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bo

공자가어 권 이(孔子家語 卷二)

三国魏 · 王肃辑 · 제2권 / 11

致思第八

치사(致思) 제팔(第八)

孔子北遊於農山,子路子貢顏淵侍側.孔子四望,喟然而嘆曰:“於斯致思,無所不至矣.言思無所不至二三子各言爾志,吾將擇焉.子路進曰:“由願得白羽若月,赤羽若日,鐘鼓之音,上震於天,旍旗繽紛,下蟠於地,蟠委由當一隊而敵之,必也攘地千里,攘卻搴旗執聝,搴取也取敵之旍旗職截耳也以效獲也唯由能之,使二子者從我焉.”夫子曰:“勇哉.”子貢復進曰:“賜願使齊楚合戰於漭瀁之野,漭瀁廣大之類兩壘相望,塵埃相接,挺刃交兵,賜著縞衣白冠,兵凶事故白冠服也陳說其間,推論利害,釋國之患,唯賜能之,使夫二子者從我焉.”夫子曰:“辯哉.”顏回退而不對.孔子曰:“回來,汝奚獨無願乎?”顏回對曰:“文武之事,則二子者,既言之矣,回何雲焉.”孔子曰:“雖然,各言爾志也,小子言之.”對曰:“回聞燻蕕不同器而藏,薰香蕕臭堯桀不共國而治,以其類異也,回願得明王聖主輔相之,敷其五教,敷布也五教父義母慈兄友弟恭子孝也導之以禮樂,使民城郭不修,溝池不越,言無踰越溝池鑄劍戟以為農器,放牛馬於原藪,廣平曰原澤無水曰藪也室家無離曠之思,千歲無戰鬥之患,則由無所施其勇,而賜無所用其辯矣.”夫子凜然曰:“美哉!德也.”子路抗手而對曰:“夫子何選焉?”孔子曰:“不傷財,不害民,不繁詞,則顏氏之子有矣.”

공자가 북쪽으로 농산(農山)에 유람할 때 자로·자공·안연이 곁에서 모시고 있었다. 공자가 사면을 바라보며 탄식하여 말하였다. 「여기에서 깊이 생각하면 생각이 미치지 않는 것이 없다.【생각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는 말】 너희는 각자 그 뜻을 말해 보아라. 내가 골라 주겠다.」자로가 앞으로 나아가 말하였다. 「유가 바라건대 흰 깃털은 달과 같고 붉은 깃털은 해와 같으며 종고(鐘鼓)의 소리는 위로 하늘을 진동하고 정기(旌旗)는 빈분(繽紛)하여 아래로 땅에 서리게 하고【반(蟠)은 구불구불함】 유가 홀로 한 부대를 맡아 적과 대적하여 반드시 천 리의 땅을 넓히고 적의 깃발을 뽑고 적의 귀를 베어 공을 보고하겠습니다【건(搴)은 취함이고 귀를 베는 것은 옛날 공을 기록한 것】. 오직 유만이 능히 하니 다른 두 분으로 하여금 나를 따르게 하겠습니다.」부자가 말하였다. 「용감하구나.」자공이 또 앞으로 나아가 말하였다. 「사가 바라건대 제나라와 초나라로 하여금 망망한 들판에서 서로 싸우게 하고【망양(漭瀁)은 넓고 큰 모습】 두 보루가 서로 바라보고 티끌이 서로 이어지며 칼날을 들고 병기를 맞대게 하겠습니다. 사는 흰 옷과 흰 관을 쓰고【병은 흉한 일이므로 흰 관과 흰 옷을 씀】 그 가운데에서 진설하여 이해(利害)를 추론하여 국가의 환난을 풀겠습니다. 오직 사만이 능히 하니 다른 두 분으로 하여금 나를 따르게 하겠습니다.」부자가 말하였다. 「말 잘하구나.」안회가 뒤로 물러나 대답하지 않으니 공자가 말하였다. 「회야 이리 오너라. 너는 어찌 홀로 바람이 없느냐.」안회가 대답하였다. 「문무(文武)의 일은 두 분이 이미 말씀하셨으니 회가 또 무엇을 말하겠습니까.」공자가 말하였다. 「그렇다 하더라도 각자 그 뜻을 말하여 보아라. 소자야 말하여 보아라.」안회가 대답하였다. 「회가 듣기에 향초와 냄새나는 풀은 같은 그릇에 담기지 않고【훈(薰)은 향이고 유(蕕)은 냄새남】 요(堯)와 걸(桀)은 같은 나라에서 다스리지 않으니 부류가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회가 바라건대 명왕 성주를 얻어 그를 보좌하여 오교(五敎)를 베풀고【부(敷)는 베풂이다. 오교는 아버지의 의와 어머니의 자와 형의 우와 아우의 공과 자식의 효이다】 예악으로써 이끌어 백성으로 하여금 성곽을 쌓을 필요가 없고 구지(溝池)를 넘을 필요가 없게 하고【사람이 구지를 넘는 일이 없다는 말】 검극(劍戟)을 녹여 농기구로 만들고 소와 말을 들판과 물가에 놓아【넓고 평탄한 것을 원(原)이라 하고 물 없는 못을 수(藪)라 한다】 집안에 흩어지고 끊어진 그리움이 없게 하고 천 년에 싸움의 화가 없게 하겠습니다. 그러면 유는 용기를 펼 곳이 없고 사도 말을 펼 곳이 없을 것입니다.」부자가 숙연하여 말하였다. 「아름답구나. 이것이 덕이다.」자로가 손을 들어 물었다. 「부자는 어느 것을 고르시겠습니까.」공자가 말하였다. 「재물을 상하게 하지 않고 백성을 해치지 않으며 말을 번잡하게 하지 않으니 안씨의 아들이 이를 갖추었다.」

魯有儉嗇者,瓦鬲煮食,瓦釜食之,自謂其美,盛之土型之器,瓦甂以進孔子.孔子受之,歡然而悅,如受大牢之饋.牛羊豕饋饋也子路曰:“瓦甂,陋器也,煮食,薄膳也,夫子何喜之如此乎?”子曰:“夫好諫者思其君,食美者念其親.吾非以饌具之為厚,以其食厚而我思焉.”孔子之楚,而有漁者,而獻魚焉,孔子不受.漁者曰:“天暑市遠,無所鬻也,思慮棄之糞壤,不如獻之君子,故敢以進焉.”於是夫子再拜受之,使弟子掃地將以享祭.門人曰:“彼將棄之,而夫子以祭之,何也?”孔子曰:“吾聞諸惜其腐●,而欲以務施者,仁人之偶也,惡有受仁人之饋,而無祭者乎?”

노나라에 인색한 사람이 있었다. 질그릇 솥으로 밥을 짓고 질그릇 솥에 담아 먹으니 스스로 맛있다고 여겨 흙으로 빚은 질그릇 대야에 담아 공자에게 바쳤다. 공자가 받아들이니 기뻐하기를 태뢰(太牢)의 음식을 받는 것과 같았다【소·양·돼지의 궤(饋)이다】. 자로가 말하였다. 「질그릇 대야는 누추한 그릇이고 끓인 음식은 박한 음식인데 부자는 어찌하여 이처럼 기뻐하십니까.」공자가 말하였다. 「간함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 임금을 생각하고 맛있는 것을 먹는 사람은 그 어버이를 생각한다. 나는 음식 그릇이 후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푸짐히 먹으면서 나에게 미쳤기 때문이다.」공자가 초나라에 이르니 어부가 고기를 바치는데 공자가 받지 않았다. 어부가 말하였다. 「날씨가 덥고 저자가 또 멀어 팔 곳이 없어 이를 분토(糞土)에 버리느니 군자에게 바치는 것만 같지 못하다고 생각하여 감히 바칩니다.」이에 부자가 재배하고 받아 제자들에게 땅을 쓸어 제향(祭享)을 준비하게 하였다. 문인이 말하였다. 「그는 본래 버리려던 것인데 부자는 이를 제사에 쓰시니 어찌 된 까닭입니까.」공자가 말하였다. 「내가 듣기에 썩으려 하는 물건을 아끼어 이로써 베풀고자 하는 사람은 인인의 부류라 하였으니 어찌 인인의 궤를 받고 제사하지 않는 자가 있겠는가.」

季羔為衛之士師,獄官刖人之足,俄而衛有蒯聵之亂,初衛靈公太子蒯聵得罪出奔晉靈公卒立其子輒蒯聵自晉襲衛時子羔子路並位於衛也季羔逃之,走郭門,刖者守門焉.謂季羔曰:“彼有●.”季羔曰:“君子不踰.”又曰:“彼有竇.”季羔曰:“君子不隧.”隧從竇出又曰:“於此有室.”季羔乃入焉.既而追者罷,季羔將去,謂刖者:“吾不能虧主之法而親刖子之足矣,今吾在難,此正子之報怨之時,而逃我者三,何故哉?”刖者曰:“斷足固我之罪,無可奈何,曩者君治臣以法令,先人後臣,欲臣之免也,臣知獄決罪定,臨當論刑,君愀然不樂,見君顏色,臣又知之,君豈私臣哉?天生君子,其道固然,此臣之所以悅君也.”孔子聞之曰:“善哉為吏,其用法一也.思仁恕則樹德,加嚴暴則樹怨,公以行之,其子羔乎.”

계고(季羔)가 위나라의 사사(士師)가 되어【옥을 다스리는 관리】 사람의 발을 베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위나라에 괴궤(蒯聵)의 난이 있었다【처음에 위영공의 태자 괴궤가 죄를 얻어 진나라로 도망하였고 영공이 죽자 그의 아들 첩(輒)을 세웠는데 괴궤가 진나라에서 와서 위나라를 습격하였다. 그때 자고와 자로가 모두 위나라에서 벼슬하고 있었다】. 계고가 달아나 바깥 성문에 이르니 발이 베인 사람이 문을 지키고 있었다. 계고에게 말하였다. 「저쪽에서 담을 넘을 수 있습니다.」계고가 말하였다. 「군자는 담을 넘지 않는다.」또 말하였다. 「저쪽에 굴이 있습니다.」계고가 말하였다. 「군자는 굴을 파지 않는다.」【수(隧)는 굴로 나감이다】또 말하였다. 「여기에 집이 있습니다.」계고가 이에 들어갔다. 얼마 지나 쫓는 이가 그치니 계고가 떠나려 하며 발이 베인 사람에게 말하였다. 「나는 주상의 법을 덜어낼 수 없어 스스로 네 발을 베었다. 지금 내가 곤경에 처하니 마땅히 네가 원수를 갚을 때인데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달아나게 하니 무슨 까닭인가.」발이 베인 사람이 말하였다. 「발이 끊어진 것은 본래 제 죄이니 어찌할 수 없습니다. 옛적에 그대가 법령에 따라 저를 다스리실 때 남을 먼저 하고 저를 뒤에 하시어 저로 하여금 죄를 면하게 하고자 하셨습니다. 제가 옥이 이미 판결되고 죄가 이미 정해짐을 알고 형을 논할 때에 임하여 그대의 낯빛이 추연히 즐기지 않음을 알고 그대의 신색(神色)을 보고 제가 또 알았습니다. 그대가 어찌 사사로이 저를 편애하시겠습니까. 하늘이 군자를 낳으심에 그 도가 본래 그러한 것이니 이것이 제가 그대를 기뻐하는 까닭입니다.」공자가 이를 듣고 말하였다. 「관리가 됨이 잘하였도다. 법을 씀이는 한결같으니 인서(仁恕)를 생각하면 곧 덕을 세우고 엄폭(嚴暴)을 더하면 곧 원한을 세운다. 공정하게 행한 것은 자고이겠구나.」

孔子曰:“季孫之賜我粟千鍾也,而交益親,得季孫千鍾之粟以施與眾而交益親自南宮敬叔之乘我車也,而道加行.孔子欲見老聃而西觀周敬叔言於魯君給孔子車馬問禮於老子孔子歷觀郊廟自周而還弟子四方來習也故道雖貴,必有時而後重,有勢而後行,微夫二子之貺財,則丘之道,殆將廢矣.”

공자가 말하였다. 「계손이 나에게 조 천 종(鍾)을 주니 교유가 이로써 더욱 친해졌고【계손의 조 천 종을 얻어 뭇 사람에게 베풀었으므로 교유가 더욱 친해짐】 남궁경숙(南宮敬叔)이 나로 하여금 그 수레를 타게 하니 도가 이로써 더욱 행할 수 있었다【공자가 노담(老聃)을 뵙고 서쪽으로 주나라를 보고자 하니 경숙이 노나라 임금에게 고하여 공자에게 수레와 말을 공급하고 노자에게 예를 묻게 하였다. 공자가 두루 교묘(郊廟)를 보고 주나라에서 돌아오니 제자가 사방에서 와서 배웠다】. 그러므로 도가 비록 귀하여도 반드시 시기가 있은 뒤에야 중히 여겨지고 세력과 지위가 있은 뒤에야 행할 수 있다. 두 분의 재물의 도움이 없었다면 구의 도는 아마 폐했을 것이다.」

孔子曰:“王者有似乎春秋,正其本而萬物皆正文王以王季為父,以太任為母,以太姒為妃,以武王周公為子,以太顛閎天為臣,其本美矣.武王正其身以正其國,正其國以正天下,伐無道,刑有罪,一動而天下正,其事成矣.春秋致其時而萬物皆及,王者致其道而萬民皆治,周公載己行化,載亦行矣言行已以行化其身正不令而行也而天下順之,其誠至矣.”

공자가 말하였다. 「왕(王)은 춘추의 계절과 같아 근본을 바로 하면 만물이 모두 따라 바르다. 주 문왕은 왕계(王季)를 아버지로 삼고 태임(太任)을 어머니로 삼으며 태사(太姒)를 아내로 삼고 무왕과 주공을 아들로 삼으며 태전(太顛)과 굉요(閎夭)를 신하로 삼았으니 그 근본이 아름다웠다. 무왕은 자기 몸을 바로 하여 그 나라를 바로 하고 그 나라를 바로 하여 천하를 바로 하였으며 무도한 자를 토벌하고 죄 있는 자를 벌하여 한 번 움직여 천하가 바르니 그 일이 이루어졌다. 춘추의 계절이 때에 이르면 만물이 모두 따라 이르고 왕이 그 도를 행하면 만민이 모두 따라 다스려진다. 주공은 자기 몸으로써 교화를 미루어 행하고【재(載)도 곧 행(行)이다. 자기의 행실로써 교화를 미루어 행하여 몸이 바르면 명하지 않아도 행해진다는 말】 천하가 곧 순응하니 그 성실함이 지극하였다.」

曾子曰:“入是國也,言信於群臣,而留可也;見忠於卿大夫,則仕可也;澤施於百姓,則富可也.”孔子曰:“參之言此可謂善安身矣.”子路為蒲宰,為水備,與其民修溝瀆,以民之勞煩苦也,人與之一簞食簞笥一壺漿.孔子聞之,使子貢止之.子路忿不悅,?見孔子,曰:“由也以暴雨將至,恐有水災,故與民修溝洫以備之,而民多匱餓者,是以簞食壺漿而與之.夫子使賜止之,是夫子止由之行仁也.夫子以仁教而禁其行,由不受也.”孔子曰:“汝以民為餓也,何不白於君,發倉廩以賑之,而私以爾食饋之,是汝明君之無惠,而見己之德美矣.汝速已則可,不則汝之見罪必矣.”

증삼이 말하였다. 「이 나라에 들어가 말이 신하들에게 믿음을 얻을 수 있으면 곧 머물러도 되고 경대부에게 충성을 보일 수 있으면 곧 벼슬해도 되며 은택이 백성에게 미치면 곧 부유를 구해도 됩니다.」공자가 말하였다. 「삼의 이 말은 잘 몸을 편안히 한다고 칭할 만하다.」자로가 포읍(蒲邑)의 재상이 되어 물을 대비하기 위해 그 백성과 함께 구독(溝瀆)을 수리하였다. 백성이 수고롭고 번잡하고 어려운 까닭에 사람마다 한 소쿠리의 밥과【단(簞)은 죽사(竹笥)이다】 한 동이의 장을 주었다. 공자가 이를 듣고 자공을 보내 그치게 하였다. 자로가 분연히 기뻐하지 않고 공자를 찾아가 말하였다. 「유가 폭우가 곧 올까 하여 수재(水災)를 두려워하여 백성과 함께 구휼(溝洫)을 수리하여 대비하였습니다. 백성 가운데 궁핍하고 굶주린 자가 많아 이에 소쿠리 밥과 동이 장으로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부자가 사를 보내 그치게 하신 것은 부자가 유의 인을 행함을 그치게 하신 것입니다. 부자가 인으로 가르치시고는 행함을 금하시니 유는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공자가 말하였다. 「네가 백성이 굶주렸다고 생각하였다면 어찌하여 임금에게 고하여 창고를 열어 이로써 구제하지 않고 사사로이 네 음식으로 그들에게 주었느냐. 이는 네가 임금에게 은혜가 없음을 드러내고 자기의 덕의 아름다움을 드러낸 것이다. 네가 빨리 그치면 오히려 괜찮지만 그렇지 않으면 네가 꾸짖음을 받을 것이 틀림없다.」

子路問於孔子曰:“管仲之為人何如?”子曰:“仁也.”得仁道也子路曰:“昔管仲說襄公,公不受,是不辯也;欲立公子糾而不能,是不智也;齊襄立無常鮑叔牙曰君使民慢亂將作矣奉公子小白出奔莒公孫無知殺襄公管夷吾召忽奉公子糾奔魯齊人殺無知魯伐齊納子糾小白自莒先入是為桓公公乃殺子糾召忽死之也家殘於齊,而無憂色,是不慈也;桎梏而居檻車,無慚心,是無醜也;言無恥惡之心事所射之君,是不貞也;召忽死之,管仲不死,是不忠也.仁人之道,固若是乎?”孔子曰:“管仲說襄公,襄公不受,公之闇也;欲立子糾而不能,不遇時也;家殘於齊而無憂色,是知權命也;桎梏而無慚心,自裁審也;事所射之君,通於變也;不死子糾,量輕重也.夫子糾未成君,管仲未成臣,管仲才度義,管仲不死束縛,而立功名,未可非也.召忽雖死,過與取仁,未足多也.”

자로가 공자에게 물었다. 「관중의 사람됨이 어떠합니까.」공자가 말하였다. 「어질다.」【인도를 얻었다는 말】자로가 말하였다. 「옛적에 관중이 제양공(齊襄公)을 설득하였으나 공이 받아들이지 않았으니 이는 말을 잘하지 못한 것이고 공자규(公子糾)를 세우고자 하였으나 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지혜롭지 못한 것이며【제양공이 정치를 베풀되 일정하지 않으니 포숙아가 임금이 백성을 태만하게 하여 어지러움이 곧 생기리라 하고 공자소백(公子小白)을 모시고 거(莒)로 도망하였다. 공손무지가 양공을 죽이니 관이오(管夷吾)와 초홀(召忽)이 공자규를 모시고 노나라로 갔다. 제 사람이 무지를 죽이고 노나라가 제나라를 쳐서 자규를 보내 나라에 들이고자 하였으나 소백이 거에서 먼저 들어오니 곧 환공이다. 공이 곧 자규를 죽이고 초홀도 죽었다】 집이 제나라에서 깨지고 망하였는데도 근심하는 빛이 없었으니 이는 자애롭지 못한 것이고 형구를 차고 죄수 수레를 타고도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었으니 이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이며【부끄럽고 미워하는 마음이 없다는 말】 자기가 한때 쏘았던 임금을 섬겼으니 이는 정절이 아닌 것이며 초홀은 자규를 위하여 죽었는데 관중은 죽지 않았으니 이는 충성이 아닌 것입니다. 어진 사람의 도가 본래 이와 같습니까.」공자가 말하였다. 「관중이 양공을 설득한 것을 양공이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공이 어두웠기 때문이고 자규를 세우고자 하였으나 하지 못한 것은 때를 만나지 못한 것이며 집이 제나라에서 깨지고 망하였는데도 근심하는 빛이 없던 것은 운명을 저울질할 줄 알았기 때문이고 형구를 차고도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던 것은 스스로 재단하고 살핀 것이며 한때 쏘았던 임금을 섬긴 것은 권변에 통달한 것이고 자규를 위하여 죽지 않은 것은 경중을 헤아린 것이다. 자규는 아직 임금이 되지 못하였고 관중은 아직 신하가 되지 못하였다. 관중이 재주에 따라 의를 헤아려 속박되어 죽지 않고 능히 공명(功名)을 세웠으니 논할 수 없다. 초홀이 비록 죽었어도 인을 구함이 다소 지나쳐 특별히 칭송할 만하지 못하다.」

孔子適齊,中路聞哭者之聲,其音甚哀.孔子謂其僕曰:“此哭哀則哀矣,然非喪者之哀矣.”驅而前,少進,見有異人焉,擁鐮帶素,哭者不哀.孔子下車,追而問曰:“子何人也?”對曰:“吾丘吾子也.”曰:“子今非喪之所,奚哭之悲也?”丘吾子曰:“吾有三失,晚而自覺,悔之何及.”曰:“三失可得聞乎?願子告吾,無隱也.”丘吾子曰:“吾少時好學,周遍天下,後還喪吾親,是一失也;長事齊君,君驕奢失士,臣節不遂,是二失也;吾平生厚交,而今皆離絕,是三失也.夫樹欲靜而風不停,子欲養而親不待,?而不來者年也,不可再見者親也,請從此辭,遂投水而死.”孔子曰:“小子識之,斯足為戒矣.自是弟子辭歸養親者十有三.”

공자가 제나라로 가는데 길 중간에서 우는 소리를 들으니 소리가 매우 슬펐다. 공자가 수레 모는 이에게 말하였다. 「이 울음은 슬프나 상사(喪事)의 슬픔은 아니다.」수레를 몰아 앞으로 가 조금 가까이 이르니 남다른 모습의 사람이 보이는데 낫을 안고 흰 띠를 매고 우는데 슬프지 않았다. 공자가 수레에서 내려 따라잡아 물었다. 「그대는 누구입니까.」대답하였다. 「저는 구오자(丘吾子)입니다.」공자가 말하였다. 「그대는 지금 상을 치르는 곳이 아닌데 어찌하여 우는 것이 이처럼 슬픕니까.」구오자가 말하였다. 「저에게 세 가지 잘못이 있는데 늦어서야 스스로 깨달았으니 후회한들 어찌 미치겠습니까.」공자가 말하였다. 「세 가지 잘못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바라건대 나에게 말하고 숨기지 마십시오.」구오자가 말하였다. 「저는 어려서 배움을 좋아하여 천하를 두루 돌아다녔는데 뒤에 돌아오니 부모가 이미 돌아가셨으니 이것이 첫째 잘못입니다. 자라서 제나라 임금을 섬겼는데 임금이 교만하고 사치하여 선비를 잃었으니 신하의 절개를 이루지 못하였으니 이것이 둘째 잘못입니다. 저는 평생에 사귐을 후하게 하였으나 지금 모두 흩어지고 끊어졌으니 이것이 셋째 잘못입니다. 나무는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은 봉양하고자 하나 부모가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가면 다시 오지 않는 것은 세월이고 다시 볼 수 없는 것은 부모입니다. 청하건대 이로부터 이별하겠습니다.」이에 물에 몸을 던져 죽었다. 공자가 말하였다. 「소자들은 이를 기억하라. 이것으로 경계로 삼기에 족하다.」이로부터 제자가 작별하고 집에 돌아가 부모를 봉양한 자가 십삼 명이었다.

孔子謂伯魚曰:“鯉乎,吾聞可以與人終日不倦者,其唯學焉.其容體不足觀也,其勇力不足憚也,其先祖不足稱也,其族姓不足道也.終而有大名,以顯聞四方,流聲後裔者,豈非學之效也.故君子不可以不學.其容不可以不飭,不飭無類,無類失親,類宜為貌不在飭故無貌不得言不飭無類也禮貌矜莊然後親愛可久故曰無類失親也失親不忠,情不相親則無忠誠不忠失禮,禮以忠信為本失禮不立.非禮則無以立夫遠而有光者,飭也;近而愈明者,學也.譬之汙池,水潦注焉,雚葦生焉,雖或以觀之,孰知其源乎.”源泉源也水潦注於池而生雚葦觀者誰知其非源泉乎以言學者雖從外入及其用之人誰知其非從此出也者乎

공자가 백어(伯魚)에게 말하였다. 「리야, 내가 듣기에 사람과 함께 종일 해도 싫지 않은 것은 오직 배움뿐이라 하였다. 용모와 형체는 볼 만하지 못하고 용기와 힘은 사람을 두렵게 하기에 족하지 못하며 선조는 칭할 만하지 못하고 족성(族姓)은 들어 올릴 만하지 못하나 마침내 큰 명성이 있어 사방에 드러나 알려지고 명성이 후예에게 흘러가니 어찌 배움의 공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군자는 배우지 않을 수 없다. 용모는 단정히 하지 않을 수 없으니 단정히 하지 않으면 곧 류(類)가 없고【류는 마땅히 모(貌)이다. 단정히 하지 않으면 모가 없으므로 정하지 않으면 류가 없다 한 것이다. 예를 공경하고 장중하게 한 뒤에야 친애가 오래갈 수 있으므로 류가 없으면 친을 잃는다 함】 류가 없으면 곧 친함을 잃고【정이 서로 친하지 않으면 곧 충성이 없음】 친함을 잃으면 곧 불충하고 불충하면 곧 예를 잃으며【예는 충신을 근본으로 삼음】 예를 잃으면 곧 몸을 세우지 못한다【예가 없으면 몸을 세울 수 없음】. 먼 곳에 있으면서 빛이 있는 것은 단정함이고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 갈수록 밝은 것은 배움이다. 더러운 못과 같아 빗물이 쏟아지면 갈대가 나서 사람이 와서 볼지라도 누가 그 근원을 알겠는가.」【원천은 근원이다. 빗물이 못에 쏟아져 갈대가 나는데 보는 사람이 누가 그것이 원천이 아닌 줄을 알겠는가. 배우는 사람이 비록 밖에서 배워 들어와도 써서 내기에 이르면 누가 여기에서 나온 것이 아닌 줄을 알겠는가 하는 말이다】

子路見於孔子曰:“負重涉遠,不擇地而休,家貧親老,不擇祿而仕.昔者由也,事二親之時,常食藜藿之實,為親負米百里之外.親歿之後,南遊於楚,從車百乘,積粟萬鍾,累茵而坐,列鼎而食,願欲食藜藿,為親負米,不可復得也.枯魚銜索,幾何不蠹,二親之壽,忽若過隙.”孔子曰:“由也事親,可謂生事盡力,死事盡思者也.”

자로가 공자를 찾아뵙고 말하였다. 「무거운 것을 지고 먼 길을 가는 자는 곳을 가리지 않고 쉬고 집이 가난하고 부모가 늙으면 녹봉을 가리지 않고 벼슬합니다. 옛적 유가 부모를 섬길 때 늘 여기(藜藿)를 먹고 부모를 위해 백 리 밖에서 쌀을 졌습니다. 부모가 돌아가신 뒤에 남쪽으로 초나라에 유람하니 따르는 수레가 백 승이고 쌓은 조가 만 종이며 겹친 자리를 깔고 앉고 솥을 늘어놓고 먹었습니다. 다시 여기를 먹고 부모를 위해 쌀을 지고자 하여도 다시 얻을 수 없습니다. 마른 생선이 줄에 꿰여 있으면 얼마나 더 가야 벌레 먹지 않겠습니까. 부모의 수명은 틈을 스치듯 빠릅니다.」공자가 말하였다. 「유의 부모 섬김은 살아 있을 때 힘을 다하고 죽은 뒤에 생각을 다했다고 칭할 만하다.」

孔子之郯,郯國名也少昊之後吾之本縣也郯子達禮孔子故?諮問焉遭程子於塗,傾蓋而語,傾蓋駐車終日,甚相親.顧謂子路曰:“取束帛以贈先生.”贈送子路屑然對曰:“由聞之士不中間見,女嫁無媒,君子不以交禮也.”中間謂始介也有間,又顧謂子路.子路又對如初.孔子曰:“由,詩不云乎:‘有美一人,清揚宛兮,邂逅相遇,適我願兮.’清揚眉目之間也宛然美也幽期而會令願也今程子,天下賢士也,於斯不贈,則終身弗能見也,小子行之.”

공자가 담(郯)나라에 갔는데【담은 나라 이름으로 소호(少昊)의 후예이다】 길에서 정자(程子)를 만나 수레를 세우고 수레 덮개를 기울여 이야기하니 종일토록 매우 친하였다. 자로를 돌아보며 말하였다. 「한 다발의 비단을 가져와 선생에게 주어라.」【증(贈)은 줌이다】자로가 가볍게 대답하였다. 「유가 듣기에 선비는 소개를 거치지 않고 서로 만나지 않고 여자는 시집갈 때 중매인이 없으면 군자가 사귀는 예를 쓰지 않는다 하였습니다.」【중간은 소개를 거친다는 말】얼마 지나 공자가 또 자로를 돌아보며 말하였다. 자로가 또 처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공자가 말하였다. 「유야, 《시경》에 이르지 않았느냐. 『아름다운 사람이 있어 미완연하여 맑으니 기약 없이 만나 마땅히 내 소원에 맞네』【청양(淸揚)은 미목(眉目) 사이이고 완연(宛然)은 아름다움이다. 기약 없이 만남이 곧 소원에 맞음】 지금 정자는 천하의 어진 선비이니 여기에서 주지 않으면 종신토록 다시 만나지 못한다. 소자는 가서 하여라.」

孔子自衛反魯,息駕於河梁而觀焉.河水無梁莊周書說孔子於閭梁言事者通渭水為河也有懸水三十仞,八尺曰仞懸二十四丈者也圜流九十里,圜流回流也水深急則然魚鱉不能導,黿鼉不能居.道行有一丈夫方將厲之,厲渡孔子使人並涯止之曰:“此懸水三十仞,圜流九十里,魚鱉黿鼉不能居也,意者難可濟也.”丈夫不以措意,遂渡而出.孔子問之,曰:“子乎有道術乎,所以能入而出者,何也?”丈夫對曰:“始吾之入也,先以忠信,及吾之出也,又從以忠信,忠信措吾軀于波流,而吾不敢以用私,所以能入而復出也.”孔子謂弟子曰:“二三子識之,水且猶可以忠信成身親之,而況於人乎!”

공자가 위나라에서 노나라로 돌아오는데 강 위의 다리에서 수레를 멈추고 보았다【강물에는 본래 다리가 없다. 장주의 책에 공자가 여량(閭梁)에서 일을 논하였다 하는데 여기서는 물을 통칭하여 강이라 한다】. 드리운 물이 삼십 인이고【여덟 자를 인(仞)이라 하니 드리운 물이 이십사 장】 도는 물살이 구십 리로【환류(圜流)는 돌아가는 물이다. 물이 깊고 흐름이 빨라야 이와 같다】 고기와 자라도 거슬러 올라가지 못하고 원타(黿鼉)도 머물지 못하였다. 길에 한 대부가 있어 강을 건너려 하였다【려(厲)는 건넘이다】. 공자가 사람을 보내 언덕을 따라 그를 말리며 말하였다. 「이 드리운 물이 삼십 인이고 돌아가는 흐름이 구십 리니 고기와 자라와 원타도 머물지 못하니 건너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대부가 마음에 두지 않고 마침내 건너 나왔다. 공자가 그에게 물었다. 「그대는 혹시 도술이 있습니까. 능히 들어갔다 나오는 것은 어찌 된 까닭입니까.」대부가 대답하였다. 「처음 제가 들어갈 때 충신(忠信)을 먼저 삼았고 제가 나올 때에 이르러서는 또 충신을 따랐습니다. 충신이 저의 몸을 물결 속에 두었고 저는 감히 사사로움을 섞지 않았으므로 능히 들어갔다 다시 나온 것입니다.」공자가 제자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이를 기억하라. 물도 오히려 충신으로써 몸을 친하게 할 수 있거든 하물며 사람에게 있어서이랴.」

孔子將行,雨而無蓋.門人曰:“商也有之.”子夏名也孔子曰:“商之為人也,甚?於財,?嗇甚也吾聞與人交,推其長者,違其短者故能久也.”楚王渡江,江中有物大如鬥,圓而赤,直觸王舟,舟人取之,王大怪之,遍問群臣,莫之能識.王使使聘於魯,問於孔子.子曰:“此所謂萍實者也,萍水草也可剖而食也,吉祥也,唯霸者為能獲焉.”使者反,王遂食之,大美.久之使來以告魯大夫,大夫因子游問曰:“夫子何以知其然乎?”曰:“吾昔之鄭,過乎陳之野,聞童謠曰:‘楚王渡江得萍實,大如鬥,赤如日,剖而食之甜如蜜.’此是楚王之應也.吾是以知之.”

공자가 나가려 할 때 비가 오는데 수레 덮개가 없었다. 문인이 말하였다. 「상(商)에게 있습니다.」【자하의 이름이 상이다】공자가 말하였다. 「상의 사람됨은 재물에 매우 인색하다.【매우 인색하다는 말】 내가 듣기에 사람과 사귈 때 그 장점을 추중하고 그 단점을 피하므로 능히 오래간다 하였다.」초나라 왕이 강을 건너는데 강 가운데 물건이 있어 크기가 말(斗)과 같고 둥글고 붉으며 곧장 왕의 배를 향해 왔다. 뱃사람이 건져 올리니 왕이 매우 이상히 여겨 널리 신하들에게 물었으나 아는 자가 없었다. 왕이 사신을 보내 노나라에 빙(聘)하고 공자에게 물었다. 공자가 말하였다. 「이것은 이른바 평실(萍實)입니다.【부평은 물풀이다】 쪼개어 먹을 수 있으니 길상이며 패자(霸者)만이 능히 얻습니다.」사신이 돌아가니 왕이 곧 그것을 먹으니 매우 달고 맛있었다. 오랜 뒤에 사신이 와서 이 일을 노나라 대부에게 알리니 대부가 자유(子游)를 통하여 물었다. 「부자는 무엇으로 이것을 아셨습니까.」공자가 말하였다. 「내가 옛적에 정나라에 가서 진나라 교외를 지날 때 동요(童謠)가 이르기를 『초왕이 강을 건너 평실을 얻었네 크기는 말과 같고 붉기는 해와 같네 쪼개어 먹으면 달기가 꿀과 같네』 하는 것을 들었으니 이것이 초왕에게 응한 것이다. 내가 이로써 알았다.」

子貢問於孔子曰:“死者有知乎?將無知乎?”子曰:“吾欲言死之有知,將恐孝子順孫妨生以送死;吾欲言死之無知,將恐不孝之子棄其親而不葬.賜不欲知死者有知與無知,非今之急,後自知之.”

자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죽은 사람은 지각이 있습니까, 아니면 지각이 없습니까.」공자가 말하였다. 「내가 죽은 사람에게 지각이 있다고 말하고자 하면 효자와 순손이 산 사람을 해쳐 죽은 사람을 보낼까 두렵고 죽은 사람에게 지각이 없다고 말하고자 하면 불효한 아들이 부모를 버리고 장사하지 않을까 두렵다. 사는 죽은 사람이 앎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고자 할 필요가 없다. 이것은 눈앞의 급한 일이 아니니 뒤에 스스로 알게 되리라.」

子貢問治民於孔子.子曰:“懍懍焉若持腐索之扞馬.”懍懍戒懼之貌扞馬突馬子貢曰:“何其畏也?”孔子曰:“夫通達御皆人也,以道導之,則吾畜也;不以道導之,則吾讎也.如之何其無畏也.”

자공이 공자에게 백성을 다스리는 것을 물었다. 공자가 말하였다. 「삼가고 두려워하기를 썩은 고삐로 달리는 말을 몸과 같이 하라.」【름름(懔懔)은 삼가고 두려워하는 모습이고 한마(捍馬)는 날뛰는 말이다】자공이 말하였다. 「어찌하여 이처럼 두려워합니까.」공자가 말하였다. 「통달하는 길에 수레를 모는 자는 모두 사람이다. 도로써 이끌면 곧 내가 기르는 사람이 되고 도로써 이끌지 않으면 곧 나의 원수가 된다. 어찌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魯國之法,贖人臣妾於諸侯者,皆取金於府,子貢贖之,辭而不取金.孔子聞之曰:“賜失之矣.夫聖人之舉事也,可以移風易俗,而教導可以施之於百姓,非獨適身之行也,今魯國富者寡而貧者眾,贖人受金則為不廉,則何以相贖乎?自今以後,魯人不復贖人於諸侯.”

노나라의 법령에 제후에게서 신첩(臣妾)을 속(贖)해 오는 자는 모두 부고(府庫)에서 금을 받았다. 자공이 사람을 속해 오고 사양하여 금을 받지 않았다. 공자가 이를 듣고 말하였다. 「사가 잘못하였다. 성인이 일을 하면 이로써 풍속을 옮기고 바꾸며 가르치고 이끎이 백성에게 베풀어질 수 있어야 하니 오직 자기 한 몸의 행실에 맞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노나라는 부유한 자가 적고 가난한 자가 많은데 사람을 속해 오고 금을 받으면 곧 청렴하지 않다고 여겨지니 또 무엇으로 서로 속해 오겠는가. 지금부터 노나라 사람은 제후에게서 사람을 속해 오지 않을 것이다.」

子路治蒲,請見於孔子曰:“由願受教於夫子.”子曰:“蒲其如何?”對曰:“邑多壯士,又難治也.”子曰:“然,吾語爾,恭而敬,可以攝勇;寬而正,可以懷強;愛而恕,可以容困;言愛恕者能容困窮溫而斷,可以抑奸.如此而加之,則正不難矣.”

자로가 포(蒲)를 다스리며 공자를 뵙기를 청하여 말하였다. 「유가 바라건대 부자에게서 가르침을 받겠습니다.」공자가 말하였다. 「포는 어떠한가.」자로가 대답하였다. 「읍에 장사가 많고 또한 다스리기 어렵습니다.」공자가 말하였다. 「그렇다. 내가 네게 말해 주겠다. 공경하면 용맹한 자를 굴복시킬 수 있고 관대하고 바르면 강한 자를 편안하게 할 수 있으며 친애하고 관서(寬恕)하면 곤궁한 자를 포용할 수 있고【사랑하고 용서하는 사람이 능히 곤궁한 자를 포용한다는 말】 온화하고 과단하면 간사하고 사악한 자를 억누를 수 있다. 이와 같이 그것에 더하면 바로잡기 어렵지 않으리라.」

三恕第九

삼서(三恕) 제구(第九)

孔子曰:“君子有三恕,有君不能事,有臣而求其使,非恕也;有親不能孝,有子而求其報,非恕也;有兄不能敬,有弟而求其順,非恕也.士能明於三恕之本,則可謂端身矣.”孔子曰:“君子有三思,不可不察也.少而不學,長無能也;老而不教,死莫之思也;有而不施,窮莫之救也.故君子少思其長則務學,老思其死則務教,有思其窮則務施.”

공자가 말하였다. 「군자에게는 삼서(三恕)가 있다. 임금이 있으면서 섬기지 못하면서 신하가 있어 그의 부림을 요구하는 것은 서가 아니고 부모가 있으면서 효하지 못하면서 아들이 있어 그의 보답을 요구하는 것은 서가 아니며 형이 있으면서 공경하지 못하면서 아우가 있어 그의 순종을 요구하는 것은 서가 아니다. 선비가 능히 삼서의 근본을 밝히면 곧 몸을 바로 한다고 칭할 만하다.」공자가 말하였다. 「군자에게는 삼사(三思)가 있어 살피지 않을 수 없다. 젊고 장할 때 배우지 않으면 자라서 재주가 없고 늙어서 가르치지 않으면 죽어서 생각하는 사람이 없으며 재물이 있으면서 베풀지 않으면 곤궁할 때 구원하는 사람이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젊고 장할 때 자람을 생각하여 곧 힘써 배우고 늙을 때 죽음을 생각하여 곧 힘써 가르치며 재물이 있을 때 곤궁함을 생각하여 곧 힘써 베푼다.」

伯常騫問於孔子曰:“騫固周國之賤吏也,不自以不肖,將北面以事君子,敢問正道宜行,不容於世,正道宜行而出莫之能貴故行之則不容於世隱道宜行,然亦不忍,世亂則隱道為行然亦不忍為隱事今欲身亦不窮,道亦不隱,為之有道乎?”孔子曰:“善哉子之問也.自丘之聞,未有若吾子所問辯且說也.辯當其理得其說矣丘嘗聞君子之言道矣,聽者無察,則道不入,言聽者不明察道則不能入也奇偉不稽,則道不信.稽考也聽道者不能考校奇偉則道不見信此言苟非其人道不虛行又嘗聞君子之言事矣,制無度量,則事不成,其政曉察,則民不保.保安也政大曉了分察則民不安矣又嘗聞君子之言志矣,●折者不終,●則折矣不終其性命矣徑易者則數傷,徑輕也志輕則數傷於義矣浩倨者則不親,浩倨簡略不恭如是則不親矣就利者則無不弊.言好利者不可久也又嘗聞養世之君子矣,從輕勿為先,從重勿為後,赴憂患從勞苦輕者宜為後重者宜為先養世者也見像而勿強,像法也見法而已不以強世也陳道而勿怫.怫詭也陳道而已不與世相詭違也此四者,丘之所聞也.”

백상건(伯常騫)이 공자에게 물었다. 「건은 본래 주나라의 미천한 관리인데 스스로 불초라 여기지 않고 장차 북면하여 군자를 섬기고자 합니다. 청하옵니다. 바른 도는 마땅히 행해야 하지만 세속에 받아들여지지 않고【바른 도는 마땅히 행해야 하나 능히 그것을 중히 여기는 자가 없으므로 행하여도 세속에 받아들여지지 않음】 은둔의 도는 마땅히 행해야 하지만 또 차마 못합니다【세상이 어지러우면 곧 은둔의 도로 가야 하나 또 은둔하는 일을 차마 하지 못함】. 지금 몸도 곤궁하지 않고 도도 묻히지 않게 하고자 하는데 이 일을 할 방법이 있습니까.」공자가 말하였다. 「잘 물었다. 내가 들은 바로는 아직 그대와 같이 밝게 변별하고 말이 통하는 자가 없다.【변별이 이치에 맞고 말함이 적당함】 내가 일찍이 군자가 도를 논함을 들었는데 듣는 자가 밝지 않으면 도가 들어가지 못하고【듣는 자가 밝게 살피지 않으면 도가 능히 들어가지 못함】 기이하고 웅장한데 고찰을 더하지 않으면 도가 믿어지지 않는다【계(稽)는 고찰이다. 도를 듣는 자가 능히 기이하고 웅장한 것을 고찰하지 않으면 도가 믿어지지 않음】. 이는 만약 그 사람이 아니면 도가 헛되이 행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또 일찍이 군자가 일을 논함을 들었는데 제도에 도량이 없으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고 정치가 지나치게 명찰하면 백성이 편안하지 않다【보(保)는 편안함이다. 정치가 지나치게 세목을 다 살피면 백성이 편안하지 않음】. 또 일찍이 군자가 뜻을 논함을 들었는데 굳센 사람은 꺾여 그 성명을 마치지 못하고【굳세면 곧 꺾여 그 성명을 마치지 못함】 경솔한 사람은 자주 상하고【경(徑)은 가벼움이다. 뜻이 가벼우면 자주 의에 상함】 거만하고 간략한 사람은 사람에게 친해지지 못하며【호거(浩倨)는 간략하고 공손하지 않음. 이와 같으면 곧 사람에게 친해지지 못함】 이익을 좇는 사람은 무너지지 않는 자가 없다【이익을 좋아하는 사람이 능히 오래가지 못한다는 말】. 또 일찍이 세상에서 몸을 보전하는 군자를 들었는데 가벼운 일을 따를 때는 앞서지 말고 무거운 일을 따를 때는 뒤지지 말라【우환에 이르고 노고를 따를 때 가벼운 것은 마땅히 뒤에 하고 무거운 것은 마땅히 먼저 하라. 이것이 세상에서 몸을 보전함】 법칙을 보거든 세상에 강요하지 말고【이것이 법이다. 법칙을 보면 족하니 세상에 강요하지 말라】 바른 도를 진설하거든 세속과 궤위(詭違)하지 말라【불(怫)은 궤이다. 바른 도를 진설하면 족하니 세속과 서로 궤위하지 말라】. 이 네 가지가 내가 들은 바이다.」

孔子觀於魯桓公之廟,有欹器焉.欹傾夫子問於守廟者曰:“此謂何器?”對曰:“此蓋為宥坐之器.”孔子曰:“吾聞宥坐之器,虛則欹,中則正,滿則覆,明君以為至誡,故常置之於坐側.”顧謂弟子曰:“試注水焉.”乃注之,水中則正,滿則覆.夫子喟然嘆曰:“嗚呼!夫物惡有滿而不覆哉?”子路進曰:“敢問持滿有道乎?”子曰:“聰明睿智,守之以愚;功被天下,守之以讓;勇力振世,守之以怯;富有四海,守之以謙.此所謂損之又損之之道也.”

공자가 노환공의 사당을 보는데 기울어진 그릇이 하나 있었다【기(欹)는 기울어짐이다】. 부자가 사당을 지키는 사람에게 물었다. 「이것을 무슨 그릇이라 합니까.」대답하였다. 「이는 아마 자리 오른쪽에 두어 경계로 삼는 그릇입니다.」공자가 말하였다. 「내가 듣기에 이 그릇은 비어 있으면 기울어지고 알맞게 차면 바로 서며 가득 차면 엎어진다 하였다. 밝은 임금이 이를 지극한 경계로 삼으므로 늘 자리 곁에 두었다.」제자를 돌아보며 말하였다. 「시험하여 물을 부어 보아라.」이에 물을 부으니 중간에 이르면 곧 바로 서고 가득 차면 곧 엎어졌다. 부자가 탄식하여 말하였다. 「아아! 사물이 어찌 가득 차고도 엎어지지 않는 것이 있으리오.」자로가 나아가 말하였다. 「청하옵니다. 가득 참을 지키는 방법이 있습니까.」공자가 말하였다. 「총명예지(聰明睿智)는 우졸함으로 지키고 공이 천하를 덮는 자는 겸양으로 지키며 용력이 세상을 진동하는 자는 겁약함으로 지키고 부유함이 사해에 있는 자는 겸손함으로 지키나니 이것이 이른바 덜고 또 덜하는 도입니다.」

孔子觀於東流之水.子貢問曰:“君子所見大水,必觀焉何也?”孔子對曰:“以其不息,且遍與諸生而不為也.夫水似乎德,遍與諸生者物得水而後生水不與生而又不德也其流也則卑下,倨邑必修,其理似義;浩浩乎無屈盡之期,此似道;流行赴百仞之?而不懼,此似勇;至量必平之,此似法;盛而不求概,此似正;綽約微達,此似察;發源必東,此似志;以出以入,萬物就以化絜,此似善化也.水之德有若此,是故君子見,必觀焉.”

공자가 동쪽으로 흐르는 물을 보았다. 자공이 물었다. 「군자는 큰물을 보면 반드시 봅니다. 어찌 된 까닭입니까.」공자가 대답하였다. 「그것이 쉬지 않고 또 널리 모든 생물에게 주되 스스로 공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은 덕과 같습니다.【널리 모든 생물에게 준다. 사물이 물을 얻은 뒤에야 나는데 물은 낳고 기름을 자기 것으로 삼지 않고 또 스스로 덕 있다고 여기지 않음】 그 흐름이 아래로 향하고 굽은 곳은 반드시 다스리며 그 조리가 의와 같고 아득하여 다함의 기한이 없으니 이것이 도와 같고 흘러 달려 백 인의 깊은 골짜기에 들어가도 두려워하지 않으니 이것이 용과 같으며 되에 이르면 반드시 평평하니 이것이 법과 같고 가득 차도 긁어 평평하게 함을 구하지 않으니 이것이 바름과 같고 유약하고 미세하면서도 통달하니 이것이 살핌과 같으며 근원이 나오면 반드시 동쪽으로 향하니 이것이 뜻과 같고 나가고 들어오면서 만물이 이로써 깨끗해지니 이것이 교화를 잘함과 같습니다. 물의 덕이 이와 같이 있으므로 군자가 보면 반드시 봅니다.」

子貢觀於魯廟之北堂,出而問於孔子曰:“向也賜觀於太廟之堂,未既輟,還瞻北蓋,皆斷焉,輟止觀北面之蓋斷絕也彼將有說耶?匠過之也.”孔子曰:“太廟之堂宮,致良工之匠,匠致良材,盡其功巧,蓋貴久矣,尚有說也.”尚猶必也言必有說

자공이 노나라 사당의 북당(北堂)을 보고 나와서 공자에게 물었다. 「방금 제가 태묘(太廟)의 당을 보다가 아직 다 보지 못하고 돌아 북쪽 덮개 판을 보니 모두 끊어져 있었습니다【철(輟)은 봄을 그침이다. 북쪽 덮개 판이 끊어짐】. 혹시 거기에 이유가 있습니까, 아니면 장인의 잘못입니까.」공자가 말하였다. 「태묘의 당집은 좋은 장인을 청하고 장인이 좋은 재목을 쓰고 공교함을 다하여 오래되기를 중히 여긴 지가 이미 오래되었으니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것이다.」【상(尚)은 곧 필(必)이다. 반드시 이유가 있다는 말】

孔子曰:“吾有所齒,有所鄙,有所殆.夫幼而不能強學,老而無以教,吾恥之;去其鄉事君而達,卒遇故人,曾無舊言,吾鄙之;事君而達得志於君而見故人曾無舊言是棄其平生之舊交而無進之之心者乎與小人處而不能親賢,吾殆之.”殆危也夫疏賢而近小人是危亡之道也

공자가 말하였다. 「내가 부끄럽게 여기는 것이 있고 비루하게 여기는 것이 있고 위태롭게 여기는 것이 있다. 어릴 때 힘써 배우지 못하고 늙어서 남에게 가르칠 만한 것이 없으니 내가 이를 부끄러움으로 삼는다. 고을을 떠나 임금을 섬겨 현달하게 되었는데 문득 옛 벗을 만나 마침내 한 번도 옛일을 서술하는 말이 없으니 내가 이를 비루함으로 삼는다【임금을 섬겨 현달하여 임금 곁에서 뜻을 얻고 옛 벗을 보고도 옛말이 없는 것은 평생의 옛 사귐을 버리고 끌어주는 마음이 없는 것이다】. 소인과 함께 지내면서 어진 사람을 가까이하지 못하면 내가 이를 위태로움으로 삼는다.」【태(殆)는 위태로움이다. 어진 사람을 멀리하고 소인을 가까이하는 것은 위태롭고 망하는 길이다】

子路見於孔子.孔子曰:“智者若何?仁者若何?”子路對曰:“智者使人知己,仁者使人愛己.”子曰:“可謂士矣.”子路出,子貢入,問亦如之.子貢對曰:“智者知人,仁者愛人.”子曰:“可謂士矣.”子貢出,顏回入,問亦如之.對曰:“智者自知,仁者自愛.”子曰:“可謂士君子矣.”

자로가 공자를 뵈었다. 공자가 말하였다. 「지혜로운 자는 어떠한가. 어진 자는 어떠한가.」자로가 대답하였다. 「지혜로운 자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를 알게 하고 어진 자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를 사랑하게 합니다.」공자가 말하였다. 「선비라 칭할 만하다.」자로가 나가고 자공이 들어오니 묻는 것이 같았다. 자공이 대답하였다.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알고 어진 자는 사람을 사랑합니다.」공자가 말하였다. 「선비라 칭할 만하다.」자공이 나가고 안회가 들어오니 묻는 것이 같았다. 안회가 대답하였다. 「지혜로운 자는 스스로 자기를 알고 어진 자는 스스로 자기를 사랑합니다.」공자가 말하였다. 「선비이자 군자라 칭할 만하다.」

子貢問於孔子曰:“子從父命孝,臣從君命貞乎?奚疑焉.”孔子曰:“鄙哉賜,汝不識也.昔者明王萬乘之國,有爭臣七人,則主無過舉;天子有三公四輔主諫爭以救其過失也四輔前曰疑後曰丞左曰輔右曰弼也千乘之國,有爭臣五人,則社稷不危也;諸侯有三卿股肱之臣有內外者也故有五人焉百乘之家,有爭臣三人,大夫之臣有室老家相邑宰凡三人能以義諫諍則祿位不替;父有爭子,不陷無禮;士有爭友,不行不義.士雖有臣既微且陋不能以義匡其君故須朋友之諫爭於己然後不義之事不得行之者也故子從父命,奚詎為孝?臣從君命,奚詎為貞?夫能審其所從,當詳審所宜從與不之謂孝,之謂貞矣.”

자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아들이 아버지의 명을 따르면 곧 효이고 신하가 임금의 명을 따르면 곧 정(貞)입니까. 또 무엇을 의심할 것이 있습니까.」공자가 말하였다. 「누추하구나 사야, 너는 밝지 못하다. 옛적 명왕이 만 승의 나라를 가졌을 때 간쟁하는 신하가 일곱이 있으면 주상이 그릇된 행동이 없고【천자는 삼공사보(三公四輔)가 있어 간쟁을 맡아 허물을 보완한다. 사보는 앞을 의(疑)라 하고 뒤를 승(丞)이라 하며 왼쪽을 보(輔)라 하고 오른쪽을 필(弼)이라 한다】 천 승의 나라는 간쟁하는 신하가 다섯이 있으면 사직이 위태롭지 않고【제후는 삼경이 있어 고굉(股肱)이 되고 또 내외의 신하가 있으므로 다섯이다】 백 승의 집은 간쟁하는 신하가 셋이 있으면 녹봉과 지위가 폐해지지 않는다【대부의 신하는 실로(室老)·가상(家相)·읍재(邑宰)가 있어 모두 셋이다. 능히 의에 따라 간쟁하면 녹위가 폐하지 않음】 아버지에게 간쟁하는 아들이 있으면 곧 무례에 빠지지 않고 선비에게 간쟁하는 벗이 있으면 곧 불의를 하지 않는다【선비가 비록 신하가 있어도 이미 미천하고 누추하여 능히 의에 따라 그 임금을 바로잡지 못하므로 벗의 자기에게 간쟁함이 필요하여 그제야 불의한 일을 행하지 않게 됨】. 그러므로 아들이 아버지의 명을 따른다고 어찌 곧 효이겠으며 신하가 임금의 명을 따른다고 어찌 곧 정이겠는가. 능히 따를 만한 것을 살펴야【따라야 할지 따르지 말아야 할지를 자세히 살펴야 함】 이에 효라 칭하고 정이라 칭한다.」

子路盛服見於孔子.子曰:“由是倨倨者何也?夫江始出於岷山,其源可以濫觴,觴可以盛酒言其微及其至於江津,不舫舟不避風則不可以涉,非唯下流水多耶?今爾衣服既盛,顏色充盈,天下且孰肯以非告汝乎?”子路趨而出,改服而入,蓋自若也.子曰:“由志之,吾告汝,奮於言者華,自矜奮於言者華而無實奮於行者伐,自矜奮行者是自伐夫色智而有能者,小人也.故君子知之曰智,言之要也,不能曰不能,行之至也.言要則智,行至則仁,既仁且智,惡不足哉!”

자로가 성대한 옷을 입고 공자를 뵈었다. 공자가 말하였다. 「유야, 이처럼 거만한 것은 어찌 된 까닭이냐. 장강이 민산에서 나올 때 그 근원은 술 한 잔을 담을 만하고【상(觴)은 술을 담을 수 있다. 그 미소함을 말함】 강진(江津)에 이르러서는 배를 타지 않고 바람을 피하지 않으면 건널 수 없으니 어찌 오직 물이 하류에서 많기 때문이겠느냐. 지금 네 옷이 이미 성미(盛美)하고 신색(神色)이 이미 충영(充盈)하니 천하에 누가 기꺼이 네 그릇됨을 네게 말하겠느냐.」자로가 빨리 나가 옷을 갈아입고 다시 들어오니 신색이 이에야 스스로와 같았다. 공자가 말하였다. 「유야 기억하여라. 내가 네게 말해 주겠다. 말에 뽐내는 자는 꽃이 있고 열매가 없고【스스로 말을 자랑하면 곧 꽃만 있고 열매가 없음】 행실에 뽐내는 자는 스스로 자랑하는 것이다【스스로 행실을 자랑하면 곧 자기를 자랑함】. 낯빛에 총명을 드러내고 재주가 있는 자는 소인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안다는 것을 안다 하니 이것이 말의 요점이고 못한다는 것을 못한다 하니 이것이 행실의 극치이다. 말이 요점을 얻으면 곧 지혜이고 행실이 극치에 이르면 곧 인이니 인하고도 지혜로우면 어찌 부족함이 있으리오.」

子路問於孔子曰:“有人於此,披褐而懷玉,何如?”褐毛布衣子曰:“國無道,隱之可也;國有道,則袞冕而執玉.”袞冕文衣盛飭

자로가 공자에게 물었다. 「사람이 있어 거친 옷을 입고 품속에 옥을 품으면 어떻습니까.」【갈(褐)은 털베 옷이다】공자가 말하였다. 「나라에 도가 없으면 숨겨도 되고 나라에 도가 있으면 곧 예복을 입고 옥규를 잡아야 한다.」【곤면(袞冕)은 문장 있는 성대한 옷이다】

好生第十

호생(好生) 제십(第十)

魯哀公問於孔子曰:“昔者舜冠何冠乎?”孔子不對.公曰:“寡人有問於子而子無言,何也?”對曰:“以君之問不先其大者,故方思所以為對.”公曰:“其大何乎?”孔子曰:“舜之為君也,其政好生而惡殺,其任授賢而替不肖,德若天地而靜虛,化若四時而變物,是以四海承風,暢於異類,異類四方之夷狄也鳳翔麟至,鳥獸馴德,馴順無他也,好生故也.君舍此道,而冠冕是問,是以緩對.”

노애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옛적 순(舜) 임금은 어떤 관을 썼습니까.」공자가 대답하지 않았다. 애공이 말하였다. 「과인이 묻는데 그대가 말하지 않으니 어찌 된 까닭입니까.」공자가 대답하였다. 「임금의 물음이 큰 것을 먼저 묻지 않았기에 마땅히 대답할 바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애공이 말하였다. 「큰 것이 무엇입니까.」공자가 말하였다. 「순이 임금이 될 때 정치는 생(生)을 좋아하고 살(殺)을 미워하며 임용과 수여는 어진 이를 쓰고 불초(不肖)를 바꾸었다. 덕이 천지와 같이 고요하고 비어 있고 교화가 사시(四時)와 같이 만물을 변화시키므로 사해가 풍화를 받아 다른 부류에까지 통달하고【이류(異類)는 사방의 이적(夷狄)이다】 봉황이 날아오고 기린이 이르며 새와 짐승이 덕에 길들여졌습니다【순(馴)은 순함이다】. 다른 것이 아니라 생을 좋아한 까닭입니다. 임금이 이 도를 버려두고 관면(冠冕)을 물으시므로 대답이 늦었습니다.」

孔子讀史至楚復陳,陳夏徵舒殺其君楚莊王討之因陳取之而申叔時諫莊王從之還復陳喟然嘆曰:“賢哉楚王!輕千乘之國,而重一言之信,匪申叔之信,不能達其義,匪莊王之賢,不能受其訓.”

공자가 사(史)를 읽다가 초나라가 진나라를 회복시킨 데 이르러【진나라 하징서(夏征舒)가 그 임금을 죽이니 초장왕(楚莊王)이 그를 토벌하고 기회에 진나라를 차지하였다. 신숙시(申叔時)가 간하니 장왕이 따라 진나라를 돌려주고 회복시켰다】 탄식하여 말하였다. 「어질도다 초왕이여. 천 승의 나라를 가볍게 여기고 한마디 말의 신을 중히 여겼도다. 신숙시의 성신(誠信)이 아니면 능히 그 의를 밝히지 못하였을 것이고 장왕의 어짐이 아니면 능히 그 훈도(訓導)를 받아들이지 못하였으리라.」

孔子常自筮其卦,得賁焉,愀然有不平之狀.子張進曰:“師聞卜者得賁卦,吉也,而夫子之色有不平,何也?”孔子對曰:“以其離耶!在周易,山下有火謂之賁,離上艮下離為火艮為山非正色之卦也.夫質也黑白宜正焉,今得賁,非吾兆也.賁飾吾聞丹漆不文,白玉不雕,何也?質有餘不受飾故也.”孔子曰:“吾於甘棠,見宗廟之敬甚矣,邵伯聽訟於甘棠愛其樹作甘棠之詩也思其人必愛其樹,尊其人必敬其位,道也.”

공자가 늘 스스로 점을 쳐서 괘를 얻었는데 비괘(賁卦)를 얻으니 낯빛이 추연하여 불평한 모습이 있었다. 자장이 나아가 말하였다. 「사(師)가 듣기에 점치는 사람이 비괘를 얻으면 길하다는데 부자의 신색에 불평이 있으니 어찌 된 까닭입니까.」공자가 대답하였다. 「그것이 리(離)이기 때문이다. 《주역》에서 산 아래 불이 있음을 비(賁)라 하는데【리가 위에 있고 간(艮)이 아래에 있다. 리는 불이고 간은 산이다】 바른 빛의 괘가 아니다. 질(質)의 흑백은 마땅히 바로잡혀야 하는데 지금 비를 얻으니 나의 징조가 아니다【비는 문식(文飾)이다】. 내가 듣기에 붉은 옻칠은 문채를 더할 필요가 없고 흰 옥은 다듬을 필요가 없다 하니 어찌 된 까닭인가. 바탕이 이미 족하여 다시 문식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공자가 말하였다. 「나는 감당(甘棠)에서 종묘에 대한 공경이 매우 깊음을 보았다【소백(召伯)이 감당 나무 아래에서 소송을 들으니 뒷사람이 그 나무를 사랑하여 감당의 시를 지었다】. 그 사람을 생각하면 반드시 그 나무를 사랑하고 그 사람을 높이면 반드시 그 자리를 공경하니 이것이 곧 도이다.」

子路戎服見於孔子,拔劍而舞之,曰:“古之君子,以劍自衛乎?”孔子曰:“古之君子忠以為質,仁以為衛,不出環堵之室,而知千里之外,有不善則以忠化之,侵暴則以仁固之,何持劍乎?”子路曰:“由乃今聞此言,請攝齊以受教.”齊裳下緝也受教者攝齊升堂

자로가 군복을 입고 공자를 뵈면서 칼을 뽑아 춤추며 말하였다. 「옛적 군자는 칼로 자기를 지켰습니까.」공자가 말하였다. 「옛적 군자는 충으로 바탕을 삼고 인으로 지킴을 삼았으니 사발(環堵)의 방을 나가지 않고도 천 리 밖을 안다. 불선한 자가 있으면 곧 충으로 감화시키고 침폭한 자가 있으면 곧 인으로 굳히니 어찌 칼을 들어 무엇을 하겠는가.」자로가 말하였다. 「유가 지금 비로소 이 말을 들었으니 옷자락을 당겨 가르침을 받겠습니다.」【제(齊)는 상(裳) 아래의 봉한 가장자리이다. 가르침을 받는 사람은 옷자락을 당겨 당에 오름】

楚王出遊,亡弓,左右請求之.王曰:“止,楚王失弓,楚人得之,又何求之!”孔子聞之,惜乎其不大也,不曰人遺弓,人得之而已,何必楚也.王恭王弓鳥?之良弓

초왕이 나들이하다가 활을 잃었다. 좌우가 찾기를 청하니 왕이 말하였다. 「그만두어라. 초왕이 활을 잃어도 초나라 사람이 그것을 얻을 것이니 어찌 다시 찾겠는가.」공자가 이를 듣고 그의 뜻이 작음을 아까워하여 말하기를 사람이 활을 잃으면 사람이 그것을 얻으면 족한데 어찌하여 반드시 초라고 하였느냐 하였다. 왕은 초공왕(楚共王)이고 그 활은 좋은 활이었다.

孔子為魯司寇,斷獄訟皆進眾議者而問之,曰:“子以為奚若?某以為何若?”皆曰云雲如是,然後夫子曰:“當從某子幾是.”近也重獄事故與眾議之

공자가 노나라 사구(司寇)가 되어 소송과 옥을 판결할 때 모두 무리로 하여금 문(文)으로 평의하게 하고 그들에게 물어 말하였다. 「그대는 어떻다고 생각합니까. 모 갑은 어떻다고 생각합니까.」무리가 모두 이와 같이 말한 뒤에 부자가 이에야 말하였다. 「마땅히 모 씨에게 따라야 하겠다. 대개 이것이 옳다.」【기(幾)는 가까움이다. 옥사를 중히 여기므로 무리와 함께 의논함】

孔子問漆雕憑曰:“子事臧文仲武仲及孺子容,此三大夫孰賢?”對曰:“臧氏家有守龜焉,名曰蔡,文仲三年而為一兆,武仲三年而為二兆,孺子容三年而為三兆,憑從此之見,若問三人之賢與不賢,所未敢識也.”孔子曰:“君子哉漆雕氏之子,其言人之美也,隱而顯;言人之過也,微而著.智而不能及,明而不能見,孰克如此.”克能也而宜為如也

공자이 칠조빙(漆雕憑)에게 물었다. 「그대는 장문중(臧文仲)과 장무중(臧武仲)과 유자용(孺子容)을 섬겼는데 이 세 대부 가운데 누가 어집니까.」대답하였다. 「장씨의 집에 지키는 거북이 있어 채(蔡)라 하는데 문중은 삼 년에 한 번 조(兆)를 점치고 무중은 삼 년에 두 번 조를 점치며 유자용은 삼 년에 세 번 조를 점쳤습니다. 빙은 이 점으로 보건대 만약 세 사람의 어짐과 어질지 못함을 묻는다면 아직 분별하지 못하겠습니다.」공자가 말하였다. 「군자이로구나 칠조씨의 아들이여. 사람의 아름다움을 말함이 은약하면서도 드러나고 사람의 허물을 말함이 미세하면서도 분명하다. 지혜로서는 미치지 못하고 밝음으로서는 보지 못하니 누가 능히 이와 같으리오.」【극(克)은 능(能)이고 이(而)는 마땅히 여(如)로 읽어야 한다】

魯公索氏,先落反將祭而亡其牲.孔子聞之曰:“公索氏不及二年將亡,後一年而亡.”門人問曰:“昔公索氏亡其祭牲,而夫子曰,不及二年必亡,今過期而亡,夫子何以知其然?”孔子曰:“夫祭者,孝子所以自盡於其親,將祭而亡其牲,則其餘所亡者多矣.若此而不亡者,未之有也.”

노나라 공색씨(公索氏)가 장차 제사를 지내려 하는데 희생(犧牲)을 잃었다. 공자가 이를 듣고 말하였다. 「공색씨는 이 년이 미치지 않아 망할 것이다.」뒤에 일 년 만에 망하였다. 문인이 물었다. 「옛적에 공색씨가 제물을 잃었을 때 부자께서 이 년이 미치지 않아 반드시 망한다고 하셨는데 지금 일 년 만에 망하였으니 부자는 무엇으로 이것을 아셨습니까.」공자가 말하였다. 「제사는 효자가 이로써 부모에게 마음을 다하는 것이다. 장차 제사를 지내려 하는데 희생을 잃었으면 나머지 잃은 것도 또한 많을 것이다. 이와 같이 하고도 망하지 않은 자는 아직 있지 않다.」

虛芮二國爭田而訟,連年不決,乃相謂曰:“西伯仁也,西伯文王盍?質之.”盍何不質正也入其境則耕者讓畔,行者讓路;入其朝士讓為大夫,大夫讓於卿.虛芮之君曰:“嘻!吾儕小人也,儕等不可以入君子之朝.”遠自相與而退,鹹以所爭之田為閒田也.孔子曰:“以此觀之,文王之道,其不可加焉,不令而從,不教而聽,至矣哉.”

우(虞)·예(芮) 두 나라가 밭을 다투어 소송을 지었는데 해를 이어 판결하지 못하였다. 이에 서로 말하였다. 「서백(西伯)은 어질다【서백은 주문왕이다】. 어찌 그에게 나아가 공정함을 구하지 않겠는가.」【합(盍)은 하불(何不)이고 질(質)은 바름이다】그 경계에 들어가니 밭 가는 자는 둑을 양보하고 길 가는 자는 길을 양보하였고 그 조정에 들어가니 선비는 대부에게 양보하고 대부는 경(卿)에게 양보하였다. 우와 예의 임금이 말하였다. 「아! 우리 같은 무리는 소인이니【제(儕)는 무리이다】 군자의 조정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멀리 각자 물러나 다투던 밭을 모두 한전(閑田)으로 삼았다. 공자가 말하였다. 「이것으로 보건대 문왕의 도는 다시 더할 수 없다. 명하지 않아도 사람이 따르고 가르치지 않아도 사람이 듣나니 지극하도다.」

曾子曰:“狎甚則相簡,莊甚則不親,是故君子之狎足以交歡,其莊足以成禮.”孔子聞斯言也,曰:“二三子志之,孰謂參也不知禮乎!”

증삼이 말하였다. 「친함이 지나치면 서로 거만하게 되고 장중함이 지나치면 친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군자의 친함은 서로 즐거움을 이루기에 족하고 그 장중함은 예를 이루기에 족하다.」공자가 이 말을 듣고 말하였다. 「너희들은 이를 기억하라. 누가 증삼이 예를 모른다고 하겠는가.」

哀公問曰:“紳委章甫,委委貌章甫冠名也有益於仁乎?”孔子作色而對曰:“君胡然焉,衰麻苴杖者,志不存乎樂,非耳弗聞,服使然也;黼黻袞冕者,容不襲慢,非性矜莊,服使然也;介胃執戈者,無退懦之氣,非體純猛,服使然也.且臣聞之,好肆不守折,言市弗能為廉好肆不守折也而長者不為市,言長者之行則不為市買之事竊夫其有益與無益,君子所以知.”竊宜為察孔子謂子路曰:“見長者而不盡其辭,雖有風雨,吾不能入其門矣.故君子以其所能敬人,小人反是.”

노애공이 물었다. 「신(紳)을 매고 위모(委貌)를 쓰고 장보(章甫)를 쓰면【위는 위모이고 장보는 관의 이름】 인에 이로움이 있습니까.」공자가 낯빛을 바꾸어 대답하였다. 「임금은 어찌 이처럼 말씀하십니까. 쇠마(衰麻)를 입고 저장(苴杖)을 짚는 자는 뜻이 즐거움에 있지 않으니 귀가 듣지 못함이 아니라 상복이 그렇게 한 것입니다. 부불곤면(黼黻袞冕)을 입는 자는 용모가 가볍고 거만하지 않으니 본성이 공경하고 장중함이 아니라 예복이 그렇게 한 것입니다. 갑주를 입고 창을 잡는 자는 물러나고 겁내는 기색이 없으니 몸이 본래 용맹한 것이 아니라 군복이 그렇게 한 것입니다. 게다가 신이 듣기에 저자를 좋아하는 자는 손해를 지키지 않고【저자에서 청렴한 매매를 하지 못하니 저자를 좋아하면 곧 손해를 지키지 않는다는 말】 장자(長者)는 저자에서 사는 일을 하지 않는다 하였습니다【장자의 행실은 저자에서 사는 일을 하지 않는다는 말】. 그 이로움과 이롭지 않음을 살피면 군자는 이로써 압니다.」【절(竊)은 마땅히 찰(察)이어야 한다】공자가 자로에게 말하였다. 「장자를 보고 말을 끝내지 않으면 비바람이 있을지라도 나는 그의 문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군자는 자기가 능한 것으로 사람을 공경하고 소인은 이와 반대이다.」

孔子謂子路曰:“君子以心導耳目,立義以為勇;小人以耳目導心,不愻以為勇.故曰退之而不怨,先之斯可從已.”言人退之不怨先之則可從足以為師也

공자가 자로에게 말하였다. 「군자는 마음으로 이와목을 이끌고 의를 세워 용으로 삼고 소인은 이와목으로 마음을 이끌고 공손하지 않음을 용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를 물리치면 원망하지 않고 그를 앞세우면 곧 따를 수 있다 하였다.」【사람이 그를 물러나게 하여도 원망하지 않고 그를 앞세우면 곧 따를 수 있으니 스승이 되기에 족하다는 말】

孔子曰:“君子三患,未之聞,患不得聞;既得聞之,患弗得學;既得學之,患弗能行.有其德而無其言,君子恥之;有其言而無其行,君子恥之;既得之,而又失之,君子恥之;地有餘民不足,君子恥之;眾寡均而人功倍己焉,君子恥之.”凡興功業多少與人同而功殊倍己故恥之也

공자가 말하였다. 「군자에게는 세 가지 근심이 있다. 아직 듣지 못하면 들을 수 없음을 근심하고 이미 들으면 배울 수 없음을 근심하며 이미 배우면 행할 수 없음을 근심한다. 그 덕이 있으면서 그 말이 없으면 군자가 이를 부끄러움으로 삼고 그 말이 있으면서 그 행실이 없으면 군자가 이를 부끄러움으로 삼으며 이미 얻고 다시 잃으면 군자가 이를 부끄러움으로 삼고 땅은 넉넉한데 백성이 부족하면 군자가 이를 부끄러움으로 삼며 사람의 수가 같은데 남의 공이 자기보다 갑절이면 군자가 이를 부끄러움으로 삼는다.」【무릇 공업을 일으킬 때 사람의 수가 남과 같은데 공이 자기보다 갑절이니 그러므로 부끄러움으로 삼음】

魯人有獨處室者,鄰之釐婦,釐寡婦也亦獨處一室.夜暴風雨至,釐婦室壞,趨而托焉,魯人閉戶而不納,釐婦自牖與之言:“何不仁而不納我乎?”魯人曰:“吾聞男女不六十不同居,今子幼吾亦幼,是以不敢納爾也.”婦人曰:“子何不如柳下惠?然嫗不建門之女,國人不稱其亂.”魯人曰:“柳下惠則可,吾固不可.吾將以吾之不可,學柳下惠之可.”孔子聞之曰:“善哉!欲學柳下惠者,未有似於此者,期於至善而不襲其為,可謂智乎!”

노나라 사람 중에 홀로 한 방에 사는 자가 있었다. 이웃의 과부【리(釐)는 과부이다】도 홀로 한 방에 살았다. 밤에 폭풍우가 와서 과부의 집이 무너지자 달려와 의탁하였다. 노나라 사람이 문을 닫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과부가 창문으로 그에게 말하였다. 「어찌하여 어질지 못하게 저를 받아들이지 않습니까.」노나라 사람이 말하였다. 「내가 듣기에 남녀는 예순이 되지 않으면 함께 살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지금 그대도 어리고 나도 어리므로 감히 그대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부인이 말하였다. 「그대는 어찌하여 유하혜(柳下惠)처럼 하지 않습니까. 그랬는데도 나라 사람들은 그를 음란하다 하지 않았습니다.」노나라 사람이 말하였다. 「유하혜는 할 수 있지만 나는 본래 할 수 없습니다. 내가 장차 나의 할 수 없음으로써 유하혜의 할 수 있음을 배우겠습니다.」공자가 이를 듣고 말하였다. 「좋도다. 유하혜를 배우고자 하는 데 이보다 더 닮은 것이 없다. 지극한 선에 이르기를 바라면서 그의 자취를 답습하지 않았으니 지혜롭다 칭할 만하다.」

孔子曰:“小辯害義,小言破道,關睢興於鳥而君子美之,取其雄雌之有別;鹿鳴興於獸,而君子大之,取其得食而相呼.若以鳥獸之名嫌之,固不可行也.”

공자가 말하였다. 「변(辯)이 잘잘한 것은 의를 해치고 말이 잘잘한 것은 도를 깬다. 《관저(關雎)》는 새에서 일어났으나 군자는 그것을 아름답게 여기니 수컷과 암컷의 구별이 있음을 취한 것이다. 《녹명(鹿鳴)》은 짐승에서 일어났으나 군자는 그것을 귀하게 여기니 먹이를 얻어 서로 부름을 취한 것이다. 만약 새와 짐승의 이름 때문에 싫어한다면 곧 본래 행할 수 없는 것이다.」

The original text is in the public domain. The Korean is a machine-assisted translation of this library’s own Chinese paraphrase, checked against a fixed glossary so that technical terms match the definitions used elsewhere on this site. It is a reading aid and does not replace the origin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