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이(學而)
공자(孔子)가 말하였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 뜻을 같이하는 벗이 먼 곳에서 오면 즐겁지 아니한가. 남이 …
유가 전적
처음에는 사서로 들어가는 것이 좋다. 대학이 강령을 세우고, 논어가 말을 기록하고, 맹자가 전개하고, 중용이 수렴한다. 이어서 시경·상서·예기와 춘추삼전을 읽는다. 순자·춘추번로·근사록·전습록은 경학 바깥에서 유학이 어떻게 풀려 나갔는지를 보는 몇 갈래 길이다.
子曰:“學而時習之,不亦說乎?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人不知而不慍,不亦君子乎?”
공자(孔子)가 말하였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 뜻을 같이하는 벗이 먼 곳에서 오면 즐겁지 아니한가.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노하지 않으면 군자(君子)가 아니겠는가.」
有子曰:“其為人也孝弟,而好犯上者,鮮矣;不好犯上而好作亂者,未之有也。君子務本,本立而道生。孝弟也者,其為仁之本與!”
유자(有子)가 말하였다. 「그 사람됨이 효도하고 공경하되 윗사람을 범하기를 좋아하는 자는 드물고, 윗사람을 범하기를 좋아하지 않으면서 난(亂)을 일으키기를 좋아하는 자는 아직 없었다. 군자는 근본에 힘쓰니, 근본이 서면 도(道)가 생긴다. 효(孝)와 제(悌)는 인(仁)의 근본이 아니겠는가.」
子曰:“巧言令色,鮮矣仁!”
공자가 말하였다. 「교묘한 말과 아첨하는 얼굴빛은 인(仁)이 적다.」
曾子曰:“吾日三省吾身:為人謀而不忠乎?與朋友交而不信乎?傳不習乎?”
증자(曾子)가 말하였다. 「나는 날마다 몇 차례나 나를 살핀다. 남을 위해 꾀하되 충실하지 못하였는가. 벗과 사귀되 믿음이 없었는가. 전수받은 것을 익히지 않았는가.」
子曰:“道千乘之國,敬事而信,節用而愛人,使民以時。”
공자가 말하였다. 「천 승의 병거를 가진 나라를 다스릴 때에는 일을 공손히 하고 믿음이 있어야 하며, 쓰임을 아끼고 사람을 사랑하며, 백성을 부릴 때에는 때에 맞게 하여야 한다.」
子曰:“弟子入則孝,出則弟,謹而信,泛愛眾,而親仁,行有餘力,則以學文。”
공자가 말하였다. 「제자(弟子)는 들어와서는 효도하고 나가서는 윗사람을 공경하며, 삼가고 믿음이 있으며, 널리 사람을 사랑하고 인자(仁者)를 친하게 하여야 한다. 이를 행하고도 힘이 남거든 그제야 글을 배워야 한다.」
子夏曰:“賢賢易色;事父母,能竭其力;事君,能致其身;與朋友交,言而有信。雖曰未學,吾必謂之學矣。”
자하(子夏)가 말하였다. 「어질은 이를 귀하게 여기되 색을 쉽게 여기고, 부모를 섬기되 힘을 다할 수 있고, 임금을 섬기되 몸을 바칠 수 있고, 벗과 사귀되 말에 믿음이 있다면, 비록 배우지 않았다 하더라도 나는 반드시 배웠다 하겠다.」
子曰:“君子不重則不威,學則不固。主忠信,無友不如己者,過,則勿憚改。”
공자가 말하였다. 「군자가 중후하지 않으면 위엄이 없고 배움도 굳어지지 않는다. 충(忠)과 신(信)을 주로 하고 자기보다 못한 자와 벗하지 말며, 허물이 있으면 고치기를 어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曾子曰:“慎終追遠,民德歸厚矣。”
증자가 말하였다. 「조심스럽게 끝을 마치고 멀리 조상을 쫓으면 백성의 덕이 두터워진다.」
子禽問於子貢曰:“夫子至於是邦也,必聞其政,求之與,抑與之與?”子貢曰:“夫子溫、良、恭、儉、讓以得之。夫子之求之也,其諸異乎人之求之與?”
자금(子禽)이 자공(子貢)에게 물었다. 「선생께서 나라에 이르시면 반드시 그 나라의 정치를 들으시니, 이것이 구하여 얻으신 것입니까, 아니면 저절로 주어진 것입니까.」 자공이 말하였다. 「선생께서는 온화하고 착하고 공손하고 검소하고 겸양하여 이를 얻으신다. 선생께서 구하시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구하는 것과 다른 것이 아니겠는가.」
子曰:“父在,觀其志;父沒,觀其行;三年無改於父之道,可謂孝矣。”
공자가 말하였다.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에는 그 뜻을 보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는 그 행동을 본다. 삼 년 동안 아버지의 도를 고치지 않으면 효(孝)라 할 수 있다.」
有子曰:“禮之用,和為貴。先王之道,斯為美,小大由之。有所不行,知和而和,不以禮節之,亦不可行也。”
유자가 말하였다. 「예(禮)를 쓸 때는 화(和)가 귀하다. 선왕(先王)의 도는 이것으로 아름다우니, 크고 작은 일에 이로 말미암는다. 그러나 행하지 못하는 것이 있으니, 화를 알고 화만을 하되 예로 절제하지 않으면 또한 행할 수 없다.」
有子曰:“信近於義,言可復也。恭近於禮,遠恥辱也。因不失其親,亦可宗也。”
유자가 말하였다. 「믿음을 의(義)에 가깝게 하면 말이 이루어질 수 있고, 공경을 예(禮)에 가깝게 하면 치욕을 멀리 할 수 있으며, 친함으로 인하여 잃어버리지 않으면 존귀함이 될 수 있다.」
子曰:“君子食無求飽,居無求安,敏於事而慎於言,就有道而正焉。可謂好學也已。”
공자가 말하였다. 「군자는 먹되 배부르기를 구하지 않고, 살되 편안함을 구하지 않으며, 일에 민첩하고 말에는 신중하며, 도가 있는 이에게 나아가 바로잡는다면 배우기를 좋아한다 할 수 있다.」
子貢曰:“貧而無諂,富而無驕,何如?”子曰:“可也。未若貧而樂,富而好禮者也。”子貢曰:“《詩》云:‘如切如磋,如琢如磨’,其斯之謂與?”子曰:“賜也,始可與言《詩》已矣,告諸往而知來者。”
자공이 말하였다. 「가난하되 아첨하지 않고 부유하되 교만하지 않으면 어떻습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가하다. 가난하되 도를 즐기고 부유하되 예를 좋아함만 같지 못하다.」 자공이 말하였다. 「《시경》에 「자르고 갈며 다듬고 닦는다」고 한 것이 이러한 것이겠습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사(賜)야, 비로소 너와 《시》를 말할 수 있다. 지난 것을 말하면 오는 것을 아는구나.」
子曰:“不患人之不己知,患不知人也。”
공자가 말하였다. 「남이 나를 알지 못함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지 못함을 걱정하여야 한다.」
위정(爲政)
子曰:“為政以德,譬如北辰,居其所而眾星共之。”
공자가 말하였다. 「덕으로 정치하는 것은 비유하면 북극성이 그 자리에 거처하고 뭇 별이 함께 그를 향하여 돌아가는 것과 같다.」
子曰:“《詩》三百,一言以蔽之,曰:‘思無邪’。”
공자가 말하였다. 「《시》 삼백 편을 한마디로 덮으면 「생각에 사특함이 없다」이다.」
子曰:“道之以政,齊之以刑,民免而無恥。道之以德,齊之以禮,有恥且格。”
공자가 말하였다. 「정으로 이끌고 형으로 가지런히 하면 백성은 면하기를 구하고 부끄러움이 없다. 덕으로 이끌고 예로 가지런히 하면 부끄러움이 있고 또한 바른 데로 향한다.」
子曰:“吾十有五而志於學,三十而立,四十而不惑,五十而知天命,六十而耳順,七十而從心所欲,不逾矩。”
공자가 말하였다. 「나는 열다섯에 배움에 뜻을 두었고, 서른에 섰고, 마흔에 미혹되지 않았고, 쉰에 천명(天命)을 알았고, 예순에 귀가 순했으며, 일흔에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하여도 법도를 넘지 않았다.」
孟懿子問孝,子曰:“無違。”樊遲御,子告之曰:“孟孫問孝於我,我對曰‘無違’。”樊遲曰:“何謂也?”子曰:“生,事之以禮;死,葬之以禮,祭之以禮。”
맹의자(孟懿子)가 효를 물었다. 공자가 말하였다. 「어기지 않는 것이다.」 번지(樊遲)가 수레를 몰 때 공자가 그에게 말하였다. 「맹손(孟孫)이 나에게 효를 물어 내가 「어기지 않는 것이다」라고 대답하였다.」 번지가 말하였다. 「무슨 뜻입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살아 계실 때는 예로써 섬기고, 돌아가시면 예로써 장사지내고, 예로써 제사 지내야 한다.」
孟武伯問孝。子曰:“父母唯其疾之憂。”
맹무백(孟武伯)이 효를 물었다. 공자가 말하였다. 「부모로 하여금 오직 병(病)에만 걱정하게 하라.」
子游問孝。子曰:“今之孝者,是謂能養。至於犬馬皆能有養;不敬,何以別乎?”
자유(子游)가 효를 물었다. 공자가 말하였다. 「지금의 효라는 것은 능히 봉양하는 것을 말한다. 개와 말에 이르러도 모두 능히 봉양하는 것이 있으니, 공경하지 않으면 무엇으로 구별하겠는가.」
子夏問孝。子曰:“色難。有事,弟子服其勞;有酒食,先生饌,曾是以為孝乎?”
자하가 효를 물었다. 공자가 말하였다. 「얼굴빛이 어렵다. 일이 있으면 제자가 그 수고를 담당하고 술과 음식이 있으면 선생(先生)이 먼저 드신다. 그러면 어찌 효라 할 수 있겠는가.」
子曰:“吾與回言終日,不違,如愚。退而省其私,亦足以發,回也不愚。”
공자가 말하였다. 「내가 회(回)와 함께 종일 말하여도 어기지 않아 어리석은 사람 같았으나, 물러나서 그 사사로운 행동을 살펴보니 또한 일깨울 만하다. 회는 어리석지 않다.」
子曰:“視其所以,觀其所由,察其所安,人焉廋哉?人焉廋哉?”
공자가 말하였다. 「그로 하여금 하게 하는 까닭을 보고, 그가 밟는 바를 보고, 그가 편안히 여기는 것을 살피면 그 사람이 어디에 숨을 수 있겠는가. 그 사람이 어디에 숨을 수 있겠는가.」
子曰:“溫故而知新,可以為師矣。”
공자가 말하였다.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알면 스승이 될 수 있다.」
子曰:“君子不器。”
공자가 말하였다. 「군자는 그릇이 아니다.」
子貢問君子。子曰:“先行其言而後從之。”
자공이 군자를 물었다. 공자가 말하였다. 「그 말을 먼저 행한 뒤에 이를 따른다.」
子曰:“君子周而不比,小人比而不周。”
공자가 말하였다. 「군자는 두루 어울리되 아부하지 않고, 소인은 아부하되 두루 어울리지 않는다.」
子曰:“學而不思則罔,思而不學則殆。”
공자가 말하였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아득하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子曰:“攻乎異端,斯害也已!”
공자가 말하였다. 「이단을 연구하는 것은 이것이 해로움이다.」
子曰:“由,誨汝知之乎!知之為知之,不知為不知,是知也。”
공자가 말하였다. 「유(由)야, 아는 것을 가르쳐 주겠다.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는 것, 이것이 아는 것이다.」
子張學干祿。子曰:“多聞闕疑,慎言其餘,則寡尤;多見闕殆,慎行其餘,則寡悔。言寡尤,行寡悔,祿在其中矣。”
자장(子張)이 녹(祿)을 배우려 하였다. 공자가 말하였다. 「많이 듣되 의심스러운 것을 두고 나머지를 삼가서 말하면 허물이 적고, 많이 보되 위태로운 것을 두고 나머지를 삼가서 행하면 후회가 적다. 말에 허물이 적고 행동에 후회가 적으면 녹이 그 가운데 있다.」
哀公問曰:“何為則民服?”孔子對曰:“舉直錯諸枉,則民服;舉枉錯諸直,則民不服。”
애공(哀公)이 물었다. 「무엇을 하면 백성이 복종하겠습니까.」 공자가 대답하였다. 「곧은 이를 들어 올려 굽은 이 위에 두면 백성이 복종하고, 굽은 이를 들어 올려 곧은 이 위에 두면 백성이 복종하지 않는다.」
季康子問:“使民敬、忠以勸,如之何?”子曰:“臨之以莊,則敬;孝慈,則忠;舉善而教不能,則勸。”
계강자(季康子)가 물었다. 「백성으로 하여금 공손하고 충실하여 서로 권면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그들을 대할 때 엄숙하면 공손하고, 효도하고 자애로우면 충실하며, 착한 이를 들어 올리고 능하지 못한 이를 가르치면 서로 권면한다.」
或謂孔子曰:“子奚不為政?”子曰:“《書》云:‘孝乎惟孝,友于兄弟,施於有政。’是亦為政,奚其為為政?”
어떤 이가 공자에게 말하였다. 「선생께서는 어찌하여 정치에 종사하지 않으십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서》에 「효여, 다만 효하며 우애하면 정치에 미치나니」라 하였다. 이것 또한 정치이니, 무엇을 정치라 하겠는가.」
子曰:“人而無信,不知其可也。大車無輗,小車無軏,其何以行之哉?”
공자가 말하였다. 「사람으로서 믿음이 없으면 그것이 어찌 될 줄을 모르겠다. 큰 수레에 멍에못이 없고 작은 수레에 굴대못이 없으면 어찌 그것을 움직이겠는가.」
子張問:“十世可知也?”子曰:“殷因於夏禮,所損益,可知也;周因於殷禮,所損益,可知也。其或繼周者,雖百世,可知也。”
자장이 물었다. 「열 대 뒤의 일을 알 수 있습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은(殷)이 하(夏)의 예를 인(因)할 때 더하고 덜한 것을 알 수 있고, 주(周)가 은의 예를 인할 때 더하고 덜한 것을 알 수 있다. 그 어떤 이가 주를 잇는다면 비록 백 대라도 알 수 있다.」
子曰:“非其鬼而祭之,諂也;見義不為,無勇也。”
공자가 말하였다. 「제사지낼 바 아닌 귀신에 제사지내는 것은 아첨이다. 의로운 것을 보고도 행하지 않는 것은 용기가 없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