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공(隱公)(원년~십일년)
王使召伯廖賜齊侯命,且請伐衛,以其立子頹也。
천자가 소백요(召伯廖)를 보내 제후에게 명을 내리고, 또 위(衛)를 쳐달라 청했으니, 위가 자퇴를 세웠기 때문이다.
◇莊公二十八年
◇장공 이십팔년
【經】二十有八年春,王三月甲寅,齊人伐衛。衛人及齊人戰,衛人敗績。
【경】이십팔년 춘(春), 주왕 역법의 삼월 갑인(甲寅), 제인이 위를 쳤다. 위인이 제인과 싸워, 위인이 크게 패했다.
夏四月丁未,邾子瑣卒。秋,荊伐鄭,公會齊人、宋人救鄭。冬,築郿。大無麥、禾,臧孫辰告糴於齊。
하(夏) 사월 정미(丁未), 저자(邾子) 쇄(瑣)이 죽었다. 추(秋), 초가 정을 치니, 장공이 제인・송인과 회합하여 정을 구했다. 동(冬), 미(郿)에 성을 쌓았다. 보리와 곡식이 심히 거두지 못해, 장손신(臧孫辰)이 제에 가서 곡식을 사기를 청했다.
【傳】二十八年春,齊侯伐衛。戰,敗衛師。數之以王命,取賂而還。
【전】이십팔년 춘(春), 제후가 위를 쳤다. 싸워서 위군을 깨뜨렸다. 천자의 명으로 위를 꾸짖고, 재물을 취하고 돌아왔다.
晉獻公娶於賈,無子。烝於齊姜,生秦穆夫人及大子申生。又娶二女於戎,大戎狐姬生重耳,小戎子生夷吾。晉伐驪戎,驪戎男女以驪姬。歸生奚齊。其娣生卓子。驪姬嬖,欲立其子,賂外嬖梁五,與東關嬖五,使言於公曰:“曲沃,君之宗也。蒲與二屈,君之疆也。不可以無主。宗邑無主則民不威,疆埸無主則啟戎心。戎之生心,民慢其政,國之患也。若使大子主曲沃,而重耳、夷吾主蒲與屈,則可以威民而懼戎,且旌君伐。”使俱曰:“狄之廣莫,於晉為都。晉之啟土,不亦宜乎?”晉侯說之。夏,使大子居曲沃,重耳居蒲城,夷吾居屈。群公子皆鄙,唯二姬之子在絳。二五卒與驪姬譖群公子而立奚齊,晉人謂之二耦。
진헌공(晉獻公)이 가(賈)에서 아내를 맞았으나 아들이 없었다. 제강(齊姜)과 통하여 진목부인(秦穆夫人)과 태자 신생(申生)을 낳았다. 또 융에서 두 여자를 맞았으니, 대융호희(大戎狐姬)가 중이(重耳)를 낳고, 소융자(小戎子)가 이오(夷吾)를 낳았다. 진이 여융(驪戎)을 치니 여융 남(男)이 여희(驪姬)를 바쳤다. 돌아와 해제(奚齊)를 낳았다. 그 여동생이 탁자(卓子)를 낳았다. 여희가 총애를 얻어 그 아들을 세우려 하여, 재물로 외폐(外嬖) 양오(梁五)와 동관폐오(東關嬖五)를 매수하여 헌공에게 말하게 했다. '곡옥(曲沃)은 군의 종읍이요, 포(蒲)와 이굴(二屈)은 군의 변경입니다. 주관하는 자가 없을 수 없습니다. 종읍에 주관이 없으면 백성이 위엄을 모르고, 변경에 주관이 없으면 융심(戎心)을 열게 됩니다. 융이 마음을 생기고 백성이 정령을 게을리하면, 나라의 환난입니다. 만약 태자로 곡옥을 관리하게 하고, 중이・이오로 포와 굴을 관리하게 하면, 백성을 위압하고 융을 두렵게 하며, 또한 군의 공을 표창할 수 있습니다.' 또 그들 모두로 하여금 말하게 했다. '적인(狄人)의 넓고 넓은 땅은 진에 있어 도읍이 될 수 있습니다. 진이 토지를 개척하는 것은 또한 마땅하지 않습니까?' 진후가 기뻐했다. 하(夏), 태자를 곡옥에 살게 하고, 중이를 포성에 살게 하고, 이오를 굴에 살게 했다. 여러 공자는 모두 변경에 있고, 오직 두 희(姬)의 아들만이 강에 있었다. 두 오(五)가 마침내 여희와 함께 여러 공자를 참소하여 해제를 세우니, 진인이 그들을 이우(二耦)라 불렀다.
楚令尹子元欲蠱文夫人,為館於其宮側,而振萬焉。夫人聞之,泣曰:“先君以是舞也,習戎備也。今令尹不尋諸仇讎,而於未亡人之側,不亦異乎!”御人以告子元。子元曰:“婦人不忘襲仇,我反忘之!”秋,子元以車六百乘伐鄭,入於桔柣之門。子元、鬥御疆、鬥梧、耿之不比為旆,鬥班、王孫遊、王孫喜殿。眾車入自純門,及逵市。縣門不發,楚言而出。子元曰:“鄭有人焉。”諸侯救鄭,楚師夜遁。鄭人將奔桐丘,諜告曰:“楚幕有烏。”乃止。
초의 영윤 자원(令尹子元)이 문부인(文夫人)을 꾀려 하여 그 궁실 옆에 관사를 짓고 그곳에서 북을 치며 만무(萬舞)를 추었다. 부인이 이를 듣고 울며 말했다. '선군이 이 춤을 쓴 것은 군비를 익히기 위함이었다. 지금 영윤이 이를 원수에게 쓰지 않고 미망인 곁에서 쓰니, 또한 이상하지 않은가!' 시자가 자원에게 고하니, 자원이 말했다. '부인도 원수를 치는 것을 잊지 않는데, 내가 도리어 잊었다!' 추(秋), 자원이 전차 육백 승(六百乘)으로 정을 쳐서 귤철지문(桔柣之門)으로 들어갔다. 자원・두어강(鬥御疆)・두오(鬥梧)・경지불비(耿之不比)가 전군(前軍)이 되고, 두반(鬥班)・왕손유(王孫游)・왕손희(王孫喜)가 후군이 되었다. 여러 수레가 순문(純門)으로 들어가 큰길의 저자(集市)에 이르렀다. 수문이 내리지 않자 초인이 말하면서 나갔다. 자원이 말했다. '정에는 인재가 있다.' 제후가 정을 구하니, 초군이 밤에 도망쳤다. 정인이 동구(桐丘)로 도망치려 했는데, 정탐꾼이 고하기를 '초군의 장막에 까마귀가 있습니다' 하니, 그제야 그쳤다.
冬,飢。臧孫辰告糴於齊,禮也。
동(冬), 기근이 들었다. 장손신이 제에 곡식 사기를 청한 것은 예에 합하다.
築郿,非都也。凡邑有宗廟先君之主曰都,無曰邑。邑曰築,都曰城。
미에 성을 쌓은 것은, 그것이 도(都)가 아니기 때문이다. 무릇 읍에 종묘와 선군의 신주가 있는 것을 도라 하고, 없는 것을 읍(邑)이라 한다. 읍은 '축(築)'이라 하고, 도는 '성(城)'이라 한다.
◇莊公二十九年
◇장공 이십구년
【經】二十有九年春,新延廄。夏,鄭人侵許。秋,有蜚。冬十有二月,紀叔姬卒。城諸及防。
【경】이십구년 춘(春), 연구(延廐)를 새로 지었다. 하(夏), 정인이 허(許)를 침범했다. 추(秋), 비충(蜚蟲)이 나타났다. 동(冬) 십이월, 기숙희(紀叔姬)가 죽었다. 제(諸)와 방(防)의 성을 쌓았다.
【傳】二十九年春,新作延廄。書,不時也。凡馬日中而出,日中而入。
【전】이십구년 춘(春), 연구를 새로 지었다. 『춘추』가 기록한 것은, 때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무릇 말은 춘분에보내고 추분에 거둬들인다.
夏,鄭人侵許。凡師有鐘鼓曰伐,無曰侵,輕曰襲。
하(夏), 정인이 허를 침범했다. 무릇 출병은, 종고(鐘鼓)가 있으면 '벌(伐)'이라 하고, 없으면 '침(侵)'이라 하고, 가볍게 급습하면 '습(襲)'이라 한다.
秋,有蜚,為災也。凡物不為災不書。
추(秋), 비충이 나타난 것은 재해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무릇 사물이 재해를 일으키지 않으면 『춘추』는 기록하지 않는다.
冬十二月,城諸及防,書,時也。凡土功,龍見而畢務,戒事也。火見而致用,水昏正而栽,日至而畢。
동(冬) 십이월, 제와 방의 성을 쌓은 것을 『춘추』가 기록한 것은, 때에 맞기 때문이다. 무릇 토공(土功)은, 용성(龍星)이 나타나고 농사가 끝나면 준비를 시작하고, 대화(大火)가 나타나면 기구를 갖추고, 영실(營室)이 황혼에 정남쪽에 오면 담을 쌓기 시작하여, 동지에 마친다.
樊皮叛王。
번피(樊皮)가 천자를 배반했다.
◇莊公三十年
◇장공 삼십년
【經】三十年春王正月。夏,次於成。秋七月,齊人降鄣。八月癸亥,葬紀叔姬。九月庚午朔,日有食之,鼓,用牲於社。冬,公及齊侯遇於魯濟。齊人伐山戎。
【경】삼십년 춘(春), 주왕 역법의 정월. 하(夏), 성(成)에 주둔했다. 추(秋) 칠월, 제인이 장(鄣)을 항복시켰다. 팔월 계해(癸亥), 기숙희를 장사했다. 구월 경오(庚午) 삭일, 일식이 있어, 북을 치고, 사에서 희생을 썼다. 동(冬), 장공이 제후와 노제(魯濟)에서 우연히 만났다. 제인이 산융(山戎)을 쳤다.
【傳】三十年春,王命虢公討樊皮。夏四月丙辰,虢公入樊,執樊仲皮,歸於京師。
【전】삼십년 춘(春), 천자가 괵공에게 명하여 번피를 치게 했다. 하(夏) 사월 병진(丙辰), 괵공이 번에 들어가 번중피(樊仲皮)를 잡아, 경사로 데려왔다.
楚公子元歸自伐鄭,而處王宮,鬥射師諫,則執而梏之。
초의 공자 원(公子元)이 정을 치고 돌아와 왕궁에 살자, 두사사(鬥射師)가 간하니, 그를 잡아 차꼬를 채웠다.
秋,申公斗班殺子元,鬥谷於菟為令尹,自毀其家以紓楚國之難。
추(秋), 신공 두반(申公鬬班)이 자원을 죽였고, 두곡옥두(鬬穀於菟)가 영윤이 되어, 스스로 집안을 기울여 초국의 곤란을 풀었다.
冬,遇於魯濟,謀山戎也,以其病燕故也。
동(冬), 노제에서 우연히 만난 것은 산융의 일을 의논한 것이니, 산융이 연(燕)을 괴롭혔기 때문이다.
◇莊公三十一年
◇장공 삼십일년
【經】三十有一年春,築臺於郎。夏四月,薛伯卒。築臺於薛。六月,齊侯來獻戎捷。秋,築臺於秦。冬,不雨。
【경】삼십일년 춘(春), 낭(郎)에 대(臺)를 쌓았다. 하(夏) 사월, 설백(薛伯)이 죽었다. 설(薛)에 대를 쌓았다. 륙월, 제후가 와서 융을 친 포로를 바쳤다. 추(秋), 진(秦)에 대를 쌓았다. 동(冬), 비가 오지 않았다.
【傳】三十一年夏六月,齊侯來獻戎捷,非禮也。凡諸侯有四夷之功,則獻於王,王以警於夷。中國則否。諸侯不相遺俘。
【전】삼십일년 하(夏) 륙월, 제후가 와서 융을 친 포로를 바친 것은 예에 맞지 않는다. 무릇 제후가 사이(四夷)에 대한 공이 있으면 천자에게 바치고, 천자가 이로써 이적을 경계한다. 중원 제국에는 그러하지 않다. 제후끼리는 포로를 서로 주지 않는다.
◇莊公三十二年
◇장공 삼십이년
【經】三十有二年春,城小谷。夏,宋公、齊侯遇於梁丘。秋七月癸巳,公子牙卒。八月癸亥,公薨於路寢。冬十月己未,子般卒。公子慶父如齊。狄伐邢。
【경】삼십이년 춘(春), 소곡(小穀)에 성을 쌓았다. 하(夏), 송공・제후가 양구(梁丘)에서 우연히 만났다. 추(秋) 칠월 계사(癸巳), 공자아(公子牙)가 죽었다. 팔월 계해, 장공이 로침(路寢)에서 죽었다. 동(冬) 십월 기미(己未), 자반(子般)이 죽었다. 공자 경보(慶父)가 제로 갔다. 적(狄)이 형(邢)을 쳤다.
【傳】三十二年春,城小谷,為管仲也。
【전】삼십이년 춘(春), 소곡에 성을 쌓은 것은 관중(管仲)을 위한 것이다.
齊侯為楚伐鄭之故,請會於諸侯。宋公請先見於齊侯。夏,遇於梁丘。
제후가 초가 정을 친 까닭으로 제후들과의 회견을 청했다. 송공이 먼저 제후를 뵙기를 청했다. 하(夏), 양구에서 우연히 만났다.
秋七月,有神降於莘。
추(秋) 칠월, 신(神)이 신(莘)에 내렸다.
惠王問諸內史過曰:“是何故也?”對曰:“國之將興,明神降之,監其德也;將亡,神又降之,觀其惡也。故有得神以興,亦有以亡,虞、夏、商、周皆有之。”王曰:“若之何?”對曰:“以其物享焉,其至之日,亦其物也。”王從之。內史過往,聞虢請命,反曰:“虢必亡矣,虐而聽於神。”
혜왕이 내사과(內史過)에게 물었다. '이것은 무슨 까닭인가?' 내사과가 답했다. '나라가 장차 흥하면 명신(明神)이 내려와 그 덕을 감찰하고, 장차 망하면 신이 또 내려와 그 악을 봅니다. 그러므로 신을 얻어 흥한 이도 있고, 이로써 망한 이도 있으니, 우(虞)・하(夏)・상(商)・주(周)에 모두 있었습니다.' 천자가 말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답했다. '그에 상응하는 제물로 제사지내는데, 그것이 온 날이 곧 상응하는 제물입니다.' 천자가 따랐다. 내사과가 가서, 괵이 신에게 명을 청했다는 것을 듣고, 돌아와 말했다. '괵은 반드시 망할 것입니다. 포학하면서 신의 명을 듣습니다.'
神居莘六月。虢公使祝應、宗區、史嚚享焉。神賜之土田。史嚚曰:“虢其亡乎!吾聞之:國將興,聽於民;將亡,聽於神。神,聰明正直而一者也,依人而行。虢多涼德,其何土之能得!”初,公築臺臨黨氏,見孟任,從之。閟,而以夫人言許之。割臂盟公,生子般焉。雩,講於梁氏,女公子觀之。圉人犖自牆外與之戲。子般怒,使鞭之。公曰:“不如殺之,是不可鞭。犖有力焉,能投蓋於稷門。”
신이 신에 여섯 달 머물렀다. 괵공이 축응(祝應)・종구(宗區)・사은(史嚚)을 보내 제사지내게 했다. 신이 그에게 토지와 전읍을 내렸다. 사은이 말했다. '괵은 아마 망할 것입니다! 제가 듣건대, 나라가 장차 흥하면 백성의 말을 듣고, 장차 망하면 신의 말을 듣습니다. 신이란 총명하고 정직하여 한결같은 존재로, 사람을 따라 행합니다. 괵은 박덕이 많으니, 무슨 토지를 얻겠습니까!' 옛날 장공이 대를 쌓아 당씨(黨氏)에 가까이 하고, 맹임(孟任)을 보고 그녀를 따랐다. 그녀가 문을 닫으니 장공이 그녀를 부인으로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녀가 팔을 갈라 장공과 맹약하고, 자반을 낳았다. 우제(雩祭)를 지낼 때 양씨(梁氏)에서 연습하니, 여공자가 보러 갔다. 우인 낙(圉人犖)이 담 밖에서 그녀와 희롱했다. 자반이 노하여 사람을 시켜 그를 채찍질했다. 장공이 말했다. '차라리 그를 죽이는 것이 낫다. 이 사람은 채찍질만 해서는 안 된다. 낙은 힘이 있어, 수레 덮개를 집어 문(稷門) 위로 던질 수 있다.'
公疾,問後於叔牙。對曰:“慶父材。”問於季友,對曰:“臣以死奉般。”
장공이 병이 위독하니, 숙아(叔牙)에게 후계자를 물었다. 숙아가 답했다. '경보가 재능이 있습니다.' 계우에게 물으니, 계우가 답했다. '신이 죽음으로써 자반을 섬기겠습니다.'
公曰:“鄉者牙曰慶父材。”成季使以君命命僖叔待於針巫氏,使針季鴆之,曰:“飲此則有後於魯國,不然,死且無後。”飲之,歸及逵泉而卒,立叔孫氏。
장공이 말했다. '조금 전에 아(牙)가 경보가 재능 있다고 했다.' 성계(成季)가 사람을 시켜 군의 명으로 희숙(僖叔)을 침무씨(鍼巫氏)에게서 기다리게 하고, 침계(鍼季)에게 독주를 주게 하며 말했다. '이것을 마시면 노국에 후손이 있을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죽어도 후손이 없을 것이다.' 그가 마시고, 돌아가다가 규천(逵泉)에 이르러 죽었고, 숙손씨(叔孫氏)가 세워졌다.
八月癸亥,公薨於路寢。子般即位,次於黨氏。冬十月己未,共仲使圉人犖賊子般於黨氏。成季奔陳。立閔公。
팔월 계해, 장공이 로침에서 죽었다. 자반이 즉위하여 당씨 집에 살았다. 동(冬) 십월 기미, 공중(共仲)이 우인 낙을 보내 당씨에게서 자반을 죽였다. 성계가 진으로 도망쳤다. 민공(閔公)이 세워졌다.
민공(閔公)(원년~이년)
◇閔公元年
◇민공 원년
【經】元年春王正月。齊人救邢。夏六月辛酉,葬我君莊公。秋八月,公及齊侯盟於落姑。季子來歸。冬,齊仲孫來。
【경】원년 춘(春), 주왕 역법의 정월. 제인이 형을 구했다. 하(夏) 륙월 신유, 우리나라 군주 장공을 장사했다. 추(秋) 팔월, 민공이 제후와 낙고(落姑)에서 맹약했다. 계자(季子)가 돌아왔다. 동(冬), 제(齊)의 중손(仲孫)이 왔다.
【傳】元年春,不書即位,亂故也。
【전】원년 춘(春), 『춘추』가 즉위를 기록하지 않은 것은, 동란 때문이다.
狄人伐邢。管敬仲言於齊侯曰:“戎狄豺狼,不可厭也。諸夏親暱,不可棄也。宴安鴆毒,不可懷也。《詩》云:‘豈不懷歸,畏此簡書。’簡書,同惡相恤之謂也。請救邢以從簡書。”齊人救邢。
적인이 형을 쳤다. 관경중(管敬仲)이 제후에게 말했다. '융적은 승랑과 같아 만족할 수 없습니다. 제하는 친근한 것이니 버릴 수 없습니다. 안일하고 쾌락함은 짐독과 같아 그리워할 수 없습니다. 『시』에 이르기를 「어찌 돌아가고 싶지 않겠는가, 이 간서를 두려워하네」. 간서란 공동의 재앙을 서로 휼(恤)하는 것입니다. 청컨대 형을 구하여 간서를 따르소서.' 제인이 형을 구했다.
夏六月,葬莊公,亂故,是以緩。
하(夏) 륙월, 장공을 장사했는데, 동란 때문에 늦어졌다.
秋八月,公及齊侯盟於落姑,請復季友也。齊侯許之,使召諸陳,公次於郎以待之。“季子來歸”,嘉之也。
추(秋) 팔월, 민공이 제후와 낙고에서 맹약한 것은 계우를 돌아오게 하기를 청한 것이다. 제후가 허락하여 사람을 시켜 진에서 그를 불러, 민공이 낭에 주둔하여 기다렸다. 『춘추』가 '계자래귀(季子來歸)'라 쓴 것은 그를 가한 것이다.
冬,齊仲孫湫來省難。書曰“仲孫”,亦嘉之也。
동(冬), 제의 중손추(仲孫湫)가 와서 화난을 살폈다. 『춘추』가 '중손'이라 쓴 것도 그를 가한 것이다.
仲孫歸曰:“不去慶父,魯難未已。”公曰:“若之何而去之?”對曰:“難不已,將自斃,君其待之。”公曰:“魯可取乎?”對曰:“不可,猶秉周禮。周禮,所以本也。臣聞之,國將亡,本必先顛,而後枝葉從之。魯不棄周禮,未可動也。君其務寧魯難而親之。親有禮,因重固,間攜貳,覆昏亂,霸王之器也。”
중손이 돌아가 말했다. '경보를 제거하지 않으면, 노의 화난은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환공이 말했다. '어떻게 해야 그를 제거할 수 있는가?' 답했다. '화난이 그치지 않으면 스스로 쓰러질 것이니, 군은 잠시 기다리소서.' 환공이 말했다. '노를 취할 수 있는가?' 답했다. '안 됩니다. 아직 주례(周禮)를 지니고 있습니다. 주례는 근본입니다. 신이 듣건대, 나라가 장차 망하면 근본이 반드시 먼저 쓰러지고, 그 후에 지엽이 따라 쓰러집니다. 노가 주례를 버리지 않으면 아직 흔들 수 없습니다. 군은 마땅히 노의 화난을 평안하게 하고 그를 친근히 하소서. 예 있는 자를 친근히 하고, 견고한 자를 의지하고, 이심하는 자를 이간하고, 혼란한 자를 뒤집으니, 이것이 패왕의 기구입니다.'
晉侯作二軍,公將上軍,大子申生將下軍。趙夙御戎,畢萬為右,以滅耿、滅霍、滅魏。還,為大子城曲沃。賜趙夙耿,賜畢萬魏,以為大夫。
진후가 두 군(軍)을 만들어, 스스로 상군(上軍)을 이끌고, 태자 신생이 하군(下軍)을 이끌었다. 조숙(趙夙)이 융거를 몰고, 필만(畢萬)이 거우(車右)가 되어, 경(耿)을 멸하고, 곽(霍)을 멸하고, 위(魏)를 멸했다. 돌아와, 태자를 위해 곡옥에 성을 쌓았다. 경을 조숙에게 주고, 위를 필만에게 주어, 대부로 삼았다.
士蒍曰:“大子不得立矣,分之都城而位以卿,先為之極,又焉得立。不如逃之,無使罪至。為吳大伯,不亦可乎?猶有令名,與其及也。且諺曰:‘心苟無瑕,何恤乎無家。’天若祚大子,其無晉乎。”
사위가 말했다. '태자는 세울 수 없게 되었다. 도성을 나누어 주고 또 경의 자리를 주어, 먼저 그를 정점에 이르게 하니 또 어찌 세울 수 있겠는가. 차라리 도망치는 것만 못하다. 죄가 오지 않게 하는 것이다. 오태백(吳太伯)이 되는 것도 괜찮지 않은가? 오히려 좋은 이름을 남길 수 있으니, 재앙을 만나는 것보다 낫다. 게다가 언에 이르기를 「마음에 만약 흠이 없으면, 집이 없음을 어찌 걱정하랴」. 하늘이 만약 태자를 돕는다면 어찌 진 이외의 곳이 없겠는가?'
卜偃曰:“畢萬之後必大。萬,盈數也;魏,大名也;以是始賞,天啟之矣。
복언(卜偃)이 말했다. '필만의 후손은 반드시 커질 것입니다. 만(萬)은 가득 찬 수요, 위(魏)는 높고 큰 이름입니다. 이것으로 상을 시작하니, 하늘이 그를 계발한 것입니다.
天子曰兆民,諸侯曰萬民。今名之大,以從盈數,其必有眾。”
(복언이 이어 말하기를) 천자는 조민(兆民)이라 하고, 제후는 만민(萬民)이라 합니다. 지금 이름이 높고 크면서 또 가득 찬 수를 따르니, 그는 반드시 백성을 가질 것입니다.'
初,畢萬筮仕於晉,遇《屯》ⅴⅲ之《比》ⅴⅰ。辛廖占之,曰:“吉。
옛날 필만이 진에서 벼슬할 것을 점치니, 『둔(屯)』을 얻어 『비(比)』로 변했다. 신료(辛廖)가 점괘를 보고 말했다. '길하다.
《屯》固《比》入,吉孰大焉?其必蕃昌。《震》為土,車從馬,足居之,兄長之,母覆之,眾歸之,六體不易,合而能固,安而能殺。公侯之卦也。公侯之子孫,必復其始。”
(신료가 이어 말하기를) 『둔』은 견고함이요, 『비』는 들어감이니, 이보다 더 큰 길함이 어디 있겠습니까? 반드시 번성할 것입니다. 『진(震)』이 흙으로 변하고, 수레가 말을 따르고, 발이 살고, 형이 기르고, 어머니가 덮고, 민중이 귀부하니, 육체(六體)가 변하지 않고, 모여서 견고하고, 편안하면서 숙살할 수 있으니, 공후의 괘입니다. 공후의 자손은 반드시 그 시작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閔公二年
◇민공 이년
【經】二年春王正月,齊人遷陽。夏五月乙酉,吉禘於莊公。秋八月辛丑,公薨。九月,夫人姜氏孫於邾。公子慶父出奔莒。冬,齊高子來盟。十有二月,狄入衛。鄭棄其師。
【경】이년 춘(春), 주왕 역법의 정월, 제인이 양(陽)을 옮겼다. 하(夏) 오월 을유(乙酉), 장공을 위해 길제(吉禘)를 행했다. 추(秋) 팔월 신축(辛丑), 민공이 죽었다. 구월, 부인 강씨가 저(邾)로 도망쳤다. 공자 경보가 여로 도망쳤다. 동(冬), 제의 고자(高子)가 와서 맹약했다. 십이월, 적이 위에 들어갔다. 정이 그 군대를 버렸다.
【傳】二年春,虢公敗犬戎於渭汭。舟之僑曰:“無德而祿,殃也。殃將至矣。”遂奔晉。
【전】이년 춘(春), 괵공이 위수(渭水)의 물굽이에서 견융(犬戎)을 깨뜨렸다. 주지교(舟之僑)가 말했다. '덕이 없이 녹을 얻는 것은 재앙이다. 재앙이 장차 이를 것이다.' 이에 진으로 도망쳤다.
夏,吉禘於莊公,速也。
하(夏), 장공을 위해 길제를 행한 것은 너무 이른 것이다.
初,公傅奪卜齮田,公不禁。
옛날 민공의 스승이 복이(卜齮)의 논을 빼앗았는데, 민공이 금하지 않았다.
秋八月辛丑,共仲使卜齮賊公於武闈。成季以僖公適邾。共仲奔莒,乃入,立之。以賂求共仲於莒,莒人歸之。及密,使公子魚請,不許。哭而往,共仲曰:“奚斯之聲也。”乃縊。
추(秋) 팔월 신축, 공중이 복이를 보내 무위(武闈)에서 민공을 죽였다. 성계가 희공(僖公)을 데리고 저로 갔다. 공중이 여로 도망치고 나서야 들어가, 희공을 세웠다. 재물로 여에서 공중을 구하니, 여인이 그를 돌려보냈다. 밀(密)에 이르러, 공자어(公子魚)를 보내 사면을 청했으나 허락하지 않았다. 공자어가 울며 가니, 공중이 말했다. '이것은 해사(奚斯)의 소리다.' 이에 목을 맸다.
閔公,哀姜之娣叔姜之子也,故齊人立之。共仲通於哀姜,哀姜欲立之。閔公之死也,哀姜與知之,故孫於邾。齊人取而殺之於夷,以其屍歸,僖公請而葬之。
민공은 애강의 여동생 숙강(叔姜)의 아들이므로, 제인이 그를 세웠다. 공중이 애강과 통했는데, 애강이 공중을 세우려 했다. 민공의 죽음에 애강이 참여하여 알았으므로, 저로 도망쳤다. 제인이 그녀를 잡아 이(夷)에서 죽이고, 시신을 운반해 돌아가니, 희공이 청하여 그녀를 장사했다.
成季之將生也,桓公使卜楚丘之父卜之。曰:“男也。其名曰友,在公之右。
성계가 장차 태어날 때, 환공이 복초구(卜楚丘)의 아버지로 하여금 점치게 했다. 말했다. '사내아이이다. 그의 이름은 우(友)이고, 공의 오른쪽에 있으리라.
間於兩社,為公室輔。季氏亡,則魯不昌。”又筮之,遇《大有》ⅵⅰ之《乾》ⅰⅰ,曰:“同復於父,敬如君所。”及生,有文在其手曰“友”,遂以命之。
(복자가 이어 말하기를) 두 사(社) 사이에 있어, 공실의 보좌가 되리라. 계씨가 망하면 노는 창성하지 못하리라.' 또 시초로 점쳐서 『대유(大有)』를 얻어 『건(乾)』으로 변하니, 말했다. '함께 아버지께 돌아가, 공경함이 군주 있는 곳과 같으리라.' 태어남에 이르러, 손에 '우'라는 글자무늬가 있어, 마침내 이로써 이름했다.
冬十二月,狄人伐衛。衛懿公好鶴,鶴有乘軒者。將戰,國人受甲者皆曰:“使鶴,鶴實有祿位,餘焉能戰!”公與石祁子玦,與甯莊子矢,使守,曰:“以此贊國,擇利而為之。”與夫人繡衣,曰:“聽於二子。”渠孔御戎,子伯為右,黃夷前驅,孔嬰齊殿。及狄人戰於熒澤,衛師敗績,遂滅衛。衛侯不去其旗,是以甚敗。狄人囚史華龍滑與禮孔以逐衛人。二人曰:“我,大史也,實掌其祭。不先,國不可得也。”乃先之。至則告守曰:“不可待也。”夜與國人出。
동(冬) 십이월,적인이 위를 쳤다. 위익공(衛懿公)이 학을 좋아하여, 학이 헌거(軒車)를 타는 자가 있었다. 장차 싸울 때, 갑옷을 받은 국인(國人)이 모두 말했다. '학을 보내소서. 학이 진실로 녹위(祿位)가 있는데, 내 어찌 싸우겠습니까!' 익공이 석기자(石祁子)에게 결(玦)을 주고, 영장자(寧莊子)에게 화살을 주어, 지키게 하며 말했다. '이것으로 나라를 돕고, 이로운 것을 택하여 행하라.' 부인에게 수놓은 옷을 주며 말했다. '이 두 사람을 들어라.' 거공(渠孔)이 융거를 몰고, 자백(子伯)이 거우가 되고, 황이(黃夷)가 전구(前驅)가 되고, 공영제(孔嬰齊)가 후군이 되었다.적인과 형택(熒澤)에서 싸워, 위군이 크게 패하고, 마침내 위를 멸했다. 위후가 그 깃발을 거두지 않았으므로 더욱 심하게 패했다.적인이 태사 화용골(華龍滑)과 예공(禮孔)을 사로잡아 위인을 추격했다. 두 사람이 말했다. '우리는 태사로, 실제로 제사를 관장한다. 먼저 가지 않으면 나라를 얻지 못한다.'적인이 그들을 먼저 가게 했다. 이르러 성을 지키는 자에게 고하기를 '더 기다릴 수 없다' 하고, 밤에 국인과 함께 성에서 나왔다.
狄入衛,遂從之,又敗諸河。
적이 위에 들어가, 마침내 추격하여, 또 황하 가에서 그들을 깨뜨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