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bo

군장(軍裝)편 제42

唐 · 李荃 · 제7권 / 17

작괘 안내: 황력, 만년력

經曰:軍無輜重,則舉動皆闕。士卒以軍中為家,至於錐刀,不可有缺。

본경에 이르기를, 군대에 치중(輜重)이 없으면 일거일동마다 모두 흠결(欠缺)이 나타난다. 사졸은 군영을 자기 집으로 삼아 작아서 한 개의 송곳·한 자루의 소도에 이르기까지 모두 모자라서는 안 된다.

驢,六分七千五百頭,鞍絡自副。幕,一萬二千五百口,竿、梁、釘、橛、鎚自副。

타려(駝驢)는 「육분」의 표준에 따라 배급하여 전군에 모두 칠천오백 두이요 타안(駝鞍)과 농두(籠頭)는 모두 나귀의 부건으로 계산하여 나귀를 따라 일괄로 갖추되 반드시 따로 청령하지 않는다. (당대에는 한 군이 만이천오백 인을 만편(滿編)으로 하고 「십분」은 곧 사람마다 한 부의 만액(滿額)이며 「일분」은 만액의 십분의 일 곧 천이백오십 부이니 그러므로 「육분」이 바로 칠천오백 두에 합한다.) 행군장막은 모두 만이천오백 구이요 장막을 버티는 장대·횡량·철정·땅에 박는 목궐(木橛) 및 말뚝을 치는 데 쓰는 망치는 모두 장막을 따라 함께 발급한다.

鍋,一分一千二百五十口。乾糧,十分一人一斗二升,一軍一千五百石。

행군솥은 「일분」에 따라 배급하되 곧 만액의 십분의 일이니 전군에 모두 천이백오십 구이요 합산하면 매 열 사람이 한 구를 합용한다. 건량은 「십분」의 만액에 따라 배급하여 매 사람 일 두 이 승이요 전군 만이천오백 인이 합계하여 천오백 석이다.

麩袋,十分一萬二千五百口,韋皮縫,可繞腰,受一斗五升。馬盂,十分一萬二千五百口,皆堅木為之,或熟銅,受三升;〈文瀾閣本「二斗」。〉冬月可以暖食。

밀기울을 담는 료대(料袋)는 만액에 따라 배급하여 사람마다 한 구이요 전군 만이천오백 구이니 자루는 숙우피(熟牛皮)로 꿰매어 이로써 요간에 감아 수신 휴대할 수 있고 용량은 일 두 오 승이다. 말에게 물을 먹이고 겸하여 음식을 담는 데 쓰는 마우(馬盂)도 또한 만액에 따라 배급하여 사람마다 한 구이요 전군 만이천오백 구이니 일률로 견경한 목료로 선조(旋造)하고 또한 달인 숙동(熟銅)으로 타조할 수도 있으며 용량은 삼 승이요(문란각본은 「이두(二斗)」로 되어 있다) 겨울에는 또한 불 위에 걸어 음식을 덥힐 수 있다.

刀子、銼子、鉗子、鑽子、藥袋、火石袋、鹽袋、解結錐、礪石,各十分一十一萬二千五百事。

소도·좌도(锉刀)·겸자(鉗子)·착자(鑽子)·약대(藥袋)·화석을 넣는 자루·염대(鹽袋)·줄 매듭을 푸는 데 쓰는 송곳·칼을 가는 여석(礪石) 이 아홉 가지는 각각 「십분」의 만액에 따라 배급하여 사람마다 한 건이요 아홉 가지 합계하여 십일만이천오백 건이다. 「건(件)」은 당대의 기물의 양사(量詞)이니 오늘날 말하는 「개(件)」에 상당한다.

麻鞋,三十分三萬七千五百緉,攤子、�𩍬𤁧子,各十分三萬七千五百事。桍帑、抹額、六帶帽子、氊帽子,各十分六萬二千五百事。

마혜(麻鞋)는 「삼십분」에 따라 배급하되 사람마다 세 켤레에 해당하여 전군에 모두 삼만칠천오백 량(緉)이니 일량은 곧 한 켤레이다. 깔개에 쓰는 담자· 등의 물건(가운데 한 자가 원문이 잔결(殘缺)하니 총수에 따라 추산하면 마땅히 세 가지일 것이다)는 각각 만액에 사람마다 한 건을 배급하여 합계 삼만칠천오백 건이다. 고구(褲具)·말액(抹額, 이마 위에 동여매는 두건)·여섯 조의 계대(繫帶)를 띤 모자·전모(毡帽)는 각각 만액에 사람마다 한 건을 배급하여 합계 육만이천오백 건이다.

諬床,十分一萬二千五百領。皮裘、皮褲,各三分七千五百領,或詐為蕃兵,用柳鑵栲栳各三分〈○依下數,當作「二分」。〉五千口。

군을 따라 앉고 눕는 데 쓰는 제상(諸床)은 만액에 따라 배급하여 사람마다 한 영(領)이요 전군 만이천오백 영이다. 가죽옷과 가죽바지는 각각 「삼분」에 따라 배급하여 매 가지 삼천칠백오십 영이요 두 가지 합계하여 칠천오백 영이니 사졸로 하여금 호인병마로 가분(假扮)하여 적경에 혼입하게 할 필요가 있을 때 입는 것도 또한 이 두 가지이다. 유조로 엮은 수관(水罐)과 고로(栲栳, 유조로 엮은 둥근 소쿠리)도 또한 각각 「삼분」에 따라 배급한다(하문의 총수에 의거하여 추산하면 이곳은 마땅히 「이분」으로 해야 한다) 합계하여 오천 구이다.

皮囊袋,亦得鍬鎚斧鋸鑿,各二分〈○已上張刻本但有「皮囊十分」四字。按︰「皮囊袋亦得」句,當屬上條。〉一萬二千五百事。鎌,四分五千張。切草刀,二分二千五百張。

피낭대(皮囊袋)와 또한 철삽·철추·부두(斧頭)·톱·착자 이 몇 가지는 각각 「이분」에 따라 배급하여 매 가지 이천오백 건이요 합계 만이천오백 건이다(장각본 이곳에는 다만 「피낭십분(皮囊十分)」 네 자만 있고 또 안: 「피낭대역득(皮囊袋亦得)」 한 구는 마땅히 위의 한 조에 귀속해야 한다). 낫은 「사분」에 따라 배급하여 모두 오천 장이요 작초도(鍘草刀)는 「이분」에 따라 배급하여 모두 이천오백 장이다.

布行槽,一分一千二百五十具。大小胡瓢,二分二千五百枚。

행군에 쓰는 포마조(布馬槽)는 「일분」에 따라 배급하여 모두 천이백오십 구이요 합산하면 매 열 사람이 한 구이니 말에게 먹일 때 펼치면 곧 사료를 담을 수 있다. 대소호로표(大小葫蘆瓢)는 「이분」에 따라 배급하여 모두 이천오백 매이니 물을 뜨고 밥을 담는 용도에 공급한다.

馬軍鞍轡革帶,十分〈○張刻本「三十分」。按︰當云「各十分」。〉三萬七千五百具。人藥,一分三黃丸、水解散、瘧痢藥、金刀箭藥等五十貼。〈○此條張刻本但云「人藥一分,金瘡藥一分」;又另提行,云「馬藥二分」。〉

기병이 쓰는 마안(馬鞍)·비두(轡頭)·혁대(革帶)는 각각 만액에 사람마다 한 부를 배급하고(장각본은 「삼십분」으로 되어 있다. 안: 마땅히 「각십분(各十分)」으로 써야 한다) 세 가지 합계하여 삼만칠천오백 구이다. 군중에서 사람에게 쓰는 약은 「일분」에 따라 배급하여 삼황환(三黃丸)·수해산(水解散)·학질이질을 다스리는 약·도상전상을 다스리는 금창약(金創藥) 등을 포함하여 모두 오십 첩(貼)이다(장각본 이 한 조는 다만 「인약일분, 금창약일분」이라 쓰고 또 따로 한 줄을 일으켜 「마약이분(馬藥二分)」이라 썼다).

披氊、披馬氊、引馬索,各十分計三萬七千五百事。馬軍無幕,故以披氊代。插鍵,十分一萬二千五百具。

사졸이 몸에 걸치는 전(毡)·말을 덮는 데 쓰는 피마전(披馬毡)·말을 끄는 데 쓰는 인마삭(引馬索)은 각각 만액에 사람마다 한 부를 배급하여 세 가지 합계 삼만칠천오백 건이다. 기병은 행군에 장막을 띠지 않으므로 피전(披毡)을 써서 장막을 대신하여 비바람을 막는다. 말을 매는 데 쓰는 삽건(插鍵) 곧 땅 속에 박아 넣는 계마장(繫馬樁)은 만액에 따라 배급하여 사람마다 한 구이요 전군 만이천오백 구이다.

絆索,二十分二萬五千條。皮毛及連枝中半中皮條,〈○張刻本但有「皮毛皮條」四字。〉三十分三萬七千五百條,備收賊雜使用。

반마삭(絆馬索)은 「이십분」에 따라 배급하여 사람마다 두 조에 해당하고 전군 이만오천 조이다. 털을 띤 온전한 한 장의 가죽과 가지를 잇는 중등의 가죽끈은 둘이 각각 절반을 차지하고(장각본 이곳에는 다만 「피모피조(皮毛皮條)」 네 자만 있다) 「삼십분」에 따라 배급하여 사람마다 세 조에 해당하고 전군 삼만칠천오백 조이니 포로를 묶고 각종의 잡용에 충당하기를 예비한다.

右各隊備辦公廨,軍裝並須賫行,貯備使用,勿令臨時有缺。

이상의 이 물건들은 각 대에서 소속 관서에 나아가 치판(置辦)하여 영취한다. 무릇 군장에 속하는 부분은 일률로 수신 휴대해야 하고 평시에 저장하여 쓸 때를 기다리되 진에 임하여 쓰려 할 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단결(短缺)을 발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신기제적태백음경》 권4 끝

예비총서(預備總序)

經曰:不備不虞,不可以帥師。愚者有備,與智者同功。故天子有道,守在四境;諸侯有道,守在四鄰。國所以立疆埸、關塞、亭障者,將欲別內外、乖夷狄;置烽燧刁斗者,所以警邊徼、厲士卒也。

병경 위에 이르기를, 의외의 변에 대하여 미리 방비하지 않는 자는 군대를 통솔할 자격이 없다. 우분(愚笨)한 사람도 다만 사전에 준비가 있으면 받는 효과도 또한 총명한 사람과 같다. 그러므로 천자가 나라를 다스림에 도가 있으면 방선(防線)이 곧 사방의 국경 위에 놓이고 제후가 나라를 다스림에 도가 있으면 방선이 곧 사린(四鄰)의 교계처에 놓인다. 국가가 강계(疆界)를 획정하고 관애요새와 정장초소(亭障哨所)를 설립하는 소이는 내외를 분청(分清)하고 이적을 밖에 격절(隔絕)하고자 함이요 봉수(烽燧)를 설치하고 「초두(刁斗)」(낮에 밥을 짓고 밤에 두드려 경을 알리는 동기)를 배비하는 소이는 변지를 경계하고 사졸을 독려하여 감히 해태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축성(築城)편 제43

經曰:先王之制,大都不過三國之一,中五之一,小九之一,故曰:「都城過百雉,國之害也。」今諸侯之城,方兩京之城,闊狹合五之一,其高為邊隅之守,不可為節制。古今度城之法者,下闊與高倍,上闊與下倍,城高五丈,下闊二丈五尺,上闊一丈二尺五寸,高下闊狹,以此為準。

병경 위에 이르기를, 선왕이 정하여 내린 제도는 가장 큰 속성(屬城)은 국도의 삼분의 일을 넘지 않고 중등은 오분의 일을 넘지 않으며 작은 것은 구분의 일을 넘지 않는다. 그러므로 《좌전·은공원년(隱公元年)》에 기록한 제중(祭仲)의 말에 이르기를 「도읍의 성벽이 백 치(雉)를 넘으면 곧 국가의 화해(禍害)가 된다」 하였다(일치는 길이 삼 장·높이 일 장의 한 단의 성벽을 가리킨다). 지금 각지 주부의 성은 장안·낙양 양경의 규격에 비조(比照)하면 넓고 좁음이 대략 다만 양경의 오분의 일에 합할 뿐이고 그들의 높이는 다만 변지의 일우(一隅)의 방수를 응부할 만할 뿐이니 이로써 통행의 정제(定制)로 삼을 수 없다. 고금에 성벽의 척촌을 측산하는 통법은――성기의 너비와 성의 높이가 배수의 관계를 이루고 성정(城頂)의 너비와 성기의 너비도 또한 배수의 관계를 이룬다. 성의 높이가 오 장이면 성기의 너비는 이 장 오 척이요 성정의 너비는 일 장 이 척 오 촌이니 고저협첩(高低窄)은 모두 이 한 비례를 준으로 삼는다.

料功,以下闊加上闊,得三丈七尺五寸,半之,得一丈八尺七寸五分,〈○原本「半」下誤衍「乘」字,依《通典》百六十刪。〉以高五丈乘之,一丈之城積數得九十三丈七尺五寸。每一工日築二丈,計工四十六人,日築城一丈,餘七尺五寸。一步,計役二百七十八人,土餘五丈。一百步,計工二萬七千八百二十人,餘一丈土。一里,計工一十萬一百九十人,餘一丈土。率一里,則十里可知。其出土負簣,並計二丈土。其羊馬城於濠內,築高八尺,上至女墻,計工準上。

성을 쌓는 용공(用工)을 계산하되 먼저 성기의 너비 이 장 오 척에 성정의 너비 일 장 이 척 오 촌을 더하여 삼 장 칠 척 오 촌을 얻고 그 절반을 취하여 일 장 팔 척 칠 촌 오 분을 얻는다(원본에 「반」자 아래에 그릇되게 하나의 「승(乘)」자가 더 나왔으므로 《통전》 권160에 의거하여 삭제하였다). 다시 성 높이 오 장으로 곱하면 매 일 장 길이의 성벽은 토방의 총수가 곧 구십삼 장 칠 척 오 촌이다. 매 사람 매 개의 공작일에 이 장의 토방을 쌓으니 그러므로 일 장 길이의 성벽을 쌓는 데 사십육 개의 공을 쓰고 오히려 칠 척 오 촌의 토방이 남는다. 일 보 길이를 쌓는 데는 역부 이백칠십팔 인을 쓰고 여토 오 장이요 일백 보 길이를 쌓는 데는 공 이만칠천팔백이십 인을 쓰고 여토 일 장이며 일 리 길이를 쌓는 데는 공 십만백구십 인을 쓰고 여토 일 장이다. 일 리를 기준으로 삼아 추산하면 십 리·백 리의 공수도 또한 명백하다. 파낸 흙은 번기(畚箕)로 업어 운반해야 하고 흙을 운반하는 공은 일괄로 이 장 토방에 따라 절산한다. 성호의 안쪽에는 또 따로 한 도의 양마애장(羊馬矮牆)을 쌓되 높이는 팔 척이요 상단은 성두의 여장에 접하고 용공의 수는 위의 방법에 따라 절산한다.

착호(鑿濠)편 제44

經曰:濠面闊二丈、深一丈、底闊一丈,以面闊積數三丈半之,得數一丈五尺;以深一丈乘之,鑿濠一尺,得數一十五丈。每一工日出土三丈一尺,計工五人。一步,計工三十人;一里,計工一萬八千人。一里為率,則百里可知。

병경 위에 이르기를, 성호의 구면은 너비 이 장·깊이 일 장·저면은 너비 일 장이다. 구면의 너비 이 장과 저면의 너비 일 장을 서로 더하여 삼 장을 얻고 그 절반을 취하여 일 장 오 척을 얻는다. 다시 깊이 일 장으로 곱하면 곧 매 일 척 길이의 호구를 파는 데 토방수가 곧 십오 장이다. 매 사람 매 개의 공작일에 삼 장 일 척의 흙을 내니 그러므로 다섯 개의 공을 헤아려야 한다. 일 보 길이를 파는 데는 공 삼십 인을 쓰고 일 리 길이를 파는 데는 공 만팔천 인을 쓴다. 일 리를 기준으로 삼아 추산하면 일백 리의 용공도 또한 명백하다.

노대(弩臺)편 제45

經曰:臺高下與城等,敵去我城百步,臺相去亦如之。下闊四丈、高五丈,上闊二丈,上建女墻。臺內通暗道,安屈膝軟梯,人上便卷收之。中設氊幙,置弩手五人,備乾糧水火等,候敵近城壘,則攢弩射其首將。

병경 위에 이르기를, 노대의 높고 낮음은 성벽과 평평하게 한다. 적인이 핍근하여 성에서 떨어지기를 일백 보의 지방에 이르면 노대와 노대 사이의 간거도 또한 일백 보로 정한다. 대기는 너비 사 장·통고는 오 장·대정은 너비 이 장이요 정상에 여장을 쌓는다. 대 내에는 은밀히 한 조의 지도를 통하게 하고 한 부의 곡절하여 거둘 수 있는 연제(軟梯)를 걸어 사람이 한번 올라가면 곧 사다리를 걷어 올린다. 대정의 중간에 한 정의 전장(毡帳)을 펴고 노수 다섯 사람을 배치하며 건량·음수와 불을 피우는 물건을 갖추어 두고 적군이 성벽 영루에 핍근하기를 기다려 곧 노전을 집중하여 제사(齊射)하되 오로지 상대방의 주장을 친다.

봉수대(烽燧臺)편 제46

經曰:明烽燧,於高山四望險絶處置;無山,亦於平地高逈處置。下築羊馬城,高下任便,常以三五為準。臺高五丈,下闊三丈,上闊一丈,形圓,上葢圓屋覆之。屋徑闊一丈六尺,一面跳出三尺,以板為之,上覆下棧。

병경 위에 이르기를, 봉수를 성목관용(醒目管用)하게 설치하고자 하면 곧 높은 산 위의 사면으로 멀리 바라볼 수 있고 지세가 험절한 지방을 가려 수건한다. 산이 없는 지방도 또한 평지 위의 높고 공탁한 위치를 가려 수건해야 한다. 대 아래는 먼저 한 도의 양마애장을 쌓되 고저는 지형을 따라 정하고 통상은 삼 척에서 오 척에 이르는 것을 준으로 삼는다. 봉대의 통고는 오 장이요 대기의 너비는 삼 장이며 대정의 너비는 일 장이고 형상은 둥글며 정상에 한 좌의 원옥(圓屋)을 덮어 씌운다. 원옥의 직경은 일 장 육 척이요 사주에 각각 삼 척의 처마를 도출하여 목판으로 빚어 만들고 위에 덮개를 더하여 비를 막으며 아래에 잔판(棧板)을 깔아 받친다.

屋上置突灶三所,臺下亦置三所,並以石灰飾其表裡。復置柴籠三所,流火繩三條在臺側,上下用軟梯,上收下垂,四壁開孔望賊,及安置火筒,置旗一面、鼓一面、弩兩張,砲石、壘木、停水甕,乾糧、生糧,麻縕火鑽、火箭、蒿艾、狼糞、牛糞。每夜,平安舉一火,聞警舉二火,見煙塵舉三火,見賊燒柴籠。如早夜平安,火不舉,卽烽子為賊提。一烽六人︰五人烽子,遞知更刻,觀望動靜;一人烽卒,知文書、符牒傳遞。

원옥의 정상에 세 좌의 연기가 나오는 돌조(突灶)를 쌓고 대 아래도 또한 세 좌를 쌓되 안팎에 모두 석회로 분쇄(粉刷)한다. 대 옆에는 따로 세 개의 시신을 담는 시신롱(柴籠)·세 조의 불을 끄는 데 쓰는 유화승(流火繩)을 둔다. 대에 오르내리는 것은 연제에 의지하여 사람이 올라가면 곧 사다리를 거둬들이고 내려오고자 하면 다시 내려 놓는다. 사면의 벽 위에 구멍을 뚫어 이로써 적정을 엿보고 아울러 불을 뿜는 화통(火筒)을 안방한다. 대 위에 기 한 면·북 한 면·노 두 장을 배치하고 또한 포석·루목(壘木)·물을 저수하는 옹, 숙건량(熟乾糧)과 생량식, 마서(麻絮)·불을 피우는 화착(火鑽)·화전·蒿초와 애초·랑분(狼糞)·우분(牛糞)을 갖추어 둔다. 매일 밤에 평안무사하면 곧 한 개의 횃불을 들고 경보를 들으면 두 개를 들며 연진을 보면 세 개를 들고 적인을 보면 곧 직접 시신롱에 불을 붙인다. 만약 아침이나 밤에 마땅히 평안을 알려야 하는데 불을 드는 것을 보지 못하면 곧 이것은 봉을 지키는 사람이 이미 적인에게 노주(擄走)당한 것이다. 한 좌의 봉대에 여섯 사람을 배치하되 다섯 사람은 「봉자(烽子)」라 칭하여 윤류로 경차의 시각을 장악하고 적정의 동정을 망량(瞭望)하며 한 사람은 「봉졸(烽卒)」이라 칭하여 오로지 문서와 부첩(符牒)의 수발전체(收發傳遞)를 관한다.

마포토하(馬鋪土河)편 제47

經曰:每鋪相去四十里,如驛近遠於要路山谷間,牧馬兩匹與游奕計會,有事警急,煙塵入境,則奔馳相報。

병경 위에 이르기를, 마포와 마포 사이는 사십 리를 서로 거리두어 역처럼 원근에 따라 요도와 산곡 사이에 분포한다. 매 한 포에 말 두 필을 기르고 순라하는 유혁대(游奕隊)와 서로 통보연락하되 일단 긴급한 군정이 있으면 연진이 이미 경내에 들어온 것을 바라보고 곧 말을 타고 질주하여 전보하러 간다.

置土河於山口,賊路橫截,道鑿之,橫闊二丈、深二丈,〈○ 文瀾閣本「二尺」。〉以細沙散土塡平,早夜行檢,掃令平凈,有狐兔入境,亦知足跡多少,況於人馬乎!

산구(山口)의 곳에 「토하(土河)」를 설치하여 적인이 오는 길을 가로막아 끊되 도로를 따라 파낸다――가로 너비 이 장·깊이 이 장(문란각본은 「이척」으로 되어 있다)이요 도랑 속에 세사(細沙)와 송산(松散)한 부토(浮土)를 채워 평탄하게 한다. 아침저녁으로 모두 사람을 파하여 순행하여 살펴보게 하고 모래 표면을 쓸어 평정건정(平整乾淨)하게 한다. 이와 같이 하면 비록 호리와 야토만이 경내에 들어와도 오히려 남긴 발자국으로부터 왕래의 다소를 보아 낼 수 있거든 하물며 인마가 지나가는 것이겠는가.

유혁지청(遊奕地聽)편 제48

經曰:於奇兵中,選驍果、諳山川井泉者,與烽子馬鋪土河,計會交牌,日夕邏候於庭障之外,捉生事,問敵營虛實。我之密謀,勿令游奕人知。其副使子將並久諳軍旅、好身手者任。

병경 위에 이르기를, 기동대용(機動待用)의 기병 속에서 효용과결하고 산천도로와 수정천원(水井泉源)에 숙식한 사람을 가려 뽑아 유혁을 충당하게 하고 그들로 하여금 봉자·마포·토하 각처와 서로 연락하고 빙패(憑牌)를 서로 검하게 하며 아침저녁으로 정장(亭障) 밖에서 순라정후(偵候)하고 오로지 「착생(捉生)」을 관하니 곧 산 사람을 잡아 다시 포로의 입 가운데서 적영의 허실을 물어 낸다. 우리 측의 기밀모획에 이르러서는 결코 유혁하는 사람에게 알게 해서는 안 된다. 유혁의 부사(副使)와 자장(子將)은 모두 장기간 군려에 숙식하고 신수가 뛰어난 사람을 가려 담임하게 해야 한다.

地聽,選少睡者,令枕空胡䍡臥,有人馬行三十里外,東西南北皆有響見於胡䍡中,名曰「地聽」,可預防奸。野豬皮為胡䍡尤妙。

「지청」의 방법은――잠이 적고 얕게 자는 사람을 가려 뽑아 그로 하여금 한 개의 빈 호려(胡䍡, 가죽으로 만든 빈 주머니)를 베고 땅 위에 눕게 한다. 다만 삼십 리 밖에 인마의 행동이 있으면 동남서북 각 방향의 성향이 모두 호려 속에서 회향을 전해 내니 이 방법을 곧 「지청」이라 하여 이로써 적인의 투습(偸襲)을 미리 살각할 수 있다. 야저피(野猪皮)로 만든 호려는 효과가 더욱 좋다.

보평안(報平安)편 제49

經曰:報平安者,諸營鋪百司主掌皆入五更,有動靜報虞候知,左右虞候早出,大將軍牙前帶刀磬折,大聲通曰:「左右廂兵馬及倉庫營並平安。」諾,復退本班。如有盜賊動靜緊急,卽具言其事。若在野行軍,卽言行營兵馬及更鋪並平安。

병경 위에 이르기를, 이른바 평안을 알린다는 것은 각 영·각 포 및 각 관서의 주관인원이 오경(五更)에 이르면 모두 직에 들어가 동정이 있으면 먼저 우후(虞候)에게 알려 알게 한다. 날이 밝으면 좌우 우후가 반을 나와 대장군의 아장(牙帳) 앞에 달려 이르러 칼을 차고 허리를 굽혀 례를 행하고 높은 소리로 통보하여 이르기를 「좌우 양상(兩廂)의 병마 및 창고·영루가 일괄로 평안하다」 한다. 대장군이 한 소리 「낙(諾)」으로 응하면 우후는 곧 본반으로 물러 돌아간다. 만약 도적이 출몰하는 류의 긴급한 동정이 있으면 곧 사정을 낱낱이 알려 올린다. 만약 야외의 행군에 있으면 곧 말을 바꾸어 행영의 병마와 각처의 경포가 일괄로 평안하다고 통보한다.

엄경고각(嚴警鼓角)편 제50

經曰:夫城軍野營,行軍在外,五更初、日沒時,搥鼓一通,三百三十搥為一通。鼓音止,則角音動。吹一十二聲,角為一疊。角音止,鼓音動。如此三鼓、三角而昏明畢。〈○張刻本無「明」字。〉行軍,第一角聲動,兵士起;第二角聲動,戎裝了;第三角聲動,內外辦;角音絶,兵馬齊動而發。

병경 위에 이르기를, 무릇 성에 주둔하는 군대·야외의 영반과 밖에서 행군하는 부대는 오경이 갓 일어날 때와 낙일 시분에 모두 북을 쳐서 일통으로 하고 삼백삼십 추(槌)로 일통을 계산한다. 고성이 한번 멈추면 호각소리가 곧 일어나 십이 소리를 불어 다하여 일첩(一疊)으로 계산한다. 각성이 한번 멈추면 고성이 다시 일어난다. 이와 같이 삼통의 북·삼첩의 각이면 하루의 아침저녁의 경호(警號)가 완성된다(장각본에는 「명(明)」자가 없다). 행군할 때 제일 번의 각성이 울리면 사병이 기신(起身)하고 제이 번의 각성이 울리면 갑주장속을 착대하여 정당하고 제삼 번의 각성이 울리면 영내영외가 일체 제비(齊備)하며 각성이 한번 끊어지면 전군의 인마가 일제히 계정출발(啓程出發)한다.

정포(定鋪)편 제51

經曰:每日戌時,嚴警,鼓角初動,虞候領甲士十二隊,建旗幟、立號頭,廵軍營及城上,如在野廵營,外定更鋪疏密。坐者喝曰:「是甚麼人?」廵者荅曰:「虞候總管某乙廵。」坐喝曰:「作甚行?」荅曰:「定鋪。」坐喝曰:「是不是行?」荅曰:「是。」如此者三喝三荅,坐曰:「虞候總管過。」號頭及坐喝用聲雄者充。

병경 위에 이르기를, 매일 술시(戌時)에 「엄경」을 시작하여 고성각성이 갓 울려 움직이면 우후가 곧 갑을 걸친 열두 개의 대를 솔령(率領)하고 기치를 쳐들며 「호두(號頭)」(오로지 마시고 대답하는 말을 관하는 사람)을 설치하여 군영과 성두를 순찰하고 만약 야외에 있으면 곧 영반의 사주를 순찰하여 한길에 경포의 설치의 소밀(疏密)을 핵정한다. 좌수(坐守)하는 초병이 물어 이르기를 「이는 무슨 사람인가」 하면 순찰하는 사람이 회답하여 이르기를 「우후총관 모모가 순찰 중이다」 한다. 좌초가 다시 물어 이르기를 「와서 무엇을 하는가」 하면 회답하여 이르기를 「경포를 핵정한다」 한다. 좌초가 다시 물어 이르기를 「이것이 참인가 아닌가」 하면 회답하여 이르기를 「그러하다」 한다. 이와 같이 삼문삼답이 완료되면 좌초가 비로소 말하여 이르기를 「우후총관이 통과한다」 한다. 호두와 좌초의 묻는 것을 담임하는 자는 모두 목소리가 홍량한 사람을 가려 충임하게 해야 한다.

야호경각(夜號更刻)편 제52

經曰:夜取號於大將軍處,粘藤紙二十四張,十五行界印縫安標軸,題首云「某軍某年某月某日號簿」。每日戌時,虞候、判官持簿於大將軍幕前取號,大將軍取意於一行中書兩字,上一字是坐喝,下一字是行荅。於將軍前封鎖,函付諸號,各到彼廵檢所,主首以本鑰匙開函,告報不得令有漏洩。一夜書一行,二十四張三百六十行,盡一載,別更其簿。

병경 위에 이르기를, 야간의 구령은 대장군에게 가서 받아야 한다. 방법은 스물네 장의 등지(藤紙)를 점접(粘接)하여 책을 이루고 매 장에 십오 행의 계란(界欄)을 그리고 기봉(騎縫)처에 인을 찍으며 표첨(標簽)과 권축(卷軸)을 달고 권두에 「모군 모년 모월 모일 호부(號簿)」라 제서(題寫)한다. 매일 술시에 우후와 판관이 호부를 받들고 대장군의 장전에 이르러 호를 청하면 대장군이 임의로 한 행 속에 두 자를 써 내리되 위의 한 자는 좌초가 묻는 암호요 아래의 한 자는 순행하는 자가 응답하는 암호이다. 쓰기를 마치면 장군의 면전에서 갑(匣) 속에 봉쇄하여 넣고 각처의 구령을 나누어 내려 보낸다. 각 순검소에 보내 이른 뒤에는 주관인이 스스로 보관하는 열쇠로 갑을 열어 하나하나 알려 주되 새어 나가 누설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하룻밤에 한 행을 쓰고 스물네 장의 종이가 모두 삼백육십 행이니 바로 일 년을 다 쓰고 일 년이 지나면 다시 따로 한 권의 신부(新簿)로 바꾼다.

更漏牌,一日一夜,凡一百刻,以竹馬為一百。牌長三寸、闊一寸,逐月題云「某月更牌」。一日一夜計行二百里,探更人每刻徐疾行二里,常取月中氣為正。

경루패(更漏牌)의 제도는――일 주야에 모두 백 각(刻)이니 곧 죽편으로 백 면의 패자를 만들어 서로 맞춘다. 매 면의 패는 길이 삼 촌·너비 일 촌이요 달에 따라 「모월 경패(更牌)」라 제서한다. 패를 전하는 사람은 일 주야에 총 이백 리를 걸어야 하니 곧 경을 살피는 사람이 매 일 각에 빠르지도 늦지도 않게 이 리를 걷는다. 추산할 때는 일률로 해당 월의 「중기」의 그 하루를 준으로 삼는다.

雨水,正月中,夜傳牌四十九分,一更傳牌九,餘一里一百七十三步三尺二寸。春分,二月中,夜傳牌五十一分,一更傳牌十。穀雨,三月中,夜傳牌三十七分,一更傳牌七,餘一里十四步二尺。

우수는 정월의 중기이니 밤새 모두 패 사십구 분을 전하고 매 일 경에 패 아홉 면을 전하며 따로 일 리 백칠십삼 보 삼 척 이 촌의 노정이 남는다. 춘분은 이월의 중기이니 밤새 모두 패 오십일 분을 전하고 매 일 경에 패 열 면을 전한다. 곡우는 삼월의 중기이니 밤새 모두 패 삼십칠 분을 전하고 매 일 경에 패 일곱 면을 전하며 따로 일 리 십사 보 이 척의 노정이 남는다.

小滿,四月中,夜傳牌三十六三分,一更傳牌七,餘一百七十步四尺八寸。夏至,五月中,夜傳牌三十五分,一更傳牌七。大暑,六月中,夜傳牌三十六三分,一更傳牌七,餘一百七十五步一尺二寸。

소만은 사월의 중기이니 밤새 모두 패 삼십육 또 삼 분을 전하고 매 일 경에 패 일곱 면을 전하며 따로 백칠십 보 사 척 팔 촌의 노정이 남는다. 하지는 오월의 중기이니 일 년 가운데 밤이 가장 짧아 밤새 모두 패 삼십오 분을 전하고 매 일 경에 패 일곱 면을 전한다. 대서는 유월의 중기이니 밤새 모두 패 삼십육 또 삼 분을 전하고 매 일 경에 패 일곱 면을 전하며 따로 백칠십오 보 일 척 이 촌의 노정이 남는다.

處暑,七月中,夜傳牌三十六三分,一更傳牌七,餘一百七十五步一尺二寸。秋分,八月中,夜傳牌四十四五分,一更傳牌八,餘一里二百八十六步一尺二寸。霜降,九月中,夜傳牌四十九五分,一更傳牌九,餘一百一十八步五尺六寸。

처서는 칠월의 중기이니 밤새 모두 패 삼십육 또 삼 분을 전하고 매 일 경에 패 일곱 면을 전하며 따로 백칠십오 보 일 척 이 촌의 노정이 남는다. 추분은 팔월의 중기이니 밤새 모두 패 사십사 또 오 분을 전하고 매 일 경에 패 여덟 면을 전하며 따로 일 리 이백팔십육 보 일 척 이 촌의 노정이 남는다. 상강은 구월의 중기이니 밤새 모두 패 사십구 또 오 분을 전하고 매 일 경에 패 아홉 면을 전하며 따로 백십팔 보 오 척 육 촌의 노정이 남는다.

小雪,十月中,夜傳牌五十三三分,一更傳牌十,餘一里一百一十五步一尺二寸。冬至,十一月中,夜傳牌五十五,一更傳牌十一。大寒,十二月中,夜傳牌五十三二分,一更傳牌十,餘一里一百二十五步一尺二寸。

소설은 시월의 중기이니 밤새 모두 패 오십삼 또 삼 분을 전하고 매 일 경에 패 열 면을 전하며 따로 일 리 백십오 보 일 척 이 촌의 노정이 남는다. 동지는 십일월의 중기이니 일 년 가운데 밤이 가장 길어 밤새 모두 패 오십오를 전하고 매 일 경에 패 열한 면을 전한다. 대한은 십이월의 중기이니 밤새 모두 패 오십삼 또 이 분을 전하고 매 일 경에 패 열 면을 전하며 따로 일 리 백이십오 보 일 척 이 촌의 노정이 남는다.

右件古法多不合今。〈○本篇諸數,以算術求之,多不合。各本盡同,無從是正,姑仍之。〉

이상의 이것들은 모두 고인이 전하여 내린 방법이니 대다수가 당금의 실제의 추산과 맞지 않는다(본편의 각 항의 숫자는 산술로 핵험(核驗)하면 대부분 합하지 않고 각종의 본자도 또한 모두 같아 교정할 데가 없으므로 잠시 원모대로 보류한다).

향도(鄕導)편 제53

經曰:卽鹿無虞,從入于林中。不用鄕導,難得地利。夫用鄕導者,不必土人,但諳彼山川之險易、敵之虛實,卽可任也。賞之使厚,收其心也;備之使嚴,防其詐也。是故錫之以官爵,富之以財帛,使有所戀;匹之以妻子,使有所懷。然後察其辭,鑑其色,覆其言,始終如一,可以用之也。

병경 위에 이르기를, 《주역·둔괘(屯卦)》 육삼 효사에 이르기를 「들사슴을 추축(追逐)하되 우인(虞人)이 길을 인도하지 않으면 다만 한갓 수풀 속에 들어가 방향을 미실(迷失)할 뿐이다」 하였다. 행군에 향도를 쓰지 않으면 지형의 이를 차지하기 어렵다. 이른바 향도를 쓴다는 것은 반드시 당지의 토착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다만 그가 그 일대의 산천의 험이(險易)와 적정의 허실에 숙식하면 곧 이로써 임용할 수 있다. 그에게 주는 상사(賞賜)는 풍후해야 하니 하는 바는 그의 마음을 수롱(收攏)하기 위함이요 그에 대한 방범(防範)은 엄밀해야 하니 하는 바는 그가 속임을 부리는 것을 제방(提防)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그에게 관작을 내리고 재백으로 그를 부족하게 하여 그로 하여금 유련(留戀)하는 바가 있게 하고 그를 위하여 처실자녀(妻室兒女)를 혼배하여 그로 하여금 겸괘(牽挂)하는 바가 있게 한다. 그런 뒤에 다시 그의 언사를 세찰하고 그의 신색을 심간(審看)하며 그가 말한 바를 반복하여 핵대하여 전후가 시종여일하면 이 사람이야말로 비로소 방심(放心)하여 사용할 수 있다.

정천(井泉)편 제54

經曰:沙磧鹵莽之中有水。野馬黃牛之蹤,〈○ 文瀾閣本「牛」作「羊」。張刻本作「野羊之聚」。〉尋之有水。烏鳥所集處有水。地生葭葦菰蒲之處有伏泉。地有蟻壤之處,下有伏泉。

병경 위에 이르기를, 사적(沙碛)과 염감황야(鹽碱荒野) 가운데서도 물을 찾아 낼 수 있다. 야마·황우가 남긴 발자취를 보면(문란각본은 「우(牛)」를 「양(羊)」으로 하고 장각본은 「야양지취(野羊之聚)」로 되어 있다) 따라서 추심(追尋)하면 곧 물이 있다. 오아(烏鴉)와 날짐승이 모여 드는 지방에 물이 있다. 땅 위에 로위·교백(茭白)·부초가 자라는 지방은 밑에 잠복한 천맥(泉脈)이 있다. 땅 위에 마의(螞蟻)가 쌓아 올린 송토(松土)가 있는 지방은 밑에도 또한 잠복한 천맥이 있다.

미도(迷途)편 제55

經曰:遠征迷途,南北不分,當以北辰為正。

병경 위에 이르기를, 원정하여 밖에 있어 도로를 미실하고 남북 방향을 분청하지 못할 때는 마땅히 북극성의 위치로써 방위를 교정해야 한다.

正月,昏參中、朝尾中。二月,昏弧中、朝建星中。三月,昏七星中、朝牽牛中。四月,昏翼中、朝婺女中。

정월은 황혼 때 삼수(參宿)가 남천의 정중에 운행하고 청신 때 미수(尾宿)가 정중에 이른다. 이월은 황혼 때 호시성(弧矢星)이 정중에 이르고 청신 때 건성(建星)이 정중에 이른다. 삼월은 황혼 때 성수(七星)가 정중에 이르고 청신 때 견우성(牽牛星)이 정중에 이른다. 사월은 황혼 때 익수가 정중에 이르고 청신 때 무여성(婺女星)이 정중에 이른다.

五月,昏亢中、朝危中。六月,昏心中、朝奎中。七月,昏建中、朝畢中。八月,昏牽牛中、朝觜中。

오월은 황혼 때 항수가 남천의 정중에 운행하고 청신 때 위수가 정중에 이른다. 유월은 황혼 때 심수가 정중에 이르고 청신 때 규수가 정중에 이른다. 칠월은 황혼 때 건성이 정중에 이르고 청신 때 필수가 정중에 이른다. 팔월은 황혼 때 견우성이 정중에 이르고 청신 때 자수가 정중에 이른다.

九月,昏虛中、朝柳中。十月,昏危中、朝七星中。十一月,昏東壁中、朝軫中。十二月,昏婁中、朝氐中。

구월은 황혼 때 허수가 남천의 정중에 운행하고 청신 때 유수가 정중에 이른다. 시월은 황혼 때 위수가 정중에 이르고 청신 때 성수가 정중에 이른다. 십일월은 황혼 때 동벽수가 정중에 이르고 청신 때 진수가 정중에 이른다. 십이월은 황혼 때 누수가 정중에 이르고 청신 때 저수가 정중에 이른다. 이 십이 개월의 중천의 성상을 기주(記住)하면 밤에 행군하여 곧 이로써 남북을 판정할 수 있다.

其陰雪,則用老馬引前。昔齊桓公伐孤竹,值雪迷道,驅老馬尋途,不迷。

음천(陰天)에 눈이 내리는 것을 만나 성신을 분변할 수 없을 때는 곧 노마(老馬)를 놓아 대오의 맨 앞을 가서 길을 이끌게 하라. 당년 제환공이 북벌하여 고죽국(孤竹國)에 이르렀을 때 바로 대설을 만나 도로를 미실하니 관중이 사람으로 하여금 노마를 몰아 앞면에서 길을 찾게 하여 대오가 곧 다시 방향을 미실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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