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조대사법보단경(六祖大師法寶壇經)
平等如夢幻,不起凡聖見,
다 평등하여 꿈·환과 같아 범과 성의 견을 일으키지 않으며,
不作涅槃解,二邊三際斷。
'열반'의 풀이도 짓지 않아 양변과 삼제가 다 끊어지도다.
常應諸根用,而不起用想,
항상 육근의 작용에 응하면서 '내가 쓴다'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고,
分別一切法,不起分別想。
일체법을 분별하면서 '내가 분별한다'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도다.
劫火燒海底,風鼓山相擊,
비록 겁말의 큰불이 해저까지 타고 광풍이 고탕하여 뭇 산이 서로 부딪혀도,
真常寂滅樂,涅槃相如是。
진상적멸의 낙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으니 열반의 상이 이와 같도다.
吾今彊言說,令汝捨邪見,
내가 이제 억지로 언어로 말하는 것은 너로 하여금 사견을 버리게 하려 함이라.
汝勿隨言解,許汝知少分。」
너는 글자를 따라 풀지 마라. 그래야만 네가 조금 알기를 허락하리라.」
志道聞偈大悟,踴躍作禮而退。
지도가 게송을 듣고 크게 깨달아 용약하여 예사하고 물러갔다.
行思禪師,生吉州安城劉氏。聞曹溪法席盛化,徑來參禮,遂問曰:「當何所務,即不落階級?」師曰:「汝曾作什麼來?」曰:「聖諦亦不為。」師曰:「落何階級?」曰:「聖諦尚不為,何階級之有?」師深器之,令思首眾。一日,師謂曰:「汝當分化一方,無令斷絕。」思既得法,遂回吉州青原山,弘法紹化(諡弘濟禪師)。
행사선사는 길주 안성의 유씨에서 태어났다. 조계의 법석이 성하게 교화한다는 것을 듣고 곧장 와서 참례하며 물었다.「무엇을 해야 계급차제에 떨어지지 않습니까.」대사가 말했다.「네가 일찍이 무엇을 했느냐.」그가 말했다.「성제도 짓지 않습니다.」대사가 말했다.「어느 계급에 떨어지는가.」그가 말했다.「성제조차 짓지 않는데 무슨 계급이 있겠습니까.」대사가 그를 매우 중히 여겨 수좌로 삼았다. 하루는 대사가 그에게 말했다.「너는 마땅히 한 지방으로 가서 분두하여 교화하여 법이 끊어지지 않게 하라.」행사가 법을 얻은 뒤 길주 청원산으로 돌아가 홍법하여 계화했다.(시호는 홍제선사이다.)
懷讓禪師,金州杜氏子也。初謁嵩山安國師,安發之曹溪參扣。讓至禮拜,師曰:「甚處來?」曰:「嵩山。」師曰:「什麼物?恁麼來?」曰:「說似一物即不中。」師曰:「還可修證否?」曰:「修證即不無,汙染即不得。」師曰:「只此不汙染,諸佛之所護念。汝既如是,吾亦如是。西天般若多羅讖,汝足下出一馬駒,踏殺天下人。應在汝心,不須速說(一本無西天以下二十七字)。」讓豁然契會,遂執侍左右一十五載,日臻玄奧。後往南嶽,大闡禪宗(勅諡大慧禪師)。
회양선사는 금주 두씨의 아들이다. 처음 숭산 혜안국사를 참알하니 혜안이 그를 조계로 보내 참문하게 했다. 회양이 이르러 예배하니 대사가 물었다.「어디서 왔는가.」그가 말했다.「숭산입니다.」대사가 말했다.「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가.」그가 말했다.「무슨 물건과 같다고 말하면 옳지 않습니다.」대사가 말했다.「또한 수증할 수 있는가.」그가 말했다.「수증은 없지 않으나 오염은 되지 않습니다.」대사가 말했다.「바로 이 불오염이 제불이 호념하는 바이다. 네가 이미 그러하면 나도 또한 그러하다. 서천의 반야다라가 예언하기를 너의 문하에서 한 마필이 나와 천하 사람을 짓밟아 죽이리라 하였다. 이 말이 네 마음에 응하니 서둘러 말할 필요가 없다.」(어떤 본자에는「서천」이하 이십칠자가 없다.)회양이 활연히 계합하여 깨닫고 이에 대사의 좌우에서 시봉하기를 십오 년, 날로 현오에 나아갔다. 뒤에 남악으로 가서 선종을 크게 창양했다.(시호는 대혜선사이다.)
永嘉玄覺禪師,溫州戴氏子。少習經論,精天台止觀法門。因看《維摩經》發明心地。偶師弟子玄策相訪,與其劇談,出言暗合諸祖。策云:「仁者得法師誰?」曰:「我聽方等經論,各有師承。後於《維摩經》悟佛心宗,未有證明者。」策云:「威音王已前即得,威音王已後,無師自悟,盡是天然外道。」曰:「願仁者為我證據。」策云:「我言輕。曹溪有六祖大師,四方雲集,並是受法者。若去,則與偕行。」覺遂同策來參,繞師三匝,振錫而立。師曰:「夫沙門者,具三千威儀、八萬細行。大德自何方而來,生大我慢?」覺曰:「生死事大,無常迅速。」師曰:「何不體取無生,了無速乎?」曰:「體即無生,了本無速。」師曰:「如是,如是!」玄覺方具威儀禮拜,須臾告辭。師曰:「返太速乎?」曰:「本自非動,豈有速耶?」師曰:「誰知非動?」曰:「仁者自生分別。」師曰:「汝甚得無生之意。」曰:「無生豈有意耶?」師曰:「無意,誰當分別?」曰:「分別亦非意。」師曰:「善哉!少留一宿。」時謂一宿覺。後著《證道歌》,盛行於世(諡曰無相大師,時稱為真覺焉)。
영가현각선사는 온주 대씨의 아들이다. 어려서 경론을 익혀 천대의 지관법문에 정통했다. 《유마경》을 보고 심지를 발명했다. 마침 대사의 제자 현책이 와서 방문하니 그와 마음껏 이야기를 나누어 그의 말이 내놓을 때마다 대대의 조사와 암합함을 보았다. 현책이 물었다.「인자가 법을 얻은 스승은 누구인가.」그가 말했다.「저는 방등경론을 들었는데 각기 사승이 있습니다. 뒤에 《유마경》에서 불심종을 깨달았으나 아직 저에게 인증해 준 사람이 없습니다.」현책이 말했다.「위음왕불 이전에는 스스로 깨달을 수 있으나 위음왕불 이후에 스승 없이 스스로 깨달은 자는 다 천연외도이다.」그가 말했다.「인자께서 저를 위해 증명해 주시기를 원합니다.」현책이 말했다.「나의 말은 가볍다. 조계에 육조대사가 있어 사방의 학인이 구름처럼 모여 모두 법을 받으러 간다. 네가 가면 내가 함께 가겠다.」현각이 곧 현책과 함께 와서 참견하여 대사를 세 번 돌고 석장을 울리고 섰다. 대사가 말했다.「출가한 사람은 마땅히 삼천위의와 팔만세행을 갖추어야 한다. 대덕이 어디서 왔기에 이토록 큰 아만을 내는가.」현각이 말했다.「생사가 큰일이고 무상이 빨리 옵니다.」대사가 말했다.「그러면 어찌 저 불생불멸을 체취하여 본래 지속이 없는 것을 요달하지 않는가.」그가 말했다.「체취하는 바로 그것이 곧 무생이요, 요달하는 것이 본래 지속이 없습니다.」대사가 말했다.「그렇다, 그렇다!」현각이 이에 비로소 위의를 갖추어 예배하고 잠시 뒤 사례했다. 대사가 말했다.「돌아감이 너무 빠르지 않은가.」그가 말했다.「본래 움직인 적이 없는데 어찌 빠름을 논하겠습니까.」대사가 말했다.「누가 저 부동한 것을 아는가.」그가 말했다.「인자께서 스스로 분별을 일으키셨습니다.」대사가 말했다.「네가 무생의 뜻을 심히 얻었다.」그가 말했다.「무생에 어찌 또 뜻이 있겠습니까.」대사가 말했다.「뜻이 없으면 누가 분별하는가.」그가 말했다.「분별 자체도 뜻이 아닙니다.」대사가 말했다.「좋다! 하룻밤 묵어라.」그때 사람들이 그를「일숙각」이라 불렀다. 뒤에 《증도가》를 지어 세상에 크게 행해졌다.(시호는 무상대사이며 그때 사람들이 진각이라 불렀다.)
禪者智隍,初參五祖,自謂已得正受。菴居長坐,積二十年。師弟子玄策,遊方至河朔,聞隍之名,造菴問云:「汝在此作什麼?」隍曰:「入定。」策云:「汝雲入定,為有心入耶?無心入耶?若無心入者,一切無情草木瓦石,應合得定;若有心入者,一切有情含識之流,亦應得定。」隍曰:「我正入定時,不見有有無之心。」策云:「不見有有無之心,即是常定。何有出入?若有出入,即非大定。」隍無對,良久,問曰:「師嗣誰耶?」策云:「我師曹溪六祖。」隍云:「六祖以何為禪定?」策云:「我師所說,妙湛圓寂,體用如如。五陰本空,六塵非有,不出不入,不定不亂。禪性無住,離住禪寂;禪性無生,離生禪想。心如虛空,亦無虛空之量。」隍聞是說,徑來謁師。師問云:「仁者何來?」隍具述前緣。師云:「誠如所言。汝但心如虛空,不著空見,應用無礙,動靜無心,凡聖情忘,能所俱泯,性相如如,無不定時也(一本無汝但以下三十五字。止云:師憫其遠來,遂垂開決)。」隍於是大悟,二十年所得心,都無影響。其夜河北士庶,聞空中有聲云:「隍禪師今日得道。」隍後禮辭,復歸河北,開化四眾。一僧問師云:「黃梅意旨,甚麼人得?」師云:「會佛法人得。」僧云:「和尚還得否?」師云:「我不會佛法。」
선자 지황은 처음 오조를 참견하여 스스로 이미 정수를 얻었다고 여겼다. 그가 암자에서 길게 앉아 이십 년을 쌓았다. 대사의 제자 현책이 유방하여 하삭 일대에 이르러 지황의 명성을 듣고 암자에 와서 물었다.「네가 여기서 무엇을 하는가.」지황이 말했다.「입정입니다.」현책이 말했다.「네가 입정이라 하는데 유심으로 드는가, 무심으로 드는가. 만약 무심으로 들면 일체 무정한 초목와석도 마땅히 정을 얻을 것이요, 만약 유심으로 들면 일체 유정함식의 무리도 다 정을 얻어야 한다.」지황이 말했다.「내가 바로 입정할 때 '유'와 '무'의 마음을 보지 않습니다.」현책이 말했다.「'유'와 '무'의 마음을 보지 않으면 곧 항상 정 가운데 있는데 무슨 출정입정이 있겠는가. 만약 출입이 있으면 곧 대정이 아니다.」지황이 대답할 말이 없어 한참 뒤에 물었다.「스승은 누구에게 법을 잇습니까.」현책이 말했다.「나의 스승은 조계 육조이다.」지황이 말했다.「육조는 무엇을 선정으로 하는가.」현책이 말했다.「우리 스승이 설하시기를 묘담원적하고 체와 용이 여여불이다. 오음이 본래 공하고 육진이 실유가 아니며 나지도 들지도 않고 정하지도 어지럽지도 않다. 선의 체성은 머무는 바가 없어 선적에 머묾을 떠나야 하고, 선의 체성은 본래 생이 없어 '내가 선에 있다'는 생각의 일어남을 떠나야 한다. 마음은 허공과 같되 또한 '허공'이라는 분량도 없다.」지황이 이 설을 듣고 곧장 와서 대사를 참견했다. 대사가 물었다.「인자는 어디서 왔는가.」지황이 앞의 경과를 자세히 말했다. 대사가 말했다.「참으로 그가 말한 바와 같다. 너는 다만 마음이 허공과 같되 공견을 집착하지 않고 응용무애하며 동정에 마음이 일어나지 않고 범성의 정을 다 잊어 능소를 다 없애며 성상이 여여불이면 정에 있지 않은 때가 없으리라.」(어떤 본자에는「여단」이하 삼십오자가 없고 다만 이르기를 대사가 그가 멀리서 온 것을 불쌍히 여겨 이에 개시하여 의혹을 결해 주었다 한다.)지황이 이에 크게 깨달아 이십 년 동안 얻은 그 마음이 전연 영향이 없었다. 그날 밤 하북의 선비와 백성이 허공에서 소리를 들었는데「지황선사가 오늘 도를 얻었다」하였다. 지황이 뒤에 예사하고 돌아와 하북으로 돌아가 사중제자를 교화했다. 한 승이 대사에게 물었다.「황매의 의지를 어떤 사람이 얻었습니까.」대사가 말했다.「불법을 아는 사람이 얻었다.」승이 말했다.「화상께서는 얻으셨습니까.」대사가 말했다.「나는 불법을 모른다.」
師一日欲濯所授之衣而無美泉,因至寺後五里許,見山林欝茂,瑞氣盤旋。師振錫卓地,泉應手而出,積以為池,乃跪膝浣衣石上。忽有一僧來禮拜,云:「方辯是西蜀人,昨於南天竺國,見達磨大師,囑方辯速往唐土。吾傳大迦葉正法眼藏及僧伽梨,見傳六代,於韶州曹溪,汝去瞻禮。方辯遠來,願見我師傳來衣缽。」師乃出示,次問:「上人攻何事業?」曰:「善塑。」師正色曰:「汝試塑看。」辯罔措。過數日,塑就真相,可高七寸,曲盡其妙。師笑曰:「汝只解塑性,不解佛性。」師舒手摩方辯頂,曰:「永為人天福田。」
대사가 하루는 받은 그 가사를 빨고자 했는데 좋은 샘물이 없어 이에 절 뒤 오 리쯤 되는 곳에 이르러 산림이 울창하고 상서로운 기운이 둘러싼 것을 보았다. 대사가 석장을 진동하여 땅에 꽂으니 샘물이 손에 응하여 솟아나 못을 이루었고, 이에 돌 위에 무릎을 꿇고 옷을 빨았다. 문득 한 승이 와서 예배하며 말했다.「방변은 서촉 사람입니다. 어제 남천축국에서 달마대사를 뵈었는데 방변에게 빨리 당토로 가라고 분부하셨습니다.『내가 전한 대가섭의 정법안장과 승가리의 옷이 이미 육대에 전하여 소주 조계에 있으니 너는 가서 첨예하고 예배하라.』방변이 멀리서 왔으니 우리 스승이 전해 온 의발을 보기를 원합니다.」대사가 곧 꺼내어 그에게 보이고 이어 물었다.「상인은 무슨 사업에 뛰어난가.」그가 말했다.「조상을 잘합니다.」대사가 정색하여 말했다.「너는 한번 조상해 보라.」방변이 어찌할 바를 몰랐다. 며칠이 지나 한 구의 진용을 조성하여 높이가 칠 촌쯤 되니 곡진기묘했다. 대사가 웃으며 말했다.「너는 다만 조상의 '성'을 알 뿐 불성을 모른다.」대사가 손을 뻗어 방변의 정수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영원히 인천의 복전이 되어라.」
(師仍以衣酬之。辯取衣分為三,一披塑像,一自留,一用椶裹瘞地中。誓曰:「後得此衣,乃吾出世,住持於此,重建殿宇。」宋嘉祐八年,有僧惟先,修殿掘地,得衣如新。像在高泉寺,祈禱輒應)。
(대사가 또 가사로 그에게 답례했다. 방변이 가사를 세 몫으로 나누어 한 몫은 조상에 걸치고 한 몫은 스스로 남기고 한 몫은 종려로 싸서 땅에 묻으며 맹세했다.「후에 이 옷을 얻는 자가 곧 내가 다시 출세하여 여기 주지하여 전우를 다시 세울 것이다.」송 가우 팔년에 승 유선이 전을 수리하여 땅을 파다가 그 옷을 얻었는데 새것과 같았다. 조상은 고천사에 있어 기도하면 늘 영험이 있었다.)
有僧舉臥輪禪師偈曰:
한 승이 와륜선사의 한 게송을 들어 말했다.
「臥輪有伎倆,能斷百思想,
와륜은 재주가 있어 능히 온갖 사량을 끊도다.
對境心不起,菩提日日長。」
경계를 대하여도 마음이 일어나지 않으니 보리가 날마다 자라도다.」
師聞之,曰:「此偈未明心地,若依而行之,是加繫縛。」因示一偈曰:
대사가 듣고 말했다.「이 게송은 아직 심지를 밝히지 못했으니, 만약 이것을 따라 행하면 도리어 계박을 더한다.」이에 한 게송을 보였다.
「惠能沒伎倆,不斷百思想,
혜능은 재주가 없어 온갖 사량을 끊지 않도다.
對境心數起,菩提作麼長。」
경계를 대하면 마음이 늘 일어나니 보리가 어찌 자람이 있으랴.」
頓漸第八
돈점제팔
時,祖師居曹溪寶林,神秀大師在荊南玉泉寺。於時兩宗盛化,人皆稱南能北秀,故有南北二宗頓漸之分,而學者莫知宗趣。師謂眾曰:「法本一宗,人有南北。法即一種,見有遲疾。何名頓漸?法無頓漸,人有利鈍,故名頓漸。」然秀之徒眾,往往譏南宗祖師,不識一字,有何所長。秀曰:「他得無師之智,深悟上乘。吾不如也。且吾師五祖,親傳衣法。豈徒然哉!吾恨不能遠去親近,虛受國恩。汝等諸人,毋滯於此,可往曹溪參決。」一日,命門人志誠曰:「汝聰明多智,可為吾到曹溪聽法。若有所聞,盡心記取,還為吾說。」志誠稟命至曹溪,隨眾參請,不言來處。時祖師告眾曰:「今有盜法之人,潛在此會。」志誠即出禮拜,具陳其事。師曰:「汝從玉泉來,應是細作。」對曰:「不是。」師曰:「何得不是?」對曰:「未說即是,說了不是。」師曰:「汝師若為示眾?」對曰:「常指誨大眾,住心觀靜,長坐不臥。」師曰:「住心觀靜,是病非禪;長坐拘身,於理何益?聽吾偈曰:
그때 조사는 조계 보림에 머물고 신수대사는 형남 옥천사에 있었다. 그때 양파의 교화가 다 성하여 사람들이 모두「남능북수」라 칭하여 이에 남북 이종의 돈점의 구분이 있었으나 학인들이 각각의 종지귀취를 알지 못했다. 대사가 대중에게 말했다.「법은 본래 한 종이나 사람은 남북이 있다. 법은 다만 한 가지인데 성을 봄에 빠르고 느림이 있다. 무엇을 돈점이라 하는가. 법에는 돈점이 없고 사람에 이와 둔이 있어서 돈점이라 이름한다.」그러나 신수의 문도들이 왕왕 남종조사를 비웃어 한 글자도 알지 못하는데 무슨 장점이 있느냐 했다. 신수가 말했다.「그는 스승 없이 통한 지혜를 얻어 상승을 깊이 깨달았으니 나는 미치지 못한다. 하물며 우리 스승 오조가 친히 의법을 그에게 전했으니 어찌 까닭 없는 일이겠는가. 나는 멀리 가서 그를 친근하지 못함을 한탄하며 부질없이 국가의 은양을 받는다. 너희 여러 사람은 여기에 머물지 말고 조계로 가서 참문하여 의혹을 결할 수 있다.」하루는 문인 지성에게 분부하여 말했다.「너는 총명하고 지혜가 많으니 나를 대신하여 조계에 가서 법을 들을 수 있다. 만약 들은 것이 있으면 마음을 다하여 기록하여 돌아와 나에게 설하라.」지성이 명을 받들어 조계에 이르러 대중을 따라 참청하고 자기가 어디서 왔는지 말하지 않았다. 그때 조사가 대중에게 고하여 말했다.「오늘 법을 훔치는 자가 이 법회에 잠복해 있다.」지성이 곧 나와 예배하고 일을 사실대로 진술했다. 대사가 말했다.「네가 옥천에서 왔으니 마땅히 간작이라 하겠다.」그가 대답했다.「아닙니다.」대사가 말했다.「어째서 아닌가.」그가 대답했다.「말하기 전에는 맞았으나 말한 후에는 아닙니다.」대사가 말했다.「네 스승은 어떻게 대중을 개시하는가.」그가 대답했다.「항상 대중을 지회하시기를 주심하여 청정을 관하고 오래 앉아 눕지 않는다 하십니다.」대사가 말했다.「주심하여 청정을 관하는 것은 병이지 선이 아니다. 오래 앉아 몸을 구속하니 이치에 무슨 이익이 있는가. 나의 게송을 들어라.
「生來坐不臥,死去臥不坐,
살아서는 앉기만 하고 눕지 않고, 죽은 뒤에는 눕기만 하고 앉지 않도다.
一具臭骨頭,何為立功課?」
원래 한 벌의 썩은 뼈인데 어찌 그 위에서 공과를 세우겠는가.」
志誠再拜曰:「弟子在秀大師處學道九年,不得契悟。今聞和尚一說,便契本心。弟子生死事大,和尚大慈,更為教示。」師云:「吾聞汝師教示學人戒定慧法,未審汝師說戒定慧行相如何?與吾說看。」誠曰:「秀大師說,諸惡莫作名為戒,諸善奉行名為慧,自淨其意名為定。彼說如此,未審和尚以何法誨人?」師曰:「吾若言有法與人,即為誑汝。但且隨方解縛,假名三昧。如汝師所說戒定慧,實不可思議。吾所見戒定慧又別。」志誠曰:「戒定慧只合一種,如何更別?」師曰:「汝師戒定慧接大乘人,吾戒定慧接最上乘人。悟解不同,見有遲疾。汝聽吾說,與彼同否?吾所說法,不離自性。離體說法,名為相說,自性常迷。須知一切萬法,皆從自性起用,是真戒定慧法。聽吾偈曰:
지성이 재배하여 말했다.「제자가 신수대사 처소에서 구 년 동안 도를 배웠으나 계오를 얻지 못했습니다. 오늘 화상의 한 말씀을 들으니 곧 본심에 계합했습니다. 제자의 생사가 큰일이니 화상의 대자대비로 다시 가르쳐 주십시오.」대사가 말했다.「내가 듣건대 네 스승이 학인에게 계정혜의 법을 가르치신다 하는데, 네 스승이 말하는 계정혜는 어떤 모양인가. 나에게 말해 보아라.」지성이 말했다.「신수대사가 말하시기를, 모든 악을 짓지 않는 것을 계라 하고, 모든 선을 봉행하는 것을 혜라 하고, 스스로 그 뜻을 깨끗이 하는 것을 정이라 하셨습니다. 그가 이같이 말씀하셨는데 화상께서는 무슨 법으로 사람을 가르치시는지 모르겠습니다.」대사가 말했다.「내가 만약 법이 있어 사람에게 준다 하면 이는 곧 너를 속이는 것이다. 다만 각 사람의 경우를 따라 그를 위해 속박을 풀어 주어 빌려 '삼매'라는 명목을 쓸 뿐이다. 네 스승이 말한 계정혜는 실로 불가사의하나, 내가 본 계정혜는 또 다르다.」지성이 말했다.「계정혜는 다만 한 가지여야 하는데 어찌 또 다릅니까.」대사가 말했다.「네 스승의 계정혜는 대승인을 접인하고, 나의 계정혜는 최상승인을 접인한다. 오해가 다르고 견성에 빠르고 느림이 있다. 너는 나의 말을 들어 그와 같은지 다른지 보라. 내가 설하는 법은 자성을 떠나지 않는다. 체를 떠나 법을 설하면 이를 착상설법이라 하여 자성이 항상 미 가운데 있게 된다. 반드시 알아야 한다. 일체만법이 다 자성에서 작용을 일으키니 이것이 참 계정혜법이다. 나의 게송을 들어라.
「心地無非自性戒,心地無痴自性慧,
심지에 허물이 없는 것이 자성의 계요, 심지에 어리석음이 없는 것이 자성의 혜요,
心地無亂自性定,不增不減自金剛,
심지에 산란이 없는 것이 자성의 정이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아 자신이 곧 금강이도다.
身去身來本三昧。」
몸이 오고 몸이 가도 본래 삼매 가운데 있도다.」
誠聞偈,悔謝,乃呈一偈曰:
지성이 게송을 듣고 참회하여 사죄하고 이에 한 게송을 올려 말했다.
「五蘊幻身,幻何究竟?迴趣真如,
오온이 합하여 이룬 환신이니 환한 것이 어찌 구경이 있으랴. 머리를 돌려 진여에로 나아가도
法還不淨。」
이 '법'조차도 여전히 청정하지 못하도다.」
師然之,復語誠曰:「汝師戒定慧,勸小根智人;吾戒定慧,勸大根智人。若悟自性,亦不立菩提涅槃,亦不立解脫知見。無一法可得,方能建立萬法。若解此意,亦名佛身,亦名菩提涅槃,亦名解脫知見。見性之人,立亦得、不立亦得,去來自由,無滯無礙,應用隨作,應語隨答,普見化身,不離自性,即得自在神通遊戲三昧,是名見性。」志誠再啟師曰:「如何是不立義?」師曰:「自性無非、無痴無亂,念念般若觀照,常離法相,自由自在,縱橫盡得,有何可立?自性自悟,頓悟頓修,亦無漸次,所以不立一切法。諸法寂滅,有何次第?」志誠禮拜,願為執侍,朝夕不懈(誠吉州太和人也)。
대사가 그를 인정하고 또 지성에게 말했다.「네 스승의 계정혜는 소근지 사람을 권하고, 나의 계정혜는 대근지 사람을 권한다. 만약 자성을 깨달으면 보리열반도 세우지 않고 해탈지견도 세우지 않는다. 얻을 법이 하나도 없어야 능히 만법을 수립한다. 만약 이 뜻을 알면 또한 불신이라 이름할 수도 있고, 보리열반이라 이름할 수도 있고, 해탈지견이라 이름할 수도 있다. 견성한 사람은 세워도 되고 세우지 않아도 되며, 오고 감이 자유로워 체애가 없어 마땅히 쓸 곳에 쓰고 마땅히 대답할 곳에 대답하며, 널리 화신을 나타내도 자성을 떠나지 않으니, 이는 곧 자재신통·유희삼매를 얻은 것이요, 이를 견성이라 한다.」지성이 또 물었다.「무엇이『세우지 않음』의 뜻입니까.」대사가 말했다.「자성에는 허물이 없고 어리석음이 없고 산란이 없어 념념이 반야로 관조하여 항상 법상을 떠나 자유자재하여 종횡무애하니 또 무엇을 세우겠는가. 자성이 스스로 깨달아 돈오돈수하여 또한 점차가 없으므로 일체법을 세우지 않는다. 제법이 본래 적멸한데 무슨 차제가 있겠는가.」지성이 예배하고 좌우에서 시봉하기를 원하여 조석으로 게으르지 않았다.(지성은 길주 태화 사람이다.)
僧志徹,江西人,本姓張,名行昌,少任俠。自南北分化,二宗主雖亡彼我,而徒侶競起愛憎。時北宗門人,自立秀師為第六祖,而忌祖師傳衣為天下聞,乃囑行昌來刺師。師心通,預知其事,即置金十兩於座間。時夜暮,行昌入祖室,將欲加害。師舒頸就之,行昌揮刃者三,悉無所損。師曰:「正劍不邪,邪劍不正。只負汝金,不負汝命。」行昌驚僕,久而方蘇,求哀悔過,即願出家。師遂與金,言:「汝且去,恐徒眾翻害於汝。汝可他日易形而來,吾當攝受。」行昌稟旨宵遁。後投僧出家,具戒精進。一日,憶師之言,遠來禮覲。師曰:「吾久念汝,汝來何晚?」曰:「昨蒙和尚捨罪,今雖出家苦行,終難報德,其惟傳法度生乎?弟子常覽《涅槃經》,未曉常無常義。乞和尚慈悲,略為解說。」師曰:「無常者,即佛性也。有常者,即一切善惡諸法分別心也。」曰:「和尚所說,大違經文。」師曰:「吾傳佛心印,安敢違於佛經?」曰:「經說佛性是常;和尚卻言無常。善惡之法乃至菩提心,皆是無常;和尚卻言是常。此即相違,令學人轉加疑惑。」師曰:「《涅槃經》吾昔聽尼無盡藏讀誦一遍,便為講說,無一字一義不合經文。乃至為汝,終無二說。」曰:「學人識量淺昧,願和尚委曲開示。」師曰:「汝知否?佛性若常,更說什麼善惡諸法,乃至窮劫無有一人發菩提心者;故吾說無常,正是佛說真常之道也。又,一切諸法若無常者,即物物皆有自性,容受生死,而真常性有不遍之處。故吾說常者,正是佛說真無常義。佛比為凡夫、外道執於邪常,諸二乘人於常計無常,共成八倒,故於《涅槃》了義教中,破彼偏見,而顯說真常、真樂、真我、真淨。汝今依言背義,以斷滅無常及確定死常,而錯解佛之圓妙最後微言。縱覽千遍,有何所益?」行昌忽然大悟,說偈曰:
승 지철은 강서 사람으로 본래 성은 장씨요, 이름은 행창이며, 어려서 협을 행하기를 좋아했다. 남북이 나뉘어 교화한 뒤로 이종의 종주는 비록 서로의 견해를 없앴으나 문도들이 다투어 애증을 일으켰다. 그때 북종의 문인들이 스스로 신수를 여섯째 조로 추립하고, 또 조사가 옷을 전한 일이 천하에 다 알려진 것을 꺼려, 이에 행창에게 부탁하여 와서 대사를 자해하게 했다. 대사는 마음에 신통이 있어 미리 그 일을 알고 곧 자리 사이에 금 십 냥을 놓았다. 그날 밤이 되어 행창이 조사의 방에 들어가 흉기를 가하고자 했다. 대사가 목을 길게 늘여 그에게 베게 하니, 행창이 칼을 휘두르기를 세 번 했으나 모두 손상이 없었다. 대사가 말했다.「바른 검은 삿되지 않고, 삿된 검은 바르지 않다. 나는 다만 너에게 금을 빚졌을 뿐 목숨을 빚지지 않았다.」행창이 놀라 쓰러져 오랜 뒤에야 깨어나 애걸하여 회과하고 곧 출가하기를 원했다. 대사가 이에 금을 주며 말했다.「너는 잠시 떠나라. 도중이 도리어 너를 해칠까 두렵다. 너는 다른 날 형모를 바꾸어 다시 오면 내가 너를 받아 주겠다.」행창이 지시를 받들어 그날 밤 도망했다. 뒤에 승에게 투신하여 출가하고 구족계를 받고 정진하여 수행했다. 하루는 대사의 말을 생각하고 멀리서 와서 예견했다. 대사가 말했다.「내가 너를 생각한 지 오래인데 어찌 이리 늦게 왔는가.」그가 말했다.「이전에 화상께서 저의 죄를 사해 주셨는데, 이제 비록 출가하여 고행하나 끝내 은덕을 갚기 어려우니 아마도 법을 전하여 중생을 제도하는 것뿐이겠습니까. 제자가 항상 《열반경》을 보나『상』과『무상』의 의리를 깨닫지 못하니 화상의 자비를 빌어 약간이라도 해설해 주십시오.」대사가 말했다.「소위 무상이란 곧 불성이요, 소위 유상이란 곧 일체선악제법의 분별심이다.」그가 말했다.「화상께서 말씀하신 것은 크게 경문에 어긋납니다.」대사가 말했다.「나는 부처의 심인을 전하는데 어찌 감히 불경에 어긋나겠는가.」그가 말했다.「경에는 불성이 상이라 하셨는데 화상께서는 도리어 무상이라 하시고, 선악의 법과 내지 보리심이 다 무상이라 하셨는데 화상께서는 상이라 하십니다. 이것이 곧 모순되어 학인으로 하여금 더욱 의혹하게 합니다.」대사가 말했다.「《열반경》은 내가 옛날 비구니 무진장이 독송하는 것을 한 번 듣고 곧 그녀를 위해 강설하였는데 한 글자 한 뜻도 경문에 합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심지어 오늘 너를 위해 설하는 것도 시종 두 가지 설이 없다.」그가 말했다.「학인은 견식이 천박하고 어두우니 화상께서 자세히 개시해 주시기를 원합니다.」대사가 말했다.「너는 아느냐. 불성이 만약 상이라면 더 무슨 선악제법을 말하겠으며, 심지어 겁수를 다해도 한 사람도 보리심을 내는 자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무상』이라 하는 것은 바로 부처가 설한 진상의 도이다. 또 일체제법이 만약 무상이면 곧 물물마다 각기 자성이 있어 각각 생사를 용수하여 진상의 성이 두루 미치지 못하는 곳이 있게 된다. 그러므로 내가『상』이라 하는 것은 바로 부처가 설한 진무상의 뜻이다. 부처는 바로 범부외도가 사상에 집착하고 제이승인이 상에서 무상으로 계도하여 함께 팔도를 이루기 때문에,《열반》요의교에서 그들의 편견을 깨뜨리고 밝게 진상·진락·진아·진정을 설하신 것이다. 네가 이제 글자를 의지하여 의리를 배반하여 단멸의 무상과 고정된 상으로 부처의 원묘한 최후의 미묘한 말씀을 잘못 풀이한다. 비록 천 번 읽는다 해도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행창이 문득 크게 깨달아 한 게송을 설했다.
「因守無常心,佛說有常性,
중생이 '무상'의 마음을 지키는 까닭에 부처가 '상'의 성을 설하셨도다.
不知方便者,猶春池拾礫。
이것이 방편의 설인 줄 모르는 자는 봄 못가에서 자갈을 줍는 것과 같도다.
我今不施功,佛性而現前,
내가 이제 공부를 베풀지 않았는데 불성이 저절로 나타나도다.
非師相授與,我亦無所得。」
이것은 스승이 나에게 준 것이 아니요 나도 또한 얻은 것이 없도다.」
師曰:「汝今徹也,宜名志徹。」徹禮謝而退。
대사가 말했다.「네가 이제 철저했으니 마땅히 지철이라 이름하라.」지철이 예사하고 물러갔다.
有一童子,名神會,襄陽高氏子。年十三,自玉泉來參禮。師曰:「知識遠來艱辛,還將得本來否?若有本則合識主。試說看。」會曰:「以無住為本,見即是主。」師曰:「這沙彌爭合取次語?」會乃問曰:「和尚坐禪,還見不見?」師以柱杖打三下,云:「吾打汝痛不痛?」對曰:「亦痛亦不痛。」師曰:「吾亦見亦不見。」神會問:「如何是亦見亦不見?」師云:「吾之所見,常見自心過愆,不見他人是非好惡,是以亦見亦不見。汝言:『亦痛亦不痛。』如何?汝若不痛,同其木石;若痛,則同凡夫,即起恚恨。汝向前見、不見是二邊,痛、不痛是生滅。汝自性且不見,敢爾弄人!」神會禮拜悔謝。師又曰:「汝若心迷不見,問善知識覓路。汝若心悟,即自見性依法修行。汝自迷不見自心,卻來問吾見與不見。吾見自知,豈代汝迷?汝若自見,亦不代吾迷。何不自知自見,乃問吾見與不見?」神會再禮百餘拜,求謝過愆。服勤給侍,不離左右。
한 동자가 있으니 이름은 신회로 양양 고씨의 아들이다. 열세 살에 옥천사에서 와서 참례했다. 대사가 말했다.「지식이 멀리서 왔으니 수고로웠다. 그『본래』를 가져왔는가. 만약 본이 있으면 마땅히 주인을 알아야 한다. 네가 말해 보아라.」신회가 말했다.「무주를 본으로 하고 견이 곧 주입니다.」대사가 말했다.「이 사미가 어찌 그리 함부로 말하는가.」신회가 곧 물었다.「화상께서 좌선하실 때 보십니까 보지 않습니까.」대사가 주장으로 그를 세 번 치며 말했다.「내가 너를 치니 아픈가 아프지 않은가.」그가 대답했다.「아프기도 하고 아프지 않기도 합니다.」대사가 말했다.「나도 보기도 하고 보지 않기도 한다.」신회가 물었다.「무엇이 보기도 하고 보지 않기도 함입니까.」대사가 말했다.「내가 보는 바는 항상 자기 마음의 허물을 보고 남의 시비호오를 보지 않는 것이니, 이러므로 보기도 하고 보지 않기도 한다. 네가 말한『아프기도 하고 아프지 않기도 하다』는 것은 어떻게 된 것인가. 네가 만약 아프지 않으면 목석과 같고, 만약 아프면 범부와 같아 곧 원한을 일으킨다. 네가 방금 말한『봄』과『보지 않음』은 양변에 떨어지고,『아픔』과『아프지 않음』은 생멸이다. 너는 자성조차 아직 보지 못하면서 감히 사람을 희롱하는구나.」신회가 예배하고 참회하여 사죄했다. 대사가 또 말했다.「네가 만약 마음이 미혹하여 보지 못하면 마땅히 선지식에게 물어 길을 찾아야 하고, 네가 만약 마음이 깨달으면 마땅히 스스로 견성하여 법을 따라 수행해야 한다. 너는 스스로 미혹하여 자심을 보지 못하면서 도리어 와서 나에게 보는지 보지 않는지 묻는다. 내가 보고 보지 않음은 내가 스스로 아니 어찌 너의 미혹을 대신하겠는가. 네가 만약 스스로 보아도 또한 나의 미혹을 대신하지 못한다. 어찌 스스로 알고 스스로 보지 않고 도리어 와서 나에게 보는지 보지 않는지 묻는가.」신회가 다시 백여 배를 예배하고 그의 과실을 용서해 주기를 구하여 이로부터 근면하게 시봉하여 좌우를 떠나지 않았다.
一日,師告眾曰:「吾有一物,無頭無尾,無名無字,無背無面。諸人還識否?」神會出曰:「是諸佛之本源,神會之佛性。」師曰:「向汝道:『無名無字』,汝便喚作本源佛性。汝向去有把茆蓋頭,也只成箇知解宗徒。」祖師滅後,會入京洛,大弘曹溪頓教,著《顯宗記》,盛行於世(是為荷澤禪師)。
하루는 대사가 대중에게 말했다.「내게 한 물건이 있는데 머리도 없고 꼬리도 없고, 이름도 없고 글자도 없고, 등도 없고 얼굴도 없다. 여러분이 아는가.」신회가 나와서 말했다.「이것은 제불의 본원이요, 신회의 불성입니다.」대사가 말했다.「너에게『이름 없고 글자 없다』고 말했는데 너는 도리어 본원불성이라 부른다. 너는 장래 비록 초옥으로 머리를 가릴 것이 있어도 다만 지해를 하는 종도가 될 뿐이다.」조사가 멸도한 뒤 신회는 경낙 일대에 이르러 조계돈교를 크게 널리 펴고《현종기》를 지어 세상에 크게 행해졌다.(이가 곧 하택선사이다.)
師見諸宗難問鹹起惡心,多集座下愍而謂曰:「學道之人,一切善念惡念應當盡除。無名可名,名於自性,無二之性,是名實性。於實性上建立一切教門,言下便須自見。」諸人聞說,總皆作禮,請事為師。
대사가 각 종에서 와서 힐난하는 사람들이 모두 악심을 일으켜 좌하에 많이 모인 것을 보고, 불쌍히 여겨 그들에게 말했다.「도를 배우는 사람은 일체선념악념을 마땅히 다 없애야 한다. 이름할 명이 없는 것을 억지로 자성이라 칭하고, 이 대립이 없는 성을 실성이라 한다. 실성 위에서 일체교문을 세우니 들은 그 자리에서 곧 스스로 보아야 한다.」여러 사람이 듣고 모두 예를 행하며 그를 받들어 스승으로 삼기를 청했다.
宣詔第九
선조제구
神龍元年上元日,則天、中宗詔云:「朕請安、秀二師宮中供養。萬機之暇,每究一乘。二師推讓云:『南方有能禪師,密授忍大師衣法,傳佛心印,可請彼問。』今遣內侍薛簡,馳詔迎請,願師慈念,速赴上京。」師上表辭疾,願終林麓。薛簡曰:「京城禪德皆云:『欲得會道,必須坐禪習定。若不因禪定而得解脫者,未之有也。』未審師所說法如何?」師曰:「道由心悟,豈在坐也。經云:『若言如來若坐若臥,是行邪道。』何故?無所從來,亦無所去。無生無滅,是如來清淨禪。諸法空寂,是如來清淨坐。究竟無證,豈況坐耶。」簡曰:「弟子回京,主上必問。願師慈悲,指示心要,傳奏兩宮及京城學道者。譬如一燈,然百千燈,冥者皆明,明明無盡。」師云:「道無明暗,明暗是代謝之義。明明無盡,亦是有盡,相待立名故。《淨名經》云:『法無有比,無相待故。』」簡曰:「明喻智慧,暗喻煩惱。修道之人,倘不以智慧照破煩惱,無始生死憑何出離?」師曰:「煩惱即是菩提,無二無別。若以智慧照破煩惱者,此是二乘見解。羊鹿等機,上智大根,悉不如是。」簡曰:「如何是大乘見解?」師曰:「明與無明,凡夫見二;智者了達,其性無二。無二之性,即是實性。實性者,處凡愚而不減,在賢聖而不增,住煩惱而不亂,居禪定而不寂。不斷不常,不來不去,不在中間及其內外,不生不滅,性相如如,常住不遷,名之曰道。」簡曰:「師說不生不滅,何異外道?」師曰:「外道所說不生不滅者,將滅止生,以生顯滅,滅猶不滅,生說不生。我說不生不滅者,本自無生,今亦不滅,所以不同外道。汝若欲知心要,但一切善惡都莫思量,自然得入清淨心體,湛然常寂,妙用恆沙。」簡蒙指教,豁然大悟。禮辭歸闕,表奏師語。
신룡 원년 정월 보름날, 무측천과 중종이 조서를 내려 이르기를「짐이 혜안·신수 두 대사를 청하여 궁중에서 공양하고, 만기를 처리하는 여가에 항상 일승의 법을 구하였다. 두 대사가 추양하여 말하기를『남방에 혜능선사가 있어 홍인대사의 의법을 은밀히 받아 불심인을 전하니 그를 청하여 물을 만하다』하였다. 이제 내시 설간을 보내 조서를 보내 영청하니 대사의 자비호념을 원하여 속히 경성에 부하기를 바란다」하였다. 대사가 표를 올려 병이 있다고 사양하고 임록에서 늙어 죽기를 원했다. 설간이 말했다.「경성의 선문대덕이 모두 말하기를『도를 깨치고자 하면 반드시 좌선하여 정을 익혀야 한다. 만약 선정을 통하지 않고 해탈을 얻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합니다. 대사께서 설하시는 법이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대사가 말했다.「도는 마음으로 깨닫는 것이니 어찌 앉음에 있겠는가. 경에 이르기를『만약 여래가 앉거나 눕는다고 말하면 이는 사도를 행하는 것이다』하였다. 무슨 까닭인가. 여래는 오는 데도 없고 가는 데도 없으며 생하지도 멸하지도 않으니 이것이 여래의 청정선이다. 제법이 공적하니 이것이 여래의 청정좌이다. 구경에는『증』도 없거든 하물며 앉음이겠는가.」설간이 말했다.「제자가 경으로 돌아가면 황상께서 반드시 물으실 것입니다. 대사의 자비를 원하오니 심요를 지시하여 저로 하여금 양궁 및 경성의 학도하는 사람에게 전주하게 해 주십시오. 비유하면 한 등불이 백천 등불을 켜서 어두운 자가 다 밝아져 밝음이 이어져 다함이 없습니다.」대사가 말했다.「도에는 명암이 없으니 명과 암은 서로 대신한다는 뜻이다. 소위『밝음이 다함이 없다』는 것도 실은 다함이 있으니 서로 기다려 세운 명목이기 때문이다. 《정명경》에 이르기를『법에는 비길 것이 없으니 서로 기다리지 않기 때문이다』하였다.」설간이 말했다.「밝음은 지혜를 비유하고 어두움은 번뇌를 비유합니다. 도를 닦는 사람이 만약 지혜로 번뇌를 비추어 깨지 않으면 무시 이래의 생사를 무엇으로 출리하겠습니까.」대사가 말했다.「번뇌가 곧 보리이니 둘이 없고 분별이 없다. 만약 지혜로 번뇌를 비추어 깬다 하면 이는 이승의 견해요, 양차·록차 따위의 근기이니, 상지대근한 사람은 다 이와 같이 보지 않는다.」설간이 말했다.「어떤 것이 대승의 견해입니까.」대사가 말했다.「명과 무명을 범부는 둘로 보나 지혜 있는 자는 요달하여 그 성이 둘이 없다. 둘이 없는 성이 곧 실성이다. 실성이란 범우한 몸에 있어서도 줄지 않고 현성의 몸에 있어서도 늘지 않으며, 번뇌에 머물러도 어지럽지 않고 선정에 있어도 죽은 듯 고요하지 않다. 끊이지도 않고 항하지도 않으며, 오지도 가지도 않고, 중간에도 내외에도 있지 않으며, 생하지도 멸하지도 않고, 성과 상이 여여불이하여 상주하여 천변하지 않으니 이를 도라 이름한다.」설간이 말했다.「대사께서 불생불멸을 설하시니 외도와 무엇이 다릅니까.」대사가 말했다.「외도가 설하는 불생불멸은『멸』로『생』을 그치고『생』으로『멸』을 나타내니, 멸이 아직 참으로 멸하지 않았고 생은 생하지 않는다 설한다. 내가 설하는 불생불멸은 본래 생함이 없고 지금도 멸하지 않으니, 그러므로 외도와 다르다. 네가 만약 심요를 알고자 하면 다만 일체선악을 다 사량하지 않으면 자연히 능히 청정심체에 들어가 담연상적하여 묘용이 항하사수와 같으리라.」설간이 지교를 입고 활연히 크게 깨달아 예사하고 조정으로 돌아가 표를 올려 대사의 말을 주했다.
其年九月三日,有詔獎諭師曰:「師辭老疾,為朕修道,國之福田。師若淨名託疾毘耶,闡揚大乘,傳諸佛心,談不二法。薛簡傳師指授如來知見,朕積善餘慶,宿種善根,值師出世,頓悟上乘。感荷師恩,頂戴無已,並奉磨衲袈裟及水晶缽,勅韶州刺史修飾寺宇,賜師舊居為國恩寺。」
그해 구월 삼 일에 조서가 내려 대사를 포상하여 이르기를「대사가 늙고 병들었다고 사양하며 짐을 위해 도를 닦으니 국가의 복전이다. 대사가 유마힐이 비야리성에서 병을 의탁한 것과 같이 대승을 창양하고 제불의 심을 전하여 불이의 법을 말하였다. 설간이 대사가 지수한 여래지견을 전하였으니, 짐은 선을 쌓은 여경과 숙세의 선근으로 대사의 출세를 만나 돈연히 상승을 깨달았다. 대사의 은덕을 감념하여 정대함이 그치지 않으니 마뇌가사와 수정발을 함께 봉하고, 소주자사에게 칙하여 사우를 수식하게 하며, 대사의 옛 거처를 국은사로 하사한다」하였다.
付囑第十
부촉제십
師一日喚門人法海、志誠、法達、神會、智常、智通、志徹、志道、法珍、法如等,曰:「汝等不同餘人,吾滅度後,各為一方師。吾今教汝說法,不失本宗:先須舉三科法門,動用三十六對,出沒即離兩邊。說一切法,莫離自性。忽有人問汝法,出語盡雙,皆取對法,來去相因。究竟二法盡除,更無去處。三科法門者,陰、界、入也。陰是五陰——色、受、想、行、識是也。入是十二入,外六塵——色、聲、香、味、觸、法;內六門——眼、耳、鼻、舌、身、意是也。界是十八界,六塵、六門、六識是也。自性能含萬法,名含藏識。若起思量,即是轉識。生六識,出六門,見六塵。如是一十八界,皆從自性起用。自性若邪,起十八邪;自性若正,起十八正。若惡用即眾生用,善用即佛用。用由何等?由自性有,對法外境。無情五對:天與地對,日與月對,明與暗對,陰與陽對,水與火對;此是五對也。法相語言十二對:語與法對,有與無對,有色與無色對,有相與無相對,有漏與無漏對,色與空對,動與靜對,清與濁對,凡與聖對,僧與俗對,老與少對,大與小對;此是十二對也。自性起用十九對:長與短對,邪與正對,痴與慧對,愚與智對,亂與定對,慈與毒對,戒與非對,直與曲對,實與虛對,險與平對,煩惱與菩提對,常與無常對,悲與害對,喜與瞋對,捨與慳對,進與退對,生與滅對,法身與色身對,化身與報身對;此是十九對也。」師言:「此三十六對法,若解用即道,貫一切經法,出入即離兩邊。自性動用,共人言語,外於相離相,內於空離空。若全著相,即長邪見;若全執空,即長無明。執空之人有謗經,直言不用文字。既雲不用文字,人亦不合語言。只此語言,便是文字之相。又云:『直道不立文字。』即此不立兩字,亦是文字。見人所說,便即謗他言著文字。
대사가 하루는 문인 법해·지성·법달·신회·지상·지통·지철·지도·법진·법여 등을 불러 말했다.「너희는 다른 사람과 다르니, 내가 멸도한 뒤 너희가 각각 일방의 스승이 되어라. 내가 이제 너희에게 설법을 가르치어 본종을 잃지 않게 하겠다. 먼저 반드시 삼과법문을 들고 삼십육대를 운용하여 출몰 사이에 곧 양변을 떠나야 한다. 일체법을 설하되 자성을 떠나지 마라. 문득 어떤 사람이 네게 법을 물으면 입에서 나온 말이 다 짝을 이루어 다 상대하는 법을 취하여 오고 감이 서로 인유가 되게 하라. 구경에 이르러 두 법을 다 제거하면 다시 갈 곳이 없다. 소위 삼과법문이란 음·계·입이다. 음은 오음—색·수·상·행·식이다. 입은 십이입이니 밖의 육진—색·성·향·미·촉·법과 안의 육문—안·이·비·설·신·의이다. 계는 십팔계이니 곧 육진·육문·육식이다. 자성이 능히 만법을 포함하니 함장식이라 한다. 만약 사량이 일어나면 곧 전식이니 육식을 내어 육문에서 나가 육진을 본다. 이 십팔계가 다 자성에서 작용을 일으킨다. 자성이 만약 삿되면 십팔 가지 삿됨을 일으키고, 자성이 만약 바르면 십팔 가지 바름을 일으킨다. 만약 악용하면 곧 중생의 용이요, 선용하면 곧 부처의 용이다. 용이 어디서 오는가. 자성에 상대하는 법과 외경에서 온다. 무정의 다섯 가지 대—천과 지가 대요, 일과 월이 대요, 명과 암이 대요, 음과 양이 대요, 수와 화가 대—이것이 다섯 대다. 법상언어의 십이 대—어와 법이 대, 유와 무가 대, 유색과 무색이 대, 유상과 무상이 대, 유루와 무루가 대, 색과 공이 대, 동과 정이 대, 청과 탁이 대, 범과 성이 대, 승과 속이 대, 노와 소가 대, 대와 소가 대—이것이 십이 대다. 자성기용의 십구 대—장과 단이 대, 사와 정이 대, 치와 혜가 대, 우와 지가 대, 난과 정이 대, 자와 독이 대, 계와 비가 대, 직과 곡이 대, 실과 허가 대, 험과 평이 대, 번뇌와 보리가 대, 상과 무상이 대, 비와 해가 대, 희와 진이 대, 사와 걸이 대, 진과 퇴가 대, 생과 멸이 대, 법신과 색신이 대, 화신과 보신이 대—이것이 십구 대다.」대사가 말했다.「이 삼십육대법은 만약 쓸 줄 알면 곧 도를 관통하여 일체경법을 꿰뚫고 출입 사이에 다 양변을 떠난다. 자성이 작용을 일으켜 사람과 언어할 때, 밖에서는 상 가운데 있으면서 상을 떠나고 안에서는 공 가운데 있으면서 공을 떠난다. 만약 온전히 상에 집착하면 사견을 증장하고, 만약 온전히 공에 집착하면 무명을 증장한다. 공을 집착한 사람은 혹 불경을 훼방하여 곧바로 문자를 쓰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미 문자를 쓰지 않는다 하였으면 사람도 마땅히 언어를 하지 않아야 한다. 다만 이 말하는 것 자체가 곧 문자의 상이다. 그가 또 말했다.『직도는 문자를 세우지 않는다.』이『세우지 않는다』는 두 글자도 또한 문자이다. 사람이 말하는 것을 보면 곧 그 사람을 훼방하여 문자에 집착한다 한다.」
汝等須知,自迷猶可,又謗佛經。不要謗經,罪障無數。若著相於外,而作法求真;或廣立道場,說有無之過患。如是之人,累劫不得見性。但聽依法修行,又莫百物不思,而於道性窒礙。若聽說不修,令人反生邪念。但依法修行,無住相法施。汝等若悟,依此說、依此用、依此行、依此作,即不失本宗。若有人問汝義,問有將無對,問無將有對,問凡以聖對,問聖以凡對。二道相因,生中道義。如一問一對,餘問一依此作,即不失理也。設有人問:『何名為闇?』答云:『明是因,闇是緣,明沒即闇。』以明顯闇,以闇顯明,來去相因,成中道義。餘問悉皆如此。汝等於後傳法,依此轉相教授,勿失宗旨。」
(대사가 이어서)너희는 반드시 알아야 한다. 자기가 미혹한 것은 오히려 괜찮으나 또 불경을 훼방한다. 경을 훼방하지 마라. 그 죄장이 무수하다. 만약 밖으로 상에 집착하여 법을 지어 참을 구하거나 혹 널리 도장을 베풀고 유무의 과환을 의론하는 이런 사람은 누겁이라도 견성하지 못한다. 다만 마땅히 법을 따라 수행하는 것을 들어야 하고, 또 백물을 생각하지 않아 도성을 질애하게 하지도 마라. 만약 설하기만 듣고 닦지 않으면 도리어 사람으로 하여금 사념을 생기게 한다. 다만 법을 따라 수행하고 상에 집착하지 않는 법보시를 하라. 너희가 만약 깨달으면 이같이 설하고 이같이 쓰고 이같이 행하고 이같이 지어 곧 본종을 잃지 않으리라. 만약 어떤 사람이 네게 의리를 물으면 '있음'을 물으면 '없음'으로 대하고, '없음'을 물으면 '있음'으로 대하고, '범'을 물으면 '성'으로 대하고, '성'을 물으면 '범'으로 대하라. 양변의 도가 서로 인유하여 중도의 의리를 낸다. 이와 같이 한 물음에 한 대답이면 나머지 물음도 모두 이를 따라 하면 곧 도리를 잃지 않으리라. 가령 어떤 사람이 묻기를『무엇을 어둡다 하는가』하면 대답하기를『밝음이 인이요 어두움이 연이다. 밝음이 없어지면 곧 어둠이다』하라. 밝음으로 어두움을 나타내고 어두움으로 밝음을 나타내어 오고 감이 서로 인유하여 중도의 의리를 이룬다. 나머지 물음도 모두 이와 같다. 너희가 뒤에 법을 전하면 이것을 따라 전전으로 서로 가르쳐 종지를 잃지 마라.」
師於太極元年壬子,延和七月(是年五月改延和,八月玄宗即位方改元先天,次年遂改開元。他本作先天者非)命門人往新州國恩寺建塔,仍令促工,次年夏末落成。七月一日,集徒眾曰:「吾至八月,欲離世間。汝等有疑,早須相問,為汝破疑,令汝迷盡。吾若去後,無人教汝。」法海等聞,悉皆涕泣。惟有神會,神情不動,亦無涕泣。師云:「神會小師卻得善不善等,毀譽不動,哀樂不生;餘者不得。數年山中竟修何道?汝今悲泣,為憂阿誰?若憂吾不知去處,吾自知去處。吾若不知去處,終不預報於汝。汝等悲泣,蓋為不知吾去處;若知吾去處,即不合悲泣。法性本無生滅去來,汝等盡坐,吾與汝說一偈,名曰真假動靜偈。汝等誦取此偈,與吾意同,依此修行,不失宗旨。」眾僧作禮,請師說偈。偈曰:
대사가 태극 원년 임자(이 해 오월에 연화로 개원하고, 팔월에 현종이 즉위한 뒤에야 선천으로 개원하고, 다음 해에 곧 개원으로 개원했다. 어떤 본자에는 선천으로 썼는데 옳지 않다)칠월에 문인에게 명하여 신주 국은사에 탑을 세우게 하고, 또 공기를 재촉하여 다음 해 여름 말에 낙성했다. 칠월 초하루에 도중을 모아 말했다.「내가 팔월에 세간을 떠나고자 한다. 너희에게 의혹이 있으면 빨리 와서 물어라. 내가 너희를 위해 의혹을 깨어 너희의 미혹을 다 없애리라. 내가 만약 간 뒤에는 너희를 가르치는 사람이 없으리라.」법해 등이 듣고 모두 눈물을 흘렸다. 오직 신회만이 신정이 움직이지 않고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대사가 말했다.「신회 소사는 도리어 선과 불선의 평등을 얻어 훼예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애락이 생기지 않는구나. 나머지 사람들은 미치지 못했다. 이 몇 년 산중에서 구경 무슨 도를 닦았는가. 너희가 이제 슬피 우는 것은 대개 누구를 위해 근심하는가. 만약 내가 갈 곳을 모른다고 근심하면, 나는 스스로 갈 곳을 안다. 내가 만약 갈 곳을 모르면 미리 너희에게 알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너희가 슬피 우는 것은 바로 나의 갈 곳을 모르기 때문이다. 만약 나의 갈 곳을 알면 마땅히 슬퍼하지 않을 것이다. 법성은 본래 생멸거래가 없다. 너희는 모두 앉아라. 내가 너희에게 한 게송을 설하니『진가동정게』라 이름한다. 너희가 이 게송을 외우면 나의 심의와 같을 것이요, 이를 따라 수행하면 종지를 잃지 않으리라.」중승이 예를 행하고 대사에게 게송을 설해 주기를 청했다. 게송에 이르기를,
「一切無有真,不以見於真,
일체사물에 참된 '참'이 없으니 그 위에서 참을 보지 마라.
若見於真者,是見盡非真。
만약 참을 보았다 여기면 이 '견' 자체가 다 참이 아니로다.
若能自有真,離假即心真,
능히 스스로 참이 있으면 곧 거짓을 떠나 마음이 당하에 참이요,
自心不離假,無真何處真?
자심이 거짓을 떠나지 않으면 이미 참이 없는데 어디에서 참을 찾으랴.
有情即解動,無情即不動,
정식이 있으면 곧 능히 움직이고, 정식이 없으면 곧 움직이지 않도다.
若修不動行,同無情不動。
만약 저 '부동'의 행을 닦으면 무정물의 부동과 같으리라.
若覓真不動,動上有不動,
만약 참된 부동을 찾고자 하면 그 부동이 움직임 가운데 있도다.
不動是不動,無情無佛種。
다만 일미로 움직이지 않는 그 부동은 무정물이요 성불의 씨가 없도다.
能善分別相,第一義不動,
능히 선하게 여러 상을 분별하면서 제일의에서 움직이지 않으면,
但作如此見,即是真如用。
다만 이와 같은 견해를 지으면 곧 진여의 작용이로다.
報諸學道人,努力須用意,
여러 학도인에게 고한다. 노력할 때는 반드시 마음을 써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