그녀를 위해 해설했다. 비구니가 이에 경권을 들고 글자를 묻자 대사가 말했다.「글자는 모르니, 의리라면 마땅히 물어라.」비구니가 말했다.「글자조차 모르는데 어찌 의리를 깨우치겠습니까.」대사가 말했다.「제불의 묘이는 문자와 관계없다.」비구니가 놀라고 이상하게 여겨 고을의 구로에게 두루 고하여 말했다.「이분은 도 있는 선비이니 청하여 공양해야 합니다.」위무후의 현손 조숙량 및 거민들이 다투어 와서 우러러 예배했다.(「위」자는 어떤 본자에는「진」으로 되어 있다.)그때 보림고사는 수 말의 병화 이후 이미 황폐하였으므로 대중이 옛 터에 절을 다시 세우고 대사를 청하여 머물게 하니, 얼마 안 되어 보배로운 도량이 되었다. 대사가 아홉 달 남짓 머물다가 또 악인들에게 쫓겨 앞산으로 피해 숨었는데, 그들이 불을 놓아 초목을 태우자 대사가 몸을 옆으로 하여 바위틈에 비집고 들어가 겨우 면했다. 그 바위에는 지금도 대사가 가부좌한 무릎 자국과 옷자락 무늬가 남아 있어 피난석이라 이름한다. 대사가 오조의「회를 만나면 그치고 회를 만나면 숨어라」는 부촉을 생각하고 회집·사회 두 고을에 은거했다.
僧法海,韶州曲江人也。初參祖師,問曰:「即心即佛,願垂指諭。」師曰:「前念不生即心,後念不滅即佛;成一切相即心,離一切相即佛。吾若具說,窮劫不盡。聽吾偈曰:
승 법해는 소주 곡강 사람이다. 처음 조사를 참례하여 물었다.「『즉심즉불』에 대해 가르침을 내려 주시기를 원합니다.」대사가 말했다.「전념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곧 마음이요, 후념이 멸하지 않는 것이 곧 부처다. 일체상을 이루는 것이 곧 마음이요, 일체상을 떠나는 것이 곧 부처다. 내가 만약 자세히 말한다면 겁을 다해도 다하지 못하리라. 나의 게송을 들어라.
「即心名慧,即佛乃定,定慧等持,
즉심을 혜라 하고 즉불을 정이라 하니, 정혜를 평등하게 지니면
意中清淨。悟此法門,由汝習性,
심의 가운데 자연 청정하도다. 이 법문을 깨닫는 것은 너의 습성에 달렸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