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bo

은공(隱公)(원년~십일년)

春秋 · 左丘明(旧题) · 제10권 / 56

初,惠公之即位也少,齊人使昭伯烝於宣姜,不可,強之。生齊子、戴公、文公、宋桓夫人、許穆夫人。文公為衛之多患也,先適齊。及敗,宋桓公逆諸河,宵濟。衛之遺民男女七百有三十人,益之以共、滕之民為五千人,立戴公以廬於曹。許穆夫人賦《載馳》。齊侯使公子無虧帥車三百乘、甲士三千人以戍曹。歸公乘馬,祭服五稱,牛羊豕雞狗皆三百,與門材。歸夫人魚軒,重錦三十兩。

옛날 혜공(惠公)이 즉위할 때 나이가 어렸는데, 제인이 소백(昭伯)으로 하여금 선강(宣姜)과 통하게 하니, 그가 하려 하지 않자, 강제했다. 제자(齊子)・대공(戴公)・문공(文公)・송환부인(宋桓夫人)・허목부인(許穆夫人)을 낳았다. 문공은 위의 환난이 많기 때문에 먼저 제로 갔다. 패함에 이르러, 송환공이 황하 가에서 맞이하여, 밤에 건너갔다. 위의 남은 백성 남녀 칠백삼십 명이고, 공(共)・등(滕)의 백성을 더하여 오천 명이 되어, 대공을 세우고 조(曹)에 기거했다. 허목부인이 『재치(載馳)』를 지었다. 제후가 공자 무휴(無虧)를 보내 전차 삼백 승, 갑사 삼천 명을 이끌고 조를 지키게 했다. 대공에게 수레 모는 말과, 제복 다섯 벌과, 소・양・돼지・닭・개 각 삼백과, 문을 만들 재목을 주었다. 부인에게 어피(魚皮)로 장식한 헌거와, 두꺼운 비단 삼십 량을 주었다.

鄭人惡高克,使帥師次於河上,久而弗召。師潰而歸,高克奔陳。鄭人為之賦《清人》。

정인이 고극(高克)을 미워하여, 그를 시켜 군대를 이끌고 황하 가에 주둔하게 하고, 오래도록 불러들이지 않았다. 군대가 흩어져 돌아가고, 고극이 진으로 도망쳤다. 정인이 그를 위해 『청인(清人)』을 지었다.

晉侯使大子申生伐東山皋落氏。裡克諫曰:“大子奉冢祀,社稷之粢盛,以朝夕視君膳者也,故曰冢子。君行則守,有守則從。從曰撫軍,守曰監國,古之制也。夫帥師,專行謀,誓車旅,君與國政之所圖也,非大子之事也。師在制命而已。稟命則不威,專命則不孝。故君之嗣適不可以帥師。君失其官,帥師不威,將焉用之。且臣聞皋落氏將戰,君其舍之。”公曰:“寡人有子,未知其誰立焉。”

진후가 태자 신생을 보내 동산고락씨(東山皋落氏)를 치게 했다. 이극(里克)이 간하여 말했다. '태자는 종사(冢祀)를 받들고 사직의 자성(粢盛)을 준비하며, 아침저녁으로 군의 식사를 살피는 자이므로, 태자(冢子)라 합니다. 군이 행하면 지키고, 지키는 자가 있으면 따릅니다. 따르는 것을 무군(撫軍)이라 하고, 지키는 것을 감국(監國)이라 하니, 옛날의 제도입니다. 군대를 이끄는 것은, 홀로 모의를 결정하고, 거사(車旅)를 호령하는 것은, 군과 집정이 도모하는 것이요, 태자의 일이 아닙니다. 군중에 있어서는 명을 장악할 뿐입니다. 명을 받으면 위엄이 없고, 홀로 명하면 불효입니다. 그러므로 군의 적자는 군대를 이끌 수 없습니다. 군이 임용의 분수를 잃고, 군대를 이끌어도 위엄이 없으면, 그를 써서 무엇하겠습니까. 게다가 신이 듣건대 고락씨가 장차 싸우려 하니, 군은 그를 보내지 마소서.' 헌공이 말했다. '과인이 아들이 있으나, 아직 누구를 세울지 모른다.'

不對而退。

이극이 대답하지 않고 물러났다.

見大子,大子曰:“吾其廢乎?”對曰:“告之以臨民,教之以軍旅,不共是懼,何故廢乎?且子懼不孝,無懼弗得立,修己而不責人,則免於難。”

태자를 만나니, 태자가 말했다. '내가 아마 폐해지겠습니까?' 이극이 답했다. '백성을 다스림으로써 그대를 경계하고, 군려로써 그대를 가르치니, 두려워할 것은 직사를 공경하지 못함일 뿐인데, 무슨 까닭으로 폐하겠습니까? 게다가 그대가 두려워할 것은 불효이요, 두려워할 필요 없는 것은 세워지지 못함입니다. 자신을 닦고 남을 탓하지 않으면, 화난을 면할 수 있습니다.'

大子帥師,公衣之偏衣,佩之金玦。狐突御戎,先友為右,梁餘子養御罕夷,先丹木為右。羊舌大夫為尉。光友曰:“衣身之偏,握兵之要,在此行也,子其勉之。偏躬無慝,兵要遠災,親以無災,又何患焉!”狐突嘆曰:“時,事之徵也;衣,身之章也;佩,衷之旗也。故敬其事則命以始,服其身則衣之純,用期衷則佩之度。今命以時卒,閟其事也;衣之尨服,遠其躬也;佩以金玦,棄其衷也。服以遠之,時以閟之,尨涼冬殺,金寒玦離,胡可恃也?雖欲勉之,狄可盡乎?”梁餘子養曰:帥師者受命於廟,受脤於社,有常服矣。不獲而龍,命可知也。死而不孝,不如逃之。”罕夷曰:“尨奇無常,金玦不復,雖復何為,君有心矣。”先丹木曰:“是服也。狂夫阻之。曰‘盡敵而反’,敵可盡乎!雖盡敵,猶有內讒,不如違之。”狐突欲行。羊舌大夫曰:“不可。違命不孝,棄事不忠。

태자가 군대를 이끄니, 헌공이 그에게 편의(偏衣)를 입히고, 금결(金玦)을 패용케 했다. 호돌(狐突)이 융거를 몰고, 선우(先友)가 거우가 되고, 양여자양(梁余子養)이 한이(罕夷)의 수레를 몰고, 선단목(先丹木)이 거우가 되었다. 양설대부(羊舌大夫)가 군위(軍尉)가 되었다. 선우가 말했다. '군의 편의를 입고, 병권의 요령을 쥐니, 이 행차에 있으니, 그대는 힘쓰시오. 편의는 악의가 없고, 병권은 재앙을 멀리하며, 친하면서 재앙이 없으니 또 무엇을 근심하겠소!' 호돌이 탄식하여 말했다. '시령은 일의 징후요, 의복은 신분의 표명이요, 패식은 마음의 깃발이다. 그러므로 일을 삼가면 처음에 명하고, 몸에 입으면 순색의 옷을 입고, 그 마음을 쓰면 법도에 맞는 패식을 한다. 지금 시령의 끝에 명하니, 일을 막는 것이요, 잡색 옷을 입히니, 그 몸을 멀리하는 것이요, 금결을 패용케 하니, 그 마음을 버리는 것이다. 옷으로 그를 멀리하고, 시령으로 그를 막으니, 잡색은 맑고 차고, 겨울은 숙살이며, 금은 차갑고 결은 이별이니, 무엇을 의지하겠는가? 비록 힘쓰려 해도,적인을 다 죽일 수 있겠는가?' 양여자양이 말했다. '군대를 이끄는 자는 묘에서 명을 받고, 사에서 제육을 받으니, 정해진 옷이 있습니다. 얻지 못하고 잡색을 얻으니, 명을 알 수 있습니다. 죽어서 불효가 되느니 차라리 도망치는 것이 낫습니다.' 한이가 말했다. '잡색은 기이하여 상례가 없고, 금결은 돌아오지 않음을 표시하니, 비록 돌아온들 무엇하겠습니까? 군이 이미 다른 마음이 있습니다.' 선단목이 말했다. '이런 옷은, 광부(狂夫)도 의심이 들 것입니다. 「적인을 다 죽이고 돌아오라」 하니,적인을 다 죽일 수 있습니까! 비록적인을 다 죽여도, 오히려 내부의 참언이 있으니, 피하는 것만 못합니다.' 호돌이 가려 했다. 양설대부가 말했다. '안 된다. 명을 거역하는 것은 불효요, 직사를 버리는 것은 불충이다.

雖知其寒,惡不可取,子其死之。”

(양설대부가 이어 말하기를) 비록 그 추움을 알더라도, 악명은 취할 수 없으니, 그대는 이를 위해 죽으시오.'

大子將戰,狐突諫曰:“不可,昔辛伯諗周桓公云:‘內寵並後,外寵二政,嬖子配適,大都耦國,亂之本也。’周公弗從,故及於難。今亂本成矣,立可必乎?孝而安民,子其圖之,與其危身以速罪也。”

태자가 장차 싸우려 하니, 호돌이 간하여 말했다. '안 됩니다. 옛날 신백(辛伯)이 주환공(周桓公)에게 권하여 말하기를 「내총이 왕후와 나란히 하고, 외총이 정권을 함께 쥐고, 서자가 적자와 짝하고, 큰 도읍이 국도와 대등한 것은, 난의 근본이다」. 주공이 듣지 않았으므로 화난을 만났습니다. 지금 난의 근본이 이미 이루어졌으니, 세워짐을 확실히 할 수 있겠습니까? 효를 다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면, 그대는 잘 생각하시오. 몸을 위험하게 하여 죄를 재촉하는 것보다 낫습니다.'

成風聞成季之繇,乃事之,而屬僖公焉,故成季立之。

성풍(成風)이 성계의 점사를 듣고, 이에 그를 섬기고, 희공을 그에게 맡겼으므로, 성계가 희공을 세웠다.

僖之元年,齊桓公遷邢於夷儀。二年,封衛於楚丘。邢遷如歸,衛國忘亡。

희공 원년, 제환공이 형을 이의(夷儀)로 옮겼다. 이년, 위를 초구(楚丘)에 봉건했다. 형이 옮김이 집에 돌아온 것 같고, 위국이 망함을 잊었다.

衛文公大布之衣,大帛之冠,務材訓農,通商惠工,敬教勸學,授方任能。

위문공이 거친 베 옷을 입고, 큰 비단 관을 쓰고, 재용을 힘쓰고 농사를 훈도하고, 상고를 유통하고 백공에 혜택을 주고, 교화를 공경하고 학습을 권면하고, 법도를 수립하고 어진 이를 임용했다.

元年革車三十乘,季年乃三百乘。

원년에 병거 삼십 승이었는데, 만년에 이르러 삼백 승이 되었다.

희공(僖公)(원년~삼십삼년)

◇僖公元年

◇희공 원년

【經】元年春王正月。齊師、宋師、曹伯次於聶北,救邢。夏六月,邢遷於夷儀。齊師、宋師、曹師城邢。秋七月戊辰,夫人姜氏薨於夷,齊人以歸。楚人伐鄭。八月,公會齊侯、宋公、鄭伯、曹伯、邾人於檉。九月,公敗邾師於偃。

【경】원년 춘(春), 주왕 역법의 정월. 제군(齊師)・송군(宋師)・조백이 섭북(聶北)에 주둔하여 형을 구했다. 하(夏) 륙월, 형이 이의로 옮겼다. 제군・송군・조군이 형성을 쌓았다. 추(秋) 칠월 무진(戊辰), 부인 강씨가 이에서 죽자, 제인이 그녀를 운반해 돌아갔다. 초인이 정을 쳤다. 팔월, 희공이 정(檉)에서 제후・송공・정백・조백・저인과 회견했다. 구월, 희공이 언(偃)에서 저군을 깨뜨렸다.

冬十月壬午,公子友帥師敗莒於酈。獲莒拏。十有二月丁巳,夫人氏之喪至自齊。

동(冬) 십월 임오(壬午), 공자우가 군대를 이끌고 여(酈)에서 여(莒)를 깨뜨렸다. 여나(莒拏)를 사로잡았다. 십이월 정사(丁巳), 부인씨(夫人氏)의 상이 제에서 도착했다.

【傳】元年春,不稱即位,公出故也。公出復入,不書,諱之也。諱國惡,禮也。

【전】원년 춘(春), 『춘추』가 즉위를 칭하지 않은 것은 희공이 나라를 떠난 까닭이다. 희공이 나갔다가 또 돌아왔는데, 『춘추』가 기록하지 않은 것은 회피한 것이다. 나라의 추한 일을 회피하는 것은 예에 합하다.

諸侯救邢。邢人潰,出奔師。師遂逐狄人,具邢器用而遷之,師無私焉。

제후가 형을 구했다. 형인이 흩어져 제후의 군중으로 도망쳤다. 군대가 이에적인을 쫓아내고, 형의 기용을 갖춰 다시 옮겼으며, 군대는 사사로이 취한 것이 없었다.

夏,邢遷夷儀,諸侯城之,救患也。凡侯伯救患分災討罪,禮也。

하(夏), 형이 이의로 옮기니, 제후가 그것을 위해 성을 쌓았으니, 환난을 구한 것이다. 무릇 후백(侯伯)이 환난을 구하고, 재해를 나누고, 죄 있는 자를 치는 것은 예에 합하다.

秋,楚人伐鄭,鄭即齊故也。盟於犖,謀救鄭也。

추(秋), 초인이 정을 친 것은 정이 제에 친근하기 때문이다. 경(犖)에서 맹약한 것은 정을 구할 것을 의논한 것이다.

九月,公敗邾師於偃,虛丘之戍將歸者也。

구월, 희공이 언에서 저군을 깨뜨린 것은, 저것은 허구(虛丘)의 수졸이 돌아가려던 자들이다.

冬,莒人來求賂。公子友敗諸酈,獲莒子之弟拏。非卿也,嘉獲之也。公賜季友汶陽之田及費。

동(冬), 여인이 와서 재화를 구했다. 공자우가 여(酈)에서 그들을 깨뜨려, 여자의 아우 나(拏)를 사로잡았다. 그는 경이 아니나, 『춘추』가 이 포획을 가한 것이다. 희공이 문양(汶陽)의 논과 비(費)를 계우에게 하사했다.

夫人氏之喪至自齊。君子以齊人殺哀姜也為已甚矣,女子,從人者也。

부인씨의 상이 제에서 도착했다. 군자는 제인이 애강을 죽인 것이 지나치다고 생각하니, 여자란 남을 따르는 존재이다.

◇僖公二年

◇희공 이년

【經】二年春王正月,城楚丘。夏五月辛巳,葬我小君哀姜。虞師、晉師滅下陽。秋九月,齊侯、宋公、江人、黃人盟於貫。冬十月,不雨。楚人侵鄭。

【경】이년 춘(春), 주왕 역법의 정월, 초구에 성을 쌓았다. 하(夏) 오월 신사(辛巳), 우리 소군 애강을 장사했다. 우군(虞師)・진군이 하양(下陽)을 멸했다. 추(秋) 구월, 제후・송공・강인(江人)・황인(黃人)이 관(貫)에서 맹약했다. 동(冬) 십월, 비가 오지 않았다. 초인이 정을 침범했다.

【傳】二年春,諸侯城楚丘而封衛焉。不書所會,後也。

【전】이년 춘(春), 제후가 초구에 성을 쌓아 위를 봉건했다. 『춘추』가 회견한 이를 쓰지 않은 것은 노가 늦게 도착했기 때문이다.

晉荀息請以屈產之乘與垂棘之璧,假道於虞以伐虢。公曰:“是吾寶也。”

진(晉)의 순식(荀息)이 굴(屈) 땅에서 난 말과 수극(垂棘)의 옥으로 우(虞)에 길을 빌려 괵을 치자고 청했다. 헌공이 말했다. '이는 나의 보물이다.'

對曰:“若得道於虞,猶外府也。”公曰:“宮之奇存焉。”對曰:“宮之奇之為人也,懦而不能強諫,且少長於君,君暱之,雖諫,將不聽。”乃使荀息假道於虞,曰:“冀為不道,入自顛軨,伐鄍三門。冀之既病,則亦唯君故。

순식이 답했다. '만약 우에서 길을 얻으면, 외부(外府)에 둔 것과 같습니다.' 헌공이 말했다. '궁지기(宮之奇)가 있다.' 답했다. '궁지기의 사람됨이 유약하여 강하게 간하지 못하고, 또 어려서부터 군 곁에서 자라 군이 그를 친근히 하니, 비록 간해도 장차 듣지 않을 것입니다.' 이에 순식을 보내 우에 길을 빌리며 말했다. '기(冀)가 도 없이 행하여 전령(顛軨)에서 들어와 명(鄍)의 세 성문을 쳤습니다. 기가 이미 곤궁해진 것도 또한 군의 까닭입니다.

今虢為不道,保於逆旅,以侵敝邑之南鄙。敢請假道以請罪於虢。”虞公許之,且請先伐虢。宮之奇諫,不聽,遂起師。夏,晉裡克、荀息帥師會虞師伐虢,滅下陽。先書虞,賄故也。

(순식이 이어 말하기를) 지금 괵이 도 없이 행하여 객사에 방비를 두어 폐읍의 남변을 침범합니다. 감히 길을 빌려 괵에게 죄를 묻고자 합니다.' 우공이 허락하고, 또 먼저 괵을 치기를 청했다. 궁지기가 간했으나 듣지 않아, 마침내 군대를 일으켰다. 하(夏), 진의 이극・순식이 군대를 이끌고 우군과 회합하여 괵을 쳐 하양을 멸했다. 『춘추』가 우를 먼저 쓴 것은 재화를 받은 까닭이다.

秋,盟於貫,服江、黃也。

추(秋), 관에서 맹약한 것은 강・황이 이미 복종했기 때문이다.

齊寺人貂始漏師於多魚。

제의 시인 조(寺人貂)가 비로소 다어(多魚)에서 군기를 누설했다.

虢公敗戎於桑田。晉卜偃曰:“虢必亡矣。亡下陽不懼,而又有功,是天奪之鑑,而益其疾也。必易晉而不撫其民矣,不可以五稔。”

괵공이 상전(桑田)에서 융을 깨뜨렸다. 진의 복언이 말했다. '괵은 반드시 망할 것이다. 하양을 잃고도 두려워하지 않고 도리어 공이 있으니, 이는 하늘이 그의 거울을 빼앗아 그 병을 더하게 한 것이다. 반드시 진을 가벼이 여기고 백성을 어루만지지 않을 것이니, 오년을 넘기지 못할 것이다.'

冬,楚人伐鄭,鬥章囚鄭聃伯。

동(冬), 초인이 정을 쳐 두장(鬥章)이 정담백(鄭聃伯)을 사로잡았다.

◇僖公三年

◇희공 삼년

【經】三年春王正月,不雨。夏四月不雨。徐人取舒。六月雨。秋,齊侯、宋公、江人、黃人會於陽穀。冬,公子友如齊涖盟。楚人伐鄭。

【경】삼년 춘(春), 주왕 역법의 정월, 비가 오지 않았다. 하(夏) 사월 비가 오지 않았다. 서인(徐人)이 서(舒)를 취했다. 륙월에 비가 내렸다. 추(秋), 제후・송공・강인・황인이 양곡(陽穀)에서 회견했다. 동(冬), 공자우가 제에 가서 직접 맹약했다. 초인이 정을 쳤다.

【傳】三年春,不雨。夏六月,雨。自十月不雨至於五月,不曰旱,不為災也。

【전】삼년 춘(春), 비가 오지 않았다. 하(夏) 륙월에 비가 내렸다. 십월부터 비가 오지 않아 오월에 이르렀으나, 『춘추』가 한(旱)이라 쓰지 않은 것은 재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秋,會於陽穀,謀伐楚也。

추(秋), 양곡에서 회견한 것은 초를 칠 것을 의논한 것이다.

齊侯為陽穀之會,來尋盟。冬,公子友如齊涖盟。

제후가 양곡의 회견을 위해 와서 맹약을 새롭게 했다. 동(冬), 공자우가 제에 가서 직접 맹약했다.

楚人伐鄭,鄭伯欲成。孔叔不可,曰:“齊方勤我,棄德不祥。”

초인이 정을 치니, 정백이 화하고자 했다. 공숙(孔叔)이 가하지 않으며 말했다. '제가 지금 우리나라를 위해 힘쓰고 있는데, 은덕을 버리면 불길합니다.'

齊侯與蔡姬乘舟於囿,蕩公。公懼,變色。禁之,不可。公怒,歸之,未絕之也。蔡人嫁之。

제후가 채희(蔡姬)와 원우(苑囿)에서 배를 탔는데, 채희가 배를 흔들었다. 제후가 두려워하여 낯빛이 변했다. 그녀를 금했으나 듣지 않았다. 제후가 노하여 그녀를 돌려보냈으나 아직 관계를 끊지는 않았다. 채인이 그녀를 다른 데 시집보냈다.

◇僖公四年

◇희공 사년

【經】四年春王正月,公會齊侯、宋公、陳侯、衛侯、鄭伯,許男、曹伯侵蔡。蔡潰,遂伐楚,次於陘。夏,許男新臣卒。楚屈完來盟於師,盟於召陵。齊人執陳轅濤塗。秋,及江人、黃人伐陳。八月,公至自伐楚。葬許穆公。冬十有二月,公孫茲帥師會齊人、宋人、衛人、鄭人、許人、曹人侵陳。

【경】사년 춘(春), 주왕 역법의 정월, 희공이 제후・송공・진후・위후・정백・허남(許男)・조백과 회합하여 채를 침범했다. 채가 흩어지자, 곧 초를 쳐서 형(陘)에 주둔했다. 하(夏), 허남 신신(新臣)이 죽었다. 초의 굴완(屈完)이 와서 제후의 군대와 맹약하여 소릉(召陵)에서 맹약했다. 제인이 진의 원도도(轅濤塗)를 잡았다. 추(秋), 강인・황인과 함께 진을 쳤다. 팔월, 희공이 벌초(伐楚)에서 돌아왔다. 허목공(許穆公)을 장사했다. 동(冬) 십이월, 공손자(公孫茲)가 군대를 이끌고 제인・송인・위인・정인・허인・조인과 회합하여 진을 침범했다.

【傳】四年春,齊侯以諸侯之師侵蔡。蔡潰。遂伐楚。楚子使與師言曰:“君處北海,寡人處南海,唯是風馬牛不相及也。不虞君之涉吾地也,何故?”管仲對曰:“昔召康公命我先君大公曰:‘五侯九伯,女實徵之,以夾輔周室。’賜我先君履,東至於海,西至於河,南至於穆陵,北至於無棣。爾貢包茅不入,王祭不共,無以縮酒,寡人是徵。昭王南征而不復,寡人是問。”對曰:“貢之不入,寡君之罪也,敢不共給。昭王之不復,君其問諸水濱。”師進,次於陘。

【전】사년 춘(春), 제후가 제후의 군대를 이끌고 채를 침범했다. 채가 흩어지자 곧 초를 쳤다. 초자가 사람을 군중에 보내 말했다. '군은 북해에 살고, 과인은 남해에 사니, 비록 소와 말이 길을 잃어도 서로의 경계에 이르지 않을 것입니다. 군이 우리 땅을 밟을 줄은 생각지 못했으니, 무슨 까닭입니까?' 관중이 답했다. '옛날 소강공(召康公)이 우리 선군 태공(太公)에게 명하기를 「오후구백(五侯九伯)을 너는 모두 정벌하여 주실을 보필하라」 하였습니다. 우리 선군에게 발길이 미치는 범위를 하사하시니, 동쪽은 바다에 이르고, 서쪽은 하(河)에 이르고, 남쪽은 목릉(穆陵)에 이르고, 북쪽은 무체(無棣)에 이릅니다. 너희가 바칠 포모(包茅)가 들어오지 않아 천자의 제사가 공급되지 못하고, 술을 거를 것이 없으니, 과인이 이를 묻는다. 소왕(昭王)이 남쪽으로 정벌하여 돌아오지 않았으니, 과인이 이를 묻는다.' 초인이 답했다. '공물이 들어오지 않은 것은 과군의 죄이니, 감히 공급하지 않겠습니까. 소왕이 돌아오지 않은 것은, 군은 물가에 물어보소서.' 군대가 나아가 형에 주둔했다.

夏,楚子使屈完如師。師退,次於召陵。

하(夏), 초자가 굴완을 군중에 보냈다. 군대가 물러나 소릉에 주둔했다.

齊侯陳諸侯之師,與屈完乘而觀之。齊侯曰:“豈不穀是為?先君之好是繼。

제후가 제후의 군대를 진열하여, 굴완과 함께 수레를 타고 보았다. 제후가 말했다. '어찌 나 불곡(不穀)를 위한 것이겠는가? 선군의 우호를 잇기 위한 것이다.

與不穀同好,如何?”對曰:“君惠徼福於敝邑之社稷,辱收寡君,寡君之願也。”

(제후가 이어 말하기를) 불곡과 함께 우호하면 어떠한가?' 굴완이 답했다. '군이 은혜를 베풀어 폐읍의 사직을 위해 복을 구하고, 과군을 굴빈하여 거두어주시니, 과군의 소원입니다.'

齊侯曰:“以此眾戰,誰能御之?以此攻城,何城不克?”對曰:“君若以德綏諸侯,誰敢不服?君若以力,楚國方城以為城,漢水以為池,雖眾,無所用之。”

제후가 말했다. '이 많은 군대로 싸우면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이것으로 성을 공격하면 어느 성이 함락되지 않겠는가?' 굴완이 답했다. '군이 만약 덕으로 제후를 안무하면 누가 감히 복종하지 않겠습니까? 군이 만약 힘으로 한다면, 초국은 방성(方城)을 성곽으로 삼고, 한수(漢水)를 성지(城池)로 삼으니, 비록 많더라도 쓸 데가 없을 것입니다.'

屈完及諸侯盟。

굴완이 제후와 맹약했다.

陳轅濤塗謂鄭申侯曰:“師出於陳、鄭之間,國必甚病。若出於東方,觀兵於東夷,循海而歸,其可也。”申侯曰:“善。”濤塗以告,齊侯許之。申侯見,曰:“師老矣,若出於東方而遇敵,懼不可用也。若出於陳、鄭之間,共其資糧屝屨,其可也。”齊侯說,與之虎牢。執轅濤塗。

진의 원도도가 정의 신후(申侯)에게 말했다. '군대가 진・정 사이로 나가면 나라가 반드시 심히 피폐할 것입니다. 만약 동쪽으로 나가 동이에게 병력을 자랑하고, 바다를 따라 돌아오면 가능할 것입니다.' 신후가 말했다. '좋다.' 도도가 제후에게 고하니 제후가 허락했다. 신후가 들어가 말했다. '군대가 이미 피로합니다. 만약 동쪽으로 나가 적을 만나면, 쓸 수 없을까 두렵습니다. 만약 진・정 사이로 나가면, 양식과 신발을 공급하면 가능할 것입니다.' 제후가 기뻐하여 그에게 호뢰를 주었다. 원도도를 잡았다.

秋,伐陳,討不忠也。

추(秋), 진을 친 것은 불충을 토한 것이다.

許穆公卒於師,葬之以侯,禮也。凡諸侯薨於朝會,加一等;死王事,加二等。於是有以袞斂。

허목공이 군중에서 죽으니, 후의 예로 장사했으니, 예에 합하다. 무릇 제후가 조회 중에 죽으면 일등을 더하고, 천자의 일을 위해 죽으면 이등을 더한다. 이에 곤의(衮衣)로 입관한 자가 있었다.

冬,叔孫戴伯帥師,會諸侯之師侵陳。陳成,歸轅濤塗。

동(冬), 숙손대백(叔孫戴伯)이 군대를 이끌고, 제후의 군대와 회합하여 진을 침범했다. 진이 화하니, 원도도를 돌려보냈다.

初,晉獻公欲以驪姬為夫人,卜之,不吉;筮之,吉。公曰:“從筮。”卜人曰:“筮短龜長,不如從長。且其繇曰:‘專之渝,攘公之羭。一薰一蕕,十年尚猶有臭。’必不可。”弗聽,立之。生奚齊,其娣生卓子。及將立奚齊,既與中大夫成謀,姬謂大子曰:“君夢齊姜,必速祭之。”大子祭於曲沃,歸胙於公。公田,姬置諸宮六日。公至,毒而獻之。公祭之地,地墳。與犬,犬斃。

옛날 진헌공이 여희를 부인으로 세우려 하여, 점치니 불길하고, 시로 점치니 길했다. 헌공이 말했다. '시를 따르겠다.' 복자가 말했다. '시는 짧고 귀는 기니, 긴 것을 따르는 것만 못합니다. 게다가 그 요사(繇辭)에 이르기를 「전총하면 변하고, 공의 수양을 빼앗네. 훈(薰)과 유(蕕) 하나씩이면, 십년이 지나도 냄새가 남네」. 반드시 안 됩니다.' 듣지 않고 그녀를 세웠다. 해제를 낳았고, 그 여동생이 탁자를 낳았다. 장차 해제를 세우려 할 때, 이미 중대부와 함께 모의를 정했는데, 여희가 태자에게 말했다. '군이 제강을 꿈꾸었으니, 반드시 빨리 그녀를 제사하라.' 태자가 곡옥에서 제사하고, 제육을 헌공에게 보냈다. 헌공이 전사(田狩)를 가니, 여희가 고기를 궁중에 여섯 날 두었다. 헌공이 돌아오자, 그녀가 고기에 독을 넣어 바쳤다. 헌공이 땅에 제사하니 땅이 솟았다. 개에게 주니 개가 죽었다.

與小臣,小臣亦斃。姬泣曰:“賊由大子。”大子奔新城。公殺其傅杜原款。或謂大子:“子辭,君必辯焉。”大子曰:“君非姬氏,居不安,食不飽。我辭,姬必有罪。君老矣,吾又不樂。”曰:“子其行乎!”大子曰:“君實不察其罪,被此名也以出,人誰納我?”十二月戊申,縊於新城。姬遂譖二公子曰:“皆知之。”重耳奔蒲。夷吾奔屈。

소신에게 주니 소신도 죽었다. 여희가 울며 말했다. '해침이 태자로부터 왔습니다.' 태자가 신성(新城)으로 도망쳤다. 헌공이 그의 스승 두원관(杜原款)을 죽였다. 어떤 사람이 태자에게 말했다. '그대가 해명하면 군이 반드시 분별할 것입니다.' 태자가 말했다. '군은 희씨가 없으면 삶이 편안하지 않고 음식이 배부르지 않다. 내가 해명하면 희가 반드시 죄를 얻을 것이다. 군이 늙으셨는데, 나는 또 즐겁지 않을 것이다.' 그 사람이 말했다. '그대는 도망치시오!' 태자가 말했다. '군이 실제로 죄를 살피지 않았는데, 이 이름을 뒤집어쓰고 나가면 누가 나를 받아주겠는가?' 십이월 무신(戊申), 신성에서 목을 맸다. 여희가 이에 두 공자를 참소하여 말했다. '그들이 모두 알았습니다.' 중이가 포로 도망쳤다. 이오가 굴로 도망쳤다.

◇僖公五年

◇희공 오년

【經】五年春,晉侯殺其世子申生。杞伯姬來朝其子。夏,公孫茲如牟。公及齊侯、宋公、陳侯、衛侯、鄭伯、許男、曹伯會王世子於首止。秋八月,諸侯盟於首止。鄭伯逃歸不盟。楚人滅弦,弦子奔黃。九月戊申朔,日有食之。冬,晉人執虞公。

【경】오년 춘(春), 진후가 그 세자 신생을 죽였다. 기백희가 아들을 데리고 와서 조했다. 하(夏), 공손자가 모(牟)에 갔다. 희공이 제후・송공・진후・위후・정백・허남・조백과 함께 왕세자를 수지(首止)에서 만났다. 추(秋) 팔월, 제후가 수지에서 맹약했다. 정백이 도망쳐 돌아가 맹약에 참여하지 않았다. 초인이 현(弦)을 멸하니, 현자가 황으로 도망쳤다. 구월 무신 삭일, 일식이 있었다. 동(冬), 진인이 우공을 잡았다.

【傳】五年春,王正月辛亥朔,日南至。公既視朔,遂登觀臺以望。而書,禮也。凡分、至、啟、閉,必書云物,為備故也。

【전】오년 춘(春), 왕 정월 신해(辛亥) 삭일, 동지였다. 공이 이미 시삭(視朔)을 하고, 이어서 관대(觀臺)에 올라 멀리 바라보았다. 기록한 것은 예에 합하다. 무릇 춘분・추분・하지・동지・입춘・입하・입추・입동에는 반드시 운기(雲物)를 기록하니, 대비를 위함이다.

晉侯使以殺大子申生之故來告。

진후가 사람을 보내 태자 신생을 죽인 까닭을 와서 고했다.

初,晉侯使士蒍為二公子築蒲與屈,不慎,置薪焉。夷吾訴之。公使讓之。

옛날 진후가 사위를 보내 두 공자를 위해 포와 굴에 성을 쌓게 했는데, 삼가지 않아 벽 안에 땔나무를 채워 넣었다. 이오가 그를 고했다. 헌공이 사람을 시켜 그를 꾸짖었다.

士蒍稽首而對曰:“臣聞之,無喪而戚,憂必仇焉。無戎而城,仇必保焉。寇仇之保,又何慎焉!守官廢命不敬,固仇之保不忠,失忠與敬,何以事君?《詩》云:‘懷德惟寧,宗子惟城。’君其修德而固宗子,何城如之?三年將尋師焉,焉用慎?”退而賦曰:“狐裘尨茸,一國三公,吾誰適從?”及難,公使寺人披伐蒲。重耳曰:“君父之命不校。”乃徇曰:“校者吾仇也。”逾垣而走。披斬其祛,遂出奔翟。

사위가 머리를 조아리며 답했다. '신이 듣건대, 상사 없이 슬퍼하면 근심이 반드시 따라오고, 병사 없이 성을 쌓으면 원수가 반드시 웅거합니다. 구추의 보루를 준비하면서 또 무엇을 삼가겠습니까! 벼슬을 지키면서 명을 폐하는 것은 불경이요, 원수의 보루를 굳히는 것은 불충입니다. 충과 경을 잃으면, 무엇으로 군주를 섬기겠습니까? 『시』에 이르기를 「덕을 품어야 편안하고, 종자가 곧 성이다」. 군이 덕을 닦고 종자를 굳히면, 어떤 성이 이에 비하겠습니까? 삼년 후에 거기서 병을 쓸 것이니, 어찌 삼갈 필요가 있겠습니까?' 물러나서 읊기를 「여우 가죽이 어지러워, 한 나라에 세 공이 있네, 나는 누구를 따를까」. 화난이 이르자, 헌공이 시인 피(寺人披)를 보내 포를 쳤다. 중이가 말했다. '군부의 명은 대항하지 않는다.' 이에 순행하여 전령했다. '대항하는 자는 나의 원수다.' 담을 넘어 달아나니, 피가 그 소매를 베었다. 이에 적(翟)으로 도망쳤다.

夏,公孫茲如牟,娶焉。

하(夏), 공손자가 모에 가서 그곳에서 아내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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