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bo

오왕이 강에 배를 띄워, 저(狙) 산에 올랐다. 뭇 원숭이가 그를 보고, 놀라 두려워하며 버리고 달아나, 깊은 잡목숲으로 도망하였다. 한 원숭이가, 위사연(委蛇然)히 잡고 휘어, 왕 앞에서 재주를 자랑하였다. 왕이 그것을 쏘니, 그것이 민첩하게 날아오는 화살을 받았다. 왕이 좌우에게 명하여 쫓아 쏘게 하니, 원숭이 잡혀 죽었다.

战国 · 庄周 · 제12권 / 17

卷婁者,舜也。羊肉不慕蟻,蟻慕羊肉,羊肉羶也。舜有羶行,百姓悅之,故三徙成都,至鄧之虛而十有萬家。堯聞舜之賢,舉之童土之地,曰冀得其來之澤。舜舉乎童土之地,年齒長矣,聰明衰矣,而不得休歸,所謂卷婁者也。

중니가 말했다. 「이것은 성인의 종이다. 이것은 스스로 백성 가운데 묻히고, 스스로 밭 두둑에 감추었다. 그의 소리는 사라지고, 그의 뜻은 다함이 없으며, 그의 입은 비록 말하나, 그의 마음은 일찍이 말하지 않았다. 바야흐로 세상과 어기면서도 마음이 세상과 함께하기를 멸시한다. 이것은 뭍에 잠긴 자이니, 이것이 시남의료인가」.

是以神人惡眾至,眾至則不比,不比則不利也。故無所甚親,無所甚疏,抱德煬和以順天下,此謂真人。於蟻棄知,於魚得計,於羊棄意。

자로가 가서 그를 부르기를 청하였다.

以目視目,以耳聽耳,以心復心。若然者,其平也繩,其變也循。古之真人,以天待(之)[人],不以人入天。古之真人,得之也生,失之也死;得之也死,失之也生。

공자가 말했다. 「그만둬라. 그는 구가 자기에게 드러남을 알고, 구가 초나라에 온 것을 알아, 구가 반드시 초왕으로 하여금 와서 자기를 부르게 할 것으로 여겨, 그는 장차 구를 영인으로 여길 것이다. 저 이와 같은 자는, 영인에 대해서는 그 말을 듣는 것도 부끄러워하거늘, 하물며 몸소 그 몸을 보는 것이랴. 그대가 무엇으로 그를 머물게 하겠는가」.

藥也其實,堇也,桔梗也,雞也,豕零也,是時為帝者也,何可勝言!

자로가 가서 그를 보니, 그 방이 이미 비어 있었다.

句踐也以甲楯三千棲於會稽。唯種也能知亡之所以存,唯種也不知其身之所以愁。故曰,鴟目有所適,鶴脛有所節,解之也悲。

장오의 봉인(封人)이 자뢰에게 물어 말했다. 「군주는 정사를 함에 거칠게 하지 말고, 백성을 다스림에 거칠게 하지 마십시오. 지난날 저는 벼를 지었는데, 갈기를 거칠게 하니, 그 열매도 거칠게 저에게 보답하였고, 김매기를 거칠게 하니, 열매도 거칠게 저에게 보답하였습니다. 제가 이듬해 방법을 바꾸어, 깊이 갈고 잘 덮으니, 그 벼가 번성하게 나서, 저는 해를 다하여 배부르게 먹었습니다」.

故曰,風之過河也有損焉,日之過河也有損焉。請只風與日相與守河,而河以為未始其攖也,恃源而往者也。故水之守土也審,影之守人也審,物之守物也審。

장자가 듣고 말했다. 「지금 사람이 그 형체를 다스리고, 그 마음을 다스리는 데에, 봉인이 말한 바와 비슷한 자가 많으니, 저 하늘을 달아나고, 저 성을 떠나며, 저 정을 없애고, 저 신을 잃어, 무리와 함께 행한다. 그러므로 그 성을 거칠게 하는 자는, 욕심과 싫어함의 그릇된 싹이, 성이 되기를 관위(萑葦)와 겸가(蒹葭) 같아서, 처음 싹터서는 식물의 형체를 부양하다가, 이어서 식물의 성을 뽑아 올린다. 아울러 무너지고 새어 발하여, 나오는 곳을 가리지 않으니, 떠도는 종기와 옴과 큰 종기, 속열(內熱)과 소변이 고인 고름이 이것이다」.

故目之於明也殆,耳之於聰也殆,心之於殉也殆。凡能其於府也殆,殆之成也不給改。禍之長也茲萃,其反也緣功,其果也待久。而人以為己寶,不亦悲乎!故有亡國戮民無已,不知問是也。

백구(柏矩)가 노담에게 배워 말했다. 「청컨대 천하에 노닐게 하소서」.

故足之於地也踐,雖踐,恃其所不蹍而後善博也;人之於知也少,雖少,恃其所不知而後知天之所謂也。知大一,知大陰,知大目,知大均,知大方,知大信,知大定,至矣。大一通之,大陰解之,大目視之,大均緣之,大方體之,大信稽之,大定持之。

노담이 말했다. 「그만둬라. 천하는 오히려 이와 같다」.

盡有天,循有照,冥有樞,始有彼。則其解之也似不解之者,其知之也似不知之也,不知而後知之。其問之也,不可以有崖,而不可以無崖。頡滑有實,古今不代,而不可以虧,則可不謂有大揚搉乎!闔不亦問是已,奚惑然為!以不惑解惑,復於不惑,是尚大不惑。

또 청하니, 노담이 말했다. 「그대는 장차 어디에서 시작하겠는가」.

말했다. 「제나라에서 시작하겠습니다」.

제나라에 이르러, 형벌받은 사람을 보고, 밀어 바로 세우고, 조복을 벗어 그를 덮으며, 하늘을 부르고 그를 위해 울어 말했다. 「그대여, 그대여. 천하에 큰 재앙이 있는데, 그대가 홀로 먼저 그것을 만났다. 말하기를, 도둑질하지 말라, 사람을 죽이지 말라, 하였다. 영화와 욕됨이 서고, 그 뒤에 병이 되는 바를 보고, 재물이 모이고, 그 뒤에 다투는 바를 본다. 지금 사람이 병이 되는 바를 세우고, 사람이 다투는 바를 모아, 사람의 몸을 궁궐하게 하여 쉴 때가 없게 하면서, 이에 이르지 않기를 바란다면, 되겠는가」.

則陽遊於楚,夷節言之於王,王未之見,夷節歸。

「옛날 사람을 다스린 자는, 얻음을 백성에게 있게 하고, 잃음을 자기에게 있게 하며, 바름을 백성에게 있게 하고, 굽음을 자기에게 있게 하였다. 그러므로 한 형체가 그 형체를 잃은 자가 있으면, 물러나 스스로를 책망하였다. 지금은 그렇지 않아, 사물을 감추어 알지 못하는 자를 어리석게 하고, 어려움을 크게 하여 감히 하지 않는 자를 죄주며, 짐을 무겁게 하여 감당하지 못하는 자를 벌하고, 길을 멀게 하여 이르지 못하는 자를 주살한다. 백성의 앎과 힘이 다하면, 곧 거짓으로 이어가니, 날마다 거짓이 많이 나오는데, 선비와 백성이 어찌 거짓되지 않음을 취하겠는가. 힘이 부족하면 거짓되고, 앎이 부족하면 속이며, 재물이 부족하면 도둑질한다. 도둑질의 행함은, 누구에게 책망해야 하겠는가」.

彭陽見王果曰:「夫子何不譚我於王?」

거백옥(蘧伯玉)이 행년 육십에 육십 번 변화하여, 일찍이 처음에 그것을 옳다 하다가 마침내 그것을 그르다 하지 않은 적이 없으니, 지금 이른바 옳음이, 쉰아홉 때 그르다 한 것이 아닌지 알지 못한다. 만물이 나는 곳이 있으나 그 뿌리를 보지 못하고, 나오는 곳이 있으나 그 문을 보지 못한다. 사람은 모두 그 앎이 아는 바를 존중하되, 그 앎이 모르는 바를 의지한 뒤에야 앎을 모른다. 어찌 큰 의심이라 하지 않겠는가. 그만두라, 그만두라. 또한 도망할 곳이 없다. 이것이 이른바 그러함이, 과연 그러한가.

王果曰:「我不若公閱休。」

중니가 태사 대도(大弢)·백상건(伯常騫)·희위(狶韋)에게 물어 말했다. 「저 위령공은 술을 마시고 즐김에 잠겨, 국가의 정사를 듣지 않으며, 사냥하고 새를 쏘아, 제후의 모임에 응하지 않았다. 그가 영공(靈公)이 된 까닭은 무엇인가」.

彭陽曰:「公閱休奚為者邪?」

대도가 말했다. 「이것은 이것으로 인함이다」.

曰:「冬則擉鼈於江,夏則休乎山樊。有過而問者,曰:『此予宅也。』夫夷節已不能,而況我乎!吾又不若夷節。夫夷節之為人也,無德而有知,不自許,以之神其交固,顛冥乎富貴之地,非相助以德,相助消也。夫凍者假衣於春,暍者反冬乎冷風。夫楚王之為人也,形尊而嚴;其於罪也,無赦如虎;非夫佞人正德,其孰能橈焉!

백상건이 말했다. 「저 영공은 아내가 셋 있어, 같은 물통에서 함께 목욕하였다. 사구(史䲡)가 옷을 받들어 그 곳에 나아갈 때, 비단을 잡고 양옆을 부축하였다. 그가 거만함이 저처럼 심하였는데, 어진 사람을 보면 이처럼 숙연하였다. 이것이 그가 영공이 된 까닭이다」.

故聖人,其窮也使家人忘其貧,其達也使王公忘爵祿而化卑。其於物也,與之為娛矣;其於人也,樂物之通而保己焉;故或不言而飲人以和,與人並立而使人化。父子之宜,彼其乎歸居,而一閒其所施。其於人心者若是其遠也。故曰待公閱休。」

희위가 말했다. 「저 영공이 죽으니, 옛 묘에 장사지내기를 점치니 길하지 않고, 사구(沙丘)에 장사지내기를 점치니 길하였다. 수 길을 파서, 돌 관을 얻어, 씻어 보니, 명문이 있어 이르기를, 『그 아들을 의지하지 않고, 영공이 빼앗아 여기에 거처한다』 하였다. 저 영공이 영이 된 것이 오래 되었으니, 저 두 사람이 또 어찌 그것을 알 만하겠는가」.

聖人達綢繆,周盡一體矣,而不知其然,性也。復命搖作而以天為師,人則從而命之也。憂乎知而所行恆無幾時,其有止也若之何!

소지(少知)가 대공조(大公調)에게 물어 말했다. 「무엇을 구리(丘里)의 말이라 하는가」.

生而美者,人與之鑑,不告則不知其美於人也。若知之,若不知之,若聞之,若不聞之,其可喜也終無已,人之好之亦無已,性也。聖人之愛人也,人與之名,不告則不知其愛人也。若知之,若不知之,若聞之,若不聞之,其愛人也終無已,人之安之亦無已,性也。

대공조가 말했다. 「구리는, 열 성과 백 이름을 합하여 풍속이 되게 하는 것이다. 다른 것을 합하여 같은 것을 만들고, 같은 것을 나누어 다른 것을 만든다. 지금 말의 백 가지 몸을 가리켜도 말을 얻지 못하나, 말이 앞에 매여 있는 것은, 그 백 가지 몸을 세워 말이라 하기 때문이다. 이 까닭에 언덕 산은 낮음을 쌓아 높음이 되고, 강과 하는 물을 합하여 큼이 되며, 대인은 합하고 병하여 공(公)이 된다. 이로써 바깥에서 들어오는 자는, 주재가 있으나 잡지 않고, 가운데서 나가는 자는, 바름이 있으나 물리치지 않는다. 사시가 기가 달라도, 하늘이 주지 않아, 그러므로 해가 이루어지고, 오관이 직이 달라도, 임금이 사사롭지 않아, 그러므로 나라가 다스려지며, 문과 무가 대인이 주지 않아도, 그러므로 덕이 갖추어지고, 만물이 이치가 달라도, 도가 사사롭지 않아, 그러므로 이름이 없다. 이름이 없으므로 무위하고, 무위하되 하지 않는 것이 없다. 때에 끝과 시작이 있고, 세상에 변화가 있다. 화와 복이 둥글게 돌아, 이르러 거스리는 바가 있는데 알맞은 바가 있고, 각기 다른 면에 따르는데 바른 바가 있는데 어긋나는 바가 있다. 큰 못에 비하면, 백 가지 재목이 모두 법도가 있고, 큰 산을 보면, 나무와 돌이 같은 단에 있다. 이것이 구리의 말을 말하는 것이다」.

舊國舊都,望之暢然;雖使丘陵草木之緡,入之者十九,猶之暢然。況見見聞聞者也,以十仞之臺縣眾閒者也。

소지가 말했다. 「그러면 그것을 도라 하면, 족한가」.

冉相氏得其環中以隨成,與物無終無始,無幾無時。日與物化者,一不化者也,闔嘗舍之!夫師天而不得師天,與物皆殉,其以為事也若之何?夫聖人未始有天,未始有人,未始有始,未始有物,與世偕行而不替,所行之備而不洫,其合之也若之何?湯得其司御門尹登恆為之傅之,從師而不囿;得其隨成。為之司其名;之名嬴法,得其兩見。仲尼之盡慮,為之傅之。容成氏曰:「除日無歲,無內無外。」

대공조가 말했다. 「그렇지 않다. 지금 사물의 수를 헤아리면, 만에 그치지 않는데, 기약하여 만물이라 하는 것은, 수가 많은 것의 명호로 부르기 때문이다. 이 까닭에 천지는, 형체의 큰 것이고, 음양은, 기의 큰 것이며, 도는 그들의 공이다. 그 큼을 인하여 호칭하여 부르면 곧 된다. 이미 이 이름이 있으니, 장차 무엇으로 비교하겠는가. 만약 이것으로 변한다면, 비유하면 개와 말과 같으니, 미치지 못함이 멀다」.

魏瑩與田侯牟約,田侯牟背之,魏瑩怒,將使人剌之。

소지가 말했다. 「사방 안에서, 육합 안에서, 만물이 나는 곳은 어디에서 일어나는가」.

犀首[公孫衍]聞而恥之,曰:「君為萬乘之君也,而以匹夫從讎!衍請受甲二十萬,為君攻之,虜其人民,係其牛馬,使其君內熱發於背。然後拔其國。忌也出走,然後抶其背,折其脊。」

대공조가 말했다. 「음양이 서로 비추고, 서로 덮고, 서로 다스리며, 사시가 서로 대하고, 서로 낳고, 서로 죽이니, 좋아함과 싫어함과 감과 머묾이 여기에서 일어나고, 암수가 나뉘어 합함이 여기에서 항상 있다. 편안함과 위태로움이 서로 바뀌고, 화와 복이 서로 낳으며, 느림과 빠름이 서로 갈리고, 모임과 흩어짐으로 이루어진다. 이것들은 이름과 실이 기록할 수 있고, 정미함이 기록할 수 있는 것이다. 차례를 따라 서로 다스림, 일어나 운행하여 서로 부림, 다하면 곧 돌아오고, 끝나면 곧 시작한다. 이것은 사물이 가진 바이고, 말이 다하는 바이며, 앎이 미치는 바로서, 사물에 극할 뿐이다. 도를 보는 사람은, 그것이 폐하는 바를 따르지 않고, 그것이 일어나는 바를 추원하지 않으니, 논의가 여기에 그친다」.

季子聞而恥之,曰:「築十仞之城,城者既十仞矣,則又壞之,此胥靡之所苦也。今兵不起七年矣,此王之基也。衍亂人,不可聽也。」

소지가 말했다. 「계진(季真)의 아무것도 함이 없음과, 접자(接子)의 혹 있는 사(使)의, 두 가지 논의는, 어느 것이 그 실정에 바르고, 어느 것이 그 이치에 치우치는가」.

華子聞而醜之,曰:「善言伐齊者,亂人也;善言勿伐者,亦亂人也;謂伐之與不伐亂人也者,又亂人也。」

대공조가 말했다. 「닭이 울고 개가 짖는 것은, 사람이 아는 바이다. 비록 큰 앎이 있어도, 그것이 스스로 변한 곳을 말로 헤아릴 수 없고, 또 그것이 장차 하는 바를 뜻으로 헤아릴 수 없다. 이를 나누어 보면, 정밀함이 짝할 것이 없는 데에 이르고, 큼이 둘 수 없는 데에 이른다. 혹 있다 하여 사하게 하고, 없다 하여 하지 않게 하는 것은, 사물을 면하지 못하여 마침내 그르다고 여겨진다. 혹 있다 하면 실에 붙들리고, 없다 하면 허에 붙들린다. 이름이 있고 실이 있음은, 사물이 머무는 곳이고, 이름이 없고 실이 없음은, 사물의 허이다. 말할 수 있고 뜻할 수 있으나, 말할수록 더욱 성글어진다. 아직 나지 않은 것은 막을 수 없고, 이미 죽은 것은 거스를 수 없다. 죽음과 삶은 멀지 않으나, 이치는 볼 수 없다. 혹 있다 하여 사하게 하고, 없다 하여 하지 않게 하는 것은, 의심이 빌리는 곳이다. 나는 그 근본을 보니, 간 곳이 다함이 없고, 나는 그 끝을 구하니, 온 곳이 그침이 없다. 다함이 없고 그침이 없음은, 말이 없어짐이요, 사물과 같은 이치이다. 혹 있다 함과 없다 함은, 말의 근본이요, 사물과 함께 끝나고 시작한다. 도는 있을 수 없고, 있음은 없을 수 없다. 도가 이름이 됨은, 빌려 행하는 곳이다. 혹 있다 함과 없다 함은, 사물의 한 구석에 있으니, 어찌 큰 방에 미치겠는가. 말하여 족하면, 곧 하루 종일 말하여 도를 다하고, 말하여 족하지 못하면, 곧 하루 종일 말하여 사물을 다한다. 도와 사물의 극은, 말과 침묵으로 실을 수 없다. 말도 아니고 침묵도 아니면, 논의가 극하는 바가 있다」.

君曰:「然則若何?」

외물(外物)

曰:「君求其道而已矣!」

외물 제이십륙(第二十六)

惠子聞之而見戴晉人。戴晉人曰:「有所謂蝸者,君知之乎?」

바깥 사물은 반드시 구할 수 없다. 바깥 사물을 반드시 구할 수 없으므로, 이 까닭에 용봉(龍逢)이 주살되고, 비간이 죽임 당하고, 기자가 미치고, 악래(惡來)가 죽으며, 걸(桀)·주(紂)가 망하였다. 임금은 그 신하가 충성스럽기를 바라지 않는 자가 없으나, 충성스러움이 반드시 믿어지는 것은 아니니, 이 까닭에 오원(伍員)이 강에 떠내려가고, 장홍(萇弘)이 촉에서 죽으니, 그 피를 감추어 삼 년에 푸른옥으로 변하였다. 부모는 그 자식이 효도하기를 바라지 않는 자가 없으나, 효도가 반드시 사랑받는 것은 아니니, 이 까닭에 효기(孝己)가 근심하고, 증삼이 슬퍼하였다. 나무와 나무가 서로 문지르면 곧 타고, 쇠와 불이 서로 지키면 곧 녹는다. 음양이 어긋나 행하면, 곧 천지가 크게 놀라, 이에 우레와 벼락이 있고, 물 속에 불이 있어, 이에 큰 회나무를 태웠다. 깊은 근심이 양쪽에 빠져 도망할 곳이 없는 자가 있다. 진등(螴蜳)하여 이루어지지 못하고, 마음이 천지 사이에 매달린 듯하여, 위민(慰暋)과 침둔(沈屯)하며, 이해가 서로 문지르니, 생긴 불이 매우 많아, 뭇 사람이 화를 태우고, 달은 본래 불을 이기지 못하여, 이에 퇴연히 도가 다하는 것이 있다.

曰:「然。」

장주는 집이 가난하여, 이에 감하후에게 가서 곡식을 빌렸다. 감하후가 말했다. 「좋소. 내가 장차 고을의 세금을 얻으면, 장차 그대에게 삼백 금을 빌려주겠소. 되겠소」.

「有國於蝸之左角者曰觸氏,有國於蝸之右角者曰蠻氏。時相與爭地而戰,伏屍數萬,逐北旬有五日而後反。」

장주가 분연히 안색을 바꾸어 말했다. 「주가 어제 오다가, 길 가운데서 부르는 자가 있었습니다. 주가 돌아보니 수레바퀴 자국 속에 붕어가 있었습니다. 주가 그것에게 물어 말하기를, 『붕어야, 너는 무엇을 하는 것이냐』 하니, 대답하여 말하기를, 『저는 동해의 물결의 신하입니다. 군자께서는 혹시 말이나 되의 물로 저를 살리시겠습니까』 하였습니다. 주가 말하기를, 『좋다. 내가 장차 남쪽으로 오·월의 왕에게 노닐러 가서, 서강의 물을 끌어 너를 맞이하면, 되겠느냐』 하니, 붕어가 분연히 안색을 바꾸어 말하기를, 『저는 저가 늘 함께하던 것을 잃어, 머물 곳이 없습니다. 제가 말이나 되의 물을 얻으면 곧 살 수 있는데, 군자께서는 이 말을 하시니, 차라리 일찍 마른 생선 가게에서 저를 찾으십시오』 하였습니다」.

君曰:「噫!其虛言與?」

임공자가 큰 갈고리와 굵은 검은 낚싯줄을 만들어, 거세한 소 쉰 마리로 미끼를 삼아, 회계에 쭈그리고 앉아, 동해에 낚싯대를 던져, 아침마다 낚았으나, 한 해가 되어도 고기를 얻지 못하였다. 뒤에 큰 고기가 그것을 먹고, 큰 갈고리를 끌고, 빠져 잠기어 아래로 내달리며, 지느러미를 치켜 날뛰니, 흰 물결이 산과 같고, 바닷물이 진동하여, 소리가 귀신과 같아서, 천 리를 진동시켰다. 임공자가 이 고기를 얻어, 쪼개어 말리니, 절강 동쪽과 창오 북쪽에서 이 고기를 배불리 먹지 않은 자가 없었다. 뒤의 세대에서 가벼운 재주와 풍설의 무리는, 모두 놀라 서로 알렸다. 저 가는 낚싯대와 누더기 줄을 들고, 물대는 도랑으로 몰려가, 잉어와 붕어를 지키니, 그것으로 큰 고기를 얻기는 어렵고, 조그만 이야기를 꾸며 현령을 구하니, 그것으로 크게 통달하기는 멀다. 이로써 일찍이 임씨의 풍속을 듣지 못한 자는, 그와 함께 세상을 경영하기에도 멀다.

曰:「臣請為君實之。君以意在四方上下有窮乎?」

유생이 시와 예로 무덤을 파니, 큰 유생이 위에서 아래로 전하여 말했다. 「동쪽이 밝았다. 일이 어떻게 되었는가」.

君曰:「無窮。」

작은 유생이 말했다. 「치마와 저고리를 아직 풀지 못하였고, 입 속에 구슬이 있습니다. 시에 본래 말이 있으니, 『푸른 보리는, 언덕에 나도다. 살아서 베풀지 않고, 죽어서 무엇으로 구슬을 물었는가』 하였습니다. 그의 귀밑머리를 잡고, 그의 턱을 눌러, 유생은 쇠망치로 그의 턱을 두드리고, 천천히 그의 뺨을 벌려, 입 속 구슬을 상하지 말라」.

曰:「知遊心於無窮,而反在通達之國,若存若亡乎?」

노래자의 제자가 나무를 하러 나가다가, 중니를 만나, 돌아와 고하여 말했다. 「저쪽에 사람이 있었는데, 윗몸이 길고 아랫몸이 짧으며, 등은 굽고 귀는 뒤로 처졌고, 눈빛은 마치 사해를 경영하는 듯하였는데, 그가 누구의 아들인지 모르겠습니다」.

君曰:「然。」

노래자가 말했다. 「그것은 구(丘)다. 그를 불러 오너라」.

曰:「通達之中有魏,於魏中有梁,於梁中有王。王與蠻氏,有辯乎?」

중니가 이르니, 말했다. 「구여, 그대 몸의 교만과 그대 용모의 앎을 버려라. 이것이야말로 군자다」.

君曰:「無辯。」

중니가 읍하고 물러나, 주름진 듯 얼굴을 바꾸어 물어 말했다. 「학업이 진전될 수 있습니까」.

客出而君惝然若有亡也。

노래자가 말했다. 「저 한 세대의 상함을 참지 못하여, 만 세대의 우환을 거만히 여기는 것은, 억눌려 본래 궁색한가, 아니면 그 지략이 미치지 못하는가. 은혜로 기쁨을 삼아 교만으로 삼는 것은, 종신의 추함이니, 보통 사람의 행함이 거기에 나아간다. 이름으로 서로 끌어당기고, 은밀함으로 서로 맺는다. 요를 칭찬하고 걸을 비난함보다, 차라리 두 가지를 잊고 그가 칭찬하는 바를 닫는 것만 못하다. 돌이키면 아프지 않음이 없고, 움직이면 사악하지 않음이 없다. 성인은 주저하여 일을 일으키니, 이로써 매번 이루어진다. 어찌할꼬. 그대는 이것들을 싣고 끝내 교만하느냐」.

客出,惠子見。君曰:「客,大人也,聖人不足以當之。」

송원군이 밤중에 꿈에서 머리를 푼 사람이 문틈으로 들여다보는 것을 보니, 말하기를, 「저는 재로(宰路)의 못에서 왔습니다. 제가 청강을 위해 하백에게 사신으로 가는데, 어부 여차(余且)가 저를 잡았습니다」 하였다.

惠子曰:「夫吹莞也,猶有嗃也;吹劍首者,吷而已矣。堯舜,人之所譽也;道堯舜於戴晉人之前,譬猶一吷也。」

원군이 깨어, 사람으로 하여금 이 꿈을 점치게 하니, 말했다. 「이것은 신령한 거북이다」.

孔子之楚,舍於蟻丘之漿。其鄰有夫妻臣妾登極者,子路曰:「是稯稯何為者邪?」

군이 말했다. 「어부 가운데 여차가 있는가」.

仲尼曰:「是聖人僕也。是自埋於民,自藏於畔。其聲銷,其志無窮,其口雖言,其心未嘗言,方且與世違而心不屑與之俱。是陸沈者也,是其市南宜僚邪?」

좌우가 말했다. 「있습니다」.

子路請往召之。

군이 말했다. 「여차를 불러 조회에 참석하게 하라」.

孔子曰:「已矣!彼知丘之著於己也,知丘之適楚也,以丘為必使楚王之召己也,彼且以丘為佞人也。夫若然者,其於佞人也羞聞其言,而況親見其身乎!而何以為存?」

다음날, 여차가 조하하니, 군이 말했다. 「고기 잡아 무엇을 얻었는가」.

子路往視之,其室虛矣。

대답하여 말했다. 「차의 그물이 흰 거북을 얻었는데, 둥글기가 다섯 자입니다」.

長梧封人問子牢曰:「君為政焉勿鹵莽,治民焉勿滅裂。昔予為禾,耕而鹵莽之,則其實亦鹵莽而報予;芸而滅裂之,其實亦滅裂而報予。予來年變齊,深其耕而熟耰之,其禾蘩以滋,予終年厭飧。」

군이 말했다. 「그대의 거북을 바쳐라」.

莊子聞之曰:「今人之治其形,理其心,多有似封人之所謂,遁其天,離其性,滅其情,亡其神,以眾為。故鹵莽其性者,欲惡之孽,為性萑葦蒹葭,始萌以扶吾形,尋擢吾性;並潰漏發,不擇所出,漂疽疥癕,內熱溲膏是也。」

거북이 이르니, 군이 다시 그것을 죽이고자 하고, 다시 그것을 살리고자 하여, 마음이 의심스러워, 점쳤다. 말하기를, 「거북을 죽여 점치는 것이 길하다」 하였다. 이에 거북을 쪼개어, 일흔두 번을 뚫어도 빠뜨린 책이 없었다.

柏矩學於老耼,曰:「請之天下遊。」

중니가 말했다. 「신령한 거북은 능히 원군에게 꿈으로 나타났으나, 능히 여차의 그물을 피하지 못하였고, 앎이 능히 일흔두 번을 뚫어도 빠뜨린 책이 없었으나, 창자를 쪼개는 우환을 피하지 못하였다. 이와 같으면, 곧 앎에 곤란한 바가 있고, 신령함에 미치지 못하는 바가 있다. 비록 지극한 앎이 있어도, 만 사람이 그를 꾀한다. 고기가 그물을 두려워하지 않고 펠리컨을 두려워한다. 작은 앎을 버리면 큰 앎이 밝아지고, 선함을 버리면 스스로 선해진다. 어린아이가 태어나 큰 스승이 없이도 능히 말하는 것은, 능히 말하는 자와 함께 처하기 때문이다」.

老耼曰:「已矣!天下猶是也。」

혜자가 장자에게 말했다. 「그대의 말은 쓸모가 없다」.

又請之,老耼曰:「汝將何始?」

장자가 말했다. 「쓸모 없음을 알아야 비로소 그와 쓸모를 말할 수 있다. 저 땅이 넓지 않고 크지 않은 것이 아니나, 사람이 쓰는 바는 발이 들어갈 만큼뿐이다. 그러면 발 곁의 땅을 파서 황천에 이르게 하면, 사람이 오히려 쓸모가 있는가」. 혜자가 말했다. 「쓸모가 없다」.

曰:「始於齊。」

장자가 말했다. 「그러면 쓸모 없음이 쓸모임이 또한 밝아졌다」.

至齊,見辜人焉,推而強之,解朝服而幕之,號天而哭之,曰:「子乎!子乎!天下有大菑,子獨先離之,曰莫為盜!莫為殺人!榮辱立,然後覩所病;貨財聚,然後覩所爭。今立人之所病,聚人之所爭,窮困人之身使無休時,欲無至此,得乎!」

장자가 말했다. 「사람에게 능히 노니는 자가 있으면, 장차 노닐지 않을 수 있는가. 사람이 능히 노닐지 못하면, 장차 노닐 수 있는가. 저 흘러 도망하는 뜻과, 결단하고 끊는 행은, 아, 그것은 지극한 앎과 후한 덕이 맡는 바가 아닌가. 엎어지고 떨어져도 돌아오지 않고, 불처럼 달려도 돌아보지 않으며, 비록 서로 임금과 신하가 되어도, 그 때에는, 세상이 바뀌면 서로를 천하게 할 수 없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지극한 사람은 행함에 머물지 않는다 하였다.

「古之君人者,以得為在民,以失為在己;以正為在民,以枉為在己;故一形有失其形者,退而自責。今則不然,匿為物而愚不識,大為難而罪不敢,重為任而罰不勝,遠其塗而誅不至。民知力竭,則以偽繼之,日出多偽,士民安取不偽!伕力不足則偽,知不足則欺,財不足則盜。盜竊之行,於誰責而可乎?」

저 옛을 높이고 지금을 낮추는 것은, 배우는 자의 무리이다. 또 희위씨의 무리로써 지금의 세상을 보면, 누가 능히 물결치지 않겠는가. 오직 지극한 사람만이 능히 세상에서 노닐되 치우치지 않고, 사람을 따라도 자기를 잃지 않는다. 저 가르침을 배우지 않고, 뜻을 받들되 자기를 저로 만들지 않는다.

蘧伯玉行年六十而六十化,未嘗不始於是之而卒詘之以非也,未知今之所謂是之非五十九非也。萬物有乎生而莫見其根,有乎出而莫見其門。人皆尊其知之所知,而莫知恃其知之所不知而後知,可不謂大疑乎!已乎!已乎!且無所逃。此所謂然與,然乎?

눈이 통하면 밝음이고, 귀가 통하면 총명이며, 코가 통하면 떨림이고, 입이 통하면 감미로우며, 마음이 통하면 앎이고, 앎이 통하면 덕이다. 무릇 도는 막힘을 바라지 않으니, 막히면 곧 걸리고, 걸리어 그치지 않으면 곧 밟히며, 밟히면 곧 뭇 해악이 난다. 사물 가운데 앎이 있는 자는 숨쉼을 의지하니, 그것이 왕성하지 않은 것은, 하늘의 죄가 아니다. 하늘이 그것을 뚫어, 밤낮으로 덜어내리지 않는데, 사람이 도리어 돌아보며 그 구멍을 막는다. 태백에 겹빈 곳이 있고, 마음에 하늘의 노님이 있다. 방에 빈 곳이 없으면, 곧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발란하고, 마음에 하늘의 노님이 없으면, 곧 여섯 구멍이 서로 빼앗는다. 큰 숲과 언덕 산이 사람에게 좋은 것은, 또한 신(神)이 감당하지 못함이다.

仲尼問於大史大弢、伯常騫、狶韋曰:「夫衞靈公飲酒湛樂,不聽國家之政;田獵畢弋,不應諸侯之際;其所以為靈公者何邪?」

덕이 넘친 것은 이름이요, 이름이 넘친 것은 드러냄이요, 꾀는 겨박(急迫)에서 상고하고, 앎은 다툼에서 나오며, 막힘은 지킴에서 나고, 관리의 일은 무리의 알맞음에서 이루어진다. 봄비가 때에 응하여, 초목이 성하여 나니, 호미와 낫이 이에야 닦기 시작하고, 초목이 거꾸로 심긴 것이 반을 지나도, 그것이 왜 그러한지 알지 못한다.

大弢曰:「是因是也。」

고요함으로써 병을 메울 수 있고, 눈가를 문지르면 늙음을 쉴 수 있으며, 편안함으로써 황망을 그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이와 같은 것은, 수고로운 자의 일이지, 편안한 자가 일찍이 지나쳐 묻지 않았다. 성인이 천하를 놀라게 한 까닭은, 신인이 일찍이 지나쳐 묻지 않았고, 어진 사람이 세상을 놀라게 한 까닭은, 성인이 일찍이 지나쳐 묻지 않았으며, 군자가 나라를 놀라게 한 까닭은, 어진 사람이 일찍이 지나쳐 묻지 않았고, 소인이 때에 합하는 까닭은, 군자가 일찍이 지나쳐 묻지 않았다. 연문(演門)에 부모가 죽은 자가 있어, 잘 상하고 몸을 상하여 작위를 받아 관사(官師)가 되니, 그 무리 사람이 상하여 죽은 자가 반이었다. 요가 천하를 허유에게 주니, 허유가 도망하였고, 탕이 무광(務光)에게 주니, 무광이 노하였다. 기타(紀他)가 듣고, 제자를 거느리고 관수(窾水)에 쭈그려 앉으니, 제후가 그를 조문하니, 삼 년에, 신도적(申徒狄)이 이로 인하여 강에 빠졌다. 통발은 고기를 잡는 데 쓰이는 것이니, 고기를 얻으면 통발을 잊고, 덫은 토끼를 잡는 데 쓰이는 것이니, 토끼를 얻으면 덫을 잊으며, 말은 뜻을 잡는 데 쓰이는 것이니, 뜻을 얻으면 말을 잊는다. 나는 어찌 말을 잊은 사람을 얻어 그와 함께 말하겠는가」.

伯常騫曰:「夫靈公有妻三人,同濫而浴。史鰌奉御而進所,搏幣而扶翼。其慢若彼之甚也,見賢人若此其肅也,是其所以為靈公也。」

우언(寓言)

狶韋曰:「夫靈公也死,卜葬於故墓不吉,卜葬於沙丘而吉。掘之數仞,得石槨焉,洗而視之,有銘焉,曰:『不馮其子,靈公奪而裡之。』夫靈公之為靈也久矣,之二人何足以識之!」

우언 제이십칠(第二十七)

少知問於大公調曰:「何謂丘裡之言?」

우언(우언은 남에게 기탁하여 말함)이 십분의 구이고, 중언(중언은 연장자의 말을 빌려 논쟁을 그치게 함)이 십분의 칠이며, 치언(치언은 술기운동기처럼 기울면 쏟고 차면 그치듯 사물을 따라 도는 말)이 날마다 나오니, 천이(天倪)로 화한다.

大公調曰:「丘裡者,合十姓百名而以為風俗也,合異以為同,散同以為異。今指馬之百體而不得馬,而馬係於前者,立其百體而謂之馬也。是故丘山積卑而為高,江河合水而為大,大人合併而為公。是以自外入者,有主而不執;由中出者,有正而不距。四時殊氣,天不賜,故歲成;五官殊職,君不私,故國治;文武大人不賜,故德備;萬物殊理,道不私,故無名。無名故無為,無為而無不為。時有終始,世有變化。禍福淳淳,至有所拂者而有所宜;自殉殊面,有所正者有所差。比於(太)[大]澤,百材皆度;觀於大山,木石同壇。此之謂丘裡之言。」

우언이 십분의 구는, 바깥을 빌려 그것을 논함이다. 친아비는 자기 아들을 위해 중매하지 않는다. 친아비가 그를 칭찬하는 것은, 그 아비가 아닌 자만 못하니, 내 죄가 아니라 사람의 죄이다. 자기와 같으면 곧 응하고, 자기와 같지 않으면 곧 반대하며, 자기와 같은 것을 옳다 하고, 자기와 다른 것을 그르다 한다.

少知曰:「然則謂之道,足乎?」

중언이 십분의 칠은, 이로써 말을 그치게 하는 것이니, 이것은 기와(耆艾)이다. 나이가 먼저인데도, 경위와 본말이 없어 그 나이 듦을 기약하는 것은, 이것은 먼저가 아니다. 사람이면서 남보다 먼저일 바가 없으면, 인도(人道)가 없고, 사람이면서 인도가 없으면, 이것을 진인(陳人)이라 한다.

大公調曰:「不然。今計物之數,不止於萬,而期曰萬物者,以數之多者號而讀之也。是故天地者,形之大者也;陰陽者,氣之大者也;道者為之公。因其大以號而讀之則可也,已有之矣,乃將得比哉!則若以斯辯,譬猶狗馬,其不及遠矣。」

치언이 날마다 나와, 천이로 화하여, 이로써 만연하여, 이로써 해를 다한다. 말하지 않으면 곧 고르고, 고름과 말은 고르지 않으며, 말과 고름은 고르지 않다. 그러므로 말함이 없다 한다. 말함이 없는 말은, 종신 말해도 일찍이 말하지 않은 것이 없고, 종신 말하지 않아도 일찍이 말하지 않은 것이 없다. 온 곳이 있어 옳기도 하고, 온 곳이 있어 옳지 않기도 하며, 온 곳이 있어 그러하기도 하고, 온 곳이 있어 그러하지 않기도 하다. 어찌 그러한가. 그러함에서 그러하고, 어찌 그러하지 않은가. 그러하지 않음에서 그러하지 않다. 어찌 옳은가. 옳음에서 옳고, 어찌 옳지 않은가. 옳지 않음에서 옳지 않다. 사물은 본래 그러한 곳이 있고, 사물은 본래 옳은 곳이 있어, 사물이 그러하지 않음이 없고, 사물이 옳지 않음이 없다. 치언이 날마다 나와 천이로 화하지 않으면, 누가 그 오래됨을 얻겠는가. 만물이 모두 씨앗이어, 다른 형체로 서로 교대하여, 시작과 끝이 고리 같아서, 그 짝을 얻지 못하니, 이것을 천균(天均)이라 한다. 천균은, 곧 천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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