悟真篇 · 제5권
其一
그 첫째
饒君了悟真如性,未免拋身卻人身。何以更兼修大藥,頓超無漏作真人。
비록 그대가 깨달아 진여(眞如)의 성이 되어도 오히려 이 몸을 버리고 다시 사람의 몸에 들어감을 면하지 못합니다. 어찌하여 다시 겸하여 대약을 닦아 곧바로 무록(無漏)을 뛰어넘어 진인이 되지 않습니까.
其二
그 둘째
投胎奪舍及移居,舊住名為因果徒。若會降龍並伏虎,真金起屋幾時枯。
투태(投胎)·탈사(奪舍)와 이사는 옛 사는 것을 이름하여 인과의 무리라 합니다. 만약 용을 항복시키고 범을 복종시킬 줄 알면 참된 금으로 집을 지어도 어느 때 비로소 마르겠습니까.
其三
그 셋째
鑑形閉息思神法,初學艱難後坦途。倏忽縱能遊萬國,奈何屋破卻移居。
형체를 비추고 숨을 닫고 신을 생각하는 법은 처음 배울 때는 어렵고 나중에는 평탄한 길입니다. 눈깜짝할 사이에 비록 능히 만 국가를 노닐어도 어쩔 수 없이 집이 무너지면 도리어 이사해야 합니다.
其四
그 넷째
釋氏教人修極樂,只緣極樂是金方。大都色相惟茲實,餘二非真謾度量。
석씨(釋氏)는 사람을 가르쳐 극락을 닦게 하니 다만 극락이 이것이 금방(金方)이기 때문입니다. 대개 색상(色相)은 다만 여기서만 실이요 그 나머지 둘은 참이 아니니 헛되이 헤아리지 마십시오.
其五
그 다섯째
俗語常言合至道,宜向其中細尋討。能於日用顛倒求,大地塵沙盡成寶。
속된 말과 늘 하는 말이 지극한 도에 맞으니 마땅히 그 속에서 자세히 찾아 헤아려야 합니다. 능히 일용 속에서 뒤집어 구하면 대지의 티끌 모래가 모두 보배가 됩니다.
附錄
부록
讀《周易參同契》
『주역참동계』를 읽다.
大丹妙用法乾坤,乾坤運兮五行分;五行順兮常道有生有滅,五行逆兮丹體常靈常存。一自虛無質兆,兩儀因一開根,四象不離二體,八卦互為子孫。萬象生乎變動,吉凶悔吝茲分。百姓日用不知,聖人能究本源。顧易道妙盡乾坤之理,遂托象於斯文。否泰交,則陰陽或升或降;屯蒙作,則動靜在朝在昏。坎離為男女水火,震兌乃龍虎魄魂。守中則黃裳元吉,遇亢則無位無尊。既未慎萬物之終始,復姤昭二氣之歸奔。月虧盈,應精神之衰旺;日出沒,合榮衛之寒溫。本立言以明象,既得象以忘言。猶設象以指意,悟真意則象捐。達者惟簡惟易,迷者愈惑愈繁。故之修真之士,讀《參同契》者不在乎泥象執文。
대단의 묘한 쓰임은 건곤을 본받으니 건곤이 운행하여 오행이 나뉩니다. 오행이 순하면 항상의 도에 생멸이 있고 오행이 역하면 단체가 늘 신령하고 늘 존재합니다. 하나는 허무에서 자취와 조짐을 나타내고 양의(兩儀)는 하나로 말미암아 뿌리를 벌려 내고 사상은 두 체를 떠나지 않으며 팔괘는 서로 자손이 됩니다. 만상은 변동에서 나고 길흉회림이 여기서 갈라집니다. 백성은 날마다 쓰면서도 알지 못하고 성인은 능히 근원을 캐묻습니다. 보건대 『역』도의 묘한 곳이 모두 건곤의 이치에 있으니 이에 상을 이 편 글에 기탁합니다. 비태가 서로 사귀면 곧 음양이 혹 오르고 혹 내리고 둔몽이 일어나면 곧 동정이 아침에 있고 저녁에 있습니다. 감리는 이것이 남녀·수화요 진태는 곧 용호·백혼입니다. 가운데를 지키면 곧 황상(黃裳)·원길(元吉)이요 항(亢)을 만나면 곧 자리도 없고 존귀도 아닙니다. 기제·미제는 만물의 종시를 삼가고 복구는 두 기의 돌아 달림을 밝게 보입니다. 달의 이지러지고 참은 정신의 쇠하고 왕함에 응하고 해의 나고 들어감은 영위의 차고 따뜻함에 맞습니다. 본래 이것은 말을 세워 상을 밝히기 위함이니 이미 상을 얻으면 곧 말을 잊습니다. 또 상을 세워 뜻을 가리키는 것과 같아 참된 뜻을 깨달으면 곧 상이 버려집니다. 통달한 이는 다만 간결함을 구하고 다만 쉬움을 구하나 미혹한 이는 더욱 미혹하여 더욱 번잡합니다. 그러므로 참을 닦는 선비가 『참동계』를 읽을 때 상에 집착하고 글에 집착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저본의 「故之」는 「故知」로 해야 합니다).
贈白龍洞劉道人歌
백룡동(白龍洞) 유도인(劉道人)에게 주는 노래.
玉走金飛兩曜忙,始聞花發又秋霜。徒誇籛壽千來歲,也似雲中一電光。一電光,何太速,百年都來三萬日,其間寒暑互煎熬,不覺童顏暗中失。縱有兒孫滿眼前,卻成恩愛轉牽纏。及乎精竭身枯朽,誰解教君暫駐延。暫駐延,既無計,不免將身歸逝水。但看古往聖賢人,幾個解留身在世?身在世,也有方,只為時人沒度量。競向山中尋草木,伏鉛製汞點丹陽。點丹陽,事迥別,須向坎中求赤血。捉來離位制陰精,配合調和有時節。時節正,用媒人,金公奼女結親姻,金公偏好騎白虎,奼女常駕赤龍身,虎來靜坐秋山裡,龍向潭中奮身起。兩獸相逢戰一場,波浪奔騰如鼎沸。黃婆丁老助威靈,撼動乾坤走神鬼。須臾戰罷雲雨收,種個玄珠在泥底,從此根芽漸長成,隨時灌溉抱真精。十月脫胎吞入口,不覺凡身已有靈。此個事,世間稀,不是等閒人得知。夙世若無仙骨分,容易如何得遇之。得遇之,宜便煉,都緣光景急如箭。要取魚時須結罾,莫只臨川空嘆羨。聞君知藥已多年,何不收心鍊汞鉛。莫教燭被風吹滅,六道輪迴莫怨天。近來世上人多詐,盡著布衣稱道者。問他金木是何般,噤口不言如害啞。卻雲伏氣與休糧,別有門庭道路長。君不見,破迷歌裡說,太一含真法最良,莫怪言辭多狂劣,只教時人難鑑別,惟君心與我心同,方敢傾懷向君說。
옥이 달리고 금이 날아 두 빛깔이 분주합니다. 막 꽃이 폈다는 말을 듣고 또 가을 서리에 이릅니다. 헛되이 팽전(彭篯)의 수명 천여 세를 자랑해도 또한 구름 속 한 줄기 번개빛과 같습니다. 한 줄기 번개빛, 어찌 그리 빠른가, 백 년이 모두 겨우 삼만 일이요 그 사이에 춥고 더움이 서로 달이니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동안(童顔)이 어둠 속에서 잃어버립니다. 비록 자손이 눈앞에 가득해도 도리어 은애가 되어 오히려 얽매입니다. 정이 다하고 몸이 마르고 썩음에 이르러 누가 알아 그대에게 잠시 머물고 미룸을 가르치겠습니까. 잠시 머물고 미룸이 이미 꾀가 없으니 몸을 흘러가는 물에 돌려보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만 옛날 성현을 보라, 몇 사람이나 몸을 세상에 머무르게 할 줄을 알았던가. 몸이 세상에 있음에도 또한 방법이 있으나 다만 세상 사람에게 도량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투어 산속을 향해 초목을 찾고 납을 누르고 수은을 제어하여 단양(丹陽)을 점하고자 합니다. 단양을 점함은 일이 아득히 다르니 반드시 감(坎) 속에서 붉은 피를 구해야 합니다. 잡아 와서 이(離) 자리를 제어하여 음정을 복종시키면 배합하고 조화함에 스스로 시절이 있습니다. 시절이 바르면 중매쟁이를 쓰고 금공·타녀가 친한 혼인을 맺으니 금공은 백호 타기를 편애하고 타녀는 늘 적룡의 몸을 탑니다. 범이 와서 가을 산속에 고요히 앉고 용은 못 속을 향해 몸을 힘차게 일으킵니다. 두 짐승이 서로 만나 한바탕 싸우면 물결이 달려 솥이 끓는 것 같습니다. 황파(黃婆)·정노(丁老)가 위령을 도와 건곤을 흔들고 신귀를 놀라 달아나게 합니다. 잠깐 사이에 싸움이 끝나고 구름과 비가 걷히면 현주 하나를 진흙 바닥에 심습니다. 이로부터 뿌리 싹이 점차 자라나 때를 따라 관개하여 참된 정을 안습니다. 열 달에 태를 벗고 입에 삼키면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범부의 몸에 이미 신령이 있습니다. 이 일은 세상에 드물어 한가한 사람이 알 수 있는 바가 아닙니다. 숙세에 만약 선골(仙骨)의 분수가 없으면 어찌 쉽게 만날 수 있겠습니까. 만남을 얻으면 마땅히 곧 단련해야 하니 모두 광경이 화살처럼 급하기 때문입니다. 고기를 잡으려 할 때는 반드시 그물을 짜야 하고 다만 물가에 임하여 헛되이 부러워 탄식하지 마십시오. 듣건대 그대는 약을 안 지 이미 여러 해인데 어찌 마음을 거두어 수은과 납을 단련하지 않습니까. 촛불이 바람에 꺼지게 하지 마십시오. 육도윤회(六道輪迴)에서 하늘을 원망하지 마십시오. 근래 세상 사람은 속임이 많아 모두 베옷을 입고 도인이라 칭합니다. 그에게 금목이 어떤 물건인가 물으면 입을 다물고 말하지 않아 벙어리가 된 것 같습니다. 도리어 복기(伏氣)와 휴량(休糧)을 말하며 따로 문정(門庭)이 있어 길이 멀다 합니다.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파미가(破迷歌)』에서 말하기를, 태일함진(太乙含眞)의 법이 가장 좋다고. 말이 많이 거칠고 못난 것을 괴이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다만 세상 사람이 감별하기 어려움만 할 뿐입니다. 다만 그대의 마음과 나의 마음이 같아야 비로소 감히 품을 기울여 그대에게 말합니다.
石橋歌
석교가(石橋歌)
吾家本住石橋北,山鎮水關森古木,橋下澗水徹崑崙,山下飲泉香馥郁。吾居山內實堪誇,遍地均栽不榭花。山北穴中藏猛虎,出窟哮吼生風霞。山南潭底藏蛟龍,騰雲降雨山濛濛。二獸相逢鬥一場,元珠隱伏是禎祥。景堪羨,吾暗喜,自斟自酌熏熏醉。醉彈一曲無絃琴,琴裡聲聲教仔細。可煞醉後沒人知,昏昏默默恰如痴。仰觀造化工夫妙,日還西出月東歸。天是地,地是天,反覆陰陽合自然。識得五行顛倒處,指日升霞歸洞天。黃金屋,白玉掾,玉女金童日侍前。南辰北斗分明布,森羅萬象現無邊。無晝夜,要綿綿,聚散抽添火候全。若問金丹端的處,尋師指破水中鉛。木生火,金生水,水火須分前後隊。要辨浮沉識主賓,鉛銀砂汞方交會。有剛柔,莫逸意,知足常足歸本位。萬神齊賀太平年,恁時國富民歡喜。此個事,好推理,同道之人知此義。後來一輩學修真,只說存養並行氣。在眼前,甚容易,得服之人妙難比。先且去病更延年,用火烹煎變陽體。學道人,去思己,休問旁門小法制。只知目下哄得人,不覺自身暗憔悴。勸後學,須猛鷙,莫徒拋家住他地。妙道不離自家身,豈在千山並萬水。莫因循,自貪鄙,火急尋師覓元旨。在生若不學修行,未知來生甚胎裡。既有心,要終始,人生大事惟生死,皇天若負道心人,令我三途為下鬼。
우리 집은 본래 돌다리 북쪽에 살아 산이 진하고 물의 관이 있어 오래된 나무가 빽빽하며 다리 아래 골물이 곧장 곤륜에 미치고 산 아래 마시는 샘은 향기가 그윽합니다. 내가 산속에 사는 것은 참으로 자랑할 만하여 온 땅에 시들지 않는 꽃을 심었습니다(저본의 「榭」는 「謝」로 해야 합니다). 산 북쪽 굴속에는 사나운 범이 숨어 있어 굴에서 나와 울부짖어 바람과 노을을 냅니다. 산 남쪽 못 바닥에는 교룡이 숨어 있어 구름을 일으키고 비를 내려 산빛이 아련합니다. 두 짐승이 서로 만나 한바탕 싸우면 현주(玄珠)가 숨어 엎드리니 곧 상서로움입니다(저본의 「元」은 「玄」으로 해야 합니다). 경치가 부러울 만하여 나는 속으로 기뻐하며 스스로 따르고 스스로 마시니 훈훈히 취합니다. 취한 가운데 줄 없는 거문고 한 곡을 타면 거문고 속 소리소리가 사람에게 자세히 하라 가르칩니다. 취한 뒤에 아는 이가 없음이 애석하여 혼혼묵묵하여 마치 어리석은 듯합니다. 우러러 조화의 공부가 오묘함을 보니 해가 도리어 서쪽에서 나고 달이 동쪽에서 돌아갑니다. 하늘이 땅이요 땅이 하늘이니 되풀이하는 음양이 자연에 맞습니다. 오행이 뒤집히는 곳을 알면 해를 가리켜 노을에 올라 동천(洞天)에 들어가리라. 황금집·백옥 서까래여(저본의 「掾」은 「椽」으로 해야 합니다), 옥녀·금동이 매일 앞에 모십니다. 남신(南辰)·북두가 분명히 벌여놓여 삼라만상이 끝없이 나타납니다. 밤낮이 없고 다만 면면함을 요하며 모이고 흩어지고 빼고 더함에 화후가 갖추어졌습니다. 만약 금단의 바른 곳을 묻는다면 스승을 찾아 물속의 납을 가리켜 열어야 합니다. 목은 화를 내고 금은 수를 내니 수화는 반드시 앞뒤 대를 나누어야 합니다. 침부를 분별하고 주빈을 알아야 납·은·사·홍이 비로소 서로 만납니다. 굳셈도 있고 부드러움도 있으니 그 뜻을 방일하게 하지 말고 족함을 알아 늘 족하여 본위로 돌아가십시오. 만신이 함께 태평한 해를 축하하니 그 때 나라가 부유하고 백성이 기뻐합니다. 이 일은 미루어 헤아리기 좋으니 같은 도를 가진 사람이 이 뜻을 압니다. 뒤에 오는 한 떨기의 참을 닦는 이들은 다만 존양(存養)과 행기(行氣)를 말할 뿐입니다. 눈앞에 있어 매우 쉬우나 먹을 수 있는 사람은 묘한 곳이 비할 바 없습니다. 먼저 잠시 병을 없애고 다시 해를 늘리고 불을 써서 달여 양체(陽體)로 변합니다. 도를 배우는 사람이여, 사려를 버리고 자기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곁문과 작은 법의 제어를 묻지 마십시오. 다만 눈앞에서 사람을 속일 줄만 알고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자기 몸이 어둠 속에서 초췌해집니다. 뒤에 배우는 이에게 권하노니 반드시 용맹해야 하고 헛되이 집을 버려 다른 곳에 살지 마십시오. 묘도는 자기 몸을 떠나지 않으니 어찌 천 산과 만 물에 있겠습니까. 인순(因循)하지 말고 스스로 욕심내고 비루하지 말며 불길하게 스승을 찾아 참된 뜻을 찾으십시오. 살아 있어 만약 수행을 배우지 않으면 다음 생에 어느 태 속에 있을지 모릅니다. 이미 마음이 있으면 반드시 처음과 끝이 있어야 하니 인생의 큰일은 다만 생사뿐입니다. 황천(皇天)이 만약 도심(道心) 있는 사람을 저버리면 나로 하여금 삼도(三途)에서 아랫귀신이 되게 하십시오.
悟真性宗
참된 성(性)의 종지를 깨닫다.
絕句四首
절구 네 수.
如來妙體遍河沙,萬象森羅無礙遮。會的圓通真法眼,始知三界是吾家。
여래의 묘한 체는 강의 모래에 두루 미치고 만상이 빽빽히 벌려도 가리는 장애가 없습니다. 원통의 참된 법안(法眼)을 깨달아 비로소 삼계(三界)가 이것이 나의 집임을 압니다.
視之不可見其形,及至呼之又卻應。莫道此聲如谷響,若還無谷有何聲?
그것을 보면 그 형체를 볼 수 없으나 그것을 부름에 이르러서는 도리어 응합니다. 이 소리가 골짜기 메아리와 같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만약 골짜기가 없으면 또 무슨 소리가 있겠습니까.
一物含聞見覺知,蓋諸塵境顯其機。靈常一物尚非有,四者憑何作所依。
한 물건이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것을 품어 뭇 티끌 경계를 덮어 그 기(機)를 드러냅니다. 신령하고 항상한 이 한 물건조차 오히려 있는 것이 아닌데 네 가지가 무엇을 빌려 의지할 곳이 되겠습니까.
不移一步到西天,端坐諸方在眼前。項後有光猶是幻,雲生足下未為仙。
한 걸음을 옮기지 않고 서천(西天)에 이르며 단정히 앉아 여러 방향이 모두 눈앞에 있습니다. 목덜미 뒤에 빛이 있어도 도리어 환(幻)이요 발밑에 구름이 생겨도 아직 선(仙)으로 셈하지 못합니다.
性地頌
성지(性地) 송
佛性非同異,千燈共一光。增之寧解益,減著且無傷。
불성(佛性)은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아 천 개의 등불이 함께 한 빛을 입습니다. 더해도 어찌 이익을 얻음을 알겠으며 덜어도 또한 손상이 없습니다.
取捨俱無過,焚漂總不妨。見聞知覺法,無一可猜量。
취하고 버림에 모두 허물이 없고 불태우고 표류함이 모두 방해하지 않습니다.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법은 한 가지도 헤아릴 수 없습니다.
生滅頌
생멸(生滅) 송
求生本自無生,畏滅何曾暫滅。眼見不如耳見,口說爭似鼻說。
남을 구하나 본래 스스로 남이 없고 멸함을 두려워하나 또 어찌 잠시 멸한 적이 있습니까. 눈으로 봄은 귀로 봄만 못하고 입으로 말함은 어찌 코로 말함에 비하겠습니까.
三界惟心頌
삼계유심(三界唯心) 송.
三界惟心妙理,萬物非此非彼。無一物非我心,無一物是我己。
삼계유심은 이것이 묘한 이치이니 만물은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닙니다. 한 가지 물건도 나의 마음이 아님이 없고 한 가지 물건도 내 자신이 아님이 없습니다.
見物便見心頌
물건을 보면 곧 마음을 봄의 송.
見物便見心,無物心不現。十方通塞中,真心無不遍。
물건을 보면 곧 마음을 보고 물건이 없으면 마음이 곧 나타나지 않습니다. 시방(十方)이 통하고 막힘 속에서 참된 마음은 두루 미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若生知識解,卻成顛倒見。睹境能無心,始見菩提面。
만약 지식과 견해를 내면 도리어 전도된 견해가 됩니다. 경계를 보고 능히 마음이 없어야 비로소 보리(菩提)의 얼굴을 봅니다.
齊物頌
제물(齊物) 송.
我不異人,人心自異。人有親疏,我無彼此。
나와 남은 다름이 없으나 사람의 마음이 스스로 차이를 냅니다. 사람에게는 친하고 성긴 것이 있으나 나에게는 피차가 없습니다.
水陸飛行,等觀一體。貴踐尊卑,手足同己。
물과 뭍과 날아다니는 것을 평등하게 보아 한 몸으로 삼습니다. 귀천·존비(저본의 「践」은 「賤」으로 해야 합니다)가 수족과 같이 자기와 같습니다.
我尚非我,何嘗有你。彼此俱無,眾泡歸水。
나조차 내가 아닌데 어찌 네가 있겠습니까. 피차가 모두 없으면 뭇 물거품이 물로 돌아갑니다.
即心是佛頌
즉심시불(卽心是佛) 송.
佛即心兮心即佛,心佛從來皆妄物。若知無佛復無心,始是真如法身佛。法身佛,沒模樣,一顆圓光含萬象。無體之體即真體,無相之相即實相。非色非空非不空,不動不靜不來往。無異無同無有無,難取難捨難聽望。內外圓明到處通,一佛國在一沙中。一粒沙含大千界,一個身心萬個同。知之須會無心法,不染不滯為淨業。善惡千般無所為,即是南無及迦葉。
부처가 곧 마음이며 마음이 곧 부처로다, 마음과 부처는 예로부터 모두 망령된 물건입니다. 만약 부처도 없고 마음도 없음을 알면 비로소 이것이 진여(眞如) 법신불(法身佛)입니다. 법신불은 모양이 없고 한 알 둥근 빛이 만상을 품습니다. 체 없는 체가 곧 참된 체요 상 없는 상이 곧 참된 상입니다. 색도 아니고 공도 아니고 불공도 아니며 움직이지도 고요하지도 오고가지도 않습니다. 다름도 없고 같음도 없고 있음도 없고 없음도 없으며 취하기 어렵고 버리기 어렵고 듣고 바라기 어렵습니다. 안팎이 둥글고 밝아 가는 곳마다 통하여 한 불국토가 한 알의 모래 속에 있습니다. 한 알의 모래가 대천세계를 품고 한 몸과 마음이 만 개와 같습니다. 그것을 아는 데는 무심법(無心法)을 깨달아야 하고 물들지 않고 머물지 않아야 비로소 청정한 업입니다. 선악 천 가지가 하는 바가 없으면 곧 이것이 나무(南無)와 가섭(迦葉)입니다.
無心頌
무심(無心) 송
堪笑我心,如頑如鄙。兀兀騰騰,任物安委。不解修行,亦不造罪。不曾利人,亦不私己。不持戒律,不徇忌諱。不知禮樂,不行仁義。人間所能,百無一會。飢來吃飯,渴來飲水。困則打睡,覺則行履。熱則單衣,寒則蓋被。無思無慮,何憂何喜。不悔不謀,無念無意。凡生榮辱,逆旅而已。林木棲鳥,亦可為比。來且不禁,去亦不止。不避不求,無贊無毀。不厭醜惡,不羨善美。不趨靜室,不遠鬧市。不說人非,不誇己是。不厚尊崇,不薄賤稚。親愛冤讎,大小內外。哀樂得喪,欽侮險易。心無兩視,坦然一揆。不為福先,不為禍始。感而後應,迫則復起。不畏鋒刃,焉怕虎兒。隨物稱呼,豈拘名字。眼不就色,聲不入耳。凡有所相,皆屬妄偽。男女形聲,悉非定體。體相無心,不染不滯。自在逍遙,物莫能累。妙覺光圓,映徹表裡。包裹六極,無有遐邇。光兮非光,如月在水。取捨既難,復何比擬。了此妙用,迥然超彼。或問所宗,此而已矣。
가소롭다 나의 마음이여, 우둔한 것 같고 비루한 것 같도다. 높고 높고 휘청거려 사물에 맡겨 편안히 의탁합니다. 수행을 알지 못하고 죄도 짓지 않습니다. 일찍이 남을 이롭게 하지 않고 자기를 사사로이 하지도 않습니다. 계율을 지키지 않고 기피를 따르지 않습니다. 예악을 알지 못하고 인의를 행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백 가지에 하나도 아는 것이 없습니다. 배고프면 곧 밥을 먹고 목마르면 곧 물을 마십니다. 피곤하면 곧 졸고 깨면 곧 걸어다닙니다. 더우면 곧 홑옷을 입고 추우면 곧 이불을 덮습니다. 생각도 걱정도 없으니 무슨 근심 무슨 기쁨이 있겠습니까. 후회하지도 꾀하지도 않고 생각도 뜻도 없습니다. 무릇 삶의 영예와 욕됨은 지나가는 여관일 뿐입니다. 수목에 깃들이는 새도 또한 이에 비길 만합니다. 와도 금하지 않고 가도 그치지 않습니다. 피하지도 구하지도 않고 칭찬도 헐뜯음도 없습니다. 추악함을 싫어하지 않고 선하고 아름다움을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고요한 방으로 달려가지 않고 번화한 저자를 멀리 떠나지도 않습니다. 남의 잘못을 말하지 않고 자기의 옳음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높은 이를 후대하지 않고 천하고 어린 이를 박대하지 않습니다. 친애와 원수, 크고 작음과 안과 밖. 슬픔과 즐거움과 얻음과 잃음, 공경과 업신여김, 험함과 쉬움. 마음에 두 가지로 보는 법이 없이 탄탄히 한 자루의 척도입니다. 복의 앞이 되지 않고 화의 시작이 되지 않습니다. 느낌이 있고 그 뒤에 응하고 다그쳐지면 곧 다시 일어납니다. 날카로운 칼날을 두려워하지 않으니 어찌 호랑이와 시(兕)를 두려워하겠습니까(저본의 「兒」는 「兕」로 해야 합니다). 사물을 따라 부르니 어찌 이름에 구애되겠습니까. 눈은 빛깔을 좇지 않고 소리는 귀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무릇 상이 있는 것은 모두 거짓에 속합니다. 남녀의 형상과 소리는 모두 정해진 체가 아닙니다. 체상(體相)에 마음이 없어 물들지 않고 머물지 않습니다. 자재하고 소요하여 사물이 누(累)로 삼지 못합니다. 묘각(妙覺)이 둥글게 빛나 표리를 비춰 꿰뚫습니다. 육극(六極)을 싸서 멀고 가까움이 없습니다. 빛이여 빛이 아니요 달이 물에 있는 것 같습니다. 취사가 이미 어려운데 또 무엇으로 비유하겠습니까. 이 묘용(妙用)을 요달하면 아득이 저를 뛰어넘습니다. 혹 종지로 삼는 것이 무엇이냐 물으면 곧 이것일 뿐입니다.
心經頌
심경(心經) 송
蘊諦根塵空色,都無一法堪言。顛倒之見已盡,寂靜之體攸然。
온(蘊)·제(諦)·근(根)·진(塵)·공(空)·색(色)은 모두 한 가지 법도 말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전도된 견해가 이미 다하여 고요한 체가 유연합니다.
無罪福頌
무죄복(無罪福) 송
終日行,不曾行。終日坐,何曾坐。修善不成功德,作惡原無罪過。時人若未明心,莫執此言亂作。死後須見閻王,難免鑊湯碓磨。
종일 행하되 일찍이 행한 적이 없습니다. 종일 앉되 또 어찌 앉은 적이 있습니까. 선을 닦아도 공덕을 이루지 않고 악을 지어도 본래 죄가 없습니다. 세상 사람이 만약 아직 밝은 마음을 얻지 못했으면 이 말에 집착하여 함부로 짓지 마십시오. 죽은 뒤에는 반드시 염라대왕을 보게 되니 솥탕과 절구질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圓通頌
원통(圓通) 송
見了真空空不空,圓明何處不圓通。根塵心法都無物,妙用方知與物同。
참된 공을 보면 공이 도리어 공이 아니니 둥글고 밝음이 어느 곳이나 원통하지 않겠습니까. 근진(根塵)과 심법(心法)이 모두 물건이 없고 묘용을 알아 비로소 물건과 같음을 압니다.
隨他頌
저에게 맡김의 송
萬物縱橫在目前,隨他動靜任他權。圓明定慧終無染,似水出蓮蓮自乾。
만물이 자유자재로 눈앞에 있어도 저의 동정을 따르고 저의 변화에 맡깁니다. 둥글고 밝은 정혜(定慧)는 마침내 물들지 않아 물에서 연꽃이 나온 것 같으나 연꽃이 스스로 마릅니다.
寶月頌
보월(寶月) 송
一輪明月當虛空,萬國清光無障礙。收之不聚撥不開,前之不進後不退。
한 차례 밝은 달이 허공에 해당하여 만국의 맑은 빛에 장애가 없습니다. 그것을 거두어도 모이지 않고 그것을 떠밀어도 열리지 않으며 앞으로 나아가지도 않고 뒤로 물러나지도 않습니다.
彼非遠兮此非進,表非外兮裡非內。同中有異異中同,問你傀儡會不會。
저가 도리어 멀지 않고 이가 도리어 가깝지 않으며 겉이 도리어 밖이 아니고 속이 도리어 안이 아닙니다. 같은 속에 다름이 있고 다른 속에 같음이 있으니 그대에게 묻노니 이 꼭두각시는 알겠는가.
採珠歌
구슬을 캐는 노래
貧子衣中珠,本自圓明好。不會自尋求,卻數他人寶。數他寶,終無益,只是教君空費力。爭如認得自家珍,價值黃金千萬億。此寶珠,光最大,遍照三千大千界。從來不解少分毫,剛被浮雲為障礙。自從認得此摩尼,泡體空花誰更愛。佛珠還與我珠同,我性即歸佛性海。珠非珠,海非海,坦然心量包法界。任你囂塵滿眼前,定慧圓明常自在。不是空,不是色,內外皎然無壅塞。六通神明妙無窮,自利利他寧解極。見即了,萬事畢,絕學無為度終日。泊兮如未兆嬰兒,動止隨緣無固必。不斷妄,不修真,真妄之心總屬塵。從來萬法皆無相,無相之中有法身。法身即是天真佛,亦非人兮亦非物。浩然充塞天地間,只是希夷並恍惚。垢不染,光自明,無法不從心裡生。心若不生法自滅,即知罪福本無形。無佛修,無法說,丈夫智見自然別。出言便作獅子鳴,不似野子論生滅。
가난한 이의 옷 속 구슬은 본래 스스로 둥글고 밝아 좋습니다. 스스로 구할 줄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남의 보배를 세러 갑니다. 그의 보배를 세어도 끝내 이익이 없고 다만 그대에게 헛되이 힘을 쓰게 할 뿐입니다. 어찌 집안의 보배를 알아보기만 못하랴, 값어치가 황금 천만억입니다. 이 보배 구슬은 빛이 가장 커서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비춥니다. 예로부터 일찍이 한 터럭 한 호도 모자란 적이 없고 다만 뜬구름이 만든 장애를 입었을 뿐입니다. 이 마니(摩尼)를 알아본 뒤로는 물거품 몸과 공중 꽃을 누가 다시 사랑하겠습니까. 부처의 구슬은 도리어 나의 구슬과 같고 나의 성은 곧 불성의 바다로 돌아갑니다. 구슬은 구슬이 아니고 바다는 바다가 아니며 탄탄한 마음의 그릇이 법계(法界)를 품습니다. 시끄러운 티끌이 눈앞에 가득한 것을 그대에게 맡겨도 정혜(定慧)의 둥글고 밝음이 늘 자재합니다. 공도 아니고 색도 아니며 안팎이 밝아 막힘이 없습니다. 육통(六通)과 신명의 오묘함이 끝이 없고 자리이타(自利利他)가 어찌 끝이 있겠습니까. 보면 곧 요달하여 만사가 끝나고 학문을 끊고 무위로 하루를 지냅니다. 담연하여 아직 조짐이 없는 아기와 같고 움직이고 그침이 인연을 따라 굳은 필연함이 없습니다. 망(妄)을 끊지도 않고 참을 닦지도 않으니 참과 거짓의 마음이 모두 티끌에 속합니다. 예로부터 만법이 모두 상이 없어 상 없는 가운데 법신이 있습니다. 법신이 곧 천진불(天眞佛)이니 또한 사람도 아니고 또한 물건도 아닙니다. 호연하여 천지 사이에 가득 차고 다만 희이(希夷)하고 황홀할 뿐입니다. 티끌이 물들지 않고 빛이 스스로 밝아 법 아닌 것이 마음에서 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마음이 만약 나지 않으면 법이 스스로 멸하니 곧 죄와 복이 본래 형체가 없음을 압니다. 닦을 부처가 없고 설할 법이 없으니 장부의 지혜로운 견해가 자연히 다릅니다. 말을 내면 곧 사자의 울음을 이루어 들여우(野干)가 생멸을 논하는 것과 같지 않습니다(저본의 「子」는 「干」으로 해야 합니다).
禪定指迷歌
선정지미가(禪定指迷歌).
如來禪性如水,體靜風波自止。興居湛然常清,不獨坐時方是。今人靜坐取證,不道全在見性。性與見裡若明,見向性中自定。定成慧用無窮,是名諸佛神通。幾欲究其體用,但見十方虛空。空中了無一物,亦無希夷恍惚。希恍既不可尋,尋之卻成乖失。只此乖失兩字,不可執為憑據。本心尚且虛空,豈有得失能豫。但將萬法遣除,遣令淨盡無餘。豁然圓明自現,便與諸佛無殊。色身為我桎梏,且憑和光混俗。舉動一切無心,爭甚是非榮辱。生身只是寄居,逆旅主號毗盧。毗盧不來不去,乃知生滅無餘。或問毗盧何似,只為有相不是。眼前業業塵塵,塵業非同非異。見此塵塵業業,個個釋迦迦葉。異則萬籟皆鳴,同則一風都攝。若要認得摩尼,莫道得法方知。有病用他藥療,病差藥更何施。心迷即假法照,心悟法更不要。又如昏鏡得磨,痕垢自然滅了。本為諸法皆妄,故令離盡諸相。諸相離了何如,是名至真無上。若要莊嚴佛土,平等行慈救苦。菩提本願雖深,切莫相中有取。此為福慧雙圓,當來授記居先。斷常纖塵有染,卻與諸佛無緣。翻念凡夫迷執,盡被塵愛染習。只為貪著情多,常生胎卵化溼。學道須教猛烈,無情心剛似鐵。直饒兒女妻妾,又與他人何別。常守一顆圓光,不見可欲思量。萬法一時無著,說甚地獄天堂。然後我命在我,空中無升無墮。出沒諸佛土中,不離菩提本坐。觀音三十二應,我亦當從中證。化現不可思議,盡出逍遙之性。我是無心禪客,凡事不會揀擇。昔時一個黑牛,今日渾身是白。有時自歌自笑,旁人道我神少。爭知被褐之形,內懷無價之寶。更若見我談空,恰似渾淪吞棗。此法惟佛能知,凡愚豈解相表。兼有修禪上人,只學鬥口合唇。誇我問答敏急,卻原不識主人。蓋是尋枝摘葉,不解窮究本根。得根枝葉自茂,無根枝葉難存。更逞己握靈珠,轉於人我難除。
여래의 선성(禪性)은 물과 같아 체가 고요하면 풍파가 스스로 그칩니다. 일상이 담담하여 늘 맑으니 홀로 앉아 있을 때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요즘 사람이 고요히 앉아 증득을 구하나 모두 견성(見性)에 있음을 모릅니다. 성과 견(見) 속에서 만약 밝으면 견이 성을 향해 스스로 안정됩니다. 정(定)이 이루어지면 혜(慧)의 쓰임이 끝이 없으니 이것이 비로소 여러 부처의 신통이라 이름합니다. 여러 번 그 체용을 캐묻고자 하나 다만 시방의 허공을 볼 뿐입니다. 허공 속에 요약히 한 물건도 없고 희이(希夷)·황홀도 없습니다. 희이·황홀이 이미 찾을 수 없는데 그것을 찾으면 도리어 어긋나고 잃게 됩니다. 다만 이 어긋나고 잃는다는 두 글자를 집착하여 증거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본심이 오히려 허공한데 어찌 득실이 미칠 수 있겠습니까(저본의 「豫」는 「與」에 통합니다). 다만 만법을 가져다 내쫓아 말끔히 다하여 남김이 없게 하십시오. 활연히 둥글고 밝아 스스로 나타나면 곧 여러 부처와 다름이 없습니다. 색신(色身)은 나의 족쇄이니 잠시 빛을 함께 하고 세속에 섞임을 의지합니다. 일거일동에 모두 마음이 없는데 무슨 시비와 영욕을 다투겠습니까. 난 몸은 다만 머무는 곳이요 나그네 여관의 주인을 비로(毗盧)라 칭합니다. 비로는 오지도 가지도 않아 비로소 생멸에 남음이 없음을 압니다. 혹 비로가 무엇과 같은가 물으면 다만 상이 있으면 곧 아닙니다. 눈앞에 업업(業業)하고 진진(塵塵)하나 티끌과 업은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습니다. 이 티끌과 업을 보면 낱낱이 석가·가섭입니다. 다르면 곧 만 가지 소리가 모두 울고 같으면 곧 한바탕 바람이 모두 거두어집니다. 만약 마니를 알아보고자 하면 법을 얻어 비로소 안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병이 있으면 저 약을 써서 고치고 병이 나으면 약을 다시 무엇에 쓰겠습니까. 마음이 미혹하면 곧 법을 빌려 비추고 마음이 깨치면 법이 다시 필요 없습니다. 또 어두운 거울이 문질러짐을 얻은 것과 같아 흔적과 때가 자연히 없어집니다. 본래 뭇 법이 모두 거짓이기 때문에 사람을 가르쳐 뭇 상을 다 떠나게 합니다. 뭇 상을 떠나면 또 어떠하냐, 이것이 비로소 지극히 참되고 위없음이라 이름합니다. 만약 불국토를 장엄하고자 하면 평등하게 자비를 베풀어 고통을 구하십시오. 보리의 본원이 비록 깊어도 상 속에서 취하는 것이 있음을 결코 하지 마십시오. 이것이 복과 지혜가 두루 둥글어 장래에 수기(授記)를 받아 앞에 섭니다. 끊어짐과 항상의 가는 티끌이라도 물듦이 있으면 도리어 여러 부처와 인연이 없습니다. 도리어 생각하건대 범부의 미혹한 집착은 모두 티끌의 사랑에 물들고 익숙해졌습니다. 다만 정(情)을 탐착함이 많기 때문에 늘 태생·란생·화생·습생을 낳습니다. 도를 배우려면 반드시 맹렬하게 해야 하고 무정한 마음이 굳어 쇠와 같아야 합니다. 비록 자녀와 처첩도 또한 남과 무슨 분별이 있겠습니까. 늘 한 알의 둥근 빛을 지켜 욕심 나서 헤아릴 것을 보지 않습니다. 만법이 한때에 집착함이 없으니 무슨 지옥과 천당을 말하겠습니까. 그런 뒤에 나의 명이 나에게 있어 허공 속에 오름도 없고 떨어짐도 없습니다. 여러 불국토 속에 나고 들어도 보리의 본래 자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관음의 삼십이 응신(應身)을 나도 또한 마땅히 그 가운데서 증득합니다. 변화하여 나타남이 불가사의하니 모두 소요의 성에서 나옵니다. 나는 이 무심의 선객(禪客)이니 모든 일에 가려 뽑을 줄을 모릅니다. 옛날의 한 마리 검은 소가 오늘은 온몸이 흰 것입니다. 때때로 스스로 노래하고 스스로 웃으니 곁의 사람이 나에게 정신이 모자라다 말합니다. 어찌 알겠습니까, 해진 옷을 입은 형체가 속에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배를 품고 있음을. 더욱이 만약 나의 공을 말하는 것을 보면 마치 대추를 통째로 삼키는 것과 같습니다. 이 법은 다만 부처만이 능히 알고 범부와 어리석은 이가 어찌 겉과 속을 알겠습니까. 겸하여 선을 닦는 상인(上人)들은 다만 입술을 다투고 입술을 맞춤을 배웁니다. 나에게 문답이 민첩하고 빠름을 자랑하나 도리어 원래 주인을 모릅니다. 이들은 모두 가지를 찾고 잎을 따서 다 캐묻어 근본을 알지 못합니다. 뿌리를 얻으면 가지와 잎이 스스로 무성하고 뿌리가 없으면 가지와 잎이 살기 어렵습니다. 더욱이 자기가 영주(靈珠)를 쥐고 있음을 뽐내니 돌이켜 인아(人我)가 더욱 없애기 어렵습니다.
與我靈源妙覺,遠隔千里之殊。此輩可傷可笑,空說積年學道。心高不肯問人,枉使一生虛老。乃是愚迷鈍根,邪見業重為因。若向此生不悟,後世爭免沉淪。
나의 영원묘각(靈源妙覺)과는 멀리 천 리의 차이가 있습니다. 이들이야말로 상하고 가소로워 빈말로 여러 해 도를 배웠다 합니다. 마음이 높아 남에게 묻기를 마다하니 헛되이 일생을 허무하게 늙게 합니다. 이것이 곧 어리석고 미련하며 둔한 근기요 사견(邪見)과 업이 무거운 것이 원인이 됩니다. 만약 이 생에 깨닫지 못하면 후생에 어찌 윤회에 빠짐을 면하겠습니까.
讀雪竇禪師祖英集歌
설두(雪竇) 선사의 『조영집(祖英集)』을 읽고 지은 노래.
漕溪一水分千派,照古澄今無滯礙。近來學者不窮源,妄指蹄窪為大海。雪竇老師達真趣,大震雷音椎法鼓。獅王哮吼出窟來,百獸千邪皆恐懼。或歌詩,或語句,叮嚀指引迷人路。言辭磊落意尚深,擊玉敲金響千古。爭奈迷人逐境留,卻作言相尋名數。真如寶相本無言,無下無高無有邊。非色非空非二體,十方塵剎一輪圓。正定何曾分語默,取不得兮捨不得。但於諸相不留心,即是如來真執則。為除妄想將真對,妄若不生真亦晦。能知真妄兩俱非,方得真心無礙。無礙兮能自在,一悟頓消歷劫罪。不施功力證菩提,從此永離生死海。吾師近而言語暢,留在世間為榜樣。昨宵被我喚將來,把鼻孔穿放杖上。問他第一義何如,卻道有言皆是謗。
조계(曹溪)의 한 물이 천 갈래로 나뉘어(저본의 「漕」은 「曹」로 해야 합니다) 옛것을 비추고 지금을 맑혀 막힘이 없습니다. 근래의 학자는 근원을 다 캐지 않고 망령되이 발굽 웅덩이를 가리켜 큰 바다로 삼습니다. 설두 노사는 참된 멋에 통달하여 크게 뇌음(雷音)을 울리고 법고(法鼓)를 울립니다. 사자왕이 으르렁거려 굴에서 나오면 백 짐승과 천 가지 사(邪)가 모두 두려워합니다. 혹은 노래와 시를 짓고 혹은 어구를 지어 자상히 미혹한 이의 길을 가리켜 인도합니다. 말이 떨어지고 뜻이 오히려 깊어 옥을 치고 쇠를 울려 천고에 울려 퍼집니다. 어쩔 수 없이 미혹한 이가 경계를 좇아 머물러 도리어 말의 모양을 만들어 이름과 수를 찾아갑니다. 진여(眞如)의 보배 모양은 본래 말이 없고 아래도 없고 위도 없고 가장자리도 없습니다. 색도 아니고 공도 아니고 두 체도 아니어서 시방의 티끌 세계가 한 바퀴 둥근 것입니다. 바른 삼매(正定)가 어찌 말함과 침묵을 나눈 적이 있습니까, 취할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습니다. 다만 뭇 상에서 마음을 두지 않으면 곧 이것이 여래의 참된 법칙입니다(저본의 「執則」은 아마 「法則」로 해야 합니다). 망상을 없애고자 참을 가져다 상대로 삼는데 망이 만약 나지 않으면 참도 또한 어두워집니다. 능히 참과 거짓이 두 가지가 모두 아님을 알아야 비로소 참된 마음의 장애 없음을 얻습니다. 장애가 없음이여 능히 자재하여 한번 깨달으면 겁을 지낸 죄를 단박에 없앱니다. 공력을 베풀지 않고 보리를 증득하여 이로부터 영원히 생사의 바다를 떠납니다. 우리 스승이 근래 말씀이 시원스러워 세상에 남겨 모범을 삼습니다. 어제 밤 나에게 불려 와서 콧구멍을 꿰어 지팡이 위에 놓았습니다. 그에게 제일의 뜻이 어떠한가 물으니 도리어 말하기를 말이 있으면 모두 이것이 비방이라 합니다.
戒定慧解
계·정·혜 해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