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bo

문공(원년~십팔년)

春秋 · 左丘明(旧题) · 제19권 / 56

鄋瞞侵齊。遂伐我。公卜使叔孫得臣追之,吉。侯叔夏御莊叔,綿房甥為右,富父終甥駟乘。冬十月甲午,敗狄於鹹,獲長狄僑如。富父終甥摏其喉以戈,殺之,埋其首於子駒之門,以命宣伯。

수만(鄋瞞)이 제국을 침범하고, 이어서 우리나라를 쳤다. 문공이 숙손득신을 보내 뒤쫓게 할 것을 점치니, 길했다. 후숙하가 장숙의 수레를 몰고, 면방생이 거우이고, 부부종생이 인승이었다. 동(冬) 시월 갑오, 함에서적인을 깨뜨려, 장적 여여(僑如)를 사로잡았다. 부부종생이 과로 그의 인후를 쳐서, 그를 죽이고, 그의 머리를 자구지문에 묻고, 그의 이름으로 선백의 이름을 지었다.

初,宋武公之世,鄋瞞伐宋,司徒皇父帥師御之,耏班御皇父充石,公子谷甥為右,司寇牛父駟乘,以敗狄於長丘,獲長狄緣斯,皇父之二子死焉。宋公於是以門賞耏班,使食其徵,謂之耏門。晉之滅潞也,獲僑如之弟焚如。

옛날 송무공 때, 수만이 송국을 치니, 사도 황부가 군대를 이끌고 막았는데, 내반이 황부 충석의 수레를 몰고, 공자 곡생이 거우이고, 사구 우부가 인승이었다. 장구에서적인을 깨뜨려, 장적 연사를 사로잡았는데, 황부의 두 아들이 거기서 죽었다. 송공이 이에 성문을 내반에게 상으로 주어, 그로 하여금 그곳의 세금을 누리게 하니, 내문이라 불렀다. 진국이 노를 멸할 때, 여여의 아우 분여를 사로잡았다.

齊襄公之二年,鄋瞞伐齊,齊王子成父獲其弟榮如,埋其首於周首之北門。衛人獲其季簡如,鄋瞞由是遂亡。

제양공 이년, 수만이 제국을 치니, 제국 왕자 성부가 그의 아우 영여를 사로잡아, 그의 머리를 주수의 북문에 묻었다. 위인이 그들의 막내 간여를 사로잡으니, 수만이 이로써 멸했다.

郕大子朱儒自安於夫鍾,國人弗徇。

성국 태자 주유가 스스로 부종에 안거하니, 국도 사람이 따르지 않았다.

◇文公十二年

◇문공 십이년

【經】十有二年春王正月,郕伯來奔。杞伯來朝。二月庚子,子叔姬卒。

【경】십이년 춘(春), 왕 정월, 성백이 와서 투신했다. 기백이 와서 조했다. 이월 경자(庚子), 자숙희가 죽었다.

夏,楚人圍巢。秋,滕子來朝。秦伯使術來聘。冬十有二戊午,晉人、秦人戰於河曲。季孫行父帥師城諸及鄆。

하(夏), 초인이 소국을 포위했다. 추(秋), 등자가 와서 조했다. 진백이 술을 보내 와서 빙했다. 동(冬) 십이월 무오(戊午), 진인이 진인과 하곡에서 싸웠다. 저본 「십유이」 아래에 「월」이 탈했다. 계손행보가 군대를 이끌고 제와 운의 성을 쌓았다.

【傳】十二年春,郕伯卒,郕人立君。大子以夫鍾與郕邽來奔。公以諸侯逆之,非禮也。故書曰:“郕伯來奔。”不書地,尊諸侯也。

【전】십이년 춘(春), 성백이 죽으니, 성인이 다른 군주를 세웠다. 태자가 부종과 성규를 가지고 와서 투신했다. 문공이 제후를 대하는 예로 그를 맞았으니, 예에 맞지 않다. 그러므로 『춘추』가 기록하기를 「성백이 와서 투신했다」 한 것이다. 토지를 기록하지 않은 것은 제후를 존중한 것이다.

杞桓公來朝,始朝公也。且請絕叔姬而無絕昏,公許之。

기환공이 와서 조한 것은 문공에게 처음 조한 것이다. 또한 숙희와의 관계를 끊되 혼인의 나라를 끊지 않기를 청하니, 문공이 허락했다.

二月,叔姬卒,不言杞,絕也。書叔姬,言非女也。

이월, 숙희가 죽었는데, 기를 칭하지 않은 것은 이미 끊겼기 때문이다. 숙희를 기록한 것은 그녀가 미혼의 여자가 아님을 말한 것이다.

楚令尹大孫伯卒,成嘉為令尹。群舒叛楚。夏,子孔執舒子平及宗子,遂圍巢。

초국 영윤 대손백이 죽고, 성가가 영윤이 되었다. 군서가 초국을 배반했다. 하(夏), 자공이 서자 평과 종자를 잡아, 이에 소국을 포위했다.

秋,滕昭公來朝,亦始朝公也。

추(秋), 등소공이 와서 조했으니, 이 또한 문공에게 처음 조한 것이다.

秦伯使西乞術來聘,且言將伐晉。襄仲辭玉曰:“君不忘先君之好,照臨魯國,鎮撫其社稷,重之以大器,寡君敢辭玉。”對曰:“不腆敝器,不足辭也。”

진백이 서걸술을 보내 와서 빙하고, 또 장차 진국을 치겠다고 말했다. 양중이 옥기를 사하여 말했다. '군이 선군의 우호를 잊지 않고, 노국을 비추어 임하며, 그 사직을 진정시켜 어루만지시고, 또 대기를 더하시니, 과군이 감히 옥기를 사합니다.' 서걸술이 답했다. '후하지 않은 폐기이니, 사할 만하지 않습니다.'

主人三辭。賓客曰:“寡君願徼福於周公、魯公以事君,不腆先君之敝器,使下臣致諸執事以為瑞節,要結好命,所以藉寡君之命,結二國之好,是以敢致之。”

주인이 세 번 사했다. 빈객이 말했다. '과군이 주공・노공에게 복을 구하여 군을 섬기고자 하며, 후하지 않은 선군의 폐기를, 하신을 보내 좌우에 드려 상서로운 증표로 삼아, 우호의 명을 맺고, 과군의 명을 빌어, 두 나라의 우호를 맺고자 하므로, 이로써 감히 드리는 것입니다.'

襄仲曰:“不有君子,其能國乎?國無陋矣。”厚賄之。

양중이 말했다. '군자가 없으면, 어찌 나라를 다스리겠습니까? 나라가 비루하지 않습니다.' 재화를 후하게 그에게 주었다.

秦為令狐之役故,冬,秦伯伐晉,取羈馬。晉人御之。趙盾將中軍,荀林父佐之。郤缺將上軍,臾駢佐之。欒盾將下軍,胥甲佐之。範無恤御戎,以從秦師於河曲。臾駢曰:“秦不能久,請深壘固軍以待之。”從之。

진국이 영호의 싸움의 까닭으로, 동(冬), 진백이 진국을 쳐서, 기마를 취했다. 진인이 막았다. 조순이 중군을 이끌고, 순임보가 보좌했다. 극결이 상군을 이끌고, 여병이 보좌했다. 난순이 하군을 이끌고, 서갑이 보좌했다. 범무휼이 융거를 몰아, 하곡에서 진군을 따라잡았다. 여병이 말했다. '진군이 오래 가지 못하니, 깊이 보루를 파고 군대를 굳게 하여 기다리기를 청합니다.' 따랐다.

秦人慾戰,秦伯謂士會曰:“若何而戰?”對曰:“趙氏新出其屬曰臾駢,必實為此謀,將以老我師也。趙有側室曰穿,晉君之婿也,有寵而弱,不在軍事,好勇而狂,且惡臾駢之佐上軍也,若使輕者肆焉,其可。”秦伯以璧祈戰於河。

진인이 싸우려 하니, 진백이 사회에게 물었다. '어떻게 해야 싸울 수 있겠는가?' 사회가 답했다. '조씨가 새로 그 부하인 여병이라는 자를 발탁했으니, 반드시 그가 이 계책을 낸 것이며, 장차 우리 군대를 피로하게 할 것입니다. 조씨에 측실인 천(穿)이라는 자가 있는데, 진군의 사위로, 총애를 받고 연소하여, 군사를 모르고, 용력을 좋아하고 광망하며, 또 여병이 상군을 보좌함을 미워합니다. 만약 가벼운 병사를 보내 도발하게 하면, 아마 될 것입니다.' 진백이 옥벽을 황하에 던져 싸움을 기원했다.

十二月戊午,秦軍掩晉上軍,趙穿追之,不及。反,怒曰:“裹糧坐甲,固敵是求,敵至不擊,將何俟焉?”軍吏曰:“將有待也。”穿曰:“我不知謀,將獨出。”乃以其屬出。宣子曰:“秦獲穿也,獲一卿矣。秦以勝歸,我何以報?”乃皆出戰,交綏。秦行人夜戒晉師曰:“兩君之士皆未憖也,明日請相見也。”

십이월 무오, 진군이 진국의 상군을 기습하니, 조천이 뒤쫓다가, 미치지 못했다. 돌아와 노하여 말했다. '양식을 지니고 갑옷을 입고 앉아 있는 것은 본래 적을 구하는 것인데, 적이 왔는데 치지 않으면, 또 무엇을 기다리는가?' 군리가 말했다. '장차 기다릴 바가 있을 것입니다.' 조천이 말했다. '나는 모략을 모르니, 장차 홀로 나가겠다.' 이에 그의 부하를 데리고 나갔다. 선자가 말했다. '진국이 조천을 사로잡으면, 곧 한 경을 사로잡는 것이다. 진국이 이기고 돌아가면, 우리가 무엇으로 답하겠는가?' 이에 모두 나가 싸우니, 막 교접하자 서로 군대를 물렸다. 진국의 행인이 밤에 진군에게 경계하여 말했다. '두 나라의 장사가 아직 다 하지 않았으니, 내일 만나기를 청합니다.'

臾駢曰:“使者目動而言肆,懼我也,將遁矣。薄諸河,必敗之。”胥甲、趙穿當軍門呼曰:“死傷未收而棄之,不惠也;不待期而薄人於險,無勇也。”乃止。

여병이 말했다. '사자의 눈동자가 움직이고 말이 방종하니, 우리를 두려워하는 것이며, 장차 달아날 것입니다. 황하 가에 핍박하면, 반드시 그들을 깨뜨릴 것입니다.' 서갑・조천이 군문을 향해 외쳐 말했다. '사상자를 거두지 않고 그들을 버리는 것은 불혜요, 약속한 날짜를 기다리지 않고 험한 곳에서 남을 핍박하는 것은 무용이다.' 이에 그쳤다.

秦師夜遁。復侵晉,入瑕。

진군이 밤에 달아났다. 또 진국을 침범하여, 하에 들어갔다.

城諸及鄆,書,時也。

제와 운의 성을 쌓았는데, 『춘추』가 기록한 것은 시절에 합했기 때문이다.

◇文公十三年

◇문공 십삼년

【經】十有三春王正月。夏五月壬午,陳侯朔卒。邾子蘧蒢卒。自正月不雨,至於秋七月。大室屋壞。冬,公如晉。衛侯會公於沓。狄侵衛。十有二月己丑,公及晉侯盟。公還自晉,鄭伯會公於棐。

【경】십삼년 춘(春), 왕 정월. 하(夏) 오월 임오(壬午), 진후 삭(朔)이 죽었다. 저자 거저(蘧蒢)가 죽었다. 정월부터 비가 내리지 않아, 추(秋) 칠월에 이르렀다. 대실의 지붕이 무너졌다. 동(冬), 문공이 진국에 갔다. 위후가 답에서 문공과 회견했다.적인이 위국을 침범했다. 십이월 기축(己丑), 문공이 진후와 맹약했다. 문공이 진국에서 돌아오니, 정백이 비에서 문공과 회견했다.

【傳】十三年春,晉侯使詹嘉處瑕,以守桃林之塞。

【전】십삼년 춘(春), 진후가 첨가를 보내 하에 있게 하여, 도림의 요새를 지키게 했다.

晉人患秦之用士會也,夏,六卿相見於諸浮,趙宣子曰;“隨會在秦,賈季在狄,難日至矣,若之何?”中行桓子曰:“請復賈季,能外事,且由舊勳。”

진인이 진국이 사회를 쓰는 것을 근심하여, 하(夏), 육경이 제부에서 만났다. 조선자가 말했다. '수회가 진국에 있고, 가계가적인 곳에 있으니, 환난이 날마다 이를 것이니, 어찌할까?' 중행환자가 말했다. '가계를 돌아오게 하기를 청하소서. 그가 능히 바깥 일을 처리하고, 또 옛 공훈이 있습니다.'

郤成子曰:“賈季亂,且罪大,不如隨會,能賤而有恥,柔而不犯,其知足使也,且無罪。”

극성자가 말했다. '가계가 난을 일으켰고, 또 죄가 크니, 수회만 못합니다. 그가 능히 낮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부끄러움이 있고, 부드러우면서도 범할 수 없으며, 그의 지모가 족히 쓸 만하고, 또 죄가 없습니다.'

乃使魏壽餘偽以魏叛者以誘士會,執其帑於晉,使夜逸。請自歸於秦,秦伯許之。履士會之足於朝。秦伯師於河西,魏人在東。壽餘曰:“請東人之能與夫二三有司言者,吾與之先。”使士會。士會辭曰:“晉人,虎狼也,若背其言,臣死,妻子為戮,無益於君,不可悔也。”秦伯曰:“若背其言,所不歸爾帑者,有如河。”乃行。繞朝贈之以策,曰:“子無謂秦無人,吾謀適不用也。”既濟,魏人噪而還。秦人歸其帑。其處者為劉氏。

이에 위수여로 하여금 거짓으로 위 땅을 가지고 배반하게 하여 사회를 유인하고, 그의 가권을 진국에 붙잡아 두고, 그로 하여금 밤에 도망치게 했다. 그가 스스로 진국에 귀부하기를 청하니, 진백이 허락했다. 그가 조정에서 사회의 발을 밟았다. 진백이 하서에 군대를 주둔하니, 위인이 동쪽에 있었다. 수여가 말했다. '저쪽의 여러 관리와 말할 수 있는 동방인 한 명을 보내 주소서. 내가 그와 함께 먼저 가겠습니다.' 진백이 사회를 보냈다. 사회가 사하여 말했다. '진인은 호랑이와 이리입니다. 만약 약속을 배반하면, 신이 죽고 처자가 도륙되어, 군에게 이익이 없고, 후회해도 미치지 못합니다.' 진백이 말했다. '만약 그들이 약속을 배반하면, 내가 만약 그대의 가권을 돌려보내지 않으면, 황하가 증거할 것이다.' 이에 떠났다. 요조가 말채찍을 그에게 주며 말했다. '그대는 진국에 사람이 없다고 말하지 마시오. 다만 내 계책이 마침 쓰이지 않았을 뿐입니다.' 건넌 뒤에, 위인이 떠들며 돌아갔다. 진인이 그의 가권을 돌려보냈다. 진국에 남은 자가 유씨가 되었다.

邾文公卜遷於繹。史曰:“利於民而不利於君。”邾子曰:“苟利於民,孤之利也。天生民而樹之君,以利之也。民既利矣,孤必與焉。”左右曰:“命可長也,君何弗為?”邾子曰:“命在養民。死之短長,時也。民苟利矣,遷也,吉莫如之!”遂遷於繹。

저문공이 역으로 옮길 것을 점쳤다. 사관이 말했다. '백성에게 이롭고 군에게 이롭지 않습니다.' 저자가 말했다. '만약 백성에게 이롭다면, 곧 나의 이익이다. 하늘이 백성을 낳고 군주를 세움은, 그들을 이롭게 하기 위함이다. 백성이 이미 이로우면, 나도 반드시 그 가운데 있다.' 좌우가 말했다. '수명을 늘릴 수 있는데, 군이 어찌 하지 않습니까?' 저자가 말했다. '사명은 백성을 기르는 데 있다. 죽음의 늦고 빠름은 시운이다. 백성이 만약 이롭다면, 옮기는 것이니, 이보다 더 길한 것이 없다!' 이에 역으로 옮겼다.

五月,邾文公卒。君子曰:“知命。”

오월, 저문공이 죽었다. 군자가 말했다. '운명을 알았다.'

秋七月,大室之屋壞,書,不共也。

추(秋) 칠월, 대실의 지붕이 무너졌는데, 『춘추』가 기록한 것은 공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冬,公如晉,朝,且尋盟。衛侯會公於沓,請平於晉。公還,鄭伯會公於棐,亦請平於晉。公皆成之。鄭伯與公宴於棐。子家賦《鴻雁》。季文子曰:“寡君未免於此。”文子賦《四月》。子家賦《載馳》之四章。文子賦《采薇》之四章。

동(冬), 문공이 진국에 가서 조하고, 또 맹약을 새롭게 했다. 위후가 답에서 문공과 회견하여, 진국과 화의하기를 청했다. 문공이 돌아오니, 정백이 비에서 문공과 회견하여, 또 진국과 화의하기를 청했다. 문공이 모두 이루어 주었다. 정백이 문공과 비에서 연음했다. 자가가 『홍안』을 부었다. 계문자가 말했다. '과군도 이를 면하지 못합니다.' 문자가 『사월』을 부었다. 자가가 『재치』의 제사장을 부었다. 문자가 『채미』의 제사장을 부었다.

鄭伯拜。公答拜。

정백이 절했다. 문공이 답배했다.

◇文公十四年

◇문공 십사년

【經】十有四年春王正月,公至自晉。邾人伐我南鄙,叔彭生帥師伐邾。夏五月乙亥,齊侯潘卒。六月,公會宋公、陳侯、衛侯、鄭伯、許男、曹伯、晉趙盾。癸酉,同盟於新城。秋七月,有星孛入於北斗。公至自會。晉人納捷菑於邾。

【경】십사년 춘(春), 왕 정월, 문공이 진국에서 돌아왔다. 저인이 우리나라 남쪽 변경을 치니, 숙팽생이 군대를 이끌고 저국을 쳤다. 하(夏) 오월 을해(乙亥), 제후 번(潘)이 죽었다. 륙월, 문공이 송공・진후・위후・정백・허남・조백・진국 조순과 회견했다. 계유(癸酉), 신성에서 함께 맹약했다. 추(秋) 칠월, 혜성이 북두에 들어갔다. 문공이 회에서 돌아왔다. 진인이 첩증을 저국에 넣었다.

弗克納。九月甲申,公孫敖卒於齊。齊公子商人弒其君舍。宋子哀來奔。冬,單伯如齊。齊人執單伯。齊人執子叔姬。

넣지 못했다. 구월 갑신(甲申), 공손오가 제국에서 죽었다. 제국 공자 상인이 그 군주 사(舍)를 시살했다. 송국 자애가 와서 투신했다. 동(冬), 단백이 제국에 갔다. 제인이 단백을 잡았다. 제인이 자숙희를 잡았다.

【傳】十四年春,頃王崩。周公閱與王孫蘇爭政,故不赴。凡崩、薨,不赴,則不書。禍、福,不告亦不書,懲不敬也。

【전】십사년 춘(春), 경왕이 붕했다. 주공열이 왕손소와 정사를 다투었으므로, 부고를 보내지 않았다. 무릇 붕・훙에, 부고를 보내지 않으면 『춘추』가 기록하지 않는다. 화・복에, 와서 알리지 않아도 기록하지 않으니, 공경하지 않음을 징계한 것이다.

邾文公之卒也,公使吊焉,不敬。邾人來討,伐我南鄙,故惠伯伐邾。

저문공이 죽을 때, 문공이 사람을 보내 조했는데, 공경하지 않았다. 저인이 와서 죄를 물어, 우리나라 남쪽 변경을 치니, 혜백이 저국을 쳤다.

子叔姬妃齊昭公,生舍。叔姬無寵,舍無威。公子商人驟施於國,而多聚士,盡其家,貸於公,有司以繼之。夏五月,昭公卒,舍即位。

자숙희가 제소공에게 시집가서, 사를 낳았다. 숙희가 총애를 받지 못하고, 사가 위엄이 없었다. 공자 상인이 여러 번 국내에 시여하여, 많은 사사를 모으고, 가산을 다 쓰고, 공실에 대여하여, 관리가 이어서 공급했다. 하(夏) 오월, 소공이 죽고, 사가 즉위했다.

邾文公元妃齊姜生定公,二妃晉姬生捷菑。文公卒,邾人立定公,捷菑奔晉。

저문공의 원비 제강이 정공을 낳고, 이치 진희가 첩증을 낳았다. 문공이 죽으니, 저인이 정공을 세우고, 첩증이 진국으로 도망쳤다.

六月,同盟於新城,從於楚者服,且謀邾也。

륙월, 신성에서 함께 맹약했으니, 초국을 따르던 자가 이미 복종하고, 또 저국의 일을 도모했다.

秋七月乙卯夜,齊商人弒舍而讓元。元曰:“爾求之久矣。我能事爾,爾不可使多蓄憾。將免我乎?爾為之!”有星孛入於北斗,周內史叔服曰:“不出七年,宋、齊、晉之君皆將死亂。”

추(秋) 칠월 을묘(乙卯) 밤, 제국 상인이 사를 시살하고 원에게 양보하니, 원이 말했다. '네가 이를 구한 지 이미 오래되었다. 내가 능히 너를 섬기겠으나, 너로 하여금 더 많은 원한을 쌓게 할 수 없다. 네가 나를 죽음에서 면하게 하겠는가? 네가 하라!' 혜성이 북두에 들어가니, 주실 내사 숙복이 말했다. '칠년을 나가지 않아, 송・제・진의 군주가 모두 화난으로 죽을 것이다.'

晉趙盾以諸侯之師八百乘納捷菑於邾。邾人辭曰:“齊出玃且長。”宣子曰:“辭順而弗從,不祥。”乃還。

진국 조순이 제후의 군대 팔백 승으로 첩증을 저국에 넣으려 했다. 저인이 사하여 말했다. '제국 여자가 낳은 곽차가 장이다.' 선자가 말했다. '말이 순리인데 따르지 않으면, 불길하다.' 이에 돌아갔다.

周公將與王孫蘇訟於晉,王叛王孫蘇,而使尹氏與聃啟訟周公於晉。趙宣子平王室而復之。

주공이 장차 왕손소와 진국에서 소송하려 하니, 천자가 왕손소를 배신하고, 윤씨와 담계를 진국에 보내 주공을 위해 소송하게 했다. 조선자가 왕실을 조정하여, 그들을 복위시켰다.

楚莊王立,子孔、潘崇將襲群舒,使公子燮與子儀守而伐舒蓼。二子作亂,城郢而使賊殺子孔,不克而還。八月,二子以楚子出,將如商密。廬戢梨及叔麋誘之,遂殺鬥克及公子燮。

초장왕이 즉위하니, 자공・반숭이 군서를 기습하려 하여, 공자 설과 자의로 하여금 남아 지키게 하고 서요를 쳤다. 이 두 사람이 난을 일으켜, 영성을 쌓고 적을 보내 자공을 죽이려 했으나, 이기지 못하고 돌아왔다. 팔월, 이 두 사람이 초자를 데리고 나가, 장차 상밀에 가려 했다. 여극리와 숙미가 그들을 유인하여, 이에 두극과 공자 설을 죽였다.

初,鬥克囚於秦,秦有殽之敗,而使歸求成,成而不得志。公子燮求令尹而不得。故二子作亂。

옛날 두극이 진국에 감금되었는데, 진국에 효의 패전이 있어, 그를 돌려보내 화의를 구하게 하고, 화의한 뒤에 그가 뜻을 얻지 못했다. 공자 설이 영윤을 구하였으나 얻지 못했다. 그러므로 이 두 사람이 난을 일으켰다.

穆伯之從己氏也,魯人立文伯。穆伯生二子於莒而求復,文伯以為請。襄仲使無朝。聽命,復而不出,二年而盡室以復適莒。文伯疾而請曰:“谷之子弱,請立難也。”許之。文伯卒,立惠叔。穆伯請重賂以求復,惠叔以為請,許之。

목백이 기씨를 따른 뒤에, 노인이 문백을 세웠다. 목백이 여국에서 두 아들을 낳고 돌아오기를 청하니, 문백이 그를 위해 사정했다. 양중이 그를 조에 오르지 못하게 했다. 그가 명을 따라, 돌아와서 문 밖에 나가지 않다가, 이년이 지나 온 집안을 데리고 다시 여국에 갔다. 문백이 병이 들어, 청하여 말했다. '곡의 아들이 어리니, 난을 세우기를 청합니다.' 허락했다. 문백이 죽으니, 혜숙을 세웠다. 목백이 중뇌를 써서 돌아오기를 구하니, 혜숙이 그를 위해 사정하니, 허락했다.

將來,九月卒於齊,告喪,請葬,弗許。

장차 돌아오려 하여, 구월에 제국에서 죽었다. 와서 상사를 알리며, 돌아와 장사하기를 청하니, 허락하지 않았다.

宋高哀為蕭封人,以為卿,不義宋公而出,遂來奔。書曰:“宋子哀來奔。”

송국 고애가 소 봉인이 되어, 경으로 임명되었으나, 송공이 불의하다고 여겨 나갔으니, 이에 와서 투신했다. 『춘추』가 기록하기를 「송자애가 와서 투신했다」

貴之也。

는 것은 그를 귀중하게 여긴 것이다.

齊人定懿公,使來告難,故書以九月。齊公子元不順懿公之為政也,終不曰“公”,曰“夫己氏”。

제인이 의공을 평안하게 하여, 사람을 보내 와서 환난을 알리므로, 『춘추』가 구월로 기록했다. 제국 공자 원이 의공이 집정함을 따르지 않아, 끝내 「공」이라 하지 않고, 「저 사람」이라 칭했다.

襄仲使告於王,請以王寵求昭姬於齊。曰:“殺其子,焉用其母?請受而罪之。”

양중이 사람을 시켜 천자에게 알려, 천자의 존총을 빌어 제국에 소희를 구하게 했다. 말했다. '그녀의 아들을 죽였는데, 또 그녀의 어미를 무엇에 쓰겠습니까? 청컨대 받아들여 그녀를 벌하겠습니다.'

冬,單伯如齊,請子叔姬,齊人執之。又執子叔姬。

동(冬), 단백이 제국에 가서, 자숙희를 위해 사정하니, 제인이 그를 잡았다. 또 자숙희를 잡았다.

◇文公十五年

◇문공 십오년

【經】十有五年春,季孫行父如晉。三月,宋司馬華孫來盟。夏,曹伯來朝。

【경】십오년 춘(春), 계손행보가 진국에 갔다. 삼월, 송국 사마 화손이 와서 맹약했다. 하(夏), 조백이 와서 조했다.

齊人歸公孫敖之喪。六月辛丑朔,日有食之。鼓,用牲於社。單伯至自齊。晉郤缺帥師伐蔡。戊申,入蔡。齊人侵我西鄙。季孫行父如晉。冬十有一月,諸侯盟於扈。十有二月,齊人來歸子叔姬。齊侯侵我西鄙,遂伐曹,入其郛。

제인이 공손오의 상구를 돌려보냈다. 륙월 신축(辛丑), 초하루, 일식이 있었다. 북을 치고, 사에서 희생을 썼다. 단백이 제국에서 돌아왔다. 진국 극결이 군대를 이끌고 채국을 쳤다. 무신(戊申), 채국에 들어갔다. 제인이 우리나라 서쪽 변경을 침범했다. 계손행보가 진국에 갔다. 동(冬) 십일월, 제후가 호에서 맹약했다. 십이월, 제인이 와서 자숙희를 돌려보냈다. 제후가 우리나라 서쪽 변경을 침범하고, 이어서 조국을 쳐서, 그의 외성에 들어갔다.

【傳】十五年春,季文子如晉,為單伯與子叔姬故也。

【전】십오년 춘(春), 계문자가 진국에 간 것은 단백과 자숙희의 까닭이다.

三月,宋華耦來盟,其官皆從之。書曰“宋司馬華孫”,貴之也。

삼월, 송국 화우가 와서 맹약하니, 그의 속관이 모두 따랐다. 『춘추』가 「송사마 화손」이라 기록한 것은 그를 귀중하게 여긴 것이다.

公與之宴,辭曰:“君之先臣督,得罪於宋殤公,名在諸侯之策。臣承其祀,其敢辱君,請承命於亞旅。”魯人以為敏。

문공이 그와 연음하니, 그가 사하여 말했다. '군의 선신 독(督)이 송상공에게 죄를 얻어, 이름이 제후의 간책에 있습니다. 신이 그의 제사를 이으니, 어찌 감히 군을 욕되게 하겠습니까? 아려에게서 명을 받기를 청합니다.' 노인이 그를 민달하다고 여겼다.

夏,曹伯來朝,禮也。諸侯五年再相朝,以修王命,古之制也。

하(夏), 조백이 와서 조한 것은 예에 합하다. 제후가 오년에 두 번 서로 조하는 것은 왕명을 행하는 것이니, 고대의 제도이다.

齊人或為孟氏謀,曰:“魯,爾親也。飾棺置諸堂阜,魯必取之。”從之。

제인 중 어떤 자가 맹씨를 위해 꾀를 내어 말했다. '노국은 그대들의 친족입니다. 꾸민 관을 당부에 두면, 노국이 반드시 와서 가져갈 것입니다.'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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