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원오선사벽암록 권제육 끝
搏風鼓蕩四溟水(些子塵埃。將謂天下人不奈爾何。過)
바람을 치고 출렁이게 하네 사해(四溟)의 물을(이만한 티끌. 장차 천하 사람이 너를 어찌하지 못한다 하려는가. 허물)
是何埃壒兮忽生(重為禪人下注腳。斬拈卻著那裡)那箇毫釐兮未止(別別。吹散了也。截)
이것이 무슨 티끌인가, 문득 생겨났네(거듭 선인(禪人)을 위해 주석을 내린다. 잘라 집어 버려 저곳에 두라) 저것이 호리(毫釐)인가, 아직 그치지 않네(갈라져라 갈라져라. 불어 흩어졌다. 끊어라)
君不見(又恁麼去)網珠垂範影重重(大小大雪竇作這箇去就。可惜許。依舊打葛藤)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또 이와 같이 간다) 그물 구슬이 법을 드리워 그림자가 겹겹이네(대소대(大小大)의 설두가 이 갈림을 짓는다. 아깝도다. 여전히 칡덩굴을 친다)
棒頭手眼從何起(咄。賊過後張弓。放爾不得。盡大地人無出氣處。放得又須吃棒。又打咄雲。且道山僧底是雪竇底是)
방두(棒頭)의 손과 눈이 어디에서 일어나는가(차. 도둑이 지난 뒤에 활을 당긴다. 너를 놓아줄 수 없다. 온 대지의 사람이 숨 내쉴 곳이 없다. 놓아주고는 또 반드시 방을 먹어야 한다. 또 내리치고 꾸짖어 말한다. 자 말해 보라 산승의 것이 옳은가 설두의 것이 옳은가)
咄(三喝四喝後作麼生)𡏖(於蓋切。塵也通作堨)
차(세 번 꾸짖고 네 번 꾸짖은 뒤는 어떠한가) 애(壒)(어개절[於蓋切]. 티끌이다. 알[堨]로도 통한다)
遍身是通身是。若道背手摸枕子底便是。以手摸身底便是。若作恁麼見解。盡向鬼窟裡作活計。畢竟遍身通身都不是。若要以情識去見他大悲話。直是猶較十萬裡。雪竇弄得一句活道。拈來猶較十萬裡。後句頌雲巖道吾奇特處雲。展翅鵬騰六合雲。搏風鼓蕩四溟水。大鵬吞龍以翼搏風鼓浪。其水開三千里。遂取龍吞之。雪竇道。爾若大鵬能搏風鼓浪。也太殺雄壯。若以大悲千手眼觀之。只是些子塵埃忽生相似。又似一毫釐風吹未止相似。雪竇道。爾若以手摸身用作手眼堪作何用。於是大悲話上。直是未在。所以道。是何埃壒兮忽生。那箇毫釐兮未止。雪竇自謂作家。一時拂跡了也。爭奈後面依舊漏逗說箇諭子。依前只在圈繢裡。君不見。網珠垂範影重重。雪竇引帝網明珠。以用垂範。手眼且道落在什麼處。華嚴宗中。立四法界。一理法界。明一味平等故。二事法界。明全理成事故。三理事無礙法界。明理事相融大小無礙故。四事事無礙法界。明一事遍入一切事。一切事遍攝一切事。同時交參無礙故。所以道。一塵才舉大地全收。一一塵含無邊法界。一塵既爾諸塵亦然。網珠者。乃天帝釋善法堂前。以摩尼珠為網。凡一珠中映現百千珠。而百千珠俱現一珠中。交映重重。主伴無盡。此用明事事無礙法界也。昔賢首國師。立為鏡燈諭。圓列十鏡。中設一燈。若看東鏡。則九鏡鏡燈歷然齊現。若看南鏡則鏡鏡如然。所以世尊初成正覺。不離菩提道場。而遍昇忉利諸天。乃至於一切處。七處九會。說華嚴經。雪竇以帝網珠。垂示事事無礙法界。然六相義甚明白。即總即別。即同即異。即成即壞。舉一相則六相俱該。但為眾生日用而不知。雪竇拈帝網明珠。垂範況此大悲話。直是如此。爾若善能向此珠網中。明得拄杖子。神通妙用。出入無礙。方可見得手眼。所以雪竇雲。棒頭手眼從何起。教爾棒頭取證喝下承當。
온몸이 그러하다 통신이 그러하다. 만약 손을 등 뒤로 하여 베개를 더듬는 것이 곧 옳다고 말하고 손으로 몸을 더듬는 것이 곧 옳다고 말한다면, 이와 같은 견해를 지으면 모두 귀신굴 속을 향하여 셈을 한다. 필경 온몸도 통신도 모두 옳지 않다. 만약 정식(情識)으로써 가서 저 대비의 말을 보려 하면 곧 이것이 오히려 십만 리에 견준다. 설두가 한 구절을 가지고 놀아 활로(活路)를 얻었으니 집어 와도 오히려 십만 리에 견준다. 뒤의 구절은 운암·도오의 기특한 곳을 게송하여 말한다. 날개를 펴고 붕은 육합의 구름으로 솟고 바람을 치고 출렁이게 하네 사해의 물. 대붕(大鵬)은 용을 삼키고 날개로 바람을 쳐서 물결을 일으키니 그 물이 삼천 리를 갈라 마침내 용을 잡아 그것을 삼킨다. 설두가 말한다. 네가 만약 대붕이 되어 능히 바람을 치고 물결을 일으켜도 또한 지나치게 웅장하고, 만약 대비의 천수안(千手眼)으로써 그것을 보면 다만 이것이 조그마한 티끌이 문득 생겨난 것과 같고 또 한 호리의 바람이 불어 아직 그치지 않은 것과 같다. 설두가 말한다. 네가 만약 손으로 몸을 더듬어 손과 눈으로 삼아 쓴다면 무슨 소용이 되겠는가. 여기에서 대비의 말 위에는 곧 이것이 아직 있지 않다. 이 때문에 말한다. 이것이 무슨 티끌인가, 문득 생겨났네. 저것이 호리인가, 아직 그치지 않네. 설두는 스스로 작가라 하여 일시에 자취를 털어 버렸으나 어찌할 수 없이 뒤에 여전히 빈틈을 드러내어 한 비유를 말했다. 여전히 다만 함정 속에 있을 뿐이다.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그물 구슬이 법을 드리워 그림자가 겹겹이네. 설두가 제왕(帝網)의 명주(明珠)를 끌어와 이로써 법을 드리우는 데 쓴다. 손과 눈이 자 말해 보라 어느 곳에 떨어지는가. 화엄종(華嚴宗) 가운데 사법계(四法界)를 세웠다. 첫째 이법계(理法界)는 일미평등(一味平等)을 밝힌 까닭이요 둘째 사법계(事法界)는 온전한 이치가 일을 이룸을 밝힌 까닭이요 셋째 이사무애법계(理事無礙法界)는 이와 사가 서로 융합하여 대소가 거리낌 없음을 밝힌 까닭이요 넷째 사사무애법계(事事無礙法界)는 한 일이 두루 일체 일에 들어가고 일체 일이 두루 일체 일을 거두어 동시에 서로 참하여 거리낌 없음을 밝힌 까닭이다. 이 때문에 말한다. 한 티끌이 이제 막 들리면 대지를 온전히 거둔다. 하나하나의 티끌이 무변의 법계를 담고 한 티끌이 이미 그러하면 여러 티끌도 또한 그러하다. 망주(網珠)란 곧 천제석(天帝釋) 선법당(善法堂) 앞에 마니주(摩尼珠)로 그물을 삼은 것이다. 무릇 한 구슬 속에 백천 구슬이 비쳐 나타나고 백천 구슬이 함께 한 구슬 속에 나타나 서로 비추고 겹겹이며 주인과 짝이 다함이 없다. 이것을 써서 사사무애법계를 밝힌 것이다. 옛적 현수국사(賢首國師)가 세워 경등(鏡燈)의 비유로 삼았다. 둥글게 열 거울을 늘어놓고 가운데 한 등불을 놓았다. 만약 동쪽 거울을 보면 곧 아홉 거울의 거울과 등불이 뚜렷이 함께 나타나고 만약 남쪽 거울을 보면 곧 거울마다 그와 같다. 이 때문에 세존이 처음 정각을 이루어 보리도량을 떠나지 않고 두루 도리(忉利)의 여러 하늘에 오르며 내지 일체 곳에서 칠처구회(七處九會)로 《화엄경(華嚴經)》을 설했다. 설두는 제왕의 구슬로써 사사무애법계를 수시했다. 그러나 육상(六相)의 뜻이 매우 명백하니 곧 총이요 곧 별이며 곧 동이요 곧 이이며 곧 성이요 곧 괴여서 한 상을 들면 곧 육상이 함께 갖춰진다. 다만 중생이 날마다 쓰면서도 알지 못할 뿐이다. 설두가 제왕명주를 집어 법을 드리워 이 대비의 말에 견주었으니 곧 이와 같다. 네가 만약 잘 이 구슬 그물 속을 향하여 지팡이를 밝힐 수 있고 신통묘용이 출입에 거리낌이 없다면 비로소 손과 눈을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설두가 말한다. 방두의 손과 눈이 어디에서 일어나는가, 너를 가르쳐 방두에서 증을 취하고 할 아래서 승당하게 한다.
只如德山入門便棒。且道手眼在什麼處。臨濟入門便喝。且道手眼在什麼處。且道雪竇末後。為什麼更著箇咄字參。
(원오가 이어 말한다) 다만 덕산의 문에 들어가면 곧 방과 같으니 자 말해 보라 손과 눈이 어느 곳에 있는가. 임제의 문에 들어가면 곧 할이니 자 말해 보라 손과 눈이 어느 곳에 있는가. 자 말해 보라 설두가 마지막에 무슨 까닭으로 더욱 한 차(咄) 자를 두었는가 참구하라.
垂示雲。聲前一句千聖不傳。面前一絲長時無間。淨裸裸赤灑灑。頭鬔鬆耳卓朔。且道作麼生。試舉看。
수시한다. 소리 이전의 한 구절은 천 성인도 전하지 않고 눈앞의 한 올은 긴 시간에 끊어짐이 없다. 맑게 벌거벗고 산뜻하게 벌거벗었으며 머리는 헝클어지고 귀는 빳빳하다. 자 말해 보라 어떠한가. 시험 삼아 들어 보아라.
【九〇】舉。僧問智門。如何是般若體(通身無影象。坐斷天下人舌頭。用體作什麼)門雲。蚌含明月(光吞萬象。即且止。棒頭正眼事如何。曲不藏直。雪上加霜又一重)僧雲。如何是般若用(倒退三千里。要用作什麼)門雲。兔子懷胎(嶮。苦瓠連根苦。甜瓜徹帶甜。向光影中作活計。不出智門窠窟。若有箇出來。且道是般若體是般若用。且要土上加泥)。
【제90칙】 들었다. 스님이 지문(智門)에게 물었다. 무엇이 반야(般若)의 체(體)입니까(온몸에 그림자와 형상이 없다. 천하 사람의 혓바닥을 앉아서 끊는다. 체를 써서 무엇 하는가). 지문이 말했다. 대합이 밝은 달을 품는다(빛이 만상을 삼킨다. 곧 잠시 그만두어라. 방두정안(棒頭正眼)의 일이 어떠한가. 굽은 것은 곧은 것을 감추지 못한다. 눈 위에 서리를 더하는 또 한 겹). 스님이 말했다. 무엇이 반야의 용(用)입니까(삼천 리를 뒤로 물러난다. 용을 써서 무엇 하는가). 지문이 말했다. 토끼가 새끼를 밴다(위태롭다. 쓴 박은 뿌리부터 쓰고 단 참외는 꼭지까지 달다. 저본(底本)은 「대(帶)」로 되어 있으나 마땅히 「체(蒂)」여야 한다. 빛과 그림자 속을 향하여 셈을 한다. 지문의 굴을 벗어나지 못한다. 만약 한 놈이 나오면 자 말해 보라 이것이 반야의 체인가 반야의 용인가. 잠시 흙 위에 진흙을 더하기를 요한다).
智門道。蚌含明月兔子。懷胎。都用中秋意。雖然如此。古人意卻不在蚌兔上。他是雲門會下尊宿。一句語須具三句。所謂函蓋乾坤句。截斷眾流句。隨波逐浪句。亦不消安排。自然恰好。便去嶮處。答這僧話。略露些子鋒鋩。不妨奇特。雖然恁麼。他古人終不去弄光影。只與爾指些路頭教人見。這僧問。如何是般若體。智門雲。蚌含明月。漢江出蚌。蚌中有明珠。到中秋月出。蚌於水面浮。開口含月光。感而產珠。合浦珠是也。若中秋有月則珠多。無月則珠少。如何是般若用。門雲。兔子懷胎。此意亦無異。兔屬陰。中秋月生。開口吞其光。便乃懷胎。口中產兒。亦是有月則多。無月則少。他古人答處。無許多事。他只借其意。而答般若光也。雖然恁麼。他意不在言句上。自是後人。去言句上作活計。不見盤山道。心月孤圓光吞萬象。光非照境境亦非存。光境俱亡復是何物。如今人但瞠眼喚作光。只去情上生解。空裡釘橛。古人道。汝等諸人。六根門頭晝夜放大光明。照破山河大地。不只止眼根放光。鼻舌身意亦皆放光也。到這裡直須打疊六根下無一星事。淨裸裸赤灑灑地。方見此話落處。雪竇正恁麼頌出。
지문이 말한다. 대합이 밝은 달을 품고 토끼가 새끼를 밴다는 것은 모두 한가을의 뜻을 쓴 것이다. 비록 이와 같지만 옛 사람의 뜻은 도리어 대합과 토끼 위에 있지 않다. 그는 운문 회하의 존숙으로서 한 구절 말이 반드시 세 구절을 갖춰야 한다. 이른바 함개건곤구(函蓋乾坤句)·절단중류구(截斷衆流句)·수파축랑구(隨波逐浪句)이다. 또한 안배할 필요 없이 자연히 꼭 알맞다. 곧 험한 곳에 가서 이 스님의 말에 대답하여 대략 조금의 서슬을 드러내니 기특함이 거리낌 없다. 비록 이와 같지만 저 옛 사람은 끝내 빛과 그림자를 가지고 노는 데 가지 않는다. 다만 너와 함께 조금의 길목을 가리켜 사람을 가르쳐 보게 한다. 이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반야의 체입니까. 지문이 말했다. 대합이 밝은 달을 품는다. 한강(漢江)이 대합을 내는데 대합 속에 밝은 구슬이 있다. 한가을에 달이 나오면 대합이 물 위에 떠서 입을 열어 달빛을 품고 감응하여 구슬을 낳으니 합포주(合浦珠)가 이것이다. 만약 한가을에 달이 있으면 곧 구슬이 많고 달이 없으면 곧 구슬이 적다. 무엇이 반야의 용입니까. 지문이 말했다. 토끼가 새끼를 밴다. 이 뜻도 또한 다름이 없다. 토끼는 음에 속하여 한가을 달이 뜨면 입을 열어 그 빛을 삼키고 곧 새끼를 배어 입 속에서 새끼를 낳는다. 또한 달이 있으면 곧 많고 달이 없으면 곧 적다. 저 옛 사람은 대답한 곳에 많은 일이 없다. 그는 다만 그 뜻을 빌어 이로써 반야의 빛에 대답한 것이다. 비록 이와 같지만 그의 뜻은 언구 위에 있지 않다. 스스로 이것이 뒷사람이 언구 위에 가서 셈을 한 것이다. 보지 못했는가, 반산이 말하기를 마음 달이 외롭게 둥글어 빛이 만상을 삼키니 빛은 경계를 비추는 것이 아니요 경계도 또한 존하지 않아 빛과 경계가 함께 사라지면 다시 이것이 무슨 물건인가 하였다. 요즘 사람은 다만 눈을 부라려 빛이라 부르고 다만 정(情) 위에 가서 해석을 내니 허공에 말뚝을 박는 것이다. 옛 사람이 말했다. 너희 여러 사람은 육근문두(六根門頭)에 밤낮으로 큰 광명을 놓아 산하대지를 비추어 깨뜨리니 다만 안근(眼根)이 빛을 놓는 데 그치지 않고 비·설·신·의도 또한 모두 빛을 놓는다. 이곳에 이르러 곧 반드시 육근을 잡아 정리하여 한 티끌의 일도 없게 하고 맑게 벌거벗고 산뜻하게 벌거벗은 자리여야 비로소 이 말의 떨어진 곳을 본다. 설두가 바로 이와 같이 게송을 낸다.
一片虛凝絕謂情(擬心即差動念即隔。佛眼也覰不見)人天從此見空生(須菩提好與三十棒。用這老漢作什麼。設使須菩提也倒退三千里)
한 조각 허공에 응고하여 부를 수 있는 정이 끊어졌네(마음을 헤아리면 곧 어긋나고 생각을 움직이면 곧 막힌다. 불안(佛眼)도 또한 엿보지 못한다) 인천(人天)이 여기에서 공생(空生)을 보네(수보리(須菩提)에게 삼십 방을 잘 주어라. 이 늙은이를 써서 무엇 하는가. 설령 수보리라도 또한 삼천 리를 뒤로 물러나리라)
蚌含玄兔深深意(也須是當人始得。有什麼意。何須更用深深意)
대합이 품은 검은 토끼의 깊고 깊은 뜻(반드시 이는 당인(當人)이어야 비로소 된다. 무슨 뜻이 있는가. 무엇이 필요한가 더욱 깊고 깊은 뜻을 씀이여)
曾與禪家作戰爭(干戈已息天下太平。還會麼。打雲。闍黎吃得多少)
일찍이 선가(禪家)와 전쟁을 벌였네(창과 창이 이미 쉬고 천하가 태평하다. 도리어 깨닫는가. 내리치며 말한다. 사려가 얼마나 먹을 수 있는가)
一片虛凝絕謂情。雪竇一句便頌得好。自然見得古人意。六根湛然。是箇什麼。只這一片虛明凝寂。不消去天上討。也不必向別人求。自然常光現前。是處壁立千仞。謂情即是絕言謂情塵也。法眼圓成實性頌雲。理極忘情謂。如何得諭齊。到頭霜夜月。任運落前溪。果熟兼猿重。山遙似路迷。舉頭殘照在。元是住居西。所以道。心是根法是塵。兩種猶如鏡上痕。塵垢盡時光始現。心法雙忘性即真。又道三間茅屋從來住。一道神光萬境閑。莫把是非來辨我。浮生穿鑿不相關。只此頌亦見一片虛凝絕謂情也。人天從此見空生。不見須菩提巖中宴坐。諸天雨花讚歎。尊者雲。空中雨花讚歎。復是何人。天雲。我是梵天。尊者雲。汝云何讚歎。天雲。我重尊者善說般若波羅蜜多。尊者雲。我於般若未甞說一字。汝云何讚歎。天雲。尊者無說。我乃無聞。無說無聞是真般若。又復動地雨花。看他須菩提善說般若。且不說體用。若於此見得。便可見智門道蚌含明月兔子懷胎。古人意雖不在言句上。爭奈答處有深深之旨。惹得雪竇道蚌含玄兔深深意。到這裡曾與禪家作戰爭。天下禪和子。鬧浩浩地商量。未甞有一人夢見在。若要與智門雪竇同參。也須是自著眼始得。
한 조각 허공에 응고하여 부를 수 있는 정이 끊어졌다. 설두의 한 구절이 곧 게송을 잘 지었다. 자연히 옛 사람의 뜻을 볼 수 있으니 육근이 담연(湛然)하다는 것은 이것이 무엇인가. 다만 이 한 조각의 허명응적(虛明凝寂)은 하늘에 가서 구할 필요도 없고 또한 반드시 남에게 구하지도 않는다. 자연히 상광(常光)이 앞에 나타나 이곳이 벽립천인(壁立千仞)이다. 위정(謂情)은 곧 말로 부를 수 있는 정진(情塵)을 끊은 것이다. 법안(法眼)의 원성실성(圓成實性) 게송에 말하기를, 이치가 극致하여 정과 위(謂)를 잊으면 어떻게 비유를 가지런히 얻겠는가. 끝에 이르러 서리 밤의 달은 운을 맡겨 앞 시내에 떨어지고 열매는 여기어 원숭이를 무겁게 하며 산은 아득하여 길을 잃은 듯한데 머리를 들면 저녁 노을이 있으니 원래 사는 곳이 서쪽이었네 하였다. 이 때문에 말한다. 마음은 뿌리요 법은 티끌이니 두 가지가 마치 거울 위의 자국과 같아 티끌과 때가 다할 때 빛이 비로소 나타나고 마음과 법을 함께 잊으면 성품이 곧 참이다. 또 말한다. 칸막이 세 칸 초가집에 예로부터 살았네. 한 줄기 신령한 빛이 만 경계에 한가하네. 시비를 가지고 와서 나를 분별하지 말라. 덧없는 생은 뚫고 파는 것과 서로 상관없네. 다만 이 게송도 또한 한 조각 허공에 응고하여 부를 수 있는 정이 끊어짐을 보여 준다. 인천이 여기에서 공생을 본다. 보지 못했는가, 수보리가 바위 속에 안좌하니 여러 하늘이 꽃을 내리며 찬탄했다. 존자가 말했다. 허공에 꽃을 내리며 찬탄하는 이는 다시 이것이 어떤 사람인가. 하늘이 말했다. 나는 범천(梵天)입니다. 존자가 말했다. 네가 어찌하여 찬탄하는가. 하늘이 말했다. 나는 존자가 반야바라밀다를 잘 설하시기에 숭중합니다. 존자가 말했다. 나는 반야에 대하여 일찍이 한 글자도 설한 적이 없는데 네가 어찌하여 찬탄하는가. 하늘이 말했다. 존자는 설함이 없고 나는 곧 들음이 없으니 설함도 없고 들음도 없는 것이 이것이 참된 반야입니다. 또 다시 땅을 움직이고 꽃을 내렸다. 저 수보리가 반야를 잘 설함을 보라, 비록 체와 용을 말하지 않지만 만약 여기에서 본다면 곧 지문이 말한 대합이 밝은 달을 품고 토끼가 새끼를 밴다를 볼 수 있다. 옛 사람의 뜻은 비록 언구 위에 있지 않지만 어찌할 수 없이 대답한 곳에 깊고 깊은 취지가 있다. 설두를 끌어들여 말하게 한다, 대합이 품은 검은 토끼의 깊고 깊은 뜻. 이곳에 이르러 일찍이 선가와 전쟁을 벌였다. 천하의 선화자(禪和子)가 시끄러운 자리에서 상량하지만 일찍이 한 사람도 꿈에 본 자가 없다. 만약 지문·설두와 함께 참하고자 하면 또한 반드시 스스로 눈을 두어야 비로소 된다.
불과원오선사벽암록(佛果圜悟禪師碧巖錄) 권제구(卷第九) (끝)
불과원오선사벽암록(佛果圜悟禪師碧巖錄) 권제십(卷第十)
垂示雲。超情離見。去縛解粘。提起向上宗乘。扶竪正法眼藏。也須十方齊應八面玲瓏。直到恁麼田地。且道還有同得同證同死同生底麼。試舉看。
수시한다. 정(情)을 넘고 견(見)을 떠나며 속박을 벗고 들러붙음을 풀어 향상(向上)의 종승(宗乘)을 들어 일으키고 정법안장(正法眼藏)을 바로 세운다. 또한 반드시 시방(十方)이 함께 응하고 팔면이 영롱하여야 한다. 곧 이와 같은 지경에 이르기까지. 자 말해 보라, 도리어 같이 얻고 같이 증하며 같이 죽고 같이 사는 자가 있는가. 시험 삼아 들어 보아라.
【九一】舉。鹽官一日喚侍者。與我將犀牛扇子來(打葛藤不少。何似這箇好箇消息)侍者雲。扇子破也(可惜許。好箇消息。道什麼)官雲。扇子既破。還我犀牛兒來(漏逗不少。幽州猶自可。最苦是新羅。和尚用犀牛兒作什麼)侍者無對(果然是箇無孔鐵鎚。可惜許)投子云。不辭將出。恐頭角不全(似則似。爭奈兩頭三面。也是說道理)雪竇拈雲。我要不全底頭角(堪作何用。將錯就錯)石霜雲。若還和尚即無也(道什麼。撞著鼻孔)雪竇拈雲。犀牛兒猶在(嶮。洎乎錯認。收頭去)資福畫一圓相。於中書一牛字(草藁不勞拈出。弄影漢)雪竇拈雲。適來為什麼不將出(金鍮不辨。也是草裡漢)保福雲。和尚年尊。別請人好(僻地裡罵官人。辭辛道苦作什麼)雪竇拈雲。可惜勞而無功(兼身在內。也好與三十棒。灼然)。
【제91칙】 들었다. 염관(鹽官)이 어느 날 시자(侍者)를 불렀다. 나를 위해 코뿔소 부채를 가져오너라(칡덩굴을 친 것이 적지 않다. 어찌하여 이것이 좋은 소식과 같은가). 시자가 말했다. 부채가 부서졌습니다(아깝도다. 좋은 소식이다. 무엇을 말하는가). 염관이 말했다. 부채가 이미 부서졌으면 나에게 코뿔소 새끼를 돌려다오(빈틈을 드러낸 것이 적지 않다. 유주(幽州)는 오히려 스스로 괜찮다. 가장 괴로운 것은 신라다. 화상이 코뿔소 새끼를 써서 무엇 하는가). 시자가 대답하지 못했다(과연 구멍 없는 쇠망치다. 아깝도다). 투자(投子)가 말했다. 내어놓기를 사양하지 않으나 아마 머리와 뿔이 온전하지 않을까 합니다(비슷하기는 하나 어찌할 수 없이 두 머리 세 얼굴이다. 이것도 도리를 말한 것이다). 설두가 집어 말했다. 나는 온전하지 않은 머리와 뿔을 원한다(무슨 소용이 되겠는가. 그름을 가지고 그름에 따른다). 석상(石霜)이 말했다. 만약 화상에게 돌려주면 곧 없습니다(무엇을 말하는가. 코뚜레에 부딪혔다). 설두가 집어 말했다. 코뿔소 새끼는 오히려 있다(위태롭다. 그윽하게 잘못 알았다. 머리를 거두어 가라). 자복(資福)이 한 원상(圓相)을 그리고 그 가운데 우(牛) 자 한 자를 썼다(초고는 꺼내는 수고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림자를 가지고 노는 녀석). 설두가 집어 말했다. 아까는 어찌하여 내어놓지 않았는가(금을 두부와 분별하지 못한다. 이것도 풀 속의 녀석이다). 보복(保福)이 말했다. 화상은 연로하시니 다른 사람을 청하는 것이 좋겠습니다(외진 곳에서 관리를 욕한다. 고생을 사양하고 고됨을 말하여 무엇 하는가). 설두가 집어 말했다. 아깝다 수고하고 공이 없구나(몸을 겸하여 안에 있다. 또한 삼십 방을 잘 주어라. 분명하다).
鹽官一日喚侍者。與我將犀牛扇子來。此事雖不在言句上。且要驗人平生意氣作略。又須得如此藉言而顯。於臘月三十日著得力。作得主。萬境摐然。覩之不動。可謂無功之功。無力之力。鹽官廼齊安禪師。古時以犀牛角為扇。時鹽官豈不知犀牛扇子破。故問侍者。侍者雲。扇子破也。看他古人。十二時中常在裡許撞著磕著。鹽官雲。扇子既破。還我犀牛兒來。且道他要犀牛兒作什麼。也只要驗人知得落處也無。投子云。不辭將出。恐頭角不全。雪竇雲。我要不全底頭角。亦向句下便投機。石霜雲。若還和尚即無也。雪竇雲。犀牛兒猶在。資福畫一圓相。於中書一牛字。為他承嗣仰山。平生愛以境致接人明此事。雪竇雲。適來為什麼不將出。又穿他鼻孔了也。保福雲。和尚年尊。別請人好。此語道得穩當。前三則語卻易見。此一句語有遠意。雪竇亦打。破了也。山僧舊日在慶藏主處理會。道。和尚年尊老耄。得頭忘尾。適來索扇子。如今索犀牛兒。難為執侍。故云。別請人好。雪竇雲。可惜勞而無功。此皆是下語格式。古人見徹此事。各各雖不同。道得出來。百發百中。須有出身之路。句句不失血脈。如今人問著。只管作道理計較。所以十二時中。要人咬嚼教滴水滴凍。求箇證悟處。看他雪竇頌一串雲。摐(七恭切撞也)。
염관이 어느 날 시자를 불러 나를 위해 코뿔소 부채를 가져오너라 했다. 이 일은 비록 언구 위에 있지 않지만 잠시 사람의 평생 의기작략(意氣作略)을 시험해야 하고 또한 반드시 이와 같이 말을 빌어 드러내어야 한다. 섣달 그믐날에 당하여 힘을 쓸 수 있고 주인이 될 수 있다면 만 경계가 꽉 차서 그것을 보아도 움직이지 않는다. 공 없는 공, 힘 없는 힘이라 할 만하다. 염관은 곧 제안(齊安) 선사이다. 옛날에 코뿔소 뿔로 부채를 삼았다. 그때 염관이 어찌 코뿔소 부채가 부서진 것을 몰랐겠는가, 일부러 시자에게 물은 것이다. 시자가 말했다. 부채가 부서졌습니다. 저 옛 사람을 보라, 십이시(十二時) 가운데 늘 그 가운데서 부딪히고 닿는다. 염관이 말했다. 부채가 이미 부서졌으면 나에게 코뿔소 새끼를 돌려다오. 자 말해 보라 그가 코뿔소 새끼를 원하여 무엇 하겠는가. 또한 다만 사람을 시험하여 떨어진 곳을 아는가 아닌가를 원할 뿐이다. 투자가 말했다. 내어놓기를 사양하지 않으나 아마 머리와 뿔이 온전하지 않을까 합니다. 설두가 말했다. 나는 온전하지 않은 머리와 뿔을 원한다. 또한 구절 아래를 향하여 곧 기(機)에 맞춘다. 석상이 말했다. 만약 화상에게 돌려주면 곧 없습니다. 설두가 말했다. 코뿔소 새끼는 오히려 있다. 자복이 한 원상을 그리고 그 가운데 우 자 한 자를 썼으니 그가 앙산(仰山)을 계승한 까닭이며 평생 경치(境致)로써 사람을 접하여 이 일을 밝히기를 좋아했다. 설두가 말했다. 아까는 어찌하여 내어놓지 않았는가. 또 그의 코뚜레를 뚫었다. 보복이 말했다. 화상은 연로하시니 다른 사람을 청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 말은 말한 것이 온당하다. 앞의 세 가지 말은 도리어 보기 쉽고 이 한 구절 말은 먼 뜻이 있다. 설두도 또한 쳤다. 부서졌다. 산승이 옛날 경장주(慶藏主)의 곳에서 이치를 따져 말했다. 화상은 연로하여 노망하여 머리를 얻고 꼬리를 잊으니 아까는 부채를 찾고 지금은 코뿔소 새끼를 찾으니 모시고 시중들기 어렵다. 그러므로 말한다. 다른 사람을 청하는 것이 좋다. 설두가 말했다. 아깝다 수고하고 공이 없구나. 이것은 모두 말을 내리는 격식이다. 옛 사람은 이 일을 꿰뚫어 보아 각각 비록 같지 않지만 말을 해 내면 백발백중이니 반드시 몸을 낼 길이 있어 구절마다 혈맥을 잃지 않아야 한다. 요즘 사람은 물음에 당하면 다만 도리와 계교를 짓는다. 이 때문에 십이시 가운데 사람으로 하여금 씹고 씹어 물방울이 얼어붙게 가르치고 한 깨달음의 곳을 구하게 한다. 저 설두의 게송 한 꾸러미의 말을 보라. 창(摐)(칠공절[七恭切], 치다).
犀牛扇子用多時(遇夏則涼遇冬則暖。人人具足。為甚不知。阿誰不曾用)
코뿔소 부채를 쓴 지 오래네(여름을 만나면 곧 시원하고 겨울을 만나면 곧 따뜻하다. 사람마다 구족하였다. 무슨 까닭으로 모르는가. 누가 일찍이 쓰지 않았는가)
問著元來總不知(知則知。會則不會。莫瞞人好。也怪別人不得)無限清風與頭角(在什麼處。不向自己上會。向什麼處會。天上天下。頭角重生。是什麼。無風起浪)
물음에 당하면 원래 도무지 모르네(아는 것은 안다. 깨닫기는 깨닫지 못한다. 남을 속이지 말기를 좋게 여기라. 또한 남을 탓할 수도 없다) 무한한 맑은 바람과 머리와 뿔(어느 곳에 있는가. 자기 위를 향하여 깨닫지 않고 어느 곳을 향하여 깨닫겠는가. 천상천하. 머리와 뿔이 거듭 난다. 이것이 무엇인가. 바람 없는데 물결을 일으킨다)
盡同雲雨去難追(蒼天蒼天。也是失錢遭罪)。
모두 구름과 비와 함께 가서 쫓기 어렵네(창천아 창천아. 이것도 돈을 잃고 죄를 입은 것이다)
雪竇復雲。若要清風再復。頭角重生(人人有箇犀牛扇子。十二時中全得他力。因什麼問著總不知。還道得麼)請禪客各下一轉語(鹽官猶在。三轉了也)問雲。扇子既破。還我犀牛兒來(也有一箇半箇。咄。也好推倒禪床)時有僧出雲。大眾參堂去(賊過後張弓。被奪卻槍。前不搆村。後不迭店)雪竇喝雲。拋鉤釣鯤鯨。釣得箇蝦䗫。便下座(招得他恁麼地。賊過後張弓。佛果自徵此語云。又直問爾諸人。這僧道。大眾參堂去。是會不會。若是不會。爭解恁麼道。若道會時。雪竇又道。拋鉤釣鯤鯨。只釣得箇蝦䗫。便下座。且道。誵訛在什麼處。試請參詳看)。
설두가 다시 말했다. 만약 맑은 바람을 다시 회복하고 머리와 뿔을 거듭 나게 하고자 하면(사람마다 한 코뿔소 부채가 있다. 십이시 가운데 온전히 그의 힘을 얻는다. 무슨 까닭으로 물음에 당하면 도무지 모르는가. 도리어 말할 수 있는가) 청컨대 선객(禪客)들이여 각각 한 전어(轉語)를 내려라(염관이 오히려 있다. 세 번 돌렸다) 물어 말한다. 부채가 이미 부서졌으면 나에게 코뿔소 새끼를 돌려다오(또한 한두 놈이 있다. 차. 또한 선상을 엎어 버리기를 잘하라). 이때 한 스님이 나와 말했다. 대중은 참당(參堂)으로 가시오(도둑이 지난 뒤에 활을 당긴다. 창을 빼앗겨 버렸다. 앞에는 마을을 짓지 못하고 뒤에는 가게가 닿지 않는다). 설두가 꾸짖어 말했다. 갈고리를 던져 곤경(鯤鯨)을 낚으려다 한 마리 개구리를 낚았다. 곧 자리에서 내려왔다(그를 불러들여 이와 같은 자리에 이르렀다. 도둑이 지난 뒤에 활을 당긴다. 불과(佛果)가 스스로 이 말을 징(徵)하여 말한다. 또 곧바로 너희 여러 사람에게 묻는다. 이 스님이 말한 대중은 참당으로 가시오는 깨달은 것인가 못 깨달은 것인가. 만약 못 깨달은 것이라면 어찌 이와 같이 말할 줄 알겠는가. 만약 깨달았다고 말할 때 설두가 또 말한다. 갈고리를 던져 곤경을 낚으려다 다만 한 마리 개구리를 낚고 곧 자리에서 내려왔다. 자 말해 보라 혼란과 그릇됨이 어느 곳에 있는가. 시험 삼아 청컨대 참상(參詳)해 보아라).
犀牛扇子用多時。問著元來總不知。人人有箇犀牛扇子。十二時中。全得他力。為什麼問著總不知去著。侍者投子。乃至保福。亦總不知。且道雪竇還知麼。不見無著訪文殊。吃茶次。文殊舉起玻璃盞子云。南方還有這箇麼。著雲。無殊雲。尋常用什麼吃茶。著無語。若知得這箇公案落處。便知得犀牛扇子有無限清風。亦見犀牛頭角崢嶸。四箇老漢恁麼道。如朝雲暮雨一去難追。雪竇復雲。若要清風再復頭角重生。請禪客各下一轉語。問雲。扇子既破。還我犀牛兒來。時有一禪客出雲。大眾參堂去。這僧奪得主家權柄。道得也殺道。只道得八成。若要十成。便與掀倒禪床。爾且道。這僧會犀牛兒不會。若不會卻解恁麼道。若會雪竇因何不肯伊。為什麼道。拋鉤釣鯤鯨。只釣得箇蝦䗫。且道畢竟作麼生。諸人無事。試拈掇看。
코뿔소 부채를 쓴 지 오래되었으나 물음에 당하면 원래 도무지 모른다. 사람마다 한 코뿔소 부채가 있어 십이시 가운데 온전히 그의 힘을 얻는다. 무슨 까닭으로 물음에 당하면 도무지 모르는 채로 가버리는가. 시자·투자 내지 보복도 또한 도무지 모른다. 자 말해 보라 설두는 도리어 아는가. 보지 못했는가, 무착(無著)이 문수를 찾아 차를 마시는 차에 문수가 유리잔을 들어 말했다. 남방에 또한 이것이 있는가. 무착이 말했다. 없습니다. 문수가 말했다. 평소에 무엇으로 차를 마시는가. 무착이 말이 없었다. 만약 이 공안의 떨어진 곳을 알 수 있다면 곧 코뿔소 부채에 무한한 맑은 바람이 있음을 알고 또한 코뿔소 머리와 뿔이 쟁명(崢嶸)함을 보리라. 네 늙은이가 이와 같이 말했으나 아침 구름 저녁 비가 한번 가면 쫓기 어려운 것과 같다. 설두가 다시 말했다. 만약 맑은 바람을 다시 회복하고 머리와 뿔을 거듭 나게 하고자 하면 청컨대 선객들이여 각각 한 전어를 내려라, 물어 말한다. 부채가 이미 부서졌으면 나에게 코뿔소 새끼를 돌려다오. 이때 한 선객이 나와 말했다. 대중은 참당으로 가시오. 이 스님은 주인집의 권병(權柄)을 빼앗아 얻어 말한 것도 겨우 말했으니 여덟 할을 말했을 뿐이다. 만약 열 할을 원하면 곧 그와 함께 선상을 엎어 버려야 한다. 너는 잠시 말해 보라, 이 스님이 코뿔소 새끼를 깨달았는가 못 깨달았는가. 만약 못 깨달았으면서 도리어 이와 같이 말할 줄 안다면 만약 깨달았다면 설두가 무슨 까닭으로 그를 허락하지 않는가. 무슨 까닭으로 말하는가, 갈고리를 던져 곤경을 낚으려다 다만 한 마리 개구리를 낚았다고. 자 말해 보라 필경 어떠한가. 여러 사람이 일이 없거든 시험 삼아 집어 살펴 보아라.
垂示雲。動絃別曲。千載難逢。見兔放鷹。一時取俊。總一切語言為一句。攝大千沙界為一塵。同死同生。七穿八穴。還有證據者麼。試舉看。
수시한다. 현을 움직여 곡을 가리는 것은 천 년에 만나기 어렵고 토끼를 보고 매를 놓는 것은 한시에 준걸을 취한다. 일체 언어를 통틀어 한 구절로 삼고 대천사계(大千沙界)를 거두어 한 티끌로 삼는다. 함께 죽고 함께 살며 일곱 번 뚫고 여덟 번 뚫는다. 도리어 증거하는 자가 있는가. 시험 삼아 들어 보아라.
【九二】舉。世尊一日陞座(賓主俱失。不是一回漏逗)文殊白槌雲。諦觀法王法。法王法如是(一子親得)世尊便下座(愁人莫向愁人說。說向愁人愁殺人。打鼓弄琵琶。相逢兩會家)。
【제92칙】 들었다. 세존이 어느 날 자리에 올랐다(빈주(賓主)가 함께 잃었다. 이것은 한 번의 빈틈이 아니다). 문수가 백추(白槌)를 치며 말했다. 자세히 법왕(法王)의 법을 관하라, 법왕의 법은 이와 같다(한 아들이 몸소 얻었다). 세존이 곧 자리에서 내려왔다(근심하는 사람은 근심하는 사람에게 말하지 말라, 근심하는 사람에게 말하면 근심이 사람을 죽인다. 북을 치고 비파를 연주한다. 서로 만나면 두 집안이 된다).
世尊未拈花已前。早有這箇消息。始從鹿野苑。終至拔提河。幾曾用著金剛王寶劍。當時眾中。若有衲僧氣息底漢。綽得去。免得他末後拈花。一場狼藉。世尊良久間。被文殊一拶。便下座。那時也有這箇消息。釋迦掩室。淨名杜口。皆似此這箇。則已說了也。如肅宗問忠國師。造無縫塔話。又如外道問佛。不問有言。不問無言之語。看他向上人行履。幾曾入鬼窟裡作活計。有者道。意在默然處。有者道。在良久處。有言明無言底事。無言明有言底事。永嘉道。默時說說時默。總恁麼會。三生六十劫。也未夢見在。爾若便直下承當得去。更不見有凡有聖。是法平等無有高下。日日與三世諸佛。把手共行。後面看雪竇自然見得頌出。
세존이 아직 꽃을 집기 이전에 일찍이 이 소식이 있었다. 처음 녹야원(鹿野苑)에서부터 마침내 발제하(拔提河)에 이르기까지 어느 때에 금강왕보검(金剛王寶劍)을 쓴 적이 있었는가. 그때 대중 가운데 만약 납승의 기식이 있는 사내가 있어 홀연히 나아갔다면 그의 마지막에 꽃을 집어 한 판 낭패함을 면하게 했을 것이다. 세존이 양구(良久)하는 사이에 문수의 한 번 부딪힘을 입고 곧 자리에서 내려왔다. 그때도 또한 이 소식이 있었다. 석가가 방을 가리고 정명(淨名)이 입을 닫은 것이 모두 이것과 같았으니 곧 이미 말한 것이다. 숙종(肅宗)이 충국사(忠國師)에게 물은 무승탑(無縫塔)을 짓는 말과 같고 또 외도(外道)가 부처에게 물은 말이 있는 것을 묻지 않고 말이 없는 것을 묻지 않은 말과 같다. 저 향상인(向上人)의 행리(行履)를 보라, 어느 때에 귀신굴 속에 들어가 셈을 하였는가. 어떤 이는 말한다. 뜻은 묵연(默然)한 곳에 있다. 어떤 이는 말한다. 양구한 곳에 있다. 말이 있음은 말 없는 일을 밝히고 말 없음은 말 있는 일을 밝힌다. 영가(永嘉)가 말했다. 침묵할 때는 말하고 말할 때는 침묵한다. 도무지 이와 같이 깨닫는다면 삼생육십겁(三生六十劫)에도 아직 꿈에도 보지 못하리라. 네가 만약 곧바로 곧장 승당(承當)할 수 있다면 더욱 범부가 있고 성인이 있음을 보지 않으니 이 법이 평등하여 높고 낮음이 없다. 날마다 삼세 제불과 손을 잡고 함께 간다. 뒤에서 설두를 보면 자연히 게송을 내었음을 볼 수 있다.
列聖叢中作者知(莫謗釋迦老子好。還他臨濟德山。千箇萬箇中難得一箇半箇)
열성(列聖)의 총중(叢中)에서 작자(作者)는 이것을 아네(석가 노자를 비방하지 말기를 좋게 여기라. 그 임제·덕산에게 돌려주어라. 천 개 만 개 가운데 하나 반쪽을 얻기 어렵다)
法王法令不如斯(隨他走底。如麻似粟。三頭兩面。灼然能有幾人到這裡)
법왕의 법령이 이와 같지 않네(그를 따라 달리는 자. 삼화여속(如麻似粟)이다. 세 머리 두 얼굴. 분명히 능히 몇 사람이 이곳에 이르렀는가)
會中若有仙陀客(就中難得伶俐人。文殊不是作家。闍黎定不是)何必文殊下一槌(更下一槌。又何妨。第二第三槌總不要。當機一句作麼生道。嶮)。
회중(會中)에 만약 선타객(仙陀客)이 있다면(그 가운데 영리한 사람을 얻기 어렵다. 문수는 작가가 아니다. 사려(闍黎)는 정녕 이것이 아니다) 무엇이 필요한가 문수가 한 방망이를 내림이여(더욱 한 방망이를 내린다, 또 무슨 해가 있겠는가. 둘째 셋째 방망이는 도무지 필요 없다. 당기(當機)의 한 구절을 어떻게 말하는가. 위태롭다)
列聖叢中作者知。靈山八萬大眾。皆是列聖。文殊普賢。乃至彌勒。主伴同會。須是巧中之巧。奇中之奇。方知他落處。雪竇意謂。列聖叢中。無一箇人知有。若有箇作家者。方知不恁麼。何故文殊白槌雲。諦觀法王法。法王法如是。雪竇道。法王法令不如斯。何故如此。當時會中。若有箇漢。頂門具眼。肘後有符。向世尊未陞座已前。覻得破。更何必文殊白槌。涅槃經云。仙陀婆一名四實。一者鹽。二者水。三者器。四者馬。有一智臣。善會四義。王若欲灑洗。要仙陀婆。臣即奉水。食索奉鹽。食訖奉器飲漿。欲出奉馬。隨意應用無差。灼然須是箇伶俐漢始得。只如僧問香嚴。如何是王索仙陀婆。嚴雲。過這邊來。僧過嚴雲。鈍置殺人。又問趙州。如何是王索仙陀婆。州下禪床。曲躬叉手。當時若有箇仙陀婆。向世尊未陞座已前透去。猶較些子。世尊更陞座。便下去。已是不著便了也。那堪文殊更白槌。不妨鈍置他世尊一上提唱。且作麼生是鈍置處。
열성의 총중에서 작자는 이것을 안다. 영산(靈山)의 팔만 대중이 모두 열성이니 문수·보현 내지 미륵이 주인과 짝이 함께 모였다. 반드시 교묘함 가운데의 교묘함, 기묘함 가운데의 기묘함이어야 비로소 그의 떨어진 곳을 안다. 설두의 뜻은 말한다. 열성의 총중에는 한 사람도 있음을 아는 자가 없어 만약 한 작가가 있다면 비로소 이와 같지 않음을 알리라. 무슨 까닭으로 문수가 백추를 치며 말하는가, 자세히 법왕의 법을 관하라 법왕의 법은 이와 같다고. 설두가 말한다. 법왕의 법령이 이와 같지 않다. 무슨 까닭으로 이와 같은가. 그때 회중에 만약 한 사내가 있어 정문(頂門)에 눈을 갖추고 팔꿈치 뒤에 부적이 있어 세존이 아직 자리에 오르기 이전을 향하여 들여다보아 깨뜨렸다면 더욱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문수의 백추가. 《열반경(涅槃經)》에 말하기를, 선타파(仙陀婆)는 한 이름에 네 실(實)이 있으니 첫째 소금, 둘째 물, 셋째 그릇, 넷째 말이다. 한 지혜로운 신하가 있어 네 가지 뜻을 잘 깨달아 왕이 만약 씻고자 하여 선타파를 원하면 신하가 곧 물을 바치고 밥에 찾으면 소금을 바치며 밥을 마치면 그릇을 바쳐 물을 마시게 하고 나가고자 하면 말을 바치니 뜻에 따라 응용하여 어긋남이 없었다. 분명히 반드시 영리한 사내여야 비로소 된다. 다만 스님이 향엄(香嚴)에게 물었다. 무엇이 왕이 선타파를 찾는 것입니까. 향엄이 말했다. 이리로 건너오너라. 스님이 건너갔다. 향엄이 말했다. 둔하게 두어 사람을 죽인다. 또 조주(趙州)에게 물었다. 무엇이 왕이 선타파를 찾는 것입니까. 조주가 선상에서 내려 몸을 굽혀 두 손을 포갰다. 그때 만약 한 선타파가 있어 세존이 아직 자리에 오르기 이전을 향하여 뚫고 갔다면 오히려 조금 나았을 것이다. 세존이 더욱 자리에 올랐다가 곧 내려간 것은 이미 때를 맞추지 못한 것인데 어찌 견디겠는가 문수가 더욱 백추를 친 것을. 거리낌 없이 그 세존을 둔하게 두었다, 한 차례 제창(提唱). 자 어떤 것이 둔하게 둔 곳인가.
【九三】舉。僧問大光。長慶道。因齋慶讚。意旨如何(重光這漆桶。不妨疑著。不問不知)大光作舞(莫賺殺人。依舊從前恁麼來)僧禮拜(又恁麼去也。是則是恐錯會)光雲。見箇什麼。便禮拜(也好一拶。須辨過始得)僧作舞(依樣畫貓兒。果然錯會。弄光影漢)光雲。這野狐精(此恩難報。三十二祖只傳這箇)。
【제93칙】 들었다. 스님이 대광(大光)에게 물었다. 장경(長慶)이 말하기를 재(齋)로 인하여 경찬(慶讚)한다는 것은 뜻이 어떻습니까(중광(重光) 이 옻칠 통. 거리낌 없이 의심에 붙는다. 묻지 않으면 모른다). 대광이 춤을 추었다(사람을 속여 죽이지 말라. 여전히 종전부터 이와 같이 온다). 스님이 예배했다(또 이와 같이 가버렸다. 옳기는 하나 아마 잘못 깨달을까 하다). 대광이 말했다. 무엇을 보고 곧 예배하는가(또한 한 번 부딪힘을 잘하라. 반드시 분별하여 지나야 비로소 된다). 스님이 춤을 추었다(본따서 고양이를 그린다. 과연 잘못 깨달았다. 빛과 그림자를 가지고 노는 녀석). 대광이 말했다. 이 여우 정령아(이 은혜는 갚기 어렵다. 삼십이조(三十二祖)가 다만 이것을 전한다).
西天四七。唐土二三。只傳這箇些子。諸人還知落處麼。若知免得此過。若不知。依舊只是野狐精。有者道。是裂轉他鼻孔來瞞人。若真箇恁麼。成何道理。大光善能為人。他句中有出身之路。大凡宗師。須與人抽釘拔楔。去粘解縛。方謂之善知識。大光作舞。這僧禮拜。末後僧卻作舞。大光雲。這野狐精。不是轉這僧。畢竟不知的當。爾只管作舞。遞相恁麼。到幾時得休歇去。大光道野狐精。此語截斷金牛。不妨奇特。所以道。他參活句。不參死句。雪竇只愛他道這野狐精。所以頌出。旦道這野狐精。與藏頭白海頭黑。是同是別。這漆桶。又道。好師僧。且道。是同是別。還知麼觸處逢渠。雪竇頌雲。
서천(西天) 사칠(四七)이요 당토(唐土) 이삼(二三)이니 다만 이 조금을 전한다. 여러 사람이 도리어 떨어진 곳을 아는가. 만약 알면 이 허물을 면하고 만약 모르면 여전히 다만 여우 정령이다. 어떤 이는 말한다. 이것은 돌려 그의 코뚜레를 찢어 와서 사람을 속이는 것이다. 만약 참으로 이와 같다면 무슨 도리를 이루겠는가. 대광은 잘 사람을 위해 할 수 있으니 그의 구절 속에 몸을 낼 길이 있다. 대개 종사는 반드시 사람과 함께 못을 뽑고 쐐기를 빼고 끈적함을 제거하고 속박을 풀어야 비로소 선지식이라 불린다. 대광이 춤을 추고 이 스님이 예배하고 마지막에 스님이 도리어 춤을 추니 대광이 말했다. 이 여우 정령아. 이것은 이 스님을 돌린 것이 아니라 필경 참뜻을 모르기 때문이다. 너는 다만 춤을 추기만 하여 서로 이와 같이 하면 어느 때에야 쉬겠는가. 대광이 말한 여우 정령은 이 말이 금우(金牛)를 절단하여 기특함이 거리낌 없다. 이 때문에 말한다. 그는 활구(活句)를 참하고 사구(死句)를 참하지 않는다. 설두는 다만 그가 말한 이 여우 정령을 사랑한다. 이 때문에 게송을 냈다. 자 말해 보라 이 여우 정령(저본은 「단도(旦道)」로 되어 있으나 마땅히 「차도(且道)」여야 한다)와 장두백·해두흑(藏頭白海頭黑)과는 같은가 다른가. 이 옻칠 통아, 또 말했다. 좋은 스님이네. 자 말해 보라 같은가 다른가. 도리어 아는가, 닿는 곳마다 그를 만난다. 설두가 게송으로 말했다.
前箭猶輕後箭深(百發百中。向什麼處迴避)誰雲黃葉是黃金(且作止啼。瞞得小兒。也無用處)
앞 화살은 오히려 가볍고 뒤 화살이 깊네(백발백중. 어느 곳을 향하여 피하겠는가) 누가 말하기를 누른 잎이 황금이라 하랴(잠시 울음을 그치게 한다. 어린아이를 속여도 또한 쓸 곳이 없다)
曹溪波浪如相似(弄泥團漢有什麼限。依樣畫貓兒。放行一路)
조계(曹溪)의 물결이 서로 비슷하다면(진흙덩이를 가지고 노는 녀석이 무슨 한계가 있는가. 본따서 고양이를 그린다. 한 길을 놓아준다)
無限平人被陸沈(遇著活底人。帶累天下衲僧。摸索不著。帶累闍黎。出頭不得)
무한한 평범한 사람이 육지에 가라앉네(산 사람을 만나면 천하 납승을 폐하게 한다. 모색하여 닿지 못한다. 사려를 폐하게 하여 머리를 내밀지 못한다)
前箭猶輕後箭深。大光作舞。是前箭。復雲。這野狐精。是後箭。此是從上來爪牙。誰雲黃葉是黃金。仰山示眾雲。汝等諸人。各自迴光返照。莫記吾言。汝等無始劫來。背明投暗。妄想根深卒難頓拔。所以假設方便。奪汝麁識。如將黃葉止小兒啼。如將蜜果換苦葫蘆相似。古人權設方便為人。及其啼止。黃葉非金。世尊說一代時教。也只是止啼之說。這野狐精。只要換他業識。於中也有權實。也有照用。方見有衲僧巴鼻。若會得如虎插翼。曹溪波浪如相似。儻忽四方八面學者。只管大家如此作舞。一向恁麼。無限平人被陸沈。有什麼救處。
앞 화살은 오히려 가볍고 뒤 화살이 깊다. 대광이 춤을 춘 것은 이것이 앞 화살이요 다시 말한 이 여우 정령은 이것이 뒤 화살이다. 이것은 위로부터 전해온 발톱과 이빨이다. 누가 말하기를 누른 잎이 황금이라 하랴. 앙산이 대중에게 보여 말했다. 너희 여러 사람은 각자 빛을 돌이켜 비추고 나의 말을 기억하지 말라. 너희가 무시겁(無始劫) 이래로 밝음을 등지고 어두움에 들어가 망상의 뿌리가 깊어 마침내 단박에 뽑기 어려우니 이 때문에 임시로 방편을 베풀어 너의 거친 식(識)을 빼앗는다. 누른 잎을 가지고 어린아이의 울음을 그치게 하고 꿀 열매를 가지고 쓴 박을 바꾸는 것과 같다. 옛 사람은 임시로 방편을 베풀어 사람을 위하는 것이니 그 울음이 그침에 이르러 누른 잎은 금이 아니다. 세존이 설한 일대시교(一代時敎)도 또한 다만 울음을 그치게 하는 말이다. 이 여우 정령이란 다만 그의 업식(業識)을 바꾸고자 할 뿐이다. 그 가운데 또한 권실(權實)이 있고 또한 조용(照用)이 있어야 비로소 납승의 바비(巴鼻)가 있음을 본다. 만약 깨달을 수 있다면 호랑이에 날개를 꽂은 듯하다. 조계의 물결이 서로 비슷하다면이란 만약 홀연히 사방팔방의 배우는 이들이 다만 다 함께 이와 같이 춤을 추기만 하면 한결같이 이와 같이 되어 무한한 평범한 사람이 육지에 가라앉으니 무슨 구할 곳이 있겠는가.
垂示雲。聲前一句。千聖不傳。面前一絲。長時無間。淨裸裸赤灑灑。露地白牛。眼卓朔耳卓朔。金毛獅子。則且置。且道。作麼生是露地白牛。
수시한다. 소리 이전의 한 구절은 천 성인도 전하지 않고 눈앞의 한 올은 긴 시간에 끊어짐이 없다. 맑게 벌거벗고 산뜻하게 벌거벗었으니 노지(露地)의 흰 소는 눈이 빳빳하고 귀가 빳빳하다. 금모사자(金毛獅子)는 잠시 두어라. 자 말해 보라, 어떤 것이 노지의 흰 소인가.
【九四】舉。楞嚴經云。吾不見時。何不見吾不見之處(好箇消息。用見作什麼。釋迦老子漏逗不少)若見不見。自然非彼不見之相(咄。有甚閑工夫。不可教山僧作兩頭三面去也)若不見吾不見之地(向什麼處去也。釘鐵橛相似。咄)自然非物(按牛頭吃草。更說什麼口頭聲色)云何非汝(說爾說我總沒交涉。打雲。還見釋迦老子麼。爭奈古人不肯承當。打雲。腳跟下自家看取。還會麼)。
【제94칙】 들었다. 《능엄경(楞嚴經)》에 말하기를, 내가 보지 않을 때 어찌하여 나의 보지 않는 곳을 보지 않는가(좋은 소식이다. 봄을 써서 무엇 하는가. 석가 노자가 빈틈을 드러낸 것이 적지 않다). 만약 보지 않음을 본다면 자연히 저 보지 않음의 상이 아니며(차. 무슨 한가한 공부가 있는가. 산승으로 하여금 두 머리 세 얼굴을 짓게 해서는 안 된다) 만약 나의 보지 않는 자리를 보지 못한다면(어느 곳을 향하여 갔는가. 쇠말뚝을 박는 것과 같다. 차) 자연히 물이 아니다(소 머리를 눌러 풀을 먹인다. 더욱 무슨 입술의 빛깔과 소리를 말하는가) 어찌하여 네가 아닌가(너를 말하고 나를 말해도 도무지 상관이 없다. 내리치며 말한다. 도리어 석가 노자를 보는가. 어찌할 수 없이 옛 사람이 승당하려 하지 않는다. 내리치며 말한다. 발뒤꿈치 아래를 스스로 보아라. 도리어 깨닫는가).
楞嚴經云。吾不見時。何不見吾不見之處。若見不見。自然非彼不見之相。若不見吾不見之地。自然非物。云何非汝。雪竇到此。引經文不盡。全引則可見。經云。若見是物。則汝亦可見吾之見。若同見者。名為見吾。吾不見時。何不見吾不見之處。若見不見。自然非彼不見之相。若不見吾不見之地。自然非物。云何非汝。辭多不錄。阿難意道。世界燈籠露柱。皆可有名。亦要世尊指出此妙精元明。喚作什麼物。教我見佛意。世尊雲。我見香臺。阿難雲。我亦見香臺。即是佛見。世尊雲。我見香臺則可知。我若不見香臺時。爾作麼生見。阿難雲。我不見香臺時。即是見佛。佛雲。我雲不見。自是我知。汝雲不見。自是汝知。他人不見處。爾如何得知。古人云。到這裡。只可自知。與人說不得。只如世尊道。吾不見時。何不見吾不見之處。若見不見。自然非彼不見之相。若不見吾不見之地。自然非物。云何非汝。若道認見為有物。未能拂跡。吾不見時。如羚羊掛角。聲響蹤跡。氣息都絕。爾向什麼處摸索。經意初縱破。後奪破。雪竇出教眼頌。亦不頌物。亦不頌見與不見。直只頌見佛也。
《능엄경》에 말하기를, 내가 보지 않을 때 어찌하여 나의 보지 않는 곳을 보지 않는가. 만약 보지 않음을 본다면 자연히 저 보지 않음의 상이 아니며 만약 나의 보지 않는 자리를 보지 못한다면 자연히 물이 아니니 어찌하여 네가 아닌가 하였다. 설두가 여기에 이르러 경문을 다 끌지 않았다. 온전히 끌면 곧 볼 수 있다. 경에 말하기를, 만약 봄이 이것이 물이라면 곧 너도 또한 나의 봄을 볼 수 있고 만약 함께 보는 자이면 이름하여 나를 본다 한다. 내가 보지 않을 때 어찌하여 나의 보지 않는 곳을 보지 않는가. 만약 보지 않음을 본다면 자연히 저 보지 않음의 상이 아니며 만약 나의 보지 않는 자리를 보지 못한다면 자연히 물이 아니니 어찌하여 네가 아닌가. 말이 많아 기록하지 않는다. 아난(阿難)의 뜻은 말한다. 세계와 등롱과 노주는 모두 이름을 가질 수 있으니 또한 세존이 가리켜 이 묘정원명(妙精元明)이 무슨 물건이라 불리는지를 보여 주어 나를 가르쳐 부처의 뜻을 보게 하기를 원한다. 세존이 말했다. 나는 향대(香臺)를 본다. 아난이 말했다. 나도 또한 향대를 보니 곧 이것이 부처의 봄입니다. 세존이 말했다. 내가 향대를 보면 곧 알 수 있지만 내가 만약 향대를 보지 않을 때 너는 어떻게 보는가. 아난이 말했다. 내가 향대를 보지 않을 때 곧 이것이 부처를 보는 것입니다. 부처가 말했다. 내가 보지 않는다 함은 스스로 이것이 나의 앎이요 네가 보지 않는다 함은 스스로 이것이 너의 앎이니 남이 보지 않는 곳을 네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옛 사람이 말했다. 이곳에 이르러서는 다만 스스로 알 수 있고 남에게 말할 수 없다. 다만 세존이 말한 것과 같이 내가 보지 않을 때 어찌하여 나의 보지 않는 곳을 보지 않는가, 만약 보지 않음을 본다면 자연히 저 보지 않음의 상이 아니며 만약 나의 보지 않는 자리를 보지 못한다면 자연히 물이 아니니 어찌하여 네가 아닌가. 만약 봄을 알아채 물이 있다고 말한다면 아직 자취를 털지 못한다. 내가 보지 않을 때는 영양이 뿔에 걸린 것과 같아 소리와 울림과 자취와 숨결이 모두 끊어진다. 네가 어느 곳을 향하여 모색하겠는가. 경의 뜻은 처음은 종파(縱破)하고 뒤는 탈파(奪破)한다. 설두는 교안(教眼)을 내어 게송하되 또한 물을 게송하지 않고 또한 봄과 보지 않음을 게송하지 않고 곧 다만 부처를 봄을 게송한 것이다.
全象全牛瞖不殊(半邊瞎漢。半開半合。扶籬摸壁作什麼。一刀兩段)從來作者共名模(西天四七唐土二三。天下老和尚。如麻似粟。猶自少在)
온전한 코끼리도 온전한 소도 장막이 다르지 않네(반쪽 장님 녀석. 반은 열고 반은 닫는다. 울타리를 부여잡고 벽을 더듬어 무엇 하는가. 한 칼에 두 토막) 예로부터 작자는 이것이 본보기를 함께 하네(서천 사칠, 당토 이삼. 천하의 노화상이 삼화여속이다. 오히려 스스로 적은 데 있다)
如今要見黃頭老(咄。這老胡。瞎漢。在爾腳跟下)
지금 황두노(黃頭老)를 보고자 하면(차. 이 늙은 오랑캐. 장님 녀석. 너의 발뒤꿈치 아래에 있다)
剎剎塵塵在半途(腳跟下蹉過了也。更教山僧說什麼。驢年還曾夢見麼)
찰찰진진(刹刹塵塵)이 반도(半途)에 있네(발뒤꿈치 아래서 놓쳐 버렸다. 더욱 산승에게 무엇을 말하게 하는가. 나귀 해에도 도리어 꿈에 보았는가)
全象全牛瞖不殊。眾盲摸象。各說異端。出涅槃經。僧問仰山。和尚見人問禪問道。便作一圓相。於中書牛字。意在於何。仰山雲。這箇也是閑事。忽若會得。不從外來。忽若不會。決定不識。我且問爾。諸方老宿。於爾身上。指出那箇是爾佛性。為復語底是。默底是。莫是不語不默底是。為復總是。為復總不是。爾若認語底是。如盲人摸著象尾。若認默底是。如盲人摸著象耳。若認不語不默底是。如盲人摸著象鼻。若道物物都是。如盲人摸著象四足。若道總不是。拋本象落在空見。如是眾盲所見。只於象上名邈差別。爾要好。切莫摸象。莫道見覺是。亦莫道不是。祖師雲。菩提本無樹。明鏡亦無臺。本來無一物。爭得染塵埃。又云。道本無形相。智慧即是道。作此見解者。是名真般若。明眼人見象得其全體。如佛見性亦然。全牛者出莊子。庖丁解牛。未甞見其全牛。順理而解。遊刃自在。更不須下手。才舉目時。頭角蹄肉。一時自解了。如是十九年。其刀利如新發於硎。謂之全牛。雖然如此奇特。雪竇道。縱使得如此。全象全牛與眼中瞖更不殊。從來作者共名摸。直是作家。也去裡頭摸索不著。自從迦葉。乃至西天此土祖師。天下老和尚。皆只是名摸。雪竇直截道。如今要見黃頭老。所以道。要見即便見。更要尋覓方見。則千里萬裡也。黃頭老。乃黃面老子也。爾如今要見。剎剎塵塵在半途。尋常道。一塵一塵剎。一葉一釋迦。盡三千大千世界。所有微塵。只向一塵中見。當恁麼時。猶在半途。那邊更有半途在。且道在什麼處。釋迦老子。尚自不知。教山僧作麼生說得瞖(壹計切目疾)。
온전한 코끼리도 온전한 소도 장막이 다르지 않다. 뭇 장님이 코끼리를 더듬는다는 것은 각각 다른 끝을 말하는 것으로 《열반경》에서 나왔다. 스님이 앙산(仰山)에게 물었다. 화상은 사람이 선을 묻고 도를 묻는 것을 보시면 곧 한 원상(圓相)을 지어 그 가운데 우(牛) 자를 쓰시는데 뜻이 어디에 있습니까. 앙산이 말했다. 이것도 쓸데없는 일이니 문득 만약 깨달으면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요 문득 만약 깨닫지 못하면 결정하여 알지 못한다. 내가 잠시 너에게 묻겠다. 여러 곳의 노숙이 너의 몸 위에서 가리켜 저것이 너의 불성(佛性)이라 하는 것은 혹 말한 것이 옳은가 침묵한 것이 옳은가, 혹은 말하지도 침묵하지도 않는 것이 옳은가, 혹 모두 옳은가 혹 모두 옳지 않은가. 네가 만약 말한 것이 옳다고 알면 장님이 코끼리 꼬리를 만진 것과 같고 만약 침묵한 것이 옳다고 알면 장님이 코끼리 귀를 만진 것과 같으며 만약 말하지도 침묵하지도 않는 것이 옳다고 알면 장님이 코끼리 코를 만진 것과 같고 만약 물물이 모두 옳다고 말하면 장님이 코끼리 네 다리를 만진 것과 같으며 만약 모두 옳지 않다고 말하면 본래의 코끼리를 던져 허공의 견해에 떨어진다. 이와 같은 뭇 장님의 보는 바는 다만 코끼리 위에서 이름을 멀리하여 차별할 뿐이다. 네가 좋고자 하면 결단코 코끼리를 더듬지 말고 보고 깨닫는 것이 옳다고도 말하지 말며 또한 옳지 않다고도 말하지 말라. 조사가 말했다. 보리는 본래 나무가 없고 명경도 또한 대가 없으며 본래 한 물건도 없으니 어찌 티끌을 물들이겠는가. 또 말했다. 도는 본래 형상이 없고 지혜가 곧 도이니 이 견해를 짓는 자를 이름하여 참된 반야라 한다. 밝은 눈의 사람은 코끼리를 보아 그 전체를 얻으니 부처가 성품을 봄과 또한 같다. 전우(全牛)란 《장자(莊子)》에서 나온 것으로 포정(庖丁)이 소를 해체할 때 일찍이 그 온전한 소를 보지 않고 이치를 따라 해체하여 칼날을 놀려 자재하여 더욱 손을 댈 필요가 없다. 이제 막 눈을 들 때 머리·뿔·발굽·살이 일시에 저절로 풀린다. 이와 같이 십구 년에 그 칼이 날카로운 것이 숫돌에서 갓 갈아 낸 듯하여 전우라 불렀다. 비록 이와 같이 기특하지만 설두가 말한다. 설령 이와 같을 수 있어도 온전한 코끼리와 온전한 소는 눈 속의 장막과 더욱 다르지 않다. 예로부터 작자는 이것이 명색만을 함께 하여 곧바로 작가라도 머릿속에 가서 모색하여 닿지 못한다. 가섭(迦葉)으로부터 내지 서천과 이 땅의 조사, 천하의 노화상이 모두 다만 명색을 더듬을 뿐이다. 설두가 곧바로 말한다. 지금 황두노(黃頭老)를 보고자 하면. 이 때문에 말한다. 보고자 하면 곧 보라, 더욱 찾아 헤매야 비로소 보겠다 하면 곧 천 리 만 리다. 황두노란 곧 황면노자(黃面老子)이다. 네가 지금 보고자 하는 것이 찰찰진진이 반도에 있다. 평소에 말한다. 한 티끌이 한 티끌의 찰토(刹土)요 한 잎이 한 석가이며 삼천대천세계를 다하여 모든 미진을 다만 한 티끌 속을 향하여 본다. 이와 같은 때에 당하여 오히려 반도에 있고 저쪽에 더욱 반도가 있다. 자 말해 보라 어느 곳에 있는가. 석가 노자도 오히려 스스로 알지 못하니 산승에게 어떻게 말할 수 있게 하는가. 예(翳)(일계절[壹計切], 눈의 병).
垂示雲。有佛處不得住。住著頭角生。無佛處急走過。不走過。草深一丈。直饒淨裸裸赤灑灑。事外無機機外無事。未免守株待兔。且道總不恁麼。作麼生行履。試舉看。
수시한다. 부처 있는 곳에는 머물 수 없고 머물러 붙으면 머리와 뿔이 난다. 부처 없는 곳은 빨리 지나가라, 지나가지 않으면 풀이 일 길 깊다. 비록 맑게 벌거벗고 산뜻하게 벌거벗어 일 밖에 기(機)가 없고 기 밖에 일이 없어도 주주대토(守株待兔)를 면하지 못한다. 자 말해 보라 도무지 이와 같지 않을 때 어떤 행리(行履)인가. 시험 삼아 들어 보아라.
【九五】舉。長慶有時雲。寧說阿羅漢有三毒(焦糓不生芽)不說如來有二種語(已是謗釋迦老子了)不道如來無語(猶自顢頇。早是七穿八穴)只是無二種語(周由者也。說什麼第三第四種)保福雲。作麼生是如來語(好一拶。道什麼)慶雲。聾人爭得聞(望空啟告。七花八裂)保福雲。情知爾向第二頭道(爭瞞得明眼人。裂轉鼻孔。何止第二頭)慶雲。作麼生是如來語(錯。卻較些子)保福雲。吃茶去(領。復雲。還會麼。蹉過了也)。
【제95칙】 들었다. 장경(長慶)이 어떤 때 말했다. 차라리 아라한(阿羅漢)에게 삼독(三毒)이 있다고 말할지언정(타버린 곡식은 싹이 나지 않는다) 여래에게 두 가지 말이 있다고 말하지 말라(이미 석가 노자를 비방했다) 여래가 말이 없다고도 말하지 않는다(오히려 스스로 어물어물하다. 이미 일곱 번 뚫고 여덟 번 뚫렸다) 다만 두 가지 말이 없을 뿐이다(주유(周由)이다. 무슨 셋째 넷째 가지를 말하는가). 보복(保福)이 말했다. 무엇이 여래의 말입니까(한 번 부딪힘을 잘하라. 무엇을 말하는가). 장경이 말했다. 귀머거리가 어찌 들을 수 있겠습니까(허공을 바라보고 고한다. 일곱 조각 여덟 조각이 났다). 보복이 말했다. 정에 알건대 네가 제2두(第二頭)를 향하여 말하는구나(어찌 밝은 눈의 사람을 속일 수 있겠는가. 코뚜레를 찢어 돌린다. 어찌 제2두뿐이겠는가). 장경이 말했다. 무엇이 여래의 말입니까(틀렸다. 도리어 비교하여 낫다). 보복이 말했다. 차를 마시고 가라(영수했다. 다시 말한다. 도리어 깨닫는가. 놓쳐 버렸다).
長慶保福在雪峰會下。常互相舉覺商量。一日平常如此說話雲。寧說阿羅漢有三毒。不說如來有二種語。梵語阿羅漢。此雲殺賊。以功能彰名。能斷九九八十一品煩惱。諸漏已盡。梵行已立。此是無學阿羅漢位。三毒即是貪嗔痴。根本煩惱。八十一品。尚自斷盡。何況三毒。長慶道。寧說阿羅漢有三毒。不說如來有二種語。大意要顯如來無不實語。法華經云。唯此一事實。餘二則非真。又云。唯有一乘法。無二亦無三。世尊三百餘會。觀機逗教。應病與藥。萬種千般說法。畢竟無二種語。他意到這裡。諸人作麼生見得。佛以一音演說法。則不無長慶要且未夢見如來語在。何故大似人說食終不能飽。保福見他平地上說教遂問。作麼生是如來語。慶雲。聾人爭得聞。這漢知他幾時。在鬼窟裡作活計來也。保福雲。情知爾向第二頭道。果中其言。卻問師兄作麼生是如來語。福雲。吃茶去。鎗頭倒被別人奪卻了也。大小長慶。失錢遭罪。且問諸人。如來語還有幾箇。須知恁麼見得。方見這兩箇漢敗缺。子細檢點將來。盡合吃棒。放一線道與他理會。有底雲。保福道得是。長慶道得不是。只管隨語生解。便道有得有失。殊不知。古人如擊石火。似閃電光。如今人不去他古人轉處看。只管去句下走。便道長慶當時不便用。所以落第二頭。保福雲。吃茶去。便是第一頭。若只恁麼看。到彌勒下生。也不見古人意。若是作家。終不作這般見解。跳出這窠窟。向上自有一條路。爾若道聾人爭得聞有什麼不是處。保福雲吃茶去。有什麼是處。轉沒交涉。是故道。他參活句。不參死句。這因緣與遍身是通身是因緣一般。無爾計較是非處。須是爾腳跟下。淨裸裸地。方見古人相見處。五祖老師雲。如馬前相撲相似。須是眼辨手親。這箇公案。若以正眼觀之。俱無得失處。辨箇得失。無親疎處。分箇親疎。長慶也須禮拜保福始得。
장경과 보복은 설봉(雪峯) 회하에 있어 늘 서로 들어 일깨우고 상량했다. 어느 날 평소와 같이 이렇게 말하여 말했다. 차라리 아라한에게 삼독이 있다고 말할지언정 여래에게 두 가지 말이 있다고 말하지 말라. 범어로 아라한은 이른바 살적(殺賊)이니 공능(功能)으로써 이름을 드러낸다. 능히 구구팔십일품(九九八十一品)의 번뇌를 끊고 모든 누(漏)가 이미 다하며 범행(梵行)이 이미 섰으니 이것이 무학아라한위(無學阿羅漢位)이다. 삼독은 곧 탐·진·치(貪瞋癡)로서 근본 번뇌이다. 팔십일품도 오히려 스스로 다 끊었는데 하물며 삼독이겠는가. 장경이 말한 차라리 아라한에게 삼독이 있다고 말할지언정 여래에게 두 가지 말이 있다고 말하지 말라는 것은 대략 뜻이 여래에게 참되지 않은 말이 없음을 드러내고자 함이다. 《법화경(法華經)》에 말하기를, 다만 이 한 가지 일이 참이요 나머지 둘은 곧 참이 아니며, 또 말하기를 다만 일승법(一乘法)이 있을 뿐 둘도 없고 셋도 없다 하였다. 세존이 삼백여 회에 걸쳐 기(機)를 보고 교를 맞추고 병에 응하여 약을 주었으니 만 가지 천 가지로 법을 설했어도 필경 두 가지 말이 없다. 그의 뜻이 여기에 이른다. 여러 사람이 어떻게 볼 수 있겠는가. 부처가 한 소리로써 법을 연설하니 곧 장경을 없게 하지는 않으나 다만 아직 여래의 말을 꿈에도 보지 못한 데 있다. 무슨 까닭으로 크게 남이 밥을 말해도 끝내 배부르지 못함과 같은가. 보복이 그가 평지에서 교를 설함을 보고 마침내 물었다. 무엇이 여래의 말입니까. 장경이 말했다. 귀머거리가 어찌 들을 수 있겠습니까. 이 녀석은 그가 어느 때에 귀신굴 속에서 셈을 하러 왔는지를 안다. 보복이 말했다. 정에 알건대 네가 제2두를 향하여 말하는구나. 과연 그 말에 맞았다. 도리어 물었다. 사형은 무엇이 여래의 말이라 생각합니까. 보복이 말했다. 차를 마시고 가라. 창끝이 도리어 남에게 빼앗겨 버렸다. 대소(大小)의 장경이 돈을 잃고 죄를 입었다. 잠시 여러 사람에게 묻겠다. 여래의 말이 도리어 몇 개가 있는가.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이 보아야 비로소 이 두 사내의 허물을 본다. 자세히 검점하여 가져오면 모두 마땅히 방을 먹어야 한다. 한 줄기 길을 놓아 그와 함께 따져 보게 한다. 어떤 이는 말한다. 보복은 말한 것이 옳고 장경은 말한 것이 옳지 않다. 다만 말을 따라 해석을 내기만 하여 곧 말한다. 얻음과 잃음이 있다. 부득이 모르기를, 옛 사람은 돌을 쳐서 나는 불과 같고 번갯불과 같음을. 요즘 사람은 저 옛 사람이 돌리는 곳에 가서 보지 않고 다만 구절 아래에 가서 달려 곧 말한다. 장경이 그때 편하게 쓰지 못하여 이 때문에 제2두에 떨어졌고 보복이 말한 차를 마시고 가라가 곧 제1두라고. 만약 다만 이와 같이 보면 미륵이 하생하는 데 이르러도 또한 옛 사람의 뜻을 보지 못한다. 만약 이것이 작가라면 끝내 이와 같은 견해를 짓지 않고 이 굴을 뛰쳐나가면 향상에 스스로 한 줄기 길이 있다. 네가 만약 말하기를 귀머거리가 어찌 들을 수 있겠는가에 무슨 옳지 않은 곳이 있고 보복이 말한 차를 마시고 가라에 무슨 옳은 곳이 있는가 하면 도리어 상관이 없다. 이 때문에 말한다. 그는 활구를 참하고 사구를 참하지 않는다. 이 인연은 온몸이 그러하다 통신이 그러하다의 인연과 한가지로서 네가 계교하여 시비할 곳이 없다. 반드시 너의 발뒤꿈치 아래가 맑게 벌거벗은 자리여야 비로소 옛 사람이 서로 만난 곳을 본다. 오조 노사가 말했다. 말 앞의 씨름과 같으니 반드시 눈이 분별하고 손이 친하여야 한다. 이 공안을 만약 바른 눈으로써 보면 함께 득실의 곳이 없어 한 득실을 분별하고 친소(親疏)의 곳이 없어 한 친소를 가른다. 장경도 또한 반드시 보복에게 예배해야 비로소 된다.
何故這箇些子。巧處用得好。如電轉星飛相似。保福不妨牙上生牙。爪上生爪。頌雲。
(원오가 이어 말한다) 무슨 까닭으로 이 조금이 교묘한 곳에서 쓰임이 좋은가, 번개 돌고 별 날아가는 것과 같다. 보복은 거리낌 없이 이빨 위에 이빨을 내고 발톱 위에 발톱을 낸다. 게송으로 말했다.
頭兮第一第二(我王庫中無如是事。古今榜樣。隨邪逐惡作什麼)臥龍不鑒止水(同道方知)
머리를 들어 제1이니 제2니 하네(우리 임금의 창고에는 이와 같은 일이 없다. 고금의 본보기. 삿됨을 따라 악을 쫓아 무엇 하는가) 와룡(臥龍)은 고인 물을 비추지 않네(같은 길이어야 비로소 안다)
無處有月波澄(四海孤舟獨自行。徒勞卜度討什麼椀)
없는 곳에는 달 물결이 맑네(사해의 외로운 배가 홀로 스스로 간다. 부질없이 헤아려 무슨 사발을 구하는가)
有處無風浪起(嚇殺人。還覺寒毛卓竪麼。打雲來也)稜禪客稜禪客(勾賊破家。閙市裡莫出頭。失錢遭罪)
있는 곳에는 바람 없는데 물결이 일어나네(사람을 놀라 죽인다. 도리어 찬 털이 곤두섬을 느끼는가. 내리치며 말한다 왔구나) 날카로운 선객아 날카로운 선객아(도둑을 끌어들여 집을 망친다. 번화한 저자 속에 머리를 내밀지 말라. 돈을 잃고 죄를 입는다)
三月禹門遭點額(退己讓人。萬中無一。只得飲氣吞聲)
삼월에 우문(禹門)에서 이마에 점을 찍히네(자기를 물리고 남에게 양보한다. 만 명 중에 하나도 없다. 다만 기를 삼키고 소리를 삼킬 따름이다)
頭兮第一第二。人只管理會第一第二。正是死水裡作活計。這箇機巧。爾只作第一第二會。且摸索不著在。雪竇雲。臥龍不鑒止水。死水裡豈有龍藏。若是第一第二。正是止水裡作活計。須是洪波浩渺白浪滔天處。方有龍藏。正似前頭雲澄潭不許蒼龍蟠。不見道。死水不藏龍。又道。臥龍長怖碧潭清。所以道。無龍處有月波澄。風恬浪靜。有龍處無風起浪。大似保福道吃茶去。正是無風起浪。雪竇到這裡。一時與爾打疊情解頌了也。他有餘韻。教成文理。依前就裡頭。著一隻眼。也不妨奇特。卻道稜禪客稜禪客。三月禹門遭點額。長慶雖是透龍門底龍。卻被保福驀頭一點。
머리를 들어 제1이니 제2니 한다. 사람은 다만 제1이니 제2니를 따지기만 하니 바로 이것이 죽은 물 속에서 셈을 하는 것이다. 이 기교를 네가 다만 제1이니 제2니로 깨닫는다면 잠시 모색하여도 닿지 못하리라. 설두가 말한다. 와룡은 고인 물을 비추지 않는다, 죽은 물 속에 어찌 용이 숨는 것이 있겠는가. 만약 이것이 제1이니 제2니라면 바로 이것이 고인 물 속에서 셈을 하는 것이다. 반드시 넓은 물결이 아득하고 흰 물결이 하늘에 치솟는 곳이어야 비로소 용이 숨는 곳이 있다. 바로 앞에서 말한 맑은 못은 푸른 용이 서림을 허락하지 않는다와 같으니 보지 못했는가, 말하기를 죽은 물은 용을 품지 않는다, 또 말하기를 와룡은 늘 푸른 못이 맑음을 두려워한다 하였다. 이 때문에 말한다. 용 없는 곳에는 달 물결이 맑고 바람이 고요하고 물결이 잔잔하며 용 있는 곳은 바람 없는데 물결이 일어난다. 크게 보복이 말한 차를 마시고 가라와 같으니 바로 이것이 바람 없는데 물결을 일으킨 것이다. 설두가 여기에 이르러 일시에 너와 함께 정해(情解)를 잡아 정리하여 게송을 지었다. 그에게 여운이 있어 문리를 이루게 하여 여전히 머릿속에 한 눈을 둔다. 또한 기특함이 거리낌 없다. 도리어 말한다. 날카로운 선객아 날카로운 선객아, 삼월에 우문에서 이마에 점을 찍히네. 장경은 비록 용문을 뚫은 용이지만 도리어 보복의 덜컥 머리를 내리는 한 점을 당했다.
【九六】舉。趙州示眾三轉語(道什麼。三段不同)。
【제96칙】 들었다. 조주(趙州)가 대중에게 보인 세 가지 전어(轉語)(무엇을 말하는가. 세 단이 같지 않다).
趙州示此三轉語了。末後卻雲。真佛屋裡坐。這一句忒殺郎當。他古人出一隻眼。垂手接人。略藉此語。通箇消息。要為人。爾若一向正令全提。法堂前草深一丈。雪竇嫌他末後一句漏逗。所以削去。只頌三句。泥佛若渡水。則爛卻了也。金佛若渡鑪中。則鎔卻了也。木佛若渡火。便燒卻了也。有什麼難會。雪竇一百則頌古。計較葛藤。唯此三頌直下有衲僧氣息。只是這頌也不妨難會。爾若透得此三頌。便許爾罷參。
조주가 이 세 가지 전어를 보이고 나서 마지막에 도리어 말했다. 참된 부처는 집 안에 앉아 있다. 이 한 구절이 지나치게 낭당(郎當)하다. 저 옛 사람은 한 눈을 내어 손을 드리워 사람을 접하여 대략 이 말을 빌어 한 소식을 통하여 사람을 위하고자 한다. 네가 만약 한결같이 정령(正令)을 온전히 든다면 법당 앞에 풀이 일 길 깊으리라. 설두는 그의 마지막 한 구절이 빈틈을 드러냄을 싫어하여 이 때문에 깎아 버리고 다만 세 구절을 게송했다. 진흙 부처가 만약 물을 건너면 곧 흠뻑 젖어 버리고 금 부처가 만약 용광로를 건너면 곧 녹아 버리며 나무 부처가 만약 불을 건너면 곧 타 버린다. 무슨 깨닫기 어려운 것이 있는가. 설두의 일백 칙 송고(頌古)의 계교와 칡덩굴 가운데 오직 이 세 게송만이 곧바로 납승의 기식이 있다. 다만 이 게송도 또한 거리낌 없이 깨닫기 어렵다. 네가 만약 이 세 게송을 뚫을 수 있으면 곧 너에게 참을 그만둠을 허락하리라.
泥佛不渡水(浸爛鼻孔。無風起浪)神光照天地(幹他什麼事。見兔放鷹)
진흙 부처는 물을 건너지 못하네(코뚜레를 적셔 썩힌다. 바람 없는데 물결을 일으킨다) 신광(神光)이 천지를 비추네(그의 무슨 일과 상관인가. 토끼를 보고 매를 놓는다)
立雪如未休(一人傳虛萬人傳實。將錯就錯。阿誰曾見爾來)何人不雕偽(入寺看額。二六時中走上走下是什麼。闍黎便是)
눈 속에 섬이 아직 그치지 않은 듯하네(한 사람이 헛것을 전하면 만 사람이 참을 전한다. 그름을 가지고 그름에 따른다. 누가 일찍이 네가 옴을 보았는가) 누가 거짓을 새기지 않겠는가(절에 들어가 액자를 보아라. 하루 온종일 오르락내리락 뛰어다니는 것이 이것이 무엇인가. 사려가 곧 그것이다)
泥佛不渡水。神光照天地。這一句頌分明瞭。且道為什麼卻引神光。二祖初生時。神光燭室亙於霄漢。又一夕神人現。謂二祖曰。何久於此。汝當得道時至。宜即南之。二祖以神遇遂名神光。久居伊洛。博極群書。每嘆曰。孔老之教祖述風規。近聞達磨大師住少林。乃往彼晨夕參扣。達磨端坐面壁。莫聞誨勵。光自忖曰。昔人求道。敲骨出髓。刺血濟飢。布髮掩泥。投崖飼虎。古尚若此。我又何如。其年十二月九日夜大雪。二祖立於砌下。遲明積雪過膝。達磨憫之曰。汝立雪於此。當求何事。二祖悲淚曰。惟願慈悲開甘露門。廣度群品。達磨曰。諸佛妙道曠劫精勤。難行能行。非忍而忍。豈以小德小智輕心慢心。欲冀真乘。無有是處。二祖聞誨勵。向道益切。潛取利刀。自斷左臂。致於達磨前。磨知是法器。遂問曰。汝立雪斷臂。當為何事。二祖曰。某甲心未安。乞師安心。磨曰。將心來。與汝安。祖曰。覓心了不可得。達磨雲。與汝安心竟。後達磨為易其名曰慧可。後接得三祖燦大師。既傳法隱於舒州皖公山。屬後周武帝破滅佛法沙汰僧。師往來太湖縣司空山。居無常處。積十餘載無人知者。宣律師高僧傳。載二祖事不詳。三祖傳云。二祖妙法不傳於世。賴值末後依前悟他當時立雪。所以雪竇道。立雪如未休。何人不雕偽。立雪若未休。足恭諂詐之人皆效之。一時只成雕偽。則是諂詐之徒也。雪竇頌泥佛不渡水。為什麼。卻引這因緣來用。他參得意根下無一星事。淨裸裸地方頌得如此。五祖尋常教人看此三頌。豈不見洞山初和尚有頌示眾雲。五臺山上雲蒸飯。古佛堂前狗尿天。剎竿頭上煎䭔子。三箇胡孫夜簸錢。又杜順和尚道。懷州牛吃禾。益州馬腹脹。天下覓醫人。灸豬左膊上。又傅大士頌雲。空手把鋤頭。步行騎水牛。人從橋上過。橋流水不流。又云。石人機似汝。也解唱巴歌。汝若似石人。
진흙 부처는 물을 건너지 못한다, 신광이 천지를 비춘다. 이 한 구절 게송은 분명하다. 자 말해 보라 무슨 까닭으로 도리어 신광을 끌어오는가. 이조(二祖)가 처음 태어날 때 신령한 빛이 방을 밝혀 하늘에 걸쳤다. 또 어느 날 저녁 신인(神人)이 나타나 이조에게 이르기를, 어찌하여 오래 여기에 있는가, 너는 마땅히 도를 얻을 때가 이르렀으니 마땅히 곧 남쪽으로 가라 하였다. 이조가 신령에 만남으로 마침내 이름을 신광이라 하였다. 오래 이·낙(伊洛)에 살며 여러 책을 널리 다 익히고 늘 탄식하여 말했다. 공자·노자의 가르침은 옛 것을 계승한 풍규일 뿐이라 하며 가까이 듣건대 달마 대사가 소림(少林)에 계시다 하여 곧 저곳에 가서 아침저녁으로 참구했다. 달마가 단정히 앉아 벽을 향하니 가르치고 격려함을 듣지 못했다. 신광이 스스로 헤아려 말했다. 옛사람이 도를 구함은 뼈를 두드려 골수를 빼고 피를 찔러 굶주림을 구제하며 머리카락을 깔아 진흙을 덮고 절벽에 몸을 던져 호랑이를 먹였으니 옛날도 오히려 이와 같았는데 나는 또 어떠한가. 그 해 십이월 구일 밤에 큰 눈이 내려 이조가 섬돌 아래 서니 새벽에 이르러 쌓인 눈이 무릎을 넘었다. 달마가 그를 가련히 여겨 말했다. 네가 여기 눈 속에 서서 마땅히 무슨 일을 구하는가. 이조가 슬피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다만 바라건대 자비로 감로(甘露)의 문을 여시어 널리 뭇 중생을 건져 주옵소서. 달마가 말했다. 모든 부처의 묘도(妙道)는 광겁(曠劫)에 정근하여 어려운 행을 능히 행하고 참을 수 없음을 참나니 어찌 작은 덕과 작은 지혜, 가벼운 마음과 거만한 마음으로 참된 승(乘)을 바라겠는가. 그런 곳이 있을 수 없다. 이조가 가르치고 격려함을 듣고 도를 향함이 더욱 절실하여 몰래 날카로운 칼을 가져가 스스로 왼팔을 끊어 달마 앞에 놓았다. 달마가 이것이 법기(法器)임을 알고 마침내 물어 말했다. 네가 눈 속에 서서 팔을 끊으니 마땅히 무슨 일을 위함인가. 이조가 말했다. 모갑(某甲)의 마음이 아직 편안하지 않으니 스승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달마가 말했다. 마음을 가져오너라, 너에게 편안하게 해 주마. 이조가 말했다. 마음을 찾아보니 마침내 얻을 수 없습니다. 달마가 말했다. 너에게 편안하게 해 주기를 마쳤다. 뒤에 달마가 그의 이름을 고쳐 혜가(慧可)라 하였다. 뒤에 삼조 찬대사(璨大師)를 접하여 얻었으며 이미 법을 전한 뒤 서주(舒州) 완공산(皖公山)에 숨었다. 후주 무제(後周武帝)가 불법을 파멸하여 승려를 도태함에 당하여 스승은 태호현 사공산(司空山)을 왕래하여 사는 곳이 일정하지 않았다. 십여 년을 지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선율사(宣律師)의 《고승전(高僧傳)》에 이조의 일을 실었으나 상세하지 않다. 삼조전(三祖傳)에 말하기를, 이조는 묘법을 세상에 전하지 않았으나 다행히 마지막에 여전히 그가 그때 눈 속에 섰음을 깨달았다 하였다. 이 때문에 설두가 말한다. 눈 속에 섬이 아직 그치지 않은 듯하네, 누가 거짓을 새기지 않겠는가. 눈 속에 섬이 만약 그치지 않으면 발 공손하고 아첨하는 사람들이 모두 그것을 본받아 일시에 다만 거짓을 새기는 것이 되니 곧 이것이 아첨하는 무리다. 설두가 진흙 부처는 물을 건너지 못한다를 게송함에 무슨 까닭으로 도리어 이 인연을 끌어와 쓰는가. 그는 참하여 얻어 의근(意根) 아래 한 티끌의 일도 없이 맑게 벌거벗은 자리여서 비로소 이와 같이 게송할 수 있었다. 오조가 평소에 사람을 가르쳐 이 세 게송을 보게 했다. 어찌 보지 못했는가, 동산(洞山) 초화상(初和尙)에게 게송이 있어 대중에게 보여 말했다. 오대산 위에 구름이 밥을 찌고 옛 부처님 당 앞에 개가 하늘에 오줌을 누며 찰간(刹竿) 머리 위에서 경단을 삶고 세 마리 원숭이가 밤에 돈을 까부네. 또 두순(杜順) 화상이 말했다. 회주(懷州)의 소가 벼를 먹으면 익주(益州)의 말 배가 불러 천하에서 의원을 찾아 돼지 왼쪽 어깨 위를 지진다. 또 부대사(傅大士)가 게송하여 말했다. 빈손에 호미를 잡고 걸어서 물소를 타니 사람은 다리 위를 지나는데 다리는 흐르고 물은 흐르지 않네. 또 말했다. 돌 사람의 솜씨가 너와 같아 또한 파가(巴歌)를 부를 줄 아니 네가 만약 돌 사람과 같다면.
雪曲應須和。若會得此語。便會他雪竇頌足(將樹反過也)。
(원오가 이어 말한다) 눈의 가락에는 마땅히 화답해야 한다. 만약 이 말을 깨달을 수 있다면 곧 저 설두의 게송의 짝을 깨닫는다(나무를 가져다 거꾸로 한다. 허물이다).
金佛不渡罏(燎卻眉毛。天上天下唯我獨尊)人來訪紫胡(又恁麼去也。只恐喪身失命)
금 부처는 용광로를 건너지 못하네(눈썹을 태워 버린다. 천상천하 유아독존(唯我獨尊)) 사람이 와서 자호(紫胡)를 찾네(또 이와 같이 가버렸다. 다만 몸을 잃고 목숨을 잃을까 걱정이다)
牌中數箇字(不識字底貓兒也無話會處。天下衲僧插嘴不得。只恐喪身失命)
패(牌) 속의 몇 글자(글자를 모르는 고양이도 말해 깨달을 곳이 없다. 천하 납승이 주둥이를 들이댈 수 없다. 다만 몸을 잃고 목숨을 잃을까 걱정이다)
清風何處無(又恁麼去也。頭上漫漫腳下漫漫。又云來也)皖(戶版切明貌)
맑은 바람이 어느 곳에 없겠는가(또 이와 같이 가버렸다. 머리 위가 아득하고 발밑이 아득하다. 또 말해 왔다) 완(皖)(호판절[戶版切]. 밝은 모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