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가어 권 이(孔子家語 卷二)
孔子謂子路曰:“君子而強氣,而不得其死;小人而強氣,則刑戮薦蓁.豳詩曰:‘殆天之未陰雨,徹彼桑土,綢繆牖戶,殆及也徹剝也桑土桑根也鴟鴞天未雨剝取桑根以纏綿其牖戶喻我國家積累之功乃難成之苦者也今汝下民,或敢侮餘.’”今者周公時言我先王致此大功至艱而下民敢侵侮我周道謂管蔡之屬不可不遏絕之以存周室者也孔子曰:“能治國家之如此,雖欲侮之,豈可得乎?周自後稷積行累功,以有爵土,公劉重之以仁,及至大王亶甫,敦以德讓,其樹根置本,備豫遠矣.初,大王都豳,翟人侵之,事之以皮幣,不得免焉,事之以珠玉,不得免焉,於是屬耆老而告之,所欲吾土地.吾聞之君子不以所養而害人,二三子何患乎無君?遂獨與大姜去之,踰梁山,邑於岐山之下.豳人曰:‘仁人之君,不可失也,從之如歸市焉.’天之與周,民之去殷久矣,若此而不能天下,未之有也,武庚惡能侮.武庚紂子名祿父與管叔共為亂也鄁詩曰:‘執轡如組,兩驂如.’”驂之以服和調節中孔子曰:“為此詩者,其知政乎!夫為組者,●紕於此,成文於彼,言其動於近,行於遠也.執此法以御民,豈不化乎!竿旄之忠告至矣哉!”竿旄之詩者樂乎善道告人取喻於素絲良馬如組紕之義
공자가 자로에게 말하였다. 「군자는 의기가 지나치게 강하면 곧 좋은 마침을 얻지 못하고 소인은 세력이 지나치게 강하면 곧 형벌과 죽임이 연이어 온다. 《빈풍(豳風)》의 시에 이르기를 『하늘이 아직 음우(陰雨)하지 않을 때를 타서 저 상토(桑土)를 벗겨 유호(牖戶)를 주무(綢繆)하네.【태(迨)는 미침이고 철(徹)은 벗김이며 상토는 뽕나무 뿌리이다. 치효(鴟鴞)가 하늘이 아직 비가 오지 않을 때 뽕나무 뿌리를 벗겨 유호를 주무함은 우리나라가 쌓은 공이 이루기 어려운 수고임을 비유함】 지금 너희 아랫백성 가운데 혹 감히 나를 업신여기는 자가 있으랴』 하였다.」【지금은 주공의 때이다. 선왕이 이 큰 공을 이룸이 매우 간난하였다는 말이다. 아랫백성이 감히 우리 주나라의 도를 침해하고 업신여김은 관채(管蔡) 무리를 가리키니 이들을 억제하여 주실(周室)을 보전하지 않을 수 없다】공자가 말하였다. 「능히 이와 같이 나라를 다스리면 사람이 업신여기고자 하는 자가 있을지라도 어찌 손을 쓸 수 있겠는가. 주나라는 후직(后稷)에서부터 덕을 쌓고 공을 쌓아 이로써 작위가 있고 땅이 있었으며 공유(公劉)가 인을 더하였다. 태왕단보(太王亶父)에 이르러서는 덕으로써 겸양을 돈독히 하였다. 그 근본을 세우고 뿌리를 놓음에 준비함이 이미 멀었다. 처음에 태왕이 빈(豳)에 도읍할 때 적(翟) 사람이 침범하였다. 가죽과 폐백으로 그들을 섬겨도 면하지 못하고 주옥으로 그들을 섬겨도 면하지 못하였다. 이에 기로(耆老)를 불러 모아 그들에게 고하여 말하였다. 『저들이 바라는 것은 나의 땅이다. 내가 듣기에 군자는 사람을 기르는 것으로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 하였으니 너희는 어찌 임금 없음을 걱정하겠는가.』이에 홀로 태강(太姜)과 떠나 양산(梁山)을 넘어 기산(岐山) 아래에 읍을 지었다. 빈 사람이 말하였다. 『어진 사람의 임금은 잃어서는 안 된다.』그를 따르기를 저자에 모이듯 하였다. 하늘이 주나라에 준 것과 백성이 은나라를 떠난 것이 이미 오래였으니 이와 같이 하고도 천하를 얻지 못한 자는 아직 없었다. 무경(武庚)이 어찌 능히 업신여기겠는가【무경은 주(紂)의 아들로 이름이 녹보(禄父)이며 관숙(管叔)과 함께 난을 일으켰다】. 《용풍(鄘風)》의 시에 이르기를 『손에 고삐를 잡음이 조직과 같고 두 가슴말의 춤춤이 이와 같네』 하였다.」【가슴말과 복마(服馬)가 조화하여 절주가 가운데 있음】공자가 말하였다. 「이 시를 지은 사람은 대개 정치를 아는가 보다. 조직을 짜는 자는 이쪽에서 실을 다스리고 저쪽에서 무늬를 이루니 가까운 데서 거동하여 먼 데서 행해진다는 말이다. 이 방법으로 백성을 다루면 어찌 감화되지 않겠는가. 《간모(竿旄)》의 충고함이 지극하도다.」【《간모》의 시는 좋은 도를 사람에게 알려 주기를 즐겨 소사량마(素絲良馬)에 비유하니 조직을 짜고 실을 다스림의 뜻과 같다】
【본문에 이 단락은 결문이다】
공자가어 권 삼(孔子家語 卷三)
觀周第十一
관주(觀周) 제십일(第十一)
孔子謂南宮敬叔曰:“吾聞老聃博古知今,敬叔孟僖子子也老聃老子博古知今而好道通禮樂之原,明道德之歸,則吾師也,今將?矣.”對曰:“謹受命.”遂言於魯君曰:“臣受先臣之命,先臣僖子云孔子聖人之後也,聖人殷湯滅於宋,孔子之先去宋奔魯故曰滅於宋也其祖弗父何,始有國而授厲公,弗父何緡公世子厲公兄也讓國以受厲公春秋傳曰以有宋而授厲公宜始始也始有宋也及正考父佐戴武宣,正考父何之曾孫也戴武宜三公也三命茲益恭.考父士一命其大夫再命卿三命是也故其鼎銘曰:‘臣有功德君命銘之於其宗廟之鼎也一命而僂,再命而傴,三命而俯,傴恭於僂俯恭於傴循牆而走,言恭之甚亦莫餘敢侮,餘我也我考父也以其恭如此故人亦莫之侮饘於是,粥於是,以餬其口,饘糜也為糜粥於此鼎言至儉也其恭儉也,若此.’”臧孫紇有言:“聖人之後,若不當世,紇臧武仲弗父何殷湯之後而不繼世為宋君則必有明君而達者焉,孔子少而好禮,其將在矣.”將在孔子屬臣曰:“汝必師之,今孔子將適周,觀先王之遺制,考禮樂之所極,斯大業也,君盍以乘資之,臣請與?.”公曰:“諾.”與孔子車一乘,馬二疋,堅其侍御.敬叔與俱至周,問禮於老聃,訪樂於萇弘,弘周大夫歷郊社之所,考明堂之則,則法察廟朝之度.宗廟朝廷之法度也於是喟然曰:“吾乃今知周公之聖,與周之所以王也.”及去周,老子送之曰:“吾聞富貴者送人以財,仁者送人以言,吾雖不能富貴,而竊仁者之號,請送子以言乎.凡當今之士,聰明深察而近於死者,好譏議人者也;博辯閎達而危其身,好發人之惡者也;無以有己為人子者,身父母有之也無以惡己為人臣者.”言聽則仕不用則退保身全行臣之節也孔子曰:“敬奉教.”自周反魯,道彌尊矣.遠方弟子之進,蓋三千焉.
공자가 남궁경숙(南宮敬叔)에게 말하였다. 「내가 듣기에 노담(老聃)은 박고지금(博古知今)하여【경숙은 맹희자(孟僖子)의 아들이다. 노담은 곧 노자로 박고지금하고 도를 좋아함】 예악의 근원을 통달하고 도덕의 귀의(歸依)를 밝힌다 하니 곧 나의 스승이다. 지금 장차 가려 한다.」경숙이 대답하였다. 「삼가 명을 받들겠습니다.」이에 노나라 임금에게 말하였다. 「신이 선신(先臣)의 명을 받았습니다. 선신 희자가 말하기를 공자는 성인의 후예이다【성인 은탕(殷湯)이 송나라에서 멸절되었다. 공자의 선조가 송을 떠나 노로 왔으므로 송에서 멸하였다 함】. 그의 선조 불부하(弗父何)는 처음에 나라를 가졌으나 여공(厲公)에게 넘겨주었고【불부하는 민공(緡公)의 세자로 여공의 형이다. 나라를 여공에게 양보하였다. 《춘추》에 그가 송나라를 가졌기에 여공에게 넘겨주었다 전하니 「시(始)」는 처음 송나라를 가졌다는 것】 정고보(正考父)에 이르러 대공(戴公)·무공(武公)·선공(宣公)을 보좌하고【정고보는 불부하의 증손이다. 대·무·선은 세 임금이다】 세 번 명을 받을수록 더욱 공손하였다【고보: 선비는 일명(一命), 대부는 재명(再命), 경은 삼명(三命)이다】. 그러므로 그의 정명(鼎銘)에 이르기를 『【신하에게 공덕이 있으면 임금이 명하여 종묘의 정에 새기게 한다】일명에는 허리를 굽히고 재명에는 등을 굽히며 삼명에는 몸을 숙이고【우(傴)는 누(僂)보다 공손하고 부(俯)는 우보다 공손하다】 담장을 따라 걸으니【공경함이 지극함을 말함】 또한 사람이 나를 업신여기는 자가 없네【여(余)는 나이다. 나는 고보이다. 그의 공손함이 이와 같으므로 사람들도 또한 그를 업신여기는 자가 없음】. 걸죽은 이 솥에서 하고 묽은 죽도 이 솥에서 하여 이로써 입에 풀칠하네【전(饘)은 미(糜)이다. 이 솥에서 죽을 쑴은 지극히 검소함을 말함】』 하였으니 그의 공손하고 검소함이 이와 같았습니다.」장손흘(臧孫紇)이 말이 있어 이르기를 「성인의 후예는 만약 당세의 임금이 되지 못하면【흘은 장무중이다. 불부하는 은탕의 후예이나 대를 이어 송나라 임금이 되지 않았다】 반드시 밝은 임금이 있어 그를 현달하게 한다. 공자가 어려서부터 예를 좋아하니 아마 그 응할 바가 그에게 있을 것이다」 하고【공자에게 있으려니와】 신에게 분부하여 말하기를 「너는 반드시 그를 스승으로 섬겨라. 지금 공자가 장차 주나라에 가서 선왕이 남긴 제도를 보고 예악이 미친 극점을 고찰하려 하니 이것이 큰 일이다. 임금은 어찌 수레와 말을 공급하지 않으시렵니까. 신이 청하건대 함께 가겠습니다」 하였습니다.」공이 말하였다. 「좋다.」공자에게 수레 한 승과 말 두 필을 주고 아울러 시어(侍御)를 굳건히 하였다. 경숙이 그와 함께 주나라에 이르러 노담에게 예를 묻고 장홍(萇弘)에게 악을 찾아 묻고【홍은 주나라 대부이다】 두루 교사(郊社)의 곳을 돌아다니며 명당(明堂)의 법칙을 고찰하고【곧 법이다】 종묘와 조정의 법도를 살폈다. 이에 탄식하여 말하였다. 「내가 이제야 주공의 성인됨과 주나라가 왕이라 칭한 까닭을 알았다.」주나라를 떠날 때 노자가 그를 보내며 말하였다. 「내가 듣기에 부귀한 사람은 사람을 보낼 때 재물로 하고 어진 사람은 사람을 보낼 때 말로 한다 하였다. 나는 부귀하지 못하나 몰래 인인(仁人)의 호(號)를 취하니 말로 그대를 보내겠습니다. 무릇 당세의 선비로서 총명하고 깊이 살피면서도 죽음에 가까운 자는 남을 헐뜯고 논하기를 좋아하는 자이고 널리 변론하고 크게 통달하면서도 몸을 위태롭게 하는 자는 남의 허물을 들추기를 좋아하는 자이다. 남의 자식이 되어서는 자기만을 생각하지 말고【몸은 부모의 소유이다】 남의 신하가 되어서는 자기를 미워하지 마십시오.」【말이 쓰이면 곧 벼슬하고 쓰이지 않으면 곧 물러나 몸과 덕을 보전하는 것이 신하의 절개이다】공자가 말하였다. 「공경하여 가르침을 받들겠습니다.」주나라에서 노나라로 돌아오니 도가 더욱 높이 여겨져 먼 곳에서 오는 제자가 대략 삼천 명이었다.
孔子觀乎明堂,睹四門墉有堯舜之容,桀紂之象,而各有善惡之狀,興廢之誡焉.又有周公相成王,抱之負斧扆,南面以朝諸侯之圖焉,世之博學者謂周公便履天子之位失之遠矣也孔子徘徊而望之,謂從者曰:“此周之所以盛也.夫明鏡所以察形,?古者所以知今,人主不務襲跡於其所以安存,而忽怠所以危亡,是猶未有以異於卻走而欲求及前人也,豈不惑哉.”
공자가 명당(明堂)을 보니 사문(四門)의 담장에 요·순의 용모와 걸·주의 형상이 있어 각각 선악의 모양과 흥폐의 경계를 갖추고 있었고 또 주공이 성왕(成王)을 보좌하여 그를 안고 부의(斧依)를 등지고 남쪽을 향하여 제후의 조견을 받는 그림이 있었다【세상의 박학한 사람이 주공이 곧 천자의 자리에 올랐다 하는 것은 차이가 멀다】. 공자가 배회하며 바라보고 따라온 사람에게 말하였다. 「이것이 주나라가 성하였던 까닭이다. 밝은 거울은 이로써 형체를 살피고 옛날은 이로써 오늘을 안다. 임금이 저 편안하고 보존되게 한 자취를 힘써 답습하지 않고 저 위태롭고 망하게 한 교훈을 태만히 하면 이것은 아직 없음과 같이 거꾸로 걸으면서 앞 사람을 따라잡고자 함과 다르지 않으니 어찌 미혹하지 않겠는가.」
孔子觀周,遂入太祖后稷之廟,廟堂右階之前,有金人焉,三緘其口,而銘其背曰:“古之慎言人也,戒之哉.無多言,多言多敗.無多事,多事多患.安樂必戒,雖處安樂必警戒也無所行悔.言當詳而後行所悔之事不可復行勿謂何傷,其禍將長.勿謂何害,其禍將大.勿喟不聞,神將伺人.焰焰不滅,炎炎若何.涓涓不壅,終為江河.綿綿不絕,或成網羅.綿綿微細若不絕則有成羅網者也毫末不札,將尋斧柯.如毫之末言至微也札拔也尋用者也誠能慎之,福之根也.口是何傷,禍之門也.強梁者不得其死,好勝者必遇其敵.盜憎主人,民怨其上,君子知天下之不可上也,故下之.知眾人之不可先也,故後之.溫恭慎德,使人慕之.執雌持下,人莫踰之.人皆趨彼,我獨守此.人皆或之,我獨不徙.或之東西轉移之貌內藏我智,不示人技,我雖尊高,人弗我害,誰能於此.江海雖左,長於百川,以其卑也.水陰長右江海雖在於其左而能為百川長以其能下天道無親,而能下人,戒之哉!”孔子既讀斯文也,顧謂弟子曰:“小人識之,音志此言實而中,情而信.詩曰:‘戰戰兢兢,如臨深淵,如履薄冰.’戰戰恐也兢兢戒也恐墜也恐陷也行身如此,豈以口過患哉?”孔子見老聃而問焉,曰:“甚矣道之於今難行也,吾比執道,而今委質以求當世之君而弗受也,道於今難行也.”老子曰:“夫說者流於辯,流猶過也失也聽者亂於辭,如此二者,則道不可以忘也.”
공자가 주나라를 보고 이에 태조 후직(后稷)의 사당에 들어갔다. 묘당(廟堂)의 오른쪽 계단 앞에 동상(銅人)이 있는데 입을 세 겹으로 봉하였고 등에 명문을 새겨 이르기를 「옛날 말을 삼간 사람이다. 경계하라. 말을 많이 하지 말지니 말을 많이 하면 많이 실패하고 일을 많이 하지 말지니 일을 많이 하면 많은 화가 있다. 안락한 데 있어도 반드시 경계하고【비록 안락한 데 있어도 반드시 경계함】 하는 일이 후회되지 않게 하라【자세히 살핀 뒤에 행해야 하고 후회되는 일은 다시 하지 말라】. 무슨 손해가 있겠느냐고 말하지 말지니 그 화가 장차 길어질 것이고 무슨 해가 있겠느냐고 말하지 말지니 그 화가 장차 커질 것이다. 듣는 사람이 없다고 말하지 말지니 신명이 장차 사람을 엿볼 것이다. 작은 불티가 꺼지지 않으면 활활 탈 때 어떻게 하겠는가. 가늘게 흐르는 물을 막지 않으면 마침내 강과 하(江河)가 되고 면면히 끊이지 않으면 혹 그물이 되며【면면(綿綿)은 미세함이다. 끊이지 않으면 곧 그물이 됨】 터럭 끝을 뽑지 않으면 장차 도끼 자루를 쓸 것이다【터럭 끝과 같은 것은 지극히 작음을 말한다. 찰(札)은 뽑음이고 심(尋)은 씀이다】. 참으로 능히 삼가면 복의 뿌리이고 입이 무슨 손해가 있겠느냐는 화의 문이다. 강횡한 사람은 그 마침을 얻지 못하고 이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반드시 적수를 만난다. 도적은 주인을 미워하고 백성은 윗사람을 원망한다. 군자는 천하를 능가할 수 없음을 알아 아래에 처하고 뭇 사람에게 앞설 수 없음을 알아 뒤에 처한다. 온화하고 공손하며 덕을 삼가니 사람으로 하여금 사모하게 하고 유약함을 지키고 낮음을 지키면 능히 넘을 자가 없다. 사람이 모두 저쪽으로 가도 나는 홀로 이곳을 지키고 사람이 모두 혹 이리저리 움직여도 나는 홀로 옮기지 않는다【혹(或)은 동서로 옮기는 모습이다】. 안에 나의 지혜를 감추고 사람에게 재주를 보이지 않으니 내가 비록 높아도 사람이 나를 해치지 않는다. 누가 능히 이와 같이 하겠는가. 강과 바다는 비록 왼쪽에 있으나 백천보다 긴 것은 그 낮은 데 처할 수 있기 때문이며【물은 음에 속하여 오른쪽에 있다. 강과 바다는 비록 왼쪽에 있으나 능히 백천의 우두머리가 되는 것은 능히 아래에 처하기 때문이다】 천도는 사사로움이 없으나 능히 사람 아래에 있다. 경계하라」 하였다. 공자가 이 글을 다 읽고 제자를 돌아보며 말하였다. 「소자들은 이를 기억하라【기(記) 소리】. 이 말은 수박하여 가운데 맞고 정에 맞고 믿을 만하다. 《시경》에 이르기를 『전전긍긍하여 연(淵)에 임한 듯하고 살얼음을 밟은 듯하네』【전전은 두려움이고 긍긍은 경계이다. 떨어질까 두렵고 빠질까 두려움】 하였으니 몸을 세우고 일을 행함이 이와 같으면 어찌 입의 허물로 화가 있으리오.」공자가 노담을 뵙고 그에게 청하여 말하였다. 「도가 당세에 행해지기 어려움이 심합니다. 저는 근래 도를 잡고 지금 질(質)을 바쳐 당세의 임금에게 구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으니 도가 당세에 행해지기 어렵습니다.」노자가 말하였다. 「말하는 자는 변재(辯才)에 흐르고【류(流)는 허물이고 잃음이다】 듣는 자는 언사(言辭)에 미혹한다. 이 두 가지와 같은 것은 도를 잊어서는 안 된다.」
弟子行第十二
제자행(弟子行) 제십이(第十二)
衛將軍文子,衛卿名彌牟也問於子貢曰:“吾聞孔子之施教也,先之以詩書,而道之以孝悌,說之以仁義,觀之以禮樂,然後成之以文德,蓋入室升堂者,七十有餘人,其孰為賢?”子貢對以不知.文子曰:“以吾子常與學賢者也,不知何謂?
위나라 장군 문자(文子)【위나라 경(卿)으로 이름은 미모(弥牟)】가 자공에게 물었다. 「내가 듣기에 공자가 가르침을 베풀 때 먼저 시서(詩書)로 하고 다음 효제(孝悌)로 이끌며 인의(仁義)로 풀이하고 예악(禮樂)으로 보여 준 뒤에 문덕(文德)으로 이룬다 하였습니다. 대개 방에 들어가고 당에 오른 자가 칠십여 명인데 누가 가장 어집니까.」자공이 대답하여 알지 못한다 하였다. 문자가 말하였다. 「그대는 늘 어진 사람과 함께 배웠는데 모른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子貢對曰:“賢人無妄,賢人無妄舉動不妄知賢即難,故君子之言曰:‘智莫難於知人,是以難對也.’”文子曰:“若夫知賢莫不難,今吾子親遊焉,是以敢問.”子貢曰:“夫子之門人蓋有三千就焉,賜有逮及焉,未逮及焉,故不得遍知以告也.”文子曰:“吾子所及者,請問其行.”子貢對曰:“夫能夙興夜寐,諷誦崇禮,行不貳過,貳再也有不善未嘗不知知之未嘗復行也稱言不苟,舉言典法不苟且也是顏回之行也.孔子說之以詩曰:‘媚茲一人,應侯慎德,一人天子也應當也侯惟也言顏淵之德之以媚愛天子當於其心惟慎德永言孝思,孝思惟則.’言能長是孝道足以為法則也若逢有德之君,世受顯命,不失厥名,以御於天子,則王者之相也.在貧如客,言不以貧累志矜莊如為客也使其臣如借,言不有其臣如借使之也不遷怒,不深怨,不錄舊罪,是冉雍之行也.孔子論其材曰:‘有土之君子也,有眾使也,有刑用也,然後稱怒焉.’言有土地之君有眾足使有刑足用然後可以稱怒冉雍非有土之君故使其臣如借而不加怒也孔子告之以詩曰:‘靡不有初,鮮克有終,冉雍能終其行疋夫不怒,唯以亡其身.’因說不怒之義遂及疋夫以怒亡身不畏強禦,不侮矜寡,其言循性,循其性也而言不誣其爾其都以富,仲由長於富貴材任治戎,戎軍旅也是仲由之行也.孔子和之以文,說之以詩曰:‘受小拱大拱而為下國駿龐,荷天子之龍,孔子曰和仲由以文說之以詩此其義也拱法也駿大也龐厚也龍荷之言受大小法為下國大厚乃可任天下道也不戁不悚,敷奏其勇.’戁恐悚懼敷陳奏薦強乎武哉,文不勝其質,言子路強勇文不勝其質恭老恤幼,不忘賓旅,賓旅謂寄客也好學博藝,省物而勤也,省錄諸事而能勤也是冉求之行也.孔子因而語之曰:‘好學則智,恤孤則惠,恭則近禮,勤則有繼,堯舜篤恭以王天下,其稱之也,曰宜為國老.’國老助宣德教齊莊而能肅,志通而好禮,擯相兩君之事,篤雅有節,是公西赤之行也.子曰:‘禮經三百,可勉能也,’禮經三百可勉學而能知威儀三千則難也.能躬行三千之威儀則難可為而公西赤能躬行之公西赤問曰:‘何謂也?
자공이 대답하였다. 「어진 사람은 함부로 움직이지 않으므로【어진 사람은 함부로 움직이는 것이 없어 거동이 망령되지 않다】 어짐을 앎이 어려우니 그러므로 군자의 말에 『지혜는 사람을 앎보다 어려운 것이 없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대답하기 어렵습니다.」문자가 말하였다. 「어짐을 아는 데 어렵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지금 그대는 몸소 그 문하에서 배웠으므로 감히 묻습니다.」자공이 말하였다. 「부자의 문인은 대략 삼천 명이 와서 배웠는데 저는 미친 사람도 있고 미치지 못한 사람도 있으므로 두루 알지 못하여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문자가 말하였다. 「그대가 미친 사람들에 대하여 청컨대 그들의 덕행을 묻겠습니다.」자공이 대답하였다. 「능히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자며 시를 읊고 예를 숭상하며 행동에 허물을 거듭하지 않은 것은【이(贰)는 거듭이다. 착하지 못한 것이 있어 알지 못한 적이 없고 알고서 다시 하지 않았다】 말을 지어도 구차하지 않은 것은【말을 들어 법전에 합하고 구차하지 않다】 안회(顏回)의 덕행입니다. 공자가 시로 그에게 말하기를 『이 한 사람에게 친애하게 하되 덕을 삼가라【일인은 천자이다. 응(膺)은 마땅이고 후(侯)는 오직이다. 안연의 덕은 천자로 하여금 친애하게 하고 그 마음에 합당하게 하여 오직 덕을 삼가게 함에 족하다는 것】 길이 효의 생각을 말하여 효의 생각이 법칙이 되게 하라』【능히 이 효도를 길이 지켜 법칙이 되기에 족하다는 것】 하였습니다. 만약 덕 있는 임금을 만나면 대대로 높은 명을 받들고 그 명예를 잃지 않아 이로써 천자를 섬기면 왕자의 보좌가 됩니다. 가난한 데 처하기를 손님과 같이 하고【가난으로 뜻을 잃지 않고 공손하고 장중하여 손님과 같다】 그 신하를 부리기를 빌리는 것과 같이 하고【신하를 자기 소유로 삼지 않고 빌려 쓰는 듯하다】 노여움을 옮기지 않고 원망을 깊이 맺지 않고 옛 죄를 기록하지 않은 것은 염옹(冉雍)의 덕행입니다. 공자가 그의 재능을 논하여 말하기를 『토지가 있는 군자는 백성이 있으면 부리고 형벌이 있으면 쓸 수 있으니 그런 뒤에야 노하다 할 수 있다』【땅이 있는 임금은 백성이 부리기에 족하고 형벌이 쓰기에 족한 후에야 노하다 칭할 수 있다. 염옹은 땅이 있는 임금이 아니므로 신하를 부릴 때 빌리는 듯하고 노함을 가하지 않는다】 하였고 공자가 시로 그에게 말하기를 『처음이 좋지 않은 것이 없으나 끝을 능히 하는 자가 드물다【염옹은 끝내 그 덕을 능히 한다】. 필부가 노함을 억제하지 못하면 다만 이로써 그 몸을 망하게 할 뿐이다』【이에 노하지 않음의 의를 말하고 마침내 필부가 노함으로 몸을 망함을 말함】 하였습니다. 강폭한 자를 두려워하지 않고 과고를 업신여기지 않으며 말이 본성을 따르고【본성을 따라 말하면 속임이 없다】 부귀에 해당할 만한 용모가 있고 군을 다스릴 만한 재력이 있는 것은【융(戎)은 군대이다】 중유(仲由)의 덕행입니다. 공자가 문으로 그를 조화하고 시로 그에게 말하기를 『작은 법과 큰 법을 받들어 하국(下國)의 준방(駿龐)이 되고 천자의 총애를 받들어라【공자가 문으로 중유를 조화하고 시로 그에게 말함은 이 뜻이다. 공(拱)은 법이고 준(駿)은 크고 방(龐)은 두텁고 용(龍)은 떠맡음이다. 대소의 법칙을 받들어 하국의 크고 두터운 의탁을 지어야 천하의 도를 맡을 수 있다는 것】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않고 그 용기를 펴서 올려라』【연(戁)은 두려움이고 송(悚)은 두려움이며 부(敷)은 펼침이고 주(奏)는 바침이다】 하였으니 용무가 강하니 문이 그 질을 이기지 못합니다【자로의 강용함에 문이 질을 이기지 못함을 말함】. 늙은 이를 공경하고 어린 이를 불쌍히 여기며 기거하는 객을 잊지 않고【빈려(賓旅)는 기객(寄客)이다】 배우기를 좋아하고 재예가 넓으며 일을 살피고 부지런한 것은【여러 일을 살피고 능히 부지런함】 염구(冉求)의 덕행입니다. 공자가 이에 그에게 말하기를 『배우기를 좋아하는 것이 곧 지혜이고 고아와 약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이 곧 혜이며 공경하면 예에 가깝고 부지런하면 뒤가 이어진다. 요·순은 돈독히 공경하여 천하를 왕하였다』 하였고 그를 칭찬하여 『마땅히 국로(國老)가 되어야 한다』 하였습니다【국로는 덕을 가르치고 베풂을 돕는다】. 단정하고 장중하며 뜻이 통달하고 예를 좋아하여 두 나라 사이의 빈상(儐相)을 맡고 돈후하고 아정하여 절도가 있는 것은 공서적(公西赤)의 덕행입니다. 공자가 말하기를 『예경 삼백 편은 힘써 배워 알 수 있으나』【예경 삼백은 힘써 배워 알 수 있으나 위의 삼천은 어렵다. 삼천 가지 위의를 몸소 행하기 어려운데 공서적은 능히 몸소 행한다】 하였고 공서적이 묻기를 『무슨 뜻입니까』 하였습니다.
’子曰:‘貌以儐禮,禮以儐辭,是謂難焉.’言所以為者當觀容貌而儐相其禮度其禮而儐相其辭度事制儀故難也眾人聞之,以為成也.孔子語人曰:‘當賓客之事,則達矣.”眾人聞公西赤能行三千之威儀故以為成也孔子曰當賓客之事則達未盡達於治國之本體也謂門人曰:‘二三子之慾學賓客之禮者,其於赤也,滿而不盈,實而如虛,過之如不及,先王難之.’盈而如虛過而不及是先王之所難而會參體其行博無不學,其貌恭,其德敦,其言於人也,無所不信,其驕於人也,常以浩浩,浩然志大驕太貌也大人富貴者也是以眉壽,不慕富貴安靜虛無所以為之富貴是曾參之行也.孔子曰:‘孝,德之始也;悌,德之序也;悌以敬長是德之次序也信,德之厚也;
공자가 말하였다. 「용모로써 예에 돕고 예로써 사례(辭)에 도움을 구하니 이를 어렵다 한다」【하는 일이 용모를 보아 예에 돕고 예를 헤아려 사례에 도우며 일을 헤아려 의절을 이루니 그러므로 어렵다】. 뭇 사람이 듣고서 이미 이루었다 여겼다. 공자가 사람에게 말하기를 「빈객의 일을 맡으면 곧 통달한다」【뭇 사람이 공서적이 삼천 가지 위의를 행할 수 있음을 듣고 이미 이루었다 여김인데 공자는 빈객의 일이 통달하다 하였으나 아직 나라 다스림의 근본에 통달하지는 못하였다】 하였고 문인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빈객의 예를 배우고자 하면 적(赤)에게 배워라. 찼으나 차지 않은 듯하고 실하나 허한 듯하며 넘었으나 미치지 못한 듯한 것은 선왕도 어렵다 여겼다」【찼으나 허하고 넘었으나 미치지 못함은 선왕이 어렵게 여긴 바인데 증삼이 이런 덕을 몸소 체득하였다】. 널리 배워 배우지 않은 것이 없고 용모가 공손하며 덕이 돈후하고 사람에게 말함에 성실하지 않은 것이 없으며 대인에게 늘 호연한 기상이 있어【호연은 뜻이 큼을 말한다. 교는 기상이 큰 모습이고 대인은 부귀한 사람이다】 이로써 장수하였다. 부귀를 부러워하지 않고 적적하고 허무하여 능히 그러한 부귀를 얻은 것은 증삼(曾參)의 덕행이다. 공자가 말하였다. 「효는 덕의 시작이고 제는 덕의 차례이며【제는 어른을 공경함이니 덕의 차례이다】 신은 덕의 두터움이고
忠,德之正也.參中夫四德者也,以此稱之.’美功不伐,貴位不善,不侮不佚侮佚貪功慕勢之貌不傲無告,鰥寡孤獨此四者天民之窮而無告者也子張之行不傲此四者是顓孫師之行也.孔子言之曰:‘其不伐,則猶可能也,其不弊百姓,則仁也,不弊愚百姓即所謂不傲之也詩云:愷悌君子,民之父母.愷樂悌易也樂以強教之易以說安之民皆有是父之尊母之親也夫子以其仁為大學之深.’學而能入其深義也送迎必敬送迎賓客常能敬也上交下接若截焉,是卜商之行也.孔子說之以詩曰:‘式夷式已,無小人殆,式用夷平也言用平則已也殆危也無以小人至於危也若商也,其可謂不險矣.’險危也言子夏常厲以斷之近小人斷不危貴之不喜,賤之不怒,苟利於民矣,廉於行己,其事上也以佑其下,言所以事上乃欲佑助其下也是澹臺滅明之行也.孔子曰:‘獨貴獨富,君子助之,夫也中之矣.’夫謂滅明中猶當也先成其慮,及事而用之,故動則不妄,是言偃之行也.孔子曰:‘欲能則學,欲知則問,欲善則詳,欲善其事當詳慎也欲給則豫,事欲給而不礙則莫若於豫當是而行,偃也得之矣.’獨居思仁,公言仁義,其於詩也,則一日三覆白圭之玷,玷缺也詩曰白圭之玷尚可磨也斯言之玷不可為也一日三覆之慎之至也是宮絛之行也.孔子信其能仁,以為異士.殊異之士也大戴引之曰以為異姓婚姻也以兄之女妻之者也自見孔子,出入於戶,未嘗越禮,?來過之,足不履影,言其?
충은 덕의 바름이다. 삼이 이 네 가지 덕에 부합한다.」이것으로 그를 칭찬하였다. 아름다운 공을 스스로 자랑하지 않고 귀한 지위에 있어도 기뻐하지 않으며 모욕하고 태만하지 않고【모일(侮佚)은 공을 탐하고 세를 부러워하는 모습이다】 고소할 곳 없는 자를 업신여기지 않은 것은【과·과·고·독 이 네 가지는 천민 가운데 곤궁하여 고소할 곳이 없는 자인데 자장의 덕은 이 네 가지 사람을 업신여기지 않는다】 전손사(顓孫師)의 덕행이다. 공자가 그를 논하여 말하였다. 『그가 자랑하지 않은 것은 오히려 할 만하고 그가 백성을 곤비하지 않은 것은 어짐이다【우매한 백성을 곤비하지 않은 것이 이른바 업신여기지 않음이다】. 《시경》에 이르기를 화락하고 평이한 군자는 백성의 부모라【개(愷)는 즐거움이고 제(悌)는 평이이다. 화락으로 가르침을 강하게 하고 평이로 편안함을 기쁘게 하면 백성이 모두 이런 아비의 존엄과 어미의 친근을 얻는다】 하였으니 부자가 그의 인함으로 그의 배움이 깊다 하였다』【배워서 그 깊은 뜻에 들어갈 수 있다】. 보내고 맞이함에 반드시 공경하고【빈객을 보내고 맞이함에 늘 공경할 수 있다】 윗사람과 사귀고 아랫사람을 접함이 절연하여 분명한 것은【철(截)은 밝음이고 변(辨)은 구별이다. 절여(截如)는 한계가 분명한 모습이다】 복상(卜商)의 덕행이다. 공자가 시로 그에게 말하였다. 『공평을 쓰고 공평을 그치어 소인은 위태하지 않게 하라【식(式)은 씀이고 이(夷)는 평이다. 공평을 쓰면 그친다. 태(殆)는 위태이다. 소인으로 인하여 위태로움에 이르지 마라】. 상(商)과 같은 자는 위태롭지 않다 칭할 만하다』【험(險)은 위태이다. 자하는 늘 과단으로 스스로를 힘쓰며 소인에게 가까이 있어도 과단하여 위태롭지 않다】. 귀하게 되어도 기뻐하지 않고 천하게 되어도 노하지 않으며 다만 백성에게 이로움이 있으면 자기 몸을 청렴하게 하고 윗사람을 섬기는 것은 아랫사람을 도우려 하기 때문이니【윗사람을 섬기는 까닭은 아랫사람을 도우려 함을 말한다】 담대멸명(澹臺滅明)의 덕행이다. 공자가 말하였다. 『홀로 귀하고 홀로 부한 자는 군자가 그를 돕는다. 그 사람이 마땅함을 얻었다』【부(夫)는 멸명이고 중(中)은 마땅이다】. 먼저 그 생각을 숙성시켜 일이 닥쳐서 쓰므로 거동이 망령되지 않은 것은 언언(言偃)의 덕행이다. 공자가 말하였다. 『능히 하고자 하면 배우고 알고자 하면 물으며 잘하고자 하면 상세하고 삼가며【일을 잘하고자 하면 마땅히 상세하고 삼가야 한다】 넉넉히 공급하고자 하면 미리 준비하라【일을 넉넉하게 공급하여 막힘이 없고자 하면 미리 준비보다 좋은 것이 없다】. 이것에 따라 행하니 언이 그것을 얻었다』. 홀로 있으면 어짐을 생각하고 공적으로 말하면 의를 생각하며 시에 대해서는 하루에 세 번 백규의 흠을 되풀이한 것은【첨(玷)은 결함이다. 《시경》에 이르기를 백규의 흠은 오히려 갈 수 있으나 이 말의 흠은 어찌할 수 없다 하였으니 하루에 세 번 되풀이함은 삼감이 지극하다】 궁조(宮縧)의 덕행이다. 공자가 그가 능히 어짐을 믿어 특이한 선비라 여겼다【특이한 선비이다. 대대(大戴)의 인용에는 이성(異姓)이라 한 것은 혼인인데 형의 딸을 그에게 장가보냈다】. 공자를 뵌 뒤로는 문을 드나듦에 예를 넘은 적이 없고 오고 감에 발이 그림자를 밟지 않았으니【올 때 늘 옛 발자취를 따라가므로 발이 그림자를 밟지 않는다는 것】
來常跡故跡不履影也啟蟄不殺,春分當發蟄蟲啟戶鹹出於此時不殺生也方長不折,春夏生長養時草木不折執親之喪,未嘗見齒,是高柴之行也.孔子曰:‘柴於親喪,則難能也,啟蟄不殺,則順人道,方長不折,則恕仁也,成湯恭而以恕,是以日隮.’隮升也成湯行恭而能恕出見博鳥焉四面絕網乃去其三面詩曰湯降不遲聖敬日隮言湯疾行下人之道其聖敬之德日升聞也凡此諸子,賜之所親睹者也,吾子有命而訊賜,訊問賜也固不足以知賢.”文子曰:“吾聞之也,國有道則賢人興焉,中人用焉中庸之人為時用也乃百姓歸之,若吾子之論,既富茂矣,壹諸侯之相也,壹皆抑世未有明君,所以不遇也.”子貢既與衛將軍文子言,適魯見孔子曰:“衛將軍文子問二三子之於賜,不壹而三焉,賜也辭不獲命,以所見者對矣,未知中否,請以告.”孔子曰:“言之乎.”子貢以其辭狀告孔子.子聞而笑曰:“賜,汝次焉人矣.”言為知人之次子貢對曰:“賜也何敢知人,此以賜之所睹也.”孔子然:“吾亦語汝耳之所未聞,目之所未見者,豈思之所不至,智之所未及哉.”子貢曰:“賜願得聞之.”孔子曰:“不克不忌,不念舊怨,蓋伯夷叔齊之行也;思天而敬人,服義而行信,孝於父母,恭於兄弟,從善而不教,蓋趙文子之行也;其事君也,不敢愛其死,然亦不敢忘其身,謀其身不遺其友,君陳則進而用之,陳謂陳列於君為君之使用也不陳則行而退,蓋隨武子之行也;其為人之淵源也,多聞而難誕,誕嘆內植足以沒其世,國家有道,其言足以治,無道,其默足以生,蓋銅鍉伯華之行也;外寬而內正,自極於隱括之中,隱括所以自極直己而不直人,汲汲於仁,以善自終,蓋蘧伯玉之行也;孝恭慈仁,允德義圖,允信也圖謀也約貨去怨,夫利怨之所聚故約省其貨以遠去其怨輕財不匱,蓋柳下惠之行也;
겨울잠 자던 벌레가 땅에서 나올 때 생명을 죽이지 않고【춘분에 마땅히 움직이던 벌레가 땅에서 나오게 하는데 이 때 생명을 죽이지 않는다】 자라는 것은 꺾지 않았으며【봄여름에 생육할 때 초목을 꺾지 않는다】 부모의 상을 당하여 이를 드러내고 웃은 적이 없는 것은 고시(高柴)의 덕행이다. 공자가 말하였다. 『시(柴)는 부모의 상에 있어서 능히 하기 어려운 것이고 동면한 벌레가 나올 때 죽이지 않은 것은 인도에 따름이며 자라는 것을 꺾지 않은 것은 서인(恕仁)이다. 탕(湯)은 공경하고 또 능히 용서하므로 이로써 성덕이 날로 올랐다』【제(𬯀)는 오름이다. 탕의 행함이 공경하고 능히 용서하였다. 나가서 새를 잡는 그물이 사방으로 둘러막힌 것을 보고 이에 세 면을 거두었다. 《시경》에 이르기를 탕이 내림이 늦지 않으니 성스러운 공경이 날로 오르네 하였으니 탕이 아랫사람의 도를 행함이 급하고 그 성스럽고 공경한 덕이 날로 올라 들렸다는 것】. 무릇 이 여러 사람들은 모두 내가 몸소 본 것이다. 그대께서 명이 있어 나에게 물으셨으나【신(訊)은 물음이다】 나는 본래 어짐을 알기에 족하지 않습니다.」문자가 말하였다. 「내가 듣기에 나라에 도가 있으면 어진 사람이 일어나고 중등의 사람은 그 때에 쓰이어【중용의 사람이 그 때에 쓰임】 이에 백성이 귀의한다 하였습니다. 그대의 논함을 살피건대 이미 부유하고 무성하여 모두 제후의 보좌가 될 만한데【일(壹)은 모두이다】 다만 세상에 밝은 임금이 아직 없어 만나지 못한 것입니다.」자공이 이미 위나라 장군 문자와 말을 마치고 노나라에 이르러 공자를 뵙고 말하였다. 「위나라 장군 문자가 저에게 여러 제자를 물었는데 한두 번이 아니라 세 번에 이르렀습니다. 제가 사양하였으나 허락을 얻지 못하여 본 대로 대답하였는데 옳은지 그른지 알지 못하니 청컨대 이로써 아뢰겠습니다.」공자가 말하였다. 「말하여 보아라.」자공이 그 언사와 정형을 공자에게 고하니 공자가 듣고 웃으며 말하였다. 「사(賜)야, 너는 이미 사람을 품평할 수 있게 되었다」【사람을 아는 다음 등급이 되었다는 것】. 자공이 대답하여 말하였다. 「제가 어찌 감히 사람을 알겠습니까. 이것은 다만 제가 본 것을 따른 것입니다.」공자가 말하였다. 「그렇다. 나도 또한 너의 귀가 듣지 못하고 눈이 보지 못한 것을 말해 주겠는데 어찌 생각이 미치지 못하고 지혜가 따라잡지 못하는 것이겠는가.」자공이 말하였다. 「저는 듣기를 원합니다.」공자가 말하였다. 「가혹하지 않고 시기하지 않으며 옛 원한을 기억하지 않은 것은 대개 백이·숙제(伯夷・叔齊)의 덕행이다. 하늘을 생각하고 사람을 공경하며 의를 따르고 믿음을 행하여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에게 공손하며 선을 따르되 사람을 가르치지 않은 것은 대개 조문자(趙文子)의 덕행이다. 그 임금을 섬기는 데 자기 죽음을 아끼지 않으면서도 감히 자신을 잊지 않고 자신을 위하여 꾀하는 데 벗을 버리지 않으며 임금이 그를 진열하면 나아가 쓰이고【진(陳)은 진열로 임금에게 진열되어 쓰임】 진열하지 않으면 물러나 물러난 것은 대개 수무자(隨武子)의 덕행이다. 그 사람됨이 연원(淵源)과 같아 많이 들어 속기 어렵고【탄(誕)은 속임이다】 안으로 세운 것이 그 일생을 지내기에 족하여 나라에 도가 있으면 그 말이 다스리기에 족하고 도가 없으면 그 침묵이 살아남기에 족한 것은 대개 동제백화(銅鞮伯華)의 덕행이다. 겉은 너그럽고 속은 바르며 자신을 은괄(隱括)의 규矩에 바르게 하고【은괄은 바로잡아 곧게 하는 도구이다】 자신은 바르되 남의 바름을 구하지 않으며 급급히 어짐을 힘쓰고 선으로써 그 마침을 이룬 것은 대개 거백옥(蘧伯玉)의 덕행이다. 효도하고 공손하며 자애롭고 어질어 덕에 믿음이 있고 의를 꾀하며【윤(允)은 믿음이고 도(圖)는 꾀함이다】 재물을 줄여 원망을 없애고【이(利)는 원망이 모이는 곳이므로 재물을 줄여 원망을 멀리한다】 재물을 가볍게 여겨도 궁핍하지 않은 것은 대개 유하혜(柳下惠)의 덕행이다.
其言曰,君雖不量於其身,謂不量度其臣之德器也臣不可以不忠於其君,是故君擇臣而任之,臣亦擇君而事之,有道順命,君有道則順從其命無道衡命,衡橫也謂不受其命之隱居者也蓋晏平仲之行也;蹈忠而行信,終日言不在尤之內,尤過國無道,處賤不悶,悶憂貧而能樂,蓋老子之行也;易行以俟天命,易治居下不援其上,雖在下位不攀援其上以求進其親觀於四方也,不忘其親,不盡其樂,雖有觀四方之樂常念其親不盡其歸之以不能則學,不為己終身之憂,凡憂憂所知不能則學何憂之有蓋介子山之行也.”子貢曰:“敢問夫子之所知者,蓋盡於此而已乎?”孔子曰:“何謂其然?亦略舉耳目之所及而矣.昔晉平公問祁奚曰:‘羊舌大夫,晉之良大夫也,其行如何?’祁奚辭以不知.公曰:‘吾聞子少長乎其所,於其所長今子掩之,何也?’祁奚對曰:‘其少也恭而順,心有恥而不使其過宿;心常有所恥惡及其有過不令更宿輒改其為大夫,悉善而謙其端;盡善道而謙讓是其正也其為輿尉也,信而好直其功,言其功直,至於其為容也,溫良而好禮,博聞而時出其志.’時出以其出之誨未及之是其志也公曰:‘曩者問子,子奚曰不知也?’祁奚曰:‘每位改變,未知所止,是以不敢得知也,此又羊舌大夫之行也.’”子貢跪曰:“請退而記之.”
그의 말에 이르기를 임금이 신하의 몸을 헤아리지 않을지라도【신하의 덕과 그릇을 헤아리지 않음을 말한다】 신하는 임금에게 충성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임금은 신하를 가려 쓰고 신하도 또한 임금을 가려 섬기며 도가 있으면 명을 따르고【임금에게 도가 있으면 그 명을 따름】 도가 없으면 가로로 명을 받지 않는다 하였으니【형(衡)은 가로로 명을 받지 않고 은거함을 말한다】 대개 안평중(晏平仲)의 덕행이다. 충성을 밟고 믿음을 행하여 하루 종일 말해도 허물 안에 있지 않으며【우(尤)는 허물이다】 나라에 도가 없으면 낮고 천한 데 처해도 근심하지 않고【민(悶)은 근심이다】 가난하면서도 능히 즐기는 것은 대개 노자(老子)의 덕행이다. 행동을 닦아 천명을 기다리며【역(易)은 다스림이다】 아랫자리에 있어도 위를 붙잡지 않고【아랫자리에 있을지라도 위를 붙잡고 나아감을 구하지 않는다】 사방에 유람하면서도 그 부모를 잊지 않고 즐거움을 다하지 않으며【사방을 보는 즐거움이 있을지라도 늘 부모를 생각하여 돌아오는 즐거움을 다하지 않는다】 능하지 못함으로 배워서 평생의 근심을 자신에게 남기지 않은 것은【무릇 근심이란 그 아는 것이 능하지 못함을 근심하는 것인데 능히 배우면 무슨 근심이 있겠는가】 대개 개자산(介子山)의 덕행이다.」자공이 말하였다. 「감히 묻겠습니다. 부자께서 아시는 바가 대개 여기에서 그칩니까.」공자가 말하였다. 「어찌 그렇겠느냐. 다만 대략 귀와 눈이 미친 것을 든 것뿐이다. 옛날에 진평공(晉平公)이 기해(祁奚)에게 물어 말하였다. 『양설대부(羊舌大夫)는 진나라의 훌륭한 대부인데 그 덕행이 어떠한가』하니 기해가 사양하여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공이 말하였다. 『내가 듣기에 그대는 어려서부터 그곳에서 자랐다 하는데【그가 자라난 곳에 있었음】 지금 그대가 그를 가리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하니 기해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그가 어렸을 때는 공경하고 순종하였고 마음에 부끄러움이 있어 그 허물을 하룻밤 묵히지 않았으며【마음에 늘 부끄럽고 미워하는 것이 있어 허물이 있으면 하룻밤 묵히지 않고 고쳤다】 그가 대부가 되어서는 선을 다하고 겸양하였으니 그것이 그의 바름이었고【선도를 다하고 겸양함이 그의 바름이다】 그가 여위(輿尉)가 되어서는 믿음이 있고 그의 공을 곧장 말하기를 좋아하였으며【그의 공이 곧음을 말한다】 그 용모에 이르러서는 온량하고 예를 좋아하며 널리 듣고 때에 그 뜻을 내놓았습니다【때에 내놓아 아직 미치지 못한 자를 가르치는 것이 그의 뜻이다』 하였습니다.」공이 말하였다. 『이전에 그대에게 물었을 때 그대는 어찌하여 모른다 하였는가』하니 기해가 말하였다. 『자리마다 변화하여 어디에 머무는지 알지 못하므로 감히 안다고 말하지 못한 것이니 이것이 또한 양설대부의 덕행입니다』 하였다.」자공이 꿇어앉아 말하였다. 「청컨대 물러가서 기록하겠습니다.」
賢君第十三
현군(賢君) 제십삼(第十三)
哀公問於孔子曰:“當今之君,孰為最賢?”孔子對曰:“丘未之見也,抑有衛靈公乎?”公曰:“吾聞其閨門之內無別,而子次之賢,何也?”孔子曰:“臣語其朝廷行事,不論其私家之際也.”公曰:“其事何如?”孔子對曰:“靈公之弟曰,靈公弟子渠牟,其智足以治千乘,其信足以守之,靈公愛而任之.又有士林國者,見賢必進之,而退與分其祿,是以靈公無遊放之士,靈公賢而尊之.又有士曰慶足者,衛國有大事則必起而治之,國無事則退而容賢,言其所以退者欲以容賢於朝靈公悅而敬之.又有大夫史?,以道去衛,而靈公郊舍三日,琴瑟不御,必待史?之入,而後敢入.臣以此取之,雖次之賢,不亦可乎.”
노애공(魯哀公)이 공자에게 물었다. 「당금의 임금 가운데 누가 가장 어집니까.」공자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저는 아직 보지 못하였으나 아마 위령공(衛靈公)이 아닐까 합니다.」애공이 말하였다. 「내가 듣기에 그는 규문 안에 분별이 없다 하는데 그대는 그를 어진 데 차례시키니 무슨 까닭입니까.」공자가 말하였다. 「신은 그의 조정의 일을 말할 뿐이고 그의 사가(私家)에서의 처신은 논하지 않습니다.」애공이 말하였다. 「그 일들이 어떻습니까.」공자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영공의 아우 공자거모(公子渠牟)【영공의 아우 자거모】는 지혜가 천승(千乘)을 다스리기에 족하고 믿음이 그것을 지키기에 족하니 영공이 사랑하여 그를 기용하였고 또 선비 임국(林國)이 있어 어진 사람을 보면 반드시 천거하며 물러나면 그의 녹봉을 나누어 주어 위령공에게 놀고 방종한 선비가 없었고【그의 녹봉을 나누어 주므로 유유자적하는 선비가 없음】 영공이 그를 어질다 여기고 존중하였으며 또 선비 경족(慶足)이 있어 위나라에 큰일이 있으면 곧 나와서 다스리고 나라에 일이 없으면 곧 물러나 어진 사람을 용납하였으니【그가 물러나는 까닭은 조정에 어진 자리를 비워 두려 함을 말함】 영공이 기뻐하고 공경하였으며 또 대부 사어(史魚)가 있어 도를 따라 위나라를 떠나니 영공이 교외에 머문 지 사흘 동안 금슬을 타지 않고 반드시 사어가 돌아오기를 기다린 뒤에야 감히 성에 들어갔습니다. 신이 이로써 그를 취하니 비록 어진 데 차례시켜도 또한 옳지 않겠습니까.」
子貢問於孔子曰:“今之人臣,孰為賢?”子曰:“吾未識也,?者齊有鮑叔,鄭有子皮,則賢者矣.”子貢曰:“齊無管仲,鄭無子產.”子曰:“賜,汝徒知其一,未知其二也.汝聞用力為賢乎?進賢為賢乎?”子貢曰:“進賢賢哉.”子曰:“然,吾聞鮑叔達管仲,子皮達子產,未聞二子之達賢己之才者也.”
자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지금의 신하 가운데 누가 어집니까.」공자가 말하였다.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옛적에 제(齊)나라에 포숙(鮑叔)이 있었고 정(鄭)나라에 자피(子皮)가 있었으니 곧 어진 사람이다.」자공이 말하였다. 「제나라에 관중(管仲)이 없고 정나라에 자산(子産)이 없습니까.」공자가 말하였다. 「사야, 너는 그 하나만 알고 그 둘은 알지 못하는구나. 너는 힘쓰는 것이 어짐이라 듣는가, 어진 사람을 천거하는 것이 어짐이라 듣는가.」자공이 말하였다. 「어진 사람을 천거하는 것이 어짐입니다.」공자가 말하였다. 「그렇다. 내가 듣기에 포숙이 관중을 현달하게 하고 자피가 자산을 현달하게 하였다 들었으나 아직 이 두 사람이 자기보다 더 어진 사람을 현달하게 하였다 듣지 못하였다.」
哀公問於孔子曰:“寡人聞忘之甚者,徙而忘其妻,有諸?”孔子對曰:“此猶未甚者也.甚者乃忘其身.”公曰:“可得而聞乎?”孔子曰:“昔者夏桀,貴為天子,富有四海,忘其聖祖之道,壞其典法,廢其世祀,荒於淫樂,耽湎於酒,佞臣諂諛,窺導其心,忠士折口,逃罪不言,折口杜口天下誅桀.而有其國,此謂忘其身之甚矣.”
노애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과인이 듣기에 건망증이 지극한 자는 집을 옮기면서 그 아내를 잊었다 하는데 이런 일이 있습니까.」공자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이것은 아직 건망증이 지극한 것이 아닙니다. 지극한 것은 곧 자기 몸을 잊는 것입니다.」애공이 말하였다. 「들을 수 있겠습니까.」공자가 말하였다. 「옛적에 하(夏)나라 걸(桀)은 귀하여 천자가 되고 부하여 사해를 가졌으나 그 성스러운 조상의 도를 잊고 그 전법(典法)을 무너뜨리며 대대로 이어 온 제사를 폐하고 음란한 놀이에 빠지며 술에 탐닉하였다. 아첨하는 신하는 아첨하고 아부하며 그의 마음을 엿보아 이끌었고 충직한 선비는 입을 다물고【절구(折口)는 입을 다뭄이다】 죄를 피하여 감히 말하지 못하였다. 천하가 걸을 죽이고 그 나라를 가졌으니 이것이 자기 몸을 잊음이 지극하다고 이르는 것입니다.」
顏淵將西遊於宋,問於孔子曰:“何以為身?”子曰:“恭敬忠信而已矣.恭則遠於患,敬則人愛之,忠則和於眾,信則人任之,勤斯四者,可以政國,豈特一身者哉.特但故夫不比於數,而比於,不亦遠乎;不比親數近疏遠也不修其中,而修外者,不亦反乎;慮不先定,臨事而謀,不亦晚乎.”
안연이 장차 서쪽으로 나아가 송(宋)나라에 가려고 공자에게 물어 말하였다. 「무엇으로 몸을 세웁니까.」공자가 말하였다. 「공경하고 충성하며 믿음이면 족하다. 공손하면 재화를 멀리하고 삼가면 사람의 사랑을 받으며 충성하면 뭇 사람과 화합하고 믿음이 있으면 사람에게 기용된다. 이 네 가지를 부지런히 하면 이로써 한 나라도 다스릴 수 있으니 어찌 다만 한 몸뿐이겠는가【특(特)은 다만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친할 곳에 친하지 않고 소원할 곳을 친하는 것은 또한 멀리 빗나가지 않았는가【친할 곳에 친하지 않고 소원할 곳을 친함】. 그 안을 닦지 않고 그 바깥을 닦는 것은 또한 거꾸로 되지 않았는가. 생각을 먼저 정하지 않고 일에 임하여 꾀하는 것은 또한 늦지 않았는가.」
孔子讀詩於正月六章,惕焉如懼,曰:“彼不達之君子,豈不殆哉.從上依世則道廢,違上離俗則身危,時不興善,己獨由之,則曰非妖即妄也.故賢也既不遇天,恐不終其命焉,桀殺龍逢,紂殺比干,皆類是也.詩曰:‘謂天蓋高,不敢不局,謂地蓋厚,不敢不蹐.’此正月六章之辭也局曲也言天至高己不敢不曲身危行恐上幹忌諱也蹐累足也言地至厚己不敢不累足恐陷累在位之羅網此言上下畏罪,無所自容也.”
공자가 시를 읽다가 《정월(正月)》 육장에 이르러 근근히 두려운 듯하여 말하였다. 「저 뜻을 얻지 못한 군자는 위태롭지 않은가. 윗사람을 따르고 세상에 의지하면 곧 도가 폐하고 윗사람을 거스르고 속을 떠나면 곧 몸이 위태롭다. 세상이 선을 일으키지 않아 자기 혼자 이 길을 가면 곧 요사스럽다 하거나 망령되다 한다. 그러므로 어진 사람은 이미 천시(天時)를 만나지 못하고 또 그 명을 다하지 못할까 두렵다. 걸(桀)이 관룡봉(關龍逢)을 죽이고 주(紂)가 비간(比干)을 죽였으니 모두 이런 부류이다. 《시경》에 이르기를 『하늘이야 높다고 말해도 감히 몸을 굽히지 않을 수 없고 땅이야 두텁다고 말해도 감히 발을 모아 걷지 않을 수 없다』【이것은 《정월》 육장의 구절이다. 국(跼)은 굽힘으로 하늘이 지극히 높다고 말해도 자기가 감히 몸을 굽혀 삼가 걷지 않을 수 없으니 위의 꺼림을 범할까 두려워함이다. 척(蹐)은 발을 모음으로 땅이 지극히 두텁다고 말해도 자기가 감히 발을 모아 걷지 않을 수 없으니 재위자의 그물에 빠질까 두려워함이다】 하였으니 이것은 위아래 죄에 들까 두려워하여 몸을 둘 곳이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子路問於孔子曰:“賢君治國,所先者何?”孔子曰:“在於尊賢而賤不肖.”子路曰:“由聞晉中行氏尊賢而賤不肖矣,其亡何也?”孔子曰:“中行氏尊賢而不能用,賤不肖而不能去,賢者知其不用而怨之,不肖者知其必己賤而讎之,怨讎並存於國,鄰敵構兵於郊,中行氏雖欲無亡,豈可得乎.”
자로가 공자에게 물었다. 「어진 임금이 나라를 다스릴 때 가장 먼저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공자가 말하였다. 「그 어진 사람을 존중하고 불초한 자를 가볍게 여김에 있다.」자로가 말하였다. 「제가 듣기에 진(晉)나라 중행씨(中行氏)는 어진 사람을 존중하고 불초한 자를 가볍게 여겼다 하는데 그가 망한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공자가 말하였다. 「중행씨는 어진 사람을 존중하였으나 쓸 수 없었고 불초한 자를 가볍게 여겼으나 제거할 수 없었다. 어진 사람은 자기를 쓰지 않음을 알고 그를 원망하고 불초한 자는 자기가 반드시 가볍게 여겨짐을 알고 그를 원수로 여겼다. 원망과 원수가 나란히 존재하여 나라 안에 있고 이웃 적이 교외에서 전쟁을 벌이니 중행씨는 비록 망하지 않으려 하여도 어찌 그것을 얻겠는가.」
孔子閒處,喟然而嘆曰:“向使銅鞮伯華無死,則天下其有定矣.”子路曰:“由願聞其人也.”子曰:“其幼也敏而好學,其壯也有勇而不屈,其老也有道而能下人,有此三者,以定天下也,何難乎哉!”子路曰:“幼而好學,壯而有勇,則可也.若夫有道下人,又誰下哉?”子曰:“由不知,吾聞以眾攻寡,無不克也,以貴下賤,無不得也.昔者周公居冢宰之尊,制天下之政,而猶下白屋之士,草屋也日見百七十人,斯豈以無道也,欲得士之用也.惡有道而無下天下君子哉?”
공자가 한가히 있으면서 탄식하여 말하였다. 「만약 동제백화(銅鞮伯華)가 죽지 않았더라면 천하가 아마 평정되었으리라.」자로가 말하였다. 「저는 그 사람을 듣기를 원합니다.」공자가 말하였다. 「그가 어렸을 때는 민첩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였고 장년에는 용기가 있어 굴복하지 않았으며 늙어서는 도가 있어 능히 아래에 처하였다. 이 세 가지로 천하를 평정함에 무슨 어려움이 있으랴.」자로가 말하였다. 「어려서 배우기를 좋아하고 장년에 용기가 있으면 곧 옳습니다. 만약 도가 있어 능히 아래에 처함은 또한 누구 아래에 처합니까.」공자가 말하였다. 「너는 알지 못한다. 내가 듣기에 무리로써 적은 무리를 치면 이기지 못함이 없고 귀한 자가 천한 자 아래에 처하면 얻지 못함이 없다 하였다. 옛적에 주공(周公)은 총재(冢宰)의 존위에 있으면서 천하의 정치를 제정하였으나 오히려 백옥(白屋)의 선비 아래에 처하여【백옥은 초옥이다】 하루에 만난 선비가 백칠십 명이었다. 이것이 어찌 도가 없음이겠는가. 선비의 쓰임을 얻고자 함이다. 어찌 도가 있으면서 천하의 군자 아래에 처하지 않는 자가 있으랴.」
齊景公來適魯,舍於公館,使晏嬰迎孔子,孔子至,景公問政焉.孔子答曰:“政在節財.”公悅,又問曰:“秦穆公國小處僻而霸,何也?”孔子曰:“其國雖小其志大,處雖僻而政其中,其舉也果,其謀也和,法無私而令不愉,愉宜為偷愉苟且也首拔五羖,爵之大夫,首宜為身五羖大夫百里奚也與語三日而授之以政,此取之雖王可,其霸少矣.”景公曰:“善哉.”
제경공(齊景公)이 노(魯)나라에 와서 공관(公館)에 머물고 안영(晏嬰)을 보내 공자를 맞이하게 하였다. 공자가 이르니 경공이 그에게 정치를 물었다. 공자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정치는 재용(財用)을 절약함에 있습니다.」공이 기뻐하며 또 물어 말하였다. 「진목공(秦穆公)은 나라가 작고 처한 곳이 외지면서도 패하였으니 무슨 까닭입니까.」공자가 말하였다. 「그 나라는 비록 작으나 그 뜻은 컸고 처한 곳은 비록 외지나 그 정치는 가운데 얻었습니다. 그 거동도 과단하고 그 꾀도 화합하며 그 법도 사사로움이 없고 명령이 구차하지 않았으며【유(愉)는 마땅히 투(偷)로 하니 구차함이다】 몸소 검은 양가죽 다섯 장으로 사 온 자를 발탁하여 대부의 작위를 주고【수(首)는 마땅히 신(身)으로 하니 오곡대부(五羖大夫)는 백리해(百里奚)이다】 그와 사흘 동안 이야기하여 이로써 정치를 맡겼습니다. 이것으로 인재를 가리니 비록 왕이라 칭하여도 좋은데 패는 작습니다.」경공이 말하였다. 「좋도다.」
哀公問政於孔子.孔子對曰:“政之急者,莫大乎使民富且壽也.”公曰:“為之奈何?”孔子曰:“省力役,薄賦斂,則民富矣;敦禮教,遠罪疾,則民壽矣.”公曰:“寡人慾行夫子之言,恐吾國貧矣.”孔子曰:“詩云:‘愷悌君子,民之父母.’未有子富而父母貧者也.”
노애공이 공자에게 정치를 물었다. 공자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정치가 급한 것은 백성을 부유하고 장수하게 함보다 큰 것이 없습니다.」애공이 말하였다. 「어떻게 합니까.」공자가 말하였다. 「역역(力役)을 줄이고 부세를 가볍게 하면 곧 백성이 부유해질 것이고 예교(禮敎)를 숭상하고 죄질(罪疾)을 멀리하면 곧 백성이 장수할 것입니다.」애공이 말하였다. 「과인이 부자의 말을 행하고자 하나 혹 우리나라가 가난해질까 두렵습니다.」공자가 말하였다. 「《시경》에 이르기를 『화락하고 평이한 군자는 백성의 부모이다』 하였으니 아직 그 자식이 부유한데 그 부모가 가난한 적이 없습니다.」
衛靈公問於孔子曰:“有語寡人有國家者,計之於廟堂之上,則政治矣,何如?”孔子曰:“其可也,愛人者則人愛之,惡人者則人惡之,知得之己者則知得之,人所謂不出環堵之室而知天下者,知反己之謂也.”
위령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과인에게 말하는 자가 있어 이르기를 국가를 가진 자는 묘당(廟堂) 위에서 꾀하면 곧 정치가 다스려진다 하니 어떻습니까.」공자가 말하였다. 「옳습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자는 곧 사람이 그를 사랑하고 사람을 미워하는 자는 곧 사람이 그를 미워합니다. 자기에게서 얻음을 알면 곧 남에게서 얻음을 압니다. 이른바 사담(堵)으로 둘린 방을 나가지 않고 천하를 안다는 것은 자기에게 돌이킴을 앎을 이르는 것입니다.」
孔子見宋君,君問孔子曰:“吾欲使長有國,而列都得之,國之列都皆得其道吾欲使民無惑,吾欲使士竭力,吾欲使日月當時,吾欲使聖人自來,吾欲使官府治理,為之奈何?”孔子對曰:“千乘之君,問丘者多矣,而未有若主君之問,問之悉也.然主君所欲者,儘可得也.丘聞之,鄰國相親,則長有國;君惠臣忠,則列都得之;不殺無辜,無釋罪人,則民不惑;士益之祿,則皆竭力;尊天敬鬼,則日月當時;崇道貴德,則聖人自來;任能黜否,則官府治理.”宋君曰:“善哉!豈不然乎!寡人不佞,不足以致之也.”孔子曰:“此事非難,唯欲行之雲耳.”
공자가 송나라 임금을 뵈니 임금이 공자에게 물었다. 「나는 오래 나라를 보존하고 여러 도읍을 다스리고자 하며【나라의 여러 도읍이 그 도를 얻기를 원함】 백성으로 하여금 미혹이 없게 하고자 하고 선비로 하여금 힘을 다하게 하고자 하며 일월이 때에 합하게 하고자 하고 성인이 스스로 오기를 바라며 관부가 다스려지기를 바라니 어떻게 합니까.」공자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천승의 임금이 저에게 묻는 자가 많았으나 아직 주군의 물음이 이와 같이 두루 갖춘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군이 원하시는 바는 모두 얻을 수 있습니다. 제가 듣기에 이웃 나라가 서로 친하면 곧 오래 나라를 보존하고 임금이 은혜를 베풀고 신하가 충성하면 곧 도읍이 다스려지며 죄 없는 자를 죽이지 않고 죄 있는 자를 놓아주지 않으면 곧 백성이 미혹하지 않으며 선비에게 녹봉을 더해 주면 곧 모두 힘을 다하고 하늘을 존경하고 귀신을 공경하면 곧 일월이 때에 합하며 도를 숭상하고 덕을 귀하게 여기면 곧 성인이 스스로 오며 능한 자를 기용하고 불초한 자를 물리치면 곧 관부가 다스려집니다.」송나라 임금이 말하였다. 「좋도다.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과인은 재주가 없어 이것을 이끌어오기에 족하지 못하다.」공자가 말하였다. 「이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다만 행하고자 할 뿐입니다.」
辯政第十四
변정(辯政) 제십사(第十四)
子貢問於孔子曰:“昔者齊君問政於夫子,夫子曰:‘政在節財.’魯君問政於夫子,子曰:‘政在諭臣.’葉公問政於夫子,夫子曰:‘政在悅近而遠來.’三者之問一也,而夫子應之不同,然政在異端乎?”孔子曰:“各因其事也.齊君為國,奢乎臺榭,淫於苑囿,五官伎樂,不解於時,一旦而賜人以千乘之家者三,故曰政在節財.魯君有臣三人,孟孫叔孫季孫三也內比周以愚其君,外距諸侯之賓,以蔽其明,故曰政在諭臣.夫荊之地廣而都狹,民有離心,莫安其居,故曰政在悅近而來遠.此三者所以為政殊矣.詩云:‘喪亂蔑資,曾不惠我師,’蔑無也資財也師眾也夫為亡亂之政重賦厚斂民無資財曾莫肯愛我眾此傷奢侈不節,以為亂者也;又曰:‘匪其止共,惟王之邛.’止止息也邛病也讒人不共所止息故惟王之病此傷奸臣蔽主以為亂也;又曰:‘亂離瘼矣,奚其適歸.’離憂也瘼病也言離散以成憂憶禍亂於斯歸於禍亂者也此傷離散以為亂者也.察此三者,政之所欲,豈同乎哉!”
자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옛적에 제나라 임금이 부자에게 정치를 물으니 부자가 말하기를 『정치는 재용을 절약함에 있다』 하였고 노나라 임금이 부자에게 정치를 물으니 부자가 말하기를 『정치는 신하를 깨우침에 있다』 하였으며 섭공(葉公)이 부자에게 정치를 물으니 부자가 말하기를 『정치는 가까운 이를 기쁘게 하고 먼 이가 오게 함에 있다』 하였습니다. 세 사람의 물음은 하나인데 부자의 대답이 각각 다르니 그러면 정치가 다른 갈래가 있습니까.」공자가 말하였다. 「각각 그 일에 따른 것이다. 제나라 임금이 나라를 다스림에 대사(臺榭)에 사치를 극하고 원유(苑囿)에 음락을 극하며 오관(五官)의 기악(伎樂)이 쉬는 때가 없고 하루에 세 번 천승의 집을 사람에게 내려 주니 그러므로 정치는 재용을 절약함에 있다 하였다. 노나라 임금에게 신하 세 사람이 있어【맹손(孟孫)·숙손(叔孫)·계손(季孫)】 안으로 결탁하여 그 임금을 어리석게 하고 밖으로 제후의 빈객을 막아 그 밝음을 가리니 그러므로 정치는 신하를 깨우침에 있다 하였다. 초(荊)나라 땅은 넓고 도읍은 좁아 백성이 흩어지려는 마음이 있어 편안히 사는 자가 없으니 그러므로 정치는 가까운 이를 기쁘게 하고 먼 이가 오게 함에 있다 하였다. 이 세 가지가 정치가 서로 다른 까닭이다. 《시경》에 이르기를 『상란(喪亂)에 자산이 없으니 어찌 우리 백성을 은혜하지 않는가』【멸(蔑)은 없음이고 자(資)는 재물이며 사(師)는 무리이다. 망할 난의 정치를 행하여 부세를 무겁고 두텁게 거두니 백성이 자산이 없는데도 어찌 우리 백성을 은혜하고 사랑하지 않는가】 하였으니 이것은 사치를 절제하지 않아 난을 이룸을 슬퍼함이며 또 이르기를 『그 멈추고 공경해야 할 자리에 있지 않고 다만 왕의 병이 되는구나』【지(止)는 그침이고 공(邛)은 병이다. 참소하는 사람이 마땅히 멈추어야 할 자리에서 공경하지 않으므로 다만 왕의 병을 만든다】 하였으니 이것은 간신이 주상을 가려 난을 이룸을 슬퍼함이며 또 이르기를 『난리가 이미 병이 되었으니 어디로 돌아갈까』【리(離)는 근심이고 막(瘼)은 병이다. 이산이 근심이 되고 화란이 여기에 이르렀으니 돌아갈 곳이 화란이다】 하였으니 이것은 이산으로 난을 이룸을 슬퍼함이다. 무릇 이 세 가지를 살피면 정치하고자 하는 바가 어찌 같겠는가.」
孔子曰:“忠臣之諫君,有五義焉.一曰譎諫,正其事以譎諫其君二曰戇諫,戇諫無文飾也三曰降諫,卑降其體所以諫也四曰直諫,五曰風諫.唯度主而行之,吾從其風諫乎.”風諫依違遠罪避害者也
공자가 말하였다. 「충신이 임금에게 간하는 데 다섯 가지 의가 있다. 첫째는 궐간(譎諫)이니【그 일을 바르게 하고 완곡한 말로 임금에게 간한다】 둘째는 당간(戇諫)이니【당간은 문장으로 꾸밈이 없다】 셋째는 강간(降諫)이니【몸을 낮추어 간한다】 넷째는 직간(直諫)이요 다섯째는 풍간(風諫)이다. 다만 주상을 헤아려 그것을 행할 뿐이니 나는 그 풍간을 따르겠다.」【풍간은 의위하여 그 말을 돌려 죄를 멀리하고 해를 피한다】
子曰:夫道不可不貴也.中行文子倍道失義,以亡其國,而能禮賢,以活其身,此說陪道失義不宜說得道之意而云禮賢不與上相次配又文子無禮賢之事中行文子得罪於晉出亡至邊從者曰謂此嗇夫者君子也故休馬待駿者文子曰吾好音以子遺吾琴好佩子遺吾玉是以不振吾過自容於我者也吾怨其以我求容也遂不入車人問文子之所右執而不殺之孔子聞之曰文子倍道失義以亡其國然得之由活其身而能禮賢以為宜以然後得也聖人轉禍為福,此謂是與.”若入將死不入得活故曰轉禍為福
공자가 말하였다. 도는 귀중히 여기지 않을 수 없다. 중행문자(中行文子)가 도를 배반하고 의를 잃어 이로써 그 나라를 망하게 하였으나 그런 뒤에도 능히 어진 사람을 예로 대하여 그 몸을 살아남았다【저본에서 여기 주문과 본문이 뒤섞여 있으나 대개의 뜻은: 도를 배반하고 의를 잃은 것을 도를 얻었다고 말해서는 안 되고 또 문자가 어진 사람을 예로 대한 일이 없다 함이다. 중행문자가 진나라에서 죄를 얻어 나라를 도망하여 변경에 이르니 수종이 이 색부(嗇夫)는 군자라 하였기에 말을 멈추어 기다렸다. 문 자가 말하기를 내가 음악을 좋아하면 나에게 거문고를 주고 패옥을 좋아하면 나에게 옥을 주었으니 이는 나의 허물을 바로잡지 않고 나를 용납한 것이라 내가 그가 나를 이용하여 용납을 구할까 두려워 들어가지 않았다 하였고 수종이 문 자가 귀중히 여기는 사람을 물었으나 그를 죽이지 않았다】. 공자가 이를 듣고 말하였다. 「문자가 도를 배반하고 의를 잃어 나라를 망하였으나 능히 살아남은 것은 오히려 어진 사람을 예로 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성인이 화를 돌려 복이 되게 한다는 것은 바로 이것을 이르는 것이다.」【만약 들어갔더라면 죽임을 당하였을 것이고 들어가지 않아 살아남았으니 그러므로 화를 돌려 복이 되게 한다 함】
楚王將遊荊臺,司馬子祺諫,王怒之,令尹子西賀於殿下,諫曰:“今荊臺之觀,不可失也.”王喜拊子西之背曰:“與子共樂之矣.”子西步馬十里,引轡而止,曰:“臣願言有道,王肯聽之乎?”王曰:“子其言之.”子西曰:“臣聞為人臣而忠其君者,爵祿不足以賞也;諛其君者,刑罰不足以誅也.夫子祺者,忠臣也,而臣者,諛臣也,願王賞忠而誅諛焉.”王曰:“我今聽司馬之諫,是獨能禁我耳,若後世遊之,何也?”子西曰:“禁後世易耳,大王萬歲之後,起山陵於荊臺之上,則子孫必不忍遊於父祖之墓,以為歡樂也.”王曰:“善.”乃還.孔子聞之曰:“至哉子西之諫也,入之於千里之上,抑之於百世之後者也.”
초왕(楚王)이 장차 형대(荊臺)에 유람하려 하니 사마자기(司馬子祺)가 간하자 왕이 그에게 노하였다. 영윤(令尹) 자서(子西)가 전하(殿下)에서 하례하여 말하였다. 「지금 형대의 유람은 잃어서는 안 됩니다.」왕이 기뻐하며 자서의 등을 두드려 말하였다. 「너와 함께 즐기겠다.」자서가 말을 몰아 십 리를 가서 고삐를 잡아 멈추고 말하였다. 「신은 원컨대 도 있는 말을 하고자 하는데 왕께서 들어 주시겠습니까.」왕이 말하였다. 「그대는 말하여 보아라.」자서가 말하였다. 「신이 듣기에 신하가 되어 임금에게 충성한 자는 작록으로 상하기에 족하지 않고 임금에게 아첨한 자는 형벌로 죽이기에 족하지 않다 하였습니다. 그 자기는 충신이고 신은 아신이니 원컨대 왕께서 충성한 자를 상하시고 아첨한 자를 죽이소서.」왕이 말하였다. 「지금 내가 사마의 간함을 들으면 이것은 다만 나를 금할 뿐인데 만약 후세가 다시 유람하면 어찌하겠는가.」자서가 말하였다. 「후세를 금하기는 쉽습니다. 대왕께서 만세 후에 산릉을 형대 위에 일으키면 곧 자손이 반드시 아비와 조상의 무덤 위에서 유람하여 즐거움으로 삼지 못할 것입니다.」왕이 말하였다. 「좋다.」이에 돌아왔다. 공자가 이를 듣고 말하였다. 「지극하도다, 자서의 간함이여. 사람을 천 리 위에서 바른길에 들어가게 하여 억제함이 백 대 뒤에 이른다.」
子貢聞於孔子曰:“夫子之於子產晏子,可為至矣.敢問二大夫之所為,目夫子之所以與之者.”孔子曰:“夫子產於民為惠主,於學為博物;晏子於君為忠臣,而行為恭敏.故吾皆以兄事之,而加愛敬.”
자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부자께서 자산(子産)과 안자(晏子)에 대하여는 지극하다 할 수 있습니다. 감히 묻겠습니다. 두 대부가 한 일과 부자께서 그들을 칭찬하신 까닭은 무엇입니까.」공자가 말하였다. 「자산은 백성에 대하여 은혜의 주인이요 배움에 대하여 사물에 널리 통하였고 안자는 임금에 대하여 충신이며 거동이 공손하고 민첩하였다. 그러므로 나는 모두 형을 대하는 예로 그들을 섬기고 사랑과 공경을 더하였다.」
齊有一足之鳥,飛集於宮朝,下止於殿前,舒翅而跳,齊侯大怪之,使使聘魯,問孔子.孔子曰:“此鳥名曰商羊,水祥也.昔童兒有屈其一腳,振訊兩眉而跳且謠曰:‘天將大雨,商羊鼓舞.今齊有之,其應至矣.’急告民趨治溝渠,修堤防,將有大水為災,頃之大霖雨,水溢泛諸國,傷害民人,唯齊有備,不敗.”景公曰:“聖人之言,信而徵矣.”
제(齊)나라에 한 발의 새가 있었는데 날아와 궁조(宮朝)에 내려앉고 전(殿) 앞에 내려와 날개를 펴고 뛰었다. 제후가 크게 괴이하게 여겨 사자를 노나라에 보내 빙문(聘問)하여 공자에게 물으니 공자가 말하였다. 「이 새의 이름은 상양(商羊)이니 물의 상서이다. 옛날 어린아이들이 한 발을 굽히고 두 눈썹을 떨며 뛰면서 노래를 불러 이르기를 『하늘이 장차 큰 비를 내리리니 상양이 춤춘다』 하였습니다. 지금 제나라에 이것이 있으니 그 징험이 오려 합니다. 빨리 백성에게 알려 도랑을 다스리고 제방을 수리하면 장차 큰 물이 재앙이 될 것입니다.」얼마 지나지 않아 큰 비가 내리고 물이 넘쳐 여러 나라를 덮고 백성을 해쳤는데 오직 제나라만이 대비가 있어 파괴되지 않았다. 경공이 말하였다. 「성인의 말은 믿음직하고 증험이 있도다.」
孔子謂宓子賤曰:“子治單父眾悅,子何施而得之也?子語丘所以為之者.”對曰:“不齊之治也,父恤其子,其子恤諸孤,而哀喪紀.”孔子曰:“善小節也,小民附矣,猶未足也.”曰:“不齊所父事者三人,所兄事者五人,所友事者十一人.”孔子曰:“父事三人,可以教孝矣;兄事五人,可以教悌矣;友事十一人,可以舉善矣.中節也,中人附矣,猶未足也.”曰:“此地民有賢於不齊者五人,不齊事之而稟度焉,皆教不齊之道.”孔子嘆曰:“其大者,乃於此乎,有矣.昔堯舜聽天下,務求賢以自輔.夫賢者,百福之宗也,神明之主也,惜乎不齊之以所治者,小也.”
공자가 복자천(宓子賤)에게 말하였다. 「그대가 단부(單父)를 다스리니 뭇 사람이 모두 기뻐하는데 무엇을 베풀어 이처럼 얻었는가. 나에게 그 까닭을 말해 보오.」대답하여 말하였다. 「불제(不齊)가 다스림에 아비는 그 자식을 불쌍히 여기고 자식은 그 여러 고아를 불쌍히 여기며 또 상사를 슬퍼하였습니다.」공자가 말하였다. 「좋다. 작은 절이다. 작은 백성이 귀부하였으나 아직 부족하다.」말하였다. 「불제가 아비 섬기듯 하는 자가 세 사람이고 형 섬기듯 하는 자가 다섯 사람이며 벗으로 삼은 자가 열한 사람입니다.」공자가 말하였다. 「아비로 섬기는 자 세 사람은 효를 가르칠 만하고 형으로 섬기는 자 다섯 사람은 제를 가르칠 만하며 벗으로 삼은 자 열한 사람은 선을 천거할 만하다. 이것은 중간 절이다. 중간 사람이 귀부하였으나 아직 부족하다.」말하였다. 「이 땅의 백성 가운데 불제보다 어진 자가 다섯 사람이 있는데 불제가 그들을 섬기고 그들에게 법도를 받들어 그들이 모두 불제에게 도를 가르쳐 주었습니다.」공자가 탄식하여 말하였다. 「그 큰 것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옛적에 요·순이 천하를 다스림에 반드시 어진 사람을 구하여 자신을 돕게 하였다. 무릇 어진 사람은 백복의 종요(宗)이요 신명의 주인이다. 아깝도다, 불제가 다스리는 곳이 작구나.」
子貢為信陽宰,將行,辭於孔子.孔子曰:“勤之慎之,奉天子之時,無奪無伐,無暴無盜.”子貢曰:“賜也少而事君子,豈以盜為累哉?”孔子曰:“汝未之詳也,夫以賢代賢,是謂之奪;以不肖代賢,是謂之伐;緩令急誅,是謂之暴;取善自與,謂之盜.盜非竊財之謂也.吾聞之知為吏者,奉法以利民,不知為吏者,枉法以侵民,此怨之所由也.治官莫若平,臨財莫如廉,廉平之守,不可改也.匿人之善,斯謂蔽賢.揚人之惡,斯為小人.內不相訓,而外相謗,非親睦也.言人之善,若己有之,言人之惡,若己受之,故君子無所不慎焉.”
자공이 신양재(信陽宰)가 되어 장차 나아갈 때 공자에게 작별하였다. 공자가 말하였다. 「부지런하고 삼가며 천자의 시령을 받들고 빼앗지 말고 자랑하지 말고 포학하지 말고 도둑질하지 마라.」자공이 말하였다. 「저는 어려서부터 군자를 섬겼는데 어찌 도둑질을 허물로 여기겠습니까.」공자가 말하였다. 「너는 아직 자세히 알지 못한다. 무릇 어진 사람으로 어진 사람을 대신하는 것을 빼앗음이라 하고 불초한 자로 어진 사람을 대신하는 것을 자랑함이라 하며 법령은 늦고 주살은 급한 것을 포학함이라 하고 좋은 것을 취하여 자기에게로 하는 것을 도둑질이라 한다. 도둑질은 재물을 훔침을 이르는 것이 아니다. 내가 듣기에 관리 노릇을 아는 자는 법을 받들어 백성을 이롭게 하고 관리 노릇을 모르는 자는 법을 굽혀 백성을 침해한다. 이것이 원망이 생기는 까닭이다. 관직을 다스림에 공평보다 좋은 것이 없고 재물에 임함에 청렴보다 좋은 것이 없다. 청렴하고 공평한 지조는 바꿀 수 없다. 남의 선함을 숨기는 것을 어진 사람을 가림이라 하고 남의 악함을 드러내는 것을 소인이라 한다. 안으로 서로 훈계하지 않고 밖으로 서로 비방하는 것은 친목이 아니다. 남의 선함을 말하기를 자기에게 있는 것처럼 하고 남의 악함을 말하기를 자기가 받는 것처럼 하라. 그러므로 군자는 삼가지 않는 곳이 없다.」
子路治蒲三年,孔子過之,入其境曰:“善哉由也,恭敬以信矣.”入其邑曰:“善哉由也,忠信而寬矣.”至廷曰:“善哉由也,明察以斷矣.”子貢執轡而問曰:“夫子未見由之政,而三稱其善,其善可得聞乎?”孔子曰:“吾見其政矣.入其境,田疇盡易,草萊甚闢,溝洫深治,此其恭敬以信,故其民盡力也;入其邑,牆屋完固,樹木甚茂,此其忠信以寬,故其民不偷也;至其庭,庭甚清閒,諸下用命,此其言明察以斷,故其政不擾也.以此觀之,雖三稱其善,庸盡其美乎!”
자로가 포(蒲)를 다스린 지 삼 년에 공자가 지나가며 그 경계에 들어가 말하였다. 「좋도다 유야, 공경하여 믿음이 있구나.」읍 안에 들어가 말하였다. 「좋도다 유야, 충성하고 믿음이 있어 너그럽구나.」관청 뜰에 이르러 말하였다. 「좋도다 유야, 밝게 살피고 결단하는구나.」자공이 고삐를 잡고 물어 말하였다. 「부자께서 아직 유의 정치를 보지 못하셨는데 세 번이나 그의 좋음을 칭찬하시니 그 좋은 것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공자가 말하였다. 「나는 이미 그의 정치를 보았다. 그 경계에 들어가니 밭이 모두 갈려 있고 황무지가 많이 개간되었으며 도랑이 깊이 다스려져 있었으니 이것은 그가 공경하여 믿음이 있어 백성이 힘을 다한 것이다. 그 읍 안에 들어가니 담장과 집이 완전하고 견고하며 수목이 매우 무성하였으니 이것은 그가 충성하고 믿음이 있어 너그러워서 백성이 구차하지 않은 것이다. 그 뜰에 이르니 뜰이 매우 한가하고 여러 아랫사람이 명을 따랐으니 이것은 그의 말이 밝게 살피고 결단하여 그 정치가 번거롭지 않은 것이다. 이것으로 보아 비록 세 번 그의 좋음을 칭찬하여도 어찌 그 아름다움을 다하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