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공(원년~십팔년)
宋人使樂嬰齊告急於晉。晉侯欲救之。伯宗曰:“不可。古人有言曰:‘雖鞭之長,不及馬腹。’天方授楚,未可與爭。雖晉之強,能違天乎?諺曰:‘高下在心。’川澤納汙,山藪藏疾,瑾瑜匿瑕,國君含垢,天之道也,君其待之。”
송인이 악영제를 보내 진국에 위급을 알렸다. 진후가 구하려 했다. 백종이 말했다. '안 됩니다. 고인이 말하기를 「채찍이 비록 길어도, 말 배에 미치지 못한다」. 하늘이 바야흐로 운을 초국에 주니, 그와 다툴 수 없습니다. 비록 진국이 강해도, 능히 하늘을 어기겠습니까? 속언에 이르기를 「높고 낮음은 마음에 있다」. 천택이 더러움을 받아들이고, 산수가 병해를 감추고, 미옥이 흠을 감추고, 국군이 치욕을 품으니, 하늘의 상도이니, 군은 기다리소서.'
乃止。使解揚如宋,使無降楚,曰:“晉師悉起,將至矣。”鄭人囚而獻諸楚,楚子厚賂之,使反其言,不許,三而許之。登諸樓車,使呼宋人而告之。遂致其君命。楚子將殺之,使與之言曰:“爾既許不穀而反之,何故?非我無信,女則棄之,速即爾刑。”對曰:“臣聞之,君能制命為義,臣能承命為信,信載義而行之為利。謀不失利,以衛社稷,民之主也。義無二信,信無二命。君之賂臣,不知命也。受命以出,有死無霣,又可賂乎?臣之許君,以成命也。死而成命,臣之祿也。寡君有信臣,下臣獲考死,又何求?”楚子舍之以歸。
이에 그쳤다. 해양을 송국에 보내, 그들로 하여금 초국에 항복하지 말게 하며 말했다. '진군이 모두 일어나, 장차 이를 것이다.' 정인이 그를 포로로 잡아 초국에 바치니, 초자가 후례로 뇌물하여, 그로 하여금 말을 뒤집게 했으나, 허락하지 않다가, 세 번에야 허락했다. 그를 누거에 오르게 하여, 송인을 불러 그들에게 고하게 했다. 그가 이에 군의 명을 전했다. 초자가 그를 죽이려 하여, 사람을 보내 그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네가 이미 불곡에게 허락하고 뒤집었으니, 무슨 까닭인가? 내가 신이 없는 것이 아니요, 네가 그것을 버렸으니, 빨리 네 형에 가라.' 해양이 답했다. '신이 들으니, 군이 능히 명을 제정하는 것이 의요, 신이 능히 명을 받드는 것이 신이요, 신이 의를 싣고 행하는 것이 이입니다. 도모하여 이를 잃지 않아, 사직을 보위하는 것이 백성의 주입니다. 의에 두 신이 없고, 신에 두 명이 없습니다. 군이 신에게 뇌물하는 것은 명을 모르는 것입니다. 명을 받들고 나서는, 죽어도 버리지 않는데, 또 뇌물을 줄 수 있겠습니까? 신이 군에게 허락한 것은 명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죽어 명을 이루는 것은 신의 복록입니다. 과군이 신을 지키는 신이 있고, 하신이 선종을 얻었으니, 또 무엇을 구하겠습니까?' 초자가 그를 놓아 돌아가게 했다.
夏五月,楚師將去宋。申犀稽首於王之馬前,曰:“毋畏知死而不敢廢王命,王棄言焉。”王不能答。申叔時僕,曰:“築室反耕者,宋必聽命。”從之。宋人懼,使華元夜入楚師,登子反之床,起之曰:“寡君使元以病告,曰:‘敝邑易子而食,析骸以爨。雖然,城下之盟,有以國斃,不能從也。去我三十里,唯命是聽。’”子反懼,與之盟而告王。退三十里。宋及楚平,華元為質。盟曰:“我無爾詐,爾無我虞。”
하(夏) 오월, 초군이 장차 송국을 떠나려 했다. 신서가 초왕의 말 앞에서 머리를 조아려 말했다. '무외가 죽을 줄 알면서도 감히 왕명을 폐하지 않았는데, 왕이 언약을 버렸습니다.' 초왕이 답할 수 없었다. 신숙시가 수레를 몰며 말했다. '집을 지어, 밭 가는 자를 돌려내면, 송국이 반드시 명을 들을 것입니다.' 따랐다. 송인이 두려워하여, 화원을 보내 밤에 초군에 들어가, 자반의 상에 올라, 그를 깨워 말했다. '과군이 원을 보내 곤궁을 그대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폐읍이 아들을 바꾸어 먹고, 해골을 쪼개어 밥을 짓습니다. 비록 그러하나, 성하의 맹약은, 나라가 멸함이 있더라도, 능히 따르지 못합니다. 우리를 삼십 리를 떠나면, 오직 명을 따르겠습니다」.' 자반이 두려워하여, 그와 맹약하고 초왕에게 보고했다. 삼십 리를 물러났다. 송국이 초국과 화의하여, 화원이 인질이 되었다. 맹사에 말하기를 '내가 너를 속이지 않고, 네가 나를 속이지 않는다.'
潞子嬰兒之夫人,晉景公之姊也。酆舒為政而殺之,又傷潞子之目。晉侯將伐之,諸大夫皆曰:“不可。酆舒有三俊才,不如待後之人。”伯宗曰:“必伐之。狄有五罪,俊才雖多,何補焉?不祀,一也。耆酒,二也。棄仲章而奪黎氏地,三也。虐我伯姬,四也。傷其君目,五也。怙其俊才,而不以茂德,茲益罪也。後之人或者將敬奉德義以事神人,而申固其命,若之何待之?不討有罪,曰將待後,後有辭而討焉,毋乃不可乎?夫恃才與眾,亡之道也。商紂由之,故滅。
노자 영아의 부인은 진경공의 누이다. 풍서가 집정하면서 그녀를 죽이고, 또 노자의 눈을 상하게 했다. 진후가 장차 치려 하니, 대부들이 모두 말했다. '안 됩니다. 풍서에게 세 가지 뛰어난 재능이 있으니, 뒤의 사람을 기다리는 것만 못합니다.' 백종이 말했다. '반드시 쳐야 합니다.적인에게 다섯 가지 죄가 있으니, 뛰어난 재능이 비록 많아도 무슨 보탬이 있겠습니까? 제사하지 않는 것이 하나요, 술을 좋아하는 것이 둘이요, 중장을 버리고 여씨의 땅을 빼앗은 것이 셋이요, 우리 백희를 학대한 것이 넷이요, 그 군의 눈을 상하게 한 것이 다섯입니다. 그의 뛰어난 재능을 의지하면서, 무성한 덕을 쓰지 않으니, 이는 더욱 죄를 더하는 것입니다. 뒤의 사람이 혹 덕의를 경봉하여 신인을 섬기고, 또 그의 명을 신고할 것이니, 무엇을 기다리겠습니까? 죄 있는 자를 토하지 않고, 장차 뒤를 기다린다 하여, 뒤에 말이 있어 다시 토하면, 아마 안 될 것입니다. 재능과 사람 많음을 의지하는 것은 망하는 도입니다. 상주가 이로 말미암아, 멸했습니다.
天反時為災,地反物為妖,民反德為亂,亂則妖災生。故文反正為乏。盡在狄矣。”
(백종이 이어 말하기를) 하늘이 시절을 어기면 재요, 땅이 물성을 어기면 요요, 사람이 덕을 어기면 난이요, 어지러우면 요재가 생깁니다. 그러므로 글자를 거꾸로 쓰면 「정」이 「핍」이 됩니다. 이것들이 다적인에게 있습니다.'
晉侯從之。六月癸卯,晉荀林父敗赤狄於曲梁。辛亥,滅潞。酆舒奔衛,衛人歸諸晉,晉人殺之。
진후가 따랐다. 륙월 계묘, 진국 순임보가 곡량에서 적적을 깨뜨렸다. 신해(辛亥), 노를 멸했다. 풍서가 위국으로 도망치니, 위인이 그를 진국에 돌려보내니, 진인이 그를 죽였다.
王孫蘇與召氏、毛氏爭政,使王子捷殺召戴公及毛伯衛。卒立召襄。
왕손소가 소씨・모씨와 집정을 다투어, 왕자 첩을 보내 소대공과 모백 위를 죽였다. 마침내 소양을 세웠다.
秋七月,秦桓公伐晉,次於輔氏。壬午,晉侯治兵於稷以略狄土,立黎侯而還。及洛,魏顆敗秦師於輔氏。獲杜回,秦之力人也。
추(秋) 칠월, 진환공이 진국을 쳐서, 보씨에 주둔했다. 임오(壬午), 진후가 직에서 병을 연습하여적인의 땅을 경략하고, 여후를 세운 뒤 돌아왔다. 낙에 이르러, 위과가 보씨에서 진군을 깨뜨렸다. 두회를 사로잡았으니, 진국의 역사이다.
初,魏武子有嬖妾,無子。武子疾,命顆曰:“必嫁是。”疾病,則曰:“必以為殉。”及卒,顆嫁之,曰:“疾病則亂,吾從其治也。”及輔氏之役,顆見老人結草以亢杜回,杜回躓而顛,故獲之。夜夢之曰:“餘,而所嫁婦人之父也。爾用先人之治命,餘是以報。”
옛날 위무자에게 총첩이 있었는데, 아들이 없었다. 무자가 병이 들어, 과에게 명하여 말했다. '반드시 그녀를 출가시켜라.' 병이 중해지자, 말했다. '반드시 그녀로 순장하게 하라.' 죽자, 과가 그녀를 출가시키며 말했다. '병이 중하면 혼란하니, 나는 그가 청성할 때의 명을 따른다.' 보씨의 싸움에 이르러, 과가 한 노인이 풀을 엮어 두회를 가로막는 것을 보니, 두회가 걸려 넘어져, 이로써 그를 사로잡았다. 밤에 노인이 꿈에 말했다. '나는 네가 출가시킨 그 부인의 아비이다. 네가 선인의 청성할 때의 명을 썼으니, 나는 이로써 보답한다.'
晉侯賞桓子狄臣千室,亦賞士伯以瓜衍之縣。曰:“吾獲狄土,子之功也。
진후가 환자에게적인의 신하 천 가를 상으로 주고, 또 사백에게 과연의 현을 상으로 주며 말했다. '내가적인의 땅을 얻은 것은 그대의 공이다.
微子,吾喪伯氏矣。”羊舌職說是賞也,曰:“《周書》所謂‘庸庸祗祗’者,謂此物也夫。士伯庸中行伯,君信之,亦庸士伯,此之謂明德矣。文王所以造周,不是過也。故《詩》曰:‘陳錫哉周。’能施也。率是道也,其何不濟?”晉侯使趙同獻狄俘於周,不敬。劉康公曰:“不及十年,原叔必有大咎,天奪之魄矣。”
(진후가 이어 말하기를) 그대가 없었다면, 내가 백씨를 잃었을 것이다.' 양설직이 이 상을 기뻐하여 말했다. '『주서』의 이른바 「쓸 만한 자를 쓰고, 경할 만한 자를 경한다」는 이 류의 일을 말한 것이리라. 사백이 중행백을 쓸 만하다고 여기고, 군이 그를 믿고, 또 사백을 쓸 만하다고 여기니, 이를 명덕이라 한다. 문왕이 주를 일으킨 까닭도 이보다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시』에 이르기를 「베풀어 줌이여 주를 이루네」 하니, 능히 베푸는 것이다. 이 도를 따르면, 무엇이 이루어지지 않겠습니까?' 진후가 조동을 보내 주실에적인 포로를 바치게 했는데, 공경하지 않았다. 유강공이 말했다. '십 년을 지나지 않아, 원숙이 반드시 큰 재앙이 있을 것이니, 하늘이 그의 백혼을 빼앗았다.'
初稅畝,非禮也。谷出不過藉,以豐財也。
비로소 전무에 세를 거둔 것은 예에 맞지 않다. 곡량의 거둠이 차법을 넘지 않는 것은 재용을 풍식하기 위함이다.
冬,蝝生,飢。幸之也。
동(冬), 연이 생기고, 기근이 들었다. 『춘추』가 이렇게 쓴 것은 그것을 다행으로 여긴 것이다.
◇宣公十六年
◇선공 십륙년
【經】十有六年春王正月。晉人滅赤狄甲氏及留籲。夏,成周宣榭火。秋,郯伯姬來歸。冬,大有年。
【경】십륙년 춘(春), 왕 정월. 진인이 적적 갑씨와 유우를 멸했다. 하(夏), 성주 선사에 불이 났다. 추(秋), 담백희가 돌아왔다. 동(冬), 크게 풍년이 들었다.
【傳】十六年春,晉士會帥師滅赤狄甲氏及留籲、鐸辰。
【전】십륙년 춘(春), 진국 사회가 군대를 이끌고 적적 갑씨와 유우・탁진을 멸했다.
三月,獻狄俘。晉侯請於王。戊申,以黻冕命士會將中軍,且為大傅。於是晉國之盜逃奔於秦。羊舌職曰:“吾聞之,‘禹稱善人,不善人遠’,此之謂也夫。《詩》曰:‘戰戰兢兢,如臨深淵,如履薄冰。’善人在上也。善人在上,則國無幸民。諺曰:‘民之多幸,國之不幸也。’是無善人之謂也。”
삼월,적인 포로를 바쳤다. 진후가 천자에게 청했다. 무신(戊申), 불면으로 사회를 명하여 중군을 이끌게 하고, 또 태부로 삼았다. 이에 진국의 도적이 진국으로 도망쳤다. 양설직이 말했다. '내가 들으니 「우가 어진 이를 추천하면, 어질지 않은 사람이 멀어진다」 하니, 이를 말한 것이리라. 『시』에 이르기를 「전전긍긍하며, 깊은 연못을 임한 듯, 얇은 얼음을 밟은 듯 하네」 하니, 어진 이가 상위에 있는 것이다. 어진 이가 상위에 있으면, 나라에 요행하는 백성이 없다. 속언에 이르기를 「백성이 요행이 많으면, 나라의 불행이다」 하니, 곧 어진 이가 없음을 말한 것이다.'
夏,成周宣榭火,人火之也。凡火,人火曰火,天火曰災。
하(夏), 성주 선사에 불이 났으니, 사람이 낸 불이다. 무릇 불은, 사람이 낸 것을 「화」라 하고, 하늘이 내린 것을 「재」라 한다.
秋,郯伯姬來歸,出也。
추(秋), 담백희가 돌아온 것은 출당한 것이다.
為毛、召之難故,王室復亂。王孫蘇奔晉,晉人復之。
모씨・소씨의 환난의 까닭으로, 왕실이 다시 어지러워졌다. 왕손소가 진국으로 도망치니, 진인이 그를 돌려보내 복위시켰다.
冬,晉侯使士會平王室,定王享之,原襄公相禮,殽烝。武子私問其故。王聞之,召武子曰:“季氏,而弗聞乎?王享有體薦,宴有折俎。公當享,卿當宴,王室之禮也。”武子歸而講求典禮,以修晉國之法。
동(冬), 진후가 사회를 보내 왕실을 조정하게 하니, 정왕이 향례로 그를 대접하고, 원양공이 상례하여, 뼈 있는 고기를 올렸다. 무자가 사사로이 그 까닭을 물었다. 천자가 듣고, 무자를 불러 말했다. '계씨여, 네가 듣지 못했는가? 천자의 향례에는 반해의 생체가 있고, 연례에는 절단된 조육이 있다. 공은 향을 마땅하고, 경은 연을 마땅하니, 왕실의 예이다.' 무자가 돌아와 전례를 강구하여, 진국의 법도를 닦아 밝혔다.
◇宣公十七年
◇선공 십칠년
【經】十有七年春王正月庚子,許男錫我卒。丁未,蔡侯申卒。夏,葬許昭公。葬蔡文公。六月癸卯,日有食之。己未,公會晉侯、衛侯、曹伯、邾子同盟於斷道。秋,公至自會。冬十有一月壬午,公弟叔肸卒。
【경】십칠년 춘(春), 왕 정월 경자(庚子), 허남 석아(錫我)가 죽었다. 정미(丁未), 채후 신(申)이 죽었다. 하(夏), 허소공을 장사했다. 채문공을 장사했다. 륙월 계묘(癸卯), 일식이 있었다. 기미(己未), 선공이 진후・위후・조백・저자와 단도에서 함께 맹약했다. 추(秋), 선공이 회에서 돌아왔다. 동(冬) 십일월 임오(壬午), 선공의 아우 숙힐(叔肸)이 죽었다.
【傳】十七年春,晉侯使郤克徵會於齊。齊頃公帷婦人,使觀之。郤子登,婦人笑於房。獻子怒,出而誓曰:“所不此報,無能涉河。”獻子先歸,使欒京廬待命於齊,曰:“不得齊事,無覆命矣。”郤子至,請伐齊,晉侯弗許。請以其私屬,又弗許。
【전】십칠년 춘(春), 진후가 극극을 보내 제국에 회견 참여를 징하게 했다. 제경공이 장막으로 부인을 가려 그녀로 하여금 보게 했다. 극자가 당에 오르니, 부인이 방에서 웃었다. 헌자가 노하여, 나와 맹서하여 말했다. '만약 이 원수를 갚지 않으면, 능히 다시 황하를 건너지 않겠다.' 헌자가 먼저 돌아가, 난경려를 제국에 머물러 명을 기다리게 하며 말했다. '제국의 일을 이루지 못하면, 복명하지 마라.' 극자가 이르러, 제국을 치기를 청하니, 진후가 허락하지 않았다. 자기의 사속으로 청하니, 또 허락하지 않았다.
齊侯使高固、晏弱、蔡朝、南郭偃會。及斂盂,高固逃歸。夏,會於斷道,討貳也。盟於卷楚,辭齊人。晉人執晏弱於野王,執蔡朝於原,執南郭偃於溫。
제후가 고고・안약・채조・남곽언을 보내 회견에 참여하게 했다. 렴우에 이르러, 고고가 도망쳐 돌아갔다. 하(夏), 단도에서 회견한 것은 이심한 자를 토한 것이다. 권초에서 맹약하고, 제인을 물렸다. 진인이 야왕에서 안약을 잡고, 원에서 채조를 잡고, 온에서 남곽언을 잡았다.
苗賁皇使,見晏桓子,歸,言於晉侯曰:“夫晏子何罪?昔者諸侯事吾先君,皆如不逮,舉言群臣不信,諸侯皆有貳志。齊君恐不得禮,故不出,而使四子來。
묘분황이 사신으로 가서, 안환자를 보고, 돌아와 진후에게 말했다. '저 안자가 무슨 죄입니까? 옛날 제후가 우리 선군을 섬길 때, 모두 미치지 못하는 듯하여, 모두 군신이 신을 지키지 않는다고 말하고, 제후가 모두 이심이 있었습니다. 제군이 아마 예를 얻지 못할까 두려워하여, 나오지 않고, 네 사람을 보낸 것입니다.
左右或沮之,曰:‘君不出,必執吾使。’故高子及斂盂而逃。夫三子者曰:‘若絕君好,寧歸死焉。’為是犯難而來,吾若善逆彼以懷來者。吾又執之,以信齊沮,吾不既過矣乎?過而不改,而又久之,以成其悔,何利之有焉?使反者得辭,而害來者,以懼諸侯,將焉用之?”晉人緩之,逸。
(묘분황이 이어 말하기를) 좌우에 어떤 자가 말려 말하기를 「군이 나오지 않으면, 반드시 우리 사자를 잡을 것이다」. 그러므로 고자가 렴우에 이르러 도망쳤습니다. 저 세 사람이 말하기를 「만약 군의 우호를 끊으면, 차라리 돌아가 죽겠다」. 이를 위해 환난을 범하고 왔습니다. 우리가 마땅히 그들을 잘 맞이하여 오는 자를 어루만져야 합니다. 우리가 또 그들을 잡아, 제인의 말림이 사실임을 증명하면, 우리가 이미 잘못한 것이 아닙니까? 잘못하고 고치지 않고, 또 오래 지연하여, 그들로 하여금 후회가 이루어지게 하면,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도망쳐 돌아간 자로 하여금 말할 것이 있게 하면서, 온 자를 해쳐, 제후를 두렵게 하면, 무엇을 쓰겠습니까?' 진인이 간수를 느슨하게 하니, 그들이 도망쳤다.
秋八月,晉師還。
추(秋) 팔월, 진군이 돌아왔다.
範武子將老,召文子曰:“燮乎!吾聞之,喜怒以類者鮮,易者實多。《詩》曰:‘君子如怒,亂庶遄沮;君子如祉,亂庶遄已。’君子之喜怒,以已亂也。
범무자가 장차 고로하여, 문자를 불러 말했다. '섭아! 내가 들으니, 희로가 일의 종류에 합하는 자가 적고, 상도를 바꾸는 자가 실로 많다. 『시』에 이르기를 「군자가 노하면, 어지러움이 아마 곧 그치고; 군자가 기뻐하면, 어지러움이 아마 곧 끝나리라」. 군자의 희로는 어지러움을 그치게 하는 데 있다.
弗已者,必益之。郤子其或者欲已亂於齊乎?不然,餘懼其益之也。餘將老,使郤子逞其志,庶有豸乎?爾從二三子唯敬。”乃請老,郤獻子為政。
(범무자가 이어 말하기를) 그치지 못하면, 반드시 그것을 더한다. 극자가 혹 제국에서 어지러움을 그치게 하려 하는가? 그렇지 않으면, 내가 그가 어지러움을 더할까 두렵다. 내가 장차 고로하여, 극자로 하여금 그의 뜻을 펼치게 하면, 아마 풀림이 있을까? 네가 저 여러분을 따르되, 오직 공경하라.' 이에 고로를 청하고, 극헌자가 집정했다.
冬,公弟叔肸卒。公母弟也。凡大子之母弟,公在曰公子,不在曰弟。凡稱弟,皆母弟也。
동(冬), 선공의 아우 숙힐이 죽었다. 선공의 동모제이다. 무릇 태자의 동모제는, 군이 있으면 공자라 하고, 없으면 제라 한다. 무릇 제라 칭하는 것은 모두 동모제이다.
◇宣公十八年
◇선공 십팔년
【經】十有八年春,晉侯、衛世子臧伐齊。公伐杞。夏四月。秋七月,邾人伐鄫子於鄫。甲戌,楚子旅卒。公孫歸父如晉。冬十月壬戌,公薨於路寢。
【경】십팔년 춘(春), 진후・위세자 장이 제국을 쳤다. 선공이 기국을 쳤다. 하(夏) 사월. 추(秋) 칠월, 저인이 증에서 증자를 살해했다. 갑술(甲戌), 초자 여(旅)가 죽었다. 공손귀보가 진국에 갔다. 동(冬) 시월 임술(壬戌), 선공이 로침에서 죽었다.
歸父還自晉,至笙。遂奔齊,
귀보가 진국에서 돌아와, 생에 이르렀다. 이에 제국으로 도망쳤다.
【傳】十八年春,晉侯、衛大子臧伐齊,至於陽穀。齊侯會晉侯盟於繒,以公子強為質於晉。晉師還,蔡朝、南郭偃逃歸。
【전】십팔년 춘(春), 진후・위태자 장이 제국을 쳐서, 양곡에 이르렀다. 제후가 진후와 회견하여, 증에서 맹약하고, 공자 강을 인질로 삼아 진국에 보냈다. 진군이 돌아가니, 채조・남곽언이 도망쳐 돌아갔다.
夏,公使如楚乞師,欲以伐齊。
하(夏), 선공이 사람을 초국에 보내 출병을 구하여, 이로써 제국을 치려 했다.
秋,邾人戕鄫子於鄫。凡自虐其君曰弒,自外曰戕。
추(秋), 저인이 증에서 증자를 살해했다. 무릇 안에서 그 군주를 학살하는 것을 「시」라 하고, 밖에서 하는 것을 「장」이라 한다.
楚莊王卒。楚師不出,既而用晉師,楚於是乎有蜀之役。
초장왕이 죽었다. 초군이 출동하지 않으니, 뒤에 진군을 써서, 초국이 이에 촉의 싸움이 있었다.
公孫歸父以襄仲之立公也,有寵,欲去三桓以張公室。與公謀而聘於晉,欲以晉人去之。冬,公薨。季文子言於朝曰:“使我殺適立庶以失大援者,仲也夫。”
공손귀보는 양중이 선공을 세웠기 때문에, 총애를 얻어, 삼환을 제거하여 공실을 부흥하고자 했다. 선공과 의논한 뒤 진국에 빙하여, 진인을 빌어 그들을 제거하려 했다. 동(冬), 선공이 죽었다. 계문자가 조정에서 말했다. '우리로 하여금 적을 죽이고 서를 세워 큰 원조를 잃게 한 자는 중(仲)이다.'
臧宣叔怒曰:“當其時不能治也,後之人何罪?子欲去之,許請去之。”遂逐東門氏。子家還,及笙,壇帷,覆命於介。既覆命,袒、括髮,即位哭,三踴而出。
장선숙이 노하여 말했다. '그가 있을 때 능히 징치하지 못했는데, 뒤의 사람이 무슨 죄입니까? 그대가 그들을 제거하려면, 허로 하여금 제거하게 하소서.' 이에 동문씨를 내쫓았다. 자가가 돌아와, 생에 이르러, 단을 쌓고 장막을 치고, 부사에게 복명했다. 복명을 마친 뒤, 옷을 벗고 삼으로 머리를 묶고, 자리에 나아가 울며, 세 번 뛰고 나갔다.
遂奔齊。書曰“歸父還自晉。”善之也。
이에 제국으로 도망쳤다. 『춘추』가 기록하기를 「귀보가 진에서 돌아왔다」 한 것은 그를 칭허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