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설(洛書說)
大禹因洛書而作九疇。今以一三五七九居四方及中央正位,以二四六八居四維偏位,又隱其十,正表陽德為政,而陰德輔之。在人,則為知及仁守之學,智巧聖力之象也。左右前後縱橫斜直視之,皆得十五之數,以表位位法法之中,皆具天地之全體滿數,非分天地以為諸數也。物物一太極,於此可見。
대우는 《낙서》에 의거하여 《홍범》 구주를 제정하였다. 지금 《낙서》는 일·삼·오·칠·구를 사방과 중앙의 정위에 놓고, 이·사·육·팔을 사우의 편위에 놓으며, 또 십을 은거하여 쓰지 않는다. 바로 이로써 양덕이 주정하고 음덕이 곁에서 보좌함을 나타낸다. 사람의 몸에서는, 이것이 곧 《논어》의 말하는 「지급지 인수지」의 저 문학문이며, 또한 《맹자》의 말하는 지·교·성·력의 상징이다. 좌우·전후·종횡·사직의 어떤 한 방향으로 그것을 보아도, 세 개의 수를 더하면 모두 십오를 얻는다. 이로써 매 한 개의 위·매 한 가지의 법 가운데, 모두 천지의 전부의 본체와 원만의 수를 구족하고, 아울러 천지를 뜯어 여러 수로 나누는 것이 아님을 나타낸다. 「물물각구일태극」은 여기서 볼 수 있다.
約出世法,則九界皆即佛界,故不別立佛界之十;又九波羅密皆即種智,故不別立種智之十。蓋凡數法若至於十,便是大一數故;數於此終,即於此始故。
출세간법에 대해 말하면, 아홉 개의 법계는 당하가 곧 불계이다. 그러므로 따로 하나의 불계를 대표하는 「십」을 세우지 않는다. 아홉 가지 바라밀은 당하가 곧 일체종지이다. 그러므로 또한 따로 하나의 종지를 대표하는 「십」을 세우지 않는다. 무릇 수목이 십에 이르면, 곧 하나의 더욱 큰 「일」로 회도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수는 여기서 종결하고, 또한 여기서 새로이 시작한다. 《낙서》가 「십」을 은거함은, 바로 이 도리이다.
복희팔괘차서설(伏羲八卦次序說)
繫辭傳曰:易有太極,是生兩儀,兩儀生四象,四象生八卦。(太極非動非靜,雙照動靜,故必具乎陰陽。陽亦太極,陰亦太極,故皆非動非靜,雙照動靜,還具陰陽而成四象。四象亦皆即是太極,所以皆亦非動非靜,雙照動靜,還具陰陽而成八卦。然則八卦只是四象,四象只是陰陽,陰陽只是太極,太極本無實法,故能立一切法耳。)
《계사상전》에 이르기를, 《역》에 태극이 있다. 태극이 양의를 낳고, 양의가 사상을 낳으며, 사상이 팔괘를 낳는다. 원서의 협주에 이르기를, 태극은 이미 동이 아니며 또한 정이 아니나, 동시에 동과 정을 조견한다. 그러므로 반드시 음양을 구족한다. 양도 또한 태극이요, 음도 또한 태극이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같이 이미 동이 아니며 또한 정이 아니면서 동정을 쌍조하고, 또 각각 음양을 구족하여 사상이 된다. 사상도 또한 모두 온전히 태극이다. 그러므로 같이 이미 동이 아니며 또한 정이 아니면서 동정을 쌍조하고, 또 각각 음양을 구족하여 팔괘가 된다. 이렇게 보면, 팔괘는 다만 사상일 뿐이고, 사상은 다만 음양일 뿐이며, 음양은 다만 태극일 뿐이다. 그런데 태극은 본래 하나의 실재하는 법이 없으므로, 바로 그 한 법도 얻을 수 없음으로 인하여, 곧 일체의 법을 건립할 수 있다.
若從一生二,從二生四,從四生八,從八生六十四等,是為順數;若從六十四溯至八,八溯至四,四溯至二,二溯至一,一亦本無實法,是為逆數。順數則是流轉門,逆數則是還滅門。流轉從陰陽二畫出,還滅從陰陽二畫入,故曰乾坤其易之門。聖人作易,要人即流轉而悟還滅,超脫生死轉回,故曰易逆數也。
지욱의 해설: 만일 일에서 이를 낳고, 이에서 사를 낳으며, 사에서 팔을 낳고, 팔에서 생성하여 육십사가 되는 이렇게 아래로 미루면, 이것을 「순수」라 한다. 만일 육십사에서 상소하여 팔, 팔에서 상소하여 사, 사에서 상소하여 이, 이에서 상소하여 일 하되, 이 「일」은 본래 또한 실재하는 법이 얻을 것이 없다. 이것을 「역수」라 한다. 순수는 곧 생사유전의 문이요, 역수는 곧 생사를 환멸하는 문이다. 유전은 음양 두 획에서 달려 나가고, 환멸은 음양 두 획에서 달려 돌아온다. 그러므로 《계사》에 「건곤기역지문」이라 한다. 성인이 《역》을 지음은, 사람으로 하여금 곧 유전 가운데서 환멸에 깨달아 이르고, 생사윤회를 초탈하게 하려 한다. 그러므로 「역 역수야」라 한다. (「생사전회」의 「전」은 저본이 이와 같으니, 마땅히 「륜」으로 해야 한다.)
복희팔괘방위설(伏羲八卦方位說)
先天八卦,約體言之:乾南表天,坤北表地,離東表日,坎西表月。震居東北,動之初也;兌居東南,海之象也;巽居西南,入之初也;艮居西北,山之象也。須彌在此方視之,則居西北。日月星辰至西北,皆為須彌腰所掩,故妄計天缺西北也。
「선천팔괘」란 복희가 정한 괘위를 가리키며, 우주의 본체격국을 논하는 것은, 하문의 「후천팔괘」(문왕괘위, 사시유행의 공용을 논함)와 서로 대한다. 「약체언지」는 단지 본체에 대해서만, 공용에 대하지 않고 말하는 것이다. 사정의 위. 건은 세 획이 순양하여 하늘을 상징한다. 정남에 있다. 곤은 세 획이 순음하여 땅을 상징한다. 정북에 있다. 리는 외양중허하여 해를 상징한다. 정동에 있다. 감은 외음중실하여 달을 상징한다. 정서에 있다. 사우의 위. 진은 일양이 처음으로 두 음 아래에 생기는 것은, 「동」의 기두이다. 동북에 있다. 태는 상효가 개구하여 못과 같은 것은, 대해의 상을 취한다. 동남에 있다. 손은 일음이 잠겨 두 양 아래에 복하는 것은, 「입」의 기두이다. 서남에 있다. 간은 일양이 정지하여 두 음 위에 있는 것은, 고산의 상을 취한다. 서북에 있다. 팔괘는 이에 의하여 환열일주하여, 선천방위도가 곧 이루어진다. 이하는 지욱이 불법으로써 역리에 회통하는 곳. 간은 이미 산을 나타내고, 불가의 말하는 세계중심의 「수미산」(의역하여 묘고산), 우리가 사는 이 한 주에서 바라보면 마침 서북에 있다. 일월성신이 서북에 이르러 가면, 모두 수미산허리에 차폐되어 은몰한다. 세인은 그 까닭을 알지 못하여, 곧 허망하게 「하늘이 서북에 결하다」고 단정한다(《회남자》에 실린 공공이 노하여 불주산을 두고, 천주가 부러져 서북으로 기운 전설과 같다). 저본의 이 절은 원래 방위도를 부하였고, 본문은 곧 도의 해설이다.
복희육십사괘차서설(伏羲六十四卦次序說)
隨拈一陰一陽,必還具一陰一陽,故六重之而成六十四卦。其實卦卦無非太極全體,故得為四千九十六卦也。
손을 따라 한 획을 집어 내면, 그것이 음이든 양이든를 논하지 않고, 이 한 획 가운데 반드시 또한 일음일양을 구족한다. 이와 같이 층층이 서로 인하여, 양의를 여섯 번 중첩하면(이가 사를 낳고, 사가 팔을 낳으며, 팔이 십육을 낳고, 십육이 삼십이를 낳으며, 삼십이가 육십사를 낳는다), 곧 육십사괘가 된다. 사실, 매 한 괘는 모두 태극의 일부분이 아니라, 태극의 전체이다. 괘마다 이미 각각 전체를 구비하면, 곧 육십사괘 가운데의 매 한 괘는 또한 각각 육십사괘를 함유하고, 육십사는 자승하여 곧 사천구십육괘를 얻는다(한대의 초연수 《초씨역림》에 사천구십육괘를 세운 것은, 쓰는 바가 바로 이 수이다).
복희육십사괘방위설(伏羲六十四卦方位說)
約一天下,亦以此卦圖而分佈之;約一省一府一縣,亦各以此卦圖而分佈之;近約一宅,亦以此卦圖而分佈之;即單約一房一坐具地,亦以此卦圖而分佈之。大不礙小,小不礙大;大亦只是六十四卦,小亦全具六十四卦。一時一刻亦有此六十四卦,亙古亙今亦只此六十四卦。若向此處悟得,便入華嚴事事無礙法界,故李長者藉此以明華藏世界。不然,豈令福建在南,則有乾無坤;燕都在北,則有坤無乾;天竺在西,但為坎地;支那在東,惟是離方也耶?
온 천하에 대해 말하면, 이 한 폭의 육십사괘방위도를 펼쳐 방위를 분배할 수 있고, 일성·일부·일현으로 축소해도, 또한 각각 같은 한 폭의 괘도로써 분배할 수 있다. 다시 가까운 것은, 한 채의 택원에 대해 말해도, 같이 이 괘도로써 분배한다. 다만 한 칸의 방·한 폭의 펼친 좌구(승인이 자와 예배하는 데 쓰는 방형의 전구, 펼치면 불과 방장의 땅) 정도의 크기의 지방에 대해 말해도, 또한 마찬가지로 한 폭의 육십사괘이다. 큰 범위는 작은 범위를 방해하지 않고, 작은 범위도 또한 큰 범위를 방해하지 않는다. 커서 천하에 이르러도 다만 이 육십사괘이고, 작아서 한 자리의 땅에 이르러도 온전히 이 육십사괘를 구비한다. 공간이 이와 같으면, 시간도 또한 그렇다. 일시일각 가운데 이 육십사괘가 있고, 원고로부터 금후에 이르러도 다만 이 육십사괘이다. 이하는 불법회통. 능히 여기서 깨달아 들어가면, 곧 《화엄경》의 말하는 「사사무애법계」에 진입한다——일일의 사상이 서로 주변함용하여 서로 방해하지 않고, 작은 것은 확대할 필요 없고 큰 것은 축소할 필요 없이 자연히 서로 곧바로 된다. 당대의 화엄학자 이통현(세상에 「이장자」라 칭하며, 《신화엄경론》을 저술함)은 바로 이 괘도를 빌려 「화장세계」(비로자나불이 거하는 바, 중중무진의 장엄세계)를 강명한다. 만일 이러한 이해를 짓지 않으면, 어찌 변하여, 복건이 남방에 있어, 저곳은 다만 건괘가 있고 곤괘가 없으며, 북경(연도)이 북방에 있어, 저곳은 다만 곤괘가 있고 건괘가 없으며, 인도(천축)가 서쪽에 있어, 곧 온통 감괘의 땅이고, 중국(지나)가 동쪽에 있어, 다만 리괘의 한 방이 되겠는가.
문왕팔괘차서설(文王八卦次序說)
男即父,女即母。又父只是男,母只是女。坤體得乾為三男,有慧之定,即止而觀也:震為觀穿義,艮為觀達義,坎為不觀觀義。乾體得坤為三女,有定之慧,即觀而止也:巽為止息義,兌為停止義,離為不止止義。震動艮靜,坎能動能靜,乾非偏於動也;巽動兌靜,離能動能靜,坤非偏於靜也。又震動而出,巽動而入,艮靜而高,兌靜而深。坎兼動靜,而從上之下,上終不窮;離兼動靜,而從下之上,下終不盡。信知一一皆法界也。
아버지와 세 아들, 어머니와 세 딸은 나란히 두 가지 일이 아니다. 세 아들이 곧 아버지이고, 세 딸이 곧 어머니이다. 반대로 말하면, 아버지도 또한 지나지 않아 곧 아들이고, 어머니도 또한 지나지 않아 곧 딸이다. 곤괘의 몸은 세 획이 모두 음으로, 건괘의 일양을 얻으면, 곧 세 개의 남괘를 생출한다——양이 초효에 들어가 진을 이루고, 중효에 들어가 감을 이루며, 상효에 들어가 간을 이룬다. 이것이 곧 《설괘전》 「일색이득남」의 차서이다. 불법 위에서는 「유혜지정」에 상당하여, 곧 지에서 일어나 관이 된다. 세 아들은 각각 천태종 《마하지관》의 말하는 「관」의 세 가지 뜻에 배한다. 진은 「관천」의 뜻을 취한다. 관조는 능히 미혹을 천파한다. 간은 「관달」의 뜻을 취한다. 관조는 능히 실상에 통달한다. 감은 「불관관」의 뜻을 취한다. 능관소관의 상을 일으키지 않고 자연히 조료한다. 건괘의 몸은 세 획이 모두 양으로, 곤괘의 일음을 얻으면, 곧 세 개의 여괘를 생출한다——음이 초효에 들어가 손을 이루고, 중효에 들어가 리를 이루며, 상효에 들어가 태를 이룬다. 이것은 「유정지혜」에 상당하여, 곧 관에서 돌아와 지가 된다. 각각 「지」의 세 가지 뜻에 배한다. 손은 「지식」의 뜻을 취한다. 망념을 식멸한다. 태는 「정지」의 뜻을 취한다. 안주하여 움직이지 않는다. 리는 「부지지」의 뜻을 취한다. 머무는 곳이 없이 자연히 멈춘다. 다시 동정을 보면, 진은 움직이고 간은 고요하며, 감은 곧 능히 움직이고 능히 고요하다. 이로써 세 아들의 아버지 건이 나란히 동의 한쪽에 치우치지 않음을 본다. 손은 움직이고 태는 고요하며, 리는 곧 능히 움직이고 능히 고요하다. 이로써 세 딸의 어머니 곤도 또한 정의 한쪽에 치우치지 않음을 본다. 더욱 세분하면, 진은 움직여 밖으로 발출하고, 손은 움직여 안으로 잠입하며, 간은 고요하여 고산과 같이 솟고, 태는 고요하여 못과 같이 깊이 내린다. 감은 동정을 겸하여,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흘러, 위의 원두는 마침내 다하지 않는다. 리는 동정을 겸하여, 불은 아래에서 위로 올라, 아래의 근본은 마침내 다하지 않는다. 이로부터 확실히 안다. 일괘일상이 모두 각각 원만한 「법계」의 전체가 아님이 없음을.
문왕팔괘방위설(文王八卦方位說)
《說卦傳》曰:帝出乎震,齊乎巽,相見乎離,致役乎坤,說言乎兌,戰乎乾,勞乎坎,成言乎艮。又曰:震,東方也。乃至艮,東北之卦也。此須約觀心工夫解釋,具在《說卦傳》解中。後天八卦,約用而言:離表火騰,故旺於南;坎表水降,故旺於北。交發立堅,溼為巨海,乾為洲潬。故坎雖居北,而水輪含十方界;坤艮之土亦遍四維。火勢劣水,抽為草木,故有震巽。木旺於春,故震居東方。巽亦屬木,又能生火,其象為風,故居東南。地性堅者名之為金,金旺於秋,故居西方。乾亦屬金,又表須彌是四寶所成,在此地之西北也。
《설괘전》에 이르기를, 만물의 주재는 진괘에서 발생하고, 손괘에 이르러 제정하며, 리괘에서 서로 보고, 곤괘에 이르러 양을 치하며, 태괘에서 흔열하고, 건괘에서 교전하며, 감괘에서 노권하고, 간괘에 이르러 종을 이루고 시를 이룬다. 또 이르기를, 진은 동방의 괘이요, 한 길로 세어 내려가 간은 동북의 괘에 이른다. 이 일련의 차제는 본신이 곧 후천팔괘의 방위를 배정하였다——진은 동, 손은 동남, 리는 남, 곤은 서남, 태는 서, 건은 서북, 감은 북, 간은 동북. 순시침으로 요행하여 일주하여, 바로 춘생·하장·추수·동장의 사시유행에 합한다. 이것이 바로 후천괘위와 선천괘위의 분별이다. 선천이 논하는 것은 건남곤북의 피차대대하는 본체이고, 후천이 논하는 것은 만물이 의시운행하는 공용이다. 이 한 절은 또한 「관심」(자심에 반조하는) 공부에 대해 해석해야 하나, 이미 자세히 본서 《설괘전》의 주해에 실렸으니, 여기서 다시 중출하지 않는다. 후천팔괘는 공용유행에 대해 논한다. 리는 불을 나타내고, 화성은 위로 솟는다. 그러므로 남방에 왕하다. 감은 물을 나타내고, 수성은 아래로 내린다. 그러므로 북방에 왕하다. 이하는 《능엄경》의 말하는 세계성립의 상을 인용하여 회통한다. 불의 상승과 물의 하강이 서로 발동하여, 응결하여 견고의 상이 된다. 습습한 곳은 대해가 되고, 마른 곳은 주저사주가 된다. 그러므로 감은 비록 정위하여 북에 있으나, 수륜은 도리어 시방세계를 함포한다. 곤·간은 함께 흙에 속하고, 흙도 또한 사유(사우)에 편포한다. 화세는 물에 맞지 않아, 핍추되어 발출되면 곧 초목이 된다. 이에 진괘·손괘가 있다. 나무는 봄에 왕하다. 그러므로 진은 정동에 있다. 손도 또한 나무에 속하고, 또 능히 불을 낳는다. 그 상은 바람이다. 그러므로 동남에 있다. 토성 가운데 견경한 부분을 금이라 한다. 금은 가을에 왕하다. 그러므로 태금은 정서에 있다. 건도 또한 금에 속하고, 또 수미산은 금·은·유리·수정의 사보가 이룬 바를 표징한다. 곧 우리의 이 대괴의 토지의 서북에 있다. 그러므로 건은 서북에 있다. 이르러 곤의 서남에 있음과 간의 동북에 있음은, 본문은 다만 「토편사유」의 한 구로써 지나가고, 차례로 점명하지 않는다.
右圖說有八,或與舊同,或與舊異,只貴遙通儒釋心要而已。觀者恕之。蕅益敬識。
이상 여덟 편의 도설(《하도설》《낙서설》, 복희팔괘와 육십사괘의 차서·방위 모두 네 설, 문왕팔괘의 차서·방위 두 설, 합하여 여덟 편이 된다)는, 혹은 옛래의 해설과 같고, 혹은 옛설과 같지 않다. 나의 간중하는 바는, 다만 유가와 불가의 심법요지로 하여금 멀리 서로 관통하게 하려 함일 뿐이며, 감히 스스로 정론에 거하지 않는다. 독자가 만일 출입을 보면, 오히려 원량을 바란다. 우익(지욱의 자호)이 공경히 기록한다.
교각역선기사(校刻易禪紀事)
(瑞)叨侍大師五年,每見久精易學之士,一聞大師拈義,無不傾服。遂發心募梓全集,輒以《易禪》居首。大師解易既畢,方出圖說,故並附於末卷。或有問曰:紫陽《本義》,圖說在前,謂聖人作易精微之旨,全在語言文字之先,今胡得倒置耶?
나 통서는 우익대사를 시봉한 지 이미 오년이며, 항상 저 역학을 연마하여 다년간 된 사람들을 보면, 한번 대사가 《주역》 의리를 니체하는 것을 들으면, 마음으로 열복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이에 나는 마음을 발하여 재재를 모화하여, 대사의 전집을 간각하고, 아울러 이 《주역선해》를 전집의 머리에 열하였다. 대사는 먼저 《주역》의 경전을 강해하여 마치고, 그런 뒤에야 이 몇 편의 도설을 내어 놓았으므로, 간본도 또한 강설의 선후를 따라, 도설을 말권에 부하였다. 어떤 사람이 이로 인하여 의문을 제기한다. 주희(호는 자양)의 《주역본의》는, 하도낙서 등의 도설을 전서의 앞에 배열하여, 뜻은 성인이 《역》을 지은 정미한 지취가 모두 언어문자의 산생 이전에 있다는 것이다. 지금 그대는 어찌 도리어 도설을 뒤쪽에 놓아, 차서를 도치하는가.
大師答曰:聖人悟無言而示有言,學者因有言而悟無言,所以古有左圖右書之說,何倒之有?且文字與圖皆標月指耳,不肯觀月而爭指之前後,不亦惑乎?問者默然。茲因校刻,並識此語。願我同志閱斯編者,了知文字與圖無非吾人心性註腳,不作有言會,不作無言會,庶不負法恩矣。門弟子通瑞百拜敬書。
대사가 회답하여 말한다. 성인은 먼저 저 말할 수 없는 경계에 증오하고, 그런 뒤에야 유언의 문자로써 개시한다. 배우는 자는 곧 유언의 문자를 의지하여, 돌이켜 저 말할 수 없는 본원을 체오한다. 그러므로 고인에게 「좌도우서」의 설이 있다. 도와 서는 본래 나란히 나란히 쓰는 것이다. 어디에 도치를 논하겠는가. 하물며 문자이든 도상이든, 모두 지나지 않아 「표월지」(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능엄경》에서 나옴. 손가락은 다만 달을 지시하기 위함일 뿐, 만일 손가락을 알아 달로 삼으면 곧 그릇이다)이다. 달을 돌이켜 보기를 하지 않고, 도리어 손가락의 선후 위에서 쟁론한다. 또한 너무도 호도하지 않은가. 발문한 사람은 이를 듣고 묵연히 말이 없었다. 지금 교감간각의 기회를 빌려, 이 한 단의 말을 아울러 기록한다. 다만 바라건대 나와 동지의 독자는 이 책을 펼칠 때, 능히 밝게 알기를. 문자와 도는 우리 자기 심성의 주각이 아님이 없다. 이미 「유언」 위에 집착하여 회취하지 않고, 또한 「무언」 위에 집착하여 회취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하면 곧 대사의 설법의 법은을 저버리지 않는다. 대사 문하의 제자 통서 백배하여 공경히 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