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공(隱公)(원년~십일년)
九月甲午,晉侯、秦伯圍鄭,以其無禮於晉,且貳於楚也。晉軍函陵,秦軍汜南。佚之狐言於鄭伯曰:“國危矣,若使燭之武見秦君,師必退。”公從之。
구월 갑오(甲午), 진후・진백이 정국을 포위했으니, 진국에 무례했고, 또 초국에 이심했기 때문이다. 진군이 함릉(函陵)에 주둔하고, 진군이 범남(汜南)에 주둔했다. 일지호(佚之狐)가 정백에게 말했다. '나라가 위태롭습니다. 만약 촉지무(燭之武)를 보내 진군을 뵙게 하면, 군대가 반드시 물러날 것입니다.' 정백이 따랐다.
辭曰:“臣之壯也,猶不如人,今老矣,無能為也已。”公曰:“吾不能早用子,今急而求子,是寡人之過也。然鄭亡,子亦有不利焉。”許之,夜縋而出,見秦伯,曰:“秦、晉圍鄭,鄭既知亡矣。若亡鄭而有益於君,敢以煩執事。越國以鄙遠,君知其難也,焉用亡鄭以陪鄰。鄰之厚,君之薄也。若舍鄭以為東道主,行李之往來,共其乏困,君亦無所害。且君嘗為晉君賜矣,許君焦、瑕,朝濟而夕設版焉,君之所知也。夫晉何厭之有?既東封鄭,又欲肆其西封,不闕秦,將焉取之?闕秦以利晉,唯君圖之。”秦伯說,與鄭人盟,使杞子、逢孫、揚孫戍之,乃還。
촉지무가 사양하여 말했다. '신이 장년 때도 남만 못했는데, 지금 늙어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정백이 말했다. '내가 일찍 그대를 쓰지 못하고, 지금 위급하여 그대를 구하니, 이는 과인의 허물이다. 그러나 정국이 망하면, 그대에게도 불리하다.' 촉지무가 허락하고, 밤에 줄을 타고 성을 나가, 진백을 만나 말했다. '진・진이 정국을 포위하니, 정국이 이미 망할 줄을 알았습니다. 만약 정국을 멸하는 것이 군에게 이롭다면, 감히 좌우를 번거롭게 하겠습니까? 다른 나라를 넘어 먼 땅을 변경으로 삼는 것은, 군이 그 어려움을 아시니, 어찌 정국을 멸하여 이웃을 더하겠습니까? 이웃이 두터우면 군이 엷어집니다. 만약 정국을 남겨 동쪽 길의 주인으로 삼으면, 사자가 왕래할 때 그들의 곤핍을 공급하니, 군에게도 해가 없습니다. 게다가 군이 일찍이 진군에게 은혜를 베푼 적이 있는데, 그가 군에게 초(焦)・하(瑕)를 약속했으나, 아침에 건너고 저녁에 성벽을 쌓아 막았으니, 이는 군이 아시는 바입니다. 진국이 어찌 만족할 때가 있겠습니까? 동쪽으로 정국을 강계로 삼은 뒤에, 또 서쪽의 강계를 넓히려 할 것이니, 진국을 해치지 않으면, 어디서 취하겠습니까? 진국을 해쳐 진국을 이롭게 하는 것은, 군은 생각하소서.' 진백이 기뻐하여, 정인과 맹약하고, 기자(杞子)・봉손(逢孫)・양손(揚孫)을 보내 지키게 하고, 이에 돌아갔다.
子犯請擊之,公曰:“不可。微夫人力不及此。因人之力而敝之,不仁。失其所與,不知。以亂易整,不武。吾其還也。”亦去之。
자범이 진군을 치기를 청하니, 문공이 말했다. '안 된다. 그 사람의 힘이 없었으면 이 지경에 이르지 못했다. 남의 힘을 의지하고 또 그를 손상하면, 불인이다. 그 동맹을 잃으면, 불지(不智)이다. 어지러움으로 정돈을 바꾸면, 불무(不武)이다. 우리는 돌아가자.' 그들도 철수했다.
初,鄭公子蘭出奔晉,從於晉侯。伐鄭,請無與圍鄭。許之,使待命於東。
옛날 정국의 공자 란(蘭)이 진국으로 도망쳐, 진후를 따랐다. 정국을 칠 때, 정국 포위에 참여하지 않기를 청했다. 허락하여, 그를 동부에서 명을 기다리게 했다.
鄭石甲父、侯宣多逆以為大子,以求成於晉,晉人許之。
정국의 석갑부・후선다가 그를 맞아 태자로 세워, 이로써 진국에 화의를 구하니, 진인이 허락했다.
冬,王使周公閱來聘,饗有昌歜、白、黑、形鹽。辭曰:“國君,文足昭也,武可畏也,則有備物之饗以象其德。薦五味,羞嘉穀,鹽虎形,以獻其功。
동(冬), 천자가 주공열(周公閱)을 보내 와서 빙하니, 연향에 창포저・백미가오・흑수가오・호형염을 차렸다. 주공열이 사양하여 말했다. '국군이 문은 족히 소명하고 무는 족히 사람을 외경하게 할 때, 비물의 향이 있어 그 덕을 상징합니다. 오미를 올리고 가곡을 바치며, 소금을 호랑이 모양으로 만들어 그 공업을 나타냅니다.
吾何以堪之?”東門襄仲將聘於周,遂初聘於晉。
(주공열이 이어 말하기를) 내가 무엇으로 이에 감당하겠습니까?' 동문양중이 장차 주실에 빙하려 하며, 이어서 처음으로 진국에 빙했다.
◇僖公三十一年
◇희공 삼십일년
【經】三十有一年春,取濟西田。公子遂如晉。夏四月,四卜郊,不從,乃免牲。猶三望。秋七月。冬,杞伯姬來求婦。狄圍衛。十有二月,衛遷於帝丘。
【경】삼십일년 춘(春), 제서(濟西)의 전지를 취했다. 공자 수가 진국에 갔다. 하(夏) 사월, 네 번 교제를 점치니, 길하지 않아, 이에 희생을 면했다. 오히려 삼망(三望)을 행했다. 추(秋) 칠월. 동(冬), 기백희가 와서 며느리를 구했다.적인이 위국을 포위했다. 십이월, 위국이 제구(帝丘)로 옮겼다.
【傳】三十一年春,取濟西田,分曹地也。使臧文仲往,宿於重館。重館人告曰:“晉新得諸侯,必親其共,不速行,將無及也。”從之,分曹地,自洮以南,東傅於濟,盡曹地也。
【전】삼십일년 춘(春), 제서의 전지를 취한 것은 조국의 땅을 나눈 것이다. 장문중을 보내 가게 하여, 중 땅의 관사에 묵게 했다. 중의 관사 사람이 그에게 고하여 말했다. '진국이 새로 제후를 얻었으니, 반드시 공경하는 자를 친근하게 할 것입니다. 빨리 가지 않으면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따르니, 조국 땅을 나누어, 도 이남에서 동으로 제수에 닿기까지가 다 조국의 땅이었다.
襄仲如晉,拜曹田也。
양중이 진국에 가서, 조국 전지를 얻은 것을 배사했다.
夏四月,四卜郊,不從,乃免牲,非禮也。猶三望,亦非禮也。禮不卜常祀,而卜其牲、日,牛卜日曰牲。牲成而卜郊,上怠慢也。望,郊之細也。不郊,亦無望可也。
하(夏) 사월, 네 번 교제를 점치니 길하지 않아, 이에 희생을 면했으니, 예에 맞지 않다. 오히려 삼망을 행한 것도 예에 맞지 않다. 예는 상례의 제사를 점치지 않고, 그 희생과 날짜를 점친다. 소는 날짜를 점쳐야 희생이라 한다. 희생이 정해진 뒤에 교제를 점치는 것은 상이 태만한 것이다. 망제는 교제의 세목이다. 교제를 행하지 않으면 망제도 하지 않아도 된다.
秋,晉搜於清原,作五軍御狄。趙衰為卿。
추(秋), 진국이 청원에서 크게 사냥하여, 오군을 만들어적인을 막았다. 조쇠가 경이 되었다.
冬,狄圍衛,衛遷於帝丘。卜曰三百年。衛成公夢康叔曰:“相奪予享。”
동(冬),적인이 위국을 포위하니, 위국이 제구로 옮겼다. 점치니 삼백 년을 이어간다고 했다. 위성공이 강숙(康叔)이 말하는 꿈을 꾸었다. '상(相)이 나의 제향을 빼앗았다.'
公命祀相。甯武子不可,曰:“鬼神非其族類,不歆其祀。杞、鄫何事?相之不享於此。久矣,非衛之罪也,不可以間成王、周公之命祀。請改祀命。”
성공이 상에게 제사하라 명했다. 영무자가 허락하지 않고 말했다. '귀신이 그 족류가 아니면 그 제사를 향유하지 않습니다. 기국・증국은 무슨 일입니까? 상이 여기서 제향을 누리지 않은 지 오래되었으니, 위국의 죄가 아니며, 성왕・주공이 정한 제사에 끼어들 수 없습니다. 제사의 명을 고치기를 청합니다.'
鄭洩駕惡公子瑕,鄭伯亦惡之,故公子瑕出奔楚。
정국의 설가(泄駕)가 공자 하를 미워하고, 정백도 그를 미워하여, 공자 하가 초국으로 도망쳤다.
◇僖公三十二年
◇희공 삼십이년
【經】三十有二年春王正月。夏四月己丑,鄭伯捷卒。衛人侵狄。秋,衛人及狄盟。冬十有二月己卯,晉侯重耳卒。
【경】삼십이년 춘(春), 주왕의 역법의 정월. 하(夏) 사월 기축(己丑), 정백 첩(捷)이 죽었다. 위인이적인을 침범했다. 추(秋), 위인이적인과 맹약했다. 동(冬) 십이월 기묘(己卯), 진후 중이가 죽었다.
【傳】三十二年春,楚鬥章請平於晉,晉陽處父報之。晉、楚始通。
【전】삼십이년 춘(春), 초국의 두장(鬥章)이 진국에 화의를 청하니, 진국의 양처보가 답례했다. 진국・초국이 비로소 왕래했다.
夏,狄有亂。衛人侵狄,狄請平焉。秋,衛人及狄盟。
하(夏),적인이 내란이 있었다. 위인이적인을 침범하니,적인이 화의를 청했다. 추(秋), 위인이적인과 맹약했다.
冬,晉文公卒。庚辰,將殯於曲沃,出絳,柩有聲如牛。卜偃使大夫拜。曰:“君命大事。將有西師過軼我,擊之,必大捷焉。”杞子自鄭使告於秦,曰:“鄭人使我掌其北門之管,若潛師以來,國可得也。”穆公訪諸蹇叔,蹇叔曰:“勞師以襲遠,非所聞也。師勞力竭,遠主備之,無乃不可乎!師之所為,鄭必知之。勤而無所,必有悖心。且行千里,其誰不知?”公辭焉。召孟明、西乞、白乙,使出師於東門之外。蹇叔哭之,曰:“孟子,吾見師之出而不見其入也。”
동(冬), 진문공이 죽었다. 경진(庚辰), 장차 관곽을 곡옥에 빈하려 하여, 강성을 나서니, 관 속에 소리가 있어 소 울음 같았다. 복언이 대부로 하여금 절하게 하며 말했다. '군이 대사를 명합니다. 장차 서방의 군대가 우리 국경을 넘어올 것이니, 그들을 치면 반드시 크게 이길 것입니다.' 기자가 정국에서 사람을 시켜 진국에 고하여 말했다. '정인이 나로 하여금 그 북문의 열쇠를 관장하게 하니, 만약 몰래 군대를 보내 오면 국도를 얻을 수 있습니다.' 목공이 건숙(蹇叔)에게 물으니, 건숙이 말했다. '군대를 피로하게 하여 먼 곳을 기습하는 것은 내가 듣지 못한 일입니다. 군대가 피로하고 힘이 다하면, 먼 곳의 주인이 대비하니, 아마 되지 않을 것입니다! 군대의 행동을 정국이 반드시 알 것입니다. 수고로워 얻는 것이 없으면 반드시 패역한 마음이 생길 것입니다. 게다가 천 리를 가는데, 누가 모르겠습니까?' 목공이 물리쳤다. 맹명・서걸・백을을 불러, 그들로 하여금 동문 밖에서 출병하게 했다. 건숙이 그들을 울며내며 말했다. '맹자여, 내가 군대가 나가는 것은 보나 그 들어오는 것은 보지 못하겠구나.'
公使謂之曰:“爾何知?中壽,爾墓之木拱矣。”蹇叔之子與師,哭而送之,曰:“晉人御師必於殽。殽有二陵焉。其南陵,夏後皋之墓也;其北陵,文王之所闢風雨也。必死是間,餘收爾骨焉。”秦師遂東。
목공이 사람을 시켜 그에게 말했다. '네가 무엇을 아느냐? 네가 중수(中壽)만 살았어도, 네 무덤의 나무가 두 아름이 되었을 것이다.' 건숙의 아들이 군대에 참여하니, 건숙이 울며내며 말했다. '진인이 우리 군대를 막는 것은 반드시 효(殽)에서이다. 효에는 두 산릉이 있다. 남릉은 하후 고(皋)의 무덤이요, 북릉은 문왕이 풍우를 피한 곳이다. 너는 반드시 그 두 릉 사이에서 죽을 것이니, 내가 가서 네 골육을 거두리라.' 진군이 이에 동진했다.
◇僖公三十三年
◇희공 삼십삼년
【經】三十有三年春王二月,秦人入滑。齊侯使國歸父來聘。夏四月辛巳,晉人及姜戎敗秦師於殽。癸巳,葬晉文公。狄侵齊。公伐邾,取訾婁。秋,公子遂帥師伐邾。晉人敗狄於箕。冬十月,公如齊。十有二月,公至自齊。乙巳,公薨於小寢。隕霜不殺草。李梅實。晉人、陳人、鄭人伐許。
【경】삼십삼년 춘(春), 왕 이월, 진인이 활국에 들어갔다. 제후가 국귀보를 보내 와서 빙했다. 하(夏) 사월 신사(辛巳), 진인과 강융(姜戎)이 효에서 진군을 깨뜨렸다. 계사(癸巳), 진문공을 장사했다.적인이 제국을 침범했다. 희공이 저국을 쳐서 자루를 취했다. 추(秋), 공자 수가 군대를 이끌고 저국을 쳤다. 진인이 기(箕)에서적인을 깨뜨렸다. 동(冬) 시월, 희공이 제국에 갔다. 십이월, 희공이 제국에서 돌아왔다. 을사(乙巳), 희공이 소침에서 죽었다. 서리가 내렸으나 풀을 죽이지 않았다. 오얏나무・매화나무가 열매를 맺었다. 진인・진인・정인이 허국을 쳤다.
【傳】三十三年春,秦師過周北門,左右免冑而下。超乘者三百乘。王孫滿尚幼,觀之,言於王曰:“秦師輕而無禮,必敗。輕則寡謀,無禮則脫。入險而脫。又不能謀,能無敗乎?”及滑,鄭商人弦高將市於周,遇之。以乘韋先,牛十二犒師,曰:“寡君聞吾子將步師出於敝邑,敢犒從者,不腆敝邑,為從者之淹,居則具一日之積,行則備一夕之衛。”且使遽告於鄭。鄭穆公使視客館,則束載、厲兵、秣馬矣。使皇武子辭焉,曰:“吾子淹久於敝邑,唯是脯資餼牽竭矣。為吾子之將行也,鄭之有原圃,猶秦之有具囿也。吾子取其麋鹿以閒敝邑,若何?”杞子奔齊,逢孫、揚孫奔宋。孟明曰:“鄭有備矣,不可冀也。
【전】삼십삼년 춘(春), 진군이 주실 북문을 지나니, 좌우가 투구를 벗고 내렸다. 곧 뛰어오른 자가 삼백 승이었다. 왕손만(王孫滿)이 아직 어려, 보고 천자에게 말했다. '진군이 경첩하고 무례하니, 반드시 패할 것입니다. 경첩하면 모략이 적고, 무례하면 소탈합니다. 험지에 들어가 소탈하고, 또 모략할 수 없으면, 패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활국에 이르니, 정국 상인 현고(弦高)가 장차 주 땅에서 장사하려 하다가 그들을 만났다. 먼저 익힌 소가죽 네 장을 바치고, 다시 소 열두 마리로 군대를 위로하며 말했다. '과군이 그대들이 행군하여 폐읍을 지나실 것을 듣고, 감히 종자를 위로합니다. 후하지 않은 폐읍이나, 종자가 장차 오래 머무실 것이므로, 머물면 하루의 양식을 갖추고, 떠나면 하룻밤의 수비를 갖춥니다.' 또 사람을 시켜 급히 정국에 알렸다. 정목공이 사람을 시켜 객관을 살피게 하니, 이미 짐을 묶고, 병기를 갈고, 말을 먹였다. 황무자(皇武子)를 보내 사하게 하며 말했다. '여러분이 폐읍에 오래 머물러, 육포・양식・성축이 다 말랐습니다. 여러분이 장차 떠나시니, 정국에 원포(原圃)가 있고, 진국에 구우(具囿)가 있는 것과 같으니, 여러분이 스스로 미록을 취하여 폐읍을 쉬게 하시면 어떻습니까?' 기자가 제국으로 도망치고, 봉손・양손이 송국으로 도망쳤다. 맹명이 말했다. '정국에 대비가 있으니, 바랄 수 없다.
攻之不克,圍之不繼,吾其還也。”滅滑而還。
(맹명이 이어 말하기를) 그것을 쳐도 이기지 못하고, 포위해도 뒤가 없으니, 우리는 돌아가자.' 활국을 멸하고 돌아갔다.
齊國莊子來聘,自郊勞至於贈賄,禮成而加之以敏。臧文仲言於公曰:“國子為政,齊猶有禮,君其朝焉。臣聞之,服於有禮,社稷之衛也。”
제국의 국장자(國莊子)가 와서 빙하니, 교외의 위로부터 재화 증정에 이르기까지, 예가 완성되고 민달이 더해졌다. 장문중이 희공에게 말했다. '국자가 집정하니, 제국이 오히려 예가 있습니다. 군은 가서 조하소서. 신이 들으니, 예 있는 나라를 따르는 것은 사직의 보위입니다.'
晉原軫曰:“秦違蹇叔,而以貪勤民,天奉我也。奉不可失,敵不可縱。縱敵患生,違天不祥。必伐秦師。”欒枝曰:“未報秦施而伐其師,其為死君乎?”先軫曰:“秦不哀吾喪而伐吾同姓,秦則無禮,何施之為?吾聞之,一日縱敵,數世之患也。謀及子孫,可謂死君乎?”遂發命,遽興姜戎。子墨衰絰,梁弘御戎,萊駒為右。
진국의 원진이 말했다. '진국이 건숙을 어기고, 탐욕으로 백성을 수고롭게 하니, 이는 하늘이 우리에게 준 것입니다. 하늘의 준 것은 잃을 수 없고, 적은 놓칠 수 없습니다. 적을 놓치면 화가 생기고, 하늘을 어기면 불길합니다. 반드시 진군을 쳐야 합니다.' 난지가 말했다. '아직 진국의 은혜에 보답하지 않고 그 군대를 치니, 마음에 죽은 군이 있습니까?' 선진이 말했다. '진국이 우리 상사를 애도하지 않고 우리 동성을 치니, 진국이야말로 무례한 것이며, 무슨 은혜가 있겠습니까? 내가 들으니, 하루 적을 놓치는 것이 몇 대의 화입니다. 자손을 위해 도모하는데, 죽은 군을 잊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에 명을 내리고, 급히 강융을 일으켰다. 양공이 상복을 검게 물들이니, 양홍이 융거를 몰고, 내구(萊駒)가 거우가 되었다.
夏四月辛巳,敗秦師於殽,獲百里孟明視、西乞術、白乙丙以歸,遂墨以葬文公。晉於是始墨。
하(夏) 사월 신사, 효에서 진군을 깨뜨려, 백리맹명시・서걸술・백을병을 사로잡아 돌아왔고, 이에 검은 상복을 입고 문공을 장사했다. 진국이 이로부터 비로소 검은 상복을 썼다.
文嬴請三帥,曰:“彼實構吾二君,寡君若得而食之,不厭,君何辱討焉!使歸就戮於秦,以逞寡君之志,若何?”公許之,先軫朝。問秦囚。公曰:“夫人請之,吾舍之矣。”先軫怒曰:“武伕力而拘諸原,婦人暫而免諸國。墮軍實而長寇仇,亡無日矣。”不顧而唾。公使陽處父追之,及諸河,則在舟中矣。釋左驂,以公命贈孟明。孟明稽首曰:“君之惠,不以累臣釁鼓,使歸就戮於秦,寡君之以為戮,死且不朽。若從君惠而免之,三年將拜君賜。”
문영이 세 장수를 위해 사정하여 말했다. '실로 저들이 우리 두 군주를 이간했으니, 과군이 만약 그들을 잡으면, 먹어도 만족하지 않을 것인데, 어찌 귀하를 수고롭게 하여 벌하게 하겠습니까! 그들을 돌려보내 진국에서 형을 받게 하여, 과군의 뜻을 채우시면 어떻습니까?' 양공이 허락했다. 선진이 조에 올라, 진국 포로를 물었다. 양공이 말했다. '부인이 사정하여, 내가 그들을 놓았다.' 선진이 노하여 말했다. '무사들이 들판에서 힘을 다해 그들을 잡았는데, 부인이 도성에서 갑자기 사면했다. 군실을 깎아내리고 적구를 기르니, 망하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머리를 돌리지 않고 침을 뱉었다. 양공이 양처보를 보내 뒤쫓게 하니, 황하에 이르렀으나, 그들은 이미 배 안에 있었다. 왼쪽 참마를 풀어, 양공의 명으로 맹명에게 주었다. 맹명이 머리를 조아려 말했다. '군왕의 은혜로, 잡힌 신을 북의 제물로 쓰지 않고, 돌아가 진국에서 형을 받게 하십니다. 과군이 만약 우리를 죽이면, 죽어도 썩지 않겠습니다. 만약 군왕의 은혜를 따라 사면해 주시면, 삼년 후에 군왕의 상에 배사하겠습니다.'
秦伯素服郊次,鄉師而哭曰:“孤違蹇叔以辱二三子,孤之罪也。不替孟明,孤之過也。大夫何罪?且吾不以一眚掩大德。”
진백이 흰 옷을 입고 교외에서 기다리며, 군대를 향해 울며 말했다. '내가 건숙을 어겨, 여러분을 욕되게 하였으니, 나의 죄이다. 맹명을 갈지 않은 것은 나의 과오이다. 대부가 무슨 죄가 있는가? 게다가 나는 한 번의 과실로 큰 덕을 가리지 않는다.'
狄侵齊,因晉喪也。
적인이 제국을 침범한 것은 진국에 상사가 있는 틈을 탄 것이다.
公伐邾,取訾婁,以報升陘之役。邾人不設備。秋,襄仲復伐邾。
희공이 저국을 쳐서 자루를 취한 것은 승형(升陘)의 싸움을 보복한 것이다. 저인이 방비를 설치하지 않았다. 추(秋), 양중이 다시 저국을 쳤다.
狄伐晉,及箕。八月戊子,晉侯敗狄於箕。郤缺獲白狄子。先軫曰:“匹夫逞志於君而無討,敢不自討乎?”免冑入狄師,死焉。狄人歸其元,面如生。
적인이 진국을 쳐서, 기에 이르렀다. 팔월 무자(戊子), 진후가 기에서적인을 깨뜨렸다. 극결이 백적인 우두머리를 사로잡았다. 선진이 말했다. '한 필부가 군 앞에서 뜻을 펼쳤는데 벌을 받지 않았으니, 감히 스스로 벌하지 않겠는가?' 투구를 벗고적인 군대에 들어가, 거기서 죽었다.적인이 그의 머리를 돌려보내니, 얼굴이 산 것 같았다.
初,臼季使過冀,見冀缺耨,其妻饁之。敬,相待如賓。與之歸,言諸文公曰:“敬,德之聚也。能敬必有德,德以治民,君請用之。臣聞之,出門如賓,承事如祭,仁之則也。”公曰:“其父有罪,可乎?”對曰:“舜之罪也殛鯀,其舉也興禹。管敬仲,桓之賊也,實相以濟。《康誥》曰:‘父不慈,子不祗,兄不友,弟不共,不相及也。’《詩》曰:‘採葑採菲,無以下體。’君取節焉可也。”文公以為下軍大夫。反自箕,襄公以三命命先且居將中軍,以再命命先茅之縣賞胥臣曰:“舉郤缺,子之功也。”以一命命郤缺為卿,復與之冀,亦未有軍行。
옛날 구계(臼季)가 사신으로 기(冀)를 지나다가, 기결이 김매는 것을 보았는데, 그의 아내가 그에게 밥을 보냈다. 매우 공경하여, 서로 빈객처럼 대했다. 구계가 그를 데리고 돌아가, 문공에게 말했다. '공경은 덕이 모이는 것입니다. 능히 공경하면 반드시 덕이 있고, 덕으로 백성을 다스리니, 군은 그를 쓰소서. 신이 들으니, 문을 나서면 빈객을 만난 듯하고, 일을 맡으면 제사와 같은 것은 인의 법칙입니다.' 문공이 말했다. '그의 아비에게 죄가 있는데, 될까?' 구계가 답했다. '순이 벌한 것은 곤을 죽인 것이요, 그가 추천한 것은 우를 일으킨 것입니다. 관경중은 환공의 원수였으나, 실로 그로써 보좌하여 일을 이루었습니다. 『강고』에 이르기를 「아비가 자하지 않고, 아들이 삼가지 않고, 형이 우애하지 않고, 아우가 공경하지 않는 것은 서로 연루하지 않는다」. 『시』에 이르기를 「봉을 캐고 비를 캐어도, 뿌리가 나쁘다고 버리지 마라」. 군이 그의 장절을 취하시면 됩니다.' 문공이 그를 하군 대부로 삼았다. 기에서 돌아와, 양공이 삼명으로 선저거를 명하여 중군을 이끌게 하고, 재명으로 선모의 현을 서신에게 상으로 주며 말했다. '극결을 추천한 것은 그대의 공이다.' 일명으로 극결을 명하여 경으로 삼고, 다시 그에게 기 땅을 주었으나, 아직 군직이 없었다.
冬,公如齊,朝,且吊有狄師也。反,薨於小寢,即安也。
동(冬), 희공이 제국에 가서 조하고, 또적인의 전사를 물었다. 돌아와서, 소침에서 죽었으니, 편안을 도모한 것이다.
晉、陳、鄭伐許,討其貳於楚也。
진국・진국・정국이 허국을 친 것은 그것이 초국에 이심한 것을 토한 것이다.
楚令尹子上侵陳、蔡。陳、蔡成,遂伐鄭,將納公子瑕,門於桔柣之門。
초국의 영윤 자상이 진국・채국을 침범했다. 진・채가 화의하니, 이에 정국을 쳐서, 공자 하를 넣으려 하고, 결질의 문을 쳤다.
瑕覆於周氏之汪,外僕髡屯禽之以獻。文夫人斂而葬之鄶城之下。
하의 수레가 주씨(周氏)의 연못에 뒤집히니, 바깥 복사 곤둔(髡屯)이 그를 잡아 바쳤다. 문부인이 수습하여 회성 아래에 장사했다.
晉陽處父侵蔡,楚子上救之,與晉師夾泜而軍。陽子患之,使謂子上曰:“吾聞之,文不犯順,武不違敵。子若欲戰,則吾退舍,子濟而陳,遲速唯命,不然紓我。老師費財,亦無益也。”乃駕以待。子上欲涉,大孫伯曰:“不可。
진국의 양처보가 채국을 침범하니, 초국의 자상이 구원하여, 진군과 저수를 사이에 두고 진을 쳤다. 양자가 이를 근심하여, 사람을 시켜 자상에게 말했다. '내가 들으니, 문덕 있는 자는 순리를 범하지 않고, 무덕 있는 자는 적을 피하지 않습니다. 그대가 만약 싸우려면, 내가 삼십 리를 물러나고, 그대가 건너와 진을 치되, 빠르고 느림은 오직 명을 따릅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를 늦추소서. 군대가 피로하고 재물을 허비하는 것도 이익이 없습니다.' 이에 수레를 메우고 기다렸다. 자상이 건너려 하니, 대손백이 말했다. '안 됩니다.
晉人無信,半涉而薄我,悔敗何及,不如紓之。”乃退舍。陽子宣言曰:“楚師遁矣。”遂歸。楚師亦歸。大子商臣譖子上曰:“受晉賂而闢之,楚之恥也,罪莫大焉。”王殺子上。
(대손백이 이어 말하기를) 진인이 신이 없어, 반쯤 건너면 우리를 핍박할 것이니, 패하여 후회하면 어디에 미치겠습니까? 차라리 그들을 늦추는 것이 낫습니다.' 이에 삼십 리를 물러났다. 양자가 선언하여 말했다. '초군이 달아났다.' 이에 돌아갔다. 초군도 돌아갔다. 태자 상신(商臣)이 자상을 참소하여 말했다. '진국의 재물을 받고 그들을 피했으니, 초국의 치욕이요, 죄는 이보다 큰 것이 없습니다.' 초왕이 자상을 죽였다.
葬僖公,緩作主,非禮也。凡君薨,卒哭而祔,祔而作主,特祀於主,烝嘗禘於廟。
희공을 장사하며, 신주를 만드는 것이 늦었으니, 예에 맞지 않다. 무릇 군이 죽으면, 졸곡 뒤에 부제하고, 부제 뒤에 신주를 만들어, 홀로 신주에게 제사하고, 증・상・체는 조묘에서 행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