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공(원년~십팔년)
◇文公元年
◇문공 원년
【經】元年春王正月,公即位。二月癸亥,日有食之。天王使叔服來會葬。
【경】원년 춘(春), 왕 정월, 문공이 즉위했다. 이월 계해(癸亥), 일식이 있었다. 천자가 숙복(叔服)을 보내 와서 장례에 참여했다.
夏四月丁巳,葬我君僖公。天王使毛伯來錫公命。晉侯伐衛。叔孫得臣如京師。
하(夏) 사월 정사(丁巳), 우리 군주 희공을 장사했다. 천자가 모백을 보내 와서 문공에게 명규를 하사했다. 진후가 위국을 쳤다. 숙손득신이 경사에 갔다.
衛人伐晉。秋,公孫敖會晉侯於戚。冬十月丁未,楚世子商臣弒其君頵。公孫敖如齊。
위인이 진국을 쳤다. 추(秋), 공손오가 척에서 진후와 회견했다. 동(冬) 시월 정미(丁未), 초국의 세자 상신이 그 군주 운(頵)을 시살했다. 공손오가 제국에 갔다.
【傳】元年春,王使內史叔服來會葬。公孫敖聞其能相人也,見其二子焉。
【전】원년 춘(春), 천자가 내사 숙복을 보내 와서 장례에 참여했다. 공손오가 그가 상을 볼 줄 안다는 것을 듣고, 두 아들을보내 그를 만나게 했다.
叔服曰:“谷也食子,難也收子。谷也豐下,必有後於魯國。”
숙복이 말했다. '곡이 그대를 봉양할 것이요, 난이 그대를 장사할 것입니다. 곡은 아래턱이 풍만하니, 반드시 노국에 후사가 있을 것입니다.'
於是閏三月,非禮也。先王之正時也,履端於始,舉正於中,歸餘於終。履端於始,序則不愆。舉正於中,民則不惑。歸餘於終,事則不悖。
이때 윤삼월이었는데, 예에 맞지 않다. 선왕이 시령을 바로잡는 데, 그 개시를 세초에 두고, 중기를 월중에 두고, 나머지를 세말에 돌렸다. 개시를 세초에 두면 차서가 어그러지지 않고, 중기를 월중에 두면 백성이 미혹하지 않고, 나머지를 세말에 돌리면 일이 어그러지지 않는다.
夏四月丁巳,葬僖公。
하(夏) 사월 정사, 희공을 장사했다.
王使毛伯衛來錫公命。叔孫得臣如周拜。
천자가 모백 위(衛)를 보내 와서 문공에게 명규를 하사했다. 숙손득신이 주실에 가서 배사했다.
晉文公之季年,諸侯朝晉。衛成公不朝,使孔達侵鄭,伐綿、訾,及匡。晉襄公既祥,使告於諸侯而伐衛,及南陽。先且居曰:“效尤,禍也。請君朝王,臣從師。”晉侯朝王於溫,先且居、胥臣伐衛。五月辛酉朔,晉師圍戚。六月戊戌,取之,獲孫昭子。
진문공의 말년에, 제후가 진국에 조했다. 위성공이 조하지 않고, 공달을 보내 정국을 침범하여, 면・자를 치고 광에 이르렀다. 진양공이 이미 소상을 지나, 사람을 시켜 제후에게 알리고 위국을 쳐서, 남양에 이르렀다. 선저거가 말했다. '과오를 본받는 것은 화입니다. 청컨대 군이 천자를 조하고, 신이 군대를 따르겠습니다.' 진후가 온에서 천자를 조하고, 선저거・서신이 위국을 쳤다. 오월 신유(辛酉), 초하루, 진군이 척을 포위했다. 륙월 무술(戊戌), 척을 취하여, 손소자(孫昭子)를 사로잡았다.
衛人使告於陳。陳共公曰:“更伐之,我辭之。”衛孔達帥師伐晉,君子以為古。古者越國而謀。
위인이 사람을 보내 진국에 알렸다. 진공공이 말했다. '돌이켜 그들을 치소. 내가 그대들을 위해 사정하리다.' 위국의 공달이 군대를 이끌고 진국을 쳤다. 군자가 고법에 합한다고 여겼다. 고대에는 다른 나라를 넘어 상의할 수 있었다.
秋,晉侯疆戚田,故公孫敖會之。
추(秋), 진후가 척 땅의 강계를 정하므로, 공손오가 가서 회견했다.
初,楚子將以商臣為大子,訪諸令尹子上。子上曰:“君之齒未也。而又多愛,黜乃亂也。楚國之舉,恆在少者。且是人也,蜂目而豺聲,忍人也,不可立也。”弗聽。既又欲立王子職而黜大子商臣。商臣聞之而未察,告其師潘崇曰:“若之何而察之?”潘崇曰:“享江羋而勿敬也。”從之。江羋怒曰:“呼,役夫!宜君王之慾殺女而立職也。”告潘崇曰:“信矣。”潘崇曰:“能事諸乎?”曰:“不能。”“能行乎?”曰:“不能。”“能行大事乎?”曰:“能。”
옛날 초자가 장차 상신을 태자로 삼으려 하여, 영윤 자상에게 물었다. 자상이 말했다. '군왕의 나이가 아직 적고, 또 총애하는 자가 많아, 폐하면 난이 생깁니다. 초국이 계승자를 세움은 항상 어린 자에게 있습니다. 게다가 이 사람은 벌 같은 눈과 승냥이 같은 소리니, 잔인한 자로서 세울 수 없습니다.' 초자가 듣지 않았다. 뒤에 또 왕자 직을 세우고 태자 상신을 폐하려 했다. 상신이 듣고 아직 사실을 확인하지 못하여, 그의 스승 반숭에게 고하여 말했다. '어떻게 해야 확인할 수 있겠습니까?' 반숭이 말했다. '강미를 향연하되 공경을 더하지 마소서.' 상신이 그대로 했다. 강미가 노하여 말했다. '어이, 역부! 과연 군왕이 너를 죽이고 직을 세우려 하는 것이 당연하구나.' 상신이 반숭에게 고하여 말했다. '사실입니다.' 반숭이 말했다. '그를 섬길 수 있느냐?' 말했다. '못합니다.' '떠날 수 있느냐?' 말했다. '못합니다.' '대사를 할 수 있느냐?' 말했다. '할 수 있습니다.'
冬十月,以宮甲圍成王。王請食熊蹯而死。弗聽。丁未,王縊。諡之曰:“靈”,不瞑;曰:“成”,乃瞑。穆王立,以其為大子之室與潘崇,使為大師,且掌環列之尹。
동(冬) 시월, 동궁 갑사로 성왕을 포위했다. 성왕이 곰 발바닥을 먹고 죽기를 청했다. 듣지 않았다. 정미, 성왕이 스스로 목을 맸다. 시를 「령(靈)」이라 하니, 눈을 감지 않았다. 「성(成)」으로 고치니, 비로소 감았다. 목왕이 즉위하여, 그가 태자일 때의 가산을 반숭에게 주고, 그를 태사로 삼고, 또 궁중의 윤열된 위사를 관장하게 했다.
穆伯如齊,始聘焉,禮也。凡君即位,卿出並聘,踐修舊好,要結外授,好事鄰國,以衛社稷,忠信卑讓之道也。忠,德之正也;信,德之固也;卑讓,德之基也。
목백이 제국에 간 것은 즉위 후 첫 빙문이니, 예에 합하다. 무릇 군이 즉위하면, 경이 나가 널리 빙문하여, 옛 우호를 이어 닦고, 외원을 결어 맺고, 이웃 나라를 우호하게 섬겨, 사직을 보위하는 것은 충신과 겸양의 도이다. 충은 덕의 바름이요, 신은 덕의 굳음이요, 겸양은 덕의 기초이다.
殽之役,晉人既歸秦帥,秦大夫及左右皆言於秦伯曰:“是敗也,孟明之罪也,必殺之。”秦伯曰:“是孤之罪也。周芮良夫之詩曰;‘大風有隧,貪人敗類,聽言則對,誦言如醉,匪用其良,覆俾我悖。’是貪故也,孤之謂矣。孤實貪以禍夫子,夫子何罪?”復使為政。
효의 싸움에서, 진인이 이미 진군 장수를 돌려보내니, 진국 대부와 좌우가 모두 진백에게 말했다. '이 패함은 맹명의 죄이니, 반드시 그를 죽여야 합니다.' 진백이 말했다. '이는 나의 죄이다. 주실의 예량부의 시에 이르기를 「큰 바람에 그 온 길이 있고, 탐욕한 자는 그 무리를 망친다. 순한 말을 들으면 대답하고, 간하는 말을 들으면 취한 듯하다. 저 어진 이를 쓰지 않고, 도리어 나를 패역하게 하였다」. 이는 탐욕의 까닭이니, 나를 말한 것이다. 실로 내가 탐하여 그 사람을 화에 빠뜨렸는데, 그 사람이 무슨 죄가 있는가?' 다시 그를 집정으로 삼았다.
◇文公二年
◇문공 이년
【經】二年春王二月甲子,晉侯及秦師戰於彭衙,秦師敗績。丁丑,作僖公主。三月乙巳,及晉處父盟。夏六月,公孫敖會宋公、陳侯、鄭伯、晉士縠盟於垂隴。自十有二月不雨,至於秋七月。八月丁卯,大事於大廟,躋僖公。冬,晉人、宋人、陳人、鄭人伐秦。公子遂如齊納幣。
【경】이년 춘(春), 왕 이월 갑자(甲子), 진후가 진군과 팽아에서 싸워, 진군이 크게 패했다. 정축(丁丑), 희공의 신주를 만들었다. 삼월 을사(乙巳), 진국 처보와 맹약했다. 하(夏) 륙월, 공손오가 송공・진후・정백・진국 사곡(士縠)과 수롱에서 맹약했다. 십이월부터 비가 내리지 않아, 추(秋) 칠월에 이르렀다. 팔월 정묘(丁卯), 태묘에서 대제를 행하여, 희공의 신위를 올렸다. 동(冬), 진인・송인・진인・정인이 진국을 쳤다. 공자 수가 제국에 가서 빙예물을 보냈다.
【傳】二年春,秦孟明視帥師伐晉,以報殽之役。二月,晉侯御之。先且居將中軍,趙衰佐之。王官無地御戎,狐鞫居為右。甲子,及秦師戰於彭衙。秦師敗績。晉人謂秦“拜賜之師”。
【전】이년 춘(春), 진국의 맹명시가 군대를 이끌고 진국을 쳤으니, 효의 싸움을 보복한 것이다. 이월, 진후가 막았다. 선저거가 중군을 이끌고, 조쇠가 보좌했다. 왕관무지(王官無地)가 융거를 몰고, 호국거(狐鞫居)가 거우가 되었다. 갑자, 진군과 팽아에서 싸웠다. 진군이 크게 패했다. 진인이 진군을 「배사의 군대」라 불렀다.
戰於殽也,晉梁弘御戎,萊駒為右。戰之明日,晉襄公縛秦囚,使萊駒以戈斬之。囚呼,萊駒失戈,狼瞫取戈以斬囚,禽之以從公乘,遂以為右。箕之役,先軫黜之而立續簡伯。狼瞫怒。其友曰:“盍死之?”瞫曰:“吾未獲死所。”
효에서 싸울 때, 진국의 양홍이 융거를 몰고, 내구가 거우였다. 싸운 이튿날, 진양공이 진국 포로를 묶어, 내구로 하여금 과로 베게 했다. 포로가 외치니, 내구가 과를 떨어뜨리고, 낭심(狼瞫)이 과를 들어 포로를 베고, 내구를 잡아 양공의 수레를 따르게 하니, 이에 그를 거우로 삼았다. 기의 싸움에서, 선진이 그를 폐하고 속간백(續簡伯)을 세웠다. 낭심이 노했다. 그의 벗이 말했다. '어찌 이를 위해 죽지 않는가?' 낭심이 말했다. '나는 아직 죽을 곳을 얻지 못했다.'
其友曰:“吾與女為難。”瞫曰;“《周志》有之,‘勇則害上,不登於明堂。’死而不義,非勇也。共用之謂勇。吾以勇求右,無勇而黜,亦其所也。謂上不我知,黜而宜,乃知我矣。子姑待之。”及彭衙,既陳,以其屬馳秦師,死焉。晉師從之,大敗秦師。君子謂:“狼瞫於是乎君子。詩曰:‘君子如怒,亂庶遄沮。’又曰:‘王赫斯怒,爰整其旅。’怒不作亂而以從師,可謂君子矣。”
그의 벗이 말했다. '내가 그대와 함께 난을 일으키리다.' 낭심이 말했다. '『주지(周志)』에 이런 말이 있다. 「용맹이 위를 해치면, 명당에 오르지 못한다」. 죽음이 의에 맞지 않으면 용이 아니다. 나라에 쓰이는 것을 용이라 한다. 내가 용으로 거우를 구하고, 용이 없어 폐해진 것도 마땅하다. 만약 위가 나를 알지 못했다고 말하면, 폐한 것이 적절하니, 비로소 나를 아는 것이다. 그대는 잠시 기다리시오.' 팽아에 이르러, 이미 진을 쳤을 때, 그의 부하를 이끌고 진군에 돌진하여, 거기서 죽었다. 진군이 따르니, 진군을 크게 깨뜨렸다. 군자가 말한다. '낭심이 이 일에서 군자였다. 『시』에 이르기를 「군자가 노하면, 화난이 아마 곧 그치리라」. 또 이르기를 「천자가 헌연 노하니, 이에 그 군대를 정돈하네」. 노하여 난을 일으키지 않고, 군대를 따랐으니, 군자라 할 만하다.'
秦伯猶用孟明。孟明增修國政,重施於民。趙成子言於諸大夫曰:“秦師又至,將必闢之,懼而增德,不可當也。詩曰:‘毋念爾祖,聿修厥德。’孟明念之矣,念德不怠,其可敵乎?”丁丑,作僖公主,書,不時也。
진백이 오히려 맹명을 썼다. 맹명이 나아가 국정을 닦아 밝히고, 백성에게 은혜를 두껍게 베풀었다. 조성자가 대부들에게 말했다. '진군이 다시 오면, 반드시 그들을 피하시오. 그들이 두려워하여 덕을 더했으니, 막을 수 없습니다. 『시』에 이르기를 「그대의 선조를 잊지 말고, 그 덕을 닦으라」. 맹명이 이를 생각했습니다. 덕을 생각하여 게으르지 않으니, 어찌 막을 수 있겠습니까?' 정축, 희공의 신주를 만들었는데, 『춘추』가 기록한 것은 시절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晉人以公不朝來討,公如晉。夏四月己巳,晉人使陽處父盟公以恥之。書曰:“及晉處父盟。”以厭之也。適晉不書,諱之也。公未至,六月,穆伯會諸侯及晉司空士縠盟於垂隴,晉討衛故也。書士縠,堪其事也。
진인이 문공이 조하지 않은 것으로 토하니, 문공이 진국에 갔다. 하(夏) 사월 기사, 진인이 양처보로 하여금 문공과 맹약하여 그를 욕되게 했다. 『춘추』가 기록하기를 「진국 처보와 맹했다」 한 것은 혐기를 나타낸 것이다. 진국에 간 것은 기록하지 않았으니, 피휘한 것이다. 문공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을 때, 륙월, 목백이 제후와 진국의 사공 사곡과 수롱에서 맹약했으니, 진국이 위국을 토한 까닭이다. 『춘추』가 사곡을 기록한 것은 그가 이 일을 감당했기 때문이다.
陳侯為衛請成於晉,執孔達以說。
진후가 위국을 위해 진국에 화의를 청하여, 공달을 잡아 변명하여 기쁘게 했다.
秋八月丁卯,大事於大廟,躋僖公,逆祀也。於是夏父弗忌為宗伯,尊僖公,且明見曰:“吾見新鬼大,故鬼小。先大後小,順也。躋聖賢,明也。明、順,禮也。”
추(秋) 팔월 정묘, 태묘에서 대제를 행하여, 희공의 신위를 올렸으니, 이는 거꾸로 된 제사이다. 이때 하보 불기(夏父弗忌)가 종백이 되어, 희공을 존숭하고, 또 밝히 말했다. '내가 새 귀신이 크고 옛 귀신이 작은 것을 보았습니다. 먼저 크고 뒤에 작은 것은 순이요, 성현을 올리는 것은 명이니, 명과 순은 곧 예입니다.'
君子以為失禮。禮無不順。祀,國之大事也,而逆之,可謂禮乎?子雖齊聖,不先父食久矣。故禹不先鯀,湯不先契,文、武不先不窋。宋祖帝乙,鄭祖厲王,猶上祖也。是以《魯頌》曰:“春秋匪解,享祀不忒,皇皇后帝,皇祖后稷。”
군자가 이를 실례로 여겼다. 예에 순하지 않은 것이 없다. 제사는 나라의 대사인데, 그것을 거꾸로 하니, 예라 할 수 있는가? 아들이 비록 총명하고 성철해도, 아비보다 먼저 제물을 향유하지 않은 지 오래다. 그러므로 우가 곤보다 먼저 아니요, 탕이 설보다 먼저 아니요, 문왕・무왕이 불축보다 먼저 아니다. 송국이 제을을 조로 삼고, 정국이 여왕을 조로 삼아도, 오히려 선조를 존숭한다. 이로써 『노송』에 이르기를 「춘추 양계에 게으르지 않고, 향사에 허물이 없나니, 위대하신 상제, 위대하신 선조 후직이시네」
君子曰禮,謂其後稷親而先帝也。《詩》曰:“問我諸姑,遂及伯姊。”君子曰禮,謂其姊親而先姑也。仲尼曰:“臧文仲,其不仁者三,不知者三。下展禽,廢六關,妾織蒲,三不仁也。作虛器,縱逆祀,祀爰居,三不知也。”
군자가 이를 예에 합한다고 한 것은 후직이 비록 친하나 상제를 먼저 제사하기 때문이다. 『시』에 이르기를 「나의 여러 고모에게 묻고, 이어 대저에게 이르렀네」. 군자가 이를 예에 합한다고 한 것은 누이가 비록 친하나 고모를 먼저 묻기 때문이다. 중니가 말했다. '장문중은 불인한 일이 세 가지요, 불지한 일이 세 가지이다. 전금을 하위에 두고, 육관을 폐하고, 첩이 포초를 짠 것은 세 가지 불인이다. 실체 없는 기물을 만들고, 거꾸로 된 제사를 방종하고, 바닷새 원거에게 제사한 것은 세 가지 불지이다.'
冬,晉先且居、宋公子成、陳轅選、鄭公子歸生伐秦,取汪,及彭衙而還,以報彭衙之役。卿不書,為穆公故,尊秦也,謂之崇德。
동(冬), 진국 선저거・송국 공자 성・진국 원선・정국 공자 귀생이 진국을 쳐서, 왕을 취하고 팽아에 이른 뒤 돌아갔으니, 팽아의 싸움을 보복한 것이다. 경의 이름을 『춘추』가 기록하지 않은 것은 목공의 까닭으로, 진국을 존중한 것이니, 숭덕이라 한다.
襄仲如齊納幣,禮也。凡君即位,好舅甥,修昏姻,娶元妃以奉粢盛,孝也。
양중이 제국에 가서 빙예물을 보낸 것은 예에 합하다. 무릇 군이 즉위하면, 외숙의 나라와 우호를 닦고, 혼인을 닦아 밝히고, 원비를 맞아 자성을 받들게 하는 것은 효이다.
孝,禮之始也。
효는 예의 시작이다.
◇文公三年
◇문공 삼년
【經】三年春王正月,叔孫得臣會晉人、宋人、陳人、衛人、鄭人伐沈。沈潰。夏五月,王子虎卒。秦人伐晉。秋,楚人圍江。雨螽於宋。冬,公如晉。十有二月己巳,公及晉侯盟。晉陽處父帥師伐楚以救江。
【경】삼년 춘(春), 왕 정월, 숙손득신이 진인・송인・진인・위인・정인과 회합하여 심국을 쳤다. 심국이 흩어졌다. 하(夏) 오월, 왕자호가 죽었다. 진인이 진국을 쳤다. 추(秋), 초인이 강국을 포위했다. 황충이 비처럼 송국에 내렸다. 동(冬), 문공이 진국에 갔다. 십이월 기사(己巳), 문공이 진후와 맹약했다. 진국의 양처보가 군대를 이끌고 초국을 쳐서 강국을 구했다.
【傳】三年春,莊叔會諸侯之師伐沈,以其服於楚也。沈潰。凡民逃其上曰潰,在上曰逃。
【전】삼년 춘(春), 장숙(莊叔)이 제후의 군대를 회합하여 심국을 쳤으니, 그것이 초국에 복종했기 때문이다. 심국이 흩어졌다. 무릇 백성이 그 윗사람을 달아나는 것을 궤라 하고, 윗사람이 달아나는 것을 도라 한다.
衛侯如陳,拜晉成也。
위후가 진국에 가서, 진국이 화의를 허락한 것을 배사했다.
夏四月乙亥,王叔文公卒,來赴吊如同盟,禮也。
하(夏) 사월 을해(乙亥), 왕숙 문공이 죽었는데, 와서 부고하니, 동맹처럼 조위했으니, 예에 합하다.
秦伯伐晉,濟河焚舟,取王官,及郊。晉人不出,遂自茅津濟,封殽屍而還。
진백이 진국을 쳐서, 황하를 건너 배를 불태우고, 왕관을 취하여 교에 이르렀다. 진인이 나가 싸우지 않으니, 이에 모진에서 건너, 효 땅의 시골에 흙을 쌓아 표를 하고 돌아갔다.
遂霸西戎,用孟明也。君子是以知“秦穆公之為君也,舉人之周也,與人之壹也;孟明之臣也,其不解也,能懼思也;子桑之忠也,其知人也,能舉善也。《詩》曰:‘於以采蘩,於沼於沚,於以用之公侯之事’,秦穆有焉。‘夙夜匪解,以事一人’,孟明有焉。‘詒闕孫謀,以燕翼子’,子桑有焉。”
이에 서융에 패자가 되었으니, 맹명을 쓴 까닭이다. 군자가 이로써 안다. '진목공이 군주로서는 사람 추천함이 두루하고, 사람 씀이 일심이요, 맹명이 신하로서는 게으르지 않고, 능히 두려워하여 사고하였고, 자상의 충은 사람을 알고, 능히 어진 이를 추천한 데 있다. 『시』에 이르기를 「어디 가서 번을 캐는고, 못에서 모래톱에서, 가져다가 쓰는고, 공후의 제사에」 하니, 진목이 이를 가졌다. 「아침저녁으로 게으르지 않고, 한 사람을 섬기네」 하니, 맹명이 이를 가졌다. 「자손에게 도모를 남겨, 그들을 편안하게 보호하네」 하니, 자상이 이를 가졌다.'
秋,雨螽於宋,隊而死也。
추(秋), 황충이 비처럼 송국에 내렸으니, 떨어져 죽은 것이다.
楚師圍江。晉先僕伐楚以救江。
초군이 강국을 포위했다. 진국의 선복이 초국을 쳐서 강국을 구했다.
冬,晉以江故告於周。王叔桓公、晉陽處父伐楚以救江,門於方城,遇息公子朱而還。
동(冬), 진국이 강국의 까닭으로 주실에 알렸다. 왕숙 환공・진국 양처보가 초국을 쳐서 강국을 구하고, 방성을 치니, 식공자 주(朱)를 만나 돌아갔다.
晉人懼其無禮於公也,請改盟。公如晉,及晉侯盟。晉侯饗公,賦《菁菁者莪》。莊叔以公降,拜,曰:“小國受命於大國,敢不慎儀。君貺之以大禮,何樂如之。抑小國之樂,大國之惠也。”晉侯降,辭。登,成拜。公賦《嘉樂》。
진인이 자기가 문공에게 무례한 것을 두려워하여, 맹약을 고치기를 청했다. 문공이 진국에 가서, 진후와 맹약했다. 진후가 문공을 향연하여, 『정정자아』를 부었다. 장숙이 문공으로 하여금 계를 내려와 절하게 하며 말했다. '소국이 대국에게서 명을 받으니, 감히 의를 삼가지 않겠습니까. 군이 대례로 하사하니, 무슨 즐거움이 이 같겠습니까? 소국의 즐거움은 대국의 은혜입니다.' 진후가 계를 내려와 사양했다. 올라가 절을 마쳤다. 문공이 『가락』을 부었다.
◇文公四年
◇문공 사년
【經】四年春,公至自晉。夏,逆婦姜於齊。狄侵齊。秋,楚人滅江。晉侯伐秦。衛侯使寧俞來聘。冬十有一月壬寅,夫人風氏薨。
【경】사년 춘(春), 문공이 진국에서 돌아왔다. 하(夏), 제국에 가서 부강을 맞았다.적인이 제국을 침범했다. 추(秋), 초인이 강국을 멸했다. 진후가 진국을 쳤다. 위후가 영유를 보내 와서 빙했다. 동(冬) 십일월 임인(壬寅), 부인 풍씨가 죽었다.
【傳】四年春,晉人歸孔達於衛,以為衛之良也,故免之。
【전】사년 춘(春), 진인이 공달을 위국에 돌려보냈으니, 그를 위국의 어진 이로 여겨, 그를 면했다.
夏,衛侯如晉拜。曹伯如晉,會正。
하(夏), 위후가 진국에 가서 배사했다. 조백이 진국에 가서, 공부를 회합하여 정했다.
逆婦姜於齊,卿不行,非禮也。君子是以知出姜之不允於魯也。曰:“貴聘而賤逆之,君而卑之,立而廢之,棄信而壞其主,在國必亂,在家必亡。不允宜哉?《詩》曰:‘畏天之威,於時保之。’敬主之謂也。”
제국에 가서 부강을 맞았는데, 경이 가지 않았으니, 예에 맞지 않다. 군자가 이로써 출강이 노국에서 끝을 이루지 못할 것을 안다. 말했다. '빙례를 귀하게 하면서 천하게 맞이하고, 군의 배필인데 비하하고, 세웠다가 폐하고, 신을 버리고 그 주인을 무너뜨리니, 나라에서는 반드시 어지럽고, 집에서는 반드시 망할 것이다. 끝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가? 『시』에 이르기를 「하늘의 위엄을 두려워하여, 이에 그것을 보전하네」 하니, 주인을 공경함을 말한 것이다.'
秋,晉侯伐秦,圍刓、新城,以報王官之役。
추(秋), 진후가 진국을 쳐서, 완(刓)・신성을 포위했으니, 왕관의 싸움을 보복한 것이다.
楚人滅江,秦伯為之降服、出次、不舉、過數。大夫諫,公曰:“同盟滅,雖不能救,敢不矜乎!吾自懼也。”君子曰:“《詩》云:‘惟彼二國,其政不獲,惟此四國,爰究爰度。’其秦穆之謂矣。”
초인이 강국을 멸하니, 진백이 이로써 복제를 낮추고, 침궁에서 나오고, 감선 철악했으니, 예수를 지나쳤다. 대부가 간하니, 진백이 말했다. '동맹이 멸했는데, 비록 구하지 못했으나 감히 불쌍히 여기지 않겠는가! 나는 스스로 경계하는 것이다.' 군자가 말했다. '『시』에 이르기를 「저 두 나라는 정치가 민심을 얻지 못하고, 이 네 나라는 이에 연구하고 도모하네」 하니, 진목공을 말한 것이리다.'
衛甯武子來聘,公與之宴,為賦《湛露》及《彤弓》。不辭,又不答賦。使行人私焉。對曰:“臣以為肄業及之也。昔諸侯朝正於王,王宴樂之,於是乎賦《湛露》,則天子當陽,諸侯用命也。諸侯敵王所愾而獻其功,王於是乎賜之彤弓一,彤矢百,玈弓矢千,以覺報宴。今陪臣來繼舊好,君辱貺之,其敢幹大禮以自取戾。”
위국의 영무자가 와서 빙하니, 문공이 그와 연음하여, 그를 위해 『담로』와 『동궁』을 부었다. 그가 사사하지도 않고, 또 화답하여 부르지도 않았다. 행인을 보내 사사로이 물었다. 그가 답했다. '신이 연습 과목이 이 시에 이른 줄 알았습니다. 옛날 제후가 정월에 천자를 조하니, 천자가 악으로 그들을 연향하여, 이에 『담로』를 부었는데, 그것은 천자가 해를 마주하고 제후가 명을 받드는 것입니다. 제후가 천자가 분노하는 자를 막고 그 공을 바치니, 천자가 이에 붉은 활 한 개와 붉은 화살 백 개와 검은 활과 화살 천 벌을 하사하여, 보답과 연향을 밝혔습니다. 지금 배신이 와서 옛 우호를 이었는데, 군이 굴빈하여 하사하시니, 감히 대례를 범하여 스스로 죄를 얻겠습니까.'
冬,成風薨。
동(冬), 성풍이 죽었다.
◇文公五年
◇문공 오년
【經】五年春王正月,王使榮叔歸含,且賵。三月辛亥,葬我小君成風。王使召伯來會葬。夏,公孫敖如晉。秦人入鄀。秋,楚人滅六。冬十月甲申,許男業卒。
【경】오년 춘(春), 왕 정월, 천자가 영숙을 보내 함옥을 보내고, 또 부(賵)를 보냈다. 삼월 신해(辛亥), 우리 소군 성풍을 장사했다. 천자가 소백을 보내 와서 장례에 참여했다. 하(夏), 공손오가 진국에 갔다. 진인이 약(鄀)에 들어갔다. 추(秋), 초인이 육국을 멸했다. 동(冬) 시월 갑신(甲申), 허남 업(業)이 죽었다.
【傳】五年春,王使榮叔來含且賵,召昭公來會葬,禮也。
【전】오년 춘(春), 천자가 영숙을 보내 와서 함을 드리고 또 부를 드리고, 소소공이 와서 장례에 참여했으니, 예에 합하다.
初,鄀叛楚即秦,又貳於楚。夏,秦人入鄀。
옛날 약이 초국을 배반하고 진국에 친근하며, 또 초국에 이심했다. 하(夏), 진인이 약에 들어갔다.
六人叛楚即東夷。秋,楚成大心、仲歸帥師滅六。
육인이 초국을 배반하고 동이에 친근했다. 추(秋), 초국의 성대심・중귀가 군대를 이끌고 육국을 멸했다.
冬,楚公子燮滅蓼,臧文仲聞六與蓼滅,曰:“皋陶庭堅不祀忽諸。德之不建,民之無援,哀哉!”晉陽處父聘於衛,反過寧,寧嬴從之,及溫而還。其妻問之,嬴曰;“以剛。
동(冬), 초국 공자 설(燮)이 요국을 멸했다. 장문중이 육과 요가 멸한 것을 듣고 말했다. '고도・정견이 갑자기 제사하는 이가 없구나. 덕이 세워지지 않고, 백성이 원조가 없으니, 슬프도다!' 진국의 양처보가 위국에 빙하다가, 돌아오는 길에 영을 지나니, 영영이 그를 따르다가, 온에 이르러 돌아왔다. 그의 아내가 까닭을 물으니, 영이 말했다. '강함 때문이다.
《商書》曰:‘沈漸剛克,高明柔克。’夫子壹之,其不沒乎。天為剛德,猶不幹時,況在人乎?且華而不實,怨之所聚也,犯而聚怨,不可以定身。餘懼不獲其利而離其難,是以去之。”
(영영이 이어 말하기를) 『상서』에 이르기를 「깊이 잠긴 자는 강으로 이기고, 높이 밝은 자는 유로 이긴다」. 저 어른은 한 가지만 가졌으니, 아마 선종을 얻지 못할 것이다. 하늘이 강덕인데도 오히려 시령을 범하지 않는데, 하물며 사람이겠는가? 게다가 화려하고 열매가 없는 것은 원한이 모이는 곳이다. 남을 범하고 원한을 모으니, 몸을 편안히 할 수 없다. 내가 이익을 얻지 못하고 환난을 입을까 두려워, 이로써 그를 떠났다.'
晉趙成子,欒貞子、霍伯、臼季皆卒。
진국의 조성자・난정자・곽백・구계가 모두 죽었다.
◇文公六年
◇문공 육년
【經】六年春,葬許僖公。夏,季孫行父如陳。秋,季孫行父如晉。八月乙亥,晉侯歡卒。冬十月,公子遂如晉。葬晉襄公。晉殺其大夫陽處父。晉狐射姑出奔狄。閏月不告月,猶朝於廟。
【경】육년 춘(春), 허희공을 장사했다. 하(夏), 계손행보가 진국에 갔다. 추(秋), 계손행보가 진국에 갔다. 팔월 을해(乙亥), 진후 환(驩)이 죽었다. 동(冬) 시월, 공자 수가 진국에 갔다. 진양공을 장사했다. 진국이 그 대부 양처보를 죽였다. 진국의 호사고가적인 곳으로 도망쳤다. 윤월에 고월을 행하지 않고, 오히려 조묘에서 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