下卷二十 地盤應實、天盤應虛
작괘 안내: 풍수 현공비성 작괘, 황력
地以八方正位,定坤道之輿圖,故以正子午為地盤,居內以應地之實;天以十二分野,正躔度之次舍,故以壬子丙午為天盤,居外以應天之虛。
대지는 팔방의 바른 자리로써 곤도(坤道)의 여도(輿圖)를 획정하니, 그러므로 바른 자오(子午)로써 「지반(地盤)」을 삼아 나경 안쪽 층에 있어 이로써 땅의 「실(實)」에 응합니다. 상천은 십이 분야로써 전도(躔度)의 차사(次舍)를 교정하니, 그러므로 임자(壬子)·병오(丙午) 사이로써 「천반(天盤)」을 삼아 나경 바깥쪽 층에 있어 이로써 하늘의 「허(虛)」에 응합니다. 지기는 고요하니, 그러므로 용을 찾고 맥을 잡음에는 마땅히 지반을 써야 합니다. 천기는 움직이니, 그러므로 물을 거두고 향을 세움에는 마땅히 천반을 써야 합니다. 이것이 곧 나경 위의 바른 바늘과 틈 바늘이 각각 쓰임이 있는 근본 도리입니다.
今人論針,乃有正針逢針之分,且有彼是此非,又有專用此而不用彼者,蓋不知二針各有取義,相為用而不相為悼耳。地盤何取於正子午也?原地盤分屬,以八分為分屬。一從《河》《洛》中來,《河圖》之象,列以八方,《洛書》之數,亦有四正四隅,舍此之外,則無理氣。經之所謂氣從八方,混元子所謂八定位,《靈轄經》所謂內立八極以統八方之氣是也。
요즘 사람들이 나경의 바늘을 담하면, 곧 「정침(正針)」 「봉침(縫針)」의 나눔이 있고, 나아가 각각 집하여 하나는 옳고 하나는 그르다 하여, 심지어 전적으로 이것을 쓰고 저것을 쓰지 않는 자도 있습니다. 이것들은 모두 두 가지 바늘이 각각 그 취의가 있어, 본래 서로 보하여 쓰이고 서로 방해하지 않음을 모르는 것입니다. 지반은 어째서 바른 자오를 취합니까. 원래 지반의 분속은 팔방으로써 나누는 것이요, 일률로 《하도》 《낙서》 가운데서 옵니다. 《하도》의 상은 팔방에 열거되고, 《낙서》의 수도 역시 사정 사우가 있어, 이 밖에 버리면 곧 이기라 말할 것이 없습니다. 경문의 이른바 「기는 팔방에서 온다」, 혼원자(混元子)의 이른바 「여덟 자리를 정한다」, 《영할경(靈轄經)》의 이른바 「안에 팔극을 세워 이로써 팔방의 기를 통한다」는 것이 강한 것은 모두 이 한 층입니다. 지반이 바른 자오를 취하는 소이는, 바로 팔방의 기가 곧 이 한 줄기 중선 위에서 나누어 나오기 때문입니다.
夫既以八方分位,則壬子癸共一坎也,丙午丁共一離也,一卦三山,其以正子午為地之中,夫何疑乎!古人用以測地,正為氣從八方,故以正子午之針打龍,所謂龍從地下求者,指地盤言也。夫地氣何以分貴賤?乃從天星也。天之躔度以十二次舍為分,壬子共一子也,保以辨之?
이미 팔방으로써 자리를 나누었으면, 곧 임·자·계가 함께 한 감괘에 속하고, 병·오·정이 함께 한 리괘에 속하여, 한 괘가 삼산을 관합니다. 바른 자오로써 땅의 중선을 삼으니, 또 무슨 의심할 것이 있겠습니까. 고인이 그것을 써서 땅을 재는 것은, 바로 기가 팔방에서 오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바른 자오의 바늘을 써서 가서 용을 격(格)하니, 이른바 「용은 땅 아래에서 구한다」는 가리키는 것이 곧 지반입니다. 그러면 지기는 또 무엇을 빌려 귀천을 나눕니까. 이것은 천성에 의종합니다. 하늘 위의 전도는 십이 차사로써 나누는데, 그러나 임과 자가 함께 한 자위에 속하니, 또 무엇을 빌려 분변하겠습니까.
凡次舍十二,每次分得三十度,合考之,玄枵次舍自女八度起至危十五度方成三十度,夫女四星十一度半屬癸,今玄梧起於女八度,是僅侵癸之三度而已;虛二星九度半屬坎,危三星十八度屬壬,今玄根止於危十五度,亦僅成剩壬之三度而已,則玄枵子分,豈非壬子之間乎?故以壬子之間為天盤之子,又復何疑。即子而推丙午,亦共一午,則壬子丙午之間,正為天之中矣。
십이 차사는 한 차사마다 각각 삼십 도를 나누어 얻습니다. 합하여 고핵하면, 현효(玄枵)의 이 한 차사는 여숙(女宿) 팔도에서 일어나 위숙(危宿) 십오도에 이르러야 비로소 삼십 도가 찹니다. 여숙의 네 별은 모두 십일 도 반이요 계(癸)에 속하니, 지금 현효가 여숙 팔도에 일어나면 다만 계위에 삼 도를 침입할 뿐입니다. 허숙(虛宿)의 두 별은 구도 반이요 감에 속하고, 위숙의 세 별은 십팔 도요 임에 속하니, 지금 현효가 위숙 십오도에 그치면, 역시 다만 임위에 삼 도를 남길 뿐입니다. 그러면 현효가 주하는 자분(子分)은 어찌 바로 임과 자 사이에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임자 사이로써 천반의 자위로 삼으니, 또 무슨 의심할 것이 있겠습니까. 자로부터 병오에 미루어 미치면 역시 함께 한 오위에 속하니, 곧 임자와 병오의 사이가 바로 하늘의 중선입니다. 천반이 지반에 비하여 반 자리 편출(偏出)하는 소이의 근원이 곧 십이 차사와 이십사산의 획분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 데 있습니다.
古人向從天中立,正以應天之虛,從天盤也。蓋地氣靜,故尋龍捉脈當從地盤之靜定為主;天氣動,故收水立向當以天盤之旋動為主。且貴賤在天星,若不從天盤而定,則天星無據,將何以發用乎?是故收生旺之氣於坐下,而又迎吉曜之氣於向方,則天與地通,而動與靜合,斯可以召福而迎祥也。然則正針逢針,豈有偏重偏用之理,但龍是一定之龍,向無一定之向,縱龍脈有挨加,亦是因方而有挨加。昔人云:立穴易,立向難。正以動體之難捉摸耳。夫所謂神而明之,存乎其人者,其在天盤乎!
고인이 향을 세움에 하늘의 중선에서 일으킨 것은, 바로 이로써 하늘의 「허」에 응하는 것이니, 쓰이는 것이 천반입니다. 지기가 고요하기 때문에 용을 찾고 맥을 잡음에는 마땅히 지반의 정정(靜定)을 주로 삼아야 하고, 천기가 움직이기 때문에 물을 거두고 향을 세움에는 마땅히 천반의 선동(旋動)을 주로 삼아야 합니다. 하물며 귀천이 천성에 매여, 만약 천반을 따라 정하지 않으면 천성이 곧 의거할 곳이 없으니, 또 무엇을 빌려 작용을 발휘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앉은 곳에서 생왕의 기를 거두어 취하고, 또 향하는 방위에서 길요의 기를 맞이하여 취하여, 이와 같이 하늘과 땅이 서로 통하고 움직임과 고요함이 서로 합하여야 비로소 복을 불러 상을 맞을 수 있습니다. 이미 이러하면, 바른 바늘과 틈 바늘이 어찌 치우쳐 중하고 치우쳐 쓰는 도리가 있겠습니까. 다만 용은 일정한 용이요, 향은 도리어 일정한 향이 없으며, 비록 용맥 위에 애가가 있어도 역시 방위에 의하여 애가하는 것입니다. 전인의 말에 「혈을 세우기는 쉽고 향을 세우기는 어렵다」는 것은, 바로 움직임에 속하는 물건이 헤아리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신(神)하여 그것을 밝히는 것은 그 사람에게 있다」는 대개 곧 천반 위에서 공부를 보는 것이겠지요. 귀결하여 말하면, 용은 고요하고 향은 움직이며, 지반은 그 고요함을 정하고 천반은 그 움직임에 응하니, 이기 일문이 여기에 이르러야 비로소 수미(首尾)가 관통한다고 셈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