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사하전 제6장
子曰:「乾坤其易之門邪?乾,陽物也;坤,陰物也。陰陽合德而剛柔有體,以體天地之撰,以通神明之德。」乾為純陽,故曰陽物;坤為純陰,故曰陰物。易之卦象皆由此出,故曰易之門。陰陽合德以生六子,得乾爻者體剛,得坤爻者體柔,有體者言有形體也。撰,結撰,如山澤水火之類;德,卦德,如坎陷兌說之類。曰體曰通者,言六子之象本乾坤也。
공자가 이르기를, 「건·곤은 아마 『역』의 문호(門戶)이겠다. 건(乾)은 양성의 물이고 곤(坤)은 음성의 물이다. 음양이 그 덕성을 합하고 강유(剛柔)가 각각 형체를 가짐으로써 천지의 조작(造作)을 체현하고 이로써 신명의 덕성에 통달한다」. 건은 순양이므로 「양물(陽物)」이라 칭하고 곤은 순음이므로 「음물(陰物)」이라 칭한다. 『역』의 괘상은 모두 이 두 괘에서 생출되므로 『역』의 문이라 칭한다. 음양이 덕을 합하여 진·감·간·손·리·태의 육자괘(六子卦)를 생출하니 건효를 받아 이으면 강을 이루고 곤효를 받아 이으면 유를 이룬다. 「유체(有體)」는 곧 형체가 있음을 말한다. 「찬(撰)」은 조작되어 형을 이룬 물을 가리켜 산·택·수·화의 부류이고 「덕」은 괘의 덕성을 가리켜 감을 함(陷)으로 하고 태를 열(悅)로 하는 부류이다. 「체」라 하고 「통」이라 함은 육자괘의 취상이 본래 건곤에서 나옴을 논함이다.
其稱名也雜而不越,於稽其類,其衰世之意邪?《九家易》曰:「名謂卦名,陰陽雜錯,其卦象各有次序,不相踰越。」稽,考也。稽其事類,則言憂患之防無不周至,淳世之人情不若是之險且譎也。夫易彰往而察來,而微顯闡幽,開而當名。
『역』이 칭하는 괘명은 번잡하면서 서로 유월하지 않고 그것이 돌아가는 사류를 고찰하면 아마 쇠란한 세상의 용의이겠다. 『구가역』이 이르기를, 「『명』은 괘명을 가리킨다. 음양이 교착하여 잡진하되 괘상이 각각 차서가 있어 서로 유월하지 않는다」. 「계(稽)」는 고찰이다. 그것이 속한 사류를 고찰하면 우환에 대한 방비가 주상하여 미치지 않음이 없음을 본다. 순후한 세상의 인정은 이처럼 험악하고 궤휼하지 않다. 『역』은 이미 지난 것을 창명하고 장래를 살지하여 유미한 자를 현활하게 하고 은회한 자를 천발하며 괘의를 개시하여 각각 그 이름에 당하게 한다.
辨物正言,斷辭則備矣。世當衰微,人情漸薄,聖人志在救時,故作易彰明已往之跡象,以察將來之吉凶。其事之微者則有以顯之,其情之幽者則有以闡之,於是六十四卦以開,命之以名,各當其體。辨物謂卦象,正言謂爻彖,斷辭謂吉凶悔吝。曰備者,言易之道備於辨物、正言、斷辭三者矣。
사물을 변별하고 언사를 단정하며 여기에 길흉을 단정하는 계사를 더하면 『역』의 도가 이로써 완비한다. 시세가 바야흐로 쇠미에 당하고 인정이 나날이 교박하여 성인이 구세의 마음이 있으므로 『역』을 지어 이미 지난 적상을 창명하여 장래의 길흉을 살지하는 데 쓴다. 일이 세미한 것은 그것을 현활하게 하는 방법을 마련하고 정형이 은유한 것은 그것을 천발하는 방법을 마련하여 이에 육십사괘가 개시를 얻고 각각 명칭을 받아 모두 그 괘체에 상당한다. 「변물(辨物)」은 괘상을 가리키고 「정언(正言)」은 효사와 단사를 가리키며 「단사(斷辭)」는 길·흉·회·린의 판어를 가리킨다. 「비(備)」라 함은 『역』의 도리가 변물·정언·단사 이 세 가지에 완비함을 논함이다.
其稱名也小,其取類也大,其旨遠,其辭文,其言曲而中,其事肆而隱,因貳以濟民行,以明失得之報。名,卦名;類謂陰陽。假借物象而無直質之言曰曲,能盡古今之情偽曰中。肆,陳也,謂卦爻;卦爻中之消息潛藏不易窺測曰隱。貳,疑也,因民疑貳而作易,使之占以決之,失者預報以凶,得者預報以吉,此之謂濟民行。濟,拯也,言民入於陷溺而用占筮以拯之。此易為維世之書,而作易所以為衰世之意也。此第六章統論作易大旨,要之為彰往察來、微顯闡幽,所以濟民行、明報以得失也,蓋言功業見乎變也。
『역』이 칭하는 명목은 세소하나 취하는 물류는 광대하고 그 취지는 심원하며 그 문사는 문채가 풍부하다. 그 말은 곡절하면서 사리에 절중하고 그 사례는 포진하면서 함의가 은미하다. 사람의 마음의 의혹을 따라 백성의 행사를 돕고 실과 득의 보응을 현명히 한다. 「명」은 괘명을 가리키고 「류(類)」는 음양을 가리킨다. 물상을 가차하여 직백한 말을 하지 않음을 「곡」이라 하고 고금의 진정과 허위를 다할 수 있음을 「중」이라 한다. 「사(肆)」는 포진으로 괘효를 가리키고 괘효 가운데 소장 잠장하여 관측하기 어려움을 「은」이라 한다. 「이(貳)」는 의혹이다. 백성이 마음에 의혹을 품으므로 『역』을 지어 그들이 점시로 결단하게 하고 실에는 미리 흉을 보하며 득에는 미리 길을 보하니 이를 「제민행(濟民行)」이라 한다. 「제」는 구원으로 백성이 함익하는 가운데 있으면 점시로 그들을 구원함을 말한다. 보건대 『역』은 세도를 유계하는 책이요 『역』을 지은 용심은 바로 쇠세의 용심이다. 이상은 제6장으로 총론하여 『역』을 지은 대지를 논하고 귀결하면 곧 왕을 창하고 래를 살하며 미를 현하고 유를 천하여 백성의 행사를 돕고 득실의 보응을 밝히니 곧 공업이 변화 가운데 체현됨을 말함이다.
계사하전 제7장
易之興也,其於中古乎?作易者其有憂患乎?包羲畫卦而易肇興,至於中古,文王因羑里之囚,身罹憂患,而易辭作焉。是故履,德之基也;謙,德之柄也;復,德之本也;恆,德之固也;損,德之修也;益,德之裕也;困,德之辨也;井,德之地也;巽,德之制也。
『역』의 흥기는 아마 중고 시대이겠고 『역』을 지은 사람은 아마 우환을 마음에 품었겠다. 복희가 괘를 그려 『역』이 비로소 흥기하고 중고에 이르러 문왕이 유리에 갇혀 몸소 우환을 당하여 이에 『역』의 괘효사가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리』괘는 덕행의 근기이고 『겸』괘는 덕행의 병파이며 『복』괘는 덕행의 근본이고 『항』괘는 덕행의 견고이며 『손』괘는 덕행의 수치이고 『익』괘는 덕행의 충유이며 『곤』괘는 덕행의 변험이고 『정』괘는 덕행의 처소이며 『손』괘는 덕행의 재단이다.
處憂患之地莫如德,故約舉九卦之德以明之。基,始也。驕亢為敗德之緣,遜順為入德之門。履卦上乾下兌,說以應乾,是心知畏懼而能柔順持己以前行者,故為德之基。持物必以柄,猶之進德宜以謙,謙德不自盈,故能容善而不外溢,是柄也。本,根本也,純陰用事,一陽自下反來,日新富有之業悉肇於此,故德之本取於復。
우환의 땅에 몸을 처함에 가장 긴요한 것은 덕만한 것이 없으므로 간요하게 구괘의 덕을 들어 설명한다. 「기(基)」는 개단이다. 교긍항오는 덕행을 패괴하는 두서이고 겸손 유순은 덕행에 들어가는 문경이다. 『리』괘는 상건 하태로 화열로 건강에 승응하니 바로 마음에 외구를 두고 능히 유순으로 자지하며 앞으로 천행하는 사람이므로 덕행의 근기이다. 물건을 잡음에 반드시 잡을 병이 있어야 하니 마치 덕을 나아감에 반드시 겸에 의지함과 같다. 겸덕은 종래 스스로 가득하지 않으므로 능히 여러 선을 용납하여 밖으로 넘치지 않으니 이가 곧 「병」이다. 「본」은 근본이다. 『곤』괘의 순음이 당권한 뒤 일양이 아래에서 스스로 돌아나서 일신 월이 만물을 부유하게 하는 공업이 모두 여기서 발단되므로 덕의 근본이 『복』괘에 취상한다.
人有恆心,不至隨得隨失,是德因恆而固。人能去私,則能切磋琢磨以進德,修德宜取夫損也。裕,厚也,德日益則日裕。鄭氏曰:「辨,別也。」遭困之時,君子固窮,小人則濫,德於是別也。修井所以養人而成德,亦欲以濟人,是井為德之地。制猶斷制也,陽剛中正而又巽以入之,則因時制宜,不至躁以致阻,此巽之德也。
사람에게 항구한 마음이 있으면 때로 얻고 때로 잃는 데 이르지 않으니 이는 덕행이 「항」으로 인하여 견고함이다. 사람이 사심을 없앨 수 있어야 절차타마하여 덕행을 증진할 수 있으므로 수덕은 『손』에 취법해야 한다. 「유(裕)」는 풍후로 덕행이 나날이 증익하면 나날이 풍유하다. 정현이 이르기를, 「변(辨)은 곧 분별이다」. 곤액을 만날 때 군자는 궁곤에 안수하고 소인은 방종 망위하여 덕행의 고하가 여기서 분변된다. 수정을 수치함은 사람을 기르고 덕행을 이루려 함이요 또 남을 주제하려 함이므로 『정』은 덕행의 처소이다. 「제(制)」는 재단과 같다. 양강하면서 가운데 있어 바름을 얻고 또 손의 유순으로 그 안에 깊이 들어가면 능히 시의에 따라 마땅함을 제하여 조급으로 저애를 초래하지 않으니 이가 곧 『손』의 덕성이다.
履和而至,謙尊而光,復小而辨於物,恆雜而不厭,損先難而後易,益長裕而不設,困窮而通,井居其所而遷,巽稱而隱。以九卦之生於性者言之:履得兌說之和,以造踐履之極;謙則卑不可踰,故尊而光;復陽雖微,而初剛反下,不為陰惑,克辨物之善否;恆以求事理之賾,心貞於一而不厭倦;損則懲忿窒欲,己克而禮得復,故先難後易;益為損上益下,己長饒裕則利人有實功,而不必外有所設立;困窮則動心忍性,增所不能,故通;井不可改而能遷水以濟人;巽能稱事之宜,則伏而不見,是善藏其用者。
『리』는 화열하여 능히 지극에 이르고 『겸』은 비하하면서 더욱 존현 광대하며 『복』은 움직임이 비록 미소하나 능히 사물을 변별하고 『항』은 잡란 가운데 처하여 염권을 내지 않으며 『손』은 먼저 어렵고 뒤에 쉽고 『익』은 장양 관유하여 외구를 빌리지 않으며 『곤』은 궁액인데 도리어 통달할 수 있고 『정』은 본위에 거수하면서 능히 그 물을 천운하며 『손』은 사의에 칭합하고 잠복하여 드러내지 않는다. 구괘가 품은 성정에 대해 말하면 『리』는 태괘의 화열의 덕을 얻어 능히 천행의 극처에 이르고 『겸』은 비하하여 사람으로 유월할 수 없게 하므로 더욱 존현하고 더욱 광대하며 『복』괘의 일양은 비록 미약하나 초효가 강건하여 하위에 돌아와 군음의 미혹이 되지 않아 능히 사물의 선악을 변별하고 『항』은 사리의 심오를 탐구함에 써서 심지가 전일하여 염권하지 않으며 『손』은 분노를 징계하고 사욕을 도색함에 있어 극기하고 뒤에 예에 돌아가므로 먼저 어렵고 뒤에 쉽고 『익』은 상위를 감손하여 하민을 증익하니 자기가 이미 관유하면 곧 남을 이롭게 하고 실효가 있어 따로 바깥에서 장설할 필요가 없으며 『곤』은 궁액에 처하면 곧 그 마음을 진동하고 그 성을 인인하여 원래 못하던 것을 증장하므로 도리어 통달하고 『정』의 위치는 옮기고 바꿀 수 없으나 능히 정수를 천운하여 사람을 구제하며 『손』은 능히 사정의 분촌에 칭합하면 곧 잠복하여 현로하지 않으니 이는 자기 공용을 잘 감춤이다.
履以和行,謙以制禮,復以自知,恆以一德,損以遠害,益以興利,困以寡怨,井以辨義,巽以行權。以九卦之達於用者言之:兌說以履虎尾,是謂和行;謙則自卑尊人,是謂制禮;復則自反其本,故曰自知;恆則堅貞其志,故曰一德;損主損己無傷於人,則害以遠;益則益人有濟於物,則利以興;困以守素,怨自寡也;井以濟眾,義可辨也;巽不激切而因時酌宜,經不可行者乃以權行之。《九家易》曰:「權者,反於經然後有善者也。」此所以說九卦者,聖人履憂濟民之所急行也,故先陳其德,中言其性,後敘其用以詳之也。此第七章歷指九卦之用,以明處憂患之道,申明聖人之情見乎辭也。
『리』는 그 행을 화순하게 하고 『겸』은 예절을 제제하며 『복』은 몸을 돌이켜 스스로 알게 하고 『항』은 그 덕을 전일하게 하며 『손』은 화해를 멀리하고 『익』은 이익을 흥기하며 『곤』은 원우를 감소하고 『정』은 의리를 변명하며 『손』은 권변을 시행한다. 구괘가 통달하는 공용에 대해 말하면 태의 화열로 호미를 밟으니 이를 「화행(和行)」이라 한다. 『겸』은 능히 스스로 비하에 처하여 타인을 존경하니 이를 「제례(制禮)」라 한다. 『복』은 능히 그 근본으로 돌아가 구하므로 「자지(自知)」라 한다. 『항』은 능히 그 뜻을 견정하므로 「일덕(一德)」이라 한다. 『손』은 자기를 감손하되 타인을 상해하지 않음을 주로 하니 화해가 이로써 멀어진다. 『익』은 능히 타인을 증익하여 물에 이로움이 있으니 이익이 이로써 흥기한다. 『곤』은 능히 본분에 안수하면 원우가 자연히 감소한다. 『정』은 능히 여러 사람을 주제하면 의리가 이로써 변할 수 있다. 『손』은 격절하지 않고 능히 시의를 따라 그 마땅함을 짐작하여 상법이 통하지 않을 때는 곧 권변으로 시행한다. 『구가역』이 이르기를, 「이른바 권(權)은 상경을 위반하고 결과 도리어 선을 얻는 방법이다」. 이 구괘를 논하는 까닭은 그것들이 성인이 우환에 처하고 백성을 구하는 데 급히 천행할 것이므로 먼저 그 덕을 진술하고 가운데 그 성을 논하며 마지막에 그 용을 서술하여 상비를 구한다. 이상은 제7장으로 구괘의 공용을 일일이 지출하여 우환에 몸을 처하는 도를 설명하고 성인의 정지가 괘효사 가운데 나타남을 신명한다.
계사하전 제8장
易之為書也不可遠,為道也屢遷,變動不居,周流六虛,上下無常,剛柔相易,不可為典要,唯變所適。易可以成德而處憂患,則是易之為書,固人所宜近而不可遠者也。至於易之為道,則主變動而不可以常法求之。六虛謂六爻之位,不言位而言虛者,則以上下移易,剛柔無定,故曰虛。典,常;要,求;適,之也。唯變所適,則易不凝滯於物,蓋如此。
『역』은 한 책으로서 사람이 소원할 수 없다. 그가 논하는 도는 누누히 천이하여 변동하고 정류하지 않으며 여섯 허위에 두루 유행하고 상하에 정소가 없으며 강유가 서로 변역하여 고정 불변의 성법으로 삼을 수 없고 다만 변화를 따라 간다. 『역』이 능히 덕행을 이루고 우환에 응부함을 보면 『역』 이 책은 본래 사람이 친근해야 하고 소원할 수 없다. 『역』이 논하는 도에 이르러서는 곧 변동을 주로 하여 일성 불변의 상법으로 구할 수 없다. 「육허(六虛)」는 육효의 위차를 가리키고 「위」라 하지 않고 「허」라 함은 상하가 이환하고 강유가 정하지 않으므로 「허」라 칭한다. 「전(典)」은 상법이요 「요(要)」는 구취이며 「괄(適)」은 감이다. 다만 변화를 따라 가면 『역』이 구니 응체하여 어느 한 사물에 저작하지 않으니 도리가 곧 이와 같다.
其出入以度,外內使知懼。度,法也。言易備六爻,自內往外曰出,自外往內曰入,一出一入皆有法度,使人別內外,知所恐懼,以知向也。又明於憂患與故,無有師保,如臨父母。懼者即憂患也。不惟使知之,而又有以明之:易明憂患與所以致憂患之故,與人同憂,與人同患,而諄諄教誨,不僅有師保之嚴,而兼如父母之愛也。
『역』의 출입이 모두 법도가 있어 사람으로 내외 사이에서 계구할 바를 알게 한다. 「도(度)」는 곧 법도이다. 이는 『역』이 육효를 갖추어 내괘에서 외괘로 감을 「출」이라 하고 외괘에서 내괘로 감을 「입」이라 하며 일출 일입이 모두 법도가 있어 사람으로 내외를 분변하고 외구할 것을 알게 하여 추향을 알게 한다. 그것은 또 사람으로 우환과 우환을 초래하는 연고를 명백하게 하여 몸가에 사부보부가 없어도 부모를 마주함과 같다. 여기의 「구(懼)」는 곧 우환이다. 『역』은 사람으로 우환을 알게 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사람을 위해 천명하니 이미 우환을 논명하고 또 우환을 초래하는 연유를 논명하여 사람과 함께 근심하고 사람과 함께 걱정하여 순순히 교회하니 사보 같은 엄정이 있을 뿐 아니라 또 부모 같은 자애를 겸한다.
初率其辭而揆其方,既有典常,苟非其人,道不虛行。率,循也;辭,卦爻辭;揆,度也;方猶位也。初循卦爻辭以度其方位,則有不易之理,貴乎體道以行之。然不能神明默成,則猶未洽於道,所謂不可遠者終遠耳。此第八章言易之變動有度,使人知懼,恐其誤罹憂患,不啻父母之愛子焉,此申吉凶外見、聖人之情亦見也。
처음에 괘효사에 의순하여 효위를 추도하니 이미 불변의 상리를 따를 것이 있으면 곧 만약 그 합적한 사람이 아니면 이 도리도 또한 헛되이 시행되지 않는다. 「솔(率)」은 의순이요 「사(辭)」는 괘사 효사를 가리키며 「규(揆)」는 추도요 「방(方)」은 효위와 같다. 처음에 괘효사에 의순하여 그 방위를 추도하면 곧 그 가운데 개역할 수 없는 도리가 있음을 보니 귀한 것은 능히 이 도를 체찰하여 실행에 붙임에 있다. 그러나 만약 심령신회하고 묵묵히 이루지 못하면 끝내 아직 도와 계합에 이르지 못하니 저 이른바 「소원할 수 없는」 『역』이 끝내 여전히 소원해졌다. 이상은 제8장으로 『역』의 변동이 스스로 법도 있음을 논하고 사람으로 계구할 바를 알게 하며 다만 사람이 잘못 우환에 빠짐을 두려워한다. 그 용심이 부모가 자식을 사랑함에 버금하니 이는 길흉이 밖에 나타나고 성인의 정지도 또한 이를 따라 볼 수 있음을 신명함이다.
계사하전 제9장
易之為書也,原始要終以為質也,六爻相雜,唯其時物也。質,本也;物,爻象也。言聖人即卦畫推求始終以作彖辭,至於六爻錯雜,唯各因其時位與其物象,以申彖辭未盡之義也。其初難知,其上易知,本末也。初辭擬之,卒成之終。干氏曰:「初擬議之,故難知;卒終成之,故易知。本末勢然也。」
『역』 이 책은 사물의 개단을 추원하고 사물의 종국을 귀결하여 한 괘의 본체로 삼는다. 육효가 서로 착잡하되 다만 각각 그 시위와 물상을 따를 뿐이다. 「질(質)」은 본체요 「물(物)」은 효상이다. 이는 성인이 괘획에 의거하여 시종을 추구하여 단사를 지었고 육효의 착잡에 이르러서는 곧 각각 그 시위와 취하는 물상에 의하여 단사가 미처 다하지 못한 뜻을 신발함을 말한다. 초효는 알기 어렵고 상효는 알기 쉬우니 하나는 근본이요 하나는 말이기 때문이다. 초효의 사는 다만 의의할 뿐이고 상효에 이르러 비로소 최종으로 이루어진다. 간보가 이르기를, 「초효는 다만 의의할 뿐이므로 알기 어렵고 상효는 최종 완성이므로 알기 쉬우니 근본과 말의 형세가 본래 이와 같다」.
若夫雜物撰德,辨是與非,則非其中爻不備。物謂象,雜者謂兩物相雜而互之,撰,結撰也,中爻,中四爻也。卦有六爻,初賤無位,上貴極亦無位,辨別是非惟取中爻。初上各具爻象,而中四爻上下交互又別取象;初上各具卦德,而中四爻上下交互又別論德,是兼互體而爻義始備焉。噫,亦要存亡吉凶,則居可知矣。知者觀其彖辭,則思過半矣。噫,語辭;要,求也。言人能求存亡吉凶之理,則所居有主。六爻大意皆寓於彖辭,是宜觀之以得主爻也。
사물을 착잡하고 덕성을 찬술하며 시비를 변별함에 이르러서는 중간의 몇 효에 의거하지 않으면 완비하지 않다. 「물(物)」은 괘상을 가리키고 「잡(雜)」은 두 물이 서로 섞여 호체를 취함을 말하며 「찬(撰)」은 찬결하여 형을 이루고 「중효(中爻)」는 중간의 네 효를 가리킨다. 한 괘에 육효가 있어 초효는 비천하여 자리가 없고 상효는 귀하나 이미 극처에 이르러 또한 자리가 없으니 시비를 변별함은 다만 중간의 네 효를 취한다. 초효와 상효는 각각 그 효상이 있고 중간의 네 효는 상하가 교호하여 또 별로 한 상을 이루며 초효와 상효는 각각 괘덕을 구유하고 중간의 네 효는 상하가 교호하여 또 별로 덕을 논할 수 있으니 이는 겸하여 호체를 취함으로 효의 의의가 비로소 완비하다 할 만하다. 희! 만약 존망 길흉의 도리를 구해 얻을 수 있으면 곧 처하는 위치가 요연할 것이다. 명지한 사람이 그 단사를 보면 사려가 이미 과반이다. 「희(噫)」는 어기사요 「요(要)」는 구취이다. 이는 사람이 존망 길흉의 이치를 구해 얻으면 처하는 땅에 주재가 있고 육효의 대의가 모두 단사 속에 기우되므로 단사를 관찰하여 한 괘의 주효를 구해 얻어야 함을 말한다.
二與四同功而異位,其善不同:二多譽,四多懼,近也。柔之為道,不利遠者,其要無咎,其用柔中也。二、四皆陰位,故曰同功;二居內卦,四居外卦,故曰異位。而四之多懼不若二之多譽者,以四近君位故也。雖陰宜依陽,不利於遠,而二違五而無咎者,則以二得內卦之中,柔中則亦有用耳。
제2효와 제4효는 공용이 같으나 위차가 다르니 그 좋은 곳도 같지 않다. 이효는 칭예를 얻음이 많고 사효는 외구가 많으니 사효가 군위에 핍근하기 때문이다. 유순의 도는 본래 군위를 멀리 떠남을 이롭지 않게 여기나 그 요지는 허물을 내지 않음에 있어 의지하는 것이 유순하면서 가운데 있음이다. 이효와 사효가 모두 음위이므로 「동공(同功)」이라 하고 이는 내괘에 있고 사는 외괘에 있으므로 「이위(異位)」라 한다. 사효가 외구가 많고 이효의 다예에 미치지 못하는 까닭은 사효가 구오 군위에 긴애하기 때문이다. 음은 마땅히 양에 부의하고 양을 멀리 떠나지 않아야 하나 이효는 오효를 멀리 떠나면서도 허물이 없을 수 있음은 이효가 내괘 가운데 있어 유순하면서 중을 얻으므로 스스로 쓸 곳이 있기 때문이다.
三與五同功而異位,三多凶,五多功,貴賤之等也,其柔危,其剛勝邪。三、五皆陽位,而多凶多功不同者,以三賤五貴,其等殊也。三儻以柔居之,其勢愈危;若居以剛,是為得位,則差勝耳。此第九章推論彖爻以示讀易之法,而言爻之多譽、多懼、多凶、多功,申爻象動乎內之意,功業亦胥見焉。
제3효와 제5효는 공용이 같으나 위차가 다르다. 삼효는 흉험이 많고 오효는 공업이 많으니 이는 귀천의 등급이 이룬 것이다. 음유로 거하면 곧 위태하고 양강으로 거하면 아마 능히 감당하겠다. 삼·오는 모두 양위이나 하나는 다흉이요 하나는 다공이니 삼효는 비하고 오효는 존하여 등급이 다르기 때문이다. 삼효가 만약 음유로 거수하면 형세가 더욱 위험하고 만약 양강으로 거하면 자리를 얻었다 하여 조금 감당할 수 있다. 이상은 제9장으로 단사와 효사를 추론하여 『역』을 읽는 방법을 지시한다. 그리고 효위의 다예·다구·다흉·다공을 논함은 「효상동호내(爻象動乎內)」의 뜻을 신명함이니 성인의 공업도 모두 여기서 볼 수 있다.
계사하전 제10장
易之為書也,廣大悉備,有天道焉,有人道焉,有地道焉,兼三才而兩之,故六。六者非它也,三才之道也。三才謂天地人,卦有六爻,故兼而兩之:初二為地道,三四為人道,五上為天道。言廣大莫如天地,易悉備之矣。
『역』 이 책은 광대하여 갖추지 않음이 없다. 그 가운데 천도가 있고 인도가 있고 지도가 있어 천지인 삼재(三才)를 겸취하여 각각 한 배를 더하므로 육획이다. 이른바 육(六)은 다른 것이 아니요 바로 삼재의 도이다. 「삼재」는 천·지·인을 가리킨다. 한 괘에 육효가 있으므로 삼재를 겸하여 각각 한 배를 더하니 초효·이효는 지도가 되고 삼효·사효는 인도가 되며 오효·상효는 천도가 된다. 이는 광대를 논하면 천지에 비할 것이 없으나 『역』이 그것들을 모두 포라하여 누루가 없음을 말한다.
道有變動,故曰爻;爻有等,故曰物;物相雜,故曰文;文不當,故吉凶生焉。道者,三才之道也;變動者,推移也;等謂爻位;物謂陰陽;物相雜,謂陰陽失錯;文不當,謂時義失宜。此第十章言六爻之變動有吉凶,復申吉凶見乎外,由於爻象之內動也。
도에 변동이 있으므로 그것을 「효(爻)」라 하고 효에 등급이 있으므로 그것을 「물(物)」이라 하며 물류가 서로 착잡하므로 그것을 「문(文)」이라 하고 문에 당하지 않는 곳이 있으면 길흉이 곧 여기서 생긴다. 여기의 「도」는 삼재의 도를 가리키고 「변동」은 추이를 가리키며 「등」은 효의 위차를 가리키고 「물」은 음양을 가리키며 「물상잡(物相雜)」은 음양이 착란하여 서序를 잃음을 말하고 「문부당(文不當)」은 시의에 상응하는 의리가 분촌을 잃음을 말한다. 이상은 제10장으로 육효의 변동이 길흉을 가져옴을 논하고 다시 길흉이 밖에 나타남은 효상이 내부에서 발동함에 의함을 신명한다.
계사하전 제11장
易之興也,其當殷之末世、周之盛德邪?當文王與紂之事邪?是故其辭危。危者使平,易者使傾,其道甚大,百物不廢,懼以終始,其要無咎,此之謂易之道也。紂,殷王帝辛,殷末世之君也。易興於殷之末世者,文王身備盛德而罹羑里之囚,是故深自危厲以戒慢易。雖其道大無所不包,而始終恐懼以求補過,是吉凶為易之道,無咎尤為易之要旨也。此第十一章言易之辭危,聖人之情見,而其要無咎,則功業亦見焉。
『역』의 흥기는 아마 은상의 말세이고 주가의 덕업이 바야흐로 성할 때에 정당했겠고 아마 문왕과 주왕의 그 시절의 사사에 정당했겠다. 그러므로 그 사구가 외구에 충만한다. 마음에 외구를 두는 자는 평안을 얻고 경만 태홀하는 자는 도리어 경복을 당한다. 그 도리가 지극히 광대하여 만사만물에 누루가 없고 시종으로 계구를 품으며 그 요지는 허물을 내지 않음에 있으니 이를 『역』의 도라 한다. 「주(紂)」는 곧 은왕 제신으로 은대 말세의 군주이다. 『역』이 은의 말세에 흥함은 문왕이 몸에 성덕을 갖추었으나 유리의 수옥을 당하여 깊이 스스로 경척 위려하여 경만을 계제하려 함이다. 『역』의 도가 비록 광대하여 싸지 않음이 없으나 그것이 시종 공구의 마음으로 과실을 메우려 하니 길흉이 『역』의 도이고 「허물 없음」이 더욱 『역』의 요지이다. 이상은 제11장으로 『역』의 사구가 외구에 충만함을 논하고 성인의 정지가 여기서 볼 수 있으며 그 요지가 무과에 있으면 곧 성인의 공업도 또한 볼 수 있다.
계사하전 제12장
夫乾,天下之至健也,德行恆易以知險;夫坤,天下之至順也,德行恆簡以知阻。易始乾坤。乾以易知,而乾為純陽,陽剛至健,健則能歷險,於以無險,無險又本於知險,恆易以知險,乾之德行然也。坤以簡能,而坤為純陰,陰柔至順,順則無所阻,於以無阻,無阻乃本於知阻,恆簡以知阻,坤之德行然也。
건은 천하의 가장 강건하고 그 덕행이 영원히 평이하여 능히 험난을 안다. 곤은 천하의 가장 유순하고 그 덕행이 영원히 간약하여 능히 저애를 안다. 『역』은 건곤을 개단으로 삼는다. 건은 평이로 사람에게 알려지고 건은 순양으로 양강이 지극히 강건하여 강건하면 곧 능히 험난을 경력하여 끝내 험이 없다. 그리고 험이 없는 까닭은 또 그가 능히 험난을 미리 아는 데 있다. 영원히 평이하면서 능히 험을 앎은 바로 건의 덕행이 이룬 것이다. 곤은 간약으로 능히 일을 이루고 곤은 순음으로 음유가 지극히 유순하여 유순하면 곧 저애하는 곳이 없어 끝내 저가 없다. 그리고 저가 없는 까닭은 바로 그가 능히 저애를 미리 아는 데 있다. 영원히 간약하면서 능히 저를 앎은 바로 곤의 덕행이 이룬 것이다.
能說諸心,能研諸侯之慮,定天下之吉凶,成天下之亹亹者。易則易知,簡則易從,故能悅諸心。易則知險而惟恐陷於險,簡則知阻而惟恐困於阻,故能研天下之慮。諸侯猶云諸國也。心悅則心有得,慮研則慮無失,是事之吉凶由此定;心悅則為之不厭,慮研則為之不怠,是人之亹亹由此成也。
『역』은 능히 사람의 마음을 열역하게 하고 능히 각국의 사려를 정연하며 천하의 길흉을 판정하고 천하의 근면 불권의 사업을 이룬다. 평이하면 곧 요해되기 쉽고 간약하면 곧 준종되기 쉬우므로 능히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한다. 평이하면서 험을 알면 곧 험난에 빠질까 두려워하고 간약하면서 저를 알면 곧 저애에 곤할까 두려워하므로 능히 천하의 사려를 정연한다. 「제후」는 각국을 말함과 같다. 심중이 기쁘면 곧 마음에 얻는 것이 있고 사려가 정연되면 곧 사려에 섬실이 없어 사정의 길흉이 이로써 판정된다. 심중이 기쁘면 곧 그것을 행함에 염권을 내지 않고 사려가 정연되면 곧 그것을 행함에 해태에 이르지 않아 사람의 근면 불권이 이로써 이루어진다.
是故變化云為,吉事有祥,象事知器,占事知來。吉凶定則知變化,成亹亹則有云為。云為參諸變化,則事已無凶,故祇言事之吉者。夫吉事將逢,先有祥兆;事之象所由知,則假諸器,器者卦與蓍也。用器以決事,於以有占。知來者,知將來之事如何可得吉也。
이로써 사람의 변화와 언행 사이에 길경의 일은 먼저 징조가 있다. 상을 보아 일을 앎에는 기구에 빙어를 빌려야 하고 점문하여 일을 앎에는 장래를 미리 알 수 있다. 길흉이 이미 판정되면 곧 능히 변화를 알고 근면의 공이 이미 이루어지면 곧 언어 작위가 있다. 언행이 만약 변화를 참조하여 정하면 사정이 흉함이 없으므로 여기서는 다만 사정의 「길」을 말할 뿐이다. 길한 일이 장차 임하면 미리 반드시 상조가 있고 일의 징상을 무엇으로 아는가 하면 곧 기구에 차조해야 한다. 이른바 「기(器)」는 곧 괘와 시초이다. 기구로 사정을 결단하면 이에 점시가 있다. 이른바 「지래(知來)」는 곧 장래의 사정을 미리 알아 어떻게 하면 길을 얻는지 앎이다.
天地設位,聖人成能,人謀鬼謀,百姓與能。八卦以象告,爻彖以情言,剛柔雜居而吉凶可見矣。象事知器者,蓋以天地設陰陽之位,聖人則之作易以成功能也;占事知來者,蓋以卜筮道興,先以人謀,復以鬼謀決之,百姓亦與聖人之能也。八卦以象告,故事可象;爻彖以情言,故事可占。陽剛陰柔交雜錯居,此以象告也;吉得凶失皆能預見,此以情言也。
천지가 상하의 자리를 설립하고 성인이 그 공능을 이루니 사람이 모획하고 귀신도 또한 모획하여 백성도 또한 이 능사에 참여하였다. 팔괘는 괘상으로 고시하고 효사 단사는 정형으로 진설하며 강효 유효가 교착하여 나란히 처하면 길흉이 곧 볼 수 있다. 이른바 「상사지기(象事知器)」는 천지가 음양의 위차를 설립하고 성인이 그것에 취법하여 『역』을 지어 공능을 이룸을 말하고 이른바 「점사지래(占事知來)」는 복시의 도가 흥기하여 먼저 사람이 모획하고 다시 귀신의 모로 결단하여 백성도 또한 성인의 능사에 참여함을 말한다. 팔괘가 상으로 고시하므로 사정이 취상할 수 있고 효사 단사가 정형으로 진설하므로 사정이 점문할 수 있다. 양강 음유가 교착 잡처하니 이가 곧 「이상고(以象告)」이요 얻으면 길하고 잃으면 흉하여 모두 미리 볼 수 있으니 이가 곧 「이정언(以情言)」이다.
變動以利言,吉凶以情遷。是故愛惡相攻而吉凶生,遠近相取而悔吝生,情偽相感而利害生。凡易之情,近而不相得則凶,或害之,悔且吝。剛柔雜居,因有變動,變動則不滯以求其和,故曰變動以利言也。吉凶可見,以為吉為凶原繫於爻辭,而吉凶遷移無定者,以爻中各有所具之情故也。
효의 변동은 이에 향함에 대해 말하면 길흉이 효정을 따라 천이한다. 이로써 희애와 증오가 서로 공축하여 길흉이 곧 생기고 소원과 친근이 서로 취구하여 회와 린이 곧 생기며 진정과 허위가 서로 감응하여 이와 해가 곧 생긴다. 대범 『역』이 논하는 정리는 두 효가 가까운데 서로 투합하지 않으면 곧 흉하거나 손해를 받거나 회린을 낸다. 강효 유효가 교착하여 나란히 처하므로 변동이 있고 한번 변동하면 곧 체색하지 않아 조화를 구해 얻으므로 「변동이이언(變動以利言)」이라 한다. 길흉은 본래 볼 수 있으니 이 길 이 흉이 원래 효사에 달렸기 때문이요 길흉이 또 천이하여 정하지 않음은 곧 매 한 효가 각각 다른 효정을 구유함에 의한다.
卦有主爻,與主爻情合者謂之愛,與主爻情違者謂之惡;與主爻相比相應相往來者謂之近,與主爻相間隔及消息不相通者謂之遠;又有或比或應、或非比應而相孚者謂之情,又有為比為應為往來而不相洽者謂之偽。吉凶生於愛惡,悔吝生於遠近,利害生於情偽,其相攻相取相感有淺深,故吉凶悔吝利害有殊應也。近而不相得者,謂相比相應而其情則相違而不和,大則致凶,其次亦有害焉,輕則為悔為吝。舉近而不得者,則其得者可知,即遠而相得與遠而不相得者亦可知,三百八十四爻之大旨備於此矣。
매 괘에 모두 주효(主爻)가 있다. 주효와 정의가 서로 합함을 「애」라 하고 주효와 정의가 서로 위함을 「오」라 하며 주효와 서로 비린하고 서로 응화하고 서로 왕래함을 「근」이라 하고 주효와 서로 격단하고 소장이 서로 통하지 않음을 「원」이라 한다. 또 혹 서로 비하고 혹 서로 응하며 심지어 비응이 아니면서도 서로 성신으로 부함을 「정」이라 하고 또 비가 되고 응이 되고 왕래가 되어도 융합하지 못함을 「위」라 한다. 길흉은 애와 오에서 생기고 회린은 원과 근에서 생기며 이해는 정과 위에서 생긴다. 그것들의 서로 공하고 서로 취하고 서로 감하는 정도에 심천이 있으므로 길·흉·회·린·리·해의 응험도 또한 각각 같지 않다. 이른바 「근이부상득(近而不相得)」은 두 효가 비록 서로 비하고 서로 응하나 정의가 서로 위배하여 조화하지 못함을 가리킨다. 크면 곧 흉험을 초래하고 그 다음은 손해가 있으며 가벼우면 곧 회와 린이 된다. 「근이부상득」의 정형을 들면 곧 「근이상득(近而相得)」의 정형을 추지할 수 있고 연대하여 「원이상득(遠而相得)」과 「원이부상득(遠而不相得)」의 정형도 모두 추지할 수 있다. 삼백팔십사효의 대지가 모두 여기에 갖추어졌다.
將叛者其辭慚,中心疑者其辭枝,吉人之辭寡,躁人之辭多,誣善之人其辭游,失其守者其辭屈。卦爻之相感既分情偽,而卦爻所繫之辭言人情偽,亦非一端所能盡。將叛者中懷叵測,惟恐人知,故其辭慚;中心疑者昧於是非,內無定見,故其辭枝;吉人敬慎,要言不煩,故辭寡;躁人浮薄,御人以口,故辭多;誣善之人出言無稽,故辭游移莫定;失其守者形色消沮,故辭屈抑不伸。卦爻雖賾,其辭不外此六者,吉凶悔吝皆可推求得之矣。此第十二章言爻象吉凶皆出於乾坤之易節【節:簡】,故功業可見,聖人之情著焉,應首章乾示人易、坤示人簡之意。
장차 반리하려는 사람은 언사 속에 참괴를 띠고 심중에 의혹한 사람은 언사가 지만하여 하나가 아니며 길선한 사람은 언사가 간소하고 조급한 사람은 언사가 번다하다. 선량을 무함하는 사람은 언사가 유이하고 조수를 상실한 사람은 언사가 굴억한다. 괘효 사이의 감응이 이미 진정과 허위를 나누어 내고 괘효에 붙인 사구로 사람의 정위를 설명하나 또 한 구절로 다 말할 수 없다. 장차 반리하려는 사람은 마음에 측량할 수 없음을 품고 다만 사람에게 식파될까 두려워하므로 언사에 괴를 함유하고 심중이 의혹한 사람은 시비를 명백히 하지 않고 안에 정견이 없으므로 언사가 지만하며 길선한 사람은 공경 근신하여 말이 간요하고 번거롭지 않으므로 언사가 적고 조급한 사람은 경부 천박하여 구설로 사람을 누르므로 언사가 많으며 선량을 무함하는 사람은 출언에 근거가 없으므로 언사가 유이하여 정하지 않고 조수를 상실한 사람은 신색이 저상하므로 언사가 굴억하여 펴지 못한다. 괘효가 비록 번색하나 붙인 사가 이 여섯 가지를 벗어나지 않으니 길흉 회린이 모두 여기서 추구하여 얻을 수 있다. 이상은 제12장으로 효상의 길흉이 모두 건곤의 이간(易簡)에서 나옴을 논한다(원서는 「이절(易節)」로 썼으나 교어가 「절」은 「간」이어야 함을 지적한다). 그러므로 공업을 볼 수 있고 성인의 정지도 또한 현저하여 바로 수장의 「건은 평이로 사람에게 보이고 곤은 간약으로 사람에게 보인다」의 뜻과 서로 호응한다.
역원 권15
慧珠閣原本。岫巖多隆阿雯溪。
본 권은 혜주각 원본에 의하여 간행한다. 찬자는 수암 사람 다륭아이고 자는 만계이다.
설괘전
《隋書》云:「秦焚書,《周易》獨以卜筮得存,惟失說卦三篇,宣帝時河內女子發老屋得之。」按今說卦只一篇,或曰序卦、雜卦兩傳分之為三篇,或曰說卦原有三篇,其二篇亡。以今考之,漢魏說易諸儒多有補象,則易傳亦或有遺文與?
『수서』 기재에 진조가 책을 불사를 때 『주역』이 홀로 복시의 책에 속하여 보존을 얻고 다만 『설괘』 세 편을 산실했는데 한선제 때에 이르러 하내에 한 여자가 옛 집을 헐어 비로소 그것을 다시 발견했다. 안건대 지금 전하는 『설괘』는 다만 한 편뿐이니 어떤 이는 『서괘』『잡괘』 두 전을 합하여 세 편으로 나눴다 하고 어떤 이는 『설괘』가 원래 세 편이 있어 그 두 편이 망일했다 한다. 오늘 보는 바로 고찰하면 한위 무렵 『역』을 해설한 여러 학자가 보충한 괘상이 많으니 『역전』이 혹시 확실히 산실된 글이 있겠는가.
昔者聖人之作易也,幽贊於神明而生蓍,參天兩地而倚數,觀變於陰陽而立卦,發揮於剛柔而生爻,和順於道德而理於義,窮理盡性以至於命。贊,佐也。古者賓主相見必資贊者,言人不能顯與神明接,故用蓍隱以佐之。倚,依也。倚天地立數者,天圓數奇,地方數偶。畫卦以三起數,故三其三為天,兩其三為地;三三為九,故九為老陽數;二三為六,故六為老陰數;一三二二為七,二三一二為八,少陽少陰之數亦準此。
옛날 성인이 『역』을 창작하여 암중에 신명의 찬조를 얻어 시점을 창출하고 천수 삼 지수 이를 참취하여 시수를 확립하고 음양의 변화를 관찰하여 괘체를 확립하며 강유의 작용을 발휘하여 효획을 생출하고 도와 덕에 화순하여 의에 조리하며 사리를 궁구하고 물성을 다하여 천명에 통달에 이르렀다. 「찬(贊)」은 조조이다. 옛날 빈주가 서로 만남에 반드시 「찬」례의 사람에게 빌려 곁에서 협조하게 했으니 여기서는 사람이 공연히 신명과 교접할 수 없으므로 시초를 빌려 암중에 조조함을 말한다. 「의(倚)」는 의거이다. 천지에 의하여 수를 세우니 천체는 둥글고 그 수가 기이며 지체는 네모지고 그 수가 우이다. 괘를 그음은 삼획으로 수를 일으키므로 세 개의 삼은 천이요 두 개의 삼은 지이며 삼삼이 구를 얻으므로 구는 노양의 수이고 두 개의 삼이 육을 얻으므로 육은 노음의 수이며 하나의 삼에 두 개의 이를 더하면 칠을 얻고 두 개의 삼에 하나의 이를 더하면 팔을 얻으니 소양·소음의 수도 또한 이에 비추어 추정한다.
道謂陰陽之道,德謂剛柔之德,陰陽剛柔之宜謂之義,道德義之散見於物象而有條理者謂之理,理為人所稟受曰性,性所從出曰命。和順者,融合道德而無所拂也;理者,析義條目而無所紊也;窮者,究其極;盡者,體其全;至者,探其大原而造其域。
여기의 「도」는 음양의 도를 가리키고 「덕」은 강유의 덕을 가리키며 음양 강유가 각각 그 마땅함을 얻음을 「의」라 한다. 도·덕·의가 물상 가운데 산견하여 조리를 찾을 수 있음을 「리」라 하고 이 리가 사람이 받아 지닌 바가 됨을 「성」이라 하며 성이 따라 나오는 바를 「명」이라 한다. 이른바 「화순」은 도와 덕을 융회 관통하여 추호도 위역이 없음이요 이른바 「리」는 의의 조목을 분석하여 추호도 문란이 없음이며 이른바 「궁」은 그 극처에 궁구함이요 이른바 「진」은 그 전체를 체인함이요 이른바 「지」는 그 본원을 캐내어 그 경역에 들어감이다.
此言聖人作易以立筮法,用蓍尚占以通神明,倚天地以立老少陰陽之數,觀數之奇偶,分陰分陽以立卦象,掛揲歸扐,發揮其數,為柔為剛以生六爻。陰陽之道、剛柔之德,蓍則有以和順之;陰陽剛柔之義,蓍則有以理之;道德義見於物象者,蓍又有以窮之;道德義稟於人、出於天者,蓍皆有以盡之至之。蓍之精微蓋如此。
이는 성인이 『역』을 지어 점법을 확립함을 말한다. 시초로 점문을 숭상하여 신명에 통한다. 천지에 의거하여 노양·노음·소양·소음의 수를 세우고 수의 기우를 관찰하여 음양을 나누어 내어 괘상을 확립하며 괘일·섭사·귀기·력여의 운산을 거쳐 이 수를 발휘하여 유효 강효를 정하여 육효를 생성한다. 음양의 도와 강유의 덕을 시점이 능히 화순하게 하고 음양 강유 각자의 분계를 시점이 능히 조리 분명하게 하며 도·덕·의가 물상 위에 나타남을 시점이 능히 궁구하고 도·덕·의가 사람에게 병수되고 하늘에서 발원함을 시점이 모두 능히 다하여 나타내고 그것에 도달한다. 시점의 정미가 아마 이와 같다.
昔者聖人之作易也,將以順性命之理,是以立天之道曰陰與陽,立地之道曰柔與剛,立人之道曰仁與義,兼三才而兩之,故易六畫而成卦,分陰分陽,迭用柔剛,故易六位而成章。盡性至命皆本蓍筮,則是聖人作易實以順性命之條理也。以性命之蘊於天者言,陰與陽是也;以性命之成於地者言,柔與剛是也;以性命之具於人者言,仁與義是也。天地道道人道各有二德,故卦皆兼三才以成六畫。陰陽既分而剛柔亦迭用,陰位不必定以柔居,陽位不必定以剛居,六爻之位錯雜成章。剛柔之位迭用不窮,而陽剛陰柔在人為仁義者,其用亦無窮也。易言性命之理寓於蓍筮又如此。
옛날 성인이 『역』을 창작함은 성(性)과 명(命)의 도리에 순응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도를 확립함을 음과 양이라 하고 지도를 확립함을 유와 강이라 하며 인도를 확립함을 인과 의라 한다. 삼재를 겸취하여 각각 한 배를 더하므로 『역』이 육획으로 한 괘를 이루고 음위 양위를 나누어 내어 유효 강효를 교체 사용하므로 『역』이 여섯 효위로 문장을 이룬다. 성을 다하고 명에 이름이 모두 시시를 근본으로 삼으니 성인이 『역』을 지음은 실로 성명의 조리에 순응하려 함임을 본다. 성명이 하늘에 함암한 면에 대해 말하면 곧 음과 양이고 성명이 땅에 성형한 면에 대해 말하면 곧 유와 강이며 성명이 사람에게 구비된 면에 대해 말하면 곧 인과 의이다. 천도·지도·인도(원문은 「천지도도인도(天地道道人道)」)가 각각 두 가지 덕성이 있으므로 괘가 모두 삼재를 겸하여 육획을 이룬다. 음양이 이미 자리를 나누었고 강유도 또한 교체하여 쓰이니 음위가 반드시 유효가 있음이 아니고 양위가 반드시 강효가 있음이 아니어서 육효의 위차가 착잡하여 문채를 이룬다. 강유의 거위가 교체하여 다함이 없고 양강 음유가 사람 몸에 낙실되어 인과 의가 되니 그 공용도 또한 무궁 무진하다. 『역』이 성명의 이치를 논함이 시시 가운데 기우되니 또 이와 같다.
天地定位,山澤通氣,雷風相薄,水火不相射,八卦相錯。數往者順,知來者逆,是故易逆數也。夫以六畫成卦,則是八卦皆重之矣。於是有不易之卦二,乾坤是也。乾天坤地,純陰純陽,闢卦消息皆蘊其中,故用之以定諸卦之位,所謂闢卦者有十。艮山以下二陰上消一陽,兌澤以下二陽上消一陰,則凡陽消之卦體皆象艮,陰消之卦體皆象兌,故曰通氣。震雷以下一陽上薄二陰,巽風以下一陰上薄二陽,薄者迫也,則凡陽息之卦體皆象震,陰息之卦體皆象巽,故曰相薄。
천과 지가 상하의 자리를 확정하고 산과 택이 기식이 서로 통하며 뇌와 풍이 서로 박근하고 수와 화가 서로 염기하지 않아 팔괘가 서로 교착한다. 이미 지난 일을 추수함은 순이요 장래의 일을 미리 앎은 역으로 추하므로 『역』은 역추의 수이다. 이미 육획으로 괘를 이루면 곧 팔괘가 모두 이미 둘둘 겹쳤으니 이에 두 가지 불변의 괘가 있으니 곧 건과 곤이다. 건은 하늘이요 곤은 땅으로 순양 순음이어서 벽괘의 소장이 모두 그 안에 함암되므로 그것들로 각 괘의 위차를 확정한다. 이른바 벽괘는 모두 열 괘가 있다. 간은 산으로 아래 두 음이 위에서 한 양을 소거하고 태는 택으로 아래 두 양이 위에서 한 음을 소거하니 무릇 양소의 괘에 속하는 것은 괘체가 모두 간에 취상하고 무릇 음소의 괘에 속하는 것은 괘체가 모두 태에 취상하므로 「통기(通氣)」라 한다. 진은 뇌로 아래 한 양이 위로 향하여 두 음을 박근하고 손은 풍으로 아래 한 음이 위로 향하여 두 양을 박근하니 「박」은 곧 박근이다. 무릇 양식의 괘에 속하는 것은 괘체가 모두 진에 취상하고 무릇 음식의 괘에 속하는 것은 괘체가 모두 손에 취상하므로 「상박(相薄)」이라 한다.
至於坎水離火,陰陽居中,則上下不相入。鄭氏曰:「射,入也。」卦遇坎離,陰陽錯雜,既已群分,不能相類聚,則必用類聚之卦以為卦母,而往來推移以分之,始得卦義。凡此皆非具山澤風雷全象者,故曰八卦相錯。六十四卦已定,是謂既往;將來之物理含蘊於中,尚是未來。占者於既往之卦順以數之,即可逆知將來吉凶。易之為書教人知來,故曰易逆數也。
감을 물로 하고 리를 불로 함에 이르러서는 양효 음효가 각각 중위에 있어 상하가 곧 서로 침입하지 않는다. 정현이 이르기를, 「사(射)는 곧 입(入)이다」. 무릇 감·리 두 괘를 만나면 음양이 교착 잡진하여 이미 각기 분군하여 동류가 서로 모일 수 없으니 반드시 따로 유취의 괘를 써서 「괘모(卦母)」로 삼아 왕래 추이를 통해 그것을 분파해야 비로소 괘의를 구해 얻는다. 이러한 정형은 모두 산택 풍뢰의 완정한 상을 갖추지 않으므로 「팔괘상착(八卦相錯)」이라 한다. 육십사괘가 이미 배정되었으니 이를 「기왕(既往)」이라 하고 장래의 물리가 그 안에 함암하여 아직 「미래」에 속한다. 점자가 이미 정해진 괘에 의거하여 순으로 추수하면 곧 역추하여 장래의 길흉을 미리 알 수 있다. 『역』 이 책은 사람에게 장래를 미리 알게 가르치는 것이므로 「역역수야(易逆數也)」라 한다.
雷以動之,風以散之,雨以潤之,日以烜之,艮以止之,兌以說之,乾以君之,坤以藏之。雷動風散,生息萬物,故體象震巽者為息卦;雨潤日烜,變化萬物,故體象坎離者為移卦;艮止兌說,收成萬物,故體象艮兌者為消卦;乾為萬物之始,象君,坤為萬物之母,象藏。乾坤二卦雖無推移,而諸消息皆出於此,故曰君、曰藏。《九家易》曰:「雷與風變化不常,而日月相推,迭有往來,是以四卦以義言之;天地山澤恆在者也,故直說名矣。」
뇌는 만물을 고동하고 풍은 만물을 취산하며 우는 만물을 자윤하고 일은 만물을 쇄건하며 간은 만물을 지식하고 태는 만물을 열역하며 건은 만물을 통령하고 곤은 만물을 수장한다. 뇌동 풍산하여 만물을 생장 번식하므로 괘체가 진·손에 취상하는 것은 「식괘(息卦)」에 속하고 우윤 일쇄하여 만물을 변화하므로 괘체가 감·리에 취상하는 것은 「이괘(移卦)」에 속하며 간지 태열하여 만물을 수성하므로 괘체가 간·태에 취상하는 것은 「소괘(消卦)」에 속한다. 건은 만물의 개단으로 군주를 상징하고 곤은 만물의 모체로 수장을 상징한다. 건곤 두 괘는 본신이 추이하지 않으나 각종 소장이 모두 그것들에서 생출되므로 「군지(君之)」라 하고 「장지(藏之)」라 한다. 『구가역』이 이르기를, (이하 생략).
帝出乎震,齊乎巽,相見乎離,致役乎坤,說言乎兌,戰乎乾,勞乎坎,成言乎艮。萬物出乎震,震,東方也。齊乎巽,巽,東南也;齊也者,言萬物之潔齊也。離也者,明也,萬物皆相見,南方之卦也;聖人南面而聽天下,嚮明而治,蓋取諸此也。坤也者,地也,萬物皆致養焉,故曰致役乎坤。兌,正秋也,萬物之所說也,故曰說言乎兌。戰乎乾,乾,西北之卦也,言陰陽相薄也。坎者,水也,正北方之卦也,勞卦也,萬物之所歸也,故曰勞乎坎。艮,東北之卦也,萬物之所成終而所成始也,故曰成言乎艮。
제(帝)가 진에서 나오고 고(齊)함은 손이며 서로 봄은 리이고 치역(致役)함은 곤이며 열언함은 태이고 싸움은 건이며 노(勞)함은 감이고 성언함은 간이다. 제는 곧 주재로 이 단락은 팔괘의 방위를 분배함을 말한다. 진의 자리는 동쪽에 있어 때가 봄에 해당하고 만물이 진뢰에 진동되어 난다. 손의 자리는 동남에 있어 음기가 안에 엎드려 밖에 나타나지 않아 만물이 정제하여 나와 서로 섞이지 않는다. 리의 자리는 남쪽에 있어 때가 여름에 해당하여 만물이 모두 서로 본다. 곤은 땅으로 서남의 자리이며 만물이 모두 땅의 양육에 치역된다. 태는 정추로 만물이 이루어져 기뻐한다. 건은 서북으로 음양이 여기서 서로 박하여 싸운다. 감은 정북의 수괘로 만물이 귀장하여 노한다. 간은 동북으로 만물이 끝을 이루고 또 시작을 이루는 곳이다.
六十四卦既有消息,而八卦循環亦有次序:震一、巽二、離三、坤四、兌五、乾六、坎七、艮八。震位正東,巽位東南,離位正南,坤位西南,兌位正西,乾位西北,坎位正北,艮位東北。鄭氏曰:「萬物出於震,雷發聲以生之也;齊於巽、相見於離,風搖動以齊之也,潔猶新也;萬物皆相見,日照之使光大;萬物皆致養焉,地氣含養使有秀實也;坤不言方者,言地之養物不專一也;萬物之所說,草木皆老,猶以兌澤氣說成之;戰,言陰陽相薄,西北陰也,而乾以純陽臨之,猶君臣對合也;坎,勞卦也,水性勞而不倦;萬物之所歸也,萬物自春出生於地,冬氣閉藏,還皆入地;萬物之所成終而所成始,言萬物陰氣終、陽氣始,皆艮之用事也。」
만물이 진에서 나오니 진은 동쪽이다. 손에서 고니 손은 동남이다. 고라 함은 만물이 정제함을 말한다. 리는 밝음이니 만물이 모두 서로 보고 남방의 괘이다. 성인이 남면하여 천하를 듣고 밝음을 향해 다스리니 대개 여기서 취한다. 곤은 땅이니 만물이 모두 양육에 치역되므로 치역을 곤이라 한다. 태는 정추로 만물이 기뻐하는 곳이므로 열언을 태라 한다. 싸움은 건으로 서북의 괘이며 음양이 서로 박함을 말한다. 감은 물이요 정북방의 괘이며 노괘이니 만물이 돌아가는 곳이므로 노를 감이라 한다. 간은 동북의 괘로 만물이 끝을 이루고 또 시작을 이루는 곳이므로 성언을 간이라 한다.
神也者,妙萬物而為言者也。動萬物者莫疾乎雷,橈萬物者莫疾乎風,燥蓋【蓋:萬】物者莫熯乎火,說萬物者莫說乎澤,潤萬物者莫潤乎水,終萬物始萬物者莫盛乎艮。故水火相逮,雷風不相悖,山澤通氣,然後能變化,既成萬物也。
신이란 만물을 묘하게 하여 말을 이루는 자이다. 만물을 움직임에 뇌보다 빠른 것이 없고 만물을 흔듦에 풍보다 빠른 것이 없으며 만물을 말림에 화보다 더운 것이 없고 만물을 기쁘게 함에 택보다 기쁜 것이 없으며 만물을 적심에 수보다 윤택한 것이 없고 만물을 종시함에 간보다 성한 것이 없다. 그러므로 수화가 서로 미치고 뇌풍이 서로 배하지 않으며 산택이 통기하여 그러고 나서 능히 변화를 이루어 이미 만물을 이룬다.
以八卦之次序言之,則萬物出於震而終於艮;以八卦之功用言之,則萬物生於乾而成於坤。蓋萬物皆受氣於乾,天無跡象可名,無形色可指,此謂之神。至於生機已萌,震雷動之以鼓其蒙,巽風橈之以散其鬱,繼之以離火、兌澤、坎水以熯之、說之、潤之,乃歸根於艮,生機蘊藏,以成終而肇始。故坎離南北以相對相逮,震巽居東以相連不相悖,艮與兌位次相隔而其氣相通。六子各其能,然後變象化形於坤地之上。乾坤不明言者,六子有專能,皆天地之功也。
건은 건(健)이요 곤은 순(順)이요 진은 동(動)이요 손은 입(入)이요 감은 함(陷)이요 리는 려(麗)요 간은 지(止)요 태는 열(悅)이다.
乾,健也;坤,順也;震,動也;巽,入也;坎,陷也;離,麗也;艮,止也;兌,說也。以八卦之性情言之:乾體純剛,故曰健;坤體純柔,故曰順;震以一陽生於二陰之下,生機莫遏,故曰動;巽以一陰伏於二陽之下,伏藏不出,故曰入;坎之一陽沈溺陰中,故曰陷;離之一陰附居陽內,故曰麗;艮陽極上,前無可往,祇宜息足,故曰止;兌陰見上,其體雖剛,柔形於外,故曰說。
건은 건이고 곤은 순이며 진은 동이고 손은 입이며 감은 함이고 리는 려이며 간은 지이고 태는 열이다. 팔괘의 성정에 대해 말하면 건의 괘체가 순전히 강효이므로 「건」이라 하고 곤의 괘체가 순전히 유효이므로 「순」이라 하며 진은 (이하 생략).
乾為馬,坤為牛,震為龍,巽為雞,坎為豕,離為雉,艮為狗,兌為羊。以八卦之象於物者言之:馬剛而行健,氣稟純陽,故象乾;牛柔而性順,氣得純陰,故象坤;龍潛重陰之下,遇陽則動,故震象之;雞鳴盛陽之候,遇陰則伏,故巽象之;外汙濁而內剛躁,此豕象也,坎之卦畫似之;外文章而內柔怯,此雉象也,離之卦畫肖之;內柔媚而外剛能守,此具艮體,故狗為艮象;外柔悅而內剛好鬬,此具兌體,故羊為兌象。
건은 말이 되고 곤은 소가 되며 진은 용이 되고 손은 닭이 되며 감은 돼지가 되고 리는 꿩이 되며 간은 개가 되고 태는 양이 된다.
乾為首,坤為腹,震為足,巽為股,坎為耳,離為目,艮為手,兌為口。以八卦之象於身者言之:首會眾陽,乾陽體實,故象首;腹納諸陰,坤陰體虛,故象腹;足在身下,其體動,震之一陽動於下,是足象;股居足上,其體隱,巽之一陰伏於下,是股象;陰竅外見,陽實內聰,為耳象,坎如之;陰虛內麗,陽光外明,為目象,離如之;艮上一陽為背,二陰垂下象手;兌下二陽為首,一陰上開象口。
건은 머리가 되고 곤은 배가 되며 진은 발이 되고 손은 넓적다리가 되며 감은 귀가 되고 리는 눈이 되며 간은 손이 되고 태는 입이 된다.
乾,天也,故稱乎父;坤,地也,故稱乎母。震一索而得男,故謂之長男;巽一索而得女,故謂之長女;坎再索而得男,故謂之中男;離再索而得女,故謂之中女;艮三索而得男,故謂之少男;兌三索而得女,故謂之少女。以八卦之老少言之:乾天為萬物之始,故稱父;坤地為萬物之生,故稱母。索,求也,坤索乾陽得三男,乾索坤陰得三女。震曰長男,索乾初爻;坎曰中男,索乾中爻;艮曰少男,索乾上爻;巽曰長女,索坤初爻;離曰中女,索坤中爻;兌曰少女,索坤上爻。
건은 하늘이므로 아버지라 칭하고 곤은 땅이므로 어머니라 칭한다. 진은 일색(一索)하여 남을 얻으므로 장남이라 하고 손은 일색하여 여를 얻으므로 장녀라 하며 감은 재색(再索)하여 남을 얻으므로 중남이라 하고 리는 재색하여 여를 얻으므로 중녀라 하며 간은 삼색(三索)하여 남을 얻으므로 소남이라 하고 태는 삼색하여 여를 얻으므로 소녀라 한다.
乾為天,為圜,為君,為父,為玉,為金,為寒,為冰,為大赤,為良馬,為老馬,為瘠馬,為駁馬,為木果。荀九家有為龍、為直、為衣、為言。虞氏有為王、為神、為人、為大人、為君子、為物、為立、為畏、為敬、為威、為嚴、為德、為善、為仁、為忿、為慶、為嘉、為福、為祿、為始、為盈、為肥、為好、為施、為治、為甲、為老、為宗、為族、為大明、為遠、為郊、為野、為門、為頂、為朱、為性、為精、為清。凡此逸象見於諸家注,故附錄於各卦後以備考焉。
건은 하늘이 되고 둥금이 되며 임금이 되고 아버지가 되며 옥이 되고 쇠가 되며 추위가 되고 얼음이 되며 큰 붉음이 되고 좋은 말이 되며 늙은 말이 되고 여윈 말이 되며 얼룩말이 되고 나무 열매가 된다.
此廣八卦之象也。乾象天,天體圜,天道至尊,君父似之;金玉之質皆剛;乾位西北嚴寒之地,寒凝水為冰;大赤,純陽色;馬善曰良馬,瘠多骨,駁馬有牙似鋸,能食虎豹,此皆象乾之剛健也。木果者,果核有仁,生機中藏,木之資始在此。
곤은 땅이 되고 어머니가 되며 베가 되고 가마가 되며 인색이 되고 고름이 되며 암송아지를 밴 소가 되고 큰 수레가 되며 무늬가 되고 무리가 되며 자루가 된다. 그 땅에 대해서는 곧 검음이 된다.
坤為地,為母,為布,為釜,為吝嗇,為均,為子母牛,為大輿,為文,為眾,為柄,其於地也為黑。荀九家有為牝、為迷、為方、為囊、為裳、為黃、為帛、為漿。荀氏有為邑。虞氏有為臣、為民、為鬼、為身、為富、為財、為虛、為書、為思、為惡、為事、為業、為閉、為藏、為密、為亂、為死、為喪、為冥、為晦、為夕、為暮夜、為署、為乙、為闔戶、為土、為階、為田、為國、為邦、為器、為虎、為黃牛。干氏有為順。
진은 우레가 되고 용이 되며 현황(玄黃)이 되고 부(旉)가 되며 대도(大塗)가 되고 장자(長子)가 되며 결조(決躁)가 되고 창랑죽(蒼筤竹)이 되며 환위(萑葦)가 된다. 그 말에 대해서는 잘 우는 것이 되고 주족(馵足)이 되며 작족(作足)이 되고 적상(的顙)이 된다. 그 곡식에 대해서는 반생(反生)이 된다. 그 끝에 대해서는 건(健)이 되고 번선(蕃鮮)이 된다.
坤象地,地為資生萬物之母。布者,績麻織成之物;釜,鐵器,化生為熟之物。坤地利人,衣食尤其大者,故曰布、曰釜。坤主翕聚,象吝嗇;地勢平曰均;坤順曰牛,坤母生子,故又象子母牛;大輿廣載,如地之能載萬物;地上物色各見,故曰文;眾,多也,坤畫六數,八卦畫數無有多於坤者;柄者,生物之本;黑,純陰色。
손은 나무가 되고 바람이 되며 장녀가 되고 승직(繩直)이 되며 공(工)이 되고 흰 것이 되며 긺이 되고 높음이 되며 진퇴가 되고 불과(不果)가 되며 냄새가 된다. 그 사람에 대해서는 성긴 머리가 되고 넓은 이마가 되며 흰눈이 많음이 되고 이익을 가까이하여 시장에서 세 배가 된다. 그 끝에 대해서는 조괘(躁卦)가 된다.
震為雷,為龍,為玄黃,為旉,為大塗,為長子,為決躁,為蒼筤竹,為萑葦;其於馬也,為善鳴,為馵足,為作足,為的顙;其於稼也,為反生;其究為健,為蕃鮮。京氏有為鳴鶴。荀九家有為玉、為鵠、為鼓。鄭氏有為日門。虞氏有為帝、為主、為諸侯、為兄、為夫、為趾、為出、為行、為徵、為作、為驚走、為言、為議、為聲、為音、為鳴、為應、為禾稼、為百穀、為樂、為喜笑、為筐、為麋鹿。蜀才有為喜樂。《國語》韋氏注有為車。
감은 물이 되고 구독(溝瀆)이 되며 은복(隱伏)이 되고 교유(矯輮)가 되며 궁륜(弓輪)이 된다. 그 사람에 대해서는 가우(加憂)가 되고 심병(心病)이 되며 이통(耳痛)이 되고 혈괘(血卦)가 되며 붉음이 된다. 그 말에 대해서는 미척(美脊)이 되고 급심(亟心)이 되며 하수(下首)가 되고 박제(薄蹄)가 되며 예(曳)가 된다. 그 수레에 대해서는 다성(多眚)이 된다. 통(通)이 되고 달이 되며 도적이 된다. 그 나무에 대해서는 견고하여 심이 많음이 된다.
震之象為雷,震德動也。龍為動物,乾純陽為龍,震得乾初亦為龍。坤索乾初為震,天地之色至此始雜,元,天之色;黃,地之色。震上二陰如花之萼,下一陽如花之跗,故有旉象。王氏曰:「旉,花之通名。」大塗者,一陽欲行,兩偶開通,如平塗然。震為長男,曰長子。震陽上息,剛決而躁。蒼,東方色,東方木位,筤竹萑葦皆木類。震得乾之初陽,故亦為馬;震雷有聲,故馬善鳴。馬後足白曰馵,馬足舉行曰作,的,白也,的顙,馬之白顛者;震體陰陽相雜,故為馬色皆不純。反生者,禾種入土反動上生。宋氏曰:「即枲豆之屬帶甲生者。」震一陽反生於下似之。究,極也,震陽下息,得乾之健;草木滋盛曰蕃,草木懷新曰鮮。
리는 불이 되고 해가 되며 번개가 되고 중녀가 되며 갑주(甲冑)가 되고 과병(戈兵)이 된다. 그 사람에 대해서는 큰 배가 된다. 건괘(乾卦)가 되고 자라가 되며 게가 되고 소라가 되며 조개가 되고 거북이 된다. 그 나무에 대해서는 과상고(科上槁)가 된다.
巽為木,為風,為長女,為繩直,為工,為白,為長,為高,為進退,為不果,為臭;其於人也,為寡髮,為廣顙,為多白眼,為近利市三倍;其究為躁卦。荀九家有為楊、為鸛。虞氏有為命令、為號令、為教令、為誥、為號咷、為婦、為妻、為商旅、為隨、為入、為伏、為利、為茅、為蘭、為草木、為杞、為舞、為葛藟、為庸、為床、為魚、為鮒。
간은 산이 되고 샛길이 되며 작은 돌이 되고 문궐(門闕)이 되며 과라(果蓏)가 되고 혼시(閽寺)가 되며 손가락이 되고 개가 되며 쥐가 되고 검은 부리의 부류가 된다. 그 나무에 대해서는 견고하여 마디가 많음이 된다.
巽位居木,木屬風。乾索坤初為女,故曰長。巽主齊物,故為繩直,為工。陽白陰黑,巽之一陰下伏,二陽外見,故色曰白。陽大陰小,巽之二陽上著,故為長、為高。巽股隨足,巽陰柔順,故為進退、不果。臭,氣也,氣亦風類,陽為氣,巽陽見曰氣。髮者陰血所生,巽氣未行至上,故髮寡;廣顙謂陽盛於上;多白眼謂陽多於陰。陰主利,巽陰方息,故近利市三倍。物息則性多躁,震以陽息曰決躁,巽陰息曰躁卦,不曰決也。
손의 방위는 목에 속하고 목은 또 풍과 서로 속한다. 건이 곤을 향하여 초효를 구하여 딸을 얻으므로 「장녀(長女)」라 칭한다. 손은 만물을 정제함을 주관하므로 승묵의 곧음과 공장을 취상으로 삼는다. 양의 색은 희고 음의 색은 검어서 손의 한 음이 아래에 엎드리고 두 양이 밖에 나타나므로 색이 흰 것이 된다. 양은 크고 음은 작아서 손의 두 양이 위에 붙으므로 긺이 되고 높음이 된다. 손은 넓적다리로 발을 따라 움직이고 손의 성은 음유하여 순종하므로 진퇴 부정·유예 불결이 된다. 「취(臭)」는 곧 냄새로 기도 또한 풍의 부류에 속하고 양은 기로 손의 양이 밖에 나타나므로 기라 칭한다. 머리카락은 음혈이 낳는 바인데 손의 기가 아직 꼭대기에 오르지 못하므로 머리카락이 성기고 「광상(廣顙)」은 양이 위에 성함을 말하고 「다백안(多白眼)」은 양이 음보다 많음을 말한다. 음은 이익을 주관하고 손의 음기가 바야흐로 생장하므로 능히 가까이 이익을 구하여 세 배의 이익을 얻는다. 사물이 생장하여 지나치게 성하면 성정이 조가 많아진다. 진은 양기로 생장하여 「결조(決躁)」라 하고 손은 음기로 생장하여 다만 「조괘(躁卦)」라 하며 「결」이라 칭하지 않는다.
坎為水,為溝瀆,為隱伏,為矯輮,為弓輪;其於人也,為加憂,為心病,為耳痛,為血卦,為赤;其於馬也,為美脊,為亟心,為下首,為薄蹄,為曳;其於輿也,為多眚;為通,為月,為盜;其於木也,為堅多心。荀九家有為宮、為律、為可、為棟、為叢棘、為狐、為蒺藜、為桎梏。荀氏有為志。鄭氏有為鬼神。虞氏有為雲、為大川、為心、為慮、為謀、為惕、為恤、為疑、為蹇、為眚、為疾、為災、為罪、為孚、為罰、為獄、為臀、為膏、為酒、為穿木、為校、為弧、為車、為馬、為毒。干氏有為法、為夜。《左氏傳》杜注有為眾。
감은 상을 취하여 물이 되고 도랑이 되며 은복이 되고 굽은 것을 펴고 곧은 것을 굽히는 교유가 되며 활과 수레바퀴가 된다. 사람에 대해서는 근심이 몸에 더해짐이 되고 심병이 되며 이통이 되고 피를 주관하는 괘가 되며 붉은 색이 된다. 말에 대해서는 등이 아름다운 말이 되고 성이 급한 말이 되며 머리를 숙인 말이 되고 발굽이 얇은 말이 되며 끌려 잘 가지 못하는 말이 된다. 수레에 대해서는 재화가 많음이 된다. 또 유통이 되고 달이 되며 도적이 된다. 나무에 대해서는 견고하고 심이 많은 나무가 된다. 『순씨구가역』은 따로 궁실이 되고 율이 되며 가(可)가 되고 동(棟)이 되며 총극(叢棘)이 되고 여우가 되며 질려(蒺藜)가 되고 족료 수고가 됨이 있다. 순상은 따로 뜻이 됨이 있다. 정현은 따로 귀신이 됨이 있다. 우번은 따로 구름이 되고 큰 내가 되며 마음이 되고 생각이 되며 꾀이 되고 두려움이 되며 근심이 되고 의심이 되며 건(蹇)이 되고 성(眚)이 되며 질이 되고 재가 되며 죄가 되고 부(孚)가 되며 벌이 되고 옥이 되며 엉덩이가 되고 기름이 되며 술이 되고 나무를 뚫음이 되며 가가 되고 호(弧)가 되며 수레가 되고 말이 되며 독이 됨이 있다. 간보는 따로 법이 되고 밤이 됨이 있다. 『좌전』 두예 주석은 따로 무리가 됨이 있다.
坎象水,溝瀆皆水名。一陽居中,外陰蔽之,故為隱伏。宋氏曰:「曲者更直為矯,直者更曲為輮。」水流有曲直,故為矯輮;弓形曲,輪體圓,此皆由矯輮成者。坎德陷,象險象憂;坎體中實象心,坎外有竅象耳,曰病曰痛皆陷義也。血陰類,陽赤為水,血象赤,陽中色。坎得乾中,故亦為馬:陽為美,陽中為脊;亟,急也,坎心內實,故曰亟心;陽為首,坎水就下,故曰下首;馬蹄宜堅,坎外為陰,故蹄薄;曳者,牽曳不速進也,坎則陰見陽伏,柔不勝剛,故曳。坤索乾中為坎,坤輿之方加以乾圓,軫方蓋圓之象;坎陷,故多眚。通者,水性流也;月者,水之精;盜者,隱伏而險陷人者也;坎內陽剛,象堅心之木。
감은 물을 상징하고 도랑과 수로는 모두 물의 명목이다. 한 양이 가운데 있고 바깥 두 음이 그것을 차폐하므로 은복이 된다. 송충이 이르기를, 「굽은 것을 펴는 것을 『교(矯)』라 하고 곧은 것을 굽히는 것을 『유(輮)』라 한다」. 물의 흐름에 굽음이 있고 곧음이 있으므로 교유가 되고 활의 형상은 구부러지고 수레바퀴의 형체는 둥그니 이는 모두 교유로 만들어진 것이다. 감의 덕성은 함(陷)이므로 험을 상하고 근심을 상한다. 감의 괘체는 가운데가 충실하여 마음과 같고 감의 바깥은 구멍이 있어 귀와 같으니 「심병」이라 하고 「이통」이라 함은 모두 함락의 뜻을 취한다. 피는 음류에 속하고 양의 색은 붉으며 감은 또 물이 되어 피의 색이 붉으니 바로 양이 가운데 있는 색이다. 감이 건의 중효를 얻었으므로 또 말을 취상으로 삼는다. 양은 아름다움이고 양이 가운데 있으면 등에 닮으며 「급」은 급함으로 감의 중심이 충실하므로 「급심(亟心)」이라 하고 양은 머리인데 감의 물이 아래로 향하므로 「하수(下首)」라 한다. 말발굽은 본래 견후해야 하나 감의 외효가 음이므로 발굽이 얇고 「예(曳)」는 끌려 빨리 가지 못함으로 감은 음이 밖에 나타나고 양이 안에 엎드려 유가 강을 이기지 못하므로 끌린다. 곤이 건을 향하여 중효를 구하여 감을 이루고 곤은 수레로 그 형이 네모지며 건의 둥금을 더하면 바로 수레 상자는 네모지고 수레 덮개는 둥근 상이다. 감은 함락을 주관하므로 재성(災眚)이 많다. 「통」은 물성의 유동이요 「월」은 물의 정화이며 「도」는 은복하여 암중에 사람을 함해하는 것이다. 감의 안이 양강하므로 목심이 견고한 나무를 상한다.
離為火,為日,為電,為中女,為甲冑,為戈兵;其於人也,為大腹;為乾卦,為鱉,為蟹,為蠃,為蚌,為龜;其於木也,為科上槁。荀九家有為牝牛,又有為飛鴻。王氏、馬氏有為矢。虞氏有為婦、為孕、為飛、為戎、為折首、為罔、為罟、為甕、為瓶、為鶴、為隼、為鴻。干氏有為畫、為斧。
리는 상을 취하여 불이 되고 해가 되며 번개가 되고 중녀가 되며 개갑 투구가 되고 과모 병기가 된다. 사람에 대해서는 큰 배가 된다. 또 건조의 괘가 되고 자라가 되며 게가 되고 소라가 되며 조개가 되고 거북이 된다. 나무에 대해서는 나무 심이 비어서 윗부분이 마른 나무가 된다. 『순씨구가역』은 따로 암소가 되고 또 날 기러기가 됨이 있다. 왕숙·마융은 따로 화살이 됨이 있다. 우번은 따로 아낙이 되고 임신이 되며 날음이 되고 병융이 되며 수길을 꺾음이 되고 그물이 되며 큰 그물이 되고 옹이 되며 병이 되고 학이 되며 매가 되고 기러기가 됨이 있다. 간보는 따로 그림이 되고 도끼가 됨이 있다. 이러한 일상(逸象)은 대부분 리의 광명 부려·외강 내유의 뜻을 취한다. 「수길 꺾음」은 리가 과병임을 취하고 「그물」들은 그물코가 서로 붙는 상을 취하며 「옹」「병」은 겉이 굳고 속이 빔을 취한다.
離象火,居火位。日者,火之精;電亦火屬。乾索坤中為離,故曰中女。甲冑戈兵皆堅外以禦侮者,離之內柔外剛似之。離體中虛,象大腹;離火躁物,故曰乾卦。鱉、蟹、蠃、蚌、龜皆外堅內柔之物。科,空也,木枝內空,上多枯槁。
리는 불을 상징하고 방위는 화위에 있다. 태양은 불의 정화이고 번개도 또한 화류에 속한다. 건이 곤을 향하여 중효를 구하여 리를 이루므로 「중녀(中女)」라 칭한다. 개갑 투구와 과모 병기는 모두 외각이 견고하여 외모를 막는데 리괘가 내유하고 외강하여 바로 그것과 닮았다. 리의 괘체가 가운데 비었으므로 큰 배를 상하고 리화가 사물을 건조하게 하므로 「건괘(乾卦)」라 칭한다. 자라·게·소라·조개·거북은 모두 겉껍데기가 견고하고 속이 부드러운 물건이다. 「과(科)」는 빔으로 나뭇가지 속이 비면 윗끝이 대부분 마른다.
艮為山,為徑路,為小石,為門闕,為果蓏,為閽寺,為指,為狗,為鼠,為黔喙之屬;其於木也,為堅多節。荀九家有為鼻、為虎、為狐。鄭氏有為鬼冥門。虞氏有為小人、為童、為僮僕、為星、為霆、為待、為執、為厚、為城、為門庭、為廬、為居、為宗廟、為社稷、為肱、為背、為皮、為膚、為小木、為碩果、為小狐、為尾。《左氏傳》杜注有為石言。
간은 상을 취하여 산이 되고 샛길이 되며 작은 돌이 되고 문궐이 되며 나무 열매와 땅의 오이가 되고 문을 지키는 혼인과 내정의 시인이 되며 손가락이 되고 개가 되며 쥐가 되고 검은 부리의 금수 부류가 된다. 나무에 대해서는 견고하고 마디가 많은 나무가 된다. 『순씨구가역』은 따로 코가 되고 호랑이가 되며 여우가 됨이 있다. 정현은 따로 귀명의 문이 됨이 있다. 우번은 따로 소인이 되고 동자가 되며 동복이 되고 별이 되며 뇌정이 되고 기다림이 되며 집지가 되고 두터움이 되며 성이 되고 문정이 되며 여사가 되고 거처가 되며 종묘가 되고 사직이 되며 팔뚝이 되고 등이 되며 가죽이 되고 살결이 되며 작은 나무가 되고 큰 열매가 되며 작은 여우가 되고 꼬리가 됨이 있다. 『좌전』 두예 주석은 따로 「돌이 말함」의 한 상이 있다.
艮象山,山路僻狹,故曰徑;山多石,艮小,故曰小石。兩扉相對曰門,門之兩旁曰闕,艮體一陽上崇,二陰下闢,如門闕然。木實曰果,草實曰蓏。宋氏曰:「閽人主門,寺人主巷。」艮德為止,閽寺皆職掌門闕、禁止外侮者。艮為手,故曰指。狗鼠皆獸名,能以齒齧物,艮陽居上,陽剛在首,象狗鼠。黔,黑色,禽獸之喙多剛,曰黔喙之屬者,亦取艮陽在上之義。艮位東北寅木之地,外剛,故堅多節。
간은 산을 상징한다. 산길이 편벽 협착하므로 「경로(徑路)」라 하고 산 위에 돌이 많으며 간이 작음이 되므로 「소석(小石)」이라 한다. 두 짝 문짝이 서로 마주함을 「문」이라 하고 문의 양옆을 「궐」이라 한다. 간의 괘체는 한 양이 높이 위에 있고 두 음이 아래로 개장하니 바로 문궐의 모습과 닮았다. 나무에 맺는 열매를 「과(果)」라 하고 풀에 맺는 열매를 「라(蓏)」라 한다. 송충이 이르기를, 「혼인(閽人)은 문호를 주관하고 시인(寺人)은 궁항을 주관한다」. 간의 덕성은 지(止)이고 혼인·시인은 모두 문궐을 주관하여 외모를 금절하는 사람이다. 간이 손이 되므로 「지(指)」라 한다. 개와 쥐는 모두 짐승 이름으로 능히 이빨로 물건을 뜯어 씹고 간의 양효가 위에 있어 양강이 머리 부위에 있으므로 개·쥐를 상한다. 「검(黔)」은 검은 색이고 금수의 부리는 대부분 강경하니 「검휼지속(黔喙之屬)」은 또 간의 양이 위에 있음의 뜻을 취한다. 간의 자리는 동북에 있어 인목의 땅에 속하고 외효가 강실하므로 견고하고 마디 많은 나무가 된다.
兌為澤,為少女,為巫,為口舌,為毀折,為附決;其於地也,為剛滷;為妾,為羊。荀九家有為常、為輔頰。虞氏有為妹、為朋友、為講習、為刑人、為小、為契。兌象澤。陰為水,坎水外見為流,兌下堅剛,水止於上,故曰澤。乾索坤上爻為女,故曰少。巫,口舌之官,兌體上缺,象口舌。兌於時為秋,氣肅殺物,故曰毀折。兌之二陽上息,決去一陰,故曰附決。地積鹽水曰滷,鹵地堅曰剛滷;澤為止水,水死昧咸,不能下潤,兌體下實,不能下瀉,故有剛滷之象。女小為娣曰妾,內剛外柔曰羊。
태는 상을 취하여 못이 되고 소녀가 되며 무축이 되고 구설이 되며 훼절이 되고 붙어 결거함이 된다. 땅에 대해서는 견고한 염감지가 된다. 또 첩이 되고 양이 된다. 『순씨구가역』은 따로 상(常)이 되고 볼이 됨이 있다. 우번은 따로 누이가 되고 붕우가 되며 강습이 되고 형벌 받는 사람이 되며 작음이 되고 계약이 됨이 있다. 태는 못을 상징한다. 음은 물이고 감수가 밖에 드러나면 곧 흐르는 물이 되며 태의 아래 두 효가 견실 강경하여 물이 위에 정저하므로 「택(澤)」이라 한다. 건이 곤을 향하여 상효를 구하여 딸을 얻으므로 「소녀(少女)」라 칭한다. 무는 구설로 신을 섬기는 직사이고 태의 괘체는 위에 결구가 있어 바로 구설과 닮았다. 태는 시령에서 가을에 속하고 추기가 만물을 숙살하므로 「훼절(毁折)」이라 한다. 태의 두 양이 위로 생장하여 위의 한 음을 결거하므로 「부결(附決)」이라 한다. 지면에 소금물이 쌓임을 「로(鹵)」라 하고 로지가 판결 견고함을 「강로(剛鹵)」라 한다. 못은 흐르지 않는 물로 물이 죽어 맛이 짜고 아래로 침윤하지 못하며 태의 괘체는 아래가 충실하여 물이 아래로 새지 못하므로 「강로」의 상이 있다. 여자 가운데 어리어 제가 되는 것을 「첩」이라 하고 속이 강하고 겉이 유순한 것을 「양」이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