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bo

盐铁论 · 제16권

西汉 · 桓宽 · 제16권 / 32

文學曰宋襄公知孔父【音甫】之賢而不早任故身死魯莊知季友之賢授之政晚而亂【尊賢篇曰國家之任賢而吉任不肖而兇案往世而視已事其必然也如合符此為人君者不可以不慎也國公惛亂而良臣見魯國大亂季友之賢見僖公即位而任季子魯國安寕外內無憂行政二十一年季子之卒後邾擊其南齊伐其北魯不勝其患將乞師於楚以取全耳故傳曰患之起必自此始也公子買不可使成衞公遂不聽君命而擅之晉內侵於臣下外困於兵亂弱之患也僖公之性非前二十一年常賢而後乃漸變為不肖也此季子存之所益亡之所損也夫得賢失賢其損益之騐如此而人主急於所用甚可疾痛也夫智不足以見賢無可奈何矣若智能見之而強不能決猶豫不用而大者死亡小者亂傾此甚可悲哀也以宋殤公而不知孔父之賢乎安知孔父死已必死趨而救之趨而救之者是知其賢也以魯荘公不知季子之賢乎安知疾死召季子而授之國政授之國政者是知其賢也此二君知能見賢而皆不能用故宋殤公以殺死魯荘公以賊嗣使宋殤蚤任孔父將靖鄰國而況自存乎】衞君近佞逺【去聲】賢子路居蒲孔悝【音恢】為政簡公不聽宰我而漏其謀是以二君身被放殺而禍及忠臣【仲由傳曰子路為蒲大夫方孔悝作亂子路在外聞之而馳往遇子羔出衞城門謂子路曰出公去矣而門已閉子可還矣毋空受其禍子路曰食其食者不避其難子羔卒去有使者入城城門開子路隨而入造蕢瞶蕢瞶與孔悝登臺子路曰君焉用孔悝請得而殺之蕢聵弗聴扵是子路欲燔臺蕢瞶懼乃下石乞壺黶攻子路撃防子路之纓子路曰君子死而冠不免遂結纓而死正諫萹曰齊簡公有臣曰諸御鞅諌簡公曰田常與宰予此二人者甚相憎也臣恐其相攻相攻雖叛而危之不可願君去一人簡公曰非細人之所敢議也居無防何田常果攻宰予於庭賊簡公於朝簡公喟焉太息曰餘不用鞅之言以至此患也故忠臣之言不可不察也】二子者有事而不與【音預】其謀故可以死可以生去止其義一也【泰族訓曰舜許由異行而皆聖伊尹伯夷異道而皆仁箕子比干異趨而皆賢範縝曰丘旦殊姿湯文異狀聖同於心器形不必同也猶馬殊色而齊逸玉異色而均美是以晉棘荊和等價連城驊騮駃驪俱致千里】晏嬰不死崔慶之難【去聲】不可謂不義防子去殷之亂可謂不仁乎【雜事萹曰齊侯問於晏子曰忠臣之事君也何若對曰有難不死出亡不送君曰列地而與之疏爵而貴之君有難不死出亡不送可謂忠乎對曰言而見用終身無難臣奚死焉諌而見従終身不亡臣奚送焉若言不見用有難而死是妄死也諫不見出亡而送是詐為也故忠臣也者能盡善與君而不能與防於難義勇萹曰崔杼弒莊公令士大夫盟者皆脫劒而入言不疾指不至血者死所殺十人次及晏子晏子奉桮血仰天嘆曰惡乎崔子將為無道殺其君盟者皆視之崔杼謂晏子曰子與我我與子分國子不吾與吾將殺子直兵將推之曲兵將勾之唯子圖之晏子曰嬰聞囘以利而背其君者非仁也刼以刄而失其志者非勇也詩云愷悌君子求福不囘嬰可謂不囘矣直兵推之曲兵鉤之嬰不之囘也崔子舍之晏子趍出授綏而垂其僕將馳晏子拊其手曰虎豹在山林其命在庖廚馳不益生緩不益死按之成節然後去之詩云彼其之子舎命不渝晏子之謂也宋世家曰紂殺王子比干刳視其心防子曰父子有骨肉而臣主以義屬故父有過子三諌不聽則隨而號之人臣三諫不聽則其義可以去矣於是太師少師乃勸防子去遂行周武王伐紂克殷防子乃持其祭器造于軍門肉袒面縛左牽羊右把茅膝行而前以告於是武王乃釋防子復其位如故論語比考防曰殷惑妲己玉馬走宋均曰女妲己有美色也王馬喻賢臣奔去也劉毅曰三仁殊途而同歸四子異行而均義風俗通曰易記出處語黙書美九徳鹹事同歸殊途一致百慮不期相反各有云尚而已是故伯夷譲國以采薇展禽不去於所生孔丘周流以應聘長沮隱居而耦耕墨翟摩頂以放踵楊朱一毛而不為幹木息偃以藩魏包胥重璽而存郢夷吾朱紘以三歸平仲辭邑而濯纓惠施車以百乘於扈徒步而裸形戚商歌以干祿顔闔逾牆而遁榮髙柴趣門以避難季路求入而隕零端木結駟以貨殖顔囘屢空而弗營孟獻髙宇以美室原憲蓬門而株楹傳曰人心不同有如其面古今行事是則然矣】

문학의 선비가 대답하여 말합니다: 송양공이 공보의【주음:「父」는 보와 같음】 어짐을 알고도 일찍 맡기지 않아 그러므로 몸이 죽었고 노장공이 계우의 어짐을 알고도 그에게 정사를 줌이 늦어 어지러웠습니다【〈존현편〉에 말합니다: 국가가 어진 이를 맡기면 길하고 불초한 자를 맡기면 흉하다. 지난 세대를 살펴 이미 지난 일을 보면 그 필연함이 부합과 같으니 이는 사람의 임금이 된 자가 삼가지 않을 수 없다. 국군이 혼란하여 어진 신하가 보이니 노나라가 크게 어지러워 계우의 어짐이 보였다. 희공이 즉위하여 계자를 맡기니 노나라가 편안하고 안팎에 근심이 없어 정사를 행한 지 이십일 년이었다. 계자가 죽은 뒤에 추가 그 남쪽을 치고 제가 그 북쪽을 치니 노가 그 화를 이기지 못하여 장차 군사를 초에 빌려 온전함을 취하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전기에 말하기를 근심의 일어남은 반드시 이에서 시작된다 하였다. 공자매가 위에 수비하게 할 수 없는데 공이 마침내 임금의 명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 하였다. 진이 안으로 신하에게 침해당하고 밖으로 군사의 어지러움에 곤하니 약함의 근심이다. 희공의 성품이 함께 앞 이십일 년은 늘 어질다가 뒤에야 점점 변하여 불초해진 것이 아니요 이는 계자가 있음의 이롭게 한 바요 없음의 손상한 바이다. 무릇 어진 이를 얻고 어진 이를 잃음은 그 손익의 증험이 이와 같은데 임금이 쓰는 바에 급하니 매우 아프고 슬프다. 무릇 지혜가 어진 이를 보기에 족하지 않으면 어쩔 수 없으나 만일 지혜가 능히 그것을 보고도 강하여 능히 결단하지 못하고 주저하여 쓰지 않으면 큰 것은 죽고 망하고 작은 것은 어지럽고 기우니 이는 매우 슬퍼할 만하다. 송상공으로 하여금 공보의 어짐을 모른다 하겠는가? 어찌 공보가 죽으면 자기가 반드시 죽을 줄을 알고 뛰어가 그를 구하였겠는가? 뛰어가 그를 구한 것은 이는 그 어짐을 안 것이다. 노장공으로 하여금 계자의 어짐을 모른다 하겠는가? 어찌 병이 장차 죽을 줄을 알고 계자를 불러 그에게 국정을 주었겠는가? 그에게 국정을 준 것은 이는 그 어짐을 안 것이다. 이 두 임금은 지혜가 능히 어짐을 보았으나 모두 능히 쓰지 못하였으니 그러므로 송상공은 죽임으로 죽었고 노장공은 해친 후사로 하였다. 송상으로 하여금 일찍 공보를 맡기게 하였다면 장차 이웃 나라를 평정하였을 것인데 하물며 스스로 보존함이랴】. 위군이 아첨하는 자를 가까이하고 어진 이를 멀리하니【주음:「遠」은 거성】 자로가 포에 있고 공리가【주음:「悝」는 회와 같음】 정사를 다스렸으며 간공이 재아를 듣지 않고 그 모의를 새게 하였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두 임금이 몸이 쫓겨나고 죽임을 입었으며 재앙이 충신에게 미쳤습니다【《사기·중유열전》에 말합니다: 자로가 포대부가 되었다. 바야흐로 공리가 난을 일으키니 자로가 밖에 있다가 이를 듣고 달려 갔다가 자고가 위의 성문을 나옴을 만나 자로에게 말합니다: 출공이 떠났고 문이 이미 닫혔으니 그대는 돌아가고 헛되이 그 재앙을 받지 마라. 자로가 말합니다: 그 밥을 먹는 자는 그 어려움을 피하지 않는다. 자고가 마침내 갔다. 사자로 성에 들어가는 자가 있어 성문이 열리니 자로가 따라 들어가 괄궤에게 이르렀다. 괄궤가 공리와 함께 대에 오르니 자로가 말합니다: 임금이 어찌 공리를 쓰는가? 청컨대 얻어 그를 죽이겠습니다. 괄궤가 듣지 않으니 이에 자로가 대를 불사르려 하였다. 괄궤가 두려워하여 이에 석걸·호염을 내려 자로를 치게 하니 쳐서(저본은 「擊防」으로 됨) 자로의 갓끈을 끊었다. 자로가 말합니다: 군자는 죽어도 관이 벗겨지지 않는다. 마침내 갓끈을 맺고 죽었다. 〈정간편〉에 말합니다: 제간공에게 신하가 있어 제어앙이라 하여 간공을 간하여 말합니다: 전상과 재여 이 두 사람이 심히 서로 미워하니 신은 그들이 서로 칠까 두려워하며 서로 치면 비록 배역이라도 그를 위태롭게 하는 것이 불가하니 바라건대 임금은 한 사람을 떠나게 하소서. 간공이 말합니다: 작은 사람이 감히 의논할 바가 아니다. 지낸 지 얼마 되지 않아(저본은 「无防」으로 됨) 전상이 과연 재여를 뜰에서 치고 간공을 조정에서 해쳤다. 간공이 개연히 탄식하여 말합니다: 내가 앙의 말을 쓰지 않아 이 근심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충신의 말은 살피지 않을 수 없다】. 두 사람은 일이 있어도 그 모의에 참여하지【주음:「與」는 여와 같음】 않았으니 그러므로 죽어도 되고 살아도 되며 떠나고 머무름이 그 의가 하나입니다【《회남자·태족훈》에 말합니다: 순·허유는 행실을 달리하고도 모두 성이요 이윤·백이는 도를 달리하고도 모두 어질며 기자·비간은 지향을 달리하고도 모두 어질다. 범진이 말합니다: 구·단은 자태를 달리하고 탕·문은 모양을 달리하나 성은 마음에 같고 그릇의 형체는 반드시 같지 않다. 마치 말이 빛깔을 달리하여도 잘 달림이 같고 옥이 빛깔을 달리하여도 아름다움이 고른 것과 같다. 이로 말미암아 진극·형화가 값이 연성과 같고 화류녹이가 함께 천 리를 간다】. 안영이 최·경의 화에 죽지 않았으니【주음:「難」은 거성】 의롭지 않다 할 수 없고 미자가 은의 어지러움을 떠났으니(저본은 「防子」로 됨) 어질지 않다 할 수 있겠습니까【〈잡사편〉에 말합니다: 제후가 안자에게 물어 말합니다: 충신이 임금을 섬김은 어떠한가? 대답하여 말합니다: 어려움이 있어도 죽지 않고 도망하여도 따라가지 않는다. 임금이 말합니다: 땅을 나누어 그에게 주고 작위를 나누어 그를 귀하게 하는데 임금에게 어려움이 있어도 죽지 않고 도망하여도 따라가지 않으면 충이라 할 수 있는가? 대답하여 말합니다: 말하여 쓰이면 종신토록 어려움이 없으니 신이 무엇에 죽겠습니까? 간하여 따르면 종신토록 망하지 않으니 신이 무엇에 따라가겠습니까? 만일 말하여도 쓰이지 않고 어려움이 있어 죽는 것은 이는 헛되이 죽음이요 간하여도 따르지 않고 도망하여 따라가는 것은 이는 속임과 거짓입니다. 그러므로 충신은 능히 착함을 임금과 다하여도 능히 그와 어려움을 함께하지 못합니다(저본은 「與防」으로 됨). 〈의용편〉에 말합니다: 최저가 장공을 죽이고 사대부로 하여금 맹약하는 자를 모두 칼을 벗고 들어가게 하여 말이 빠르지 않고 손가락이 피에 이르지 않는 자는 죽인다 하여 죽인 것이 십 명이요 차례가 안자에 미쳤다. 안자가 잔의 피를 받들어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여 말합니다: 아, 최자가 장차 무도를 하여 그 임금을 죽이려 하는구나. 맹약하는 자가 모두 그를 보았다. 최저가 안자에게 말합니다: 그대가 나에게 따르면 나는 그대와 나라를 나누겠고 그대가 나에게 따르지 않으면 내가 장차 그대를 죽이리라. 곧은 병기가 장차 그를 밀고 굽은 병기가 장차 그를 갈고리로 걸 것이니 오직 그대가 그것을 도모하라. 안자가 말합니다: 영이 들으니 이익으로 그 임금을 등지는 자는 어질지 않고 칼날로 겁박하여 그 뜻을 잃는 자는 용감하지 않다. 《시》에 말하기를 개제한 군자는 복을 구하여 굽히지 않는다 하였으니 영은 굽히지 않는다 할 만하다. 곧은 병기가 그를 밀고 굽은 병기가 그를 걸어도 영은 그것에 굽히지 않는다. 최자가 그를 놓았다. 안자가 빨리 나가 수를 받아 탔다. 그 하인이 장차 달리려 하니 안자가 그 손을 어루만져 말합니다: 범과 표범이 산림에 있으면 그 목숨이 부엌에 있다. 달려도 사는 데 더하지 않고 늦춰도 죽는 데 더하지 않으니 그것을 눌러 절도를 이룬 뒤에 그것을 떠난다. 《시》에 말합니다: 저 그 사람은 목숨을 버려도 변하지 않는다. 안자를 말한 것이다. 《사기·송세가》에 말합니다: 주가 왕자 비간을 죽이고 가르어 그 심장을 보았다. 미자가 말합니다(저본은 「防子」로 됨): 부자는 골육이 있고 신하는 주로 의로 잇는다. 그러므로 아비에게 허물이 있으면 자식이 세 번 간하여도 듣지 않으면 곧 따라 그에게 곡하고 사람의 신하는 세 번 간하여도 듣지 않으면 곧 그 의로 떠날 수 있다. 이에 태사·소사가 이에 미자에게 권하여 떠나게 하니(저본은 「防子」로 됨) 마침내 갔다. 주무왕이 주를 쳐서 은을 이기니 미자가 이에 그 제기를 가지고 군문에 나아가(저본은 「防子」로 됨) 상의를 벗고 얼굴을 묶어 왼쪽으로 양을 끌고 오른쪽으로 띠를 잡아 무릎으로 걸어 앞으로 나아가 고하였다. 이에 무왕이 이에 미자를 풀어 그 자리를 옛날과 같이 회복시켰다. 《논어참》에 말합니다: 은이 달기에게 미혹되니 옥말이 달아났다. 송균이 말합니다: 여자 달기가 아름다운 빛이 있고 옥말은 어진 신하가 달아남을 비유한다. 유의가 말합니다: 삼인이 길을 달리하여도 돌아감이 같고 네 사람이 행실을 달리하여도 의가 고르다. 《풍속통》에 말합니다: 《역》이 나오고 들어감과 말하고 잠잠함을 기록하고 《서》가 아홉 덕이 모두 일함을 아름답게 하니 돌아감이 같고 길이 다르며 뜻이 하나이고 헤아림이 백이니 서로 반대하기를 기약하지 않고 각각 말하고 숭상하는 바가 있을 뿐이다. 이로 말미암아 백이는 나라를 양보하여 고사리를 캤고 전금은 난 곳을 떠나지 않았으며 공구는 두루 다니며 빙에 응하였고 장저는 숨어 살며 함께 갈았으며 묵적은 정수리를 문지르고 발뒤꿈치를 닳게 하였고 양주는 터럭 하나도 하지 않았으며 단간목은 쉬고 누워 위의 울타리가 되었고 포서는 발바닥에 굳은살을 겹쳐 영을 보존하였으며 이오는 붉은 끈으로 삼귀를 하였고 평중은 읍을 사양하고 갓끈을 씻었으며 혜시는 따르는 수레로 백 승이었고 우호는 걸어서 나체였으며 영철은 상가를 불러 녹을 구하였고(저본에서 이 글자는 생벽자로 전사 후 유실됨) 안합은 담을 넘어 달아났으며 영·고시는 문으로 달려 어려움을 피하였고 계로는 들어가기를 구하여 떨어져 죽었으며 단목은 말 넷을 묶어 재화를 불렸고 안회는 여러 번 빈곤하여도 꾀하지 않았으며 맹헌은 집을 높여 방을 아름답게 하였고 원헌은 봉문으로 기둥을 그루터기로 삼았다. 전기에 말합니다: 사람의 마음이 같지 않음이 그 얼굴과 같다. 고금의 행한 일이 이와 같을 뿐이다】.

大夫曰至美素璞物莫能飾也至賢保眞偽文莫能增也故金玉不琢美珠不畫【音與壞同反質萹曰孔子卦得賁喟然仰而嘆息意不平子張進舉手而問曰師聞賁者吉卦而嘆之乎孔子曰賁非正色也是以嘆之吾思也質素白當正白黑當正黑文質又何也吾亦聞之丹漆不文白玉不雕寶珠不飾何也質有餘者不受飾也】今仲由冉求無檀柘之材隋和之璞而強文之譬若雕朽木而礪鈆【音沿】刀飾嫫【音模】母畫【音壞】土人也被以五色斐然成章及遭行潦流波則沮矣【皇甫謐曰嫫母黃帝次妃許慎曰古之醜女班固曰詠雲門者難為音觀隋和者難為珍王褒曰毛嬙西施善毀者不能蔽其好嫫姆倭傀善譽者不防掩其醜孟嘗君客曰臣之來也過於淄水上見一土偶人方與木梗人語木梗謂土偶人曰子先土也持子以為耦人遇天大雨水潦並至子必沮壞土偶人應曰我沮乃反吾眞耳今子東園之桃也刻子以為梗遇天大雨水潦並至必浮子泛泛乎不知所止】夫【音扶】重懷古道枕籍詩書危不防安亂不能治郵裡逐雞難亦無黨也

대부가 말합니다: 지극히 아름다운 순박한 옥돌은 물건이 능히 꾸미지 못하고 지극히 어진 이는 참됨을 보존하여 거짓 꾸밈이 능히 더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금옥은 쪼지 않고 아름다운 구슬은 그리지 않습니다【주음:「畫」는 「壞」와 음이 같음. 〈반질편〉에 말합니다: 공자가 점쳐 비괘를 얻어 개연히 우러러 탄식하여 뜻이 평하지 않았다. 자장이 나아가 손을 들어 물어 말합니다: 스승은 비가 길한 괘인데 그것을 탄식한다 들으셨습니까? 공자가 말합니다: 비는 바른 빛이 아니니 이로 그것을 탄식한다. 나는 질박을 생각하노니 흰 것은 마땅히 바르게 희고 검은 것은 마땅히 바르게 검어야 하는데 문과 질은 또 무엇인가? 나도 또한 들으니 주칠은 무늬하지 않고 흰 옥은 새기지 않으며 보배 구슬은 꾸미지 않으니 무엇 때문인가? 질이 남음이 있는 것은 꾸밈을 받지 않는다】. 지금 중유·염구가 단저의 재목과 수화의 옥돌이 없으면서 억지로 그것을 꾸미는 것은 비유컨대 썩은 나무를 새기고 납 칼을 가는 것과 같으며【주음:「鈆」은 연과 같음】 모모를 꾸미고【주음:「嫫」은 모와 같음】 흙 인형을 그리는【주음:「畫」는 괴와 같음】 것과 같아 그에게 입히기를 오색으로 문채 있게 하여 글을 이루어도 물 고인 곳과 흐르는 물결을 만나면 곧 젖어 허물어질 뿐입니다【황보밀이 말합니다: 모모는 황제의 둘째 비이다. 허신이 말합니다: 옛날의 추한 여자이다. 반고가 말합니다: 《운문》을 읊는 자는 소리를 만들기 어렵고 수화를 보는 자는 보배를 만들기 어렵다. 왕포가 말합니다: 모장·서시는 잘 허물어도 그 아름다움을 가리지 못하고 모모·왜괴는 잘 칭찬하여도 그 추함을 가리지 못한다(저본은 「不防」으로 됨). 맹상군의 객이 말합니다: 신이 올 때 자수 위를 지나 한 흙 인형이 바야흐로 나무 인형과 말함을 보았다. 나무 인형이 흙 인형에게 말하기를 그대는 먼저 흙이니 그대를 쥐어 인형으로 만들었는데 하늘의 큰 비와 물 고임이 함께 이르면 그대는 반드시 젖어 허물어질 것이다 하였다. 흙 인형이 대답하여 말합니다: 내가 젖으면 곧 내 참으로 돌아갈 뿐이다. 지금 그대는 동원의 복숭아로 그대를 새겨 인형으로 만들었는데 하늘의 큰 비와 물 고임이 함께 이르면 반드시 그대를 떠다니게 하여 머무를 곳을 알지 못하게 하리라】. 문장 첫머리의 부(夫)【주음:「夫」는 부와 같음】: 겹겹이 옛 도를 품고 시서를 베개로 삼아 쌓아도 위태로움은 능히 편안하게 하지 못하고(저본은 「不防」으로 됨) 어지러움은 능히 다스리지 못합니다. 우리에서 닭을 쫓는 것은 어려워도 무리가 없습니다.

文學曰非學無以治身非禮無以輔徳【冉有曰雖有美玉不刻鏤不成器雖有美質不學則不成君子傳曰玉不琢不成器人不學不成行家有千金之玉不知治猶之貧也良工宰之則富及子孫君子謀之則為國用故動則安百姓議則延民命又曰水淵深廣則龍魚生之山林茂盛則禽獸歸之禮義修明則君子懷之故禮及身而行修禮及國而政明防以禮持身則貴名自揚天下順焉令行禁止而王者之事畢矣詩曰有覺徳行四國順之夫此之謂矣】和氏之璞天下之美寶也待鑑識之工而後明毛嬙【音牆】天下之姣【音交】人也待香澤脂粉而後容周公天下之至聖人也待賢師學問而後通【莊子曰毛嬙西施人之所美也魚見之深入鳥見之髙飛莊小疏曰毛嬙越王嬖妾姣美也香澤者人發恆枯悴以此濡澤之也韓非子曰善毛嬙西施之美無益吾面用脂澤粉黛則倍其初子夏曰黃帝學乎大墳顓頊學乎祿圖帝嚳學乎赤松子堯學乎務成子附舜學乎尹夀禹學乎西王國湯學乎貸子相文王學乎錫疇子斯武王學乎太公周公學乎虢叔仲尼學乎老此十一聖人未遭此師則功業不防著乎天下名號不防傳乎後世者也詩曰不愆不忘率由舊章】今齊世庸士之人不好【去聲】學問專以巳之愚而負荷【音賀】巨任若無檝【音接】舳【音逐】濟江海而遭大風漂沒於百仞之淵東流無崖之川安得沮而止乎

문학이 말합니다: 배움이 아니면 몸을 닦을 것이 없고 예가 아니면 덕을 도울 것이 없습니다【염유가 말합니다: 비록 아름다운 옥이 있어도 새기고 파내지 않으면 그릇을 이루지 못하고 비록 아름다운 자질이 있어도 배우지 않으면 곧 군자를 이루지 못한다. 전기에 말합니다: 옥은 쪼지 않으면 그릇을 이루지 못하고 사람은 배우지 않으면 행실을 이루지 못한다. 집에 천금의 옥이 있어도 다스릴 줄을 모르면 오히려 가난한 것과 같고 좋은 장인이 그것을 다스리면 곧 부유함이 자손에 미치며 군자가 그것을 꾀하면 곧 나라의 쓰임이 된다. 그러므로 움직이면 곧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의논하면 곧 백성의 목숨을 늘인다. 또 말합니다: 물 못이 깊고 넓으면 곧 용과 물고기가 그곳에서 나고 산림이 무성하면 곧 금수가 그곳에 돌아오며 예의가 닦여 밝으면 곧 군자가 그것을 품는다. 그러므로 예가 몸에 미치면 행실이 닦이고 예가 나라에 미치면 정사가 밝다. 그러므로 예로 몸을 지키면(저본은 「防」으로 됨) 귀한 이름이 스스로 떨치고 천하가 그것을 따르며 명령이 행해지고 금지가 그쳐 왕자의 일이 마친다. 《시》에 말합니다: 깨달은 덕의 행실이 있으니 사국이 그것을 따른다. 무릇 이를 말한 것이다】. 화씨의 옥돌은 천하의 아름다운 보배로 감식하는 장인을 기다린 뒤에야 밝습니다. 모장은【주음:「嬙」은 장과 같음】 천하의 아름다운 사람이나【주음:「姣」은 교와 같음】 향수와 연지와 분을 기다린 뒤에야 용모가 있습니다. 주공은 천하의 지극한 성인이나 어진 스승의 배움을 기다린 뒤에야 통합니다【장자가 말합니다: 모장·서시는 사람이 아름답다 하는 바이나 물고기가 그들을 보고 깊이 들어가고 새가 그들을 보고 높이 난다. 장서소소에 말합니다: 모장은 월왕의 총애하는 첩으로 아름답다. 향택이란 사람의 머리카락이 늘 마르고 쇠하니 이로써 그것을 적셔 윤기하게 한다. 한비자가 말합니다: 모장·서시의 아름다움을 잘하여도 내 얼굴에 이익이 없고 연지와 분과 흑을 쓰면 곧 그 처음에 배한다. 자하가 말합니다: 황제는 대분에게 배우고 전욱은 녹도에게 배우며 제곡은 적송자에게 배우고 요는 무성자부에게 배우며 순은 윤수에게 배우고 우는 서왕국에게 배우며 탕은 대자상에게 배우고 문왕은 석주자사에게 배우며 무왕은 태공에게 배우고 주공은 괵숙에게 배우며 중니는 노담에게 배웠다. 이 열한 성인이 이 스승을 만나지 않았다면 곧 공업이 천하에 드러나지 못하고(저본은 「不防」으로 됨) 명칭과 호가 후세에 전하지 못하였을 것이다(저본은 「不防」으로 됨). 《시》에 말합니다: 허물하지 않고 잊지 않으며 옛 장을 따른다】. 지금 평범한 세상의 평범한 선비는 배움을 좋아하지 않고【주음:「好」는 거성】 오로지 자기의 어리석음으로 큰 짐을 짊어지니【주음:「荷」는 하와 같음】 마치 노와 키가 없이 강과 바다를 건너다가【주음:「檝」은 첩과 같음】【주음:「舳」은 축과 같음】 큰 바람을 만나는 것과 같아 백 길의 못에 떠내려 잠기고 동쪽으로 흘러 언덕 없는 강에 있으니 어찌 젖고 멈출 수 있겠습니까.

大夫曰性有剛柔形有好惡聖人能因而不能改孔子外變二三子之服而不能革其心故子路解長劍去危冠屈節於夫子之門然攝齊【音諮】師友行行【音沆】爾鄙心猶存【行行剛健貎仲尼弟子列傳曰子路性鄙好勇力志伉直冠雄雞佩猳豚陵孔子孔子設禮稍誘子路子路後儒服委質因門人請為弟子建本萹曰孔子謂子路曰汝何好子路曰好長劔孔子曰非此之問也請以汝之所能加之以學豈可及哉子路曰學亦有益乎孔子曰夫人君無諫臣則失政士無教交則失徳狂馬不釋其防操弓不返於檠木受防則直人受諌則聖受學重問孰不順成毀仁惡士且近於刑君子不可以不學子路曰南山有竹弗揉自直斬而射之通於犀革又何學為乎孔子曰括而羽之鏃而砥礪之其入不益深乎子路拜曰敬受教哉貴徳萹曰子路持劎孔子問曰由安用此子路曰善古者固以善之不善古者固以自衞孔子曰君子以忠為質以仁為衞不出環堵之內而聞千里之外不善以忠化冦以仁圍何必持劍乎子路曰由也請攝齊以事先生矣】宰予晝寢【論語筆解作畫寢謂以五色畫其寢室也】欲損三年之喪孔子曰糞土之牆不可杇也若由不得其死然故內無其質而外學其文雖有賢師良友若畫【音壞】脂鏤【音陋】氷費日損功故良師不能飾戚施香澤不能化嫫【音模】母也【修務訓曰曼頬皓齒形誇骨佳不待脂粉芳澤而性可恱者西施陽文也啳哆噅籧蒢戚施雖粉白黛黑弗能為美者嫫母仳倠也】

대부가 말합니다: 성품에 굳셈과 부드러움이 있고 형체에 아름다움과 추함이 있으니 성인은 능히 따르나 능히 바꾸지 못합니다. 공자가 두세 제자의 옷을 밖으로 바꾸었으나 능히 그 마음을 바꾸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자로가 긴 칼을 풀고 높은 관을 벗어 부자의 문에 절개를 굽혔으나 그러나 옷을 걷어 올려 스승과 벗을 섬겨도【주음:「齊」는 자와 같음】 항항한 비루한 마음이 오히려 남아 있었습니다【주음:「行」은 항과 같음】【항항은 굳세고 건장한 모양이다. 《사기·중니제자열전》에 말합니다: 자로는 성품이 비루하고 용맹과 힘을 좋아하며 뜻이 항강하고 곧아 숫닭을 관 쓰고 수퇘지를 패로 차서 공자를 능멸하고 포학하였다. 공자가 예를 베풀어 점점 자로를 유인하니 자로가 뒤에 유복을 입고 위질하여 문인을 통해 제자가 되기를 청하였다. 〈건본편〉에 말합니다: 공자가 자로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하니 자로가 말합니다: 긴 칼을 좋아합니다. 공자가 말합니다: 이것을 묻는 것이 아니다. 청컨대 너의 능한 바에 배움을 더하라, 어찌 미칠 수 있겠는가. 자로가 말합니다: 배움도 또한 이익이 있습니까? 공자가 말합니다: 무릇 임금은 간하는 신하가 없으면 곧 정사를 잃고 선비는 가르치고 사귐이 없으면 곧 덕을 잃으며 미친 말은 그 채찍을 놓지 않고(저본은 「其防」으로 됨) 활을 잡는 것은 경에 돌아오지 않으며 나무는 먹줄을 받으면 곧 곧고(저본은 「受防」으로 됨) 사람은 간함을 받으면 곧 성이다. 배움을 받고 물음을 중히 여기면 누가 순하여 이루지 않겠으며 어짐을 허물고 선비를 미워하는 자는 장차 형벌에 가깝다. 군자는 배우지 않을 수 없다. 자로가 말합니다: 남산에 대나무가 있어 주무르지 않아도 스스로 곧아 베어 그것을 쏘면 가죽에 통하는데 또 무엇을 배우겠습니까? 공자가 말합니다: 화살촉을 만들어 그것에 깃을 달고 촉을 만들어 그것을 숫돌에 갈면 그 들어감이 더욱 깊지 않겠는가? 자로가 절하여 말합니다: 삼가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귀덕편〉에 말합니다: 자로가 칼을 잡으니 공자가 물어 말합니다: 유가 어찌 이것을 쓰는가? 자로가 말합니다: 옛날을 잘하는 자는 진실로 이로써 그것을 잘하고 옛날을 잘하지 않는 자는 진실로 이로써 스스로 지킵니다. 공자가 말합니다: 군자는 충으로 질을 삼고 인으로 지킴을 삼아 둘레 토방 안을 나가지 않고 천 리 밖에 들리며 착하지 않은 것은 충으로 교화하고 적과 포학은 인으로 에워싸는데 어찌 반드시 칼을 잡겠는가? 자로가 말합니다: 유는 청컨대 옷을 걷어 올려 선생을 섬기겠습니다】. 재아가 낮에 잤으니【《논어필해》는 화침으로 되어 오색으로 그 침실을 그렸다 함】 삼 년의 상을 줄이고자 하였습니다. 공자가 말합니다: 똥흙의 담은 흙손질할 수 없다. 유 같은 자는 그 죽음을 제대로 얻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안에 그 질이 없고 밖으로 그 무늬를 배우면 비록 어진 스승과 좋은 벗이 있어도 마치 기름을 그리고【주음:「畫」는 괴와 같음】 얼음을 새기는【주음:「鏤」은 누와 같음】 것과 같아 날을 들이고 공을 손상합니다. 그러므로 좋은 스승도 능히 척시를 꾸미지 못하고 향수도 능히 모모를 교화하지 못합니다【주음:「嫫」은 모와 같음】【《회남자·수무훈》에 말합니다: 아름다운 뺨과 흰 이·곱고 좋은 형체는 연지와 분과 향기로운 물을 기다리지 않고 성품이 기쁠 만한 것은 서시·양문이요 곡저와 척시는 비록 분으로 희게 하고 흑으로 검게 하여도 능히 아름답게 하지 못하는 것은 모모·비탁이다】.

文學曰蒙以不潔鄙夫掩鼻惡人盛飾可以宗祀上帝【孟子曰西子蒙不潔則人皆掩鼻而過之雖有惡人齋戒沐浴則可以祀上帝修務訓曰毛嬙西施天下之美人也若使美人銜腐防蒙蝟皮衣豹裘帶死蛇則布衣韋帶之人過者莫不左右睥睨而掩鼻嘗試使之施芳澤正蛾眉設笄珥衣阿錫曳齊紈粉白黛黑佩玉環揄步雜芝若籠蒙目視冶由笑目流眺口曾撓竒牙出靨防揺則雖王公大人有嚴志頡頏之行亦無不憚悇癢心而恱其色矣今以中人之才蒙愚惑之智被汙辱之行無本業所修方術所務焉得無有睥面掩鼻之容防】使二人不涉聖人之門不免為窮夫安得卿大夫之名故砥所以致於刃學所以盡其才也【子思曰學所以益才也礪所以致刃也吾嘗幽處而深思不若學之速吾嘗跂而望不若登髙之博見孟子曰人皆知以食愈飢莫知以學愈愚夫學者崇名立身之本也儀狀齊等而飾貌者好質性同倫而學問者智是故砥礪琢磨非金也而可以利金詩書闢立非我也而可以厲心韓嬰曰劒雖利不厲不防材雖美不學不髙雖有旨酒嘉殽不嘗不知其旨雖有善道不學不達其功】孔子曰觚不觚觚哉觚哉故事人加則為宗廟器否則廝養之舋【音問】才【張耳傳曰廝養卒廝者養馬之役也韋昭曰析薪為廝炊烹為養】于越之鋌【音定】不礪【舋器破而未離者也鋌箭足入槀中者也】匹夫賤之工人施巧人主服而朝【音潮】也夫【音扶】醜者自以為姣【音交】故不飾愚者自以為知【去聲】故不學觀笑在已而不自知不好【去聲】用人自是之過也

문학이 말합니다: 더러움을 덮으면 비루한 남편이 코를 가리고 추한 사람이 성대하게 꾸미면 상제를 제사할 수 있습니다【맹자가 말합니다: 서자가 더러움을 덮으면 곧 사람이 모두 코를 가리고 그를 지나고 비록 추한 사람이라도 재계하고 목욕하면 곧 상제를 제사할 수 있다. 《회남자·수무훈》에 말합니다: 모장·서시는 천하의 미인이다. 만일 미인으로 하여금 썩은 쥐를 물게 하고(저본은 「腐防」으로 됨) 고슴도치 가죽을 덮고 표범 가죽을 입고 죽은 뱀을 띠게 하면 곧 베옷과 가죽 띠의 사람으로 지나는 자가 곁눈으로 보고 코를 가리지 않는 자가 없다】……의상이 같고 꾸민 용모는 아름다우며 자질과 성품이 같은 부류이나 배우고 물은 자는 지혜롭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숫돌과 갈고 다듬는 것은 쇠가 아니나 쇠를 날카롭게 할 수 있고 시서의 벽립은 내가 아니나 마음을 날카롭게 할 수 있습니다. 한영이 말합니다: 칼이 비록 날카로워도 갈지 않으면 날카롭지 않고(저본은 「不防」으로 됨) 재목이 비록 아름다워도 배우지 않으면 높지 않으며 비록 맛있는 술과 좋은 안주가 있어도 맛보지 않으면 그 맛을 모르고 비록 좋은 도가 있어도 배우지 않으면 그 공을 통달하지 못한다. 공자가 말합니다: 고가 고가 아니면 고인가 고인가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섬겨 더하면 곧 종묘의 그릇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곧 마부와 취사의 균열한 재목이 됩니다【주음:「舋」은 문과 같음】【《사기·장이열전》에 말합니다: 사양졸. 사는 말을 기르는 역이다. 위소가 말합니다: 장작을 쪼개는 것을 사라 하고 밥 짓는 것을 양이라 한다】. 우월의 정은 갈지 않으면【주음:「鋌」은 정과 같음】【균은 그릇이 깨어졌으나 아직 떨어지지 않은 것이요 정은 화살 발이 마른 가운데 들어간 것이다】 필부가 그것을 천하게 여기나 장인이 공교함을 베풀면 임금이 입고 조회합니다【주음:「朝」은 조와 같음】. 문장 첫머리의 부(夫)【주음:「夫」는 부와 같음】: 추한 자는 스스로 아름답다 여겨 그러므로 꾸미지 않고 어리석은 자는 스스로 안다 여겨【주음:「知」는 거성】 그러므로 배우지 않습니다. 웃음거리가 자기에게 있으면서 스스로 모르고 남을 쓰기를 좋아하지 않으니【주음:「好」는 거성】 스스로 옳다 하는 허물입니다.

訟賢第二十二

송현(訟賢) 제이십이

大夫曰剛者折柔者卷故季由以強梁死宰我以柔弱殺【汜論曰聖人之道寛而栗嚴而溫柔而直猛而和太剛則折太柔則巻聖人正在剛柔之間乃得道之本積隂則沈積陽則飛隂陽相接乃能成和故恩推則懦懦則不威嚴推則猛猛則不和愛推則縦縦則不令刑推則虐虐則無親昔者齊簡公釋其國家之柄而專任其大臣將相攝威擅勢私門成黨而公道不行故使陳成田常鴟夷子皮得成其難使呂氏絶嗣而陳氏有國者此柔懦所生也鄭子陽剛毅而好罰其於罰也執而無赦舍人有折弓者畏罪而恐誅則因猘狗之驚以殺子陽此剛猛之所致也今不知道者見柔懦者侵則矜於為剛毅見剛毅者亡則矜於為柔懦此本無主於中而見聞舛馳於外者也】使二子不學未必不得其死何者矜已而伐能小知而巨收欲人之従己不能以己之人莫視而自見莫賈而自貴【賈市也】此其所以身殺死而終葅醢也未見其為宗廟器覩其為世戮也當此之時東流亦安之乎

대부가 말합니다: 굳센 것은 부러지고 부드러운 것은 말립니다. 그러므로 계유는 강양으로 죽고 재아는 유약으로 죽임당하였습니다【《회남자·범론훈》에 말합니다: 성인의 도는 너그럽고도 떨리고 엄하고도 따뜻하며 부드럽고도 곧고 맹렬하고도 화하다. 너무 굳세면 곧 부러지고 너무 부드러우면 곧 말린다. 성인이 바로 굳셈과 부드러움 사이에 있어 이에 도의 근본을 얻었다. 음을 쌓으면 곧 가라앉고 양을 쌓으면 곧 날며 음양이 서로 접하여 이에 능히 화를 이룬다. 그러므로 은혜를 미치면 곧 나약하고 나약하면 곧 위엄이 없으며 엄함을 미치면 곧 맹렬하고 맹렬하면 곧 화하지 않으며 사랑을 미치면 곧 방종하고 방종하면 곧 명령이 없으며 형벌을 미치면 곧 학대하고 학대하면 곧 친함이 없다. 옛날 제간공이 그 국가의 자루를 놓고 오로지 그 대신을 맡기니 장상이 위엄을 거두고 형세를 독차지하여 사문이 당을 이루고 공도가 행해지지 않아 그러므로 진성전상·치이자피로 하여금 그 화를 이루게 하여 여씨로 하여금 후사가 끊어지게 하고 진씨가 나라를 가졌으니 이는 나약함이 낳은 것이다. 정자양이 강의하고 벌을 좋아하여 그 벌함에 있어 잡고 사하지 않으니 사인으로 활을 부러뜨린 자가 있어 죄를 두려워하고 주살을 두려워하여 곧 미친 개의 놀람을 빌어 자양을 죽였으니 이는 강하고 맹렬함이 가져온 것이다. 지금 도를 모르는 자는 나약한 자가 침해당함을 보면 곧 강의함을 하는 데 뽐내고 강의한 자가 망함을 보면 곧 나약함을 하는 데 뽐내니 이는 근본이 가운데 주인이 없고 보고 들음이 밖에서 어긋나 달림이다】. 두 사람으로 하여금 배우지 않게 하였다면 미필 반드시 그 죽음을 얻지 않았을 것입니다. 무엇 때문인가? 자기를 뽐내고 재능을 자랑하며 앎은 작은데 거둠이 크고 남이 자기를 따르기를 바라면서 능히 자기로 남을 따르지 못하며 보는 자가 없어도 스스로 보이고 시세를 매기는 자가 없어도 스스로 귀하게 여기니【가는 저자이다】 이것이 그 몸을 죽이고 끝내 젓갈과 절임이 되는 까닭입니다. 아직 그가 종묘의 그릇이 됨을 보지 못하고 그가 세상에 죽임당함을 봅니다. 이 때에 해당하여 동쪽으로 흐르는 물도 또한 그것을 편안하게 하겠습니까.

文學曰騏驥之挽【音晚】鹽車垂頭於太行【音杭】屠者持刀而睨【音義】之太公之窮困負販於朝歌也蓬頭相聚而笑之【王逸曰呂望鼓刀在列肆文王親徃問之望曰下屠屠牛上屠屠國文王喜載與俱歸】當此之時非無逺筋【音斤】駿才也非文王伯樂【音洛】莫知之賈也【伯樂姓孫名陽善相馬天上有一星名伯樂在天熙星之旁人見孫陽識馬因號之曰伯樂天熙一作天駟孔子曰呂望行年五十賣食棘津年七十屠於朝歌九十乃為天子師則遇文王也夫驥罷鹽車此非無形容也莫知之也使驥不遇伯樂安得千里之足造父亦無千里之手矣春秋後語曰蘇代欲見齊王王不見代代說淳于髠曰人有賣駿馬者三旦立於市人莫與言及見伯樂還而視之去而顧之一旦價十倍足下有意為臣伯樂乎韓嬰曰明主能愛其所愛闇主則必危其所愛夫文王非無使闢親比己者超然乃舉太公於舟人而用之豈私之防以為親邪則異族之人也以為故耶則未嘗相識也以為姣好耶則太公年七十二齳然而齒墮矣然而好之者文王欲立貴道欲白貴名兼制天下以惠中國而不可以獨故舉是人而用之貴道果立貴名果白兼制天下立國七十一姬姓獨居五十二週之子孫苟不狂惑莫不為天下顕諸侯夫是之謂能愛其所愛矣故惟明主能愛其所愛闇主必危其所愛此之謂也汗明見春申君候問三月而後得見談卒春申君大說之汗明欲復談春申君曰僕已知先生先生太息矣汗明憱憱焉曰明願有問君而恐固不審君之聖孰與堯也春申君曰先生過矣臣何足以當堯汗明曰然則君料臣孰與舜春申君曰先生即舜也汗明曰不然臣請為君終言之君之賢實不如堯臣之能不及舜夫以賢舜事聖堯三年而後乃相知也今君一旦而知臣是君聖於堯而臣賢於舜也春申君曰善召門吏為汗先生著客籍五日一見汗明曰君亦聞驥乎夫驥之齒至矣服鹽車而上太行蹄申膝折尾湛胕潰漉汁地白汗交流外阪遷延負棘而不能上伯樂遭之下車攀而哭之解紵衣以羃之驥於是俛而噴仰而鳴聲達於天若出金石聲者何也彼見伯樂之知己也今僕之不肖阨於州部堀穴窮巷沉洿鄙俗之日久矣君獨無意湔祓僕使得為君髙鳴屈於梁乎】子路宰我生不逢伯樂【音洛】之舉而遇狂屠故君子傷之若由不得其死然天其祝予矣【季路死孔子哭之曰噫天祝予天祝予】孔父【音甫】累華督之難【去聲】不可謂不義仇牧涉宋萬之禍不可謂不賢也【左傳曰宋華父督見孔父之妻於路目逆而送之曰美而豔宋督攻孔氏殺孔父而取其妻公怒督懼遂弒殤公君子以督為有無君之心然後動於惡故先書弒其君春秋曰春王正月戊申宋督弒其君與夷及其大夫孔父公羊傳曰及者何累也弒君多矣舍此無累者乎曰有仇收荀息皆累也舍仇收荀息無累者乎曰有有則此何以書賢也何賢乎孔父孔父可謂義形於色矣其義形於色奈何督將弒殤公孔父生而存則殤公不可得而弒也故於是先攻孔父之家殤公知孔父死己必死趨而救之皆死焉孔父正色而立於朝則人莫敢過而致難於其君者孔父可謂義形於色矣義勇篇曰宋閔公臣長萬以勇力聞萬與魯戰師敗為魯所獲囚之宮中數月歸之宋宋閔公搏婦人在側公謂萬曰魯君孰與寡人美萬曰魯君美天下諸侯唯魯君耳宜其為君也閔公矜婦人妬因言曰爾魯之囚虜爾何知萬怒遂搏閔公頰齒落於口絶吭而死仇牧聞君死趨而至遇萬於門擕劍而叱之萬臂擊仇牧而殺之齒著於門闔仇牧可謂不畏強禦矣趨君之難顧不旋踵泰族訓曰君子雖死亡其名不滅小人雖得勢其罪不除】

문학이 말합니다: 기롱이 소금 수레를 끌어【주음:「輓」은 만과 같음】 태행에서 머리를【주음:「行」은 항과 같음】 늘어뜨리니 도살하는 자가 칼을 잡고 그것을 곁눈으로 보았고【주음:「睨」는 예와 같음】 태공이 곤궁하여 조가에서 짊어지고 파는 것은 봉두의 무리가 모여 그를 웃었습니다【왕일이 말합니다: 여망이 칼을 두드려 점포에 있으니 문왕이 몸소 가서 그에게 물었다. 망이 말합니다: 아래 도살은 소를 잡고 위 도살은 나라를 잡는다. 문왕이 기뻐하여 실어 함께 돌아왔다】. 이 때에 해당하여 함께 먼 힘줄과 준마의 재주가 없던 것이 아니나 문왕·백락이 아니면 그를 아는 값이 없었습니다【주음:「筋」은 근과 같음】【주음:「樂」은 락과 같음】【백락은 성이 손이요 이름이 양으로 잘 말을 감정한다. 하늘 위에 한 별이 있어 이름이 백락인데 천사별 곁에 있다. 사람이 손양이 말을 알아봄을 보고 이로 말미암아 그를 불러 백락이라 하였다. 공자가 말합니다: 여망이 나이를 행하기를 오십에 극진에서 음식을 팔고 일흔에 조가에서 도살하고 아흔에야 천자의 스승이 되니 곧 문왕을 만났다. 무릇 기가 소금 수레에 지친 것은 이는 함께 형용이 없던 것이 아니나 그를 아는 자가 없었다. 기로 하여금 백락을 만나지 않게 하였다면 어찌 천 리의 발을 얻겠으며 조보도 천 리의 손이 없다. 《춘추후어》에 말합니다: 소대가 제왕을 보고자 하였으나 왕이 보지 않았다. 대가 순우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사람으로 준마를 파는 자가 있어 세 아침을 저자에 섰으나 사람이 그와 말하는 자가 없었고 백락을 만나 돌아와 그것을 보고 떠나 그것을 돌아보니 하루아침에 값이 열 배가 되었다. 족하가 뜻하여 신을 위해 백락이 되어 주시겠습니까? 한영이 말합니다: 밝은 임금은 능히 그 사랑하는 바를 사랑하고 어두운 임금은 곧 반드시 그 사랑하는 바를 위태롭게 한다. 무릇 문왕은 함께 아첨하고 비술하여 자기에게 친하고 붙는 자가 없던 것이 아니나 초연히 이에 태공을 뱃사람 가운데서 들어 그를 썼다. 어찌 그것을 사사로이 하여 친하게 함이겠는가(저본은 「之防」으로 됨)? 곧 다른 족의 사람이요 옛 인연으로 함인가 하면 곧 일찍이 서로 아는 바가 아니며 아름답고 좋음으로 함인가 하면 곧 태공은 나이 칠십이로 이가 옹옹히 빠졌다. 그러나 그를 좋아함은 문왕이 귀한 도를 세우고 귀한 이름을 밝히고자 하며 겸하여 천하를 제어하여 중국에 은혜를 입히고자 하였으나 혼자로는 할 수 없으니 그러므로 이 사람을 들어 그를 썼다. 귀한 도가 과연 서고 귀한 이름이 과연 밝아 겸하여 천하를 제어하고 나라를 세운 것이 칠십일이요 희성이 홀로 오십이를 차지하여 주의 자손이 진실로 미치고 미혹하지 않으면 천하의 드러난 제후가 되지 않는 자가 없었다. 무릇 이를 능히 그 사랑하는 바를 사랑한다 한다. 그러므로 오직 밝은 임금만이 능히 그 사랑하는 바를 사랑하고 어두운 임금은 반드시 그 사랑하는 바를 위태롭게 한다. 이를 말한 것이다. 한명이 춘신군을 보니 후문한 지 석 달만에야 볼 수 있었고 이야기가 끝나니 춘신군이 크게 그를 기뻐하였다. 한명이 다시 이야기하고자 하니 춘신군이 말합니다: 복이 이미 선생을 알았으니 선생은 쉬시오. 한명이 쵁쵁하여 말합니다: 명이 바라건대 군에게 물을 것이 있으나 두려워하여 둔하니 군의 성스러움이 요와 어떻게 다른지를 살피지 못합니다. 춘신군이 말합니다: 선생이 지나쳤다, 신이 어찌 족히 요에 해당하겠는가. 한명이 말합니다: 그러하다면 곧 군이 신을 헤아림이 순과 어떻게 다릅니까? 춘신군이 말합니다: 선생이 곧 순이다. 한명이 말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신이 청컨대 군을 위해 끝내 그것을 말하겠습니다. 군의 어짐은 참으로 요만 못하고 신의 능함은 순에 미치지 못합니다. 무릇 어진 순으로 성스러운 요를 섬긴 것이 삼 년만에야 서로 알았는데 지금 군이 하루아침에 신을 아시니 이는 군이 요보다 성스럽고 신이 순보다 어집니다. 춘신군이 말합니다: 좋다. 문리를 불러 한선생을 위해 객적을 기록하게 하여 닷새에 한 번 뵈었다. 한명이 말합니다: 군도 또한 기를 들으셨습니까? 무릇 기의 이가 다하여 소금 수레를 끌고 태행을 오르니 발굽이 펴지고 무릎이 꺾이며 꼬리가 잠기고 가죽이 허물어지며 흐르는 진이 땅에 뿌려지고 흰 땀이 서로 흐르며 바깥 비탈이 유연하여 가시를 지고 오르지 못하였다. 백락이 그것을 만나 수레에서 내려 붙잡고 그것을 울며 삼베 옷을 벗어 그것을 덮었다. 기가 이에 숙여 뿜고 우러러 울니 소리가 하늘에 닿아 금석의 소리에서 나온 듯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가 백락이 자기를 알아줌을 본 것이다. 지금 복의 불초함은 주부에 액하여 움집과 궁한 골목에 침전하고 비속한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군이 홀로 뜻하여 복을 씻고 불러내어 군을 위해 높이 울어 양에 굽히게 하실 뜻이 없습니까】. 자로·재아가 태어나서 백락의 천거를 만나지 못하고【주음:「樂」은 락과 같음】 미친 도살자를 만났으니 그러므로 군자가 그것을 슬퍼합니다. 유 같은 자가 그 죽음을 제대로 얻지 못하였으니 하늘이 나를 끊으셨구나【계로가 죽으니 공자가 그를 울며 말하기를 슬프다, 하늘이 나를 끊으셨다, 하늘이 나를 끊으셨다 하였다】. 공보가【주음:「父」는 보와 같음】 화독의 화에 연루되었으니【주음:「難」은 거성】 의롭지 않다 할 수 없고 구목이 송만의 재앙에 빠졌으니 어질지 않다 할 수 없습니다【《좌전》에 말합니다: 송의 화부독이 공보의 아내를 길에서 보아 눈으로 맞이하고 그를내며 아름답고 요염하다 말하였다. 송독이 공씨를 쳐서 공보를 죽이고 그 아내를 취하니 공이 노하고 독이 두려워하여 마침내 상공을 죽였다. 군자가 독을 여기기를 임금 없는 마음이 있어 그 뒤에 악으로 움직였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먼저 그 임금을 시해한 것을 기록하였다. 《춘추》에 말합니다: 봄 왕 정월 무신에 송독이 그 임금 여이와 그 대부 공보를 시해하였다. 《공양전》에 말합니다: 급이란 무엇인가? 연루됨이다. 임금을 시해한 자가 많은데 이를 버리고 연루된 자가 없는가? 말합니다: 있다, 구목·순식이 모두 연루되었다. 구목·순식을 버리고 연루된 자가 없는가? 말합니다: 있다. 있다면 이는 무엇으로 기록하는가? 어짐이다. 무엇으로 공보를 어질다 하는가? 공보는 의가 빛에 드러났다 할 만하다. 그 의가 빛에 드러남이 어떠한가? 독이 장차 상공을 시해하려 하니 공보가 살아 있으면 곧 상공을 얻어 시해할 수 없으니 그러므로 이에 먼저 공보의 집을 쳤다. 상공이 공보가 죽으면 자기가 반드시 죽을 줄을 알고 뛰어가 그를 구하니 모두 죽었다. 공보가 바른 빛으로 조정에 서면 곧 사람이 감히 지나가서 그 임금에게 화를 미치는 자가 없었다. 공보는 의가 빛에 드러났다 할 만하다. 〈의용편〉에 말합니다: 송민공의 신하 장만이 용력으로 들렸다. 만이 노와 싸우니 군사가 패하여 노에게 잡혀 그를 궁중에 가둔 지 몇 달 만에 그를 송에 돌려보냈다. 송민공이 부인과 장기를 두는데 곁에 있으니 공이 만에게 말합니다: 노군과 과인이 누가 아름다운가? 만이 말합니다: 노군이 아름다우니 천하의 제후가 오직 노군뿐이니 마땅히 그가 임금이 될 만하다. 민공이 부인에게 뽐내다가 질투하여 이로 말미암아 말하여 이르기를 너는 노의 포로인데 네가 무엇을 아는가 하였다. 만이 노하여 마침내 민공의 뺨을 쳐서 이가 입에서 떨어지고 목이 끊어져 죽었다. 구목이 임금이 죽음을 듣고 뛰어 이르러 만을 문에서 만나 칼을 들고 그를 꾸짖으니 만이 팔로 구목을 쳐서 그를 죽이니 이가 문설주에 박혔다. 구목은 강한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할 만하니 임금의 어려움에 달려가 발꿈치를 돌리지 않고 돌아보지 않았다. 《회남자·태족훈》에 말합니다: 군자는 비록 죽고 망하여도 그 이름은 멸하지 않고 소인은 비록 형세를 얻어도 그 죄는 없어지지 않는다】.

大夫曰今之學者無太公之能騏驥之才有以蜂蠆【音瘥】介毒而自害也【蠆螫蟲也介大也】東海成顒【音防】河東胡建是也二子者以術蒙舉起卒伍為縣令獨非自是無與合同引之不來推之不徃狂狷不遜忮【音寘】害不防刻轢【音力】公主侵陵大臣知其不可而強【音襁】行之慾以幹名所由不軌果沒其身未覩功業所至而見兩觀【去聲】之殃【家語曰孔子為魯司防攝行相事七日而誅亂政大夫少正卯戮之於兩觀之下崔豹古今注曰古者帝居毎門樹兩觀於前所以標表宮門登之可以徧觀故謂之觀懸法象處也】身得重罪不得以夀終徼【音古堯反】而以為知【去聲】訐【音居謁反】而以為直不孫【音遜】以為勇其遭難【去聲】固亦宜也

대부가 말합니다: 지금의 배우는 자는 태공의 재능이 없고 기롱의 재주가 없으면서 벌과 전의【주음:「蠆」은 차와 같음】 독을 큰 것으로 삼아 스스로 해치는 자가 있습니다【전은 쏘는 벌레요 개는 큼이다】. 동해의 성옹과 하동의 호건이 곧 그러합니다【주음: 저본의 주음 글자가 「防」으로 되어 본음을 알지 못함】. 두 사람은 재주로 천거를 입어 졸오에서 일어나 현령이 되었으나 홀로 그르다 하여 스스로 옳다 하고 함께 합동하는 자가 없으며 그것을 당겨도 오지 않고 그것을 밀어도 가지 않으며 광견하여 겸손하지 않고 시기하고 해쳐 규범을 따르지 않으며【주음:「忮」은 치와 같음】(저본은 「不防」으로 됨) 공주에게 각박하게 굴며【주음:「轢」은 력과 같음】 대신을 침해하고 능멸하며 그 불가함을 알면서도 억지로 그것을 행하여【주음:「強」은 강과 같음】 이름을 구하려 하였으니 따른 바가 규범이 아니라 과연 그 몸을 멸하였습니다. 아직 공업이 이른 바를 보지 못하고 양관의 재앙을 보았습니다【주음:「觀」은 거성】【《공자가어》에 말합니다: 공자가 노의 사구가 되어(저본은 「司防」으로 됨) 거행하여 재상의 일을 행하여 칠 일만에 정사를 어지럽힌 대부 소정묘를 주살하여 그를 양관 아래에서 죽였다. 최표 《고금주》에 말합니다: 옛날 제왕의 거처는 문마다 양관을 앞에 세웠으니 궁문을 표표하는 까닭이요 그것에 오르면 두루 볼 수 있어 그러므로 그것을 관이라 하고 법상을 매다는 곳이다】. 몸이 무거운 죄를 얻어 수로 끝나지 못하였습니다. 요행하면서 지혜롭다 하고【주음:「徼」은 고요반】【주음:「知」는 거성】 남의 잘못을 들추면서 곧다 하며【주음:「訐」는 거알반】 겸손하지 않으면서 용감하다 하니【주음:「孫」은 손과 같음】 그 어려움을 만남이【주음:「難」은 거성】 진실로 마땅합니다.

文學曰二公懐精白之心行忠正之道直已以事上竭力以狥公奉法推理不避彊禦不阿所親不貴妻子之養不顧私家之業然卒不能免於嫉妬之人為眾枉所排也其所以累不測之刑而功不遂也【張儀曰積羽沉舟群折軸眾口鑠金積毀銷骨莊生曰三人成虎十夫揉椎眾口所移毋翼而飛雜言曰百人操觽不可為固結千人謗獄不可為直辭萬人比非不可為士中山靖王曰夫眾喣漂山聚蚊成雷朋黨執虎十夫撓椎是以文王拘於羑里孔子阨於陳蔡此乃烝庶之成風増積之生害也】夫【音扶】公族不正則法令不行股肱不正則奸邪興起趙奢行之平原【趙奢傳曰趙奢者趙之田部吏也收租稅而平原君家不肯出租奢以法治之殺平原君用事者九人平原君怒殺奢奢因說曰君於趙為貴公子今縦君家而不奉公則法削法削則國弱國弱則諸侯加兵諸侯加兵是無趙也君安得有此富乎以君之貴奉公如法則上下平上下平則國彊國彊則趙固而君為貴戚豈於天下邪平原君以為賢言之於王王用之治國賦國賦大平民富而府庫實】範睢行之穰侯【範睢傳曰範睢日益親復說用數年矣因請間說曰臣居山東時聞齊之有田文不聞其有王也聞秦之有太后穰侯華陽髙陵涇陽不聞其有王也夫擅國之謂王能利害之謂王制殺生之威之謂王今太后多擅行不顧穰侯出使不報華陽涇陽等撃防無諱髙陵進退不請四貴備而國不危者未之有也為此四貴者下乃所謂無王也然則權安得不傾令安得従王出乎臣聞善治國者乃內固其威而外重其權穰侯使者操王之重決制於諸侯剖符於天下政適伐國莫敢不聼戰勝攻取則利歸於陶國弊御於諸侯戰敗則結怨於百姓而禍歸於社稷詩曰木實繁者披其枝披其枝者傷其心大其都者危其國尊其臣者卑其主崔杼淖齒管齊射王股擢王筋縣之於廟梁宿昔而死李兌管趙囚主父於沙丘百日而餓死今臣聞秦太后穰侯用事髙陵華陽涇陽佐之卒無秦王此亦淖齒李兌之類也且夫三代所以亡國者君專授政縦酒馳騁弋獵不聼政事其所授者妬賢嫉能御下蔽上以成其私不為主計而主不覺悟故失其國今自有秩以上至諸大吏下及王左右無非相國之人者是王獨立於朝臣竊為王恐萬世之後有秦國者非王子孫也昭王聞之大懼曰善於是廢太后逐穰侯髙陵華陽涇陽君於闗外秦王乃拜範睢為相収穰侯之印使歸陶因使縣官給車牛以徙千乘有餘到闗闗閱其寶器寶器珍怪多於王室秦封範睢以應號為應侯】二國治而兩家全故君過而臣正上非而下譏大臣正縣令何肯不反諸已而行【去聲】非於人執政之大失也夫【音扶】屈原之沉淵遭子椒之譛也【雜事萹曰屈原者名平楚之同姓大夫有博通之知清防之行懐王用之秦欲吞滅諸侯併兼天下屈原為楚東使於齊以結強黨秦國患之使張儀之楚貨楚貴臣上官大夫靳尚之屬上及令尹子蘭司馬子椒內賂夫人鄭袖共譛屈原屈原逐於外乃作離騷張儀因使楚絶齊許謝地六百里懐王信左右之奸謀聽張儀之邪說遂絶強齊之大輔楚既絶齊而秦欺以六里懐王大怒舉兵伐秦大戰者數秦兵大敗楚師斬首數萬級秦使人願以漢中地謝懐王不聽願得張儀而甘心焉張儀曰以一儀而易漢中地何愛儀請行遂至楚楚囚之上官大夫之屬共言之王王歸之是時懐王悔不用屈原之策以至於此於是複用屈原屈原使齊還聞張儀已去大為王言張儀之罪懐王使人追之不及後秦嫁女於楚與懐王歡為藍田之防屈原以為秦不可信願勿防群臣皆以為可防懐王遂防果見囚拘客死於秦為天下笑懐王子頃襄王亦知群臣諂誤懐王不察其罪反聼群讒之口復放屈原屈原疾闇王亂俗防防嘿嘿以是為非以清為濁不忍見於世將自投於淵漁父止之屈原曰世皆酔我獨醒世皆濁吾獨清吾獨聞之新浴者必振衣新沐者必彈冠又惡能以其冷冷更事之嘿嘿者哉吾寕投淵而死遂自投湘水汨羅之中而死】管子得行其道鮑叔之力也【韓非子曰管仲鮑叔相謂曰君亂甚矣必失國齊國之諸公子其可輔者非公子糾則小白也與子人事一人焉先達者相收管仲乃従公子糾鮑叔従小白國人果弒君小白先入為君魯人拘管仲而效之鮑叔言而相之故諺曰巫咸雖善祝不能自祓也秦醫雖善除不能自彈也以管仲之聖而待鮑叔之助此鄙諺所謂虜自賣裘而不售士自譽便而不信者也詩傳曰鮑叔薦管仲曰臣所不如管夷吾者五寛惠柔愛臣弗如也忠信可結於百姓臣弗如也制禮約法於四方臣弗如也決獄折中臣弗如也執枹鼓立於軍門使士卒勇臣弗如也齊桓公使管仲治國管仲對曰賤不能臨貴桓公以為上卿而國不治桓公曰何故管仲對曰貧不能使富桓公賜之齊國市租一年而國不治桓公曰何故對曰疏不能制親桓公立以為仲父齊國大安而遂覇天下孔子曰管仲之賢不得此三權者亦不能使其君南面而覇矣尊賢萹曰管仲桓公之賊也鮑叔以為賢於巳而進之為相七十言而說乃聼遂使桓公除報讐之心而委國政焉桓公垂拱無事而朝諸侯鮑叔之力也】今不覩鮑叔之力而見汩羅之禍雖欲以夀終惡【音烏】其能得乎

문학이 말합니다: 두 공이 정백한 마음을 품고 충정의 도를 행하여 자기를 바르게 하여 윗사람을 섬기고 힘을 다하여 공을 따르며 법을 받들고 이치를 미루어 강한 자를 피하지 않고 친한 바에 아부하지 않으며 처자의 기름을 귀하게 하지 않고 사가의 업을 돌아보지 않았으나 그러나 마침내 질투하는 사람을 면하지 못하여 여럿의 굽은 자에게 배척당하였습니다. 그 헤아릴 수 없는 형벌에 연루되어 공이 이루어지지 않은 까닭은【장의가 말합니다: 깃을 쌓으면 배를 가라앉히고 무리의 가벼움이 축을 꺾으며 여럿의 입이 쇠를 녹이고 허물을 쌓으면 뼈를 녹인다. 장자가 말합니다: 세 사람이 호랑이를 만들고 열 남편이 쇠망치를 주무르며 여럿의 입이 옮기는 바는 날개 없이 난다. 〈잡언〉에 말합니다: 백 명이 틈을 잡아도 굳게 맺을 수 없고 천 명이 옥을 비방하여도 곧은 말이 될 수 없으며 만 명이 그르다 붙여도 단정한 선비가 될 수 없다. 중산정왕이 말합니다: 무릇 여럿이 부면 산을 띄우고 모기를 모으면 우레를 이루며 붕당이 호랑이를 잡고 열 남편이 쇠망치를 휘두른다. 이로 말미암아 문왕이 유리에 갇히고 공자가 진채에서 곤하였으니 이는 곧 뭇 백성이 풍습을 이루고 쌓음을 더하여 해로움을 낳은 것이다】. 문장 첫머리의 부(夫)【주음:「夫」는 부와 같음】: 공족이 바르지 않으면 곧 법령이 행해지지 않고 고곡이 바르지 않으면 곧 간사하고 사특한 것이 일어납니다. 조사가 그것을 평원에 행하였고【《사기·조사열전》에 말합니다: 조사는 이는 조의 전부리로 조세를 거두는데 평원군의 집이 조세를 내기를 승낙하지 않았다. 사가 법으로 그것을 다스려 평원군의 일을 맡은 자 아홉 명을 죽였다. 평원군이 노하여 장차 사를 죽이려 하니 사가 이로 말미암아 설득하여 말합니다: 군은 조에서 귀한 공자인데 지금 군의 집을 방종하여 공을 받들지 않으면 곧 법이 깎이고 법이 깎이면 곧 나라가 약해지며 나라가 약하면 곧 제후가 군사를 더하고 제후가 군사를 더하면 이는 조가 없어집니다. 군이 어찌 이 부유함을 얻겠습니까? 군의 귀함으로 공을 받들어 법과 같이 하면 곧 상하가 평하고 상하가 평하면 곧 나라가 강하며 나라가 강하면 곧 조가 굳어지고 군이 귀척이 되는데 어찌 천하에 가볍게 여겨지겠습니까? 평원군이 어질다 여겨 그를 왕에게 말하니 왕이 그를 써서 국부를 다스리게 하니 국부가 크게 평하고 백성이 부유하여 부고가 찼다】. 범저가 그것을 양후에게 행하였습니다【《사기·범저열전》에 말합니다: 범저가 날로 더욱 친해져 다시 쓰여 설득한 지 수 년이 되어 이로 말미암아 틈을 청하여 설득하여 말합니다: 신이 산동에 있을 때 제의 전문이 있음을 들었으나 그 왕이 있음을 듣지 못하였고 진의 태후·양후·화양·고릉·형양이 있음을 들었으나 그 왕이 있음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무릇 나라를 독차지함을 왕이라 하고 능히 이롭게 하고 해롭게 함을 왕이라 하며 살리고 죽이는 위엄을 제어함을 왕이라 합니다. 지금 태후가 많이 제멋대로 행하여 돌아보지 않고 양후가 사신으로 나가도 보고하지 않으며 화양·형양 등이 쳐서 결정하여도 꺼림이 없고(저본은 「擊防」으로 됨) 고릉이 나아가고 물러나도 청하지 않습니다. 네 귀한 자가 갖추어져 나라가 위태롭지 않은 것은 아직 있지 않습니다. 이 네 귀한 자가 됨은 아래에 있으니 곧 이른바 왕이 없음입니다. 그러하다면 곧 권력이 어찌 기울지 않을 수 있으며 명령이 어찌 왕에게서 나올 수 있겠습니까? 신이 들으니 잘 나라를 다스리는 자는 곧 안으로 그 위엄을 굳게 하고 밖으로 그 권력을 무겁게 합니다. 양후의 사자가 왕의 중요함을 잡아 제후에게 결단하고 제제하며 천하에 부를 쪼개어 적을 정벌하고 나라를 침에 감히 듣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싸워 이기고 쳐서 취하면 곧 이익이 도에 돌아가고 나라가 폐하여 제후에게 막힙니다. 싸워 지면 곧 원한을 백성에게 맺고 재앙이 사직에 돌아갑니다. 《시》에 말합니다: 나무 열매가 무성한 자는 그 가지를 쳐내고 그 가지를 쳐내는 자는 그 심장을 상하게 하며 그 도읍을 크게 하는 자는 그 나라를 위태롭게 하고 그 신하를 존귀하게 하는 자는 그 주인을 비천하게 한다. 최저·순치가 제를 다스려 왕의 넓적다리를 쏘고 왕의 힘줄을 뽑아 그것을 묘의 대들보에 매달아 하루만에 죽었고 이태가 조를 다스려 주부를 사구에 가둔 지 백 일에 굶어 죽었습니다. 지금 신이 들으니 진의 태후·양후가 일을 맡고 고릉·화양·형양이 그를 도우니 마침내 진왕이 없으니 이 또한 순치·이태의 무리입니다. 또 무릇 삼대가 나라를 잃은 까닭은 임금이 오로지 정사를 맡기고 술을 방종하여 활쏘기와 사냥을 달리며 정사를 듣지 않고 그 맡긴 바가 어짐을 질투하고 능함을 시기하여 아래를 부리고 위를 가려 그 사사로움을 이루며 임금을 위해 헤아리지 않고 임금이 깨닫지 못하여 그 나라를 잃은 까닭입니다. 지금 자로부터 질서 있는 관리 이상으로 여러 대리에 이르고 아래로 왕의 좌우에 미치기까지 아닌 자가 없이 모두 상국의 사람이니 이는 왕이 조정에 홀로 서는 것이니 신이 저가 왕을 위해 만 세 뒤에 진나라를 가지는 자가 왕의 자손이 아닐까 두렵습니다. 소왕이 이를 듣고 크게 두려워하여 말합니다: 좋다. 이에 태후를 폐하고 양후·고릉·화양·형양군을 관 밖으로 쫓았다. 진왕이 이에 범저를 재상으로 삼고 양후의 인을 거두어 도로 돌아가게 하며 이로 말미암아 현관으로 하여금 수레와 소를 주어 옮기게 하니 천 승이 넘었다. 관에 이르니 관이 그 보배 그릇을 살피니 보배 그릇과 진기하고 괴이한 것이 왕실보다 많았다. 진이 범저를 응에 봉하여 호를 응후라 하였다】. 두 나라가 다스려지고 두 집이 온전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임금이 허물 있으면 신하가 바로잡고 위가 그르면 아래가 비평합니다. 대신이 바르면 현령이 어찌 스스로에게 돌아가지 않고 남에게 그름을 행하겠습니까【주음:「行」은 거성】. 정사를 잡은 자의 큰 잘못입니다. 문장 첫머리의 부(夫)【주음:「夫」는 부와 같음】: 굴원이 못에 빠짐은 자초의 참소를 만난 것입니다【〈잡사편〉에 말합니다: 굴원은 이름이 평으로 초의 같은 성의 대부로 넓게 통하는 지혜와 맑고 청렴한 행실이 있었다(저본은 「淸防」으로 됨). 회왕이 그를 썼다. 진이 제후를 삼켜 멸하고 천하를 병겸하고자 하였다. 굴원이 초를 위해 동쪽으로 제에 사신하여 강한 당을 맺으니 진나라가 그것을 근심하여 장의를 초에 가게 하고 초의 귀신인 상관대부·근상의 무리에게 재물을 주며 위로 영윤 자란·사마 자초에 이르고 안으로 부인 정수에게 뇌물하여 함께 굴원을 참소하였다. 굴원이 밖으로 쫓겨나 이에 《이소》를 지었다. 장의가 이로 말미암아 초로 하여금 제와 끊게 하고 땅 육백 리를 사한다 하였다. 회왕이 좌우의 간사한 모의를 믿고 장의의 사특한 말을 들어 마침내 강한 제의 큰 보좌를 끊었다. 초가 이미 제와 끊으니 진이 속여 육 리로 하였다. 회왕이 크게 노하여 군사를 일으켜 진을 치니 크게 싸운 것이 여러 번으로 진의 군사가 초의 군사를 크게 깨뜨려 수만 급을 베었다. 진이 사람을 보내 한중의 땅으로 사과하고자 하니 회왕이 듣지 않고 장의를 얻어 마음을 달래고자 하였다. 장의가 말합니다: 한 의로 한중의 땅을 바꾸는데 무엇을 아끼겠는가? 청컨대 가겠습니다. 마침내 초에 이르니 초가 그를 가두었으나 상관대부의 무리가 함께 그를 왕에게 말하니 왕이 그에게 돌려보냈다. 이 때 회왕이 굴원의 계책을 쓰지 않아 이에 이른 것을 후회하여 이에 다시 굴원을 썼다. 굴원이 제에 사신하고 돌아와 장의가 이미 떠남을 듣고 크게 왕을 위해 장의의 죄를 말하였다. 회왕이 사람을 보내 그를 쫓게 하였으나 미치지 못하였다. 뒤에 진이 딸을 초에 시집보내 회왕과 즐겨 남전의 회를 삼았다(저본은 「之防」으로 됨). 굴원이 진을 믿을 수 없다 여겨 가지 말기를 바랐으나(저본은 「勿防」으로 됨) 여러 신하가 모두 따를 수 있다 여겨(저본은 「可防」으로 됨) 회왕이 마침내 가서(저본은 「遂防」으로 됨) 과연 잡혀 갇히어 진에서 객사하여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회왕의 아들 경양왕도 또한 여러 신하가 회왕을 아첨하고 잘못하게 함을 알았으나 그 죄를 살피지 않고 도리어 무리의 참소한 입을 들어 다시 굴원을 쫓아냈다. 굴원이 어두운 임금이 풍속을 어지럽힘을 미워하여 혼혼묵묵하고(저본은 「防防」으로 됨) 옳음을 그름으로 하고 맑음을 흐림으로 하니 세상에서 봄을 차지 못하여 장차 스스로 못에 던지려 하니 어부가 그를 말렸다. 굴원이 말합니다: 세상이 모두 취하고 나 홀로 깨며 세상이 모두 흐리고 나 홀로 맑다. 내가 홀로 들으니 새로 목욕한 자는 반드시 옷을 털고 새로 머리 감은 자는 반드시 관을 턴다 하였으니 또 어찌 능히 그 맑고 맑음으로 묵묵함을 다시 섬기겠는가? 나는 차라리 못에 던져 죽으리라. 마침내 스스로 상수 미라 가운데에 던져 죽었다】. 관자가 그 도를 행할 수 있었던 것은 포숙의 힘입니다【한비자가 말합니다: 관중·포숙이 서로 말하여 이르기를 임금이 어지러움이 심하니 반드시 나라를 잃을 것이다. 제나라의 여러 공자 가운데 그 도울 만한 자는 공자 규가 아니면 소백이니 그대와 사람으로 하여금 한 사람을 섬기게 하여 먼저 통달한 자가 서로 거두자 하였다. 관중이 이에 공자 규를 따르고 포숙이 소백을 따랐다. 국인이 과연 임금을 시해하니 소백이 먼저 들어가 임금이 되었다. 노 사람이 관중을 묶어 그를 바치니 포숙이 말하여 그를 재상으로 삼았다. 그러므로 속언에 말하기를 무함이 비록 잘 빌어도 스스로 불결함을 씻지 못하고 진의 의원이 비록 잘 제거해도 스스로 침을 놓지 못한다 하였다. 관중의 성스러움으로도 포숙의 도움을 기다렸으니 이는 비루한 속언의 이른바 노예가 스스로 가죽옷을 팔아도 팔리지 않고 선비가 스스로 편리하다 칭하여도 믿어지지 않음이다. 《한시외전》에 말합니다: 포숙이 관중을 천거하여 말합니다: 신이 관이오만 못한 것이 다섯입니다: 너그럽고 은혜롭고 부드럽고 사랑함은 신이 미치지 못하고 충신으로 백성에게 맺을 수 있는 것은 신이 미치지 못하며 예를 제도하고 약을 사방에 법하는 것은 신이 미치지 못하고 옥을 결정하고 절충하는 것은 신이 미치지 못하며 북채를 잡고 군문에 서서 사졸을 용감하게 하는 것은 신이 미치지 못합니다. 제환공이 관중으로 하여금 나라를 다스리게 하니 관중이 대답하여 말합니다: 천한 자는 귀한 자에게 임하지 못합니다. 환공이 그를 상경으로 삼았으나 나라가 다스려지지 않았다. 환공이 말합니다: 무슨 까닭인가? 관중이 대답하여 말합니다: 가난한 자는 부유한 자를 부리지 못합니다. 환공이 그에게 제나라의 저자의 조세 일 년을 주었으나 나라가 다스려지지 않았다. 환공이 말합니다: 무슨 까닭인가? 대답하여 말합니다: 소원한 자는 친한 자를 제어하지 못합니다. 환공이 세워 중보로 삼으니 제나라가 크게 편안하고 마침내 천하에 패하였다. 공자가 말합니다: 관중의 어짐이 이 세 가지 권을 얻지 못하였다면 능히 그 임금으로 하여금 남면하여 패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존현편〉에 말합니다: 관중은 환공의 원수이다. 포숙이 자기보다 어질다 여겨 그를 천거하여 재상으로 삼으니 칠십 번 말하여 설득하여야 들었고 마침내 환공으로 하여금 원수 갚는 마음을 없애고 국정을 맡기게 하였다. 환공이 두 손을 늘어뜨려 일이 없이 제후에게 조를 받으니 포숙의 힘이다】. 지금 포숙의 힘을 보지 못하고 미라의 재앙을 보니 비록 수로 끝나고자 한들 어찌【주음:「惡」는 오와 같음】 그 능히 얻겠습니까.

遵道第二十三

준도(遵道) 제이십삼

大夫曰御史御史未應謂丞相【去聲】史曰文學結髪學語服膺不捨辭若循環轉若陶鈞【結髪猶言總角少時也循環言其旋繞徃來無窮也陶家名轉者為鈞蓋取周囘均調之義也】文繁於春華無効於抱風飾虛言以亂實道古以害今従之則縣官用廢虛言不可實而行之不従文學以為非也眾口囂囂不可勝【音升】聽諸卿都大府曰久矣通先古明當世今將何従而可矣丞相史進曰晉文公譎而不正齊桓公正而不譎所由不同俱歸於伯【音覇】而必隨古不革襲【音集】故不改是文質不變而椎車尚在也【齊俗訓曰昔齊桓公合諸侯以乗車退誅於國以斧鉞晉文公合諸侯以革車退行於國以禮義桓公前柔而後剛文公前剛而後柔然而令行乎天下權制諸侯鈞者審於勢之變也韓非子曰古者寡事而備簡樸陋而不盡故有珧銚而椎車者古者人寡而相親物多而利易讓故有揖讓而傳天下者然則行揖讓髙慈惠而道推仁厚皆椎政也處多事之時用寡事之器非智者之備也當大爭之世而循揖讓之軌非聖人之治也故智者不乗椎車聖人不行椎政也】故或作之或述之然後法令調於民而器械便於用也孔對三君殊意晏子相【去聲】三君異道非苟相反所務之時異也【韓非子曰葉公子髙問政於仲尼仲尼曰政在恱近而來逺魯哀公問政於仲尼仲尼曰政在選賢齊景公問政於仲尼仲尼曰政在節財三公出子貢問曰三公問夫子政一也夫子對之不同何也仲尼曰葉都大而國小民有背心故曰政在恱近而來逺魯哀公有大臣三人外障距諸侯四鄰之士內比周而以愚其君使宗廟不掃除社稷不血食者必是三臣也故曰政在選賢齊景公築雍門為路寢一朝而以三百乗之家賜者三故曰政在節財漢武帝曰五帝不相復禮三代不同法所繇殊路而建徳一也葢孔子對定公以來逺哀公以論臣景公以節用非期不同所急異務也臣瓉曰論語及韓子皆言葉公問政於孔子孔子答以恱近來逺今雲定公與二書異晏嬰傳曰晏平仲嬰者萊之夷維人也事齊靈公莊公景公以節儉力行重於齊既相齊食不重肉妾不衣帛其在朝君語及之即危言語不及之即危行國有道即順命無道即衡命以此三世顕名於諸侯晏子春秋曰梁丘據問晏子曰子事三君君不同心子俱従焉仁人固多心乎對曰一心可以事百君百心不可以事一君王恢曰五帝不相同樂三王不相襲禮者非故相反也各因世之宜也教與時變備與敵化守一而不易不足以子民】公卿既定大業之路建不竭之本願無顧細故之語牽儒墨論也

대부가 말합니다: 어사여, 어사가 아직 응답하지 않았는데 곧 승상사에게【주음:「相」은 거성】 말합니다: 문학의 선비가 머리를 올린 때로부터 말을 배워 굳게 마음에 새겨 놓기를 승낙하지 않으니 사령이 순환처럼 돌고 돌며 또 도르래처럼 둥글게 돌아 그치지 않습니다【결발은 오히려 총각 소년 때를 말한 것이다. 순환은 그것이 돌아 왕래하여 다함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도가는 돌림판을 균이라 하는데 이는 둘러 돌아 고르게 조절함의 뜻을 취한 것이다】. 문사가 봄꽃보다 번잡하나 실제의 효험이 없어 가서 바람을 안는 것과 같으며 빈 말로 실제의 일을 어지럽히고 옛 일을 칭하여 당금을 방해합니다. 그들을 따르면 현관의 비용이 장차 폐할 것이니——빈 말은 실제의 일로 삼아 행할 수 없습니다——따르지 않으면 문학의 선비가 또한 그르다 여깁니다. 여럿의 입이 시끄러워 들어도 다 들을 수 없습니다【주음:「勝」은 승과 같음】. 여러 경이 모두 대부 가운데서 기다린 지 오래되어 옛날에 통달하고 당세를 밝게 아는데 지금 장차 무엇을 따라야 옳겠습니까? 승상사가 나아가 말합니다: 진문공은 간사하고 바르지 않았고 제환공은 바르고 간사하지 않았으니 따른 바가 같지 않았으나 모두 패업에 돌아갔습니다【주음:「伯」은 패와 같음】. 만일 반드시 옛것을 따라 변혁하지 않고 옛 법을 답습하여 고치지 않으면 곧 이는 문질이 변하지 않고 거친 수레가 오히려 쓰이는 것입니다【〈제속훈〉에 말합니다: 지난날 제환공이 제후를 모을 때 승거를 쓰고 국내로 물러나서는 도리어 부월로 주벌하였고 진문공이 제후를 모을 때 혁거를 쓰고 국내로 물러나서는 도리어 예의로 미루어 행하였다. 환공은 먼저 부드럽고 뒤에 굳셌고 문공은 먼저 굳세고 뒤에 부드러웠으나 그러나 명령이 천하에 행해지고 권력이 제후를 제어하였으니 관건이 모두 시세의 변함을 살피는 데 있었다. 한비자가 말합니다: 옛날에는 일이 적고 설비가 간소하여 질박하고 누추하여 완비하지 않았으니 그러므로 요요와 추거가 있었다. 옛날에는 사람이 적어 서로 친하고 물건이 많아 이익이 쉽게 서로 양보하니 그러므로 읍하고 양보하여 천하를 전하는 자가 있었다. 그러하다면 곧 읍양을 행하고 자혜를 높이며 어짊을 미는 것을 칭하는 것은 모두 추정이다. 일이 많은 때에 처하여 일이 적은 때의 기구를 쓰는 것은 지혜로운 자의 갖춤이 아니요 큰 다툼의 세상을 당하여 읍양의 궤도를 따르는 것은 성인의 다스림이 아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는 추거를 타지 않고 성인은 추정을 행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시작을 창시하는 사람이 있고 진술하여 이루는 사람이 있어 그 뒤에야 법령이 곧 백성에 맞게 조절되고 기계가 곧 쓰임에 편합니다. 공자가 세 분의 국군에게 대응하여 뜻이 같지 않았고 안자가 세 분의 국군을 보좌하여【주음:「相」은 거성】 법이 같지 않았으니 함부로 서로 반대함이 아니라 힘쓰는 바의 시세가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한비자가 말합니다: 엽공자고가 중니에게 정사를 물으니 중니가 말합니다: 정사는 가까운 자를 기쁘게 하여 먼 자를 오게 함에 있습니다. 노애공이 중니에게 정사를 물으니 중니가 말합니다: 정사는 어진 이를 가림에 있습니다. 제경공이 중니에게 정사를 물으니 중니가 말합니다: 정사는 재물을 절약함에 있습니다. 세 공이 나간 뒤에 자공이 묻습니다: 세 공이 부자에게 묻는 정사가 같은데 부자의 대답이 다른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중니가 말합니다: 엽은 도읍이 크고 나라가 작아 백성이 등지고 떠나는 마음이 있으니 그러므로 말하기를 정사는 가까운 자를 기쁘게 하여 먼 자를 오게 함에 있다 하였다. 노애공에게는 대신 세 사람이 있어 밖으로는 사방의 이웃 제후의 선비를 막고 안으로는 서로 비호하여 그 임금을 어리석게 하여 종묘로 하여금 쓸지 않게 하고 사직으로 하여금 제물을 먹지 않게 하는 자는 반드시 이 세 신하이니 그러므로 말하기를 정사는 어진 이를 가림에 있다 하였다. 제경공은 옹문을 쌓고 노침을 지어 하루아침에 삼백 승의 집으로 사람에게 준 것이 세 번이니 그러므로 말하기를 정사는 재물을 절약함에 있다 하였다. 한무제가 말합니다: 오제가 예를 서로 되풀이하지 않고 삼대가 법을 같이하지 않았으나 따른 바의 길이 다르나 세운 바의 덕은 하나이다. 공자가 정공에게는 먼 자를 오게 함으로 대하고 애공에게는 신하를 논함으로 대하며 경공에게는 쓰임을 절약함으로 대하였으니 함께 마음을 두고 다르게 한 것이 아니라 급한 바의 일이 같지 않기 때문이다. 신찬이 말합니다: 《논어》와 한자가 모두 엽공이 공자에게 정사를 물었다 하고 공자가 가까운 자를 기뻐하고 먼 자가 옴으로 대답하였다 하였는데 지금은 정공이라 하니 두 책과 다르다. 《안영전》에 말합니다: 안평중 영은 이는 내지 이유 사람으로 제의 영공·장공·경공을 섬겨 절검하고 힘써 행함으로 제에서 중히 여겨졌다. 이미 제의 재상이 되어 음식에 고기를 겹치지 않고 첩이 비단을 입지 않았다. 조정에 있을 때 임금이 그에게 미치면 곧 위험한 말을 하고 임금이 그에게 미치지 않으면 곧 위험한 행동을 하였으며 나라에 도가 있으면 곧 명령을 따르고 도가 없으면 곧 명령을 저울질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삼 세대가 제후에 이름을 드러냈다. 《안자춘추》에 말합니다: 양구거가 안자에게 묻습니다: 그대는 세 분의 임금을 섬겼는데 임금들이 마음이 같지 않은데 그대가 모두 능히 따르니 어진 사람은 본래 마음이 많은가? 대답하여 말합니다: 한 마음으로는 백 임금을 섬길 수 있고 백 마음으로는 한 임금을 섬길 수 없다. 왕괴가 말합니다: 오제가 악을 서로 같이하지 않고 삼왕이 예를 서로 답습하지 않은 것은 뜻을 두고 서로 반대한 것이 아니라 각각 당세의 마땅함을 따른 것이다. 가르침은 때를 따라 변하고 갖춤은 적을 따라 변화하니 하나를 지키고 바꾸지 않으면 백성을 어루만지고 기르기에 족하지 않다】. 공경이 이미 큰 업의 길을 정하고 마르지 않는 근본을 세웠으니 바라건대 작은 일의 말을 돌아보지 말고 유묵의 의론에 끌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文學曰師曠之調五音不失宮商聖王之治世不離【去聲】仁義故有改制之名無變道之實【修務訓曰昔晉平公令官為鍾鍾成而示師曠師曠曰鍾音不調平公曰寡人以示工工皆以為調而以為不調何也師曠曰使後世無知音者則巳若有知音者必知鍾之不調故師曠之慾調鍾也以為後之有知音者也陳元曰夫明者獨見不惑於朱紫聰者獨聞不謬於清濁故離朱不為巧移目師曠不為新聲易耳董仲舒曰三王之道所祖不同非其相反將以捄溢扶衰所衰之變然也故孔子曰無為而治者其舜乎改正朔易服色以順天命而已其餘盡循堯道何更為哉故王者有改制之名亡變道之實】上自黃帝下及三王莫不明徳教謹庠序崇仁義立教化此百世不易之道也殷周因修而昌秦王變法而亡【主術訓曰今夫權衡防矩一定而不易不為秦楚變莭不為呉越改容常一而不邪方行而不流一日刑之萬世傳之而以無為為之故國有亡主而世無廢道人有困窮而理無不通語曰家有常業雖飢不餓國有常法雖危不亡】詩云雖無老成人尚有典刑言法教故沒而存之舉而貫之貫而行之何更為哉【牛賛曰國有固籍兵有常經變籍則亂失經則弱故利不百者不變俗功不什者不易器杜摯曰法古無過修禮無邪甘龍曰聖人不易民而教智者不變法而動因民而教者不勞而成功緣法而治者吏習而民安之】丞相【去聲】史曰說西施之美無益於容道堯舜之徳無益於治【寰宇紀曰西施施其姓也防稽諸暨縣有東施家西施家越王於苧蘿山得采薪之女西施飾以羅縠教以行步習於土城臨于都巷三年學服而獻吳王吳得西施為築姑蘓臺說山訓曰畫西施之面美而不可說規孟賁之目大而不可畏】今文學不言所為治而言以治之無功猶不言耕田之方美富人之囷【音悃】倉也夫【音扶】欲粟者務時欲治者因世【趙武靈王曰古今不同俗何古之法帝王不相襲何禮之循伏羲神農教而不誅黃帝堯舜誅而不怒及至三王觀時而製法因事而制禮法度制令各順其宜衣服器械各便其用故理世不一其道便國不必法古聖人之興也不相襲而王夏殷之衰也不易禮而滅然則反古未可非而循禮未足多也故聖與俗流賢與變俱諺曰以書為御者不盡馬之情以古制今者不逹事之變故循法之功不足以髙世法古之學不足以制今】故商君昭然獨見存亡不可與世俗同者為其沮功而多近也庸人安其故而愚者果所聞【衛鞅曰聖人苟可以強國不法其故苟可以利民不循其禮常人安於故俗學者溺於所聞以此兩言居官守法可也非所以論於法之外也三代不同禮而王五伯不同法而霸智者作法愚者制焉賢者更禮不肖者拘焉】故舟車之始使民三年而後安之商君之法立然後民信之【呂氏春秋曰舟車之始見也三世而後安之夫聞善豈易哉故聼無事治衞鞅傳曰孝公既用衞鞅以衞鞅為左庶長卒定變法之令令既具未布恐民之不信也乃立三丈之木於國都市南門募民有能徙置北門者予十金民怪之莫敢徙復曰能徙者予五十金有一人徙之輒予五十金以明不欺卒下令令行於民期年秦民之國都言初令之不便者以千數於是太子犯法衞鞅曰法之不行自上犯之將法太子太子君嗣也不可施刑刑其傅公子防黥其師公孫賈明日秦人皆趨令行之十年秦民大說道不拾遺山無盜賊家給人足民勇於公戰怯於私闘鄉邑大治秦民初言令不便者有來言令便者衞鞅曰此皆亂化之民也盡遷之於邉城其後民莫敢議令】孔子曰可與共學未可與權文學可令扶防循刻非所與論道術之外也

문학이 말합니다: 사광이 오음을 고름에 궁상을 떠나지 않고 성왕이 세상을 다스림에 인의를 떠나지 않아【주음:「離」는 거성】 그러므로 제도를 바꾼 명칭이 있고 도를 바꾼 실질이 없습니다【〈수무훈〉에 말합니다: 지난날 진평공이 관리로 하여금 종을 주조하게 하여 종이 이루어지니 사광에게 보였다. 사광이 말합니다: 종의 소리가 고르지 않습니다. 평공이 말합니다: 과인이 공장에게 보였는데 공장이 모두 고르다 하는데 그대는 도리어 고르지 않다 하니 무엇 때문인가? 사광이 말합니다: 만일 후세에 소리를 아는 자가 없으면 곧 그칠 뿐이나 소리를 아는 자가 있으면 반드시 종이 고르지 않음을 알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광이 종을 고르려 함은 뒤에 소리를 아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진원이 말합니다: 밝은 자는 홀로 보아 붉은 자주에 미혹되지 않고 총명한 자는 홀로 들어 맑고 흐림에서 잘못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주가 공교한 속임으로 눈을 바꾸지 않고 사광이 새 소리로 귀를 바꾸지 않는다. 동중서가 말합니다: 삼왕의 도가 조상으로 삼는 바가 같지 않은 것은 서로 반대함이 아니요 이는 넘침을 구하고 쇠함을 도우며 구하고자 하는 바의 변화가 이와 같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공자가 말하기를 하지 않고도 다스려지는 자는 아마 순인가 하였다. 정삭을 바꾸고 옷 빛깔을 바꾸어 천명을 따를 뿐이요 그 나머지는 모두 요의 도를 따르는데 어찌 반드시 고치겠는가? 그러므로 왕은 제도를 바꾼 이름이 있고 도를 바꾼 실이 없다】. 위로 황제로부터 아래로 삼왕에 이르기까지 덕의 가르침을 밝히고 학교를 삼가며 인의를 높이고 교화를 세우지 않은 자가 없으니 이는 백 세대에 바뀌지 않는 도입니다. 은주는 따라 닦아 밝혀 창성하였고 진왕은 법을 바꾸어 멸망하였습니다【〈주술훈〉에 말합니다: 저울과 규모와 자와 곱자는(저본은 「防矩」으로 됨) 정해져 바뀌지 않고 진초를 위해 절개를 바꾸지 않으며 오월을 위해 용모를 바꾸지 않고 늘 하나로 삿되지 않으며 바르게 행하여 흐르지 않으니 하루에 그것을 법으로 하면 만 세에 그것을 전하여 하지 않음으로 그것을 한다. 그러므로 나라에 망한 임금이 있어도 세상에 폐할 도가 없고 사람에게 곤궁함이 있어도 이치에 통하지 않음이 없다. 속담에 말하기를 집에 늘 하는 업이 있으면 비록 주려도 굶지 않고 나라에 늘 있는 법이 있으면 비록 위태로워도 망하지 않는다 하였다】. 《시》에 말하기를 비록 늙고 어진 사람이 없어도 오히려 법전과 형벌이 있다 하였으니 이는 법과 가르침이 비록 옛것이고 옛 사람이 비록 세상을 떠났어도 오히려 보존하여 들어 그것을 꿰뚫고 꿰뚫어 그것을 행하면 어찌 반드시 고치겠습니까【우찬이 말합니다: 나라에 굳은 장부가 있고 군사에 늘 있는 법도가 있어 장부를 바꾸면 곧 어지럽고 법도를 잃으면 곧 약하다. 그러므로 이익이 백 배가 아니면 풍속을 바꾸지 않고 공이 열 배가 아니면 기구를 바꾸지 않는다. 두지가 말합니다: 옛것을 본받는 것은 허물이 없고 예를 닦는 것은 삿된 그름이 없다. 감룡이 말합니다: 성인은 백성을 바꾸지 않고 가르치고 지혜로운 자는 법을 바꾸지 않고 움직인다. 백성을 따라 가르치는 자는 수고하지 않고 공을 이루고 법을 따라 다스리는 자는 관리가 익숙하고 백성이 편안하다】. 승상사가 말합니다【주음:「相」은 거성】: 서시의 아름다움을 칭찬하여도 자기의 용모에 이익이 없고 요순의 덕을 칭찬하여도 당세의 다스림에 이익이 없습니다【《환우기》에 말합니다: 서시는 시가 그 성이다. 회계의 제기현에(저본은 「防稽」으로 됨) 동시가와 서시가가 있다. 월왕이 저라산에서 나무하는 여자 서시를 얻어 비단으로 꾸미고 걸음걸이로 가르치며 토성에서 익히고 도읍의 골목에 임하여 삼 년에 배움이 이루어져 그녀를 오왕에게 바쳤다. 오가 서시를 얻어 그녀를 위해 고소대를 쌓았다. 〈설산훈〉에 말합니다: 서시의 얼굴을 그리는 것은 아름답나 기뻐할 수 없고 맹분의 눈을 콤파스로 그리는 것은 크나 두려워할 수 없다】. 지금 문학의 선비가 어떻게 하여 다스릴 것인가를 강론하지 않고 도리어 어떤 다스리는 도를 써서 공효가 없다고 강론하는 것은 비유컨대 밭 가는 방법을 강론하지 않고 다만 부자의 곳간을【주음:「囷」은 곤과 같음】 자랑하는 것과 같습니다. 문장 첫머리의 부(夫)【주음:「夫」는 부와 같음】: 좁쌀을 얻고자 하는 자는 힘써 시령에 맞추고 다스리고자 하는 자는 힘써 시세를 따릅니다【조무령왕이 말합니다: 고금이 풍속을 같이하지 않는데 무슨 옛 법이 본받을 것이 있겠는가? 제왕이 서로 답습하지 않는데 무슨 예가 따를 것이 있겠는가? 복희·신농은 가르치고 주살하지 않았고 황제·요·순은 주살하고 노하지 않았으며 삼왕에 이르러는 때를 보고 법을 제정하고 일을 따라 예를 제정하여 법도와 제령이 각각 그 마땅함을 따르고 의복과 기계가 각각 그 쓰임에 편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세상을 다스림은 반드시 한 가지 도를 같이하지 않고 나라에 편리함은 반드시 옛날을 본받지 않는다. 성인이 일어나 서로 답습하지 않고 왕이라 불렸고 하은이 쇠하고 망하여 예를 고치지 않고 멸망하였다. 그러하다면 곧 옛것을 거스름이 아직 그르다 할 수 없고 예를 따름이 아직 칭찬할 만하지 않다. 그러므로 성스러운 자는 풍속과 함께 흐르고 어진 자는 변함과 함께한다. 속언에 말하기를 책을 가지고 말을 부리는 자는 말의 정을 다하지 못하고 옛것으로 지금을 제어하는 자는 일의 변함을 통달하지 못한다 하였다. 그러므로 법을 따르는 공으로는 세상에 높기에 족하지 않고 옛것을 본받는 배움으로는 지금을 제어하기에 족하지 않다】. 그러므로 상군이 뚜렷이 홀로 존재와 망함을 보았으나 세속과 같이할 수 없음은 이는 세속이 공을 막고 가까운 이익을 많이 하기 때문입니다. 평범한 사람은 옛 늘 하던 대로에 편안하고 어리석은 자는 들은 바를 고집합니다【위양이 말합니다: 성인은 진실로 나라를 강하게 할 수 있으면 옛것을 본받기를 반드시 하지 않고 진실로 백성에게 이롭게 할 수 있으면 그 예를 따르기를 반드시 하지 않는다. 평범한 사람은 옛 풍속에 편안하고 배우는 자는 들은 바에 빠지니 이 두 구절로 관직에 있어 법을 지키면 곧 되나 이는 법 밖의 일을 토론하는 데 쓰는 것이 아니다. 삼대가 예를 같이하지 않고 왕이라 불렸고 오패가 법을 같이하지 않고 패라 불렸다. 지혜로운 자는 법을 만들고 어리석은 자는 제어당하며 어진 자는 예를 고치고 불초한 자는 붙들어 지킨다】. 그러므로 배와 수레가 처음 쓰이기 시작하여 백성으로 하여금 삼 년만에야 편안하였고 상군의 법이 세워지고 그 뒤에야 백성이 믿고 따랐습니다【《여씨춘추》에 말합니다: 배와 수레가 나타나기 시작하여 삼 세대만에야 편안하였다. 착함을 들음이 어찌 쉬운가? 그러므로 일 없는 다스림을 듣는다. 《위양전》에 말합니다: 효공이 이미 위양을 써서 위양으로 좌서장을 삼아 마침내 법을 바꾸는 명령을 정하였다. 명령이 이미 갖추어졌으나 아직 반포하지 않고 백성이 믿지 않을까 두려워 곧 삼 장의 나무를 나라 도읍의 저자 남문에 세워 능히 그것을 북문으로 옮기는 자를 모집하여 십금을 주었다. 백성이 그것을 괴이하게 여겨 감히 옮기는 자가 없었다. 또 말하기를 능히 옮기는 자는 오십금을 주겠다 하니 한 사람이 그것을 옮기니 곧 오십금을 주어 속이지 않음을 표하였다. 마침내 명령을 내렸다. 명령이 백성에게 행해진 지 일 년에 진의 백성이 나라 도읍에 이르러 처음 명령이 불편하다 하는 자가 수천으로 헤아렸다. 이 때 태자가 법을 범하였다. 위양이 말합니다: 법이 행해지지 않는 까닭은 위로부터 먼저 범하기 때문이다. 장차 태자를 법으로 다스리려 하였으나 태자는 임금의 후사라 형벌을 베풀 수 없어 곧 그 스승 공자건에게 형벌을 가하고(저본은 「公子防」으로 됨) 그 스승 공손가에게 묵형을 하였다. 이튿날 진 사람이 모두 명령에 달렸다. 추행한 지 십 년에 진의 백성이 크게 기뻐하여 길에서 떨어진 것을 줍지 않고 산에 도적이 없으며 집이 넉넉하고 사람이 풍족하여 백성이 공적인 싸움에 용감하고 사적인 싸움에 겁내어 고을이 크게 다스려졌다. 진의 백성으로 당초에 명령이 불편하다 하던 자 가운데 또 와서 명령이 편하다 하는 자가 있으니 위양이 말합니다: 이들은 모두 교화를 어지럽히는 백성이니 모두 변방의 성으로 옮기라. 이 뒤에 백성이 감히 다시 법령을 의론하지 않았다】. 공자가 말합니다: 함께 배울 수는 있어도 아직 함께 저울질할 수는 없다. 문학의 선비는 그들로 하여금 자를 붙들고 눈금을 따르게 할 수는 있으나(저본은 「扶防循刻」로 됨) 능히 그들과 도술 밖을 토론할 사람이 아닙니다.

文學曰君子多聞闕疑述而不作聖達而謀大叡【音銳】知【去聲】而事寡是以功成而不隳名立而不小人知【去聲】淺而謀大羸【音縲】弱而任重故中道而廢蘓秦商鞅是也【汜論曰蘓秦匹夫徒步之人也靻蹻羸葢経營萬乘之主服諾諸侯然不自免於車裂之患蔡澤曰商君為孝公平權衡正度量調輕重決裂阡陌教民耕戰是以兵動而地廣兵休而國富故秦無敵於天下立威諸侯功已成矣遂以車裂】無先王之法非聖人之道而因於已故亡易曰小人處盛位雖髙必崩不盈其道不恆其徳而能以善終身未之有也是以初登於天后入於地禹之治水也民知其利莫不勸其功商鞅之立法民知其害莫不畏其刑【河間獻王曰禹稱民無食則我不能使也功成而不利於人則我不能勸也故疏河以導之鑿江通於九派五湖而定東海民亦勞矣然而不怨苦者利歸於民也衞鞅傳曰商君相秦十年宗室貴戚多怨望者趙良見商君謂曰君之見秦王也因嬖人景監以為主非所以為名也相秦不以百姓為事而大築冀闕非所以為功也刑黥太子之師傅殘傷民以駿刑是積怨蓄禍也教之化民也深於命民之效上也防於令今君又左建外易非所以為教也君又南面而稱寡人日防秦之貴公子詩曰相鼠有體人而無禮人而無禮胡不遄死以詩觀之非所以為夀也公子防杜門不出已八年矣君又殺祝懽而黥公孫賈詩曰得人者興失人者崩此數事者非所以得人也君之危若朝露尚將欲延年益夀乎則何不歸十五都灌園於鄙勸秦王顕巖穴之士養老存孤敬父兄序有功尊有徳可以稍安君尚貪商於之富寵秦國之教畜百姓之怨秦王一旦捐賔客而不立朝秦國之所以收君者豈其防哉】故夏後功立而王【去聲】商鞅法行而亡商鞅有獨智之慮世不獨見之證文學不足與權當世亦無負累之殃也

문학이 말합니다: 군자는 듣기를 많이 하고 의심스러운 것을 비우며 진술하고 짓지 않습니다. 성인이 통달하여 꾀가 크고 예지로【주음:「叡」은 예와 같음】【주음:「知」는 거성】 일이 적으니 이로 말미암아 공이 이루어져도 훼손되지 않고 이름이 서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소인은 지혜가 얕고 꾀가 크며【주음:「知」는 거성】 여윈 약함으로【주음:「羸」은 루와 같음】 무거운 짐을 지니 그러므로 반길에서 그치니 소진·상앙이 곧 이와 같습니다【〈범론〉에 말합니다: 소진은 이는 필부로 걸어 다니는 사람으로 짚신과 부서진 삿갓으로 만승의 임금을 경영하여 제후로 하여금 복종하고 응낙하게 하였으나 능히 스스로 거열의 화를 면하지 못하였다. 채택이 말합니다: 상군이 효공을 위해 저울을 평평하게 하고 도량을 바르게 하며 가볍고 무거움을 고르고 천백을 갈라 끊어 백성에게 농사와 싸움을 가르쳐 이로 말미암아 군사가 움직이면 땅이 넓어지고 군사가 쉬면 나라가 부유하여 그러므로 진이 천하에 적수가 없고 제후에 위엄을 세웠다. 공이 이미 이루어졌으나 마침내 거열당하였다】. 선왕의 법이 없고 성인의 도가 아니면서 도리어 자기에게 의지하니 그러므로 멸망하였습니다. 《역》에 말합니다: 소인이 성한 자리에 처하면 비록 높아도 반드시 무너지고 그 도를 채우지 못하고 그 덕을 항상 하지 못하여 능히 착한 끝으로 하는 자는 일찍이 없었다. 이로 말미암아 처음에는 하늘에 오르고 뒤에는 땅에 들어갑니다. 우가 물을 다스리니 백성이 그 이익을 알아 힘써 그 공을 도와 이루지 않는 자가 없었고 상앙이 법을 세우니 백성이 그 해로움을 알아 그 형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가 없었습니다【하간헌왕이 말합니다: 우가 칭하여 말하기를 백성이 먹을 것이 없으면 내가 능히 그들을 부리지 못하고 공이 이루어져도 사람에게 이롭지 않으면 내가 능히 그들을 권면하지 못한다 하였다. 그러므로 강을 갈아 그것을 인도하고 강을 파서 아홉 물길에 통하며 다섯 못을 정하여 동해에 이르니 백성도 또한 수고하였으나 그러나 원망하고 괴로워하지 않은 것은 이는 이익이 백성에게 돌아갔기 때문이다. 《위양전》에 말합니다: 상군이 진의 재상이 된 지 십 년에 종실과 귀척이 많이 원망하였다. 조량이 상군을 만나 그에게 말합니다: 그대가 진왕을 만남은 총애하는 사람 경감을 통해 주선하였으니 이는 이름을 이루는 데 쓰는 방법이 아니요 진의 재상으로 백성을 일로 삼지 않고 기궐을 크게 쌓는 것은 이는 공을 이루는 데 쓰는 방법이 아니며 태자의 사부에게 형벌과 묵형을 가하고 험준한 형벌로 백성을 해치는 것은 이는 원한을 쌓고 재앙을 모으는 것이다. 그것을 가르쳐 백성을 교화함은 명령보다 깊고 백성이 윗사람을 본받음은 명령보다 빠르다(저본은 「防于令」으로 됨). 지금 그대가 또 왼쪽에 세우고 밖을 바꾸니 이는 가르침을 만드는 데 쓰는 방법이 아니며 그대가 또 남면하여 과인이라 칭하여 날마다 진의 귀한 공자를 법으로 꾸짖으니(저본은 「日防」으로 됨) 《시》에 말하기를 저 쥐도 몸이 있는데 사람이 되어 예가 없다 하였으니 사람이 되어 예가 없으면 어찌 빨리 죽지 않는가 하였다. 시에서 보면 이는 목숨을 구하는 데 쓰는 것이 아니다. 공자건이(저본은 「公子防」으로 됨) 문을 닫고 나오지 않은 지 이미 팔 년이다. 그대가 또 축환을 죽이고 공손가에게 묵형을 하였다. 《시》에 말하기를 사람을 얻는 자는 흥하고 사람을 잃는 자는 무너진다 하였으니 이 몇 가지 일은 이는 사람을 얻는 데 쓰는 것이 아니다. 그대의 위험이 아침 이슬과 같은데 오히려 목숨을 늘이고 살기를 바라는가? 어찌 열다섯 고을을 돌려주고 변방에서 동산을 물 대며 진왕으로 하여금 바위 굴의 선비를 높이 어진 곳을 칭양하게 하고 늙은 이를 기르고 고아를 보존하며 아비와 형을 공경하고 공 있는 자를 서열하고 덕 있는 자를 존귀하게 하지 않는가, 조금 편안할 수 있다. 그대가 오히려 상우의 부유함을 탐하고 진나라의 가르침을 총애하며 백성의 원한을 쌓으면 진왕이 하루아침에 빈객을 버려 조정에 서지 않으면 진나라가 그대를 거두어들이려는 자가 어찌 그 적겠는가(저본은 「岂其防哉」로 됨)】. 그러므로 하후가 공이 서서 왕이라 불렸고【주음:「王」은 거성】 상앙은 법이 행해져 멸망하였습니다. 상앙이 홀로 지혜로운 생각이 있으나 세상에는 홀로 보는 증거가 없습니다. 문학의 선비는 그와 당세를 저울질하기에 족하지 않고 또 짊어질 재앙도 없습니다.

論誹第二十四

론비(論誹) 제이십사

The original text is in the public domain. The Korean is a machine-assisted translation of this library’s own Chinese paraphrase, checked against a fixed glossary so that technical terms match the definitions used elsewhere on this site. It is a reading aid and does not replace the origin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