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bo

정신훈(精神訓)

西汉 · 刘安 · 제10권 / 19

察一曲者,不可與言化;審一時者,不可與言大。日不知夜,月不知晝,日月為明而弗能兼也,唯天地能函之。能包天地,曰唯無形者也。驕溢之君無忠臣,口慧之人無必信。交拱之木,無把之枝;尋常之溝,無吞舟之魚。根淺則末短,本傷則枝枯。福生於無為,患生於多欲,害生於弗備,穢生於弗耨。聖人為善若恐不及,備禍若恐不免。蒙塵而欲毋眯,涉水而欲無濡,不可得也。是故知己者不怨人,知命者不怨天。福由己發,禍由己生。

한 구비만을 살피는 자에게는 화(化)를 논할 수 없고, 한 시절만을 살피는 자에게는 큰 것을 논할 수 없다. 해는 밤을 모르고 달은 낮을 모르며, 일월이 밝음을 이루어도 겸할 수 없으나, 오직 천지만이 함용할 수 있다. 천지를 포괄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무형(無形)이라 한다. 교만하여 넘치는 임금에게는 충신이 없고, 입이 혜교(慧巧)한 자에게는 반드시 믿음이 없다. 맞잡을 만한 나무에는 한 뼘 굵은 가지가 없고, 십상(尋常) 넓이의 도랑에는 배를 삼킬 고기가 없다. 뿌리가 얕으면 끝이 짧고, 근본이 상하면 가지가 마른다. 복은 무위에서 나고, 환난은 욕심 많음에서 나며, 해는 대비하지 않음에서 나고, 더러움은 김매지 않음에서 난다. 성인이 선을 행함은 미치지 못할까 두려워하는 것 같고, 화를 대비함은 면하지 못할까 두려워하는 것 같다. 티끌을 뒤집어쓰고 눈을 감지 않으려 하고, 물을 건너면서 젖지 않으려 하는 것은 얻을 수 없다. 그러므로 자기를 아는 자는 남을 원망하지 않고, 명을 아는 자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는다. 복은 자기로부터 나오고 화는 자기로부터 생긴다.

聖人不求譽,不闢誹,正身直行,眾邪自息。今釋正而追曲,倍是而從眾,是與俗儷走,而內無繩,故聖人反己而弗由也。道之有篇章形埒者,非至者也。嘗之而無味,視之而無形,不可傳於人。大戟去水,亭曆愈張,用之不節,乃反為病。物多類之而非,唯聖人知其微。善禦者不忘其馬,善射者不忘其弩,善為人上者不忘其下。誠能愛而利之,天下可從也。弗愛弗利,親子叛父。天下有至貴而非勢位也,有至富而非金玉也,有至壽而非千歲也。原心反性,則貴矣;適情知足,則富矣;明死生之分,則壽矣。言無常是,行無常宜者,小人也;察於一事,通於一伎者,中人也;兼覆蓋而並有之,度伎能而裁使之者,聖人也。

성인은 칭예를 구하지 않고 비방을 피하지 않으며, 몸을 바로 하고 곧게 행하니 뭇 사(邪)가 스스로 쉰다. 지금 바른 것을 놓고 굽은 것을 쫓으며, 옳음을 배반하고 뭇 사람을 따르는 것은, 세속과 나란히 달리되 속에 승묵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자기에게로 돌아가고 이 길을 가지 않는다. 도에 편장(篇章)과 형렬(形埒)이 있는 것은 지극한 것이 아니다. 맛보아도 맛이 없고 보아도 형상이 없어 사람에게 전할 수 없다. 대극(大戟)은 수종을 없애고 정력(葶藶)은 팽창을 고치나, 쓰기를 절제하지 않으면 오히려 병이 된다. 물이 비슷하면서도 아닌 것이 많으니, 오직 성인만이 그 미미함을 안다. 마차를 잘 모는 자는 그 말을 잊지 않고, 활을 잘 쏘는 자는 그 노(弩)를 잊지 않으며, 사람 위에 있기를 잘하는 자는 그 아래를 잊지 않는다. 참으로 능히 그들을 사랑하고 이롭게 하면 천하를 따르게 할 수 있으나, 사랑하지 않고 이롭게 하지 않으면 친자식도 아버지를 배반한다. 천하에 지극히 귀한 것이 있으나 세력과 지위가 아니고, 지극히 부유한 것이 있으나 금과 옥이 아니며, 지극히 오래 사는 것이 있으나 천 년을 사는 것이 아니다. 마음의 근원으로 돌아가 성(性)으로 돌아가면 귀하고, 정에 맞고 족함을 알면 부유하며, 죽음과 삶의 분수를 알면 오래 산다. 말이 항상 옳지 않고 행이 항상 마땅하지 않은 자는 소인이고, 한 가지 일을 살피고 한 가지 재주에 통한 자는 중인이며, 겸하여 덮고 함께 가져 도량하여 재주를 재단하여 쓰는 자는 성인이다.

제속훈(齊俗訓)

率性而行謂之道,得其天性謂之德。性失然後貴仁,道失然後貴義。是故仁義立而道德遷矣,禮樂飾則純樸散矣,是非形則百姓眩矣,珠玉尊則天下爭矣。凡此四者,衰世之造也,末世之用也。夫禮者,所以別尊卑,異貴賤;義者,所以合君臣、父子、兄弟、夫妻、朋友之際也。今世之為禮者,恭敬而忮;為義者,佈施而德;君臣以相非,骨肉以生怨,則失禮義之本也,故搆而多責。夫水積則生相食之魚,土積則生自淫之獸,禮義飾則生偽匿之本。夫吹灰而欲無眯,涉水而欲無濡,不可得也。古者,民童蒙不知東西,貌不羨乎情,而言不溢乎行。其衣致煖而無文,其兵戈銖而無刃,其歌樂而無轉,其哭哀而無聲。鑿井而飲,耕田而食。無所施其美,亦不求得。親戚不相毀譽,朋友不相怨德。及至禮義之生,貨財之貴,而詐偽萌興,非譽相紛,怨德並行,於是乃有曾參、孝己之美,而生盜蹠、莊蹻之邪。故有大路龍旂,羽蓋垂緌,結駟連騎,則必有穿窬拊楗、抽箕踰備之姦;有詭文繁繡,弱緆羅紈,必有菅屩跐踦,短褐不完者。故高下之相傾也,短脩之相形也,亦明矣。夫蝦蟆為鶉,水蠆為𧐟莣,皆生非其類,唯聖人知其化。夫胡人見黂,不知其可以為布也;越人見毳,不知其可以為旃也。故不通於物者,難與言化。昔太公望、周公旦受封而相見,太公問周公曰:「何以治魯?」周公曰:「尊尊親親。」太公曰:「魯從此弱矣!」周公問太公曰:「何以治齊?」太公曰:「舉賢而上功。」周公曰:「後世必有劫殺之君!」其後,齊日以大,至於霸,二十四世而田氏代之;魯日以削,至三十二世而亡。故易曰:「履霜,堅冰至。」聖人之見終始微言!故糟丘生乎象箸,炮烙生乎熱鬥。子路撜溺而受牛謝,孔子曰:「魯國必好救人於患。」子贛贖人而不受金於府,孔子曰:「魯國不復贖人矣。

성(性)을 따라 행하는 것을 도(道)라 하고, 천성을 얻는 것을 덕(德)이라 한다. 성을 잃은 뒤에 인(仁)을 귀하게 여기고, 도를 잃은 뒤에 의(義)를 귀하게 여긴다. 그러므로 인의가 세워지면 도덕이 옮겨가고, 예악(禮樂)이 장식되면 순박(純樸)이 흩어지며, 시비가 형상을 이루면 백성이 현혹되고, 주옥이 존귀해지면 천하가 다툰다. 대저 이 네 가지는 쇠한 세상이 만들어낸 것이며 말세(末世)가 쓰는 것이다. 예(禮)는 존비(尊卑)를 구별하고 귀천을 달리하는 것이고, 의(義)는 군신·부자·형제·부부·붕우의 사이를 합하는 것이다. 지금 세상에서 예를 행하는 자는 공경하면서도 시기하고, 의를 행하는 자는 베풀면서도 스스로 덕으로 여긴다. 군신이 서로 비방하고 골육이 원망을 낳으면, 예의의 근본을 잃는 것이니, 원망을 엮고 책망이 많아진다. 물이 쌓이면 서로 잡아먹는 물고기가 생기고, 흙이 쌓이면 스스로 음란한 짐승이 생기며, 예의가 장식되면 위역(偽匿)의 근본이 생긴다. 재를 불면서 눈을 감지 않으려 하고 물을 건너면서 젖지 않으려 하는 것은 얻을 수 없다. 옛적에는 백성이 동몽(童蒙)하여 동서를 알지 못하고, 용모가 정을 넘지 않으며 말이 행을 넘지 않았다. 옷은 따뜻하기만 구하고 무늬가 없었고, 병기는 무디고 날이 없었으며, 노래는 즐기되 굴곡이 없고, 울음은 슬프되 소리가 없었다. 우물을 파서 마시고 밭을 갈아 먹었다. 자기의 아름다움을 베풀 곳이 없고 또 얻기를 구하지 않았으며, 친척이 서로 헐뜯지 않고 벗이 서로 원덕(怨德)하지 않았다. 예의가 생기고 재화가 귀하게 여겨지며 사위(詐僞)가 싹트고, 비예(非譽)가 서로 어지럽고 원과 덕이 나란히 행해지니, 이에 비로소 증삼(曾參)·효기(孝己)의 아름다움이 있게 되고, 도척(盜跖)·장교(莊蹻)의 사(邪)가 생겨났다. 그러므로 큰 수레에 용기(龍旗)와 우개(羽盖) 수수(垂緌)에 결사(結駟) 연기(連騎)가 있으면, 반드시 담을 넘고 문빗장을 비틀며 문지방을 빼고 울타리를 넘는 간(奸)이 있게 된다. 괴리(詭麗)한 무늬와 번수(繁繡)·가는 비단과 나완(羅紈)이 있으면, 반드시 짚신을 신고 절뚝거리며 거친 옷이 온전하지 못한 자가 있다. 그러므로 위아래가 서로 기울이고 길고 짧음이 서로 형상을 이루니, 또한 밝다. 두꺼비가 메추라기가 되고 물거머리가 그 벌레가 되는 것(底本 이 글자는 생벽자)은 모두 그 부류가 아닌 것을 낳으나, 오직 성인만이 그 변화를 안다. 호(胡) 사람은 거친 삼베를 보아도 그것으로 베를 만들 수 있는 줄을 모르고, 월(越) 사람은 가는 털을 보아도 그것으로 단(毡)을 만들 수 있는 줄을 모른다. 그러므로 물에 통하지 못한 자에게는 화(化)를 논하기 어렵다. 옛적 태공망(太公望)과 주공단(周公旦)이 봉을 받고 서로 만나, 태공이 주공에게 물었다. 「무엇으로 노(魯)를 다스리겠는가?」 주공이 말했다. 「존귀한 자를 존귀히 하고 친한 자를 친하게 합니다.」 태공이 말했다. 「노는 이로부터 쇠약해질 것이오!」 주공이 태공에게 물었다. 「무엇으로 제(齊)를 다스리겠는가?」 태공이 말했다. 「어진 자를 들어 올리고 공을 숭상합니다.」 주공이 말했다. 「후세에 반드시 겁살되는 임금이 있을 것이오!」 그 뒤로 제는 나날이 커져 패(覇)에 이르렀으나 스물네 대 만에 전씨(田氏)가 대신했고, 노는 나날이 깎여 서른두 대 만에 망했다. 그러므로 《주역》에 말했다. 「서리를 밟으면 굳은 얼음이 이른다.」 성인이 끝과 시작의 미미함을 본 것이로다! 그러므로 조구(糟丘)는 상아 젓가락에서 생겼고, 포락(炮烙)은 다리미에서 생겼다. 자로(子路)가 물에 빠진 사람을 건지고 소의 사례를 받자 공자가 말했다. 「노나라가 반드시 환난 가운데서 사람을 구하기를 좋아할 것이다.」 자공(子贛)이 사람을 속죄하고도 관청에서 금을 받지 않자 공자가 말했다. 「노나라가 다시는 사람을 속죄하지 않을 것이다.」

」子路受而勸德,子贛讓而止善。孔子之明,以小知大,以近知遠,通於論者也。由此觀之,廉有所在,而不可公行也。故行齊於俗,可隨也;事周於能,易為也。矜偽以惑世,伉行以違眾,聖人不以為民俗。廣廈闊屋,連闥通房,人之所安也,鳥入之而憂。高山險阻,深林叢薄,虎豹之所樂也,人入之而畏。川穀通原,積水重泉,黿鼉之所便也,人入之而死。咸池、承云,九韶、六英,人之所樂也,鳥獸聞之而驚。深谿峭岸,峻木尋枝,猿狖之所樂也,人上之而慄。形殊性詭,所以為樂者乃所以為哀,所以為安者乃所以為危也。乃至天地之所覆載,日月之所照誋,使各便其性,安其居,處其宜,為其能。故愚者有所脩,智者有所不足;柱不可以摘齒,筐不可以持屋;馬不可以服重,牛不可以追速;鉛不可以為刀,銅不可以為弩;鐵不可以為舟,木不可以為釜。各用之於其所適,施之於其所宜,即萬物一齊,而無由相過。夫明鏡便於照形,其於以函食,不如簞;犧牛粹毛,宜於廟牲,其於以致雨,不若黑蜧。由此觀之,物無貴賤。因其所貴而貴之,物無不貴也;因其所賤而賤之,物無不賤也。夫玉璞不厭厚,角䚩不厭薄;漆不厭黑,粉不厭白。此四者相反也,所急則均,其用一也。今之裘與蓑,孰急?見雨則裘不用,升堂則蓑不御,此代為常者也。譬若舟、車、楯、肆、窮廬,故有所宜也。故老子曰「不上賢」者,言不致魚於木,沉鳥於淵。故堯之治天下也,舜為司徒,契為司馬,禹為司空,后稷為大田師,奚仲為工。其導萬民也,水處者漁,山處者木,谷處者牧,陸處者農。地宜其事,事宜其械,械宜其用,用宜其人。澤皋織網,陵阪耕田,得以所有易所無,以所工易所拙,是故離叛者寡,而聽從者眾。譬若播棋丸於地,員者走澤,方者處高,各從其所安,夫有何上下焉!

그러므로 행이 세속과 같으면 따를 수 있고, 일이 능력에 주비(周備)되면 하기 쉽다. 긍위(矜僞)로써 세상을 미혹하게 하고, 항행(抗行)으로써 뭇 사람을 거스르는 것은, 성인이 민속으로 여기지 않는다. 넓은 집과 큰 집에 문이 이어지고 방이 통함은 사람이 편안해하는 바이나 새가 들어가면 근심하고, 높은 산과 험준한 곳, 깊은 숲과 빽빽한 덤불은 호랑이와 표범이 즐기는 바이나 사람이 들어가면 두려워하며, 계곡이 근원에 통하고 물이 쌓여 겹샘이 됨은 원악(黿鼉)이 편한 바이나 사람이 들어가면 죽고, 함지(咸池)·승운(承雲)·구소(九韶)·육영(六英)은 사람이 즐기는 바이나 새와 짐승이 들으면 놀라며, 깊은 시내와 험한 언덕, 높은 나무와 긴 가지는 원숭이가 즐기는 바이나 사람이 올라가면 떤다. 형태가 다르고 성이 괴이하여, 즐기는 바가 곧 슬퍼하는 바이고 편안한 바가 곧 위태로운 바이다. 심지어 천지가 덮고 싣고 일월이 비추는 곳에 이르기까지, 각각 그 성을 편하게 하고 그 거처에 편안히 하며 그 마땅한 곳에 있게 하고 그 능한 일을 하게 한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도 긴 점이 있고 지혜로운 자도 부족한 점이 있다. 기둥으로 이를 쑤실 수 없고, 광주리로 집을 지탱할 수 없으며, 말로 무거운 것을 짊어지게 할 수 없고, 소로 속도를 따라잡게 할 수 없으며, 연으로 칼을 만들 수 없고, 놋쇠로 노(弩)를 만들 수 없으며, 쇠로 배를 만들 수 없고, 나무로 가마솥을 만들 수 없다. 각각 그 적합한 곳에 쓰고 그 마땅한 곳에 베풀면, 만물이 한결같이 골라 서로 넘을 길이 없다. 밝은 거울은 형상을 비추기에 편하나, 음식을 담는 데는 소죽(簞)만 못하고, 희생 소의 털이 순수함은 사당의 제물에 마땅하나, 비를 구하는 데는 흑리(黑蜧)만 못하다. 이로부터 보면 물에는 귀하고 천함이 없다. 그 귀한 바로 인하여 귀하게 여기면 물이 귀하지 않은 것이 없고, 그 천한 바로 인하여 천하게 여기면 물이 천하지 않은 것이 없다. 옥의 박(璞)은 두꺼움을 싫어하지 않고, 뿔 그릇은 얇음을 싫어하지 않으며(底本 이 글자는 생벽자), 옻칠은 검음을 싫어하지 않고 흰 분은 흰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 이 네 가지는 서로 반대되나 그 급한 바는 균일하고 그 쓰임은 하나이다. 지금 가죽옷과 도롱이 중에 어느 것이 급한가? 비를 보면 가죽옷을 쓰지 않고, 당에 오르면 도롱이를 걸치지 않으니, 이는 번갈아 상(常)이 되는 것이다. 비유하면 배·수레·방패·기둥·궁려(窮廬)는 본래 각각 마땅한 바가 있다. 그러므로 노자(老子)가 「어진 자를 숭상하지 않는다」고 한 것은, 물고기를 나무에 두지 않고 새를 못에 잠기게 하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요(堯)가 천하를 다스림에, 순(舜)은 사도(司徒)를 하고 설(契)은 사마(司馬)를 하며 우(禹)는 사공(司空)을 하고, 후직(后稷)은 대전사(大田師)를 하며 해중(奚仲)은 공(工)을 했다. 그가 만민을 이끎에, 물가에 사는 자는 고기를 잡고, 산에 사는 자는 나무를 베며, 골짜기에 사는 자는 목축하고, 육지에 사는 자는 농경했다. 땅이 그 일에 마땅하고, 일이 그 기계에 마땅하며, 기계가 그 쓰임에 마땅하고, 쓰임이 그 사람에 마땅했다. 물가 언덕에서는 그물을 짜고, 언덕 비탈에서는 밭을 갈아, 가진 것으로 없는 것을 바꾸고 공교한 것으로 졸한 것을 바꾸었다. 그러므로 떠나 배반하는 자는 적고 듣고 따르는 자는 많았다. 장기 알을 땅에 뿌리는 것과 같아, 둥근 것은 물못으로 가고 모난 것은 높은 데에 있어, 각각 그 편안한 곳을 따르니, 무슨 상하가 있겠는가!

若風之遇簫,忽然感之,各以清濁應矣。夫猿狖得茂木,不捨而穴;狟貉得埵防,弗去而緣;物莫避其所利而就其所害。是故鄰國相望,雞狗之音相聞,而足跡不接諸侯之境,車軌不結千里之外者,皆各得其所安。故亂國若盛,治國若虛,亡國若不足,存國若有餘。虛者非無人也,皆守其職也;盛者非多人也,皆徼於末也;有餘者非多財也,欲節事寡也;不足者非無貨也,民躁而費多也。故先王之法籍,非所作也,其所因也。其禁誅,非所為也,其所守也。凡以物治物者不以物,以睦;治睦者不以睦,以人;治人者不以人,以君;治君者不以君,以欲;治欲者不以欲,以性;治性者不於性,以德;治德者不以德,以道。原人之性,蕪濊而不得清明者,物或堁之也。羌、氐、僰、翟,嬰兒生皆同聲,及其長也,雖重象狄騠,不能通其言,教俗殊也。今三月嬰兒,生而徙國,則不能知其故俗。由此觀之,衣服禮俗者,非人之性也,所受於外也。夫竹之性浮,殘以為牒,束而投之水,則沉,失其體也。金之性沉,託之於舟上則浮,勢有所支也。夫素之質白,染之以涅則黑;縑之性黃,染之以丹則赤。人之性無邪,久湛於俗則易。易而忘本,合於若性。故日月欲明,浮雲蓋之;河水欲清,沙石濊之;人性慾平,嗜慾害之。惟聖人能遺物而反己。夫乘舟而惑者,不知東西,見鬥極則寤矣。夫性,亦人之鬥極也。有以自見也,則不失物之情;無以自見,則動而惑營。譬若隴西之遊,愈躁愈沉。孔子謂顏回曰:「吾服汝也忘,而汝服於我也亦忘。雖然,汝雖忘乎,吾猶有不忘者存。」孔子知其本也。夫縱欲而失性,動未嘗正也,以治身則危,以治國則亂,以入軍則破。是故不聞道者,無以反性。故古之聖王,能得諸己,故令行禁止,名傳後世,德施四海。是故凡將舉事,必先平意清神。神清意平,物乃可正。

바람이 소(簫)를 만나면 홀연히 그것을 감발하여 각각 청탁으로 응한다. 원숭이는 무성한 나무를 얻으면 버리지 않고 굴을 만들지 않으며, 담비는 흙 언덕과 제방을 얻으면 떠나지 않고 따라간다. 물은 이로운 곳을 피하여 해로운 곳으로 가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웃 나라가 서로 바라보고 닭과 개의 소리가 서로 들려도, 발자취는 제후의 경내에 닿지 않고 수레 자국은 천 리 밖에 사귀지 않으니, 모두 각각 그 편안한 곳을 얻은 것이다. 그러므로 어지러운 나라는 성한 것 같고, 다스려진 나라는 빈 것 같으며, 망한 나라는 부족한 것 같고, 존재하는 나라는 여유가 있는 것 같다. 빈 것은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니라 모두 직분을 지키는 것이고, 성한 것은 사람이 많은 것이 아니라 모두 말업(末業)을 구하는 것이며, 여유 있는 것은 재물이 많은 것이 아니라 욕망에 절도가 있고 일이 적은 것이고, 부족한 것은 화물이 없는 것이 아니라 백성이 조급하여 쓰는 것이 많은 것이다. 그러므로 선왕의 법적(法籍)은 스스로 지어낸 것이 아니라 인순(因循)한 바이고, 그 금주(禁誅)는 스스로 작위한 것이 아니라 수주(守住)한 바이다. 대저 물로써 물을 다스리는 것은 물을 쓰지 않고 화목을 쓰며, 화목을 다스리는 것은 화목을 쓰지 않고 사람을 쓰고, 사람을 다스리는 것은 사람을 쓰지 않고 임금을 쓰며, 임금을 다스리는 것은 임금을 쓰지 않고 욕망을 쓰고, 욕망을 다스리는 것은 욕망을 쓰지 않고 성(性)을 쓰며, 성을 다스리는 것은 성에 있지 않고 덕을 쓰며, 덕을 다스리는 것은 덕을 쓰지 않고 도를 쓴다. 사람의 성을 추원(推原)하면 무예(蕪穢)하여 청명을 얻지 못하는 것은 물이 때로 티끌로 그것을 가렸기 때문이다. 강(羌)·저(氐)·박(僰)·적(翟)의 어린아이는 날 때 소리가 모두 같으나, 자라게 되면 비록 상서(象胥)와 적제(狄鞮)를 겹쳐 번역해도 그 말을 통할 수 없으니, 가르침과 풍속이 다르기 때문이다. 지금 석 달 된 어린아이를 낳아 다른 나라로 옮기면 그 본래의 풍속을 알지 못한다. 이로부터 보면 의복과 예속은 사람의 성이 아니라 밖에서 받은 것이다. 대나무의 성은 뜨는 것이나, 부서져 차(牒)가 되어 묶어 물에 던지면 가라앉으니 본체를 잃었기 때문이다. 쇠의 성은 가라앉는 것이나 배에 실리면 뜨니, 형세에 버티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흰 비단의 질은 희나 니(涅)로 물들이면 검고, 겸(縑)의 성은 누르나 단(丹)으로 물들이면 붉다. 사람의 성에는 사(邪)가 없으나 오래 풍속에 잠기면 변한다. 변하여 근본을 잊으면 그 성에 합한다. 그러므로 일월이 밝으려 하면 뜬 구름이 그것을 가리고, 하수가 맑으려 하면 모래와 돌이 그것을 더럽히며, 인성이 평평하려 하면 기욕이 그것을 해친다. 오직 성인만이 능히 물을 떠나 자기에게 돌아간다. 배를 타고 미혹한 자는 동서를 모르다가 북두와 북극을 보고 깬다. 성도 또한 사람의 북두 북극이다. 스스로 볼 수 있는 바가 있으면 물의 정을 잃지 않고, 스스로 볼 수 있는 바가 없으면 한 번 움직여도 미혹하여 어지럽다. 마치 농서(隴西)의 물살과 같아 급할수록 가라앉는다. 공자가 안회(顏回)에게 말했다. 「내가 너를 섬겨도 잊고, 너도 나를 섬겨 잊는다. 비록 그러하나, 너는 잊어도 좋으나 나에게는 잊지 않는 자가 있다.」 공자는 그 근본을 알았다. 욕심을 방종하여 성을 잃으면 움직임에 일찍이 바른 것이 없어, 이로써 몸을 다스리면 위태하고 이로써 나라를 다스리면 어지럽고 이로써 군대에 들어가면 패한다. 그러므로 도를 듣지 못한 자는 성으로 돌아갈 길이 없다. 옛 성왕은 능히 자기에게서 얻었으므로, 명하면 행해지고 금하면 그쳤으며, 이름은 후세에 전하고 덕은 사해에 베풀어졌다. 그러므로 대저 일을 하고자 하면 반드시 먼저 뜻을 평평하게 하고 정신을 맑게 한다. 정신이 맑고 뜻이 평평하면 물이 비로소 바로잡을 수 있다.

若璽之抑埴,正與之正,傾與之傾。故堯之舉舜也,決之於目;桓公之取甯戚也,斷之於耳而已矣。為是釋術數而任耳目,其亂必甚矣。夫耳目之可以斷也,反情性也;聽失於誹譽,而目淫於采色,而欲得事正,則難矣。夫載哀者聞歌聲而泣,載樂者見哭者而笑。哀可樂者,笑可哀者,載使然也,是故貴虛。故水擊則波興,氣亂則智昏。智昏不可以為政,波水不可以為平。故聖王執一而勿失,萬物之情既矣,四夷九州服矣。夫一者至貴,無適於天下。聖人託於無適,故民命繫矣。為仁者必以哀樂論之,為義者必以取予明之。目所見不過十里,而欲遍照海內之民,哀樂弗能給也。無天下之委財,而欲遍澹萬民,利不能足也。且喜怒哀樂,有感而自然者也。故哭之發於口,涕之出於目,此皆憤於中而形於外者也。譬若水之下流,煙之上尋也,夫有孰推之者!故強哭者雖病不哀,強親者雖笑不和。情發於中而聲應於外,故釐負羈之壺餐,愈於晉獻公之垂棘;趙宣孟之束脯,賢於智伯之大鐘。故禮豐不足以效愛,而誠心可以懷遠。故公西華之養親也,若與朋友處,曾參之養親也,若事嚴主烈君,其於養,一也。故胡人彈骨,越人契臂,中國歃血也,所由各異,其於信,一也。三苗髽首,羌人括領,中國冠笄,越人劗鬋,其於服,一也。帝顓頊之法,婦人不闢男子於路者,拂之於四達之衢,今之國都,男女切踦,肩摩於道,其於俗,一也。故四夷之禮不同,皆尊其主而愛其親,敬其兄;獫狁之俗相反,皆慈其子而嚴其上。夫鳥飛成行,獸處成群,有孰教之!故魯國服儒者之禮,行孔子之術,地削名卑,不能親近來遠。越王句踐劗髮文身,無皮弁搢笏之服,拘罷拒折之容,然而勝夫差於五湖,南面而霸天下,泗上十二諸侯皆率九夷以朝。胡、貉、匈奴之國,縱體拖髮,箕倨反言,而國不亡怴A未必無禮也。

도장을 찰흙에 찍는 것과 같아 바르면 바르게 하고 기울면 기울게 한다. 그러므로 요가 순을 들어 쓴 것은 눈에 결정했고, 환공이 영척을 취한 것은 귀에 재단함으로 족했다. 이로 인하여 술수를 놓고 이목을 쓰면 어지러움이 반드시 더하다. 이목이 재단할 수 있는 까닭은 정성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비방과 칭예에서 듣기를 잃고 채색에서 눈을 음란하게 하여 일의 바름을 얻으려 하면 어렵다. 슬픔을 싣는 자는 노랫소리를 듣고 울고, 즐거움을 싣는 자는 우는 자를 보고 웃는다. 즐길 만한 것을 슬픔으로 여기고 슬플 만한 것을 웃음으로 여기는 것은 싣는 바가 그것을 그렇게 한다. 그러므로 허(虛)를 귀하게 여긴다. 물은 치면 물결이 일고, 기가 어지러우면 지혜가 어두워진다. 지혜가 어두우면 정치를 할 수 없고, 물결 치는 물은 평준을 삼을 수 없다. 그러므로 성왕은 일(一)을 잡아 잃지 않으니 만물의 정이 다하고 사이(四夷)와 구주가 복종한다. 일은 지극히 귀하여 천하에 적수가 없다. 성인은 적수 없는 데 몸을 의탁하니 백성의 명이 이어진다. 인을 행하는 자는 반드시 애락으로써 그것을 논하고, 의를 행하는 자는 반드시 취여로써 그것을 밝힌다. 눈이 보는 바는 십 리를 넘지 못하나 널리 해내의 백성을 비추려 하면 애락이 미치지 못하고, 천하의 쌓인 재물이 없이 널리 만민을 기르려 하면 이익이 미치지 못한다. 하물며 희로애락은 감을 받아 스스로 그러한 것이니, 울음은 입에서 나오고 눈물은 눈에서 나오며 모두 속에서 분하여 밖에 형상을 이룬다. 물이 아래로 흐르고 연기가 위로 오르는 것과 같으니 누가 그것을 밀었겠는가. 그러므로 억지로 울게 하는 자는 울어 병이 나도 슬프지 않고, 억지로 친하게 하는 자는 웃어도 화하지 않는다. 정이 속에서 나오면 소리가 밖에서 응한다. 그러므로 희부기의 한 호의 밥은 진헌공의 수극지벽보다 낫고, 조선맹의 한 속의 육포는 지백의 큰 종보다 낫다. 그러므로 예가 후하여도 사랑을 증험하기에 부족하나, 지성심으로는 먼 데를 회유할 수 있다. 공서화(公西華)가 부모를 봉양함은 벗과 더불어 지내는 것 같고, 증삼(曾參)이 부모를 봉양함은 준엄한 주와 맹렬한 군주를 섬기는 것 같으나, 봉양함에 있어서는 하나다. 호인은 뼈를 치고, 월인은 팔을 긋고, 중국은 피를 마시니, 이끄는 바가 각각 다르나 신(信)에 있어서는 하나다. 삼묘는 머리를 퉁기어 올리고, 강인은 옷깃을 묶고, 중국은 갓을 쓰고 비녀를 꽂으며, 월인은 머리를 자르니, 복식에 있어서는 하나다. 전욱(顓頊)제의 법은, 길에서 남자를 피하지 않는 부녀를 사달(四達)의 큰길에서 불어 내렸다. 지금의 국도는 남녀가 길에서 발이 마주치고 어깨가 스치니, 풍속에 있어서는 하나다. 그러므로 사이의 예는 다르나 모두 그 임금을 존귀히 하고 그 어버이를 사랑하며 그 형을 공경하고, 흠윤(獫狁)의 풍속은 반대로 모두 그 자식을 자애하고 위를 엄하게 한다. 새는 나래를 이루어 날고 짐승은 무리를 이루어 지내니, 누가 그들을 가르쳤겠는가. 그러므로 노나라는 유자의 예를 입고 공자의 술을 행하여 땅이 깎이고 이름이 낮아져, 가까운 데를 친하게 하고 먼 데를 오게 하지 못했다. 월왕 구천(句踐)은 머리를 자르고 몸에 문신하여, 피변(皮弁)과 꽃박(搢笏)의 복식도 구파(拘罷)와 거절(拒折)의 용의도 없었으나, 오호(五湖)에서 부차를 이기고 남향하여 천하에 패하니, 사상(泗上)의 열두 제후가 모두 구이(九夷)를 거느리고 조회했다. 호·맥·흉노의 나라는 몸을 놓고 머리를 풀어헤쳐, 기거하여 말을 거슬러도 나라가 망하지 않는 것은(底本 「怴A」은 전사 잔류, 문의는 마땅히 「者」이다), 반드시 예가 없는 것은 아니다.

楚莊王裾衣博袍,令行乎天下,遂霸諸侯。晉文君大布之衣,牂羊之裘,韋以帶劍,威立於海內。豈必鄒、魯之禮之謂禮乎!是故入其國者從其俗,入其家者避其諱,不犯禁而入,不忤逆而進,雖之夷狄徒裸之國,結軌乎遠方之外,而無所困矣。禮者,實之文也;仁者,恩之效也。故禮因人情而為之節文,而仁發恲以見容。禮不過實,仁不溢恩也,治世之道也。夫三年之喪,是強人所不及也,而以偽輔情也。三月之服,是絕哀而迫切之性也。夫儒、墨不原人情之終始,而務以行相反之制,五縗之服。悲哀抱於情,葬薶稱於養,不強人之所不能為,不絕人之所能已,度量不失於適,誹譽無所由生。古者,非不知繁升降槃還之禮也,蹀採齊、肆夏之容也,以為曠日煩民而無所用,故制禮足以佐實喻意而已矣。古者,非不能陳鐘鼓,盛筦簫,揚干鏚,奮羽旄,以為費財亂政,制樂足以合歡宣意而已,喜不羨於音。非不能竭國麋民,虛府殫財,含珠鱗施,綸組節束,追送死也,以為窮民絕業而無益於槁骨腐肉也,故葬薶足以收斂蓋藏而已。昔舜葬蒼梧,市不變其肆;禹葬會稽之山,農不易其畝;明乎生死之分,通乎侈儉之適者也。亂國則不然,言與行相悖,情與貌相反,禮飾以煩,樂優以淫,崇死以害生,久喪以招行,是以風俗濁於世,而誹譽萌於朝,是故聖人廢而不用也。義者,循理而行宜也;禮者,體情制文者也。義者宜也,禮者體也。昔有扈氏為義而亡,知義而不知宜也;魯治禮而削,知禮而不知體也。有虞氏之祀,其社用土,祀中霤,葬成畝,其樂咸池、承雲、九韶,其服尚黃。夏后氏,其社用松,祀戶,葬牆置翣,其樂夏籥、九成、六佾、六列、六英,其服尚青。殷人之禮,其社用石,祀門,葬樹松,其樂大濩、晨露,其服尚白。周人之禮,其社用栗,祀灶,葬樹柏,其樂大武、三象、棘下,其服尚赤。

초장왕(楚莊王)은 옷자락이 넓고 도포가 넓어 명령이 천하에 행해져 제후에게 패했다. 진문군(晉文君)은 큰 베옷에 암양 가죽옷을 입고 익힌 가죽으로 띠를 두르고 칼을 차니, 위엄이 해내에 섰다. 어찌 반드시 추(鄒)·노(魯)의 예를 예라고 해야 하는가. 그러므로 그 나라에 들어가면 그 풍속을 따르고, 그 집에 들어가면 그 집의 휘(諱)를 피하여, 금기를 범하지 않고 들어가고 거스르지 않고 나아가면, 비록 이적(夷狄)의 벌거벗은 나라에 이르고 수레 자국이 먼 곳 밖에 이르러도 곤란함이 없다. 예는 실(實)의 문장이고, 인은 은혜의 증험이다. 그러므로 예는 인정을 인하여 절문(節文)을 만들고, 인은 속에서 나와 용모에 나타난다. 예가 실을 넘지 않고 인이 은혜를 넘치지 않는 것이 다스려진 세상의 도이다. 삼 년의 상은 사람이 미치지 못하는 것을 강요하여 위로 정을 돕고, 석 달의 복은 슬픔을 끊어 그 성을 급박하게 하는 것이다. 유(儒)·묵(墨)은 인정의 종시를 추원하지 않고, 서로 반대되는 제도와 오등의 상복을 행하려 힘쓴다. 슬픔이 정에 안기고 장례가 봉양에 상응하여,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강요하지 않고 사람이 그칠 수 있는 것을 끊지 않으며, 도량이 마땅함을 잃지 않으면 비방과 칭예가 생길 까닭이 없다. 옛적에는 번잡한 승강(升降)과 반환(槃還)의 예를 모른 것이 아니고, 《채제(采齊)》·《사하(肆夏)》의 용의를 밟을 줄 모른 것이 아니나, 날을 헛되이하고 백성을 번거롭게 하여 쓸모가 없다고 여겨, 그러므로 예를 제정하여 실을 돕고 뜻을 깨우치기에 족할 뿐이다. 옛적에는 종고(鐘鼓)를 진열하고 관소(管簫)를 성대하며 건척(干戚)을 들고 우모(羽旄)를 떨칠 수 없었던 것이 아니나, 재물을 허비하고 정치를 어지럽힌다 여겨, 악을 제정하여 기쁨을 합하고 뜻을 펴기에 족할 뿐이며, 기쁨이 음을 넘지 않았다. 국력을 다하고 민력을 소모하여 부고(府庫)를 비우고 재물을 다하며, 입에 구슬을 물리고 몸에 비늘처럼 옥을 베풀고, 비단 끈으로 묶어 죽은 이를 따라 보낼 수 없었던 것이 아니나, 백성을 궁하게 하고 생업을 끊어 마른 뼈와 썩은 살에 이익이 없다 여겼다. 그러므로 장례는 거두어 덮어 감추기에 족할 뿐이다. 옛적 순(舜)이 창오(蒼梧)에 장사되었을 때 저자(市)가 그 가게를 바꾸지 않았고, 우(禹)가 회계산(會稽山)에 장사되었을 때 농부가 그 전묘(田畝)를 바꾸지 않았으니, 죽음과 삶의 분수를 밝히고 사치와 검약의 적합함에 통한 것이다. 어지러운 나라는 그렇지 않아, 말과 행이 서로 어긋나고 정과 모습이 서로 반대되며, 예는 번잡하게 장식되고 악은 우유하게 음란하며, 죽음을 숭상하여 삶을 해치고 오랜 상으로 행을 표방하니, 풍속이 세상에서 흐려지고 비예가 조정에서 싹트므로, 성인은 폐하여 쓰지 않는다. 의는 이치를 따라 마땅함을 행하는 것이고, 예는 정을 헤아려 문장을 제정하는 것이다. 의는 곧 의(宜)요, 예는 곧 체(體)다. 옛적 유호씨(有扈氏)는 의 때문에 망했으니 의를 알고 의(宜)를 몰랐고, 노(魯)는 예를 다스려 쇠약했으니 예를 알고 체(體)를 몰랐다. 우우씨(有虞氏)의 제사는 사(社)에 흙을 쓰고 중류(中霤)를 제사하며, 묘를 이루어 묘(畝)를 이루고, 그 악은 함지·승운·구소이며 그 복식은 황(黃)을 숭상했다. 하후씨(夏后氏)는 사에 소나무를 쓰고 호(戶)를 제사하며, 장사에 담을 세우고 삽(翣)을 두고, 그 악은 하약(夏籥)·구성(九成)·육일(六佾)·육열(六列)·육영(六英)이며 그 복식은 청(靑)을 숭상했다. 은(殷) 사람의 예는 사에 돌을 쓰고 문을 제사하며 장사에 소나무를 심고, 그 악은 대호(大濩)·신로(晨露)이며 그 복식은 백(白)을 숭상했다. 주(周) 사람의 예는 사에 밤나무를 쓰고 부엌을 제사하며 장사에 측백을 심고, 그 악은 대무(大武)·삼상(三象)·극하(棘下)이며 그 복식은 적(赤)을 숭상했다. 예악이 서로 괴이하고 복제가 서로 반대되어도, 모두 친소의 은혜와 상하의 윤리를 잃지 않았다.

禮樂相詭,服制相反,然而皆不失親疏之恩,上下之倫。今握一君之法籍,以非傳代之俗,譬由膠柱而調瑟也。故明主制禮義而為衣,分節行而為帶。衣足以覆形,從典墳,虛循撓,便身體,適行步,不務於奇麗之容,隅眥之削。帶足以結紐收衽,束牢連固,不亟於為文句疏短之。故制禮義,行至德,而不拘於儒墨。所謂明者,非謂其見彼也,自見而已。所謂聰者,非謂聞彼也,自聞而已。所謂達者,非謂知彼也,自知而已。是故身者,道之所託,身得則道得矣。道之得也,以視則明,以聽則聰,以言則公,以行則從。故聖人裁製物也,猶工匠之斲削鑿枘也,宰庖之切割分別也,曲得其宜而不折傷。拙工則不然,大則塞而不入,小則窕而不周,動於心,枝於手,而愈醜。夫聖人之斲削物也,剖之判之,離之散之;已淫已失,復揆以一;既出其根,復歸其門;已雕已琢,還反於樸。合而為道德,離而為儀表。其轉入玄冥,其散應無形。禮義節行,又何以窮至治之本哉!世之明事者,多離道德之本,曰禮義足以治天下,此未可與言術也。所謂禮義者,五帝三王之法籍風俗,一世之跡也。譬若芻狗土龍之始成,文以青黃,絹以綺繡,纏以朱絲,尸祝袀袨,大夫端冕以送迎之。及其已用之後,則壤土草薊而已,夫有孰貴之!故當舜之時,有苗不服,於是舜修政偃兵,執干鏚而舞之。禹之時,天下大雨,禹令民聚土積薪,擇丘陵而處之。武王伐紂,載屍而行,海內未定,故不為三年之喪始。禹遭洪水之患,陂塘之事,故朝死而暮葬。此皆聖人之所以應時耦變,見形而施宜者也。今之修干鏚而笑钁插,知三年非一日,是從牛非馬,以徵笑羽也。以此應化,無以異於彈一絃而會棘下。夫以一世之變,欲以耦化應時,譬猶冬被葛而夏被裘。夫一儀不可以百發,一衣不可以出歲。儀必應乎高下,衣必適乎寒暑。

예악이 서로 괴이하고 복제가 서로 반대되어도, 모두 친소의 은혜와 상하의 윤리를 잃지 않았다. 지금 한 임금의 법적을 잡고 대대로 전한 풍속을 비방하는 것은, 마치 비파 기둥을 접착하여 비파를 조율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명주는 예의를 제정하여 옷을 삼고, 절행을 나누어 띠를 삼는다. 옷은 형상을 덮기에 족하고, 전전(典墳)을 따라 허순(虛循) 요곡(撓曲)하여 몸을 편하게 하고 걷기에 맞으며, 기려(奇麗)한 용모와 모서리 깎음을 구하지 않는다. 띠는 매듭을 맺고 옷자락을 거두어 묶기에 족하고, 단단히 묶고 굳게 이어져, 무늬가 교차하는 그 수식을 급히 하지 않는다(底本 이 글자는 생벽자, 전사 후에 유실). 그러므로 예의를 제정하고 지덕(至德)을 행하되 유묵(儒墨)에 구애되지 않는다. 이른바 밝음은 저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볼 뿐이고, 이른바 총명은 저쪽을 듣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들을 뿐이며, 이른바 통달은 저쪽을 아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알 뿐이다. 그러므로 몸은 도가 의탁하는 바이니, 몸이 얻으면 도가 얻어진다. 도가 얻어지면 이로써 보면 밝고, 이로써 들으면 총명하며, 이로써 말하면 공평하고, 이로써 행하면 사람이 따른다. 그러므로 성인이 물을 재제(裁制)함은, 마치 장인이 깎고 끌로 홈을 파는 것과 같고, 주방의 장이 자르고 나누는 것과 같아, 구부러져도 그 마땅함을 얻어 꺾어 상하지 않는다. 졸공(拙工)은 그렇지 않아, 크면 막혀 들어가지 못하고 작으면 비어 두루하지 못하며, 마음에서 움직여 손에서 갈라져 더욱 추해진다. 성인이 물을 깎는 것은, 그것을 가르고 나누며, 나누고 흩는다. 이미 지나고 이미 잃었으면 다시 하나로 헤아리고, 이미 그 뿌리를 나왔으면 다시 그 문으로 돌아가며, 이미 조각하고 이미 다듬었으면 다시 박(朴)으로 돌아간다. 합하면 도덕이 되고 흩어지면 의표(儀表)가 된다. 현명(玄冥)으로 들어가고 흩어져 무형(無形)에 응한다. 예의와 절행이 또 무엇으로 지치(至治)의 근본을 다하겠는가. 세상에 일을 아는 자는 대개 도덕의 근본을 떠나, 예의로 족히 천하를 다스릴 수 있다 하니, 이는 아직 그와 술을 논할 수 없다. 이른바 예의는 오제삼왕(五帝三王)의 법적과 풍속으로 한 세대의 자취이다. 마치 추구(芻狗)와 토룡(土龍)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청황으로 문을 긋고 기수(綺繡)로 싸고 주사(朱絲)로 휘감아, 시축(尸祝)이 균현(袀袨)을 입고 대부가 단면(端冕)하여 그것을 보내고 맞이한다. 그것을 쓴 뒤에 이르러서는 흙덩이와 풀 뿌리일 뿐이니, 누가 그것을 귀하게 여기겠는가. 그러므로 순(舜)의 때에 유묘(有苗)가 복종하지 않자, 이에 순은 정치를 닦고 병을 그치며 건척을 잡고 춤추었다. 우(禹)의 때에 천하에 큰비가 내려, 우는 백성으로 하여금 흙을 모으고 장작을 쌓아 구릉을 골라 살게 했다. 무왕(武王)이 주(紂)를 칠 때 시신을 싣고 행하여 해내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므로 삼 년의 상을 지행하지 않았고, 우가 홍수의 환난을 당하여 제당(陂塘)의 일을 하였으므로 아침에 죽으면 저녁에 장사했다. 이는 모두 성인이 때에 응하여 변화에 짝하고, 형상을 보고 마땅함을 베푼 것이다. 지금 건척을 닦고 삽을 웃으며, 삼 년이 하루가 아님을 아는 것은, 소를 따르되 말을 아니하여 징으로 우를 웃는 것과 같다. 이로써 변화에 응하는 것은 한 줄을 탄주하여 극하(棘下)에 회하는 것과 다름없다. 한 세대의 변화로써 변화에 짝하고 때에 응하려는 것은, 마치 겨울에 포옷을 입고 여름에 가죽옷을 입는 것과 같다. 한 가지 의로는 백 번 쏠 수 없고, 한 벌의 옷으로는 한 해를 날 수 없다. 의는 반드시 높낮이에 응해야 하고, 옷은 반드시 한서에 맞아야 한다. 그러므로 세상이 다르면 일이 변하고, 때가 옮기면 풍속이 바뀐다.

是故世異則事變,時移則俗易。故聖人論世而立法,隨時而舉事。尚古之王,封於泰山,禪於梁父,七十餘聖,法度不同,非務相反也,時世異也。是故不法其已成之法,而法其所以為法。所以為法者,與化推移者也。夫能與化推移為人者,至貴在焉爾。故狐梁之歌可隨也,其所以歌者不可為也;聖人之法可觀也,其所以作法不可原也;辯士言可聽也,其所以言不可形也。淳均之劍不可愛也,而歐冶之巧可貴也。今夫王喬、赤誦子,吹嘔呼吸,吐故內新,遺形去智,抱素反真,以遊玄眇,上通雲天。今欲學其道,不得其養氣處神,而放其一吐一吸,時詘時伸,其不能乘雲升假亦明矣。五帝三王,輕天下,細萬物,齊死生,同變化,抱大聖之心,以鏡萬物之情,上與神明為友,下與造化為人。今欲學其道,不得其清明玄聖,而守其法籍憲令,不能為治亦明矣。故曰:「得十利劍,不若得歐冶之巧;得百走馬,不若得伯樂之數。」樸至大者無形狀,道至眇者無度量,故天之圓也不得規,地之方也不得矩。往古來今謂之宙,四方上下謂之宇,道在其間,而莫知其所。故其見不遠者,不可與語大;其智不閎者,不可與論至。昔者馮夷得道,以潛大川;鉗且得道,以處昆侖。扁鵲以治病;造父以御馬,羿以之射,倕以之斲,所為者各異,而所道者一也。夫稟道以通物者,無以相非也。譬若同陂而溉田,其受水均也。今屠牛而烹其肉,或以為酸,或以為甘,煎熬燎炙,齊味萬方,其本一牛之體。伐楩柟豫樟而剖梨之,或為棺槨,或為柱梁,披斷撥檖,所用萬方,然一木之樸也。故百家之言,指奏相反,其合道一體也。譬若絲竹金石之會樂同也,其曲家異而不失於體。伯樂、韓風、秦牙、管青,所相各異,其知馬一也。故三皇五帝,法籍殊方,其得民心均也。

그러므로 세상이 다르면 일이 변하고, 때가 옮기면 풍속이 바뀐다. 그러므로 성인은 세상을 논하여 법을 세우고, 때를 따라 일을 행한다. 옛적을 숭상한 왕은 태산에 봉(封)하고 양부(梁父)에 선(禪)했으니, 일흔여 명의 성인이 법도가 같지 않았으니, 서로 반대하려 한 것이 아니라 시세가 달랐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미 이루어진 법을 본받지 않고, 법을 세운 까닭을 본받는다. 법을 세운 까닭은 변화와 함께 옮겨가는 것이다. 능히 변화와 옮겨가며 사람이 되는 자는 지극한 귀함이 거기 있다. 그러므로 호량(狐梁)의 노래는 따라 부를 수 있으나 그렇게 부른 까닭은 지을 수 없고, 성인의 법은 볼 수 있으나 법을 지은 까닭은 추원할 수 없으며, 변사(辯士)의 말은 들을 수 있으나 그렇게 말한 까닭은 형용할 수 없다. 순균(淳均)의 검은 사랑할 수 없으나 구야(歐冶)의 공교는 귀하다. 지금 왕택(王澤)·적송자(赤松子)는 취후(吹呴)와 호흡하여 옛 것을 토하고 새 것을 받아, 형상을 버리고 지혜를 떠나 소를 안고 진으로 돌아가, 현묘(玄眇)에 노니고 위로 운천(雲天)에 통한다. 지금 그들의 도를 배우려 하나 그들의 양기처신(養氣處神)을 얻지 못하고, 그 한 번 토하고 한 번 마시며 때로 굽고 때로 피는 것만 모하면, 구름을 타고 멀리 오르지 못함이 또한 밝다. 오제삼왕은 천하를 가볍게 여기고 만물을 가늘게 여기며, 죽음과 삶을 같게 하고 변화를 같게 하여, 대성(大聖)의 마음을 안고 만물의 정을 비추니, 위로는 신명(神明)과 벗하고 아래로는 조화(造化)와 짝한다. 지금 그들의 도를 배우려 하나 그들의 청명현성(清明玄聖)을 얻지 못하고, 그들의 법적과 헌령을 지키면, 다스릴 수 없음이 또한 밝다. 그러므로 말한다. 「날카로운 검 열 자루를 얻음은 구야의 공교를 얻음만 못하고, 달리는 말 백 필을 얻음은 백락(伯樂)의 재주를 얻음만 못하다.」 박(朴)이 지극히 크면 형상이 없고, 도가 지극히 묘하면 도량이 없다. 그러므로 하늘의 둥글음은 규로 할 수 없고, 땅의 모남은 구로 할 수 없다. 왕고래금(往古來今)을 주(宙)라 하고, 사방상하(四方上下)를 우(宇)라 하는데, 도가 그 가운데 있으나 그 있는 곳을 아는 자가 없다. 그러므로 견식이 멀지 않은 자에게는 큰 것을 논할 수 없고, 지혜가 넓지 않은 자에게는 지극함을 논할 수 없다. 옛적 풍이(馮夷)가 도를 얻어 대천에 잠기고, 견저(鉗且)가 도를 얻어 곤륜에 있었으며, 편작(扁鵲)은 이로써 병을 고치고, 조보(造父)는 이로써 말을 몰며, 예(羿)는 이로써 쏘고, 수(倕)는 이로써 깎았으니, 행한 바가 각각 다르나 그 연한 도는 하나다. 도를 받아 물에 통한 자는 서로 비방할 수 없다. 마치 같은 둑에서 밭을 적시는 것과 같아 물을 받는 것이 균일하다. 지금 소를 잡아 그 고기를 삶아, 혹 신 것으로 하고 혹 단 것으로 하며, 데치고 굽고 볶아 조화하여 만 가지 방법을 이루나, 그 근본은 한 마리 소의 몸이다. 변남(楩柟)·예장(豫樟)을 베어 쪼개면, 혹 관곽(棺槨)을 만들고 혹 기둥과 들보를 만들며, 쪼개고 꺾어 쓰는 바가 만 가지이나 한 나무의 박(朴)이다. 그러므로 백가의 말은 지향이 서로 반대되나 도에 합함은 한 몸이다. 마치 사죽(絲竹)·금석(金石)이 모여 연주함이 같되 곡은 집집이 다르나 몸을 잃지 않는 것과 같다. 백락·한풍(韓風)·진아(秦牙)·관청(管青)이 살피는 바가 각각 다르나 말을 아는 것은 하나다. 그러므로 삼황오제는 법적이 방향이 다르나 민심을 얻는 것은 균일하다.

故湯入夏而用其法,武王入殷而行其禮,桀、紂之所以亡,而湯、武之所以為治。故剞劂銷鋸陳,非良工不能以制木;鑪橐埵坊設,非巧冶不能以冶金。屠牛吐一朝解九牛,而刀以剃毛;庖丁用刀十九年,而刀如新剖硎。何則?遊乎眾虛之閒。若夫規矩鉤繩者,此巧之具也,而非所以巧也。故瑟無絃,雖師文不能以成曲;徒絃,則不能悲。故絃,悲之具也,而非所以為悲也。若夫工匠之為連鐖、運開、陰閉、眩錯,入於冥冥之眇,神調之極,遊乎心手眾虛之閒,而莫與物為際者,父不能以教子。瞽師之放意相物,寫神愈舞,而形乎絃者,兄不能以喻弟。今夫為平者準也,為直者繩也。若夫不在於繩準之中,可以平直者,此不共之術也。故叩宮而宮應,彈角而角動,此同音之相應也。其於五音無所比,而二十五絃皆應,此不傳之道也。故蕭條者,形之君;而寂寞者,音之主也。天下是非無所定,世各是其所是而非其所非,所謂是與非各異,皆自是而非人。由此觀之,事有合於己者,而未始有是也;有忤於心者,而未始有非也。故求是者,非求道理也,求合於己者也;去非者,非批邪施也,去忤於心者也。忤於我,未必不合於人也;合於我,未必不非於俗也。至是之是無非,至非之非無是,此真是非也。若夫是於此而非於彼,非於此而是於彼者,此之謂一是一非也。此一是非,隅曲也;夫一是非,宇宙也。今吾欲擇是而居之,擇非而去之,不知世之所謂是非者,不知孰是孰非。老子曰:「治大國若烹小鮮。」為寬裕者曰勿數撓,為刻削者曰致其鹹酸而已矣。晉平公出言而不當,師曠舉琴而撞之,跌衽宮壁。左右欲塗之,平公曰:「舍之!以此為寡人失。」孔子聞之曰:「平公非不痛其體也,欲來諫者也。」韓子聞之曰:「群臣失禮而弗誅,是縱過也。有以也夫,平公之不霸也!

그러므로 탕(湯)은 하(夏)에 들어가 그 법을 쓰고, 무왕은 은에 들어가 그 예를 행하였으니, 걸·주가 망한 까닭이 곧 탕·무가 다스린 까닭이다. 그러므로 칼과 톱을 깎아 진열해 두어도 좋은 장인이 아니면 나무를 제어하지 못하고, 화로와 주조하는 흙 틀을 설치해 두어도 공교한 야공이 아니면 쇠를 녹이지 못한다. 우소(屠牛吐)는 아침에 아홉 마리 소를 해체해도 칼로 털을 깎을 수 있고, 포정(庖丁)은 칼을 쓴 지 십구 년이 되어도 칼이 새로 숫돌에서 갈아 낸 것 같으니, 무엇 때문인가. 뭇 빈틈 사이를 노닐기 때문이다. 규구(規矩)와 구승(鉤繩)에 이르러서는, 이는 공교의 기구이나 공교의 까닭이 아니다. 그러므로 비파에 줄이 없으면 비록 사문(師文)이라도 곡을 이루지 못하고, 줄만 있으면 슬퍼할 수 없다. 그러므로 줄은 슬픔의 기구이나 슬픔의 까닭이 아니다. 장인이 연계(連機)와 개합(開闔)·암폐(暗閉)·교착현혹(交錯眩惑)을 만들어 명명(冥冥)의 묘(眇)에 들어가고, 신이 조절하여 극에 이르러, 마음과 손의 뭇 빈틈 사이를 노닐되 물과 접하지 않는 것은, 아버지도 아들에게 가르치지 못한다. 맹인 악사가 뜻을 놓아 물을 모사(摹寫)하여, 신을 그려 춤보다 나아 줄 위에 형상을 이루는 것은, 형도 아우에게 깨우치지 못한다. 지금 평평함을 구하는 것은 수준이고 곧음을 구하는 것은 승묵이다. 승준(繩準) 가운데 있지 않으면서 평직할 수 있는 것은, 이는 함께하지 않는 술이다. 그러므로 궁(宮)을 두드리면 궁이 응하고, 각(角)을 타면 각이 움직이니, 이는 같은 음이 서로 응함이다. 오음에 비길 바가 없으나 스물다섯 줄이 모두 응하는 것은, 이는 전하지 않는 도이다. 그러므로 소조(蕭條)는 형상의 임금이고, 적막(寂寞)은 소리의 주인이다. 천하의 시비에 정한 바가 없어, 세상이 각각 자기의 옳음을 옳다 하고 자기의 그름을 그르다 하니, 이른바 옳음과 그름이 각각 달라 모두 자기를 옳다 하고 남을 그르다 한다. 이로부터 보면, 일이 자기에게 합하는 것도 일찍이 참으로 옳은 것이 없고, 마음에 거스르는 것도 일찍이 참으로 그른 것이 없다. 그러므로 옳음을 구하는 자는 도리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합하는 것을 구하고, 그름을 버리는 자는 사사(邪僻)를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거스르는 것을 버린다. 나에게 거슬려도 남에게 합하지 않을 것이 없고, 나에게 합하여도 세속에 그르지 않을 것이 없다. 지극한 옳음의 옳음에는 그름이 없고, 지극한 그름의 그름에는 옳음이 없으니, 이것이 참된 시비다. 여기서 옳고 저기서 그르며, 여기서 그르고 저기서 옳은 것은 이를 일시일비(一是一非)라 한다. 이 한 가지의 시비는 모퉁이의 굽은 곳이고, 저 한 가지의 시비는 우주다. 지금 내가 옳음을 골라 살고 그름을 골라 버리려 하나, 세상의 이른바 시비를 알지 못하여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모른다. 노자가 말했다.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삶는 것과 같다.」 관여(寬裕)를 주장하는 자는 자주 휘젓지 말라 하고, 각삭(刻削)을 주장하는 자는 짜고 신 것을 맞추기만 하면 된다 한다. 진평공(晉平公)이 말이 마땅하지 않게 나오자, 사광(師曠)이 거문고를 들어 그를 치니 옷자락이 궁벽에 넘어졌다. 좌우가 그 자국을 지우려 하니 평공이 말했다. 「그것을 두라. 이것으로 과인의 허물을 삼으리라.」 공자가 듣고 말했다. 「평공이 그 몸을 아파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간하는 자를 오게 하려 한 것이다.」 한자(韓子)가 듣고 말했다. 「군신이 예를 잃어도 주살하지 않으면 허물을 방종하는 것이다. 평공이 패하지 못한 까닭이 있도다!」

」故賓有見人於宓子者,賓出,宓子曰:「子之賓獨有三過:望我而笑,是攓也。談語而不稱師,是返也。交淺而言深,是亂也。」賓曰:「望君而笑,是公也。談語而不稱師,是通也。交淺而言深,是忠也。」故賓之容一體也,或以為君子,或以為小人,所自視之異也。故趣舍合,即言忠而益親;身疏,即謀當而見疑。親母為其子治扢禿,而血流至耳,見者以為其愛之至也;使在於繼母,則過者以為嫉也。事之情一也,所從觀者異也。從城上視牛如羊,視羊如豕,所居高也。窺面於盤水則員,於杯則隋。面形不變其故,有所員、有所隋者,所自窺之異也。今吾雖欲正身而待物,庸遽知世之所自窺我者乎!若轉化而與世競走,譬猶逃雨也,無之而不濡。常欲在於虛,則有不能為虛矣;若夫不為虛而自虛者,此所慕而不能致也。故通於道者,如車軸,不運於己,而與轂致千里,轉無窮之原也。不通於道者,若迷惑,告以東西南北,所居聆聆,一曲而闢,然忽不得,復迷惑也。故終身隸於人,闢若俔之見風也,無須臾之閒定矣。故聖人體道反性,不化以待化,則幾於免矣。治世之體易守也,其事易為也,其禮易行也,其責易償也。是以人不兼官,官不兼事,士農工商,鄉別州異。是故農與農言力,士與士言行,工與工言巧,商與商言數。是以士無遺行,農無廢功,工無苦事,商無折貨,各安其性,不得相干。故伊尹之興土功也,修脛者使之蹠钁,強脊者使之負土,眇者使之準,傴者使之塗,各有所宜,而人性齊矣。胡人便於馬,越人便於舟,異形殊類,易事而悖,失處而賤,得勢而貴。聖人總而用之,其數一也。夫先知遠見,達視千里,人才之隆也,而治世不以責於民。博聞強志,口辯辭給,人智之美也,而明主不以求於下。敖世輕物,不汙於俗,士之伉行也,而治世不以為民化。

그러므로 손님이 사람을 복자(宓子)에게 인사시킨 적이 있는데, 손님이 나가자 복자가 말했다. 「그대의 손님은 홀로 세 가지 허물이 있다. 나를 보며 웃은 것은 거만함이요, 말을 하면서 스승을 칭하지 않은 것은 거스름이요, 사귐이 얕은데 말이 깊은 것은 어지러움이다.」 손님이 말했다. 「임금을 보며 웃은 것은 공(公)이요, 말을 하면서 스승을 칭하지 않은 것은 통달함이요, 사귐이 얕은데 말이 깊은 것은 충(忠)입니다.」 그러므로 손님의 용모는 한 몸인데, 혹은 군자로 여기고 혹은 소인으로 여기는 것은 스스로 보는 각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취사(趨舍)가 합하면 말이 충실해도 더욱 친해지고, 몸이 소원하면 모략이 마땅해도 의심받는다. 친어머니가 아들의 머리 종기를 고치니 피가 귀에 이르자, 보는 자는 사랑이 극에 이르렀다 여기지만, 만일 계모라면 지나는 자가 시기라 여긴다. 일의 정은 하나인데 보는 곳이 다르다. 성 위에서 소를 보면 양 같고 양을 보면 돼지 같은 것은, 있는 곳이 높기 때문이다. 쟁반의 물에서 얼굴을 들여다보면 둥글고 잔에서 들여다보면 타원이다. 얼굴 모양이 그 본래를 바꾸지 않는데, 어떤 것은 둥글고 어떤 것은 타원인 것은 스스로 들여다보는 그릇이 다르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비록 몸을 바로 하여 물을 대하려 해도, 어찌 세상이 어디서 나를 들여다보는지 알겠는가. 만일 변화하여 세상과 함께 달리면, 비를 피하는 것과 같아 가는 곳마다 젖지 않는 데가 없다. 항상 허(虛)에 있으려 하면 허가 될 수 없는 것이 있고, 허가 되지 않으면서 스스로 허인 것은, 이는 흠모하되 이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에 통한 자는 수레 축과 같아, 스스로 운행하지 않으나 바퀴통과 함께 천 리에 이르러 무궁한 근원에서 구른다. 도에 통하지 못한 자는 미혹한 것과 같아, 동서남북을 알려 주어도 있는 곳을 들어 분명하다가, 한 번 굽어 비뚤어지고 홀연히 다시 얻지 못하여 다시 미혹한다. 그러므로 평생 남에게 예속되니, 마치 바람을 기다리는 새가 바람을 본 것과 같아 잠시도 안정이 없다. 그러므로 성인은 도를 체하고 성으로 돌아가, 스스로 변화하지 않고 변화를 기다리니 거의 면한다. 다스려진 세상의 체는 지키기 쉽고, 그 일은 하기 쉬우며, 그 예는 행하기 쉽고, 그 책임은 갚기 쉽다. 이로써 사람이 벼슬을 겸하지 않고 벼슬이 일을 겸하지 않으며, 선비와 농부와 장인과 상인이 향리(鄕里)를 구별하고 주리(州里)가 다르다. 그러므로 농부는 농부와 힘을 논하고, 선비는 선비와 행을 논하며, 장인은 장인과 공교를 논하고, 상인은 상인과 수를 논한다. 그러므로 선비는 빠뜨린 행이 없고, 농부는 버린 공이 없으며, 장인은 거친 일이 없고, 상인은 손해본 물건이 없어, 각각 그 성에 편안하고 서로 범하지 않는다. 이윤(伊尹)이 토목 공사를 일으킬 때, 다리가 긴 자는 삽을 밟게 하고, 허리가 강한 자는 흙을 지게 하며, 애꾸눈은 수준을 보게 하고, 곱사등이는 바르게 하여, 각각 마땅한 바가 있어 인성이 고르다. 호인은 말에 편하고 월인은 배에 편하여, 형태가 다르고 부류가 다르며, 일을 바꾸면 어그러지고 처소를 잃으면 천해지며, 형세를 얻으면 귀해진다. 성인은 총괄하여 그들을 쓰니 그 수가 하나다. 미리 알고 멀리 보아 시력이 천 리에 닿는 것은 인재의 융성이나, 다스려진 세상은 이로써 백성을 책하지 않는다. 넓이 듣고 잘 기억하여 말과 사변이 민첩한 것은 사람 지혜의 아름다움이나, 명주는 이로써 아래에 구하지 않는다. 세상을 오만하게 보고 물건을 가볍게 여겨 세속에 더럽혀지지 않는 것은 선비의 항행(伉行)이나, 다스려진 세상은 이로써 백성을 교화하지 않는다.

神機陰閉,剞劂無跡,人巧之妙也,而治世不以為民業。故萇弘、師曠,先知禍福,言無遺策,而不可與眾同職也;公孫龍折辯抗辭,別同異,離堅白,不可與眾同道也;北人無擇非舜而自投清泠之淵,不可以為世儀;魯般、墨子以木為鳶而飛之,三日不集,而不可使為工也。故高不可及者,不可以為人量;行不可逮者,不可以為國俗。夫挈輕重不失銖兩,聖人弗用,而縣之乎銓衡;視高下不差尺寸,明主弗任,而求之乎浣準。何則?人才不可專用,而度量可世傳也。故國治可與愚守也,而軍制可與權用也。夫待騕褭飛兔而駕之,則世莫乘車;待西施、毛嬙而為配,則終身不家矣。然非待古之英俊,而人自足者,因所有而並用之。夫騏驥千里,一日而通;駑馬十舍,旬亦至之。由是觀之,人材不足專恃,而道術可公行也。亂世之法,高為量而罪不及,重為任而罰不勝,危為禁而誅不敢。民困於三責,則飾智而詐上,犯邪而幹免。故雖峭法嚴刑,不能禁其姦。何者?力不足也。故諺曰:「鳥窮則噣,獸窮則,人窮則詐。」此之謂也。道德之論,譬猶日月也,江南河北不能易其指,馳鶩千里不能易其處。趨舍禮俗,猶室宅之居也,東家謂之西家,西家謂之東家,雖皋陶為之理,不能定其處。故趨舍同,誹譽在俗;意行鈞,窮達在時。湯、武之累行積善,可及也;其遭桀、紂之世,天授也。今有湯、武之意,而無桀、紂之時,而欲成霸王之業,亦不幾矣。昔武王執戈秉鉞以伐紂勝殷,搢笏杖殳以臨朝。武王既沒,殷民叛之,周公踐東宮,履乘石,攝天子之位,負扆而朝諸侯,放蔡叔,誅管叔,克殷殘商,祀文王於明堂,七年而致政成王。夫武王先武而後文,非意變也,以應時也;周公放兄誅弟,非不仁也,以匡亂也。故事周於世則功成,務合於時則名立。昔齊桓公合諸侯以乘車,退誅於國以斧鉞;

신기(神機)가 은밀히 닫히고 조각에 자취가 없는 것은 사람 공교의 묘하나, 다스려진 세상은 이로써 백성의 업을 삼지 않는다. 그러므로 장홍(萇弘)·사광(師曠)은 미리 화복을 알아 말에 빠뜨린 책략이 없었으나, 뭇 사람과 같은 직분에 둘 수 없고, 공손룡(公孫龍)은 변을 꺾고 사변을 항하여 동이를 구별하고 견백(堅白)을 나누었으나, 뭇 사람과 같은 도에 둘 수 없으며, 북인무택(北人無擇)은 순을 비방하고 스스로 청령연(清泠之淵)에 몸을 던졌으나, 세상의 의표가 될 수 없고, 노반(魯般)·묵자(墨子)는 나무로 연을 만들어 날게 하여 사흘을 내려앉지 않았으나, 그들을 장인으로 삼을 수 없다. 그러므로 높아 미칠 수 없는 것은 사람의 도량으로 삼을 수 없고, 행하여 미칠 수 없는 것은 나라의 풍속으로 삼을 수 없다. 가벼움과 무거움을 들어 주량(銖兩)을 어기지 않는 것은 성인도 쓰지 않고 저울에 매달며, 높낮이를 보아 촌분(尺寸)을 어기지 않는 것은 명주도 임명하지 않고 수준기에 구한다. 무엇 때문인가. 인재는 전용할 수 없고 도량은 세대로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라가 다스려지면 어리석은 자와 함께 지킬 수 있고, 군제는 권변과 함께 쓸 수 있다. 요녈(騕褭)·비토(飛兔)를 기다려 몰아야 세상에 수레 탈 사람이 없고, 서시(西施)·모장(毛嬙)을 기다려 배필을 삼아야 평생 집을 이루지 못한다. 그러나 옛 영준(英俊)을 기다리지 않고 사람이 스스로 족한 것은, 가진 바를 인하여 함께 쓰기 때문이다. 기린(騏驥)은 천 리를 하루에 통하고, 노마(駑馬)는 열 숙(舍)을 가도 순(旬)이면 이른다. 이로부터 보면 인재는 전용하여 의지할 만하지 못하고, 도술은 공히 행할 수 있다. 어지러운 세상의 법은 도량을 높이 정하여 미치지 못하는 자를 죄하고, 임무를 무겁게 정하여 감당하지 못하는 자를 벌하며, 금령을 위태롭게 정하여 감히 하지 못하는 자를 주살한다. 백성이 이 세 가지 책망에 곤란당하면, 지혜를 꾸며 위를 속이고 사(邪)를 범하여 면함을 구한다. 그러므로 비록 법이 가파르고 형이 엄해도 그 간(奸)을 금할 수 없다. 무엇 때문인가.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속담에 말했다. 「새가 궁하면 쪼고, 짐승이 궁하면 (底本 이 글자는 생벽자, 전사 후에 유실), 사람이 궁하면 속인다.」 이를 말한 것이다. 도덕의 논은 일월과 같아, 강남과 하북이 그 지향을 바꾸지 못하고, 천 리를 달려도 그 있는 곳을 바꾸지 못한다. 취사와 예속은 집의 거처와 같아, 동가(東家)를 서가(西家)라 하고 서가를 동가라 하니, 비록 고요(皋陶)가 와서 다스려도 그 있는 곳을 정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취사가 같으면 비예가 풍속에 있고, 뜻과 행이 균일하면 궁달(窮達)이 때에 있다. 탕·무가 행을 쌓고 선을 쌓은 것은 미칠 수 있으나, 그들이 걸·주의 세상을 당한 것은 하늘이 준 것이다. 지금 탕·무의 뜻은 있으나 걸·주의 때가 없으면서 패왕의 업을 이루려 하면, 또한 거의 불가능하다. 옛적 무왕이 창을 잡고 도끼를 잡아 주를 치고 은을 이기고, 호(笏)를 끼고 수(殳)를 짚고 조회에 임했다. 무왕이 이미 죽자 은의 백성이 반란하니, 주공이 동궁을 밟고 승석(乘石)을 밟아 천자의 위를 섭행하고, 의상(斧依) 병풍을 등지고 제후를 조회하게 하여, 채숙(蔡叔)을 쫓아내고 관숙(管叔)을 주살하며, 은을 극복하고 상을 부수고 명당(明堂)에서 문왕을 제사하여, 칠 년 만에 정치를 성왕(成王)에게 돌렸다. 무왕이 먼저 무(武)하고 뒤에 문(文)한 것은 뜻이 변한 것이 아니라 때에 응하기 위함이고, 주공이 형을 쫓아내고 아우를 주살한 것은 불인한 것이 아니라 어지러움을 바로잡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일이 세상에 두루하면 공이 이루어지고, 일이 때에 합하면 이름이 선다. 옛적 제환공이 제후를 합함에 승차(乘車)를 쓰고, 나라에서 벌함에 부월(斧鉞)을 썼다.

晉文公合諸侯以革車,退行於國以禮義。桓公前柔而後剛,文公前剛而後柔,然而令行乎天下,權制諸侯鈞者,審於勢之變也。顏闔,魯君欲相之,而不肯,使人以幣先焉,鑿培而遁之,為天下顯武。使遇商鞅、申不害,刑及三族,又況身乎!世多稱古之人而高其行,並世有與同者而弗知貴也,非才下也,時弗宜也。故六騏驥、四駃騠,以濟江河,不若窾木便者,處世然也。是故立功之人,簡於行而謹於時。今世俗之人,以功成為賢,以勝患為智,以遭難為愚,以死節為戇,吾以為各致其所極而已。王子比干非不知箕子被髮佯狂以免其身也,然而樂直行盡忠以死節,故不為也。伯夷、叔齊非不能受祿任官以致其功也,然而樂離世伉行以絕眾,故不務也。許由、善卷非不能撫天下、寧海內以德民也,然而羞以物滑和,故弗受也。豫讓、要離非不知樂家室、安妻子以偷生也,然而樂推誠行,必以死主,故不留也。今從箕子視比干,則愚矣;從比干視箕子,則卑矣;從管、晏視伯夷,則戇矣;從伯夷視管、晏,則貪矣。趨舍相非,嗜慾相反,而各樂其務,將誰使正之?曾子曰:「擊舟水中,鳥聞之而高翔,魚聞之而淵藏。」故所趨各異,而皆得所便。故惠子從車百乘以過孟諸,莊子見之,棄其餘魚。鵜胡飲水數鬥而不足,鱔鮪入口若露而死,智伯有三晉而欲不澹,林類、榮啟期衣若縣衰而意不慊。由此觀之,則趣行各異,何以相非也!夫重生者不以利害己,立節者見難不苟免,貪祿者見利不顧身,而好名者非義不苟得。此相為論,譬猶冰炭鉤繩也,何時而合!若以聖人為之中,則兼覆而並之,未有可是非者也。夫飛鳥主巢,狐狸主穴,巢者巢成而得棲焉,穴者穴成而得宿焉。趨舍行義,亦人之所棲宿也,各樂其所安,致其所蹠,謂之成人。故以道論者,總而齊之。

진문공(晉文公)은 제후를 합함에 혁거(革車)를 쓰고, 나라에서 행함에 예의를 썼다. 환공은 먼저 유(柔)하고 뒤에 강(剛)했고, 문공은 먼저 강하고 뒤에 유했으나, 명령이 천하에 행해지고 권으로 제후를 제어함이 균일한 것은, 형세의 변화를 살폈기 때문이다. 안합(顏闔)은 노의 임금이 그를 재상으로 삼으려 했으나 허락하지 않고, 사람을 보내 비단을 먼저 보내자 담을 뚫고 달아나, 천하에 현무(顯武)가 되었다. 만일 상앙·신불해(申不害)를 만났다면 형벌이 삼족에 미쳤을 것인데, 하물며 자기 몸이겠는가. 세상이 옛사람을 칭송하고 그 행을 높이나, 같은 시대에 그들과 같은 자가 있어도 귀하게 여기는 줄을 모르니, 재주가 낮은 것이 아니라 때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린 여섯 필과 쾌제(駃騠) 네 필로 강하를 건너도 빈 나무토막만 못하니, 세상에 처함이 그렇게 한다. 그러므로 공을 세우는 자는 행이 간약하고 때를 삼간다. 지금 세속의 사람은 공이 이루어짐을 어질다 하고, 환난을 이김을 지혜롭다 하며, 어려움을 당함을 어리석다 하고, 절에 죽음을 우직하다 한다. 나는 각각 그 지극한 곳에 이르렀을 뿐이라 생각한다. 왕자비간(王子比干)은 기자(箕子)가 머리를 풀고 미친 체하여 그 몸을 면함을 모른 것이 아니나, 곧게 행하고 충을 다하여 절에 죽기를 즐겼으므로 하지 않았다. 백이·숙제(叔齊)는 녹을 받고 벼슬을 맡아 그 공을 이룰 수 없었던 것이 아니나, 세상을 떠나 높이 행하여 뭇 사람과 끊기를 즐겼으므로 하지 않았다. 허유(許由)·선권(善卷)은 천하를 어루만지고 해내를 편안히 하여 백성에게 덕을 베풀 수 없었던 것이 아니나, 물로 화를 어지럽히기를 부끄러워하여 받지 않았다. 예양(豫讓)·요리(要離)는 집을 즐기고 처자를 편안히 하여 구차하게 삶을 모른 것이 아니나, 지성을 밀어 행하여 반드시 주를 위해 죽기를 즐겼으므로 머무르지 않았다. 지금 기자로부터 비간을 보면 어리석고, 비간으로부터 기자를 보면 비하며, 관중·안영(晏嬰)으로부터 백이를 보면 우직하고, 백이로부터 관중·안영을 보면 탐욕이다. 취사가 서로 비방하고 기욕이 서로 반대되나, 각각 그 일하는 바를 즐기니, 누구로 하여금 바로잡게 하겠는가. 증자가 말했다. 「물속에서 배를 치면 새는 듣고 높이 날고 물고기는 듣고 못에 숨는다.」 그러므로 나아가는 바가 각각 다르나 모두 그 편한 바를 얻는다. 혜자(惠子)가 백 승의 수레를 따라 맹저(孟諸)를 지날 때, 장자(莊子)가 보고 남은 물고기를 버렸다. 제호(鵜胡)는 물을 몇 말 마셔도 부족하고, 전위(鱓鮪)는 입에 들어가 이슬 같아 죽으며, 지백(智伯)은 삼진(三晉)을 가지고도 욕심이 담백하지 않고, 임류(林類)·영계기(榮啓期)는 옷이 드리운 포대 같아도 뜻이 부족함이 없었다. 이로부터 보면 취향과 행이 각각 다른데 무엇으로 서로 비방하겠는가. 삶을 중히 여기는 자는 이익으로 자기를 해치지 않고, 절을 세우는 자는 어려움을 보아도 구차하게 면하지 않으며, 녹을 탐하는 자는 이익을 보아 몸을 돌보지 않고, 이름을 좋아하는 자는 의가 아니면 구차하게 얻지 않는다. 이들이 서로 논함은 마치 얼음과 숯불, 갈고리와 먹줄과 같으니 어느 때에 합하겠는가. 만일 성인을 그 중심으로 삼으면, 겸하여 덮고 함께 가져 옳고 그를 바가 없다. 날짐승은 둥지를 주(主)로 하고 여우는 굴을 주로 하여, 둥지가 이루어지면 깃들 바를 얻고 굴이 이루어지면 묵을 바를 얻는다. 취사와 행의도 또한 사람이 깃들고 묵는 바이니, 각각 그 편안함을 즐기고 그 밟는 바에 이르는 것을 성인(成人)이라 한다. 그러므로 도로써 논하는 자는 총괄하여 그것들을 같게 한다.

治國之道,上無苛令,官無煩治,士無偽行,工無淫巧,其事經而不擾,其器完而不飾。亂世則不然。為行者相揭以高,為禮者相矜以偽,車輿極於雕琢,器用逐於刻鏤,求貨者爭難得以為寶,詆文者處煩撓以為慧,爭為佹辯,久稽而不訣,無益於治。工為奇器,歷歲而後成,不周於用。故神農之法曰:「丈夫丁壯而不耕,天下有受其飢者。婦人當年而不織,天下有受其寒者。」故身自耕,妻親織,以為天下先。其導民也,不貴難得之貨,不器無用之物。是故其耕不強者,無以養生;其織不強者,無以揜形;有餘不足,各歸其身。衣食饒溢,姦邪不生,安樂無事而天下均平,故孔丘、曾參無所施其善,孟賁、成荊無所行其威。衰世之俗,以其知巧詐偽,飾眾無用,貴遠方之貨,珍難得之財,不積於養生之具。澆天下之淳,析天下之樸,牿服馬牛以為牢。滑亂萬民,以清為濁,性命飛揚,皆亂以營。貞信漫瀾,人失其情性。於是,乃有翡翠犀象、黼黻文章以亂其目,芻豢黍梁、荊吳芬馨以嚂其口,鐘鼓管簫、絲竹金石以淫其耳,趨舍行義、禮節謗議以營其心。於是,百姓糜沸豪亂,暮行逐利,煩挐澆淺,法與義相非,行與利相反。雖十管仲,弗能治也。且富人則車輿衣纂錦,馬飾傅旄象,帷幕茵席,綺繡絛組,青黃相錯,不可為象;貧人則夏被褐帶索,含菽飲水以充腸,以支暑熱,冬則羊裘解札,短褐不掩形,而煬灶口;故其為編戶齊民無以異,然貧富之相去也,猶人君與僕虜,不足以論之。夫乘奇技、偽邪施者,自足乎一世之閒;守正修理、不苟得者,不免乎飢寒之患;而欲民之去末反本,由是發其原而壅其流也。夫雕琢刻鏤,傷農事者也;錦繡纂組,害女工者也。農事廢,女工傷,則飢之本而寒之原也。夫飢寒並至,能不犯法幹誅者,古今之未聞也。故仕鄙在時不在行,利害在命不在智。

나라를 다스리는 도는, 위에 가혹한 명령이 없고, 관리에게 번잡한 다스림이 없으며, 선비에게 거짓된 행이 없고, 장인에게 지나친 공교가 없으며, 그 일은 경(經)하여 어지럽히지 않고, 그 기구는 온전하여 장식하지 않는다. 어지러운 세상은 그렇지 않다. 행을 하는 자는 서로 들어 올려 높아 보이고, 예를 하는 자는 서로 긍위(矜僞)하며, 수레는 조각에 지나치고 기구는 새김을 쫓으며, 화물을 구하는 자는 얻기 어려운 것을 다투어 보배로 삼고, 문장을 꾸미는 자는 번요(煩擾)함을 지혜로 삼아, 다투어 궤변(詭辯)을 하고 오래 머물러 결단하지 않으니, 다스림에 이익이 없다. 장인이 기기(奇器)를 만들어 한 해를 지나야 이루어지나 쓰임에 맞지 않는다. 그러므로 신농(神農)의 법에 말했다. 「장부가 장정하여 밭을 갈지 않으면 천하에 그의 영향으로 굶주리는 자가 있고, 부인이 당년에 베를 짜지 않으면 천하에 그의 영향으로 추운 자가 있다.」 그러므로 몸소 밭을 갈고 아내가 친히 베를 짜서 천하의 앞장을 했다. 그가 백성을 이끎에, 얻기 어려운 화물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쓸모없는 물건을 기구로 삼지 않았다. 그러므로 밭 가는 것이 강하지 않은 자는 삶을 기를 수 없고, 베 짜는 것이 강하지 않은 자는 형상을 가릴 수 없으며, 여유와 부족은 각각 자기 몸에 돌아간다. 의식이 넘치면 간사함이 생기지 않고, 편안하고 즐거워 일이 없으면 천하가 균일하니, 그러므로 공구(孔丘)·증삼(曾參)도 그들의 선을 베풀 곳이 없고, 맹분(孟賁)·성형(成荊)도 그들의 위엄을 행할 곳이 없다. 쇠한 세상의 풍속은, 그 지혜와 공교·사위(詐僞)로써 뭇 쓸모없는 것을 꾸미고, 먼 곳의 화물을 귀하게 여기며 얻기 어려운 재물을 진귀히 여겨, 삶을 기르는 기구를 쌓지 않는다. 천하의 순(淳)을 엷게 하고 천하의 박(朴)을 나누며, 부리는 말과 소를 우리에 가둔다. 만민을 휘어 어지럽혀 맑은 것을 탁한 것으로 하고, 성명이 나부끼며 모두 어지러워 미혹하니, 정신(貞信)이 만란(漫瀾)하여 흩어지고 사람이 그 정성을 잃는다. 이에 비로소 비취와 서우와 상아·부복문장(黼黻文章)으로 그 눈을 어지럽히고, 초환(芻豢)과 서량(黍粱)·형오(荊吳)의 향기로운 것으로 그 입을 탐하게 하며, 종고와 관소·사죽과 금석으로 그 귀를 음란하게 하고, 취사와 행의·예절과 방의(謗議)로 그 마음을 어지럽힌다. 이에 백성이 죽이 끓고 호저(豪猪)가 어지럽게 뛰는 듯하여, 밤에 나가 이익을 쫓고, 번잡하고 어지러우며 엷어, 법과 의가 서로 비방하고 행과 이익이 서로 반대된다. 비록 열 명의 관중이라도 다스리지 못한다. 하물며 부자는 수레와 옷에 찬금(纂錦)을 입히고, 말의 장식에 마오(旄牛) 꼬리와 상아를 붙이며, 장막과 자리에 기수(綺繡)와 도조(絛組)로 청황이 교차하여 그 형상을 이룰 수 없고, 가난한 자는 여름에 거친 옷을 입고 끈을 띠며, 콩을 씹고 물을 마셔 창자를 채워 더위를 지탱하고, 겨울에는 양가죽옷이 갈라져 조각나고 짧은 갈옷이 형상을 가리지 못하여, 부엌 아궁이를 쬔다. 그러므로 함께 편호제민(編戶齊民)이 되어 다름이 없는데, 빈부의 서로 떨어짐이 마치 인군과 노예와 같아 논할 수 없다. 기기(奇技)를 타고 사위(僞邪)를 베푸는 자는 한 세대 사이에 스스로 족하고, 바름을 지키고 이치를 닦아 구차하게 얻지 않는 자는 굶주리고 추위의 환난을 면하지 못하면서, 백성으로 하여금 말을 버리고 본으로 돌아가게 하려는 것은, 이로써 그 근원을 열고 그 흐름을 막는 것이다. 조각하고 새기는 것은 농사를 상하게 하는 것이고, 금수(錦繡)와 찬조(纂組)는 여공(女工)을 해치는 것이다. 농사가 폐하고 여공이 상하면 곧 굶주림의 근본이요 추위의 원천이다. 굶주림과 추위가 함께 이르러 법을 범하고 주살을 건드리지 않을 수 있는 것은, 고금에 일찍이 듣지 못했다. 그러므로 벼슬의 비하는 때에 있고 행에 있지 않으며, 이해(利害)는 명에 있고 지혜에 있지 않다.

夫敗軍之卒,勇武遁逃,將不能止也;勝軍之陳,怯者死行,懼不能走也。故江河決,沉一鄉,父子兄弟相遺而走,爭升陵阪,上高丘,輕足先升,不能相顧也;世樂志平,見鄰國之人溺,尚猶哀之,又況親戚乎!故身安則恩及鄰國,志為之滅;身危則忘其親戚,而人不能解也。遊者不能拯溺,手足有所急也;灼者不能救火,身體有所痛也。夫民有餘即讓,不足則爭。讓則禮義生,爭則暴亂起。扣門求水,莫弗與者,所饒足也;林中不賣薪,湖上不鬻魚,所有餘也。故物豐則欲省,求澹則爭止。秦王之時,或人葅子,利不足也;劉氏持政,獨夫收孤,財有餘也。故世治則小人守政,而利不能誘也;世亂則君子為姦,而法弗能禁也。

패군(敗軍)의 졸은 용무도 도망하여 장수가 그칠 수 없고, 승군(勝軍)의 진은 겁쟁이도 행렬에서 죽으니 두려워 달아나지 못한다. 그러므로 강하가 터지면 한 고을을 잠기게 하여 부자형제가 서로 버리고 달아나, 다투어 언덕에 오르고 높은 언덕에 오르니, 발이 가벼운 자가 먼저 오르고 서로 돌아보지 못한다. 세상이 즐겁고 뜻이 평평하면, 이웃 나라 사람이 빠져 죽는 것을 보아도 오히려 애련히 여기는데, 하물며 친척이겠는가. 그러므로 자기가 편안하면 은혜가 이웃 나라에 미치고 뜻이 그것을 위해 다하며, 자기가 위태로우면 그 친척을 잊고 남도 능히 구하지 못한다. 헤엄치는 자는 빠진 자를 건지지 못하니 손발이 급한 바가 있고, 덴 자는 불을 끄지 못하니 몸이 아픈 바가 있다. 백성이 여유가 있으면 사양하고 부족하면 다툰다. 사양하면 예의가 생기고, 다투면 폭란이 일어난다. 문을 두드려 물을 구하면 주지 않는 자가 없으니 넉넉하기 때문이고, 숲에서는 장작을 팔지 않고 호수에서는 고기를 팔지 않으니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물건이 풍족하면 욕망이 줄고, 구함이 차면 다툼이 그친다. 진왕(秦王)의 때에는 혹 자식을 산해(肉醬)로 만들었으니 이익이 부족했기 때문이고, 유씨(劉氏)가 정권을 잡았을 때는 독부(獨夫)도 고아를 거두어 길렀으니 재물이 여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상이 다스려지면 소인이 바름을 지켜 이익도 능히 유혹하지 못하고, 세상이 어지러우면 군자가 간(奸)을 행하여도 법도 능히 금하지 못한다.

도응훈(道應訓)

太淸問於無窮子曰:「子知道乎?」無窮子曰:「吾弗知也。」又問於無為「吾知道有數。」曰:「其數奈何?」無為曰:「吾知道之可以弱,可以強;可以柔,可以剛;可以陰,可以陽;可以窈,可以明;可以包裹天地,可以應待無方。此吾所以知道之數也。」太淸又問於無始曰:「曏者,吾道於無窮,曰:『吾弗知之。」又問於無為,無為曰:『吾知道。』曰:『子之知道,亦有數乎?』無為曰:『吾知道有數。』曰:『其數奈何?』無為曰:『吾知道之可以弱,可以強;可以柔,可以剛;可以陰,可以陽;可以窈,可以明;可以包裹天地,可以應待無方。吾所以知道之數也。』若是,則無為知與無窮之弗知,孰是孰非?」無始曰:「弗知之深,而知之淺;弗知內,而知之外;弗知精,而知之粗。」太淸仰而歎曰:「然則不知乃知邪?知乃不知邪?孰知知之為弗知,弗知之為知邪?」無始曰:「道不可聞,聞而非也;道不可見,見而非也;道不可言,言而非也。孰知形之不形者乎?」故老子曰:「天下皆知善之為善,斯不善也。」故「知者不言,言者不知」也。

태청(太淸)이 무궁(無窮)에게 물어 말했다. 「그대는 도를 아는가?」 무궁이 말했다. 「나는 모르오.」 또 무위(無爲)에게 물으니, 무위가 말했다. 「나는 도를 아오.」 물었다. 「그대가 도를 안다면, 또한 수(數)가 있는가?」 무위가 말했다. 「나는 도에 수가 있음을 아오.」 물었다. 「그 수가 어떠한가?」 무위가 말했다. 「나는 도가 약할 수도 있고 강할 수도 있으며, 유할 수도 있고 강할 수도 있고, 음일 수도 있고 양일 수도 있으며, 요(窈)할 수도 있고 명(明)할 수도 있고, 천지를 포괄할 수도 있고 정해진 방향 없이 응대할 수도 있음을 아오. 이것이 내가 도의 수를 아는 까닭이오.」 태청이 또 무시(無始)에게 물어 말했다. 「이전에 내가 무궁에게 도를 물으니 『나는 모른다』 했고, 또 무위에게 물으니 무위가 『나는 도를 안다』 했소. 내가 묻기를 『그대가 도를 안다면 또한 수가 있는가』 하니 무위가 『나는 도에 수가 있음을 안다』 했고, 묻기를 『그 수가 어떠한가』 하니 무위가 말하기를 『나는 도가 약할 수도 있고 강할 수도 있으며, 유할 수도 있고 강할 수도 있고, 음일 수도 있고 양일 수도 있으며, 요할 수도 있고 명할 수도 있고, 천지를 포괄할 수도 있고 정해진 방향 없이 응대할 수도 있음을 안다. 내가 도의 수를 아는 까닭이다』 했소. 이와 같다면 무위의 앎과 무궁의 모름 중에서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그른가?」 무시가 말했다. 「모름이 깊고, 앎이 얕소. 모름이 안에 있고, 앎이 밖에 있소. 모름이 정(精)하고, 앎이 조(粗)하오.」 태청이 우러러 탄식하여 말했다. 「그렇다면 모름이 곧 앎이고, 앎이 곧 모름인가? 누가 앎이 모름이고 모름이 앎임을 아는가?」 무시가 말했다. 「도는 들을 수 없으니 들으면 그른 것이고, 도는 볼 수 없으니 보면 그른 것이며, 도는 말할 수 없으니 말하면 그른 것이다. 누가 형(形)이 형 아님을 아는가?」 그러므로 노자가 말했다. 「천하가 모두 선이 선임을 알면, 이것이 곧 불선이다.」 그러므로 「아는 자는 말하지 않고,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한다」.

白公問於孔子曰:「人可以微言?」孔子不應。白公曰:「若以石投水中,何如?」曰:「呉、越之善沒者能取之矣。」曰:「若以水投水,何如?」孔子曰:「菑、澠之水合,易牙嘗而知之。」白公曰:「然則人固不可以微言乎?」孔子曰:「何謂不可?誰知言之謂者乎?夫知言之謂者,不以言言也。爭魚者濡,逐獸者趨,非樂之也。故至言去言,至為無為,夫淺知之所爭者,末矣。」白公不得也,故死於浴室。故老子曰:「言有宗,事有君。夫唯無知,是以不吾知也。」白公之謂也。

백공(白公)이 공자에게 물어 말했다. 「사람은 밀담(密談)할 수 있는가?」 공자가 대답하지 않았다. 백공이 말했다. 「만일 돌을 물에 던지면 어떠한가?」 공자가 말했다. 「오(吳)·월(越)의 잠수를 잘하는 자가 능히 그것을 건진다.」 백공이 말했다. 「만일 물을 물에 던지면 어떠한가?」 공자가 말했다. 「치(淄)와 당(澠)의 물이 합하면, 이아(易牙)가 맛보아 안다.」 백공이 말했다. 「그렇다면 사람은 본래 밀담할 수 없는가?」 공자가 말했다. 「어찌 불가라 하는가. 누가 말이 말하는 뜻을 아는가? 말이 말하는 뜻을 아는 자는 말로써 말하지 않는다. 물고기를 다투는 자는 젖고, 짐승을 쫓는 자는 달리니, 이를 즐기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지극한 말은 말을 버리고, 지극한 행은 무위이며, 얕은 앎이 다투는 것은 말(末)이다.」 백공이 얻지 못하여, 그러므로 욕실에서 죽었다. 그러므로 노자가 말했다. 「말에는 종(宗)이 있고 일에는 군(君)이 있다. 오직 무지(無知)이므로 이로써 나를 알지 못한다.」 백공을 말한 것이다.

惠子為惠王為國法,已成而示諸先生,先生皆善之,奏之惠王。惠王甚説之。以示翟煎,曰:「善」!惠王曰:「善,可行乎?」翟煎曰:「不可。」惠王曰:「善而不可行,何也?」翟煎對曰:「今夫舉大木者,前呼邪許,後亦應之。此舉重勸力之歌也,豈無鄭、衞激楚之音哉?然而不用者,不若此其宜也。治國有禮,不在文辯。」故老子曰:「法令滋彰,盜賊多有。」此之謂也。

혜자(惠子)가 혜왕(惠王)을 위해 나라 법을 만들어, 이미 이루어지자 여러 선생에게 보이니 선생들이 모두 선하다 하여 혜왕에게 올렸다. 혜왕이 매우 기뻐했다. 적전(翟煎)에게 보이니 적전이 말했다. 「선합니다!」 혜왕이 말했다. 「선하면 행할 수 있는가?」 적전이 말했다. 「불가합니다.」 혜왕이 말했다. 「선하면서 행할 수 없다니 무엇 때문인가?」 적전이 대답하여 말했다. 「지금 큰 나무를 드는 자는 앞에서 야허(邪許)를 부르면 뒤에서도 응한다. 이는 무거운 것을 들 때 힘을 권하는 노래이니, 어찌 정(鄭)·위(衛)의 격초(激楚)한 음이 없겠는가. 그러나 쓰지 않는 것은 이것만큼 마땅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데는 예가 있으니, 문장과 교변(巧辯)에 있지 않다.」 그러므로 노자가 말했다. 「법령이 밝아질수록 도둑이 많아진다.」 이를 말한 것이다.

田駢以道術説齊王,王應之曰:「寡人所有,齊國也。道術雖以除患,願聞國之政。」田駢對曰:「臣之言無政,而可以為政。譬之若林木無材,而可以為材。願王察其所謂,而自取齊國之政焉已。雖無除其患害,天地之間,六合之內,可陶冶而變化也。齊國之政,何足問哉!」此老聃之所謂「無狀之狀,無物之象」者也。若王之所問者,齊也;田駢所稱者,材也。材不及林,林不及雨,雨不及陰陽,陰陽不及和,和不及道。

전병(田駢)이 도술로 제왕(齊王)을 유세하니, 왕이 그에게 대답하여 말했다. 「과인이 가진 것은 제나라이오. 도술이 비록 환난을 없앨 수 있으나, 원컨대 나라의 정치를 들으리다.」 전병이 대답하여 말했다. 「신의 말에는 정치가 없으나 정치를 할 수 있습니다. 비유하면 수림에 재목이 없으나 재목이 될 수 있습니다. 원컨대 왕은 그 말하는 바를 살펴, 스스로 제나라의 정치에서 취하기만 하면 됩니다. 비록 그 환난을 없애지 못하더라도, 천지 사이·육합(六合) 안에서 도야(陶冶)하여 변화할 수 있습니다. 제나라의 정치가 어찌 물을 만하겠습니까!」 이는 노담(老聃)이 이른 「형상 없는 형상, 물 없는 형상」이다. 왕이 물은 바는 제(齊)이고, 전병이 칭한 바는 재(材)이다. 재는 수림에 미치지 못하고, 수림은 비에 미치지 못하며, 비는 음양에 미치지 못하고, 음양은 화(和)에 미치지 못하며, 화는 도에 미치지 못한다.

白公勝得荊國,不能以府庫分人。七日,石乙入曰:「不義得之,又不能佈施,患必至矣!不能予人,不若焚之,毋令人害我!」白公弗聽也。九日,葉公入,乃發大府之貨以予眾,出髙庫之兵以賦民,因而攻之。十有九日而禽白公。夫國非其有也,而欲有之,可謂至貪也;不能為人,又無以自為,可謂至愚矣!譬白公之嗇也,何以異於梟之愛其子也?故老子曰:「持而盈之,不如其已。揣而鋭之,不可長保也。」

백공승(白公勝)이 형국(荊國)을 얻고도 부고(府庫)를 사람에게 나누어 주지 못했다. 이렛날에 석을(石乙)이 들어와 말했다. 「의롭지 않게 얻고 또 능히 베풀지 못하면 환난이 반드시 이를 것입니다! 능히 사람에게 주지 못하면 차라리 불태우시어, 사람으로 하여금 나를 해치지 못하게 하소서!」 백공이 듣지 않았다. 아흐렛날에 섭공(葉公)이 들어와, 이에 대부(大府)의 재물을 열어 뭇 사람에게 주고, 고고(高庫)의 병기를 내어 백성에게 나누어 주고, 형세를 타고 그를 쳤다. 십구 일 만에 백공을 사로잡았다. 나라가 그가 가진 바가 아닌데 그것을 가지려 한 것은 지극히 탐했다고 할 수 있고, 능히 남을 위해 주지 못하고 또 스스로를 위할 수 없었으니 지극히 어리석었다고 할 수 있다. 백공의 인색함이 올빼미가 그 새끼를 사랑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그러므로 노자가 말했다. 「잡아 채우는 것은 그침만 못하고, 두드려 날카롭게 하는 것은 오래 보존할 수 없다.」

趙簡子以襄子為後,董閼於曰:「無恤賤,今以為後,何也?」簡子曰:「是為人也,能為社稷忍羞。」異日,知伯與襄子飲,而批襄子之首。大夫請殺之。襄子曰:「先君之立我也,曰:能為社稷忍羞。豈曰能刺人哉!」處十月,知伯圍襄子於晉陽,襄子疎隊而撃之,大敗知伯,破其首以為飲器。故老子曰:「知其雄,守其雌,其為天下谿。」

조간자(趙簡子)가 양자(襄子)를 후사로 세우니, 동알우(董閼于)가 말했다. 「무휼(無恤)은 비천한데 지금 후사로 삼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간자가 말했다. 「이 사람은 사람이 되어 사직(社稷)을 위해 치욕을 참을 수 있다.」 뒤에 어느 날, 지백(知伯)이 양자와 술을 마시다가 손으로 양자의 머리를 쳤다. 대부가 그를 죽이기를 청하니 양자가 말했다. 「선군이 나를 세우며 말하기를, 사직을 위해 치욕을 참을 수 있다 하셨다. 어찌 능히 사람을 찌른다 했겠는가!」 열 달을 지나, 지백이 양자를 진양(晉陽)에 포위하니, 양자가 대열을 성기게 하여 그를 쳐서 지백을 크게 이기고, 그의 두개골을 깨뜨려 술 마시는 그릇으로 만들었다. 그러므로 노자가 말했다. 「그 웅(雄)을 알고 그 자(雌)를 지키면, 천하의 계(谿)가 된다.」

齧缺問道於被衣,被衣曰:「正女形,壹女視,天和將至。攝女知,正女度,神將來舍。德將來附若美,而道將為女居。憃乎若新生之犢,而無求其故。」言未卒,齧缺繼以仇夷。被衣行歌而去,曰:「形若槁骸,心如死灰。直實不知,以故自持。墨墨恢恢,無心可與謀。彼何人哉!」故老子曰:「明白四達。能以無知乎!」

니결(齧缺)이 피의(被衣)에게 도를 물으니, 피의가 말했다. 「그대의 형상을 바로 하고, 그대의 보는 것을 하나로 하라, 천화(天和)가 장차 이를 것이다. 그대의 앎을 거두고, 그대의 도(度)를 바로 하라, 신(神)이 장차 와서 머물 것이다. 덕이 장차 와서 붙어 아름다울 것이요, 도가 장차 그대의 거처가 될 것이다. 우(憃)연히 갓 난 송아지와 같이 하여 그 까닭을 구하지 말라.」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니결이 구이(仇夷)처럼 잠들어 버렸다. 피의가 노래를 부르며 떠나 말했다. 「형상은 마른 해골과 같고 마음은 죽은 재와 같다. 직실(直實)하여 알지 못하고 까닭으로 스스로 지킨다. 묵묵(墨墨)히 확확(恢恢)하여 마음 없이 그와 모의할 수 있다. 저는 어느 사람인가!」 그러므로 노자가 말했다. 「명백히 사방에 통달하여, 능히 앎이 없이 할 수 있는가!」

趙襄子攻翟而勝之,取尤人、終人。使者來謁之,襄子方將食,而有憂色。左右曰:「一朝而兩城下,此人之所喜也。今君有憂色,何也?」襄子曰:「江、河之大也,不過三日,飄風暴雨,日中不須臾。今趙氏之德行無所積,今一朝兩城下,亡其及我乎!」孔子聞之,曰:「趙氏其昌乎!」夫憂,所以為昌也;而喜,所以為亡也。勝非其難也,持之者其難也。賢主以此持勝,故其福及後世。齊、楚、呉、越,皆嘗勝矣,然而卒取亡焉,不能乎持勝也。唯有道之主能持勝。孔子勁杓國門之關,而不肯以力聞。墨子為守攻,公輸般服,而不肯以兵知。善持勝者,以強為弱。故老子曰:「道沖,而用之又弗盈也。」

조양자(趙襄子)가 적(翟)을 쳐서 이기고, 우인(尤人)과 종인(終人)을 얻었다. 사자가 와서 알현하니, 양자가 마침 밥을 먹으려다가 근심하는 빛이 있었다. 좌우가 말했다. 「하루아침에 두 성이 함락되었으니 이는 사람이 기뻐할 바입니다. 지금 군께서 근심하는 빛이 있으니 무엇 때문입니까?」 양자가 말했다. 「강하(江河)가 크다 해도 사흘을 넘기지 못하고, 풍풍(飄風)과 폭우는 한낮에도 잠시를 넘기지 못한다. 지금 조씨(趙氏)의 덕행이 쌓인 바가 없는데, 하루아침에 두 성이 함락되니 멸망이 대개 나에게 미치리라!」 공자가 이를 듣고 말했다. 「조씨가 대개 창성하리라!」 근심은 창성하는 까닭이고, 기쁨은 멸망하는 까닭이다. 이기는 것은 그 어려운 것이 아니고, 그것을 지키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어진 임금이 이로써 승리를 지키니, 그러므로 그 복이 후세에 미친다. 제(齊)·초(楚)·오(吳)·월(越)은 모두 일찍이 이겼으나, 그러나 마침내 멸망을 취했으니 승리를 지키지 못한 것이다. 오직 도가 있는 임금만이 승리를 지킬 수 있다. 공자의 힘이 나라 문의 문빗장을 들 수 있었으나 힘으로 이름나기를 원하지 않았고, 묵자는 수(守)와 공(攻)을 만들어 공수반(公輸般)이 굴복했으나 병(兵)으로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았다. 승리를 잘 지키는 자는 강함을 약함으로 여긴다. 그러므로 노자가 말했다. 「도는 비어 있으나 그것을 써도 가득 차지 않는다.」

惠孟見宋康王,蹀足謦欬,疾言曰:「寡人所説者,勇有功也,不説為仁義者也客將何以教寡人?」惠孟對曰:「臣有道於此,人雖勇,刺之不入。雖巧有力,撃之不中。大王獨無意邪?」宋王曰:「善。此寡人之所欲聞也。」惠孟曰:「夫刺之而不入,撃之而不中,此猶辱也。臣有道於此,使人雖有勇弗敢刺,雖有力不敢撃,夫不敢刺不敢撃,非無其意也。臣有道於此,使人本無其意也。夫無其意,未有愛利之也。臣有道於此,使天下丈夫、女子,莫不歡然皆欲愛利之心。此其賢於勇有力也,四累之上也。大王獨無意邪!」宋王曰:「此寡人所欲得也。」惠孟對曰:「孔、墨是已。孔丘、墨翟,無地而為君,無官而為長。天下丈夫、女子,莫不延頸舉踵,而願安利之者。今大王,萬乘之主也。誠有其志,則四境之內皆得其利矣。此賢於孔、墨也遠矣。」宋王無以應。惠孟出。宋王謂左右曰:「辯矣!客之以説勝寡人也。」故老子曰:「勇於不敢則活。」由此觀之,大勇反為不勇耳。昔堯之佐九人,舜之佐七人,武王之佐五人;堯、舜、武王於九、七、五者,不能一事焉。然而垂拱受成功者,善乘人之資耳。故人與驥逐走,則不勝驥;託於車上,則驥不能勝人。北方有獸,其名曰蹶,鼠前而兔後,趨則頓,走則顛,常為蛩蛩駏驉取甘草以與之。蹶有患害,蛩蛩駏驉必負而走。此以其能,託其所不能。故老子曰:「夫代大匠斫者,希不傷其手。」

혜맹(惠孟)이 송강왕(宋康王)을 뵈니, 발을 구르고 기침하여 급히 말했다. 「과인이 기뻐하는 것은 용하여 공이 있는 것이요, 인의를 행함을 기뻐하지 않습니다(底本 이곳에 탈문이 있는 듯). 손님이 무엇으로 과인을 가르치겠습니까?」 혜맹이 대답하여 말했다. 「신에게 여기 도가 있어, 사람이 비록 용하여도 찔러 들어가지 못하고, 비록 공교하고 힘이 있어도 쳐도 맞지 못합니다. 대왕은 뜻이 없으십니까?」 송왕이 말했다. 「좋다. 이것이 과인이 듣고자 한 바이다.」 혜맹이 말했다. 「찔러 들어가지 못하고 쳐도 맞지 않은 것은 오히려 욕입니다. 신에게 여기 도가 있어, 사람으로 하여금 비록 용하여도 감히 찌르지 못하고, 비록 힘이 있어도 감히 치지 못하게 합니다. 감히 찌르지 못하고 감히 치지 못함은 그 뜻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신에게 여기 도가 있어, 사람으로 하여금 본래 그 뜻이 없게 합니다. 그 뜻이 없으면 아직 사랑하고 이롭게 하려는 마음이 없습니다. 신에게 여기 도가 있어, 천하의 남자와 여자로 하여금 모두 기뻐하며 사랑하고 이롭게 하려는 마음을 갖지 않는 자가 없게 합니다. 이는 용하고 힘 있음보다 어진 것으로, 네 층 위입니다. 대왕은 뜻이 없으십니까!」 송왕이 말했다. 「이것이 과인이 얻고자 한 바이다.」 혜맹이 대답하여 말했다. 「공(孔)·묵(墨)이 그것입니다. 공구(孔丘)·묵적(墨翟)은 땅이 없으면서 임금이 되고, 벼슬이 없으면서 으뜸이 되었습니다. 천하의 남자와 여자가 목을 길게 빼고 뒤꿈치를 들어, 그들에게 이로워지기를 바라지 않는 자가 없었습니다. 지금 대왕은 만승(萬乘)의 주인이십니다. 참으로 그 뜻이 있으면 사경(四境) 안이 모두 그 이로움을 얻을 것입니다. 이는 공·묵보다 어짐이 멉니다.」 송왕이 대응할 수 없었다. 혜맹이 나가자, 송왕이 좌우에게 말했다. 「변설이 훌륭하구나! 손님이 설로써 과인을 이겼다.」 그러므로 노자가 말했다. 「감히 하지 않음에 용하면 산다.」 이로부터 보면, 큰 용기는 도리어 용기 없음이 된다. 옛적 요(堯)의 보좌는 아홉 사람이고, 순(舜)의 보좌는 일곱 사람이며, 무왕의 보좌는 다섯 사람이다. 요·순·무왕이 그 아홉·일곱·다섯 사람에게는 한 가지 일도 할 수 없었으나, 옷을 드리우고 공손히 공을 이룬 것을 받았으니, 남의 자질을 잘 탄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준마와 달리기를 겨루면 준마를 이기지 못하고, 수레에 의탁하면 준마도 사람을 이기지 못한다. 북방에 짐승이 있는데 이름이 궐(蹶)이라, 앞은 쥐 같고 뒤는 토끼 같아, 빨리 가면 걸리고 달리면 넘어진다. 항상 경경거허(蛩蛩距虛)에게 감초를 캐어 준다. 궐이 환난이 있으면 경경거허가 반드시 그것을 업고 달린다. 이는 자기가 능한 바로써 능하지 못한 바에 의탁한 것이다. 그러므로 노자가 말했다. 「대장(大匠)을 대신하여 깎는 자는 드물게 자기 손을 상하지 않는다.」

薄疑説衞嗣君以王術。嗣君應之曰:「予所有者,千乘也。願以受教。」薄疑對曰:「烏獲舉千鈞,又況一斤乎?」杜赫以安天下説周昭文君,文君謂杜赫曰:「願學所以安周。」赫對曰:「臣之所言不可,則不能安周;臣之所言可,則周自安矣。」此所謂弗安而安者也。故老子曰:「大制無割,故致數輿無輿也。」

박의(薄疑)가 왕술(王術)로 위사군(衛嗣君)을 유세하니, 사군이 그에게 대답하여 말했다. 「과인이 가진 것은 천승(千乘)이오. 원컨대 이로써 가르침을 받으리다.」 박의가 대답하여 말했다. 「오획(烏獲)이 천 균을 들 수 있는데 하물며 한 근이겠습니까?」 두혁(杜赫)이 천하를 안정시킴으로 주소문군(周昭文君)을 유세하니, 문군이 두혁에게 말했다. 「원컨대 주(周)를 안정시키는 까닭을 배우리다.」 혁이 대답하여 말했다. 「신이 말한 바가 불가하면 주를 안정시키지 못하고, 신이 말한 바가 가하면 주가 스스로 안정됩니다.」 이를 안정시키지 않고 안정된다 한다. 그러므로 노자가 말했다. 「큰 재제는 베어 자름이 없고, 그러므로 많은 수레를 부려도 수레가 없는 것 같다.」

魯國之法,魯人為人妾於諸侯,有能贖之者,取金於府。子贛贖魯人於諸侯。來,而辭不受金。孔子曰:「賜失之矣。夫聖人之舉事也,可以移風易俗,而受教順可施後世,非獨以適身之行也。今國之富者寡而貧者眾,贖而受金,則為不廉;不受金,則不復贖人。自今以來,魯人不復贖人於諸侯矣。」孔子亦可謂知禮矣。故老子曰:「見小曰明。」

노나라의 법은, 노 사람이 제후에게서 신첩이 된 자를 속죄할 수 있는 자가 있으면 부고에서 금을 받았다. 자공(子贛)이 제후에게서 노 사람을 속죄했다. 돌아와서 사양하여 금을 받지 않았다. 공자가 말했다. 「사(賜)가 잘못했다. 성인이 일을 함은 풍속을 옮기고 바꿀 수 있어, 받은 가르침에 순응하여 후세에 베풀 수 있으니, 오로지 자기 몸의 행에 맞추기 위함이 아니다. 지금 나라에 부자는 적고 가난한 자는 많은데, 속죄하고 금을 받으면 청렴하지 않은 것이고, 금을 받지 않으면 다시 사람을 속죄하는 자가 없을 것이다. 지금 이후로 노 사람은 다시 제후에게서 사람을 속죄하지 않을 것이다.」 공자도 예를 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노자가 말했다. 「작은 것을 보는 것을 명(明)이라 한다.」

魏武侯問於李克曰:「呉之所以亡者,何也?」李克對曰:「數戰而數勝。」武侯曰:「數戰數勝,國之福。其獨以亡,何故也?」對曰:「數戰則民疲,數勝則主驕。以驕主使疲民,而國不亡者,天下鮮矣!驕則恣,恣則極物;疲則怨,怨則極慮;上下倶極,呉之亡猶晩矣!夫差之所以自剄於幹遂也。」老子曰:「功成名遂,身退,天之道也。」

위무후(魏武侯)가 이극(李克)에게 물어 말했다. 「오(吳)가 멸망한 까닭은 무엇인가?」 이극이 대답하여 말했다. 「자주 싸우고 자주 이겼기 때문입니다.」 무후가 말했다. 「자주 싸우고 자주 이김은 나라의 복이다. 그것이 홀로 이로 인하여 망함은 무슨 까닭인가?」 대답하여 말했다. 「자주 싸우면 백성이 피곤하고, 자주 이기면 임금이 교만해집니다. 교만한 임금으로 피곤한 백성을 부려 나라가 망하지 않는 것은 천하에 드뭅니다! 교만하면 방종하고, 방종하면 물을 다 쓰며, 피곤하면 원망하고, 원망하면 생각을 다합니다. 위아래가 모두 극에 이르니, 오의 멸망은 오히려 늦은 것입니다! 부차(夫差)가 간수(干遂)에서 스스로 목 벤 까닭입니다.」 노자가 말했다. 「공이 이루어지고 이름이 이루어지면 몸이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도이다.」

甯越欲干齊桓公,困窮無以自達,於是為商旅,將任車,以商於齊,暮宿於郭門之外。桓公郊迎客,夜開門,辟任車,爝火甚盛,從者甚眾,甯越飯牛車下,望見桓公而悲。撃牛角而疾商歌。桓公聞之,撫其僕之手曰:「異哉!歌者非常人也。」命後車載之。桓公及至,從者以請。桓公贛之衣冠而見,説以為天下。桓公大説,將任之。君臣爭之曰:「客,衞人也。衞之去齊不遠,君不若使人問之。問之而故賢者也,用之未晩。」桓公曰:「不然。問之,患其有小惡也。以人之小惡而忘人之大美,此人主之所以失天下之士也。」凡聽必有驗,一聽而弗復問,合其所以也。且人固難合也,權而用其長者而已矣。當是舉也,桓公得之矣。故老子曰:「天大、地大、道大、王亦大,域中有四大,而王處其一焉。」以言其能包裹之也。

영월(甯越)이 제환공을 배알하려 하나 곤궁하여 스스로 통할 길이 없어, 이에 상려(商旅)가 되어 짐수레를 몰고 제(齊)로 장사하러 가서, 저녁에 외곽 성문 밖에 묵었다. 환공이 교외에서 손님을 맞이하여, 밤에 문을 열고 짐수레를 피하게 하니, 횃불이 매우 성하고 따르는 자가 매우 많았다. 영월이 수레 아래에서 소에게 먹이를 주다가 환공을 보고 슬퍼하여, 소 뿔을 치며 급히 상가(商歌)를 불렀다. 환공이 듣고 그 하인의 손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기이하다! 노래하는 자는 보통 사람이 아니다.」 뒤수레에 그를 태우라 명했다. 환공이 이르러 따르는 자가 알현을 청하니, 환공이 그에게 의관을 하사하고 접견하여, 말하여 천하를 이루었다. 환공이 크게 기뻐하여 장차 그를 등용하려 하니, 군신이 다투어 말했다. 「손님은 위(衛) 사람입니다. 위가 제에서 멀지 않으니, 임금께서는 사람을 보내 물으시는 것만 못합니다. 물어서 본래 어진 이이면 등용하여도 늦지 않습니다.」 환공이 말했다. 「그렇지 않다. 물으면 그에게 작은 허물이 있을까 걱정된다. 사람의 작은 허물로 인하여 사람의 큰 아름다움을 잊는 것은, 이것이 인주가 천하의 선비를 잃는 까닭이다.」 대저 듣기에는 반드시 헤아림이 있어, 한 번 듣고 다시 묻지 않는 것은 그를 등용한 까닭에 합한 것이다. 하물며 사람은 본래 온전히 합하기 어려우니, 저울질하여 그 장점을 쓰기만 하면 된다. 이 거동에 환공이 얻은 것이다. 그러므로 노자가 말했다. 「하늘이 크고 땅이 크고 도가 크고 왕도 크니, 지역 가운데 네 가지 큰 것이 있어 왕이 그 하나에 있다.」 그가 포괄할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大王亶父居邠,翟人攻之。事之以皮帛、珠玉而弗受。曰「翟人之所求者地。無以財物為也。」大王亶父曰:「與人之兄居而殺其弟,與人之父處而殺其子,吾弗為。皆勉處矣!為吾臣,與翟人奚以異?且吾聞之也,不以其所養害其養。」杖策而去。民相連而從之,遂成國於岐山之下。大王亶父可謂能保生矣。雖富貴,不以養傷身;雖貧賤,不以利累形。今受其先人之爵祿,則必重失之。所自來者久矣,而輕失之,豈不惑哉!故老子曰:「貴以身為天下,焉可以託天下;愛以身為天下,焉可以寄天下矣!」

대왕단보(大王亶父)가 빈(邠)에 살 때 적(翟) 사람이 그를 쳤다. 가죽과 비단·주옥으로 그들을 섬겼으나 받지 않고 말했다. 「적 사람이 구하는 것은 땅이요, 재물을 삼지 않는다.」 대왕단보가 말했다. 「사람의 형과 함께 살면서 그 아우를 죽이고, 사람의 아버지와 함께 지내면서 그 아들을 죽이는 것은 내가 하지 않는다. 모두 잘 살아가라! 나의 신하가 됨과 적 사람의 신하가 됨이 무엇이 다른가? 하물며 나는 들었다. 기르는 데 쓰는 것으로 기르는 바를 해치지 않는다고.」 지팡이를 짚고 떠나니 백성이 줄지어 그를 따라, 마침내 기산(岐山) 아래에서 나라를 이루었다. 대왕단보는 생을 보전할 수 있다고 할 만하다. 비록 부귀하여도 봉양으로 몸을 상하지 않고, 비록 빈천하여도 이익으로 형을 누리지 않는다. 지금 선인의 작록을 받아들면 반드시 그것을 잃기를 중히 여긴다. 생명이 자기에게서 온 지 이미 오래인데 그것을 잃기를 가볍게 여기니, 어찌 미혹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노자가 말했다. 「자기 몸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면 천하를 맡길 수 있고, 자기 몸을 천하보다 친하게 여기면 천하를 맡길 수 있다!」

中山公子牟謂詹子曰:「身處江海之上,心在魏闕之下,為之奈何?」詹子曰:「重生。重生則輕利。」中山公子牟曰:「雖知之,猶不能自勝。」詹子曰:「不能自勝,則從之;從之,神無怨乎!不能自勝而強弗從者,此之謂重傷。重傷之人,無壽類矣。」故老子曰:「知和曰常,知常曰明,益生曰祥,心使氣曰強。」是故「用其光,復歸其明也。」

중산공자모(中山公子牟)가 첨자(詹子)에게 말했다. 「몸은 강해(江海) 위에 있으나 마음은 위궐(魏闕) 아래에 있으니,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첨자가 말했다. 「생을 중히 여기시오. 생을 중히 여기면 이익을 가볍게 여깁니다.」 중산공자모가 말했다. 「비록 알아도 오히려 스스로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첨자가 말했다. 「스스로 이기지 못하면 그것을 따르시오. 그것을 따르면 정신이 원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스스로 이기지 못하면서 억지로 따르지 않는 것은, 이를 겹치는 상함이라 합니다. 겹치는 상함을 입은 사람은 오래 사는 부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노자가 말했다. 「화(和)를 아는 것을 상(常)이라 하고, 상을 아는 것을 명(明)이라 하며, 생을 더하는 것을 상(祥)이라 하고, 마음이 기를 부리는 것을 강(强)이라 한다.」 그러므로 「그 빛을 쓰고 다시 그 밝음으로 돌아간다」.

The original text is in the public domain. The Korean is a machine-assisted translation of this library’s own Chinese paraphrase, checked against a fixed glossary so that technical terms match the definitions used elsewhere on this site. It is a reading aid and does not replace the origin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