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bo

자로(子路)

春秋 · 孔子门徒(辑录) · 제8권 / 10

子曰:“不逆詐,不億不信,抑亦先覺者,是賢乎!”

공자가 말하였다. 「속임을 미리 짐작하지 않고 믿지 않음을 헤아리지 않으면서도 또한 먼저 깨닫는 자는 어진 사람이다.」

微生畝謂孔子曰:“丘何為是棲棲者與?無乃為佞乎?”孔子曰:“非敢為佞也,疾固也。”

미생무(微生畝)가 공자에게 말하였다. 「구(丘)야, 무엇을 위하여 이 처처(栖栖)함인가. 무릇 첨언(佞言)하려 하는가.」 공자가 말하였다. 「감히 첨언을 하지 않고 병(病)이 고(固)할 뿐이다.」

曰:“驥不稱其力,稱其德也。”

공자가 말하였다. 「기(驥)는 그 힘을 칭찬하지 않고 그 덕을 칭찬한다.」

或曰:“以德報怨,何如?”子曰:“何以報德?以直報怨,以德報德。”

어떤 이가 말하였다. 「덕으로 원망에 갚으면 어떻습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어찌하여 덕에 갚겠는가. 곧음으로 원망에 갚고 덕으로 덕에 갚아야 한다.」

子曰:“莫我知也夫!”子貢曰:“何為其莫知子也?”子曰:“不怨天,不尤人,下學而上達。知我者其天乎!”

공자가 말하였다. 「나를 아는 이가 없구나.」 자공이 말하였다. 「어찌하여 선생을 아는 이가 없습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사람을 탓하지 않으며 아래에서 배우고 위로 통하니 나를 아는 이가 오직 하늘인가.」

公伯寮愬子路於季孫。子服景伯以告,曰:“夫子固有惑志於公伯寮,吾力猶能肆諸市朝。”子曰:“道之將行也與,命也;道之將廢也與,命也。公伯寮其如命何?”

공백료(公伯寮)가 자로를 계손에게 소(愬)하였다. 자복경백(子服景伯)이 이를 고하여 말하였다. 「부자가 확실히 공백료에게 미혹되었으나 나의 힘이 아직 능히 이를 시조(市朝)에 벌일 수 있습니다.」 공자가 말하였다. 「도가 장차 행해지려는가 명이요, 도가 장차 버려지려는가 명이다. 공백료가 그 명을 어찌하겠는가.」

子曰:“賢者辟世,其次辟地,其次辟色,其次辟言。”子曰:“作者七人矣。”

공자가 말하였다. 「어진 이는 세상을 피하고 그 다음은 땅을 피하며 그 다음은 빛을 피하고 그 다음은 말을 피한다.」 공자가 말하였다. 「이를 행한 자가 일곱이었다.」

子路宿於石門,晨門曰:“奚自?”子路曰:“自孔氏。”曰:“是知其不可而為之者與?”

자로가 석문에서 잤다. 신문(晨門)이 말하였다. 「어디서 오는가.」 자로가 말하였다. 「공씨로부터 온다.」 말하였다. 「이것이 그 불가함을 알면서도 이를 행하는 자인가.」

子擊磬於衛,有荷蕢而過孔氏之門者,曰:“有心哉,擊磬乎!”既而曰:“鄙哉,硜硜乎!莫己知也,斯己而已矣。深則厲,淺則揭。”子曰:“果哉!末之難矣。”

공자가 위에서 경(磬)을 치니 짐을 업고 공씨의 문을 지나는 자가 있어 말하였다. 「마음이 있어 경을 치는구나.」 이미 하여 말하였다. 「비루하도다, 정정(硜硜)하구나. 자기를 아는 이가 없으면 이를 그칠 뿐이다. 깊으면 여(厲)하고 얕으면 게(揭)한다.」 공자가 말하였다. 「과연 그렇구나. 끝에 이르러 어렵다.」

子張曰:“《書》云,‘高宗諒陰,三年不言。’何謂也?”子曰:“何必高宗,古之人皆然。君薨,百官總己以聽於冢宰三年。”

자장이 말하였다. 「《서》에 「고종이 양음(諒陰)에 거처하여 삼 년 동안 말하지 않았다」 하였는데 무슨 뜻입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어찌하여 반드시 고종이겠는가. 옛날 사람은 모두 이와 같았다. 임금이 세상을 떠나면 백관이 총기(總己)하여 총재(冢宰)를 따르기를 삼 년 하였다.」

子曰:“上好禮,則民易使也。”

공자가 말하였다. 「윗사람이 예를 좋아하면 백성이 쓰이기 쉽다.」

子路問君子,子曰:“修己以敬。”曰:“如斯而已乎?”曰:“修己以安人。”曰:“如斯而已乎?”曰:“修己以安百姓。修己以安百姓,堯、舜其猶病諸!”

자로가 군자를 물었다. 공자가 말하였다. 「자기를 닦아 경(敬)으로 삼아라.」 말하였다. 「이와 같으면 족합니까.」 말하였다. 「자기를 닦아 사람을 편안하게 하여라.」 말하였다. 「이와 같으면 족합니까.」 말하였다. 「자기를 닦아 백성을 편안하게 하여라. 자기를 닦아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은 요순도 아마 어려워하였을 것이다.」

原壤夷俟,子曰:“幼而不孫弟,長而無述焉,老而不死,是為賊!”以杖叩其脛。

원양(原壤)이 다리를 벌리고 기다렸다. 공자가 말하였다. 「어려서는 겸손하지 않고 자라서는 말할 것이 없으며 늙어서는 죽지 않으니 이것이 해적이다.」 지팡이로 그 종아리를 두드렸다.

闕黨童子將命,或問之曰:“益者與?”子曰:“吾見其居於位也,見其與先生並行也。非求益者也,欲速成者也。”

궐당(闕黨)의 동자가 명(命)을 전하였다. 어떤 이가 공자에게 물어 말하였다. 「나아갈 자인가.」 공자가 말하였다. 「내가 그가 자리에 거처하는 것을 보았고, 그가 선생과 나란히 가는 것을 보았다. 나아감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속성(速成)을 원한 것이다.」

위영공(衛靈公)

衛靈公問陳於孔子,孔子對曰:“俎豆之事,則嘗聞之矣;軍旅之事,未之學也。”明日遂行。

위영공이 진(陣)을 공자에게 물었다. 공자가 대답하였다. 「조두(俎豆)의 일은 곧 일찍이 이를 들었고, 군려(軍旅)의 일은 아직 이를 배우지 못하였습니다.」 이튿날 드디어 떠났다.

在陳絕糧,從者病莫能興。子路慍見曰:“君子亦有窮乎?”子曰:“君子固窮,小人窮斯濫矣。”

진(陳)에 있어 양식이 끊어지니 따라간 자가 병들어 일어나지 못하였다. 자로가 화가 나서 뵈어 말하였다. 「군자도 또한 곤궁함이 있습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군자는 곤궁하여도 굳고 소인은 곤궁하면 이에 범람한다.」

子曰:“賜也,女以予為多學而識之者與?”對曰:“然,非與?”曰:“非也,予一以貫之。”

공자가 말하였다. 「사(賜)여, 너는 나를 많이 배워 이를 아는 자라 여기는가.」 대답하였다. 「그러합니다. 아닙니까.」 말하였다. 「아니다. 나는 하나로써 이를 꿰뚫는다.」

子曰:“由,知德者鮮矣。”

공자가 말하였다. 「유(由)야, 덕을 아는 자가 적구나.」

子曰:“無為而治者其舜也與!夫何為哉?恭己正南面而已矣。”

공자가 말하였다. 「무위(無爲)로써 다스린 자는 그 순(舜)인가. 무릇 무엇을 하였는가. 자기를 공손히 하고 바르게 남쪽을 향할 뿐이다.」

子張問行,子曰:“言忠信,行篤敬,雖蠻貊之邦行矣;言不忠信,行不篤敬,雖州里行乎哉?立則見其參於前也;在輿則見其倚于衡也,夫然後行。”子張書諸紳。

자장이 행함을 물었다. 공자가 말하였다. 「말은 충실하고 믿음이 있으며 행동은 독실하고 공경하면 만맥(蠻貊)의 나라라도 행해질 것이고, 말이 충실하고 믿음이 없으며 행동이 독실하고 공경하지 않으면 주리(州里)라도 행해지겠는가. 서면 곧 그것이 앞에 서 있음을 보고 수레에 있으면 곧 그것이 형(衡)에 기대어 있음을 본다. 무릇 이 뒤에 행해진다.」 자장이 이를 신(紳)에 썼다.

子曰:“直哉史魚!邦有道如矢,邦無道如矢。君子哉蘧伯玉!邦有道則仕,邦無道則可卷而懷之。”

공자가 말하였다. 「곧구나 사어(史魚)여. 나라에 도가 있으면 화살과 같고 나라에 도가 없으면 화살과 같다. 군자여 거백옥(蘧伯玉)이여. 나라에 도가 있으면 곧 벼슬하고 나라에 도가 없으면 곧 말아 품을 수 있다.」

子曰:“可與言而不與之言,失人;不可與言而與之言,失言。知者不失人亦不失言。”

공자가 말하였다. 「더불어 말할 만한데 더불어 말하지 않으면 사람을 잃고, 더불어 말할 수 없는데 더불어 말하면 말을 잃는다. 지혜로운 자는 또한 사람을 잃지 않고 또한 말을 잃지 않는다.」

子曰:“志士仁人無求生以害仁,有殺身以成仁。”

공자가 말하였다. 「뜻 있는 선비와 인한 사람은 삶을 구하여 인을 해하지 않고 몸을 죽여 인을 이루는 것이 있다.」

子貢問為仁,子曰:“工欲善其事,必先利其器。居是邦也,事其大夫之賢者,友其士之仁者。”

자공이 인을 함을 물었다. 공자가 말하였다. 「공(工)이 그 일을 착하게 하고자 하면 반드시 먼저 그 기구를 날카롭게 한다. 이 나라에 살면 그 대부의 어진 이를 섬기고 그 선비의 인한 이와 벗하여야 한다.」

顏淵問為邦,子曰:“行夏之時,乘殷之輅,服周之冕,樂則《韶》、《舞》;放鄭聲,遠佞人。鄭聲淫,佞人殆。”

안연이 나라를 다스리는 것을 물었다. 공자가 말하였다. 「하(夏)의 시(時)를 행하고 은(殷)의 로(輅)를 타며 주(周)의 면(冕)을 입고 악은 곧 《소무(韶舞)》로 하며, 정성(鄭聲)을 놓고 영인(佞人)을 멀리하여라. 정성은 음란하고 영인은 위태롭다.」

子曰:“人無遠慮,必有近憂。”

공자가 말하였다. 「사람이 깊은 생각이 없으면 반드시 가까운 근심이 있다.」

子曰:“已矣乎!吾未見好德如好色者也。”

공자가 말하였다. 「그쳤구나. 나는 덕을 좋아함이 색을 좋아함과 같은 자를 아직 보지 못하였다.」

子曰:“臧文仲其竊位者與!知柳下惠之賢而不與立也。”

공자가 말하였다. 「장문중(臧文仲)은 그 자리를 도둑질한 자인가. 유하혜(柳下惠)의 어짐을 알면서도 더불어 서지 않았다.」

子曰:“躬自厚而薄責於人,則遠怨矣。”

공자가 말하였다. 「몸에는 후하고 사람에게는 박하게 책망하면 곧 원망에 멀다.」

子曰:“不曰‘如之何、如之何’者,吾末如之何也已矣。”

공자가 말하였다. 「「이를 어찌할까 이를 어찌할까」 하지 않는 자는 나는 끝에 이를 어찌할 수 없구나.」

子曰:“群居終日,言不及義,好行小慧,難矣哉!”

공자가 말하였다. 「무리 지어 하루 종일 있으면서 말이 의에 미치지 않고 작은 슬기를 좋아하면 어렵구나.」

子曰:“君子義以為質,禮以行之,孫以出之,信以成之。君子哉!”

공자가 말하였다. 「군자는 의로써 질을 삼고 예로써 이를 행하며 겸손으로써 이를 내고 믿음으로써 이를 이루니, 군자여.」

子曰:“君子病無能焉,不病人之不己知也。”

공자가 말하였다. 「군자는 능하지 못함을 병으로 여기고 사람이 자기를 알지 못함을 병으로 여기지 않는다.」

子曰:“君子疾沒世而名不稱焉。”

공자가 말하였다. 「군자는 세상을 떠나도 칭찬받지 못함을 괴로워한다.」

子曰:“君子求諸己,小人求諸人。”

공자가 말하였다. 「군자는 자기에게 구하고 소인은 남에게 구한다.」

子曰:“君子矜而不爭,群而不黨。”

공자가 말하였다. 「군자는 긍(矜)하되 다투지 않고 무리 지으나 당을 짓지 않는다.」

子曰:“君子不以言舉人,不以人廢言。”

공자가 말하였다. 「군자는 사람으로 인하여 말을 들어 올리지 않고 말로 인하여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

子貢問曰:“有一言而可以終身行之者乎?”子曰:“其恕乎!己所不欲,勿施於人。”

자공이 물어 말하였다. 「한마디 말로써 평생 이를 행할 만한 것이 있습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그것은 서(恕)인가.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아라.」

子曰:“吾之於人也,誰毀誰譽?如有所譽者,其有所試矣。斯民也,三代之所以直道而行也。”

공자가 말하였다. 「나는 사람에게 있어서 누구를 헐뜯었고 누구를 칭찬하였는가. 만일 칭찬한 바가 있다면 그것은 시험된 것이 있다. 이 백성은 삼대(三代)가 곧은 도로써 행하여 온 까닭이다.」

子曰:“吾猶及史之闕文也,有馬者借人乘之,今亡矣夫!”

공자가 말하였다. 「나는 오히려 사관의 궐문(闕文)을 미처 보았고, 말이 있는 자는 사람에게 빌려 탔다. 지금은 없는가.」

子曰:“巧言亂德,小不忍,則亂大謀。”

공자가 말하였다. 「교묘한 말은 덕을 어지럽히고 작은 참음이 없으면 곧 큰 꾀를 어지럽힌다.」

子曰:“眾惡之,必察焉;眾好之,必察焉。”

공자가 말하였다. 「뭇 사람이 이를 미워하면 반드시 살피고, 뭇 사람이 이를 좋아하면 반드시 살펴야 한다.」

子曰:“人能弘道,非道弘人。”

공자가 말하였다. 「사람은 능히 도를 넓히지 도가 능히 사람을 넓히는 것이 아니다.」

子曰:“過而不改,是謂過矣。”

공자가 말하였다. 「허물이 있고도 고치지 않으면 이것이 허물이라 한다.」

子曰:“吾嘗終日不食、終夜不寢以思,無益,不如學也。”

공자가 말하였다. 「나는 일찍이 하루 종일 먹지 않고 밤을 새워 잠들지 않으며 이로써 생각하였으나 이로움이 없었다. 배움만 같지 못하다.」

子曰:“君子謀道不謀食。耕也餒在其中矣,學也祿在其中矣。君子憂道不憂貧。”

공자가 말하였다. 「군자는 도를 꾀하고 먹을 것을 꾀하지 않는다. 밭을 갈면 굶주림이 그 가운데 있고 배우면 녹이 그 가운데 있다. 군자는 도를 근심하고 가난을 근심하지 않는다.」

子曰:“知及之,仁不能守之,雖得之,必失之;知及之,仁能守之,不莊以蒞之,則民不敬;知及之,仁能守之,莊以蒞之,動之不以禮,未善也。”

공자가 말하였다. 「지혜가 이르고 이를 얻어 인이 능히 이를 지키지 못하면 이를 얻더라도 반드시 이를 잃는다. 지혜가 이르고 이를 얻어 인이 능히 이를 지키되 장(莊)으로써 이에 임하지 않으면 곧 백성이 공경하지 않는다. 지혜가 이르고 이를 얻어 인이 능히 이를 지키고 장으로써 이에 임하여도 이를 움직임에 예로써 하지 않으면 아직 착하지 못한 것이다.」

子曰:“君子不可小知而可大受也,小人不可大受而可小知也。”

공자가 말하였다. 「군자는 작은 앎으로는 할 수 없으나 큰 받들어 줄 수 있고, 소인은 큰 받들어 줄 수 없으나 작은 앎으로는 할 수 있다.」

子曰:“民之於仁也,甚於水火。水火,吾見蹈而死者矣,未見蹈仁而死者也。”

공자가 말하였다. 「백성이 인에 있어서는 물과 불보다 심하다. 물과 불은 내가 밟고 죽는 것을 보았으나 인에 밟고 죽는 것은 아직 보지 못하였다.」

子曰:“當仁不讓於師。”

공자가 말하였다. 「인에 당하여서는 스승에게도 양보하지 않는다.」

子曰:“君子貞而不諒。”

공자가 말하였다. 「군자는 정(貞)하되 량(諒)은 아니다.」

子曰:“事君,敬其事而後其食。”

공자가 말하였다. 「임금을 섬김에는 그 일을 경하고 뒤에 그 녹을 하여야 한다.」

子曰:“有教無類。”

공자가 말하였다. 「가르침이 있되 유(類)가 없다.」

子曰:“道不同,不相為謀。”

공자가 말하였다. 「도가 같지 않으면 서로 꾀할 바가 없다.」

子曰:“辭達而已矣。”

공자가 말하였다. 「사(辭)는 통할 뿐이다.」

師冕見,及階,子曰:“階也。”及席,子曰:“席也。”皆坐,子告之曰:“某在斯,某在斯。”師冕出。子張問曰:“與師言之道與?”子曰:“然,固相師之道也。”

사면(師冕)이 뵈니 계단에 이르러 공자가 말하였다. 「계단이다.」 자리에 이르러 말하였다. 「자리이다.」 모두 앉으니 공자가 이를 고하여 말하였다. 「모(某)가 여기 있고 모가 여기 있다.」 사면이 나가니 자장이 물어 말하였다. 「악사에게 말하는 도입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그렇다. 진실로 악사를 돕는 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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