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의(深衣)
古者深衣,蓋有制度以應規矩繩權衡。短毋見膚,長毋被土,續衽鉤邊,要縫半下,袼之高下,可以運肘。袂之長短,反詘之及肘。帶,下毋厭髀,上毋厭脅,當無骨者。
옛날의 심의(深衣)는, 대개 제도가 있어 규모(規矩)·승묵(繩墨)·권형(權衡)에 부합했다. 짧아도 살갗을 드러내지 않고, 길어도 땅을 덮지 않으며, 옷자락을 이어 변을 걸고, 허리 솔기는 아랫단의 절반이다. 소매 뿌리의 높낮이는, 팔꿈치를 움직일 수 있게 한다. 소매의 길이는, 꺾어 팔꿈치까지 온다. 띠는, 아래로 넓적다리를 누르지 않고, 위로 갈빗대를 누르지 않으며, 뼈가 없는 곳에 마땅히 둔다.
制十有二幅,以應十有二月。袂圜以應規,曲袷如矩以應方,負繩及踝以應直,下齊如權衡以應平。故規者,行舉手以為容,負繩抱方者以直其政,方其義也。故《易》曰:坤六二之動,直以方也。下齊如權衡者,以安志而平心也。五法已施,故聖人服之。故規矩取其無私,繩取其直,權衡取其平,故先王貴之。故可以為文,可以為武,可以擯相,可以治軍旅。完且弗費,善衣之次也。
재단하여 열두 폭으로 하여, 십이월(十二月)에 부합한다. 소매를 둥글게 하여 규(規)에 부합하고, 굽은 깃을 자(矩)처럼 하여 방(方)에 부합하며, 등의 솔기를 발목까지 내려 직(直)에 부합하고, 아랫단을 권형처럼 평평하게 하여 평(平)에 부합한다. 그러므로 규는, 걸을 때 손을 듦을 의용(儀容)으로 삼는다. 등에 줄을 지고 가슴에 자를 품는 것은, 정을 곧게 하고 의를 바르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주역》에 이르기를, 곤괘(坤卦) 육이(六二)의 움직임은, 곧고 또 바르다. 아랫단이 권형과 같이 평평한 것은, 뜻을 편안히 하고 마음을 평평하게 하기 위함이다. 다섯 법이 이미 베풀어졌으니, 그러므로 성인이 이를 입는다. 그러므로 규모는 그 사사로움 없음을 취하고, 줄은 그 곧음을 취하며, 권형은 그 평평함을 취하니, 그러므로 선왕이 이를 귀하게 여겼다. 그러므로 문(文)에 쓸 수 있고, 무(武)에 쓸 수 있으며, 빈상(擯相)이 될 수 있고, 군대를 다스릴 수 있다. 완비하고 낭비하지 않으니, 좋은 옷의 다음 등급이다.
具父母,大父母,衣純以繢。具父母,衣純以青。如孤子,衣純以素,純袂,緣純邊,廣各寸半。
부모와 조부모가 모두 계시면, 옷 가장자리에 채회(彩繪)를 쓴다. 부모가 모두 계시면, 옷 가장자리에 푸른색을 쓴다. 만약 고아(孤子)이면, 옷 가장자리에 소(素)를 쓴다. 소매 가장자리와 옷단 가장자리는, 넓이가 각각 일 촌 반이다.
투호(投壺)
投壺之禮,主人奉矢,司射奉中,使人執壺。主人請曰:“某有枉矢哨壺,請以樂賓。”賓曰:“子有旨酒嘉餚,某既賜矣,又重以樂,敢辭?”主人曰:“枉矢哨壺,不足辭也,敢固以請?”賓曰:“某既賜矣,又重以樂,敢固辭?”主人曰:“枉矢哨壺,不足辭也,敢固以請?”賓曰:“某固辭不得命,敢不敬從?”
투호의 예: 주인이 화살을 받들고, 사사(司射)가 중(中)을 받들며, 사람을 시켜 호(壺)를 들게 한다. 주인이 청하여 말한다. 「모에게 굽은 화살과 삐뚤어진 주둥이의 호가 있으니, 청컨대 이로써 빈을 즐겁게 하고자 합니다.」빈이 말한다. 「그대에게 좋은 술과 맛있는 안주가 있어, 모가 이미 하사를 받았는데, 또 즐거움을 더하시니, 감히 사양하겠습니까?」주인이 말한다. 「굽은 화살과 삐뚤어진 호는 사양할 만하지 않으니, 감히 다시 굳게 청합니다.」빈이 말한다. 「모가 이미 하사를 받았는데, 또 즐거움을 더하시니, 감히 다시 굳게 사양하겠습니까?」주인이 말한다. 「굽은 화살과 삐뚤어진 호는 사양할 만하지 않으니, 감히 다시 굳게 청합니다.」빈이 말한다. 「모가 굳게 사양하여도 허락을 얻지 못하니, 감히 공경히 따르지 않겠습니까?」
賓再拜受,主人般還曰闢。主人阼階上拜送,賓盤還曰闢。
빈이 재배하고 받으며, 주인이 몸을 돌려 피한다고 말한다. 주인이 조계(阼階) 위에서 배송하고, 빈이 몸을 돌려 피한다고 말한다.
已拜受矢,進即兩楹間,退反位,揖賓就筵。
이미 화살을 받들어 받고, 나아가 두 기둥 사이에 이르렀다가, 물러나 본래 자리로 돌아와, 읍하여 빈에게 자리에 가기를 청한다.
司射進度壺,間以二矢半,反位,設中東面,執八筭興。
사사가 나아가 호를 놓을 곳을 헤아리되, 간격을 화살 둘 반으로 하고, 자리로 돌아와, 중을 설치하여 동향하고, 여덟 개의 산(算)을 잡고 일어선다.
請賓曰:“順投為入,比投不釋,勝飲不勝者。正爵既行,請為勝者立馬,一馬從二馬,三馬既立,請慶多馬。”請主人亦如之。
빈에게 청하여 말한다. 「순서대로 던져 들어가야 들어감으로 치고, 연달아 던지는 것은 산을 놓지 않습니다. 이긴 이는 진 이에게 마시게 합니다. 정작(正爵)이 이미 행해졌으니, 청컨대 이긴 이를 위해 마(馬)를 세우겠습니다. 한 마리가 두 마리를 따르고, 세 마리가 이미 서면, 청컨대 마가 많은 이를 축하하겠습니다.」주인에게 청함도 또한 이와 같다.
命弦者曰:“請奏狸首,間若一。”大師曰諾。
거문고 치는 이에게 명하여 말한다. 「청컨대 《이수(貍首)》를 연주하되, 간격이 같게 하소서.」태사(太師)가 말한다. 「예.」
左右告矢具,請拾投。有入者,則司射坐而釋一筭焉。賓黨於右,主黨於左。
좌우에 화살이 이미 갖춰졌음을 알리고, 번갈아 던지기를 청한다. 들어간 이가 있으면, 사사가 곧 앉아서 산 하나를 놓는다. 빈의 무리는 오른쪽에 있고, 주인의 무리는 왼쪽에 있다.
卒投,司射執筭曰:“左右卒投,請數。”二筭為純,一純以取,一筭為奇,遂以奇筭告,曰:“某賢於某若干純。”奇則曰奇,均則曰左右鈞。
던지기가 끝나면, 사사가 산을 잡고 말한다. 「좌우가 다 던졌으니, 청컨대 세겠습니다.」산 둘을 한 순(純)으로 하고, 순으로 가져가며, 산 하나는 기(奇)로 한다. 이에 기로 알려 말한다. 「모가 모보다 약간의 순을 이겼습니다.」기가 있으면 곧 기라 하고, 같으면 곧 좌우가 고르다고 한다.
命酌曰:“請行觴。”酌者曰諾。當飲者皆跪奉觴曰:“賜灌。”勝者跪曰:“敬養。”
술 따르는 이에게 명하여 말한다. 「청컨대 잔을 돌리소서.」술 따르는 이가 말한다. 「예.」마셔야 할 이들이 모두 꿇어앉아 잔을 받들어 말한다. 「내려 주신 마심을 받들겠습니다.」이긴 이가 꿇어앉아 말한다. 「공경히 봉양하겠습니다.」
正爵既行,請立馬,馬各直其筭,一馬從二馬,以慶。慶禮曰:“三馬既備,請慶多馬。”賓主皆曰諾。正爵既行,請徹馬。
정작이 이미 행해지면, 마를 세우기를 청한다. 마는 각각 그 산에 대하고, 한 마리가 두 마리를 따르며, 이로써 축하한다. 축하의 예에 이르기를, 「세 마리가 이미 갖춰졌으니, 청컨대 마가 많은 이를 축하하겠습니다.」빈과 주인이 모두 말한다. 「예.」정작이 이미 행해지면, 마를 거두기를 청한다.
筭多少視其坐。籌,室中五扶,堂上七扶庭中九扶。筭長尺二寸,壺頸修七寸,腹修五寸,口徑二寸半,容鬥五升。壺中實小豆焉,為其矢之躍而出也。壺去席二矢半。矢,以柘若棘,毋去其皮。
산의 많고 적음은 자리에 있는 사람 수를 본다. 작(籌): 방 안에서는 오부(五扶), 당 위에서는 칠부(七扶), 뜰에서는 구부(九扶)이다. 산은 길이가 일 척 이 촌이다. 호의 목은 길이가 칠 촌, 배는 길이가 오 촌, 입구 지름은 이 촌 반이요, 용량은 일 두 오 승이다. 호 안에는 작은 콩을 담으니, 그 화살이 튀어 나올까 두려워함이다. 호는 자리에서 화살 둘 반을 떨어뜨린다. 화살은 떡갈나무나 가시나무로 하되, 껍질을 벗기지 않는다.
魯令弟子辭曰:“毋幠,毋敖,毋偝立,毋踰言,偝立踰言有常爵。”薛令弟子辭曰:“毋幠,毋敖,毋偝立,毋踰言,若是者浮。”司射、庭長及冠士立者皆屬賓黨,樂人及使者、童子皆屬主黨。
노(魯)나라가 제자에게 내리는 말에 이르기를, 「태만하지 말고, 교만하지 말고, 등지고 서지 말고, 멀리서 말하지 말라. 등지고 서거나 멀리서 말하면 항상 벌주가 있다」고 했다. 설(薛)나라가 제자에게 내리는 말에 이르기를, 「태만하지 말고, 교만하지 말고, 등지고 서지 말고, 멀리서 말하지 말라. 이와 같으면 벌주가 있다」고 했다. 사사·정장(庭長)과 서 있는 관사(冠士)는 모두 빈의 무리에 속하고, 악인(樂人)과 사자(使者)·동자는 모두 주인의 무리에 속한다.
鼓○□○○□□○□○○□半○□○□○○○□□○□○魯鼓○□○○○□□○□○○□□○□○○□□○半○□○○○□□○薛鼓,取半以下為投壺禮,盡用之為射禮。魯鼓○□○○□□○○半○□○○□○○○○□○□○薛鼓○□○○○○□○□○□○○○□○□○○□○半○□○□○○○○□。
북(鼓)의 악보: ○□○○□□○□○○□半○□○□○○○□□○□○ 노나라 북 ○□○○○□□○□○○□□○□○○□□○半○□○○○□□○ 설나라 북. 절반 이하를 취하여 투호의 예로 삼고, 모두 써서 사례(射禮)로 삼는다. 노나라 북 ○□○○□□○○半○□○○□○○○○□○□○ 설나라 북 ○□○○○○□○□○□○○○□○□○○□○半○□○□○○○○□.
유행(儒行)
魯哀公問於孔子曰:“夫子之服,其儒服與?”
노 애공(魯哀公)이 공자에게 묻기를, 「선생의 옷은 유자(儒者)의 옷입니까?」라고 했다.
孔子對曰:“丘少居魯,衣逢掖之衣,長居宋,冠章甫之冠。丘聞之也:君子之學也博,其服也鄉。丘不知儒服。”
공자가 대답하여 말했다. 「구(丘)는 어렸을 때 노나라에 살며 넓은 소매 옷을 입고, 자라서 송(宋)나라에 살며 장부(章甫) 관을 썼습니다. 구가 듣기에, 군자의 학문은 넓고, 옷은 고을 풍속을 따른다고 했습니다. 구는 유복(儒服)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哀公曰:“敢問儒行?”
애공이 말했다. 「감히 유자의 행동을 여쭙겠습니다.」
孔子對曰:“遽數之不能終其物,悉數之,乃留更僕,未可終也。”
공자가 대답하여 말했다. 「급히 헤아리려 하면 그 일을 다 말할 수 없고, 모두 헤아리면, 심지어 시중드는 이를 바꿔도, 아직 다 끝내지 못할 것입니다.」
哀公命席,孔子侍曰:“儒有席上之珍以待聘,夙夜強學以待問,懷忠信以待舉,力行以待取。其自立有如此者。儒有衣冠中,動作慎。其大讓如慢,小讓如偽,大則如威,小則如愧,其難進而易退也,粥粥若無能也。其容貌有如此者。
애공이 사람을 시켜 자리를 펴게 하니, 공자가 시립하여 말했다. 「유자는 자리 위의 보배를 두고 빙문(聘問)을 기다리고, 밤낮으로 힘써 배워 물음을 기다리며, 충신(忠信)을 품고 천거를 기다리고, 힘써 행하여 취함을 기다립니다. 그가 스스로 서는 것이 이와 같습니다. 유자는 의관이 알맞고, 행동이 삼가며, 크게 사양하는 것은 게으른 듯하고, 작게 사양하는 것은 거짓된 듯하며, 큰 것은 위엄 있는 듯하고, 작은 것은 부끄러워하는 듯하여, 나아가기 어렵고 물러나기 쉬우며, 유약하여 재능 없는 듯합니다. 그의 용모가 이와 같습니다.
“儒有居處齊難,其坐起恭敬,言必先信,行必中正。道塗不爭險易之利,冬夏不爭陰陽之和,愛其死以有待也,養其身以有為也。其備豫有如此者。
「유자는 거처가 장중하고 삼가며, 앉고 일어남이 공경하고, 말은 반드시 먼저 믿음이 있으며, 행동은 반드시 중정(中正)하다. 길에서 험하고 평탄한 편리를 다투지 않고, 겨울과 여름에 음양의 화합을 다투지 않는다. 그가 죽음을 아끼는 것은 기다릴 바가 있기 때문이요, 그가 몸을 보양하는 것은 할 바가 있기 때문이다. 그의 예비함이 이와 같다.
“儒有不寶金玉,而忠信以為寶;不祈土地,立義以為土地;不祈多積,多文以為富。難得而易祿也,易祿而難畜也。非時不見,不亦難得乎?非義不合,不亦難畜乎?先勞而後祿,不亦易祿乎?其近人有如此者。
「유자는 금옥을 보배로 삼지 않고, 충신을 보배로 삼으며, 토지를 구하지 않고, 의를 세우는 것을 토지로 삼으며, 많이 쌓기를 구하지 않고, 문채가 많은 것을 부로 삼는다. 얻기 어렵지만 녹을 주기 쉽고, 녹을 주기 쉽지만 기르기 어렵다. 때가 아니면 나타나지 않으니, 또한 얻기 어렵지 않은가. 의가 아니면 구차히 합하지 않으니, 또한 기르기 어렵지 않은가. 먼저 수고하고 뒤에 녹을 받으니, 또한 녹을 주기 쉽지 않은가. 그가 사람을 가까이함이 이와 같다.
“儒有委之以貨財,淹之以樂好,見利不虧其義。劫之以眾,沮之以兵,見死不更其守。鷙蟲攫搏,不程勇者。引重鼎,不程其力,往者不悔,來者不豫,過言不再,流言不極。不斷其威,不習其謀。其特立有如此者。
「유자는 재물을 맡기고, 노는 것과 좋아하는 것으로 머물게 해도, 이익을 보고도 그 의를 손상하지 않으며, 여럿으로 겁박하고, 병기로 위협해도, 죽음을 보고도 그 지조를 바꾸지 않는다. 맹수가 덮쳐도 자기 용맹을 헤아리지 않고, 무거운 솥을 들어도 자기 힘을 헤아리지 않으며, 지난 일은 후회하지 않고, 다가올 일은 미리 걱정하지 않으며, 잘못된 말은 두 번 하지 않고, 유언은 근원을 캐묻지 않으며, 위엄을 끊지 않고, 꾀를 미리 익히지 않는다. 그의 홀로 섬이 이와 같다.
“儒有可親而不可劫也,可近而不可迫也,可殺而不可辱也。其居處不淫,其飲食不溽,其過失可微辨而不可面數也。其剛毅有如此者。
「유자는 친할 수 있으나 겁박할 수 없고, 가까이할 수 있으나 핍박할 수 없으며, 죽일 수 있으나 욕보일 수 없다. 그의 거처는 방탕하지 않고, 그의 음식은 진하지 않으며, 그의 허물은 미세하게 변별할 수 있으나 면전에서 헤아려 꾸짖을 수 없다. 그의 굳세고 굳셈이 이와 같다.
“儒有忠信以為甲冑,禮義以為幹櫓。戴仁而行,抱義而處,雖有暴政不更其所。其自立有如此者。
「유자는 충신을 갑주로 삼고, 예의를 방패로 삼아, 인을 이고 행하고, 의를 안고 처하며, 비록 폭정이 있어도 그 처한 바를 바꾸지 않는다. 그의 스스로 섬이 이와 같다.
“儒有一畝之宮,環堵之室,篳門圭窬,蓬戶甕牖,易衣而出,幷日而食。上荅之,不敢以疑。上不荅,不敢以諂。其仕有如此者。
「유자는 한 무(畝)의 집과, 사면이 흙벽인 방과, 대나무 문과 규혈(圭窬) 모양의 작은 문과, 쑥 문과 깨진 항아리 창을 가지며, 옷을 갈아입어야 나가고, 이틀을 하루처럼 먹는다. 위가 그에게 답하면 감히 의심하지 않고, 위가 그에게 답하지 않으면 감히 아첨하지 않는다. 그의 벼슬함이 이와 같다.
“儒有今人與居,古人與稽,今世行之,後世以為楷。適弗逢世,上弗援,下弗推,讒諂之民有比黨而危之者,身可危也,而志不可奪也。雖危,起居竟信其志,猶將不忘百姓之病也。其憂思有如此者。
「유자는 지금 사람과 함께 살되, 옛사람과 고증하며, 지금 세상에 행하는 것은 후세가 본받을 법으로 삼는다. 마침 시세를 만나지 못하여, 위가 끌어주지 않고 아래가 추천하지 않으며, 참소하고 아첨하는 이들이 결당하여 그를 해쳐도, 몸은 해칠 수 있으나 뜻은 빼앗을 수 없다. 비록 위태로워도, 거처가 여전히 그 뜻을 펴며, 또한 장차 백성의 아픔을 잊지 않는다. 그의 근심과 생각이 이와 같다.
“儒有博學而不窮,篤行而不倦,幽居而不淫,上通而不困。禮之以和為貴,忠信之美,優遊之法,慕賢而容眾,毀方而瓦合。其寬裕有如此者。
「유자는 넓게 배워도 다하지 않고, 독실히 행하여도 싫증내지 않으며, 숨어 살아도 방탕하지 않고, 위에 통달하여도 곤궁하지 않다. 예는 화를 귀하게 여기고, 충신의 아름다움과, 여유로운 법도로, 어진 이를 사모하고 여럿을 포용하며, 모난 곳을 깎아 기와가 맞물린 듯하다. 그의 너그러움이 이와 같다.
“儒有內稱不闢親,外舉不闢怨。程功積事,推賢而進達之,不望其報。君得其志,苟利國家,不求富貴。其舉賢援能有如此者。
「유자는 안으로 추천하되 친한 이를 피하지 않고, 밖으로 추천하되 원수를 피하지 않으며, 공을 헤아리고 일을 쌓아, 어진 이를 추천하여 통달하게 하고 보답을 바라지 않으며, 임금이 그 뜻을 얻으면, 진실로 나라에 이롭기만 하면, 부귀를 구하지 않는다. 그의 어진 이를 추천하고 능한 이를 끌어줌이 이와 같다.
“儒有聞善以相告也,見善以相示也,爵位相先也,患難相死也,久相待也,遠相致也。其任舉有如此者。
「유자는 선을 들으면 서로 알리고, 선을 보면 서로 보이며, 작위는 서로 먼저 양보하고, 환난은 서로 목숨을 바치며, 오래 있어도 서로 기다리고, 멀리 있어도 서로 불러들인다. 그의 임무와 추천이 이와 같다.
“儒有澡身而浴德,陳言而伏,靜而正之。上弗知也,麤而翹之,又不急為也。不臨深而為高,不加少而為多。世治不輕,世亂不沮,同弗與,異弗非也。其特立獨行有如此者。
「유자는 몸을 씻고 덕을 목욕하며, 말을 진술하고 엎드려, 고요히 그것을 바로잡는다. 위가 그것을 알지 못하면, 조심스레 그것을 들되, 또한 행하기를 서두르지 않는다. 깊은 곳에 임하여 높음을 하지 않고, 적은 것을 더하여 많다 하지 않는다. 세상이 다스려져도 가벼이 여기지 않고, 세상이 어지러워도 의기소침하지 않으며, 같은 이와 결당하지 않고, 다른 이를 비방하지 않는다. 그의 홀로 서고 홀로 행함이 이와 같다.
“儒有上不臣天子,下不事諸侯,慎靜而尚寬,強毅以與人,博學以知服。近文章,砥厲廉隅。雖分國,如錙銖,不臣不仕。其規為有如此者。
「유자는 위로 천자의 신하가 되지 않고, 아래로 제후를 섬기지 않으며, 삼가고 고요하여 너그러움을 숭상하고, 굳세고 굳건하여 사람과 함께하며, 넓게 배워 복종할 줄을 안다. 문장을 가까이하고, 모난 곳을 갈아 닦는다. 비록 나라를 나눠줘도, 자주(錙銖)처럼 가볍게 여겨, 신하가 되지 않고 벼슬하지 않는다. 그의 규모와 지어짐이 이와 같다.
“儒有合志同方,營道同術,並立則樂,相下不厭。久不相見,聞流言不信。其行本方,立義,同而進,不同而退。其交友有如此者。
「유자는 뜻이 합하고 방향이 같으며, 도를 경영하고 술을 같이하여, 나란히 서면 즐겁고, 서로 겸손히 낮추어 싫증내지 않으며, 오래 서로 보지 못하고, 유언을 들어도 믿지 않는다. 행동은 방정함에 근본하고, 의를 세우며, 같으면 나아가고, 같지 않으면 물러난다. 그의 벗 사귐이 이와 같다.
“溫良者,仁之本也;敬慎者,仁之地也;寬裕者,仁之作也;孫接者,仁之能也;禮節者,仁之貌也;言談者,仁之文也;歌樂者,仁之和也;分散者,仁之施也。儒皆兼此而有之,猶且不敢言仁也。其尊讓有如此者。
「온량함은 인의 근본이요, 경신함은 인의 바탕이요, 너그러움은 인의 지어짐이요, 겸손히 접함은 인의 재능이요, 예절은 인의 모습이요, 말과 담론은 인의 무늬요, 노래와 음악은 인의 화합이요, 재물을 나눔은 인의 베풂이다. 유자가 모두 이것을 겸하여 갖추고도, 오히려 감히 인이라 말하지 않는다. 그의 존중하고 사양함이 이와 같다.
“儒有不隕穫於貧賤,不充詘於富貴,不慁君王,不累長上,不閔有司,故曰儒。今眾人之命儒也妄常,以儒相詬病。”
「유자는 가난하고 천함으로 인해 곤궁하지 않고, 부귀로 인해 가득 차 절도를 잃지 않으며, 군왕을 욕되게 하지 않고, 윗사람을 누累하지 않으며, 관리를 괴롭히지 않으니, 그러므로 유라고 이른다. 지금 여럿이 유라 부르는 것은 대개 망령되고 항상성이 없어, 유를 가지고 서로 헐뜯는다.」
孔子至舍,哀公館之。聞此言也,言加信,行加義,終沒吾世,不敢以儒為戲。
공자가 객사에 이르자, 애공이 그를 객사로 대했다. 이 말을 듣고 나서, 말이 더욱 믿음직해지고, 행동이 더욱 의로워져, 나의 세대가 끝날 때까지, 감히 유를 가지고 희롱하지 않았다.
대학(大學)
大學之道,在明明德,在親民,在止於至善。知止而後有定,定而後能靜,靜而後能安,安而後能慮,慮而後能得。物有本末,事有終始,知所先後,則近道矣。
대학의 도는, 밝은 덕을 밝히는 데 있고, 백성을 친하게 하는 데 있으며, 지극한 선에 머무는 데 있다. 머물 바를 알고 나서야 정할 수 있고, 정하고 나서야 고요할 수 있으며, 고요하고 나서야 편안할 수 있고, 편안하고 나서야 헤아릴 수 있으며, 헤아리고 나서야 얻을 수 있다. 사물에는 근본과 끝이 있고, 일에는 끝과 시작이 있으니, 먼저와 나중의 차례를 알면, 곧 도에 가깝다.
古之慾明明德於天下者,先治其國;欲治其國者,先齊其家;欲齊其家者,先修其身;欲修其身者,先正其心;欲正其心者,先誠其意;欲誠其意者,先致其知;致知在格物。物格而後知至,知至而後意誠,意誠而後心正,心正而後身修,身修而後家齊,家齊而後國治,國治而後天下平。
옛날 밝은 덕을 천하에 밝히려는 이는, 먼저 그 나라를 다스리고, 그 나라를 다스리려는 이는, 먼저 그 집을 가지런히 하며, 그 집을 가지런히 하려는 이는, 먼저 그 몸을 닦고, 그 몸을 닦으려는 이는, 먼저 그 마음을 바르게 하며, 그 마음을 바르게 하려는 이는, 먼저 그 뜻을 성실하게 하고, 그 뜻을 성실하게 하려는 이는, 먼저 그 앎을 다하며, 앎을 다함은 사물을 격(格)하는 데 있다. 사물이 격해지고 나서야 앎이 극에 이르고, 앎이 극에 이르고 나서야 뜻이 성실해지며, 뜻이 성실해지고 나서야 마음이 바르고, 마음이 바르고 나서야 몸이 닦이며, 몸이 닫이고 나서야 집이 가지런해지고, 집이 가지런해지고 나서야 나라가 다스려지며, 나라가 다스려지고 나서야 천하가 평평해진다.
自天子以至於庶人,壹是皆以修身為本。其本亂而末治者,否矣!其所厚者薄而其所薄者厚,未之有也。此謂知本,此謂知之至也。
천자로부터 서인(庶人)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모두 몸을 닫는 것을 근본으로 삼는다. 그 근본이 어지러운데 끝이 다스려진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두텁게 해야 할 것을 박하게 하고, 박하게 해야 할 것을 두텁게 하는 것은, 아직 있어 본 적이 없다. 이를 근본을 안다 하고, 이를 앎의 극치라 한다.
所謂誠其意者,毋自欺也。如惡惡臭,如好好色,此之謂自謙。故君子必慎其獨也。小人閒居為不善,無所不至,見君子而後厭然,揜其不善而著其善。人之視己,如見其肺肝然,則何益矣?此謂誠於中,形於外,故君子必慎其獨也。曾子曰:“十目所視,十手所指,其嚴乎?”富潤屋,德潤身,心廣體胖,故君子必誠其意。
그 뜻을 성실하게 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것이다. 악취를 미워하듯, 아름다운 빛을 좋아하듯 하는 것을, 스스로 만족한다 한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그 홀로 있을 때를 삼간다. 소인은 한가히 있어 불선한 일을 행하여, 이르지 않는 곳이 없다가, 군자를 보고 나서야 숨기고 덮어, 그 불선을 가리고 그 선을 드러낸다. 남이 자기를 보는 것은, 그 폐와 간을 보는 것 같으니, 그러면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이를 안에 성실하면 밖에 드러난다 하니,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그 홀로 있을 때를 삼간다. 증자(曾子)가 말했다. 「열 개의 눈이 보는 곳, 열 개의 손이 가리키는 곳이니, 그 얼마나 엄중한가!」재부는 집을 윤기 나게 하고, 덕은 몸을 윤기 나게 하며, 마음이 넓으면 몸이 편안하니,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그 뜻을 성실하게 한다.
詩云:“瞻彼淇澳,菉竹猗猗。有斐君子,如切如磋,如琢如磨。瑟兮僩兮,赫兮喧兮,有斐君子,終不可諠兮。”如切如磋者,道學也;如琢如磨者,自修也;瑟兮僩兮者,恂慄也;赫兮喧兮者,威儀也;有斐君子終不可諠兮者,道盛德至善,民之不能忘也。詩云:“於戲前王不忘!君子賢其賢而親其親,小人樂其樂而利其利。”此以沒世不忘也。康誥曰:“克明德。”大甲曰:“顧諟天之明命。”帝典曰:“克明峻德。”皆自明也。湯之盤銘曰:“苟日新,日日新,又日新。”康誥曰:“作新民。”詩曰:“周雖舊邦,其命惟新。”是故君子無所不用其極。
《시경》에 이르기를, 「저 기수(淇水) 굽이를 보니, 푸른 대나무 아름답도다. 문채 있는 군자여, 자르듯 갈듯, 다듬듯 갈듯하도다. 장엄하고도 너그럽도다, 현혁하고도 성대하도다. 문채 있는 군자여, 마침내 잊을 수 없도다」라고 했다. 자르듯 갈듯 함은, 학문을 말한 것이요, 다듬듯 갈듯 함은, 스스로 닦음을 말한 것이다. 장엄하고 너그러움은, 경계하고 두려워함을 말한 것이요, 현혹하고 성대함은, 위의(威儀)를 말한 것이다. 문채 있는 군자여 마침내 잊을 수 없다 함은, 성대한 덕과 지극한 선이어서, 백성이 잊을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시경》에 이르기를, 「아! 앞선 왕이 잊히지 않는도다」라고 했다. 군자는 그의 어짐을 어질게 여기고 그의 친한 이를 친하게 여기며, 소인은 그의 즐거움을 즐겁게 여기고 그의 이익을 이롭게 여기니, 이로써 죽을 때까지 잊히지 않는다. 《강고》에 이르기를, 「능히 덕을 밝혔다」고 했다. 《태갑》에 이르기를, 「하늘의 밝은 명을 돌아보았다」고 했다. 《제전(帝典)》에 이르기를, 「능히 큰 덕을 밝혔다」고 했으니, 모두 스스로 밝힌 것이다. 탕(湯)의 반명(盤銘)에 이르기를, 「진실로 하루를 새롭게 하면, 날마다 새롭게 하고, 또 새롭게 하라」고 했다. 《강고》에 이르기를, 「새로운 백성을 일으켜라」고 했다. 《시경》에 이르기를, 「주(周)는 비록 오랜 나라지만, 그 명은 새롭도다」라고 했다. 그러므로 군자는 지극함을 쓰지 않는 곳이 없다.
詩云:“邦畿千里,惟民所止。”詩云:“緡蠻黃鳥,止於丘隅。”子曰:“於止,知其所止,可以人而不如鳥乎?”詩云:“穆穆文王,於緝熙敬止。”為人君止於仁,為人臣止於敬,為人子止於孝,為人父止於慈,與國人交止於信。
《시경》에 이르기를, 「나라 경계 천 리, 백성이 머무는 곳이로다」라고 했다. 《시경》에 이르기를, 「민면한 황조(黃鳥)여, 언덕 한 귀퉁이에 머무는도다」라고 했다. 공자가 말했다. 「머묾에 있어서, 새도 그 머물 곳을 아는데, 사람이 새만도 못할 수 있겠는가?」《시경》에 이르기를, 「목목한 문왕이여, 밝음 속에서 공경히 머물렀도다」라고 했다. 임금이 되면 인에 머물고, 신하가 되면 공경에 머물며, 아들이 되면 효에 머물고, 아버지가 되면 자애에 머물며, 나라 사람과 사귐에는 믿음에 머문다.
子曰:“聽訟吾猶人也,必也使無訟乎!無情者不得盡其辭,大畏民志。”此謂知本。
공자가 말했다. 「송사를 듣는 것은, 나도 남과 같으나, 반드시 송사가 없게 하려는 것이다!」실정이 없는 이는 그 말을 다 지어낼 수 없게 하여, 크게 백성의 뜻을 두렵게 복종하게 한다. 이를 근본을 안다 한다.
所謂修身在正其心者,身有所忿懥則不得其正,有所恐懼則不得其正,有所好樂則不得其正,有所憂患則不得其正。心不在焉,視而不見,聽而不聞,食而不知其味。此謂修身在正其心。
몸을 닫는 것은 그 마음을 바르게 하는 데 있다는 것은: 몸에 성냄이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고, 두려움이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며, 좋아하고 즐김이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고, 근심과 근심이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한다. 마음이 거기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 이를 몸을 닫는 것은 그 마음을 바르게 하는 데 있다 한다.
所謂齊其家在修其身者,人之其所親愛而闢焉,之其所賤惡而闢焉,之其所畏敬而闢焉,之其所哀矜而闢焉,之其所敖惰而闢焉。故好而知其惡,惡而知其美者,天下鮮矣。故諺有之曰:“人莫知其子之惡,莫知其苗之碩。”此謂身不修,不可以齊其家。
그 집을 가지런히 하는 것은 그 몸을 닫는 데 있다는 것은: 사람이 그 친애하는 바에 대해서는 치우치고, 그 천하고 미워하는 바에 대해서는 치우치며, 그 두려워하고 공경하는 바에 대해서는 치우치고, 그 불쌍히 여기는 바에 대해서는 치우치며, 그 오만하고 게으른 바에 대해서는 치우친다. 그러므로 좋아하면서도 그 악을 알고, 미워하면서도 그 아름다움을 아는 이는, 천하에 드물다. 그러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사람은 자기 아들의 악을 모르고, 자기 모의 무성함을 모른다」고 했다. 이를 몸이 닫이지 않으면, 그 집을 가지런히 할 수 없다 한다.
所謂治國必先齊其家者,其家不可教,而能教人者無之。故君子不出家而成教於國。孝者所以事君也,弟者所以事長也,慈者所以使眾也。康誥曰:“如保赤子,心誠求之。”雖不中不遠矣。未有學養子而後嫁者也,一家仁,一國興仁;一家讓,一國興讓;一人貪戾,一國作亂。其機如此。此謂一言僨事,一人定國。堯舜率天下以仁,而民從之;桀紂率天下以暴,而民從之。其所令反其所好,而民不從。是故君子有諸己而後求諸人,無諸己而後非諸人。所藏乎身不恕而能喻諸人者,未之有也。故治國在齊其家。詩云:“桃之夭夭,其葉蓁蓁。之子于歸,宜其家人。”宜其家人,而後可以教國人。詩云:“宜兄宜弟。”宜兄宜弟,而後可以教國人。詩云:“其儀不忒,正是四國。”其為父子兄弟足法,而後民法之也。此謂治國在齊其家.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반드시 먼저 그 집을 가지런히 해야 한다는 것은: 그 집을 가르치지 못하는 이가 남을 가르칠 수 있는 것은, 아직 있어 본 적이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집 문을 나서지 않고도 나라 안에서 교화를 이룬다. 효는 임금을 섬기는 데 쓰이고, 제는 윗사람을 섬기는 데 쓰이며, 자는 여럿을 부리는 데 쓰인다. 《강고》에 이르기를, 「갓난아이를 보호하듯 하라」고 했다. 마음이 성실하여 그것을 구하면, 비록 맞지 않더라도 멀지 않다. 먼저 아이를 기르는 것을 배우고 나서 시집가는 이는 없다. 한 집이 인하면 온 나라가 인에 일어나고, 한 집이 사양하면 온 나라가 사양에 일어나며, 한 사람이 탐욕하고 포악하면 온 나라가 어지러움을 일으킨다. 그 기틀이 이와 같다. 이를 한마디 말이 일을 그르치고, 한 사람이 나라를 편안히 한다 한다. 요(堯)·순(舜)은 인을 거느려 천하하니 백성이 따랐고, 걸(桀)·주(紂)는 포악을 거느려 천하하니 백성이 따랐다. 그 명하는 바가 그 좋아하는 바에 어긋나면, 백성이 따르지 않는다. 그러므로 군자는 자기에게 있고 나서야 남에게 구하고, 자기에게 없고 나서야 남을 꾸짖는다. 몸에 간직한 것에 서(恕)가 없으면서 능히 남에게 깨우치는 이는, 아직 있어 본 적이 없다. 그러므로 나라를 다스림은 그 집을 가지런히 하는 데 있다. 《시경》에 이르기를, 「복숭아나무 어여쁘도다, 그 잎 무성하도다. 이 여자가 시집가니, 그 집안 사람에 어울리도다」라고 했다. 집안 사람과 어울린 뒤에야 나라 사람을 가르칠 수 있다. 《시경》에 이르기를, 「형에 어울리고 아우에 어울리도다」라고 했다. 형에 어울리고 아우에 어울린 뒤에야 나라 사람을 가르칠 수 있다. 《시경》에 이르기를, 「그 의태가 어긋나지 않아, 이 사방의 나라를 바로잡도다」라고 했다. 그가 아버지·아들·형·아우 됨이 법으로 삼기에 족하고 나서야, 백성이 그를 법으로 삼는다. 이를 나라를 다스림은 그 집을 가지런히 하는 데 있다 한다.
所謂平天下在治其國者,上老老而民興孝,上長長而民興弟,上恤孤而民不倍。是以君子有絜矩之道也。所惡於上,毋以使下;所惡於下,毋以事上;所惡於前,毋以先後;所惡於後,毋以從前;所惡於右,毋以交於左;所惡於左,毋以交於右。此之謂絜矩之道。詩云:“樂只君子,民之父母。”民之所好好之,民之所惡惡之,此之謂民之父母。詩云:“節彼南山,維石巖巖。赫赫師尹,民具爾瞻。”有國者不可以不慎,闢則為天下僇矣!詩云:“殷之未喪師,克配上帝。儀監於殷,峻命不易。”道得眾則得國,失眾則失國,是故君子先慎乎德。有德此有人,有人此有土,有土此有財,有財此有用。德者本也,財者末也。外本內末,爭民施奪,是故財聚則民散,財散則民聚。是故言悖而出者,亦悖而入,貨悖而入者,亦悖而出。康誥曰:“惟命不於常。”道善則得之,不善則失之矣。楚書曰:“楚國無以為寶,惟善以為寶。”舅犯曰:“亡人無以為寶,仁親以為寶。”秦誓曰:“若有一個臣,斷斷兮無他技,其心休休焉,其如有容焉。人之有技,若己有之,人之彥聖,其心好之。不啻若自其出口,寔能容之,以能保我子孫黎民,尚亦有利哉。人之有技,媢嫉以惡之,人之彥聖而違之,俾不通,寔不能容,以不能保我子孫黎民。亦曰殆哉!唯仁人放流之,迸諸四夷,不與同中國。”此謂唯仁人為能愛人、能惡人。見賢而不能舉,舉而不能先,命也。見不善而不能退,退而不能遠,過也。好人之所惡,惡人之所好,是謂拂人之性,菑必逮夫身。是故君子有大道,必忠信以得之,驕泰以失之。生財有大道,生之者眾,食之者寡,為之者疾,用之者舒,則財恆足矣。仁者以財發身,不仁者以身發財。未有上好仁而下不好義者也,未有好義其事不終者也,未有府庫財非其財者也。孟獻子曰:“畜馬乘,不察於雞豚。
천하를 평평하게 하는 것은 그 나라를 다스리는 데 있다는 것은: 위에 있는 이가 늙은 이를 늙은 이로 대하면, 백성이 효에 일어나고, 위에 있는 이가 연장자를 연장자로 대하면, 백성이 제에 일어나며, 위에 있는 이가 고아를 불쌍히 여기면, 백성이 배반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군자에게는 혜구(絜矩)의 도가 있다. 위가 자기를 대하는 바를 미워하면, 그것으로 아래를 부리지 말고, 아래가 자기를 섬기는 바를 미워하면, 그것으로 위를 섬기지 말며, 앞이 자기에게 하는 바를 미워하면, 그것으로 뒤에 앞서지 말고, 뒤가 자기에게 하는 바를 미워하면, 그것으로 앞을 따르지 말며, 오른쪽이 자기와 사귀는 바를 미워하면, 그것으로 왼쪽에 베풀지 말고, 왼쪽이 자기와 사귀는 바를 미워하면, 그것으로 오른쪽에 베풀지 말아야 한다. 이를 혜구의 도라 한다. 《시경》에 이르기를, 「즐겁도다 군자여, 백성의 부모로다」라고 했다. 백성이 좋아하는 바를 좋아하고, 백성이 미워하는 바를 미워하니, 이를 백성의 부모라 한다. 《시경》에 이르기를, 「높은 저 남산이여, 바위가 험준하도다. 현혁한 사윤이여, 백성이 모두 그대를 우러르네」라고 했다. 나라를 가진 이는 삼가지 않을 수 없으니, 삿되면 곧 천하에 죽임을 당한다. 《시경》에 이르기를, 「은이 아직 무리를 잃지 않았을 때는, 상제와 견줄 수 있었도다. 마땅히 은을 거울로 삼으라, 큰 명은 쉽지 않도다」라고 했다. 이는 무리를 얻으면 나라를 얻고, 무리를 잃으면 나라를 잃음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먼저 덕을 삼간다. 덕이 있고 나서야 사람이 있고, 사람이 있고 나서야 땅이 있으며, 땅이 있고 나서야 재물이 있고, 재물이 있고 나서야 쓰임이 있다. 덕은 근본이요, 재물은 말단이다. 근본을 밖에 두고 말단을 안에 두어, 백성과 이익을 다투고, 겁탈을 베푸니, 그러므로 재물이 모이면 백성이 흩어지고, 재물이 흩어지면 백성이 모인다. 그러므로 말이 거스르게 나가면, 또한 거스르게 돌아오고, 재물이 거스르게 들어오면, 또한 거스르게 나간다. 《강고》에 이르기를, 「명이 항상 있지 않다」고 했다. 이는 선하면 그것을 얻고, 선하지 않으면 그것을 잃음을 말한 것이다. 《초서(楚書)》에 이르기를, 「초나라에는 보배로 삼을 것이 없고, 오직 선을 보배로 삼는다」고 했다. 구범(舅犯)이 말했다. 「망명한 이는 보배로 삼을 것이 없고, 인을 친히 하는 것을 보배로 삼는다.」《진서(秦誓)》에 이르기를, 「만약 한 신하가 있어, 한결같고 다른 재주가 없으며, 그 마음이 너그럽고, 능히 사람을 용납할 듯하다. 남에게 재주가 있으면, 자기가 가진 듯하고, 남이 준수하고 성스러우면, 마음으로 좋아한다. 다만 자기 입에서 나온 듯할 뿐 아니라, 참으로 능히 용납하여, 이로써 능히 우리 자손과 여민을 보호하니, 거의 이로움도 있으리라. 남에게 재주가 있으면, 질투하여 미워하고, 남이 준수하고 성스러우면, 가로막아 그를 통달하지 못하게 하며, 참으로 능히 용납하지 못하여, 이로써 능히 우리 자손과 여민을 보호하지 못하니, 또한 위태롭다 할 만하리라! 오직 인한 사람이 이런 사람을 내쫓아, 사방 오랑캐 땅에 몰아내어, 그와 함께 중국에 있지 않게 한다」고 했다. 이를 오직 인한 사람만이 능히 사람을 사랑하고, 능히 사람을 미워한다 한다. 어진 이를 보고도 천거하지 못하고, 천거하고도 먼저 두지 못하는 것은, 게으름이다. 불선을 보고도 물리치지 못하고, 물리치고도 멀리하지 못하는 것은, 허물이다. 사람이 미워하는 바를 좋아하고, 사람이 좋아하는 바를 미워하는 것을, 사람의 성을 거스른다 하니, 재앙이 반드시 그 몸에 이른다. 그러므로 군자에게는 큰 도가 있어, 반드시 충신으로 얻고, 교만함으로 잃는다. 재물을 생하는 데 큰 도가 있으니: 생하는 이가 많고, 먹는 이가 적으며, 만드는 이가 빠르고, 쓰는 이가 느리면, 재물이 항상 넉넉하다. 인한 사람은 재물로 몸을 일으키고, 인하지 않은 사람은 몸으로 재물을 일으킨다. 위가 인을 좋아하는데 아래가 의를 좋아하지 않는 경우는 없고, 의를 좋아하는데 그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는 없으며, 부고(府庫)의 재물이 그의 재물이 아닌 경우는 없다. 맹헌자(孟獻子)가 말했다. 「말과 수레를 기르는 집은, 닭과 돼지를 세밀히 살피지 않는다.
伐冰之家,不畜牛羊。百乘之家,不畜聚斂之臣。與其有聚斂之臣,寧有盜臣。”此謂國不以利為利,以義為利也。長國家而務財用者,必自小人矣。彼為善之,小人之使為國家,菑害並至,雖有善者亦無如之何矣!此謂國不以利為利,以義為利也。
얼음을 캘 수 있는 집은, 소와 양을 기르지 않는다. 수레 백 대를 가진 집은, 거둬들이는 신하를 기르지 않는다. 거둬들이는 신하가 있느니, 차라리 도둑 신하가 있는 것이 낫다.」이를 나라가 이익을 이익으로 삼지 않고, 의를 이익으로 삼는다 한다. 나라와 집을 다스리면서 재용(財用)을 힘쓰는 이는, 반드시 소인으로부터 시작된다. 그 사람이 스스로 선하다 하여, 소인으로 하여금 나라와 집을 관리하게 하면, 재앙이 함께 이르러, 비록 선한 이가 있어도 어찌할 수 없다! 이를 나라가 이익을 이익으로 삼지 않고, 의를 이익으로 삼는다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