盐铁论 · 제25권
誅秦第四十四
주진제사십사(誅秦第四十四)
大夫曰秦楚燕齊周之封國也三晉之君齊之田氏諸侯家臣也內守其國外伐不義地廣壤進故立號萬乗【去聲】而為諸侯宗周室修禮長【音掌】文然國翦弱不能自存東攝六國西畏於秦身以放遷宗廟絶祀頼先帝大惠紹興其後封嘉潁川號周子男君【古本作周子南君漢武紀曰元鼎四年十一月甲子立后土祠於汾隂脽上禮畢行幸滎陽還至洛陽詔曰祭地兾州瞻望河洛廵省豫州觀於周室邈而無祀詢問耆老乃得孽子嘉其封嘉為周子南君以奉周祀顔師古曰子南其封邑之號以為周後故總言周子南君也】秦既並天下東絶沛水並滅朝鮮南取陸梁北卻胡狄西畧氏羌立帝號朝【音潮】四夷舟車所通足跡所及靡不畢至非服其德畏其威也力多則人朝【音潮】力寡則朝【音潮】於人矣
대부(大夫)가 말하였습니다: 진(秦)・초(楚)・연(燕)・제(齊)는, 주(周)의 봉국(封國)이요, 삼진(三晉)의 임금과 제(齊)의 전씨(田氏)는, 제후의 가신(家臣)입니다. 안으로 그 나라를 지키고, 밖으로 불의(不義)를 쳐서, 땅이 넓고 경계가 나아가니, 그러므로 만승(萬乘)【주음:「乘」는 거성】의 호(號)를 세워 제후의 종(宗)이 되었습니다. 주실(周室)은 예(禮)를 닦고 문(文)을 장(長)【주음:「長」는 장】하였으나, 그러나 나라가 전약(翦弱)하여 스스로 존재할 수 없어, 동쪽으로 육국(六國)을 두려워하고, 서쪽으로 진(秦)을 두려워하여, 몸이 방천(放遷)되어, 종묘(宗廟)의 제사가 끊겼습니다. 선제(先帝)의 큰 은혜에 의지하여, 그 후를 이어 일으켜, 가(嘉)를 영천(潁川)에 봉하여, 호(號)를 주자남군(周子男君)이라 하였습니다【옛 책은 「周子南君」으로 씀. 《한무기(漢武紀)》에 말합니다: 원정(元鼎) 사년 십일월 갑자, 후토사(后土祠)를 분음(汾陰) 수(脽) 위에 세우고, 예가 끝나 형양(滎陽)에 행행하여, 돌아와 낙양(洛陽)에 이르렀다. 조(詔)하여 이르기를: 기주(冀州)에서 땅을 제사하고, 하락(河洛)을 바라보며, 예주(豫州)를 순성(巡省)하여, 주실(周室)을 보니, 아득하여 제사가 없다. 기로(耆老)를 물으니, 곧 얼자(孽子) 가(嘉)를 얻어, 가(嘉)를 봉하여 주자남군(周子南君)으로 삼아 이로써 주(周) 제사를 받들게 하였다. 안사고(顏師古)가 말합니다: 자남(子南)은 그 봉읍(封邑)의 호(號)이니, 이로써 주(周)의 후로 삼았다. 그러므로 총칭하여 주자남군(周子南君)이라 한다.】. 진(秦)이 이미 천하를 합하니, 동쪽으로 패수(沛水)를 끊고, 조선(朝鮮)을 합하여 멸하고, 남쪽으로 육량(陸梁)을 취하고, 북쪽으로 호적(胡狄)을 물리치고, 서쪽으로 저강(氐羌)을 약탈하여, 제호(帝號)를 세워 사이(四夷)를 조(朝)하게【주음:「朝」는 조】 하였습니다. 배와 수레가 통하는 곳, 발자국이 미치는 곳, 미치지 않고 다 이르지 않는 곳이 없으니, 그 덕을 복종함이 아니요, 이는 그 위엄을 두려워함입니다. 힘이 많으면 곧 남이 조(朝)하고【주음:「朝」는 조】, 힘이 적으면 곧 남에게 조(朝)합니다【주음:「朝」는 조】.
文學曰禹舜堯之佐也湯文夏商之臣也其所以從八極而朝【音潮】海內者非以陸梁之地兵革之威也【秦紀曰始皇三十三年發諸亡人贅壻賈人略取陸梁地為桂林司馬貞曰南方之人其性陸梁故曰陸梁晉灼曰走者陸梁而跳也】秦楚三晉號萬乗【去聲】不務積徳而負相侵搆兵爭強而卒俱亡雖以進壤廣地如食萴之充腸也【廣雅曰附子一嵗曰萴子二嵗烏喙三嵗附子四嵗烏頭五嵗天雄蘇秦為燕說齊王曰人之飢所以不食烏喙者以為雖偷充腹而與死同患也今燕雖弱小強秦之少壻也王利其十城而深與強秦為仇今使弱燕為鴈行而強秦制其後以招天下之精兵此食烏喙之類也】欲其安存何可得也夫【音扶】禮譲為國者若江海流彌乆不竭其本美也苟為無本若蒿火怒而無繼其亡可立而待戰國是也周徳衰然後列於諸侯至今不絶秦力盡而滅其族安得朝【音潮】人也【嚴安曰周有天下其治三百餘嵗成康其隆也刑措四十餘年而不用及其衰亦三百餘年故五伯更起伯者常佐天子興利除害誅暴禁邪匡正海內以尊天子五伯既沒聖賢莫續天子孤弱號令不行諸侯恣行強凌弱眾寡田常簒齊六卿分晉併為戰國此民之始苦也於是強國務攻弱國修守合從連衡車馳轂撃介冑生蟣蝨民無所告愬及至秦王蠶食天下併吞戰國稱號皇帝一海內之政意廣心逸欲威海外當是時秦禍北搆於胡南掛于越宿兵於無用之地進而不得退行十餘年丁男被甲丁女轉輸苦不聊生自經於道樹死者相望及秦皇帝崩天下大畔陳勝呉廣舉陳武臣張耳舉趙項梁舉呉田儋舉齊景駒舉郢周市舉魏韓廣舉燕窮山通谷豪士並進不可勝載秦貴為天子富有天下滅世絶祀窮兵之禍也】
문학(文學)이 말하였습니다: 우(禹)・순(舜)은 요(堯)의 보좌이요, 탕(湯)・문(文)은 하(夏)・상(商)의 신하입니다. 그 팔극(八極)으로부터 해내(海內)를 조(朝)하게【주음:「朝」는 조】 한 까닭은, 육량(陸梁)의 땅과 병혁(兵革)의 위엄으로 하지 않았습니다【《진기(秦紀)》에 말합니다: 시황(始皇) 삼십삼 년, 여러 망명(亡人)과 췌서(贅婿)와 고인(賈人)을 발하여, 육량(陸梁)의 땅을 약탈하여 계림(桂林)으로 삼았다. 사마정(司馬貞)이 말합니다: 남방의 사람은 그 성질이 육량(陸梁)하니, 그러므로 육량(陸梁)이라 부른다. 진작(晉灼)이 말합니다: 달리는 자는 육량(陸梁)하여 뛴다.】. 진(秦)・초(楚)・삼진(三晉)은 만승(萬乘)【주음:「乘」는 거성】이라 호(號)하나, 덕을 쌓기를 힘쓰지 않고 서로 침범하며, 군사를 일으켜 강함을 다투어 마침내 함께 망하였습니다. 비록 경계를 나아가고 땅을 넓혔다 해도, 측(荝)을 먹어 창자를 채움과 같습니다【《광아(廣雅)》에 말합니다: 부자(附子) 한 해를 측자(荝子)라 하고, 두 해는 오훼(烏喙), 세 해는 부자(附子), 네 해는 오두(烏頭), 다섯 해는 천웅(天雄)이라 한다. 소진(蘇秦)이 연(燕)을 위하여 제왕(齊王)에게 설하여 이르기를: 사람이 주려도 오훼(烏喙)를 먹지 않는 까닭은, 비록 배를 채우는 것을 엿보나 죽음과 근심이 같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지금, 연(燕)이 비록 약소하나, 이는 강진(強秦)의 작은 사위이다. 왕이 그 열 성을 이익으로 삼아 깊이 강진(強秦)과 함께 원수가 되면, 지금 약한 연(燕)으로 하여금 기러기 행렬이 되게 하여 강진(強秦)이 그 뒤를 제어하는 것으로, 이로써 천하의 정예병을 불러들일 것이니, 이는 오훼(烏喙)를 먹는 부류이다.】. 편안하고 존재하고자 하면, 어찌 얻겠습니까. 문두의 부(夫)【주음:「夫」는 부】: 예양(禮讓)으로 나라를 삼는 것은, 강해(江海)가 흐름과 같아, 더욱 오래도록 마르지 않으니, 그 근본이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진실로 근본이 없으면, 쑥불이 맹렬하게 타(底本 이 글자는 생벽자로 전록 후 분실, 문의에 따라 마땅히 「暴」)고 잇는 것이 없음과 같아, 그 망함이 곧 서서 기다릴 만하니, 전국(戰國)이 곧 이것입니다. 주(周)의 덕이 쇠하여 그런 뒤에 제후에 열하였으나, 지금에 이르러 끊기지 않았습니다. 진(秦)은 힘이 다하여 그 족을 멸하였으니, 어찌 남을 조(朝)하게【주음:「朝」는 조】 하겠습니까【엄안(嚴安)이 말합니다: 주(周)가 천하를 가지고, 그 다스림이 삼백여 년이요, 성강(成康)이 그 융성함이니, 형벌을 놓아 사십여 년 쓰지 않았다. 그 쇠함에 이르러도 또한 삼백여 년이니, 그러므로 오패(五伯)가 번갈아 일어났다. 패(伯)는 항상 천자를 보좌하여 이익을 일으키고 해를 없애며, 포(暴)를 주살하고 사(邪)를 금하여, 해내(海內)를 광정(匡正)하여 이로써 천자를 존숭하였다. 오패(五伯)가 이미 세상을 떠나고, 성현(聖賢)이 잇는 자가 없어, 천자(天子)가 고약(孤弱)하여, 호령(號令)이 행해지지 않고, 제후가 마음대로 행하여, 강한 자는 약한 자를 업신여기고, 많은 자는 적은 자를 포학(暴, 底本 이 글자는 생벽자로 전록 후 분실)하며, 전상(田常)이 제(齊)를 찬(篡)하고, 육경(六卿)이 진(晉)을 나누어, 함께 전국(戰國)이 되니, 이는 백성의 고통의 시작이다. 이에 강국(強國)은 공격을 힘쓰고, 약국(弱國)은 지킴을 닦으며, 합종연횡(合從連衡)하여, 수레가 달리고 바퀴통이 부딪치며, 개주(介胄)에 이와 새가 생기고, 백성이 고할 곳이 없었다. 진왕(秦王)이 천하를 잠식하고, 전국(戰國)을 병탄하여, 황제(皇帝)라 칭호하고, 해내(海內)의 정치를 하나로 함에 이르러, 뜻이 넓고 마음이 편안하여, 해외(海外)에 위엄하고자 하였다. 이 때에 당하여, 진(秦)의 화가 북쪽으로 호(胡)에 걸리고, 남쪽으로 월(越)에 걸려, 군사를 쓸모없는 땅에 주둔하여, 나아가도 물러설 수 없고, 행하기를 십여 년이니, 정남(丁男)은 갑옷을 입고, 정녀(丁女)는 수송하여, 고통스러워 살기를 기대지 못하고, 길의 나무에 스스로 목을 매어, 죽은 자가 서로 바라보았다. 진황제(秦皇帝)가 붕어함에 이르러, 천하가 크게 배반하여, 진승(陳勝)・오광(吳廣)이 진(陳)을 일으키고, 무신(武臣)・장이(張耳)가 조(趙)를 일으키며, 항량(項梁)이 오(吳)를 일으키고, 전담(田儋)이 제(齊)를 일으키며, 경구(景駒)가 영(郢)을 일으키고, 주시(周市)가 위(魏)를 일으키며, 한광(韓廣)이 연(燕)을 일으켜, 궁산(窮山)과 통곡(通谷)에, 호사(豪士)가 함께 나아가니, 다 실을 수 없었다. 진(秦)이 존귀하여 천자가 되고, 천하에 부유하였으나, 세대가 멸하고 제사가 끊겼으니, 이는 궁병(窮兵)의 화이다.】.
大夫曰中國與邊境猶支體與腹心也夫【音扶】肌膚寒於外腹腸疾於內內外之相勞非相為助也唇亡則齒寒支體傷而心【音慘】怛故無手足則支體廢無邊境則內國害昔戎狄攻太王於邠逾岐梁而與秦界於涇渭東至晉之陸渾侵暴中國中國疾之【匈奴傳曰夏道衰而公劉失其稷官變於西戎邑於豳其後三百有餘嵗戎狄攻大王亶父亶父亡走於岐下豳人悉從亶父而邑焉作周至於幽王用寵姬褒姒之故與申侯有隙申侯怒而與犬戎共攻殺幽王於驪山之下遂取周之地滷獲而居於涇渭之間侵中國秦襄救周伐戎至岐周襄王時戎狄或居於陸渾東至於衞侵盜尤甚晉文公初立欲修霸業廼興師伐戎翟當是時秦晉為強國晉文公攘戎翟居於河西圜洛之間號曰赤翟白翟而秦穆公得由余西戎八國服諸戎各分散谿谷自有君長往往而聚者百有餘戎然莫能相一其後千有餘嵗至冐頓而匈奴最強大盡服從北夷而南與諸夏為敵國】今匈奴蠶食內侵逺者不離【去聲】其苦獨邊境防其敗詩云憂心慘慘念國之為虐不徵備則害不息故先帝興義兵以徵厥罪遂破祁連天山散其聚黨北略至龍城大圍匈奴單【音蟬】於失魂僅以身免乗奔逐北斬首捕虜十餘萬控之民旃【音氊】裘之長【音掌】莫不沮膽挫折逺遁遂乃振旅渾【古本作昆】耶【古本作邪】率其眾以降置五屬國以距胡則長城之內河山之外罕被冦【音菑】於是下詔令減【音檢】戍【音絮】漕寛繇【音遙】役初雖勞苦卒獲其慶【匈奴傳曰匈奴右賢王怨漢奪之河南地而築朔方數冦盜邊及入河南侵擾朔方殺畧吏民甚眾元狩二年春漢使大將軍衞青將六將軍十餘萬人出朔方髙闕右賢王以為漢兵不能至飲酒醉漢兵出塞六七百里夜圍右賢王右賢王大驚脫身逃走精騎往往隨後去漢將軍得右賢王人眾男女萬五千人禆小王十餘人其夏驃騎將軍霍去病復與合騎侯數萬騎出隴西北地二千里過居延攻祁連山得胡首虜三萬餘級禆小王以下十餘人衞青傳曰其秋單于怒昆邪王休屠王居西方為漢所殺虜數萬人欲召誅之昆邪休屠王恐謀降漢漢使驃騎將軍迎之昆邪王殺休屠王並將其眾降漢凡四萬餘人號十萬既至長安天子所以賞賜者數十鉅萬封昆邪王萬戶為漯隂侯封其禆王呼毒尼為下麾侯鷹庇為輝渠侯禽黎為河綦侯大當戸銅離為常樂侯漢已得昆邪則隴西北地河西益少胡冦於是天子嘉驃騎之功曰驃騎將軍去病率師攻匈奴西域昆邪王及厥眾萌鹹相犇率以軍糧接食並將控萬有餘人誅獟悍獲首虜八千餘級降異國之王三十二人戰士不離傷十萬之眾鹹懐集服仍與之勞爰及河塞庶防無患幸旣永綏矣以千七百戶益封驃騎將軍減隴西北地上郡戍卒之半以寛天下之繇】
대부(大夫)가 말하였습니다: 중국(中國)과 변경(邊境)은, 마치 지체(肢體)와 복심(腹心)과 같습니다. 문두의 부(夫)【주음:「夫」는 부】: 근부(肌膚)는 밖에서 춥고, 복장(腹腸)은 안에서 아프니, 안팎이 서로 수고로움은, 서로 돕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입술이 없어지면 곧 이가 시리고, 지체(肢體)가 상하면 마음이 참답(慘怛)【주음: 이 글자는 참】합니다. 그러므로 수족(手足)이 없으면 곧 지체(肢體)가 폐하고, 변경(邊境)이 없으면 곧 내국(內國)이 해를 입습니다. 옛적, 융적(戎狄)이 태왕(太王)을 빈(邠)에서 공격하여, 기(岐)・량(梁)을 넘어 진(秦)과 경(涇)・위(渭)에서 경계를 이루고, 동쪽으로 진(晉)의 육혼(陸渾)에 이르러, 중국(中國)을 침략하고 포학하니, 중국(中國)이 이를 괴로워하였습니다【《흉노전(匈奴傳)》에 말합니다: 하(夏)의 도(道)가 쇠하여 공유(公劉)가 그 직관(稷官)을 잃고, 서융(西戎)에 변하여, 빈(豳)에 읍을 이루었다. 그 후 삼백여 년, 융적(戎狄)이 대왕단보(大王亶父)를 공격하니, 단보(亶父)가 기산(岐山) 아래로 달아나고, 빈(豳) 사람이 모두 단보(亶父)를 따라 읍을 이루어, 주(周)를 만들었다. 유왕(幽王)에 이르러, 총희(寵姬) 포사(褒姒)의 까닭으로 신후(申侯)와 틈이 있으니, 신후(申侯)가 노하여 견융(犬戎)과 함께 유왕(幽王)을 여산(驪山) 아래에서 공격하여 죽이고, 마침내 주(周)의 땅을 취하여, 노획하고 경위(涇渭) 사이에 살아, 중국(中國)을 침략하고 포학(底本 이 글자는 생벽자로 전록 후 분실)하였다. 진양(秦襄)이 주(周)를 구하여, 융(戎)을 쳐서 기(岐)에 이르렀다. 주양왕(周襄王) 때, 융적(戎狄)이 혹 육혼(陸渾)에 살아, 동쪽으로 위(衛)에 이르러, 침략과 도둑질이 특히 심하였다. 진문공(晉文公)이 처음으로 서서 패업(霸業)을 닦으려 하여, 겨우 군사를 일으켜 융적(戎翟)을 쳤다. 이 때에, 진(秦)과 진(晉)이 강국이 되었다. 진문공(晉文公)이 융적(戎翟)을 물리쳐, 하(河) 서쪽 연낙(圁洛) 사이에 살게 하여, 호칭하여 적적(赤翟)・백적(白翟)이라 하였고, 진목공(秦穆公)은 유여(由余)를 얻어, 서융(西戎) 팔국이 복종하였다. 여러 융(戎)이 각각 계곡(谿谷)에 흩어져, 스스로 군장(君長)이 있어, 왕왕 모이는 자가 백여 융(戎)이었으나, 그러나 서로 하나가 될 수 없었다. 그 후 천여 년, 묵돌(冒頓)에 이르러 흉노(匈奴)가 가장 강대하여, 북이(北夷)를 모두 복종시키고 남쪽으로 제하(諸夏)와 적국이 되었다.】. 지금, 흉노(匈奴)가 잠식하여 안으로 침범하니, 먼 자도 그 고통을 떠나지【주음:「離」는 거성】 못하고, 오직 변경(邊境)이 그 패함을 입습니다(底本은 「防」). 《시경(詩)》에 말합니다: 근심하는 마음이 참참(慘慘)하여, 나라가 포학함을 생각하네. 정벌하고 방비하지 않으면 곧 구해(寇害, 底本 이 글자는 생벽자로 전록 후 분실)가 그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선제(先帝)가 의병(義兵)을 일으켜 이로써 그 죄를 정벌하여, 마침내 기련(祁連)・천산(天山)을 깨고, 그 무리를 흩어, 북쪽으로 약탈하여 용성(龍城)에 이르고, 크게 흉노(匈奴)를 포위하니, 선우(單于)【주음:「單」는 선】가 혼을 잃고, 겨우 몸으로 면하였습니다. 달아남을 타서 패주를 쫓아, 목을 베고 포로를 잡기를 십여만, 활을 당기는(底本 이 글자는 생벽자로 전록 후 분실) 백성과 전구(旃裘)의 우두머리【주음:「長」는 장】가 저담(沮膽)하지 않는 자가 없어, 좌절하여 멀리 달아났습니다. 마침내 군사를 진동하여, 혼야(渾耶)【고본은 「昆」/「邪」로 씀】가 그 무리를 거느려 항복하였습니다. 이에 조(詔)를 내려 수(戍)【주음:「戍」는 수】와 조(漕)를 줄이【주음:「減」는 검】고, 요역(繇役)【주음:「繇」는 요】을 넓혔습니다. 처음에는 비록 수고로웠으나, 마침내 그 경사를 얻었습니다【《흉노전(匈奴傳)》에 말합니다: 흉노(匈奴)의 우현왕(右賢王)이 한(漢)이 그 하남(河南) 땅을 빼앗아 삭방(朔方)을 쌓은 것을 원망하여, 여러 번 변경을 침략하고, 하남(河南)에 들어와 삭방(朔方)을 침략하여, 관리와 백성을 죽이고 약탈함이 심히 많았다. 원수(元狩) 이년 봄, 한(漢)이 대장군(大將軍) 위청(衛青)으로 하여금 여섯 장군 십여만 명을 거느려 삭방고궐(朔方高闕)을 나가게 하였다. 우현왕(右賢王)은 한(漢) 군사가 이를 수 없다고 여겨, 술을 마시고 취하였다. 한(漢) 군사가 새(塞)를 나가기를 육칠백 리, 밤에 우현왕(右賢王)을 포위하였다. 우현왕(右賢王)이 크게 놀라, 몸을 빼어 달아나고, 정기(精騎)가 왕왕 뒤를 따라 갔다. 한(漢) 장군이 우현왕(右賢王)의 인중(人衆) 남녀 만오천 명과 비소왕(裨小王) 십여 명을 얻었다. 그 여름, 표기장군(驃騎將軍) 곽거병(霍去病)이 다시 합기후(合騎侯)와 함께 수만 기로 농서(隴西)・북지(北地)를 나가 이천 리, 거연(居延)을 지나, 기련산(祁連山)을 공격하여, 호(胡)의 수로(首虜) 삼만여 급과 비소왕(裨小王) 이하 십여 명을 얻었다. 《위청전(衛青傳)》에 말합니다: 그 가을, 선우(單于)가 곤야왕(昆邪王)과 휴도왕(休屠王)이 서방에 살면서 한(漢)에게 죽고 잡힌 수만 명을 노하여, 불러 주살하려 하였다. 곤야(昆邪)・휴도왕(休屠王)이 두려워하여, 한(漢)에 항복하려 꾀하였다. 한(漢)이 표기장군(驃騎將軍)으로 하여금 이를 맞이하게 하였다. 곤야왕(昆邪王)이 휴도왕(休屠王)을 죽이고 그 무리를 합하여 거느려 한(漢)에 항복하니, 모두 사만여 명이며, 호칭하여 십만이라 하였다. 이미 장안(長安)에 이르니, 천자가 상으로 내린 바가 수십 거만(巨萬)이요, 곤야왕(昆邪王)을 봉하여 만 호 납음후(漯陰侯)로 삼고, 그 비왕(裨王) 호독니(呼毒尼)를 봉하여 하휘후(下麾侯)로 삼고, 응비(鷹庇)를 휘거후(輝渠侯)로 삼고, 금려(禽黎)를 하기후(河綦侯)로 삼고, 대당호(大當戶) 동리(銅離)를 상락후(常樂侯)로 삼았다. 한(漢)이 이미 곤야(昆邪)를 얻으니, 곧 농서(隴西)・북지(北地)・하서(河西)에 호구(胡寇)가 더욱 적어졌다. 이에 천자가 표기(驃騎)의 공을 아름답게 여겨 말합니다: 표기장군(驃騎將軍) 거병(去病)이 군사를 거느려 흉노(匈奴)와 서역(西域)을 공격하니, 곤야왕(昆邪王)과 그 무리가 모두 서로 달려 따르며, 군량으로 음식을 대하고, 장차 활 당기는 자 만여 명을 합하여, 요한(獟悍)을 주살하고, 수로(首虜) 팔천여 급을 얻고, 다른 나라의 왕 삼십이 명을 항복하게 하였으며, 전사(戰士)가 상처를 입지 않고, 십만의 무리가 모두 품고 모여 복종하여, 계속하여 이와 함께 수고로워하며, 이에 하새(河塞)에 이르니, 서기(庶幾, 底本은 「庶防」)하여 근심이 없고, 다행히 이미 영원히 편안하였다. 천칠백 호로 표기장군(驃騎將軍)의 봉읍을 더하고, 농서(隴西)・북지(北地)・상군(上郡)의 수졸(戍卒)의 절반을 줄여 이로써 천하의 요(繇)를 넓혔다.】.
文學曰周累世積徳天下莫不願以為君故不勞而王【去聲】恩施由近及逺而蠻貊自至【蕭綺曰武王資聖智而克伐觀天命以行誅不驅熊羆之師不勞三戰之旅一戎衣而定王業慿神力而協符瑞至於成王制禮崇樂姬徳方盛營洛邑而居九鼎寢刑廟堂萬國來賔雖大禹之隆夏績帝乙之興殷道未足方焉故能繼夏稷之先基紹公劉之聖徳文武之跡不墜故大稚稱為令徳播聲教於八荒之外流仁惠於九圍之表神智之所綏化遐邇之所來服靡不越嶽航海交賮於遼險之路瑰寳殊恠之物充於王庭靈禽異獸之類遊集林蘌詭麗殊用之物鐫斵異於人功方冊未之或載篆素或所不紀及乎王人風舉之使直指逾於日月之陲窮昬明之際覘風星以望路慿雲波而逺逝所謂道通幽微徳被冥昧者也】秦任戰勝以兼天下小海內而貪胡越之地使恬撃胡取河南以為新秦而亡其故秦築長城以守胡而亡其所守【王恢曰昔者秦穆公都雍郊地方三百里攻取西戎闢地千里並國十二隴西北地是也其後防恬為秦侵胡以河為境累石為城積木為寨匈奴不敢飲馬北河置烽燧然後敢牧馬應劭曰秦始皇遣防恬攘卻匈奴得其河南造陽之北千里地甚好於是築為城郭徙民充之名曰新秦四方錯雜奢儉不同今俗名新富貴者為新秦由是名也人間訓曰忠臣者務崇君之徳諂臣者務廣君之地】往者兵革亟動師旅數【音朔】起長城之北還【音旋】車遺鏃相望及李廣利等輕計還馬足莫不寒心雖得渾耶【古作昆邪】不能更所亡此非社稷之至計也【應劭曰更償也言所得不足以償其所失也李廣傳曰天漢二年秋貳師將軍李廣利將三萬騎撃匈奴右賢王於祈連天山而使陵將其射士歩兵五千人出居延北可千餘里欲以分匈奴兵毋令專走貳師也陵既至期還而單于以兵八萬圍撃陵軍陵軍五千人兵矢既盡士死者過半而所殺傷匈奴亦萬餘人且引且戰連鬪八日還未到居延百餘里匈奴遮狹絶道陵食乏而救兵不到虜急擊招降陵陵曰無面目報陛下遂降匈奴其兵盡沒餘亡散得歸漢者四百餘人】
문학(文學)이 말하였습니다: 주(周)는 여러 세대 덕을 쌓아, 천하가 바라지 않는 자 없이 이로써 임금으로 삼으니, 그러므로 수고하지 않고 왕【주음:「王」는 거성】이 되었으며, 은혜의 베풂이 가까움에서 멂에 미쳐 만맥(蠻貊)이 스스로 왔습니다【소기(蕭綺)가 말합니다: 무왕(武王)이 성지(聖智)를 빌려 능히 정벌하고, 천명(天命)을 보아 이로써 주살을 행하여, 곰과 범의 군사를 몰지 않고, 세 번 싸우는 군사를 수고롭게 하지 않으며, 한 번 융의(戎衣)하여 왕업(王業)을 정하고, 신력(神力)에 의지하여 부서(符瑞)에 협하였다. 성왕(成王)에 이르러 예(禮)를 제하고 악(樂)을 숭상하여, 희덕(姬德)이 바야흐로 성하여, 낙읍(洛邑)을 짓고 구정(九鼎)에 거하며, 형벌을 묘당(廟堂)에 놓아두니, 만국(萬國)이 와서 빈(賓)하였다. 비록 대우(大禹)가 하(夏)의 공적을 융성하게 하고, 제을(帝乙)이 은(殷)의 도(道)를 일으켰다 해도, 비할 바가 못 된다. 능히 후직(后稷)의 먼 기초를 잇고, 공유(公劉)의 성덕(聖德)을 이은 까닭은, 문무(文武)의 자취가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대아(大雅)》가 영덕(令德)이라 칭한다. 성교(聲教)를 팔황(八荒) 밖에 퍼뜨리고, 인혜(仁惠)를 구위(九圍) 밖에 흘리니, 신지(神智)가 안화(綏化)하는 곳, 하이(遐邇)가 와서 복종하는 곳은, 산악을 넘고 바다를 건너지 않는 곳이 없고, 요험(遼險)의 길에 진(贐)을 주고받으며, 괴보(瑰寶)와 기괴한 물건은 왕정(王庭)에 가득하고, 영금(靈禽)과 이수(異獸)의 무리는 임욱(林蘌)에 놀며 모이고, 괴리(詭麗)하고 특별한 쓰임의 물건은 사람의 공(功)과 다르게 새겨지고 깎였으며, 방책(方冊)이 아직 이를 싣지 않고, 전소(篆素)가 혹 기록하지 않았다. 왕인(王人)과 풍거(風擧)의 사자는, 곧바로 일월(日月)의 변두리를 넘어, 혼명(昏明)의 사이를 다하여, 풍성(風星)을 엿보아 이로써 길을 바라보고, 운파(雲波)에 의지하여 멀리 가니, 이른바 도(道)가 유미(幽微)에 통하고 덕(德)이 명매(冥昧)에 미친다.】. 진(秦)은 전승(戰勝)을 맡겨 이로써 천하를 겸하고, 해내(海內)를 작게 여겨 호월(胡越)의 땅을 탐하여, 몽염(蒙恬, 底本 이 글자는 생벽자로 전록 후 분실)으로 하여금 호(胡)를 치게 하여, 하남(河南)을 취하여 이로써 신진(新秦)을 삼고 그 옛 진(秦)을 잃었으며, 장성(長城)을 쌓아 이로써 호(胡)를 지키고 그 지키는 바를 잃었습니다【왕괴(王恢)가 말합니다: 옛적, 진목공(秦穆公)이 옹교(雍郊)에 도읍하니, 땅이 삼백 리였고, 서융(西戎)을 공격하여, 땅을 열기를 천 리, 나라를 합하기를 열두니, 농서(隴西)・북지(北地)가 곧 이것이다. 그 후, 몽염(蒙恬, 底本은 「防恬」)이 진(秦)을 위하여 호(胡)를 침범하여, 하(河)를 경계로 삼고, 돌을 쌓아 성을 삼고, 나무를 쌓아 채(寨)를 삼으니, 흉노(匈奴)가 감히 말을 북하(北河)에 먹이지 못하고, 봉수(烽燧)를 설치한 뒤에야 감히 말을 방목하였다. 응소(應劭)가 말합니다: 진시황(秦始皇)이 몽염(蒙恬)을 보내어 흉노(匈奴)를 물리치게 하여, 그 하남(河南)과 조양(造陽)의 북쪽 천 리를 얻으니, 땅이 심히 좋아, 이에 쌓아 성곽(城郭)으로 삼고, 백성을 옮겨 이를 채우니, 이름하여 신진(新秦)이라 하였다. 사방이 섞여 있어, 사치와 검약이 같지 않으니, 지금 속으로 새로 부귀한 자를 신진(新秦)이라 이름하는 것은, 이로 말미암아 이름을 얻었다. 〈인간훈(人間訓)〉에 말합니다: 충신은 임금의 덕을 높이기를 힘쓰고, 아신(諂臣)은 임금의 땅을 넓히기를 힘쓴다.】. 옛날, 병혁(兵革)이 자주 움직이고, 사려(師旅)가 여러 번【주음:「數」는 삭】 일어나, 장성(長城)의 북쪽에는 돌아오는 수레와 버린 화살촉이 서로 바라보았습니다. 이광리(李廣利) 등이 가벼운 계책으로 돌아옴에 이르러, 말발굽이 서려하지 않는 자가 없어, 혼야(渾耶)【옛날 「昆邪」로 씀】를 얻어도 잃은 것을 갚지 못하였습니다. 이는 사직(社稷)의 지극한 계책이 아닙니다【응소(應劭)가 말합니다: 갱(更)은 곧 상(償)이니, 이는 얻은 것이 그 잃은 것을 갚기에 족하지 않음을 말한다. 《이광전(李廣傳)》에 말합니다: 천한(天漢) 이년 가을, 이사장군(貳師將軍) 이광리(李廣利)가 삼만 기를 거느려 흉노(匈奴)의 우현왕(右賢王)을 기련천산(祁連天山)에서 치고, 능(陵)으로 하여금 그 사사(射士)와 보병(步兵) 오천 명을 거느려 거연(居延)을 나가 북쪽으로 천여 리를 가게 하여, 이로써 흉노(匈奴)의 군사를 나누어, 오로지 이사(貳師)를 달아나게 하지 않으려 하였다. 능(陵)이 이미 이르러 기한에 돌아오니, 선우(單于)가 군사 팔만으로 능(陵)의 군사를 포위하여 쳤다. 능(陵)의 군사 오천 명은, 군사와 화살이 이미 다하고, 선비가 죽은 자가 절반을 넘었으나, 죽이고 상한 흉노(匈奴)도 또한 만여 명이었다. 나아가며 싸우고, 연속하여 싸우기를 팔 일, 돌아와 거연(居延)에 이르지 못한 것이 백여 리, 흉노(匈奴)가 좁은 곳을 막고 길을 끊었다. 능(陵)이 양식이 궁핍하고 구원병이 이르지 않으니, 적이 급히 쳐서 능(陵)에게 항복을 권하였다. 능(陵)이 말합니다: 낯이 없어 폐하에게 보답하리라. 마침내 흉노(匈奴)에 항복하였다. 그 군사가 모두 몰하고, 남은 자가 흩어져 한(漢)에 돌아온 자가 사백여 명이었다.】.
伐功第四十五
벌공제사십오(伐功第四十五)
大夫曰齊桓公越燕伐山戎破孤竹殘令【音零】支【古本作離枝令離聲相近也】趙武靈王逾句注過代谷畧滅林胡樓煩燕襲【音集】走東胡闢【音闢】地千里度遼東而攻朝鮮【齊世家曰桓公二十三年山戎伐燕燕告急於齊齊桓公救燕遂伐山戎至於孤竹而還燕莊公遂送桓公入齊境桓公曰非天子諸侯相送不出境吾不可以無禮於燕於是分溝割燕君所至與燕命燕君復修召公之政納貢於周如成康之時諸侯聞之皆從齊齊語曰桓公遂北伐山戎刜令支斬孤竹而南歸海濵諸侯莫不來服趙世家曰武靈王二十年王略中山地至寜葭西略胡地至榆中林胡王獻馬歸使樓緩之秦仇液之韓王賁之楚富丁之魏趙爵之齊代相趙固主胡致其兵二十一年攻中山趙祒為右軍許鈞為左軍公子章為中軍王並將之牛翦將車騎趙希並將胡代趙與之陘合軍曲陽攻取丹丘華陽鴟之塞王軍取鄗石邑封龍東垣中山獻四邑和王許之罷兵二十三年攻中山二十六年復攻中山攘地北至燕代西至雲中九原惠文王二年主父行新北遂出代西遇樓煩王於西河而致其兵朝鮮傳曰朝鮮王滿者故燕人也自始全燕時嘗畧屬真番朝鮮為置吏築鄣塞】防公為秦擊走匈奴若鷙【音至】鳥之追群雀匈奴勢慴【音疊】不敢南面而望十餘年【慴懼也秦紀曰始皇三十三年防恬於西北斥遂匈奴單于不勝秦北徙盡收河南地並河以東屬之隂山因河為塞築長城因邊山險塹谿谷可繕者治之起臨洮至遼東萬餘里始皇又使防恬渡河取髙闕陶山北假中築亭鄣以逐戎人恬居上郡十餘年威振匈奴】及其後防公死而諸侯叛秦中國擾亂匈奴紛紛乃敢復為邊冦【匈奴傳曰匈奴單于曰頭曼頭曼不勝秦北徙十有餘年而防恬死諸侯叛秦中國擾亂諸秦所遣戍邊者皆復去於是匈奴得寛復稍度河南與中國界於故塞單于有太子名曰冐頓東襲擊東胡東胡初輕冐頓不為備及冐頓以兵至大破滅東胡王虜其民眾畜產既歸西擊走月氏南並樓煩白羊河南王悉復收秦所使防恬所奪匈奴地與漢關故河南塞至朝膚施遂侵燕代是時漢方與項羽相距中國罷於兵革以故冐頓得自強控之士三十餘萬匈奴最強大盡服從北夷而南與中夏為敵國】夫【音扶】以小國燕趙尚猶卻冦虜以廣地今以漢國之大士民之力非特齊桓之眾燕趙之師也然匈奴乆未服者群臣不併力上下未諧故也
대부(大夫)가 말하였습니다: 제환공(齊桓公)은 연(燕)을 넘어 산융(山戎)을 치고, 고죽(孤竹)을 깨며, 영지(令支)【주음:「令」는 령. 고본은 「離枝」로 쓰니, 령・리는 소리가 가깝다.】을 잔멸하였습니다. 조무영왕(趙武靈王)은 구주(句注)를 넘고, 대곡(代谷)을 지나, 임호(林胡)・루번(樓煩)을 약탈하여 멸하였습니다. 연(燕)은 습격【주음:「襲」는 습】하여 동호(東胡)를 달아나게 하고, 땅을 열기【주음:「辟」는 개벽의 벽】를 천 리, 요동(遼東)을 건너 조선(朝鮮)을 공격하였습니다【《제세가(齊世家)》에 말합니다: 환공(桓公) 이십삼 년, 산융(山戎)이 연(燕)을 치니, 연(燕)이 급함을 제(齊)에 알렸다. 제환공(齊桓公)이 연(燕)을 구하여, 마침내 산융(山戎)을 쳐서, 고죽(孤竹)에 이르고 돌아왔다. 연장공(燕莊公)이 마침내 환공(桓公)을 배웅하여 제(齊) 경계에 들어오니, 환공(桓公)이 말합니다: 천자가 아니면, 제후가 서로 배움에 경계를 나가지 않는데, 내가 이로써 연(燕)에 예 없을 수 없다. 이에 도랑을 나누어 연군(燕君)이 이른 곳을 베어 연(燕)에 주고, 연군(燕君)에게 명하여 다시 소공(召公)의 정치를 닦아, 성강(成康)의 때와 같이 주(周)에 공물을 바치게 하였다. 제후가 이를 듣고 모두 제(齊)를 따랐다. 《제어(齊語)》에 말합니다: 환공(桓公)이 마침내 북쪽으로 산융(山戎)을 쳐서, 영지(令支)를 베고, 고죽(孤竹)을 베어 남쪽으로 돌아오니, 해빈(海濱)의 제후가 와서 복종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조세가(趙世家)》에 말합니다: 무영왕(武靈王) 이십 년, 왕이 중산(中山)의 땅을 약탈하여 영가(寧葭)에 이르고, 서쪽으로 호(胡)의 땅을 약탈하여 유중(榆中)에 이르니, 임호왕(林胡王)이 말을 바쳤다. 돌아와, 누완(樓緩)을 진(秦)에 보내고, 구액(仇液)을 한(韓)에내며, 왕분(王賁)을 초(楚)에 보내고, 부정(富丁)을 위(魏)에내며, 조작(趙爵)을 제(齊)에 보내고, 대상(代相) 조고(趙固)가 호(胡)를 주관하여, 그 군사를 이끌었다. 이십일 년에 중산(中山)을 공격하니, 조도(趙祒)가 우군(右軍)이 되고, 허균(許鈞)이 좌군(左軍)이 되며, 공자장(公子章)이 중군(中軍)이 되고, 왕이 함께 이를 거느렸으며, 우전(牛翦)이 거기(車騎)를 거느리고, 조희(趙希)가 함께 호(胡)・대(代)를 거느리며, 조(趙)가 이와 형(陘)하여, 곡양(曲陽)에 군사를 합하여, 단구(丹丘)・화양(華陽)・치(鴟)의 새(塞)를 공격하여 취하였다. 왕의 군사가 호(鄗)・석읍(石邑)・봉룡(封龍)・동원(東垣)을 취하니, 중산(中山)이 네 읍을 바쳐 화해하니, 왕이 이를 허락하고, 군사를 그쳤다. 이십삼 년에 중산(中山)을 공격하고, 이십육 년에 다시 중산(中山)을 공격하여, 땅을 물리치기를 북쪽으로 연대(燕代)에 이르고, 서쪽으로 운중(雲中)・구원(九原)에 이르렀다. 혜문왕(惠文王) 이 년, 주부(主父)가 새 땅을 행하여, 북쪽으로 곧 대(代)를 나가고, 서쪽으로 누번왕(樓煩王)을 서하(西河)에서 만나 그 군사를 이끌었다. 《조선전(朝鮮傳)》에 말합니다: 조선왕(朝鮮王) 만(滿)은, 옛 연(燕) 사람이다. 처음 온전한 연(燕) 때부터 일찍이 약탈하여 진번(真番)・조선(朝鮮)에 속하게 하고, 관리를 두고 장새(鄣塞)를 쌓게 하였다.】. 몽공(蒙公, 底本은 「防公」)이 진(秦)을 위하여 흉노(匈奴)를 쳐서 달아나게 함이, 맹금(鷙鳥)【주음:「鷙」는 치】이 참새 떼를 쫓음과 같아, 흉노(匈奴)의 형세가 섭(慴)【주음:「慴」는 첩】하여, 감히 남쪽을 향하여 바라보지 못하기를 십여 년이었습니다【섭(慴)은 곧 두려움이다. 《진기(秦紀)》에 말합니다: 시황(始皇) 삼십삼 년, 몽염(蒙恬, 底本은 「防恬」)이 서북에서 흉노(匈奴)을 축축(斥逐)하니, 선우(單于)가 진(秦)을 이기지 못하여, 북쪽으로 옮겼다. 하남(河南)의 땅을 모두 거두고, 하(河)를 겸하여 이동(以東)을 음산(陰山)에 속하게 하며, 하(河)에 의지하여 새(塞)를 삼고, 장성(長城)을 쌓으며, 변산(邊山)의 험준한 골짜기와 계곡 중 수선할 수 있는 곳에 의지하여 이를 다스려, 임도(臨洮)에서 일어나 요동(遼東)에 이르기를 만여 리였다. 시황(始皇)이 또 몽염(蒙恬)으로 하여금 하(河)를 건너 고궐(高闕)・도산(陶山)・북가중(北假中)을 취하게 하여, 정장(亭鄣)을 쌓아 이로써 융인(戎人)을 쫓게 하였다. 염(恬)이 상군(上郡)에 산 것이 십여 년이니, 위엄이 흉노(匈奴)에 떨쳤다.】. 그 후 몽공(蒙公, 底本은 「防公」)이 죽고 제후가 진(秦)을 배반함에 이르러, 중국이 어지럽고 흉노(匈奴)가 분분하여, 겨우 감히 다시 변경의 적이 되었습니다【《흉노전(匈奴傳)》에 말합니다: 흉노(匈奴)의 선우(單于)를 두만(頭曼)이라 한다. 두만(頭曼)이 진(秦)을 이기지 못하여, 북쪽으로 옮기기를 십여 년이었는데, 몽염(蒙恬, 底本은 「防恬」)이 죽고, 제후가 진(秦)을 배반하고, 중국이 어지러워지니, 여러 진(秦)이 보낸 변경을 지키는 자가 모두 다시 떠나니, 이에 흉노(匈奴)가 여유를 얻어, 다시 점차 하남(河南)을 건너, 중국과 옛 새(塞)에서 경계하였다. 선우(單于)에게 태자(太子)가 있어 이름을 묵돌(冒頓)이라 하니, 동쪽으로 동호(東胡)를 습격하였다. 동호(東胡)가 처음에 묵돌(冒頓)을 가볍게 여겨, 방비를 하지 않았는데, 묵돌(冒頓)이 군사로 이르러, 크게 동호왕(東胡王)을 깨어 멸하고, 그 백성과 축산을 노획하였다. 이미 돌아와, 서쪽으로 월씨(月氏)를 쳐서 달아나게 하고, 남쪽으로 누번(樓煩)・백양하남왕(白羊河南王)을 합하여, 진(秦)이 몽염(蒙恬)으로 하여금 빼앗게 한 흉노(匈奴)의 땅을 모두 다시 거두고, 한(漢)과 옛 하남새(河南塞)에 관하여, 조나(朝那, 底本 이 글자는 생벽자로 전록 후 분실)・부시(膚施)에 이르러, 마침내 연대(燕代)를 침범하였다. 이 때, 한(漢)은 바야흐로 항우(項羽)와 서로 거리를 두고, 중국이 병혁(兵革)에 지쳐, 이로 말미암아 묵돌(冒頓)이 스스로 강할 수 있었으니, 활 당기는 선비가 삼십여만이었다. 흉노(匈奴)가 가장 강대하여, 북이(北夷)를 모두 복종시키고 남쪽으로 중하(中夏)와 적국이 되었다.】. 문두의 부(夫)【주음:「夫」는 부】: 작은 나라 연(燕)과 조(趙)로도 오히려 구로(寇虜)를 물리쳐 이로써 땅을 넓혔거늘, 지금 한(漢) 나라의 크기와 사민(士民)의 힘으로는, 오직 제환(齊桓)의 무리와 연조(燕趙)의 군사만이 아니거늘, 그러나 흉노(匈奴)가 오래도록 아직 복종하지 않는 것은, 이는 여러 신하가 힘을 합하지 않고, 상하가 아직 화합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文學曰古之用師非貪壤土之利救民之患也【銓言訓曰夫為地戰者不能成其王為身戰者不能立其功舉事以為人者眾助之舉事以自為者眾去之眾之所助雖弱必強眾之所去雖大必亡】民思之者若旱之望雨【孫卿曰仁者愛人愛人故惡人之害之也義者循理循理故惡人之亂之也彼兵者所以禁暴除害也非爭奪也故仁者之兵所存者神所過者化若時雨之降莫不說喜】簞食壺漿以迎王師故憂人之患者民一心而歸之湯武是也【兵略曰得道之兵車不發軔騎不被鞅鼓不振塵旗不解卷甲不離矢刃不嘗血朝不易位賈不去肆農不離野招義而責之大國必朝小國必下因民之慾乗民之力而為之去殘除賊也故同利相死同情相成同欲相助順道而動天下為向因民而慮天下為鬪】不愛民之死力盡而潰叛者秦王是也【兵略曰殺無罪之民而養無義之君害莫大焉殫天下之財而贍一人之慾禍莫深焉故至於攘天下害百姓肆一人之邪而長海內之禍此天之所以誅也民之所以仇也】孟子曰君不鄉【音向】道不由仁義而為之強戰雖克必亡此中國所以擾亂非防恬死而諸侯叛秦【律書曰秦二世宿軍無用之地連兵於邊陲力非弱也結怨匈奴絓禍於越勢非寡也及其威盡勢極閭巷之人為敵國咎生窮武之不知足甘得之心不息也】昔周室盛也越裳氏來獻百蠻致貢其後周衰諸侯力征蠻貊分散各有聚黨莫能相一是以燕趙能得意焉【匈奴傳曰諸戎分散谿谷自有君長往往而聚者百有餘戎然莫能相壹其後燕有賢將秦開為質於胡胡甚信之歸而襲破東胡東胡卻千餘里燕乃築長城自造陽至襄平置上谷漁陽右北平遼西遼東郡以距胡於是趙武靈王亦變俗胡服習騎射北破林胡樓煩自代並隂山下至髙闕為塞而置雲中鴈門代郡及李牧為將匈奴不敢近趙邊】其後匈奴稍強蠶食諸侯故破走月支氏因兵威徙小國引弓之民併為一家一意同力故難制也前君為先帝畫匈奴之冊【通作防】兵據西域奪之便勢之地以其變以漢之強攻於匈奴之眾若以強弩潰癰疽越之禽吳豈足道哉【王恢曰夫匈奴可以力服也不可以仁畜也今以中國之大萬倍之資遣百分之一以攻匈奴譬如以千石之弩射癰潰疽必不留行也】上以為然用君之義聽君之計雖越王之任種蠡【音禮】不過以搜粟都尉為御史大夫持政十有餘年未見種蠡【音禮】之功而見靡弊之効匈奴不為加俛【音免】而百姓黎民以敝矣是君之冊【通作防】不能弱匈奴而反衰中國也善為計者固若此乎【蔡邕曰夫邊陲之患手足之疥掻中國之困胷背之瘭疽也】
문학(文學)이 말하였습니다: 옛날 군사를 씀은, 양토(壤土)의 이익을 탐하는 것이 아니요, 이는 백성의 근심을 구하는 것입니다【〈전언훈(詮言訓)〉에 말합니다: 땅을 위하여 싸우는 자는 그 왕을 이룰 수 없고, 몸을 위하여 싸우는 자는 그 공을 세울 수 없다. 일을 들어 이로써 남을 위하면 무리가 이를 돕고, 일을 들어 이로써 스스로 하면 무리가 이를 떠난다. 무리가 돕는 곳은, 비록 약해도 반드시 강하고, 무리가 떠나는 곳은, 비록 커도 반드시 망한다.】. 백성이 이를 생각함이, 가뭄이 비를 바람과 같아【손경(孫卿)이 말합니다: 인자(仁者)는 사람을 사랑하니, 사람을 사랑하므로 남이 이를 해하는 것을 미워한다. 의자(義者)는 이치를 따르니, 이치를 따르므로 남이 이를 어지럽히는 것을 미워한다. 저 군사는 이로써 포(暴)를 금하고 해를 없애는 데 쓰는 것이지, 다투어 빼앗음이 아니다. 그러므로 인자(仁者)의 군사는, 머무는 곳은 신(神)하고, 지나는 곳은 화(化)하니, 때비가 내림과 같아, 기뻐하지 않는 자가 없다.】, 단식호장(簞食壺漿)으로 왕사(王師)를 맞이합니다. 그러므로 남의 근심을 근심하는 자는, 백성이 한마음으로 이에게 돌아가니, 탕무(湯武)가 곧 이것입니다【〈병략(兵略)〉에 말합니다: 도(道)를 얻은 군사는, 수레가 인(軔)을 발하지 않고, 기병이 멍에를 메지 않으며, 북이 티끌을 떨지 않고, 깃발이 감김을 풀지 않으며, 갑옷이 화살을 떠나지 않고, 칼날이 피를 맛보지 않으며, 조정이 자리를 바꾸지 않고, 장사치가 가게를 떠나지 않으며, 농부가 들을 떠나지 않고, 의(義)를 불러 이를 꾸짖으면, 대국은 반드시 조(朝)하고, 소국은 반드시 아래로 한다. 백성의 욕심에 의지하고, 백성의 힘을 타서 이를 위하여 잔(殘)을 버리고 적(賊)을 없앤다. 그러므로 이익을 같이하면 서로 죽고, 정을 같이하면 서로 이루며, 욕심을 같이하면 서로 돕는다. 도(道)를 따라 움직이면, 천하가 이를 향하고, 백성에 의지하여 꾀하면, 천하가 이를 위해 싸운다.】. 백성의 죽음을 사랑하지 않아, 힘이 다하여 무너지고 배반하는 자는, 진왕(秦王)이 곧 이것입니다【〈병략(兵略)〉에 말합니다: 죄 없는 백성을 죽여 의 없는 임금을 기르는 것은, 해가 이보다 큰 것이 없고, 천하의 재물을 다하여 이로써 한 사람의 욕심을 넉넉하게 하는 것은, 화가 이보다 깊은 것이 없다. 그러므로 천하를 빼앗고 백성을 해하여, 한 사람의 사(邪)를 마음대로 하고 해내(海內)의 화를 기르는 데 이르는 것은, 이는 하늘이 주살하는 까닭이요, 백성이 원수로 여기는 까닭이다.】. 맹자(孟子)가 말합니다: 임금이 도(道)를 향하지【주음:「鄉」는 향】 않고, 인의(仁義)를 따르지 않고서 이를 위하여 강하게 싸우면, 비록 이겨도 반드시 망합니다. 이는 중국이 어지러워지는 까닭이지, 몽염(蒙恬, 底本은 「防恬」)이 죽고 제후가 진(秦)을 배반한 것이 아닙니다【《율서(律書)》에 말합니다: 진이세(秦二世)가 군사를 쓸모없는 땅에 주둔하고, 변수(邊陲)에 군사를 이으니, 힘이 약한 것이 아니다. 흉노(匈奴)와 원한을 맺고, 월(越)에 화를 걸으니, 형세가 적은 것이 아니다. 그 위엄이 다하고 형세가 극에 이르러, 여항(閭巷)의 사람이 적국이 되었다. 허물은 궁무(窮武)가 만족을 모르고, 얻음을 달게 여기는 마음이 그치지 않음에서 생겼다.】. 옛적, 주실(周室)이 성하였을 때, 월상씨(越裳氏)가 와서 바치고, 백만(百蠻)이 공물을 이르렀습니다. 그 후 주(周)가 쇠하여, 제후가 힘으로 정벌하고, 만맥(蠻貊)이 흩어져, 각각 모인 무리가 있어, 서로 하나가 될 수 없었으니, 이로 말미암아 연(燕)과 조(趙)가 뜻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흉노전(匈奴傳)》에 말합니다: 여러 융(戎)이 계곡에 흩어져, 스스로 군장(君長)이 있어, 왕왕 모이는 자가 백여 융(戎)이었으나, 그러나 서로 하나가 될 수 없었다. 그 후, 연(燕)에 현장(賢將) 진개(秦開)가 있어 호(胡)에 볼모로 있으니, 호(胡)가 심히 이를 믿으니, 돌아와 동호(東胡)를 습격하여 깨니, 동호(東胡)가 물러나기를 천여 리였다. 연(燕)이 곧 장성(長城)을 쌓아 조양(造陽)에서 양평(襄平)에 이르고, 상곡(上谷)・어양(漁陽)・우북평(右北平)・요서(遼西)・요동(遼東)의 군(郡)을 두어 이로써 호(胡)를 막았다. 이에 조무영왕(趙武靈王)도 또한 풍속을 바꾸어 호복(胡服)하고, 기사(騎射)를 익혀, 북쪽으로 임호(林胡)・누번(樓煩)을 깨고, 대(代)에서 음산(陰山)을 합하여 내려 고궐(高闕)에 이르러 새(塞)를 삼고, 운중(雲中)・안문(雁門)・대군(代郡)을 두었다. 이목(李牧)이 장수가 됨에 이르러, 흉노(匈奴)가 감히 조(趙)의 변경에 가까이 가지 못하였다.】. 그 후 흉노(匈奴)가 점차 강하여, 제후를 잠식하고, 월지씨(月支氏)를 깨어 달아나게 한 까닭은, 병위(兵威)에 의지하여 작은 나라를 옮겨, 활을 당기는 백성이 함께 한 집이 되어, 한 뜻으로 힘을 같이하였으니, 그러므로 제어하기 어렵습니다. 앞선 때, 그대가 선제(先帝)를 위하여 흉노(匈奴)의 계책을 그려【주: 底本 「册」 아래 원주 「防과 통함」, 「防」은 「策」의 오자】, 군사가 서역(西域)을 의지하고, 편리한 형세의 땅을 빼앗아 이로써 그 변(變)을 타고(底本 이 글자는 생벽자로 전록 후 분실, 문의에 따라 마땅히 「乘」), 한(漢)의 강함으로 흉노(匈奴)의 무리를 공격하면, 마치 강한 쇠뇌로 옹저(癰疽)를 궤함과 같아, 월(越)이 오(吳)를 사로잡은 것이 어찌 말할 만하겠습니까【왕괴(王恢)가 말합니다: 흉노(匈奴)는 힘으로써 복종시킬 수 있고, 인(仁)으로써 기를 수 없다. 지금, 중국의 크기와 만 배의 자본으로, 백분의 일을 보내어 이로써 흉노(匈奴)를 공격하면, 비유하자면 천 석의 쇠뇌로 곪아터진 저(疽)를 쏘는 것과 같아, 반드시 행함을 머물지 않는다.】. 위가 이를 옳다 하여, 그대의 의(義)를 쓰고, 그대의 계책을 들었으니, 월왕(越王)이 종(種)과 리(蠡)【주음:「蠡」는 려】를 맡긴 것이라 해도 이를 지나지 않습니다. 수속도위(搜粟都尉)를 어사대부(御史大夫)로 삼아, 정치를 잡기를 십여 년이나, 종(種)과 리(蠡)【주음:「蠡」는 려】의 공을 보지 못하고 미폐(靡弊)의 효과를 보았으며, 흉노(匈奴)가 더욱 굽히지【주음:「俛」는 면】 않았는데 백성과 여민(黎民)이 이미 피폐하였습니다. 이는 그대의 계책【상동, 底本 주 「防과 통함」 실은 「策」】이 흉노(匈奴)를 약하게 하지 못하고 도리어 중국을 쇠하게 한 것입니다. 잘 계책을 짓는 자가, 본래 이와 같습니까【채옹(蔡邕)이 말합니다: 변수(邊陲)의 근심은 수족(手足)의 개소(疥搔)이고, 중국의 곤란은 흉배(胸背)의 표저(瘭疽)이다.】.
西域第四十六
서역제사십육(西域第四十六)
大夫曰往者匈奴據河山之險擅田牧之利民富兵強行入為冦則句注之內驚動而上郡以南鹹城文帝時虜入蕭關烽火通甘泉群臣懼不知所出乃請屯京師以備胡【匈奴傳曰孝文十四年匈奴單于十四萬騎入朝那蕭關殺北地都尉卬虜人民畜產甚多遂至彭陽使騎兵入燒回中宮騎至雍甘泉於是文帝以中尉周舍郎中令張武為將軍發車千乘十萬騎軍長安旁以備胡冦】胡西役大宛康居之屬南與群羌通先帝推讓斥奪廣饒之地建張掖以西隔絶羌胡分其援是以西域之國皆內拒匈奴斷其右臂曳【音異】劒而走故募【音慕】人田畜以廣用長城以南濵塞【音賽】之郡馬牛放縱蓄積布野未覩其計之所過也【匈奴傳曰元鼎三年漢東防貉朝鮮以為郡而西置酒泉郡以隔絶胡與羌通之路又西通月氏大夏以翁主妻烏孫王以分匈奴西方之援國乂北益廣田至胘雷為塞而匈奴終不敢以為言】夫【音扶】以弱越而遂意強吳才地計眾非鈞也主思臣謀其往必矣【韓非子曰越王入宦於吳而勸之伐齊以弊呉呉兵既勝齊人於艾陵張之於江濟強之於黃池故可制於五湖故曰將欲翕之必固張之將欲弱之必固強之兵略曰善戰者不在少善守者不在小勝在得威敗在失氣夫實則鬪虛則走盛則強衰則北吳王夫差地方二千里帶甲七十萬南與越戰棲之會稽北與齊戰破之艾陵西遇晉公擒之黃池此用民氣之實也其後驕溢縱慾拒諫喜諛憢悍遂過不可正喻大臣怨懟百姓不附越王選卒三千人擒之幹隧因制其虛也夫氣之有虛實也苦明之必晦也故勝兵者非常實也敗兵者非常虛也善者能實其民氣以待人之虛也不能者虛其民氣以待人之實也故虗實之氣兵之貴者也】
대부(大夫)가 말하였습니다: 옛날, 흉노(匈奴)가 하산(河山)의 험준을 의지하고, 전목(田牧)의 이익을 제멋대로 하며, 백성이 부유하고 군사가 강하여, 들어와서 적이 되면, 곧 구주(句注) 안쪽이 놀라고 움직였으며, 상군(上郡) 이남은 성을 도축(都築)하였습니다. 문제(文帝) 때, 적이 소관(蕭關)에 들어와, 봉화(烽火)가 감천(甘泉)에 통하니, 여러 신하가 두려워하여, 나갈 곳을 알지 못하여, 겨우 경사(京師)에 주둔하여 이로써 호(胡)에 방비하기를 청하였습니다【《흉노전(匈奴傳)》에 말합니다: 효문(孝文) 십사년, 흉노(匈奴) 선우(單于) 십사만 기가 조나(朝那)・소관(蕭關)에 들어와, 북지(北地) 도위(都尉) 앙(卬)을 죽이고, 인민과 축산을 노획함이 심히 많아, 마침내 팽양(彭陽)에 이르고, 기병으로 하여금 들어와 회중궁(回中宮)을 불사르게 하니, 후기(候騎, 底本 이 글자는 생벽자로 전록 후 분실, 《한서》에 따라 마땅히 「候」)가 옹(雍)・감천(甘泉)에 이르렀다. 이에 문제(文帝)가 중위(中尉) 주사(周舍)와 낭중령(郎中令) 장무(張武)를 장군으로 삼아, 수레 천 승과 십만 기를 발하여 장안(長安) 곁에 군사하여 이로써 호구(胡寇)에 방비하게 하였다.】. 호(胡)는 서쪽으로 대완(大宛)・강거(康居)의 무리를 부리고, 남쪽으로 뭇 강(羌)과 통하였습니다. 선제(先帝)가 추양(推讓)하여 넓고 풍요로운 땅을 축탈(斥奪)하여, 장액(張掖) 이서(以西)를 세우고, 강호(羌胡)를 격절(隔絶)하여, (底本 이 글자는 생벽자로 전록 후 분실) 그 도움을 나누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서역(西域)의 나라가 모두 안으로 흉노(匈奴)를 물리치고, 그 오른팔을 끊으며, 칼을 끌고【주음:「曳」는 예】 달아났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모집【주음:「募」는 모】하여 농사와 축산으로 이로써 쓰임을 넓혔습니다. 장성(長城) 이남과 빈새(濱塞)【주음:「塞」는 새】의 군(郡)은, 말과 소가 방종하여, 축적이 들에 널리니, 그 계책이 지나간 바를 보지 못합니다【《흉노전(匈奴傳)》에 말합니다: 원정(元鼎) 삼년, 한(漢)이 동쪽으로 예맥(穢貉, 底本은 「東防」, 아랫글자는 생벽자로 《한서》에 따라 마땅히 「拔穢貉」)와 조선(朝鮮)을 빼앗아 이로써 군(郡)으로 삼고, 서쪽으로 주천군(酒泉郡)을 두어 이로써 호(胡)와 강(羌)이 통하는 길을 격절하며, 또 서쪽으로 월씨(月氏)・대하(大夏)와 통하고, 옹주(翁主)로 오손왕(烏孫王)의 아내를 삼아 이로써 흉노(匈奴)의 서방의 원국(援國)을 나누며, 또 북쪽으로 밭을 더욱 넓혀 현뢰(胘雷)에 이르러 새(塞)를 삼으니, 흉노(匈奴)가 끝내 감히 이로써 말하지 못하였다.】. 문두의 부(夫)【주음:「夫」는 부】: 약한 월(越)로써 강한 오(吳)에 뜻을 이룬 것은, 땅을 재고 무리를 헤아림이 나란히 대등하지 않았으나, 임금이 생각하고 신하가 꾀하니, 그 감이 반드시 이루어졌습니다【한비자(韓非子)가 말합니다: 월왕(越王)이 오(吳)에 들어가 환관(宦)하여 이에게 제(齊)를 쳐서 이로써 오(吳)를 폐하게 함을 권하니, 오(吳) 군사가 이미 제(齊) 사람을 애릉(艾陵)에서 이기고, 이를 강제(江濟)에서 펼치고, 이를 황지(黃池)에서 강하게 하니, 그러므로 오호(五湖)에서 제어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말한다: 장차 이를 합치려 하면, 반드시 굳이 이를 펼쳐라. 장차 이를 약하게 하려 하면, 반드시 굳이 이를 강하게 하라. 〈병략(兵略)〉에 말합니다: 잘 싸우는 것은 적음에 있지 않고, 잘 지키는 것은 작음에 있지 않으며, 이김은 위엄을 얻음에 있고, 패함은 기(氣)를 잃음에 있다. 실(實)하면 곧 싸우고, 허(虛)하면 곧 달아나며, 성하면 곧 강하고, 쇠하면 곧 패한다. 오왕부차(吳王夫差)는 땅이 이천 리, 갑옷을 두른 자가 칠십만이요, 남쪽으로 월(越)과 싸워 회계(會稽)에 서리고, 북쪽으로 제(齊)와 싸워 이를 애릉(艾陵)에서 깨며, 서쪽으로 진공(晉公)을 만나 이를 황지(黃池)에서 사로잡으니, 이는 민기(民氣)의 실(實)을 쓴 것이다. 그 후 교만하고 넘쳐 욕심을 마음대로 하며, 간(諫)을 물리치고 아첨을 좋아하여, 효한(驍悍)하여 마침내 지나쳐, 바로잡아 깨우칠 수 없으니, 대신이 원망하고, 백성이 붙지 않아, 월왕(越王)이 졸(卒) 삼천 명을 가려 이를 간수(干隧)에서 사로잡았으니, 이는 그 허(虛)에 의지하여 제어한 것이다. 기(氣)의 허실(虛實)이 있음은, 밝음이 반드시 어두워짐과 같다. 그러므로 이기는 군사가 항상 실(實)하지 않고, 패하는 군사가 항상 허(虛)하지 않다. 잘하는 자는 능히 그 민기(民氣)를 실(實)하게 하여 이로써 남의 허(虛)를 기다리고, 못하는 자는 그 민기(民氣)를 허(虛)하게 하여 이로써 남의 실(實)을 기다린다. 그러므로 허실(虛實)의 기(氣)는, 군사의 귀함이다.】.
文學曰呉越廹於江海三川循環之處於五湖之間地相廹壤相次其勢易相禽【通作擒】也金鼓未聞旌旗未舒行【音杭】陳【音陣】未定兵以接矣師無輜【音之】重之費士無乏絶之勞此所謂食於防倉而戰於門郊者也【伍子胥曰夫吳之與越也仇讐敵戰之國也三江環之民無所移有吳則無越有越則無吳將不可改於是矣吾聞之陸人居陸水人居水夫上黨之國我攻而勝之吾不能居其地不能乗其車伕越國吾攻而勝之吾能居其地吾能乗其舟此利也不可失也已君必滅之失此利也雖悔之亦無及已】今匈奴牧於無窮之澤東西南北不可窮極雖輕車利馬不能得也況負重羸【音縲】兵以求之乎其勢不相及也茫茫乎若行九臯未知所止皓皓【古本浩浩】乎若無網羅而漁江海雖及之三軍罷【音疲】弊適遺之餌也故明王知其所無利以為役不可數【音朔】行而權不可乆張也故詔公卿大夫賢良文學所以復枉興微之路公卿宜思百姓之急匈奴之害縁聖主之心定安平之業今乃留心於末計雖本議不順上意未為盡於忠也
문학(文學)이 말하였습니다: 오(吳)와 월(越)은 강해(江海)에 핍박받고, 삼천(三川)이 순환하여, 오호(五湖) 사이에 처하여, 땅이 서로 핍박하고 경계가 서로 이어져, 그 형세가 서로 사로잡기【「擒」과 통함】 쉽습니다. 금고(金鼓)가 아직 들리지 않고, 정기(旌旗)가 아직 펴지지 않으며, 행진(行陣)【주음:「行」는 항, 「陳」는 진】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는데, 군사가 이미 맞닿았습니다. 군사에 치중(輜重)【주음:「輜」는 치】의 비용이 없고, 선비에 궐절(乏絶)의 수고가 없으니, 곧 이는 이른바 오창(敖倉, 底本은 「防倉」)에서 먹고 문교(門郊)에서 싸우는 것입니다【오자서(伍子胥)가 말합니다: 오(吳)와 월(越)는, 이는 원수와 적이 싸우는 나라이다. 삼강(三江)이 이를 둘러싸니, 백성이 옮길 곳이 없다. 오(吳)가 있으면 곧 월(越)이 없고, 월(越)가 있으면 곧 오(吳)가 없으니, 장차 이를 바꿀 수 없다. 내가 이를 듣건대: 육지 사람은 육지에 살고, 물 사람은 물에 산다. 상당(上黨)의 나라는, 내가 공격하여 이를 이겨도, 내가 그 땅에 살 수 없고, 그 수레를 탈 수 없다. 월(越) 나라는 내가 공격하여 이를 이기면, 내가 그 땅에 살 수 있고, 그 배를 탈 수 있다. 이 이익은 잃을 수 없다. 임금이 반드시 이를 멸하소서. 이 이익을 잃으면, 비록 후회해도 미칠 곳이 없다.】. 지금, 흉노(匈奴)는 무궁(無窮)한 못에서 목축하니, 동서남북이 다할 수 없어, 비록 가벼운 수레와 날랜 말로도 얻을 수 없거늘, 하물며 무거운 것을 지고, 여윈【주음:「羸」는 리】 군사로 이로써 이를 구하겠습니까? 그 형세가 서로 미치지 않습니다. 망망(茫茫)하여 구고(九皋)를 걷는 것과 같아, 멈출 곳을 알지 못하고, 호호(皓皓)【고본은 「浩浩」】하여 망라(網羅)가 없음과 같이 강해(江海)에 고기를 잡습니다. 비록 이에 미친다 해도, 삼군(三軍)이 피폐【주음:「罷」는 피】하여, 겨우 이에게 남기는 미끼가 됩니다. 그러므로 명왕(明王)은 그 이익이 없음을 알아, 이로써 역(役)은 여러 번【주음:「數」는 삭】 행할 수 없고 권(權)은 오래 펼 수 없다고 여깁니다. 그러므로 공경대부(公卿大夫)와 현량문학(賢良文學)에게 조(詔)함은, 이는 다시 미(微)를 일으키는 길을 굽히는 것입니다. 공경(公卿)은 마땅히 백성의 급함과 흉노(匈奴)의 해를 생각하고, 성주(聖主)의 마음에 의지하여, 안평(安平)의 업을 정해야 합니다. 지금, 도리어 말계(末計)에 유심(留心)하면, 본의(本議)가 윗뜻을 따르지 않는다 해도, 또한 충(忠)을 다한다고 하지 않습니다.
大夫曰初貳師不克宛而還也議者故使人主不遂忿則西域皆瓦解而附於胡胡得眾國而益強先帝絶竒聽行武威還襲【音集】宛宛舉國以降効其器物致其寳馬烏孫之屬駭膽請為臣妾匈奴失魄奔走遁逃雖未盡服逺處寒苦墝【音敲】埆【音殼】之地壯者死於祁【巨夷反】連天山其孤未復【漢武帝紀曰太初元年秋八月行幸安定遣貳師將軍李廣利發天下讁民西征大宛四年春貳師斬大宛王首獲汗血馬作西極天馬之歌匈奴傳曰漢既誅大宛威震外國天子意欲遂困胡乃下詔曰髙皇帝遺朕平城之憂髙後時單于書極悖逆昔齊襄公復九世之讎春秋大之是嵗太初四年也其明年漢使貳師將軍將三萬騎出酒泉撃右賢王於天山得首虜萬餘級而還顔師古曰天山即祁連山也匈奴謂天為祁連今鮮卑語尚然也】故群臣議以為匈奴困於漢兵折翅傷翼可遂擊服會先帝棄群臣以故匈奴不革譬如為山未成一簣而止度【音鐸】功業而無斷成之理是棄與胡而資強敵也輟防沮成為主計若斯亦未可謂盡忠也
대부(大夫)가 말하였습니다: 당초에, 이사(貳師)가 완(宛)을 이기지 못하고 돌아오니, 의논하는 자가 고의로 인주(人主)로 하여금 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면, 곧 서역(西域)이 모두 와해(瓦解)하여 호(胡)에 붙고, 호(胡)가 여러 나라를 얻어 더욱 강할 것이라 하였습니다. 선제(先帝)가 기특한 말을 끊고, 무위(武威)를 행하여, 돌아와 완(宛)을 습격【주음:「襲」는 습】하니, 완(宛)이 나라를 들어 이로써 항복하고, 그 기물(器物)을 바치며, 그 보마(寶馬)를 이르니, 오손(烏孫)의 무리가 담을 놀라 신첩(臣妾)이 되기를 청하고, 흉노(匈奴)가 백(魄)을 잃어 달아나 도망하였습니다. 아직 모두 복종하지 않았으나, 멀리 춥고 고생하며 척박한【주음:「墝」는 교, 「埆」는 각】 땅에 처하여, 장한 자는 기련(祁連)【주음:「祁」는 거이반】・천산(天山)에서 죽고, 그 고아가 아직 회복되지 않았습니다【《한무제기(漢武帝紀)》에 말합니다: 태초(太初) 원년 가을 팔월, 안정(安定)에 행행하여, 이사장군(貳師將軍) 이광리(李廣利)를 보내어 천하의 적민(謫民)을 발하여 서쪽으로 대완(大宛)을 정벌하게 하였다. 사년 봄, 이사(貳師)가 대완왕(大宛王)의 머리를 베고, 한혈마(汗血馬)를 얻어, 서극천마(西極天馬)의 노래를 지었다. 《흉노전(匈奴傳)》에 말합니다: 한(漢)이 이미 대완(大宛)을 주살하니, 위엄이 외국(外國)에 떨치고, 천자의 뜻이 곧 호(胡)를 곤란하게 하려 하여, 겨우 조(詔)를 내려 이르기를: 고황제(高皇帝)가 짐에게 평성(平城)의 근심을 남겼고, 고후(高后) 때 선우(單于)의 글이 극히 패역(悖逆)하였다. 옛적, 제양공(齊襄公)이 구세(九世)의 원수를 갚으니, 《춘추(春秋)》가 이를 크게 하였다. 이 해가 태초(太初) 사년이다. 그 다음 해, 한(漢)이 이사장군(貳師將軍)으로 하여금 삼만 기를 거느려 주천(酒泉)을 나가 우현왕(右賢王)을 천산(天山)에서 치게 하여, 수로(首虜) 만여 급을 얻고 돌아왔다. 안사고(顏師古)가 말합니다: 천산(天山)은 곧 기련산(祁連山)이다. 흉노(匈奴)가 하늘을 기련(祁連)이라 하니, 지금 선비(鮮卑)의 말도 오히려 이와 같다.】. 그러므로 여러 신하가 의논하여 이로써 흉노(匈奴)가 한(漢) 군사에 곤란하고, 날개가 꺾이고 날개가 상하여, 곧 쳐서 복종시킬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선제(先帝)가 여러 신하를 버림을 만나, 이로 말미암아 흉노(匈奴)가 바뀌지 않았습니다. 비유하자면 산을 쌓음과 같아, 아직 한 귀(簣)를 이루지 못하고 그칩니다. 공업(功業)을 헤아림에【주음:「度」는 탁】 결단하여 이루는 이치가 없으면, 이는 호(胡)에게 버려주어 강적(強敵)에게 자본이 되는 것입니다. 계책을 그치고(底本은 「輟防」) 이룸을 막아, 임금을 위하여 꾀함이 이와 같으면, 또한 충(忠)을 다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文學曰有司言外國之事議者皆激一時之權不慮其後張騫言大宛之天馬汗血安息之真玉大鳥縣官既聞如甘水焉【張騫傳曰張騫言大宛及大夏安息之屬皆大國多竒物土著頗與中國同俗而兵弱貴漢財物其北則大月氏康居之屬兵強可以賂遺設利朝也誠得而以義屬之則廣地萬里重九譯致殊俗威信徧於四海天子欣欣以騫言為然發使四出皆各行三千里初天子發書易曰神馬當從西北來得烏孫馬好名曰天馬及得宛汗血馬益壯更名烏孫馬曰西極馬宛馬曰天馬雲大宛諸國發使隨漢使來觀漢廣大以大鳥卵及犛靬人獻於漢天子大說而漢使窮河源其山多玉石採來天子案古閻書名河所出山曰崑崙山】乃大興師伐宛歴數期而後克之夫【音扶】萬里而攻人之國兵不戰而物故過半【顔師古曰物故謂死也言其同於物而故也或曰不欲斥言但云其所服用之物皆已故耳】雖破宛得寳馬非計也【劉向曰貳師將軍李廣利捐五萬之師靡億萬之費經四年之勞而厪獲駿馬三十匹雖斬宛王母寡之首猶不足以復其費也】當此之時將卒方赤面而事四夷師旅相望郡國併發黎人困苦奸偽萌生盜賊並起守尉不能禁城邑不能止然後遣上大夫衣繡衣以興擊之當此時百姓元元莫必其命故山東豪傑頗有異心【漢武紀曰天漢二年秋泰山琅邪群盜徐防等阻山攻城道路不通遣直指使者暴勝之等衣繡衣杖斧分部逐捕刺史郡守以下皆伏誅冬十一月詔關都尉曰今豪傑多逺交依東方群盜其謹察出入者酷吏傳曰自溫舒等以惡為治而吏民益輕犯法盜賊滋起大群至數千人小群以百數掠滷鄉里者不可勝數於是上始使御史中丞丞相長史使督之猶弗能禁乃使光祿大夫範昆諸部都尉及故九卿張徳等衣繡衣持節虎符以興擊斬首萬餘級及以法誅通行飲食坐相連郡甚者數十人數嵗乃頗得其渠率散卒失士復聚黨阻山川往往而群無可奈何於是作沈命法曰群盜起不發覺發覺而捕不滿品者二千石以下至小吏主者皆死其後小吏畏誅雖有盜不敢發恐不能得坐課累府府亦使不言故盜賊寖多上下相為慝以避文法焉】頼先帝聖靈斐然其咎皆在於欲畢匈奴而逺防【音機】也為主計若此可謂忠乎
문학(文學)이 말하였습니다: 유사(有司)가 외국(外國)의 일을 말함은, 의논하는 자가 모두 일시의 권(權)에 격하여, 그 뒤를 꾀하지 않습니다. 장건(張騫)이 대완(大宛)의 천마(天馬)와 한혈(汗血), 안식(安息)의 진옥(真玉)과 대조(大鳥)를 말하니, 현관(縣官)이 이미 들음이 감수(甘水)와 같았습니다【《장건전(張騫傳)》에 말합니다: 장건(張騫)이 대완(大宛)과 대하(大夏)・안식(安息)의 무리가 모두 대국이요, 기이한 물건이 많고, 토착(土著)이 심히 중국과 풍속이 같으며 군사가 약하고, 한(漢)의 재물을 귀하게 여긴다고 말하였다. 그 북쪽은 곧 대월씨(大月氏)・강거(康居)의 무리로 군사가 강하여, 이로써 뇌물하고 이익을 설하여 조(朝)하게 할 수 있다. 진실로 얻어서 이로써 의(義)로 이에 속하게 하면, 곧 땅을 넓히기를 만 리, 구역(九譯)을 거듭하여, 특별한 풍속을 이르고, 위신(威信)이 사해(四海)에 널리리라. 천자가 흔흔(欣欣)하여 건(騫)의 말을 옳다 하여, 사자를 발하여 사방으로 나가게 하니, 모두 각각 삼천 리를 갔다. 처음에, 천자가 《역경(易)》 책을 펴서 이르기를: 신마(神馬)가 마땅히 서북에서 오리라. 오손(烏孫)의 말을 얻어 좋다 하여, 이름하여 천마(天馬)라 하였다. 완(宛)의 한혈마(汗血馬)를 얻어 더욱 장함에 이르러, 다시 오손(烏孫)의 말을 이름하여 서극마(西極馬)라 하고, 완(宛)의 말을 천마(天馬)라 하였다. 대완(大宛)의 여러 나라가 사자를 발하여 한(漢) 사자를 따라 와서 한(漢)의 넓고 큼을 보고, 큰 새의 알과 견건(牦靬)의 현인(眩人)을 이로써 한(漢)에 바치니, 천자가 크게 기뻐하였다. 그리고 한(漢) 사자가 황하의 원천을 다하여, 그 산에 옥과 돌이 많아, 캐내어 왔다. 천자가 옛 도서(圖書)를 살펴, 황하가 나오는 산을 이름하여 곤륜산(崑崙山)이라 하였다.】. 겨우 크게 군사를 일으켜 완(宛)을 치니, 여러 기한을 지나 뒤에 이를 이겼습니다. 문두의 부(夫)【주음:「夫」는 부】: 만 리를 가서 남의 나라를 공격하면, 군사가 싸우지 않고 물고(物故)가 절반을 지납니다【안사고(顏師古)가 말합니다: 물고(物故)는 죽음을 말한다. 이는 그 귀물(鬼物, 底本 이 글자는 생벽자로 전록 후 분실)과 같아서 고(故)라고 한다. 혹 말한다: 바로 말하려 하지 않고, 다만 그 복용하는 물건이 모두 이미 고(故)라고 한다.】. 완(宛)을 깨고 보마(寶馬)를 얻었다 해도, 계책이 아닙니다【유향(劉向)이 말합니다: 이사장군(貳師將軍) 이광리(李廣利)가 오만의 군사를 버리고, 억만의 비용을 쓰며, 사 년의 수고를 겪어, 겨우 준마(駿馬) 삼십 필을 얻었다. 비록 완왕모과(宛王母寡)의 머리를 베었어도, 오히려 이로써 그 비용을 메울 만하지 않다.】. 이 때에 당하여, 장졸(將卒)이 바야흐로 얼굴이 붉게 사이(四夷)를 섬기고, 사려(師旅)가 서로 바라보며, 군국(郡國)이 함께 발하고, 여인(黎人)이 곤란하고 고통스러우며, 간위(姦僞)가 싹트고 생기니, 도적이 함께 일어나, 수위(守尉)가 금할 수 없고, 성읍(城邑)이 그칠 수 없어, 그런 뒤에 상대부(上大夫)를 보내어 수의(繡衣)를 입고 이로써 이를 일으켜 치게 하였습니다. 이 때에 당하여, 백성과 원원(元元)이 그 목숨을 반드시 하지 못하니, 그러므로 산동(山東)의 호걸(豪傑)이 심히 다른 마음이 있었습니다【《한무기(漢武紀)》에 말합니다: 천한(天漢) 이년 가을, 태산(泰山)・낭야(琅邪)의 뭇 도적 서발(徐勃, 底本은 「徐防」) 등이 산을 의지하여 성을 공격하니, 길이 통하지 않아, 직지사자(直指使者) 폭승지(暴勝之) 등을 보내어 수의(繡衣)를 입고, 도끼를 지어 부분하여 쫓아 잡게 하니, 자사군수(刺史郡守) 이하가 모두 복주(伏誅)하였다. 겨울 십일월, 관도위(關都尉)에게 조(詔)하여 이르기를: 지금, 호걸(豪傑)이 많이 멀리 사귀어, 동방의 뭇 도적에 의지하니, 그 출입하는 자를 삼가 살피라. 《혹리전(酷吏傳)》에 말합니다: 온서(溫舒) 등으로부터 악(惡)으로써 다스림을 삼으니, 관리와 백성이 더욱 법을 범함을 가볍게 여겨, 도적이 자꾸 일어나, 큰 무리는 수천 명에 이르고, 작은 무리는 백으로 헤아리며, 향리(鄉里)를 약탈하는 자를 다 셀 수 없었다. 이에 위가 비로소 어사중승(御史中丞)과 승상장사(丞相長史)로 하여금 이를 독하게 하였으나, 오히려 금할 수 없어, 겨우 광록대부(光祿大夫) 범곤(范昆)과 여러 부도위(都尉) 및 옛 구경(九卿) 장덕(張德) 등으로 하여금 수의(繡衣)를 입고, 절호부(節虎符)를 가지고 이로써 일으켜 치게 하여, 목을 베기를 만여 급, 및 법으로 통행음식(通行飲食)과 죄가 서로 이어진 군(郡)의 심한 자 수십 명을 주살하였다. 여러 해가 지나 겨우 심히 그 우두머리를 얻었다. 흩어진 졸(卒)이 잃고 망하여, 다시 무리를 모아 산천을 의지하며, 왕왕 무리가 되니, 어찌할 수 없었다. 이에 침명법(沈命法)을 지어 이르기를: 뭇 도적이 일어나 발각하지 않으면, 발각하여 잡기가 품(品)에 차지 않으면, 이천석(二千石) 이하로 작은 관리 주관하는 자에 이르기까지 모두 죽는다. 그 후 작은 관리가 주살을 두려워하여, 도적이 있어도 감히 발하지 않고, 아마 얻지 못할까 하여, 죄로 과부(課府)를 누적할까 하여, 부(府)도 또한 말하지 않게 하니, 그러므로 도적이 점점 많아지고, 상하가 서로 사(慝)하여 이로써 문법(文法)을 피하였다.】. 선제(先帝)의 성령(聖靈)이 비연(斐然)함에 의지합니다. 그 허물은 모두 흉노(匈奴)를 끝내고자 하여 멀리 기(幾)【주음:「幾」는 기; 底本은 「遠防」, 음주는 여전히 「機」로 씀】한 데 있습니다. 임금을 위하여 꾀함이 이와 같으면, 충(忠)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世務第四十七
세무제사십칠(世務第四十七)
大夫曰諸生妄言議者令【平聲】可詳用無徒守椎【音槌】車之語滑稽而不可修【崔浩曰滑稽酒器也吐酒終日不已言出口成章詞不窮竭若滑稽之吐酒也姚察曰滑稽猶俳諧也滑讀如字稽音計也以言諧語滑利其智計疾出故云滑稽也司馬貞曰滑亂也稽同也以言辯捷之人言非若是言是若非能亂同異也】夫【音扶】漢之有匈奴譬若木之有蠧【音妬】如人有疾不治則寖【音浸】以深故謀臣以為擊奪以困極之諸生言以徳懷之此有其語而不可行也諸生上無以似三王下無以似近秦令【平聲】有司可舉而行當世安蒸庶而寜邊境者乎
대부(大夫)가 말하였습니다: 여러 선비가 망언(妄言)합니다. 의논하는 자는 명령【주음:「令」는 평성】에 자세히 쓸 수 있어야 하고, 헛되이 추거(椎車)【주음:「椎」는 추】의 말만 지키지 말며, 골계(滑稽)하여 닦을 수 없습니다【최호(崔浩)가 말합니다: 골계(滑稽)는 술그릇이니, 술을 토하기가 종일 그치지 않으니, 이는 입에서 나오면 글이 이루어지고, 말이 다하고 마르지 않음을 말한다, 골계(滑稽)가 술을 토함과 같다. 요찰(姚察)가 말합니다: 골계(滑稽)는 마치 배해(俳諧)와 같다. 활(滑)은 글자 그대로 읽고, 계(稽)는 음 계이다. 이는 해어(諧語)가 활리(滑利)하여, 그 지혜와 꾀가 빨리 나오니, 그러므로 골계(滑稽)라 부른다. 사마정(司馬貞)이 말합니다: 활(滑)은 어지러움이요, 계(稽)는 같음이다. 이는 변첩(辯捷)한 사람을 말한다, 말이 이와 같지 않은 듯하고, 말이 아닌 듯하여, 능히 동이(同異)를 어지럽힌다.】. 문두의 부(夫)【주음:「夫」는 부】: 한(漢)의 흉노(匈奴)가 있음은, 비유하자면 나무의 좀【주음:「蠹」는 두】이 있음과 같고, 사람의 병이 있음과 같아, 치료하지 않으면 곧 점점【주음:「寖」는 침】으로 깊어집니다. 그러므로 모신(謀臣)은 이로써 쳐서 빼앗아 이로써 이를 곤란에 이르게 하고자 하고, 여러 선비는 도리어 덕으로써 이를 품는다고 말합니다. 이는 그 말은 있으나 행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 선비는 위로는 삼왕(三王)에 비슷할 것이 없고, 아래로는 가까운 진(秦)에 비슷할 것이 없으니, 명령【주음:「令」는 평성】에 유사(有司)가 들어 행하고, 당세(當世)가 증서(蒸庶)를 편안하게 하고 변경을 편안하게 할 만한 것이 있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