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조대사법보단경(六祖大師法寶壇經)
用本無生,雙修是正。」
작용은 본래 생하는 것이 아니니 쌍수하는 것이 올바른 길이로다.」
法海言下大悟,以偈讚曰:
법해가 언하에 크게 깨달아 한 게송으로 찬탄하여 말했다.
「即心元是佛,不悟而自屈,
즉심이 본래 부처인데 깨닫지 못하여 스스로 굴욕받았도다.
我知定慧因,雙修離諸物。」
내가 이제 정혜의 인연을 알았으니 쌍수하여 여러 집착을 떠나도다.」
僧法達,洪州人,七歲出家,常誦《法華經》。來禮祖師,頭不至地。師訶曰:「禮不投地,何如不禮?汝心中必有一物。蘊習何事耶?」曰:「念《法華經》已及三千部。」師曰:「汝若念至萬部,得其經意,不以為勝,則與吾偕行。汝今負此事業,都不知過。聽吾偈曰:
승 법달은 홍주 사람으로 일곱 살에 출가하여 항상 《법화경》을 외었다. 와서 조사를 예배하는데 머리가 땅에 닿지 않았다. 대사가 꾸짖어 말했다.「예를 행하면서 머리가 땅에 닿지 않으면 예하지 않은 것만 못하다. 너의 마음속에 반드시 한 가지 물건이 있다. 네가 평소 닦는 것은 무엇인가.」그가 말했다.「《법화경》을 이미 삼천 부를 외웠습니다.」대사가 말했다.「네가 만약 만 부를 외워 경의 뜻을 얻고도 이로써 자랑하지 않으면 나와 나란히 갈 수 있을 것이다. 너는 지금 이 공업을 짊어지고도 허물이 어디에 있는지 전혀 모른다. 나의 게송을 들어라.
「禮本折慢幢,頭奚不至地?
예는 본래 아만의 당을 꺾으려 함인데 네 머리는 어찌 땅에 닿지 않는가.
有我罪即生,亡功福無比。」
'나'가 있으면 죄가 곧 생기고, 공을 잊으면 복이 비길 데 없도다.」
師又曰:「汝名什麼?」曰:「法達。」師曰:「汝名法達,何曾達法?」復說偈曰:
대사가 또 물었다.「네 이름이 무엇인가.」그가 말했다.「법달입니다.」대사가 말했다.「네 이름이 법달인데 법에 통달한 적이 있느냐.」다시 한 게송을 설했다.
「汝今名法達,勤誦未休歇,
너는 이제 이름이 법달인데 부지런히 외어도 쉼이 없도다.
空誦但循聲,明心號菩薩。
공연히 소리만 따라 외우는 것이며, 마음을 밝히는 자야 비로소 보살이라 하도다.
汝今有緣故,吾今為汝說,
네가 이제 나와 인연이 있으므로 내가 너를 위해 말하리라.
但信佛無言,蓮華從口發。」
다만 부처가 본래 말이 없음을 믿으면 연꽃이 네 입에서 나오리라.」
達聞偈,悔謝曰:「而今而後,當謙恭一切。弟子誦《法華經》,未解經義,心常有疑。和尚智慧廣大,願略說經中義理。」師曰:「法達!法即甚達,汝心不達。經本無疑,汝心自疑。汝念此經,以何為宗?」達曰:「學人根性闇鈍,從來但依文誦念,豈知宗趣?」師曰:「吾不識文字,汝試取經誦一遍,吾當為汝解說。」法達即高聲念經,至譬喻品,師曰:「止!此經元來以因緣出世為宗,縱說多種譬喻,亦無越於此。何者因緣?經云:『諸佛世尊,唯以一大事因緣出現於世。』一大事者,佛之知見也。世人外迷著相,內迷著空;若能於相離相、於空離空,即是內外不迷。若悟此法,一念心開,是為開佛知見。佛,猶覺也。分為四門,開覺知見、示覺知見、悟覺知見、入覺知見。若聞開示,便能悟入,即覺知見,本來真性而得出現。汝慎勿錯解經意,見他道:『開示悟入,自是佛之知見。我輩無分。』若作此解,乃是謗經毀佛也。彼既是佛,已具知見,何用更開?汝今當信,佛知見者,只汝自心,更無別佛。蓋為一切眾生,自蔽光明,貪愛塵境,外緣內擾,甘受驅馳。便勞他世尊,從三昧起,種種苦口,勸令寢息,莫向外求,與佛無二。故云:『開佛知見。』吾亦勸一切人,於自心中,常開佛之知見。世人心邪,愚迷造罪,口善心惡,貪瞋嫉妬,諂佞我慢,侵人害物,自開眾生知見。若能正心,常生智慧,觀照自心,止惡行善,是自開佛之知見。汝須念念開佛知見,勿開眾生知見。開佛知見,即是出世;開眾生知見,即是世間。汝若但勞勞執念,以為功課者,何異犛牛愛尾。」達曰:「若然者,但得解義,不勞誦經耶?」師曰:「經有何過,豈障汝念?只為迷悟在人,損益由己。口誦心行,即是轉經;口誦心不行,即是被經轉。聽吾偈曰:
법달이 게송을 듣고 회사하여 말했다.「지금부터는 일체에 겸공하겠습니다. 제자가 《법화경》을 외우나 경의를 풀지 못하여 마음에 항상 의혹이 있습니다. 화상의 지혜가 광대하시니 경중의 의리를 약략히 설해 주시기를 원합니다.」대사가 말했다.「법달아! 법은 본래 심히 통달한 것이나 네 마음이 통달하지 못한다. 경에 본래 의혹이 없으나 네 마음이 스스로 의심한다. 네가 이 경을 외우는데 무엇을 종지로 삼는가.」법달이 말했다.「학인은 근성이 어둡고 둔하여 종래 다만 문자를 따라 외울 뿐이니 어찌 종지를 알겠습니까.」대사가 말했다.「나는 문자를 모르니, 네가 경을 가져와 한 번 외어 보라. 내가 너를 위해 해설하겠다.」법달이 곧 큰소리로 경을 외우다가 《비유품》에 이르자 대사가 말했다.「그만! 이 경은 원래『인연출세』를 종지로 한다. 비록 여러 가지 비유를 설해도 이것을 넘지 않는다. 무엇이 인연인가. 경에 이르기를『제불세존은 다만 한 큰 일의 인연으로 세상에 나타나신다』하였다. 소위 한 큰 일이란 부처의 지견이다. 세간 사람은 밖으로 미혹하여 상에 집착하고 안으로 미혹하여 공에 집착한다. 만약 상 가운데서 상을 떠나고 공 가운데서 공을 떠날 수 있으면 곧 내외가 다 미혹하지 않다. 만약 이 법을 깨달으면 일념에 마음이 열리니 이것이『불지견을 여는 것』이다. 불은 곧 깨달음이다. 네 문으로 나누어 각지견을 열고, 각지견을 보이고, 각지견을 깨닫고, 각지견에 든다. 만약『열림』과『보임』을 들으면 능히『깨달음』하고『듦』할 수 있으니, 그것이 곧 깨달음의 지견이요, 본래의 진성이 이로써 나타난다. 너는 삼가 경의 뜻을 그릇 풀이하지 마라. 남이 말하기를『개시오입은 본래 부처의 지견이니 우리에게는 해당이 없다』하는 것을 보고, 만약 이런 해를 지으면 이는 곧 경을 훼방하고 부처를 비방하는 것이다. 그가 이미 부처이면 이미 지견을 갖추었으니 어찌 다시『열』 것이 있겠는가. 너는 이제 마땅히 믿어야 한다. 소위 부처의 지견이란 바로 너의 자심이요, 다시 다른 부처가 없다. 다만 일체중생이 스스로 광명을 가리고 진경을 탐애하여 밖으로는 반연을 받고 안으로는 교란을 받아 기꺼이 그 구지를 받으므로, 곧 세존을 삼매에서 일어나게 하여 여러 가지로 간절히 권하여 쉬게 하고 밖으로 구하지 말게 하셨다. 그러면 부처와 다름이 없다. 그러므로『불지견을 연다』고 한다. 나도 일체 사람을 권하여 자심 가운데 항상 부처의 지견을 열라 한다. 세간 사람이 마음이 편사하여 우미하여 죄를 짓고 입은 선하고 마음은 악하며, 탐진질투하고 첨념하고 교만하여 남을 침해하고 만물을 해하면 이는 스스로 중생의 지견을 여는 것이다. 만약 그 마음을 바르게 하여 항상 지혜를 생하고 자심을 관조하여 악을 그치고 선을 행하면 이는 스스로 부처의 지견을 여는 것이다. 너는 반드시 념념이 부처의 지견을 열고 중생의 지견을 열지 마라. 불지견을 여는 것이 곧 출세요, 중생지견을 여는 것이 곧 세간이다. 네가 만약 다만 노고롭게 외움을 집착하여 공과로 삼으면 이는 소가 자기 꼬리를 아끼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법달이 말했다.「만약 이렇다면 다만 의리를 얻으면 경을 외우는 수고는 필요 없습니까.」대사가 말했다.「경에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 어찌 네가 외는 것을 방해하겠는가. 다만 미오가 사람에게 있고 손익이 자기에게 달렸을 뿐이다. 입으로 외우고 마음으로 행하면 곧 네가 경을 굴리는 것이요, 입으로 외우고 마음으로 행하지 않으면 곧 경에 굴림을 당하는 것이다. 나의 게송을 들어라.
「心迷法華轉,心悟轉法華,
마음이 미혹하면 법화에 굴려지고, 마음이 깨달으면 법화를 굴리도다.
誦經久不明,與義作讎家。
경을 오래 외워도 밝히지 못하면 도리어 경의 뜻과 원수가 되도다.
無念念即正,有念念成邪,
무념으로 외우면 외움이 곧 바르고, 집착을 가지고 외우면 외움이 곧 삿되도다.
有無俱不計,長御白牛車。」
유와 무를 다 헤아리지 않으면 길이 저 백우차를 타고 가도다.」
達聞偈,不覺悲泣,言下大悟,而告師曰:「法達從昔已來,實未曾轉法華,乃被法華轉。」再啟曰:「經云:『諸大聲聞乃至菩薩,皆盡思共度量,不能測佛智。』今令凡夫但悟自心,便名佛之知見。自非上根,未免疑謗。又經說三車,羊鹿牛車與白牛之車,如何區別?願和尚再垂開示。」師曰:「經意分明,汝自迷背。諸三乘人,不能測佛智者,患在度量也。饒伊盡思共推,轉加懸遠。佛本為凡夫說,不為佛說。此理若不肯信者,從他退席。殊不知,坐卻白牛車,更於門外覓三車。況經文明向汝道:『唯一佛乘,無有餘乘若二若三。』乃至無數方便,種種因緣譬喻言詞,是法皆為一佛乘故。汝何不省,三車是假,為昔時故;一乘是實,為今時故。只教汝去假歸實,歸實之後,實亦無名。應知所有珍財,盡屬於汝,由汝受用,更不作父想,亦不作子想,亦無用想。是名持法華經,從劫至劫,手不釋卷,從晝至夜,無不念時也。」
법달이 게송을 듣고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비읍하여 언하에 크게 깨닫고 대사에게 고하여 말했다.「법달이 옛날부터 참으로 법화를 굴린 적이 없고 도리어 법화에 굴려졌습니다.」다시 청하여 말했다.「경에 이르기를『여러 대성문 및 보살이 다 생각을 다하여 함께 도량해도 부처의 지혜를 측할 수 없다』하였습니다. 이제 범부로 하여금 다만 자심을 깨달으면 곧 부처의 지견이라 하게 하시니, 스스로 상근이 아니면 의심과 비방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또 경에 세 가지 수레—양차·록차·우차와 백우차를 설하셨는데 어떻게 구별합니까. 화상께서 다시 개시해 주시기를 원합니다.」대사가 말했다.「경의 뜻이 분명한데 네가 스스로 미혹하여 배반한다. 여러 삼승인이 불지를 측하지 못하는 것은 화가『도량』에 있다. 그들이 생각을 다하여 함께 추구하게 내버려 두면 더욱 현원해질 뿐이다. 부처는 본래 범부를 위해 설한 것이지 부처를 위해 설한 것이 아니다. 이 이치를 만약 믿지 않으면 그를 따라 퇴석하게 하라. 그들은 뜻밖에도 자신이 백우차에 앉아 있으면서 또 문 밖에서 세 수레를 찾는다. 하물며 경문이 분명히 네게 말하기를『오직 한 불승이 있고 나머지 승이 없으니 어찌 이승삼승이 있겠는가』하였다. 심지어 무명한 방편과 여러 가지 인연과 비유와 언사도 이 법은 다 한 불승을 위한 것이다. 너는 어찌 성찰하지 않는가. 삼차는 가설이니 옛날을 위한 것이고, 일승은 실이니 지금을 위한 것이다. 다만 너로 하여금 거짓을 버리고 참에 돌아가게 할 뿐이다. 참에 돌아간 뒤에는『진실』이라는 이름도 없다. 마땅히 알아라. 모든 진보와 재산은 다 네게 속하고 네가 수용하니, 다시 아버지 생각도 하지 않고 아들 생각도 하지 않고 또『수용』생각도 하지 않는다. 이것이《법화경》을 지니는 것이라 하니, 겁에서 겁까지 손에 권을 놓지 않고, 낮에서 밤까지 외우지 않는 때가 없다.」
達蒙啟發,踴躍歡喜,以偈讚曰:
법달이 계발을 받고 용약환희하여 한 게송으로 찬탄하여 말했다.
「經誦三千部,曹溪一句亡,
경을 삼천 부 외웠으나 조계의 한 구절에 다 소멸되도다.
未明出世旨,寧歇累生狂。
출세의 취지를 밝히지 못하면 어찌 누세의 광심을 쉬게 하겠는가.
羊鹿牛權設,初中後善揚,
양록우차는 모두 방편으로 세웠고 초선·중선·후선이 차제로 양명했도다.
誰知火宅內,元是法中王。」
누가 알았으랴, 이 화택 가운데가 본래 법중의 왕이었던 것을.」
師曰:「汝今後方可名念經僧也。」達從此領玄旨,亦不輟誦經。
대사가 말했다.「너는 이제부터 비로소 염경승이라 할 수 있다.」법달이 이로부터 현지를 영오하고 또한 경 외우기를 그치지 않았다.
僧智通,壽州安豐人。初看《楞伽經》。約千餘遍,而不會三身四智。禮師求解其義,師曰:「三身者,清淨法身,汝之性也;圓滿報身,汝之智也;千百億化身,汝之行也。若離本性,別說三身,即名有身無智;若悟三身無有自性,即明四智菩提。聽吾偈曰:
승 지통은 수주 안풍 사람이다. 처음 《능가경》을 보기를 대략 천여 번이나 삼신사지를 깨우치지 못했다. 대사를 예배하고 그 뜻을 풀어 주시기를 구하자 대사가 말했다.「삼신이란 청정법신은 너의 성이요, 원만보신은 너의 지혜요, 천백억화신은 너의 행이다. 만약 본성을 떠나 따로 삼신을 설하면 이를 유신무지라 하고, 만약 삼신에 자성이 없음을 깨달으면 곧 사지보리를 밝히는 것이다. 나의 게송을 들어라.
「自性具三身,發明成四智,
자성에 삼신이 갖추어져 발명하여 사지를 이루도다.
不離見聞緣,超然登佛地。
견문의 인연을 떠나지 않고도 초연히 불지에 오르도다.
吾今為汝說,諦信永無迷,
내가 이제 너를 위해 설하니 확실히 믿으면 영원히 미혹하지 않으리라.
莫學馳求者,終日說菩提。」
밖으로 달려 구하는 자를 배우지 마라. 종일 입으로 보리를 말할 뿐이로다.」
通再啟曰:「四智之義,可得聞乎?」師曰:「既會三身,便明四智。何更問耶?若離三身,別談四智,此名有智無身。即此有智,還成無智。」復說偈曰:
지통이 다시 청하여 말했다.「사지의 의리를 들을 수 있겠습니까.」대사가 말했다.「이미 삼신을 깨우쳤으면 곧 사지를 밝히는데 어찌 다시 묻는가. 만약 삼신을 떠나 따로 사지를 말하면 이를 유지무신이라 하니, 곧 이 지가 있어도 도리어 무지가 된다.」다시 한 게송을 설했다.
「大圓鏡智性清淨,平等性智心無病,
대원경지는 성품이 청정하고, 평등성지는 심중에 병이 없으며,
妙觀察智見非功,成所作智同圓鏡。
묘관찰지는 봄이 공이 아니고, 성소작지는 원경과 같도다.
五八六七果因轉,但用名言無實性,
오식과 팔식은 과위에서 돌고 육식과 칠식은 인위에서 도니, 다만 명언의 설이요 실성이 없도다.
若於轉處不留情,繁興永處那伽定。」
만약 도는 곳에서 정을 조금도 남기지 않으면 번흥 속에서도 영원히 나가의 대정에 있도다.」
(如上轉識為智也。教中云,轉前五識為成所作智,轉第六識為妙觀察智,轉第七識為平等性智,轉第八識為大圓鏡智。雖六七因中轉,五八果上轉,但轉其名而不轉其體也)。
(위에서는 식을 돌려 지혜가 됨을 말했다. 교문에 이르기를「전오식을 돌려 성소작지가 되고, 육식을 돌려 묘관찰지가 되고, 칠식을 돌려 평등성지가 되고, 팔식을 돌려 대원경지가 된다」하였다. 비록 육·칠식은 인중에서 돌고 오·팔식은 과상에서 도나, 다만 그 명칭을 돌릴 뿐 그 체를 돌리지 않는다.)
通頓悟性智,遂呈偈曰:
지통이 돈연히 자성의 지혜를 깨달아 마침내 한 게송을 올려 말했다.
「三身元我體,四智本心明,
삼신은 본래 나의 체요, 사지는 본심의 밝음이로다.
身智融無礙,應物任隨形。
몸과 지혜가 융융무애하여 만물에 응하여 형체를 따라 나타나도다.
起修皆妄動,守住匪真精,
마음을 일으켜 닦는 것은 다 망동이요, 지켜 두는 것도 참 정미가 아니로다.
妙旨因師曉,終亡染汙名。」
이 층의 묘지는 스승으로 인해 밝아졌고, 마침내 '염오'라는 명목까지도 망각했습니다.」
僧智常,信州貴溪人,髫年出家,志求見性。一日參禮,師問曰:「汝從何來?欲求何事?」曰:「學人近往洪州白峰山禮大通和尚,蒙示見性成佛之義。未決狐疑,遠來投禮,伏望和尚慈悲指示。」師曰:「彼有何言句?汝試舉看。」曰:「智常到彼,凡經三月,未蒙示誨。為法切故,一夕獨入丈室,請問:『如何是某甲本心本性?』大通乃曰:『汝見虛空否?』對曰:『見。』彼曰:『汝見虛空有相貌否?』對曰:『虛空無形,有何相貌?』彼曰:『汝之本性,猶如虛空,了無一物可見,是名正見;無一物可知,是名真知。無有青黃長短,但見本源清淨,覺體圓明,即名見性成佛,亦名如來知見。』學人雖聞此說,猶未決了,乞和尚開示。」師曰:「彼師所說,猶存見知,故令汝未了。吾今示汝一偈:
승 지상은 신주 귀계 사람으로 어릴 때 출가하여 견성을 구하기를 뜻했다. 하루는 참례하니 대사가 말했다.「네가 어디서 왔는가. 무엇을 구하고자 하는가.」그가 말했다.「학인이 근래 홍주 백봉산에 가서 대통화상을 예배하고 견성성불의 의리를 개시받았으나 아직 의혹이 풀리지 않아, 멀리 와서 예를 올립니다. 삼가 화상의 자비로 지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대사가 말했다.「그에게 무슨 말이 있었는가. 네가 들어 보아라.」그가 말했다.「지상이 저곳에 이르러 석 달을 지냈으나 가르침을 받지 못했습니다. 법을 구하는 마음이 절박하여 어느 날 밤 홀로 방장에 들어가 물었습니다.『어떤 것이 저의 본심본성입니까.』대통이 이르되『너는 허공을 보았느냐.』내가 대답했다.『보았습니다.』그가 말했다.『네가 보는 허공에 상모가 있는가.』내가 대답했다.『허공은 형태가 없는데 무슨 상모가 있겠습니까.』그가 말했다.『네 본성은 허공과 같으니, 한 물건도 보지 않는 것을 정견이라 하고, 한 물건도 알지 않는 것을 진지라 한다. 청황장단이 없고 다만 본원청정·각체원명을 보는 것을 곧 견성성불이라 하고, 여래지견이라고도 한다.』학인이 비록 이 설을 들었으나 아직 결명하지 못하니 화상의 개시를 빕니다.」대사가 말했다.「그 스승이 설한 것은 아직 견과 지가 남아 있어 너로 하여금 요달하지 못하게 한다. 내가 이제 너에게 한 게송을 주겠다.
「不見一法存無見,大似浮雲遮日面,
한 법도 보지 않는다 하면서 '무견'을 남기니, 크게 뜬 구름이 해빛을 가리는 것과 같도다.
不知一法守空知,還如太虛生閃電。
한 법도 알지 않는다 하면서 '공지'를 지키니, 또한 태허에 번개가 생기는 것과 같도다.
此之知見瞥然興,錯認何曾解方便,
이 지견이 홀연히 일어나면 잘못 아는 것이니, 어찌 방편을 안다 하겠는가.
汝當一念自知非,自己靈光常顯現。」
네가 마땅히 일념에 스스로 그릇됨을 알면 자기 영광이 항상 나타나리라.」
常聞偈已,心意豁然。乃述偈曰:
지상이 게송을 듣고 심의가 활연히 열려 이에 한 게송을 지어 말했다.
「無端起知見,著相求菩提,
까닭 없이 지견을 일으켜 상에 집착하여 보리를 구했도다.
情存一念悟,寧越昔時迷。
마음에 '한 생각의 깨달음이 있다'를 남겨두니 어찌 옛날의 미혹을 넘으리오.
自性覺源體,隨照枉遷流,
자성의 각원의 본체인데 밖을 비추는 것을 따라 부질없이 천류했도다.
不入祖師室,茫然趣兩頭。」
조사의 방에 들어가지 않으면 망연히 두 갈래로 달릴 뿐이로다.」
智常一日問師曰:「佛說三乘法,又言最上乘。弟子未解,願為教授。」師曰:「汝觀自本心,莫著外法相。法無四乘,人心自有等差。見聞轉誦是小乘;悟法解義是中乘;依法修行是大乘;萬法盡通,萬法俱備,一切不染,離諸法相,一無所得,名最上乘。乘是行義,不在口爭。汝須自修,莫問吾也。一切時中,自性自如。」常禮謝執侍,終師之世。
지상이 하루는 대사에게 물었다.「부처가 삼승법을 설하고 또 최상승을 말하셨습니다. 제자가 알지 못하니 가르쳐 주시기를 원합니다.」대사가 말했다.「너는 자기 본심을 관하고 밖의 법상에 집착하지 마라. 법에는 사승이 없고 사람 마음에 스스로 등차가 있을 뿐이다. 보고 듣고 외우는 것은 소승이요, 법의 뜻을 깨닫는 것은 중승이요, 법을 따라 수행하는 것은 대승이요, 만법이 다 통달하고 만법이 다 구비되며 일체에 물들지 않고 여러 법상을 떠나 한 가지도 얻을 것이 없는 것을 최상승이라 한다. '승'은 수행의 뜻이니 입으로 다투는 데 있지 않다. 너는 반드시 스스로 닦아야지 나에게 묻지 마라. 일체시에 자성이 스스로 여여하다.」지상이 예사하고 이로부터 대사를 시봉하여 대사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였다.
僧志道,廣州南海人也。請益曰:「學人自出家,覽《涅槃經》十載有餘,未明大意,願和尚垂誨。」師曰:「汝何處未明?」曰:「諸行無常,是生滅法;生滅滅已,寂滅為樂。於此疑惑。」師曰:「汝作麼生疑?」曰:「一切眾生皆有二身,謂色身、法身也。色身無常,有生有滅;法身有常,無知無覺。經云:『生滅滅已,寂滅為樂』者,不審何身寂滅?何身受樂?若色身者,色身滅時,四大分散,全然是苦,苦不可言樂。若法身寂滅,即同草木瓦石,誰當受樂?又法性是生滅之體,五蘊是生滅之用,一體五用,生滅是常。生則從體起用,滅則攝用歸體。若聽更生,即有情之類,不斷不滅;若不聽更生,則永歸寂滅,同於無情之物。如是,則一切諸法被涅槃之所禁伏,尚不得生,何樂之有?」師曰:「汝是釋子,何習外道斷常邪見,而議最上乘法?據汝所說,即色身外別有法身,離生滅求於寂滅。又推涅槃常樂,言有身受用。斯乃執悋生死,耽著世樂。汝今當知,佛為一切迷人,認五蘊和合為自體相,分別一切法為外塵相,好生惡死,念念遷流,不知夢幻虛假,枉受輪迴。以常樂涅槃翻為苦相,終日馳求。佛愍此故,乃示涅槃真樂。剎那無有生相,剎那無有滅相,更無生滅可滅,是則寂滅現前。當現前時,亦無現前之量,乃謂常樂。此樂無有受者,亦無不受者,豈有一體五用之名?何況更言涅槃禁伏諸法,令永不生。斯乃謗佛毀法。聽吾偈曰:
승 지도는 광주 남해 사람이다. 그가 청익하여 말했다.「학인이 출가한 뒤 《열반경》을 보기를 십여 년이 되나 아직 대의를 밝히지 못했습니다. 화상의 가르침을 원합니다.」대사가 말했다.「네가 어디를 밝히지 못하는가.」그가 말했다.「『제행무상은 생멸법이요, 생멸이 멸하면 적멸이 낙이다』에서 의혹이 있습니다.」대사가 말했다.「네가 어떻게 의심하는가.」그가 말했다.「일체중생은 다 두 몸이 있으니 곧 색신과 법신입니다. 색신은 무상하여 생멸이 있고, 법신은 상이 있어 무지무각입니다. 경에『생멸이 멸하면 적멸이 낙이다』하는데, 어느 몸이 적멸하고 어느 몸이 낙을 받는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색신이라면 색신이 멸할 때 사대가 분산하여 전연 고이니 고는 낙이라 할 수 없습니다. 만약 법신이 적멸하면 곧 초목와석과 같은데 누가 낙을 받겠습니까. 또 법성은 생멸의 체요, 오온은 생멸의 용이니, 일체오용이면 생멸은 항상 있는 것입니다. 난 것은 체에서 용을 일으키는 것이요, 멸한 것은 용을 거두어 체에 돌리는 것입니다. 만약 다시 남을 허락하면 유정의 무리는 끊이지도 멸하지도 않고, 만약 다시 남을 허락하지 않으면 영원히 적멸에 돌아가 무정물과 같아집니다. 이렇다면 일체제법이 열반에 금복되어 생도 할 수 없으니 무슨 낙이 있겠습니까.」대사가 말했다.「너는 석자인데 어찌 외도의 단견상견을 익혀 최상승법을 의논하는가. 네가 말한 대로라면 색신 밖에 따로 법신이 있어 생멸을 떠나 적멸을 구한다는 것이요, 또 열반의 상락을 추론하여 몸이 있어 수용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는 바로 생사를 집착하고 세간의 낙을 탐착하는 것이다. 너는 이제 마땅히 알라. 부처는 일체 미인이 오온화합을 자체상으로 알고 일체법을 분별하여 외진상으로 삼으며 생을 좋아하고 사를 미워하여 념념이 천류하여, 꿈과 환의 허가인 줄 모르고 부질없이 윤회의 고를 받으며, 상락의 열반을 도리어 고상으로 여겨 종일 밖으로 달려 구함을 불쌍히 여기셨다. 이에 열반의 참 낙을 보이셨으니, 찰나에 생하는 상이 없고 찰나에 멸하는 상이 없으며, 더욱 생멸할 멸이 없으면 이때 적멸이 현전한다. 바로 현전할 때에도 또한『현전』의 분량이 없으니 이를 상락이라 한다. 이 낙은 받는 자도 없고 받지 않는 자도 없는데 어찌 일체오용의 명목이 있겠는가. 하물며 다시 열반이 제법을 금복하여 영원히 생하지 않게 한다 말하니, 이는 곧 불을 비방하고 법을 훼손하는 것이다. 나의 게송을 들어라.
「無上大涅槃,圓明常寂照,
무상대열반은 원만하고 광명하여 항상 고요하면서 비추도다.
凡愚謂之死,外道執為斷,
범우는 이를 죽음이라 하고 외도는 이를 단멸이라 집착하며,
諸求二乘人,目以為無作,
이승을 구하는 사람들은 이를 무소작으로 보도다.
盡屬情所計,六十二見本。
이는 다 정식의 계도에 속하여 육십이견의 근본이 되도다.
妄立虛假名,何為真實義,
망령되이 허가한 명목을 세우니 어찌 진실한 뜻이 있겠는가.
惟有過量人,通達無取捨。
오직 보통의 도량을 넘은 사람이라야 통달하여 취함도 버림도 없도다.
以知五蘊法,及以蘊中我,
오온의 법 및 온 가운데 소위 '나'와
外現眾色象,一一音聲相,
밖으로 나타나는 여러 색상과 하나하나 음성의 상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