盐铁论 · 제27권
大夫曰屠者解分中【去聲】理可橫以手而離也至其抽防【音斤】鑿骨非行斤斧不能決【賈誼曰屠牛坦一朝解十二牛而芒刃不頓者所排撃剝割皆眾理解也至於寛髀之所非斤則斧夫仁義恩厚人主之芒刃也權勢法制人主之斤斧也】聖主循性而化有不從者亦將舉兵而徵之是以湯誅葛伯文王誅犬夷【用兵紀曰古之賢王有義兵而無偃兵家無怒笞則豎子嬰兒之有過也立見國無刑罰則百姓之誤相侵也立見天下無誅伐則諸侯之相也立見故怒笞不可偃於家刑罰不可偃於國誅伐不可偃於天下有巧有拙而已矣故古之聖王有義兵而無偃兵孟子曰湯居亳與葛為鄰葛伯放而不祀湯使人問之曰何為不祀曰無以供犠牲也湯使遺之牛羊葛伯食之又不以祀湯又使人問之曰何為不祀曰無以供粢盛也湯使亳眾往為之耕老弱饋食葛伯率其民要其有酒食黍稻者奪之不授者殺之有童子以黍肉餉而奪之書曰葛伯仇餉此之謂也為其殺是童子而徵之四海之內皆曰非富天下也為匹夫匹婦復讐也匈奴傳曰周西伯昌伐畎夷詩曰肆不殄厥慍亦不殞厥問柞棫防矣行道兊矣混夷駾矣維其喙矣顔師古曰西伯昌即文王畎夷即畎戎也又曰昆夷山海經云黃帝生苗龍苗龍生融吾融吾生弄明弄明生白犬犬有二牝牡是為犬戎許慎曰赤狄本犬種故字從犬】及後戎狄猾夏中國不寜周宣王仲山甫【古本作尹吉甫】式遏冦虐詩云薄伐獫狁至於太原出車彭彭城彼朔方【匈奴傳曰周懿王時王室遂衰戎狄交侵暴虐中國中國被其苦詩人始作疾而歌之曰靡室靡家獫狁之故豈不日戒獫狁孔棘至懿王曾孫宣王興師命將以征伐之詩人美大其功曰薄伐獫狁至於太原出車彭彭城彼朔方是時四夷賔服稱為中興】自古明王不能無征伐而服不義不能無城壘【音磊】而御強也
대부(大夫)가 말하였습니다: 도살자가 분을 풀고 이치에 맞으면【주음:「中」는 거성】, 손을 가로질러 갈라낼 수 있습니다. 그 힘줄을 뽑고【주음:「筋」는 근; 底本은 「抽防」】 뼈를 파내는 데 이르면, 도끼를 쓰지 않으면 결단할 수 없습니다【가의(賈誼)가 말합니다: 도우탄(屠牛坦)이 하루 아침에 열두 마리 소를 풀어도 날끝이 무디지 않으니, 이는 배격박할(排擊剝割)하는 곳이 모두 뭇 이치를 풀기 때문이다. 궁비(髖髀)의 곳에 이르면, 도끼가 아니면 곧 도끼다. 인의은후(仁義恩厚)는 이는 임금의 날끝이요, 권세법제(權勢法制)는 이는 임금의 도끼다.】. 성주(聖主)는 성품을 따라 교화하니, 따르지 않는 자가 있으면 또한 장차 군사를 들어 이를 정벌할 것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탕(湯)은 갈백(葛伯)을 주살하고, 문왕(文王)은 견이(犬夷)를 주살하였습니다【〈용병기(用兵紀)〉에 말합니다: 옛 현왕(賢王)은 의병(義兵)이 있고 거둔 군사는 없었다. 집에 성내는 회초리가 없으면, 곧 어린아이들의 허물이 있는 것이 곧 드러나고, 나라에 형벌이 없으면, 곧 백성이 잘못하여 서로 침범하는 것이 곧 드러나며, 천하에 주벌(誅伐)이 없으면, 곧 제후가 서로 포학(底本 이 글자는 생벽자로 전록 후 분실)하는 것이 곧 드러난다. 그러므로 성내는 회초리는 집에 거둘 수 없고, 형벌은 나라에 거둘 수 없으며, 주벌(誅伐)은 천하에 거둘 수 없으니, 교묘함과 졸렬함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옛 성왕(聖王)은 의병(義兵)이 있고 거둔 군사는 없었다. 맹자(孟子)가 말합니다: 탕(湯)이 박(亳)에 살아, 갈(葛)과 이웃이 되었다. 갈백(葛伯)이 방종하여 제사하지 않았다. 탕(湯)이 사람을 보내어 이에게 묻기를: 무엇을 위하여 제사하지 않는가? 말합니다: 이로써 희생(犧牲)을 드릴 것이 없다. 탕(湯)이 이에게 소와 양을 보내니, 갈백(葛伯)이 이를 먹고 또 이로써 제사하지 않았다. 탕(湯)이 또 사람을 보내어 이에게 묻기를: 무엇을 위하여 제사하지 않는가? 말합니다: 이로써 자성(粢盛)을 드릴 것이 없다. 탕(湯)이 박(亳)의 무리로 하여금 가서 이를 위하여 밭 갈게 하고, 늙고 약한 자는 음식을 보냈다. 갈백(葛伯)이 그 백성을 거느려 술과 음식과 기장과 쌀 있는 자를 요격하여 이를 빼앗고, 주지 않는 자는 이를 죽였다. 동자가 있어 기장과 고기로 먹을 것을 보내니 이를 빼앗았다. 《서경(書)》에 말합니다: 갈백(葛伯)이 음식 보내는 자를 원수로 여겼다. 말하는 것이 곧 이것이다. 그 이 동자를 죽인 것을 위하여 이를 정벌하니, 사해(四海) 안이 모두 말합니다: 천하를 부유하게 하는 것이 아니요, 이는 필부필부(匹夫匹婦)를 위하여 원수를 갚는 것이다. 《흉노전(匈奴傳)》에 말합니다: 주(周)의 서백창(西伯昌)이 견이(畎夷)를 쳤다. 《시경(詩)》에 말합니다: 마땅히 그 노함을 없애지 않고, 또한 그 문명을 떨어뜨리지 않았네. 작과 느티나무를 베었고(底本은 「防」), 행도가 트였네. 혼이(混夷)가 달아났네, 그들이 지쳤네. 안사고(顏師古)가 말합니다: 서백창(西伯昌)은 곧 문왕(文王)이요, 견이(畎夷)는 곧 견융(畎戎)이니, 또 곤이(昆夷)라 한다. 《산해경(山海經)》에 말합니다: 황제(黃帝)가 묘룡(苗龍)을 낳고, 묘룡(苗龍)이 융오(融吾)를 낳고, 융오(融吾)가 농명(弄明)을 낳고, 농명(弄明)이 백견(白犬)을 낳으니, 개에 암수 둘이 있으니, 이를 견융(犬戎)이라 한다. 허신(許慎)이 말합니다: 적적(赤狄)은 본래 개의 종족이니, 그러므로 글자가 견(犬)을 따른다.】. 뒤에 융적(戎狄)이 하(夏)를 어지럽혀, 중국이 편안하지 않으니, 주선왕(周宣王)과 중산보(仲山甫)【고본은 「尹吉甫」로 씀】가 구학(寇虐)을 억제하였습니다. 《시경(詩)》에 말합니다: 빈히 험윤(猃狁)을 쳐서, 태원(太原)에 이르렀네. 수레를보내기를 팽팽(彭彭)하고, 저 삭방(朔方)에 성을 쌓았네【《흉노전(匈奴傳)》에 말합니다: 주의왕(周懿王) 때 왕실이 마침내 쇠하여, 융적(戎狄)이 함께 침범하여, 중국을 포학하게 하니, 중국이 그 고통을 입었다. 시인(詩人)이 비로소 지어, 괴로워 이를 노래하여 이르기를: 집도 없고 가도 없네, 험윤(猃狁)의 까닭이네. 어찌 날로 경계하지 않으랴, 험윤(猃狁)이 심히 격하네. 의왕(懿王)의 증손 선왕(宣王)에 이르러 군사를 일으켜 장수에게 명하여 이로써 이를 정벌하게 하니, 시인(詩人)이 그 공을 크게 아름답게 여겨 이르기를: 빈히 험윤(猃狁)을 쳐서, 태원(太原)에 이르렀네. 수레를보내기를 팽팽(彭彭)하고, 저 삭방(朔方)에 성을 쌓았네. 이 때, 사이(四夷)가 빈복(賓服)하여, 중흥(中興)이라 칭하였다.】. 옛부터 명왕(明王)은 정벌이 없이 불의(不義)를 복종시킬 수 없고, 성루(城壘)【주음:「壘」는 뇌】가 없이 강포(強暴, 底本 이 글자는 생벽자로 전록 후 분실)를 막을 수 없습니다.
文學曰舜執干鏚而有苗服文王底徳而懐四夷【大禹謨曰三旬苗民逆命益贊於禹曰惟徳動天無逺弗屇滿招損謙受益時乃天道至諴感神矧茲有苗禹拜昌言曰俞班師振旅帝乃誕敷文徳舞幹羽於兩階七旬有苗格道應篇曰文王砥徳修政二年而天下二垂歸之人間訓曰文王葬死人之骸而九夷歸之】詩云鎬京闢【音璧】雍自西自東自南自北無思不服【修文篇曰天下有道則禮樂征伐自天子出夫功成制禮治定作樂禮樂者行化之大者也孔子曰移風易俗莫善於樂安上治民莫善於禮是故聖王修禮文設庠序陳鐘鼓天子辟雍諸侯泮官所以行徳化詩云鎬京辟雍自西自東自南自北無思不服此之謂也】普天之下惟人面之倫莫不引領而歸其義故畫地為境人莫之犯子曰白刃可冐中庸不可入至徳之謂也故善攻不待堅甲而克善守不待渠梁而固【兵略訓曰善守者無與御善戰者無與闘泰族訓曰守不待渠壍而固攻不待沖隆而防】武王之伐殷也執黃鉞誓牧之野天下之士莫不願為之用既以義取之以徳守之【帝王世紀曰武王見暍人王自左擁而右扇之紂政彌亂殷太史向摯載其圖書而歸周王以告於諸侯四年起師而東至商郊牧野乃作木簷王韈系解五人御於前莫肯為王系韈皆曰臣所以事君王非為系韈也王乃釋旄而系之與紂戰紂師敗績禽費仲惡來紂赴於京自燔於宣室而死二嬖妾與妲己亦自殺乃以大白髦麾諸侯入殷商都百姓鹹待於郊王使告曰上天降休商人皆拜王亦答拜以兵入造紂及妲己屍王親射之三發然後下車以劒擊之周公為司徒使以黃斬紂頭懸於大白之旗召公為司空又使以鉞斬妲己頸懸之小白旗置旌於商容之廬命召公釋箕子之囚賜貝千朋命原公釋百姓之囚歸璇臺之珠玉命南宮括散鹿臺之財發巨橋之粟以賑貧民命南宮伯逹史逸遷九鼎於洛邑命閎天封比干之墓命宗祝饗祀于軍防子膠鬲皆委質為臣殷人鹹喜曰王之於人也死猶封其墓況其生者乎王之於賢仁也亡者猶表其廬況其存者乎王之於財也聚者猶散之況其復借者乎王之於色也在者猶歸其父母況復徵之乎貴徳篇曰武王克殷召太公而問曰將奈其士眾何太公對曰臣聞愛其人者兼屋上之烏憎其人者惡其餘胥鹹劉厥敵使靡有餘何如王曰不可太公出邵公入王曰為之奈何邵公對曰有罪者殺之無罪者活之何如王曰不可邵公出周公入王曰為之奈何周公曰使各居其宅田其田無變舊新唯仁是親百姓有過在於一人武王曰廣大乎平天下矣凡所以貴士君子者以其仁而有徳也道應篇曰武王問太公曰寡人伐紂天下是臣殺其主而下伐其上也吾恐後世之用兵不休闘爭不已為之奈何太公曰甚善王之問也夫未得獸者唯恐其創之小也已得之惟恐傷肉之多也王若欲乆持之則塞民於兊道全為無用之事順擾之教彼皆樂其業供其事情昭昭而道冥冥於是乃去其瞀而載之木解其劒而帶之笏為三年之防令類不蕃髙辭卑讓使民不爭酒肉以通之竽瑟以娛之神以畏之繁文滋禮以弇其質厚葬乆防以亶其家含珠鱗施綸組以貧其財深鑿髙壟以盡其力家貧族少慮患者寡以此移風可以持天下弗失故老子曰化而欲作吾將鎮之以無名之樸也】秦以力取之以法守之本末不得故亡夫【音扶】文猶可長用而武難乆行也【賈誼曰陳渉之位不尊於齊楚趙韓魏宋衞中山之君也鉏耰棘矜不銛於鉤防長鎩也謫戍之眾非抗九國之師也深謀逺慮行軍用兵之道非及曩時之士也然而成敗異變功業相反試使山東之國與陳渉度長絜大比權量力則不可同年而語矣然秦以區區之地致萬乗之權招八州而朝同列百有餘年矣然後以六合為家崤函為宮一夫作難而七廟墮身死人手為天下笑者何也仁義不施而攻守之勢異也又曰秦王懐貪鄙之心行自奮之智不信功臣不親士民廢王道而立私愛焚文書而酷刑法先詐力而後仁義以暴虐為天下始夫兼併者髙詐力安危者貴順權以此言之取予攻守不同術也秦雖離戰國而王天下其道不易其政不改是以其所以取之也孤獨而有之故其亡可立而待也班固曰古人有言天生五材民並用之廢一不可誰能去兵鞭樸不可弛於家刑罰不可廢於國征伐不可偃於天下用之有本末行之有逆順者耳孔子曰工欲善其事必先利其器文徳者帝王之利器威武者文徳之輔助也夫文之所加者深則武之所服者大徳之所施者博則威之所制者廣三代之盛至於刑措兵寢者其本末有序帝王之極功也】
문학(文學)이 말하였습니다: 순(舜)은 간과(干戚)를 잡아 유묘(有苗)가 복종하고, 문왕(文王)은 덕을 갈아 사이(四夷)를 품었습니다【《대우모(大禹謨)》에 말합니다: 삼 순(旬)에 묘민(苗民)이 명(命)을 거역하였다. 익(益)이 우(禹)에게 찬하여 말합니다: 오직 덕이 하늘을 움직이니, 먼 곳이라도 이르지 않는 곳이 없다. 가득하면 손해를 부르고, 겸손하면 이익을 받으니, 이는 곧 하늘의 도(道)이다. 지성(至誠)은 신(神)을 감동시키거늘, 하물며 이 유묘(有苗)이겠는가? 우(禹)가 창언(昌言)을 절하여 말합니다: 옳습니다. 군사를 거두어 군사를 진동하였다. 황제가 곧 문덕(文德)을 널리 펴고, 양계(兩階)에서 간우(干羽)를 추게 하니, 칠 순(旬)에 유묘(有苗)가 이르렀다. 〈도응편(道應篇)〉에 말합니다: 문왕(文王)이 덕을 갈고 정치를 닦아, 이 년에 천하의 두 변방이 이에 돌아왔다. 〈인간훈(人間訓)〉에 말합니다: 문왕(文王)이 죽은 사람의 뼈를 장사하여 구이(九夷)가 이에 돌아왔다.】. 《시경(詩)》에 말합니다: 호경(鎬京)의 벽옹(辟雍)【주음:「辟」는 벽】이여, 서쪽으로부터 동쪽으로부터, 남쪽으로부터 북쪽으로부터, 생각하여 복종하지 않는 자 없네【〈수문편(修文篇)〉에 말합니다: 천하에 도(道)가 있으면 곧 예악정벌(禮樂征伐)이 천자에게서 나온다. 공이 이루어져 예(禮)를 제하고, 다스림이 정해져 악(樂)을 짓는다. 예악(禮樂)은 이는 교화를 행하는 큰 것이다. 공자(孔子)가 말합니다: 풍속을 옮기고 바꾸는 것은 악(樂)보다 좋은 것이 없고, 윗사람을 편안하게 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것은 예(禮)보다 좋은 것이 없다. 이로 말미암아 성왕(聖王)이 예문(禮文)을 닦고, 상서(庠序)를 설하며, 종고(鐘鼓)를 벌이고, 천자는 벽옹(辟雍), 제후는 반궁(泮宮)이니, 이로써 덕화(德化)를 행하는 까닭이다. 《시경(詩)》에 말합니다: 호경(鎬京)의 벽옹(辟雍)이여, 서쪽으로부터 동쪽으로부터, 남쪽으로부터 북쪽으로부터, 생각하여 복종하지 않는 자 없네. 말하는 것이 곧 이것이다.】. 보천(普天) 아래, 오직 사람 얼굴의 무리가 목을 늘려 그 의(義)에 돌아오지 않는 자 없습니다. 그러므로 땅을 그어 경계로 삼으면, 사람이 이를 범할 자 없습니다. 자(子)가 말합니다: 흰 칼날은 밟을 수 있으나, 중용(中庸)은 들어갈 수 없다. 이는 지덕(至德)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잘 공격하는 자는 견고한 갑옷을 기다리지 않고 이기고, 잘 지키는 자는 도량(渠梁)을 기다리지 않고 굳습니다【〈병략훈(兵略訓)〉에 말합니다: 잘 지키는 자는 함께 막을 자가 없고, 잘 싸우는 자는 함께 싸울 자가 없다. 〈태족훈(泰族訓)〉에 말합니다: 지킴은 해자(渠塹)를 기다리지 않고 굳고, 공격은 충륭(衝隆)을 기다리지 않고 뽑는다(底本은 「防」).】. 무왕(武王)이 은(殷)을 침에, 황월(黃鉞)을 잡고 목야(牧野)에서 맹하니, 천하의 선비가 이를 위하여 쓰이기를 바라지 않는 자가 없었습니다. 이미 의(義)로 이를 취하고, 덕으로 이를 지켰습니다【《제왕세기(帝王世紀)》에 말합니다: 무왕(武王)이 갈증 환자를 보니, 왕이 스스로 왼쪽으로 안고 오른쪽으로 부채질하였다. 주(紂)의 정치가 더욱 어지러워지니, 은(殷)의 태사(太史) 향지(向摯)가 그 도서(圖書)를 싣고 주(周)에 돌아오니, 왕이 이로써 제후에게 고하였다. 사 년에 군사를 일으켜 동쪽으로 가서, 상교(商郊) 목야(牧野)에 이르러, 곧 목첨(木檐)을 만들었다. 왕의 버선 끈이 풀리니, 다섯 사람이 앞에서 모시는데, 왕을 위하여 버선을 묶어주려는 자가 없어, 모두 말합니다: 신이 임금을 섬기는 까닭은, 버선을 묶어주기 위함이 아니다. 왕이 곧 모월(旄鉞)을 놓고(底本 이 글자는 생벽자로 전록 후 분실) 이를 묶었다. 주(紂)와 싸우니, 주(紂)의 군사가 패하여, 비중(費仲)과 악래(惡來)를 사로잡았다. 주(紂)가 경사(京)로 가서, 선실(宣室)에서 스스로 불사르고 죽으니, 두 빈첩(嬖妾)과 달기(妲己)도 또한 스스로 죽였다. 곧 대백모(大白髦)로 제후를 휘하여 은상(殷商)의 도읍에 들어가니, 백성이 모두 들에서 기다렸다. 왕이 고하게 하여 말합니다: 위의 하늘이 아름다움을 내렸다. 상인(商人)이 모두 절하니, 왕도 또한 절에 답하였다. 군사로 들어가, 주(紂)와 달기(妲己)의 시체에 이르니, 왕이 친히 이를 쏘기를 세 번하고, 그런 뒤에 수레에서 내려 칼로 이를 쳤다. 주공(周公)이 사도(司徒)가 되어, 황월(黃鉞)로(底本 이 글자는 생벽자로 전록 후 분실) 주(紂)의 머리를 베어 대백(大白)의 깃발에 매달게 하고, 소공(召公)이 사공(司空)이 되어, 또 현월(玄鉞)로(底本 이 글자는 생벽자로 전록 후 분실) 달기(妲己)의 목을 베어 이를 소백기(小白旗)에 매달게 하였다. 정(旌)을 상용(商容)의 집에 두고, 소공(召公)에게 명하여 기자(箕子)의 죄수를 풀게 하고, 조개 천 붕을 주며, 원공(原公)에게 명하여 백성의 죄수를 풀게 하고, 선대(璇臺)의 구슬과 옥을 돌려주며, 남궁괄(南宮括)에게 명하여 녹대(鹿臺)의 재물을 흩고 거교(巨橋)의 곡식을 내어 이로써 가난한 백성을 구제하게 하고, 남궁백달(南宮伯達)과 사일(史逸)에게 명하여 구정(九鼎)을 낙읍(洛邑)으로 옮기고, 홍요(閎夭)에게 명하여 비간(比干)의 무덤을 봉하고, 종축(宗祝)에게 명하여 군사에서 향사(饗祀)하게 하였다. 미자(微子, 底本은 「防子」)와 교격(膠鬲)이 모두 볼모를 맡겨 신하가 되었다. 은(殷) 사람이 모두 기뻐하여 말합니다: 왕이 사람에게 있어서는, 죽은 자에게도 오히려 그 무덤을 봉하거늘, 하물며 그 산 자이겠는가? 왕이 어질고 어진 자에게 있어서는, 망한 자에게도 오히려 그 집을 표하거늘, 하물며 그 살아 있는 자이겠는가? 왕이 재물에 있어서는, 모인 자에게도 오히려 이를 흩거늘, 하물며 다시 빌리는 자이겠는가? 왕이 색(色)에 있어서는, 있는 자에게도 오히려 그 부모에게 돌려보내거늘, 하물며 다시 이를 부리는 것이겠는가? 〈귀덕편(貴德篇)〉에 말합니다: 무왕(武王)이 은(殷)을 이기고, 태공(太公)을 불러 물어 말합니다: 장차 그 선비와 무리를 어찌할까? 태공(太公)이 대답하여 말합니다: 신이 들으니, 그 사람을 사랑하는 자는 지붕 위의 까마귀까지 아끼고, 그 사람을 미워하는 자는 그 여서(餘胥)를 미워하니, 모두 그 적을 도륙하여, 남김없이 하면, 어떻습니까? 왕이 말합니다: 안 된다. 태공(太公)이 나가고, 소공(邵公)이 들어왔다. 왕이 말합니다: 이를 어찌할까? 소공(邵公)이 대답하여 말합니다: 죄 있는 자는 이를 죽이고, 죄 없는 자는 이를 살리면, 어떻습니까? 왕이 말합니다: 안 된다. 소공(邵公)이 나가고, 주공(周公)이 들어왔다. 왕이 말합니다: 이를 어찌할까? 주공(周公)이 말합니다: 각각 그 집에 살게 하고, 그 밭을 밭갈게 하며, 옛것과 새것을 바꾸지 말고, 오직 인(仁)을 이로써 친하게 하며, 백성이 허물이 있으면, 한 사람에게 있습니다. 무왕(武王)이 말합니다: 광대(廣大)하도다, 천하가 평정되었구나. 무릇 사군자(士君子)를 귀하게 여기는 까닭은, 그 인(仁)하고 덕 있음을 위함이다. 〈도응편(道應篇)〉에 말합니다: 무왕(武王)이 태공(太公)에게 물어 말합니다: 과인이 주(紂)를 치니, 천하가 이는 신하가 그 임금을 죽이고 아래가 그 위를 치는 것이다. 내가 아마 후세가 군사를 써서 그치지 않고, 투쟁이 그치지 않을까 하여, 이를 어찌할까? 태공(太公)이 말합니다: 심히 좋도다 왕의 물음이여. 아직 짐승을 얻지 못한 자는 오직 그 상처가 작을까 두려워하고, 이미 이를 얻은 자는 오직 살의 상처가 많을까 두려워한다. 왕이 만약 오래 이를 지키려 하면, 곧 백성을 퇴도(兌道)에 막고, 온전히 쓸모없는 일을 하며, 순우(順擾)의 가르침이면, 저들이 모두 그 업을 즐기고 그 일을 바치며, 소소(昭昭)하여 도(道)가 명명(冥冥)하리라. 이에 곧 그 변(瞀)을 버리고 이를 나무에 싣고, 그 칼을 풀고 이에 홀을 띠며, 삼 년의 상(喪, 底本은 「三年之防」)을 지어, 무리로 하여금 번식하지 않게 하며, 말을 높이고 양보를 낮추어 백성으로 하여금 다투지 않게 하고, 술과 고기로 이를 통하게 하며, 우슬(竽瑟)로 이를 즐기게 하고, 귀신으로(底本 이 글자는 생벽자로 전록 후 분실) 이를 두렵게 하며, 번문자례(繁文滋禮)로 그 질(質)을 덮고, 후장구상(厚葬久喪, 底本은 「久防」)으로 그 집을 다하게 하며, 구슬을 머금고 인시윤조(鱗施綸組)로 그 재물을 가난하게 하고, 깊이 파고 높이 쌓음으로 그 힘을 다하게 한다. 집이 가난하고 족이 적으면, 근심을 꾀하는 자가 적다. 이로써 풍속을 옮기면, 이로써 천하를 지켜 잃지 않을 수 있다. 그러므로 노자(老子)가 말합니다: 교화하여 일어나려 하면, 나는 장차 이를 진압하기를 무명지박(無名之朴)으로 하리라.】. 진(秦)은 힘으로 이를 취하고, 법으로 이를 지켰으니, 본말을 얻지 못하여, 그러므로 망했습니다. 문두의 부(夫)【주음:「夫」는 부】: 문(文)은 오히려 오래 쓸 수 있으나, 무(武)는 오래 행하기 어렵습니다【가의(賈誼)가 말합니다: 진섭(陳涉)의 자리는 제(齊)・초(楚)・조(趙)・한(韓)・위(魏)・송(宋)・위(衛)・중산(中山)의 임금보다 존하지 않고, 우유극긍(鉏耰棘矜)은 구극(鉤戟, 底本은 「鉤防」)과 장살(長鎩)보다 날카롭지 않으며, 적수(謫戍)의 무리는 구국(九國)의 군사에 견주지 못하고, 깊은 꾀와 먼 꾀와 군사 용병의 도(道)는 옛날의 선비에게 미치지 못하나, 그러나 성패가 다르게 변하고, 공업이 서로 반대이다. 시험컨대 산동(山東)의 나라로 하여금 진섭(陳涉)과 길이를 재고 크기를 재며, 권을 견주고 힘을 헤아리게 하면, 곧 같은 해에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진(秦)이 구구(區區)한 땅으로 만승(萬乘)의 권을 이르고, 팔주(八州)를 불러 동렬(同列)을 조하게 한 것이 백여 년이요, 그런 뒤에 육합(六合)을 집으로 삼고, 효함(崤函)을 궁으로 삼았으나, 한 사내가 난을 일으키니 칠묘(七廟)가 무너지고, 몸이 남의 손에 죽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니, 무엇 때문인가? 인의(仁義)를 베풀지 않아 공수(攻守)의 형세가 달랐기 때문이다. 또 말합니다: 진왕(秦王)이 탐비(貪鄙)의 마음을 품고, 스스로 떨치는 지혜를 행하여, 공신(功臣)을 믿지 않고, 사민(士民)을 친하지 않으며, 왕도(王道)를 폐하고 사애(私愛)를 세우고, 문서(文書)를 불사르고 형법(刑法)을 가혹하게 하며, 사력(詐力)을 먼저 하고 인의(仁義)를 뒤에 하여, 포학을 천하의 시작으로 삼았다. 겸병하는 자는 사력(詐力)을 높이고, 안위(安危)하는 자는 순권(順權)을 귀하게 여긴다. 이로써 말하면, 취함과 공수(攻守)는 같은 수가 아니다. 진(秦)이 비록 전국(戰國)을 떠나 천하에 왕이 되었어도, 그 도(道)를 바꾸지 않고, 그 정치를 고치지 않으니, 이로 말미암아 그 취한 까닭이 고독하여 이를 가졌고, 그러므로 그 망함이 곧 기다릴 만하다. 반고(班固)가 말합니다: 옛 사람의 말이 있다: 하늘이 오재(五材)를 내니, 백성이 함께 이를 쓰니, 하나를 폐할 수 없거늘, 누가 능히 군사를 버리겠는가. 편박(鞭扑)은 집에 느슨하게 할 수 없고, 형벌은 나라에 폐할 수 없으며, 정벌은 천하에 거둘 수 없으니, 이를 씀에 본말이 있고, 이를 행함에 역순(逆順)이 있을 뿐이다. 공자(孔子)가 말합니다: 장인이 그 일을 잘하려 하면, 반드시 먼저 그 연장을 날카롭게 하라. 문덕(文德)은 제왕(帝王)의 날카로운 연장이요, 위무(威武)는 문덕(文德)의 보조이다. 문(文)이 더하는 곳이 깊으면, 곧 무(武)가 복종시키는 곳이 크고, 덕이 베푸는 곳이 넓으면, 곧 위(威)가 제어하는 곳이 넓다. 삼대(三代)의 성함이 형조(刑措)와 병침(兵寝)에 이른 것은, 이는 그 본말이 순서가 있어, 제왕의 지극한 공이다.】.
大夫曰詩云獫狁孔熾我是用戒武夫潢潢經營四方故守禦征伐所由來乆矣【汜論曰夫神農伏犧不施賞罰而民不為非然而立政者不能廢法而治民舜干鏚而服有苗然而征伐者不能釋甲兵而制強暴】春秋譏戎驪未至預御之【春秋曰公追戎於濟西公羊傳曰此未有言伐者其言追何大其為中國追也此未有伐中國者則言其為中國追何大其未至而豫御之也其言於濟西何大之也】故四支強而躬體固華葉茂而本根據故飭四境所以安中國也發戍【音絮】漕所以審勞佚【音逸】也主憂者臣勞上危者下死先帝憂百姓不澹【古贍字】出禁錢解乗輿驂貶樂損膳以賑窮備邊費【食貨志曰縣官不給天子乃損膳解乗輿駟出御府禁藏以澹之其明年山東被水災民多飢乏於是天子遣使虛郡國倉廩以賑貧】未見報施之義而見沮成之理非所聞也
대부(大夫)가 말하였습니다: 《시경(詩)》에 말합니다: 험윤(猃狁)이 심히 성하네, 나는 이를 써서 경계하네. 무장(武夫)이 황황(潢潢)하여, 사방을 경영하네. 그러므로 수어(守御)와 정벌은, 유래한 곳이 오래입니다【〈범론(泛論)〉에 말합니다: 신농(神農)・복희(伏犧)는 상벌(賞罰)을 베풀지 않아도 백성이 잘못을 하지 않았으나, 그러나 정치를 세우는 자는 법을 폐하고 백성을 다스릴 수 없다. 순(舜)은 간과(干戚)하여 유묘(有苗)를 복종시켰으나, 그러나 정벌하는 자는 갑병(甲兵)을 놓고 강포(強暴)를 제어할 수 없다.】. 《춘추(春秋)》는 융려(戎驪)가 아직 이르지 않았는데 미리 이를 막음을 비웃습니다【《춘추(春秋)》에 말합니다: 공이 융(戎)을 제서(濟西)에서 쫓았다. 《공양전(公羊傳)》에 말합니다: 이는 아직 친다고 말한 자가 없는데, 그 쫓는다고 말함은 무엇인가? 그 중국을 위하여 쫓음을 크게 하였다. 이는 아직 중국을 친 자가 없는데 곧 그 중국을 위하여 쫓는다고 말함은 무엇인가? 그 아직 이르지 않았는데 미리 이를 막음을 크게 하였다. 그 제서(濟西)에서라고 말함은 무엇인가? 이를 크게 하였다.】. 그러므로 사지(四肢)가 강하면 몸이 견고하고, 꽃과 잎이 무성하면 근본이 의지합니다. 그러므로 사경(四境)을 정돈함은, 이로써 중국을 편안하게 하는 까닭이요. 수(戍)【주음:「戍」는 수】・조(漕)를 발함은, 이로써 노일(勞佚)【주음:「佚」는 일】을 살피게 하는 까닭입니다. 임금이 근심하면 곧 신하가 수고하고, 위가 위태로우면 곧 아래가 죽습니다. 선제(先帝)가 백성이 넉넉하지【고자는 「澹」로 씀】 못함을 근심하여, 금전(禁錢)을 내고, 승여(乘輿)의 참마(驂)를 풀고, 악(樂)을 줄이고 반찬을 줄여 이로써 곤궁을 구제하고, 변경 비용에 대비하였습니다【《식화지(食貨志)》에 말합니다: 현관(縣官)이 넉넉하지 않으면, 천자가 곧 반찬을 줄이고, 승여(乘輿)의 사마(駟)를 풀고, 어푸(御府)의 금장(禁藏)을 내어 이로써 이를 넉넉하게 하였다. 그 다음 해 산동(山東)이 수재를 입어, 백성이 많이 굶주리고 궁핍하니, 이에 천자가 사자를 보내어 군국(郡國)의 창고를 비워 이로써 가난한 자를 구제하게 하였다.】. 보답의 의(義)를 보지 못하고 저성(沮成)의 이치를 보는 것은, 들은 바가 아닙니다.
文學曰周道衰王跡熄諸侯爭強大小相凌是以強國務侵弱國設備甲士勞戰陳【古陣字】役於兵革故君勞而民困苦也【覽防訓曰晩世之時七國異族諸侯製法各殊習俗縱橫間之舉兵而相角攻城濫殺覆髙危安掘墳墓揚人骸大沖車髙重京除戰道犯嚴敵殘不義百往一反聲苟盛也是故壯質輕足者為甲卒千里之外家老羸弱悽愴於內廝徒馬圉軵車奉饟道馬遼逺霜雪亟集短褐不完人羸車泥塗至膝相攜於道奮首於路身枕格而死所謂兼國有地者伏屍數十萬破車以千百數傷弓弩矛防矢石之創者扶舉於路故世至於枕人頭食人肉飲人血廿之芻豢故自三代以後者未嘗得安其情性而樂其習俗保其修命天而不夭於人虐也】今中國為一統而方內不安繇【音遙】役逺而外內煩也古者無過年之繇【音遙】無逾時之役【詩傳曰太平之時民行役者不逾時男女不失時以偶孝子不失時以養外無曠夫內無怨女上無不慈之父下無不孝之子父子相成夫婦相保天下和平國家安寧】今近者數千裡逺者過萬里歴二期長【音掌】子不還父母愁憂妻子詠歎憤懣【音悶】之恨發動於心慕思之積痛於骨髓此枤杜采薇之所為作也【詩序曰文王之時西有昆夷之患北有玁狁之難以天子之命命將率遣戍役以守衞中國故歌采薇以遣之出車以勞還枤杜以勤歸也】
문학(文學)이 말하였습니다: 주(周)의 도(道)가 쇠하고, 왕적(王迹)이 꺼지니, 제후가 강함을 다투고, 대소가 서로 능멸하였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강국은 침략을 힘쓰고, 약국은 방비를 설치하며, 갑사(甲士)는 전진(戰陣)【고자는 「陳」으로 씀】에 수고하고, 병혁(兵革)에 부리니, 그러므로 임금이 수고하고 백성이 곤궁하고 고통스러웠습니다【〈람명훈(覽冥訓, 底本은 「覽防訓」)〉에 말합니다: 만세(晚世)의 때, 칠국(七國)이 다른 족속이요, 제후가 법을 제하여, 각각 풍속을 달리하며, 종횡(縱橫)이 이를 사이에 두고, 군사를 들어 서로 뿔을 겨루며, 성을 공격하여 함부로 죽이고, 높은 것을 엎어 편안한 것을 위태롭게 하며, 분묘(墳墓)를 파고, 사람의 뼈를 드러내며, 큰 충거(衝車)와 높은 중경(重京), 전도(戰道)를 제하고, 엄한 적을 범하고, 불의(不義)를 잔멸하니, 백 번 가서 한 번 돌아오고, 소리가 구차하게 성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장한 몸과 빠른 발의 자가 갑졸(甲卒)이 되어 천 리 밖에 있고, 집의 늙고 여윈 자는 안에서 처창(凄愴)하며, 사도마우(厮徒馬圉)가 수레를 밀고 먹을 것을 받들고, 도로가 멀고 멀어, 서리와 눈이 자주 내리고, 짧은 갈옷이 온전하지 않으며, 사람이 여위고 수레가 닳아(底本 이 글자는 생벽자로 전록 후 분실), 진흙이 무릎에 이르고, 길에서 서로 이끌며, 길에서 머리를 들어, 몸이 격(格)을 베고 죽었다. 이른바 나라를 겸하여 땅을 가진 자는, 엎드린 시체가 수십만, 수레를 부수기를 천백으로 헤아리며, 궁노모극(弓弩矛戟, 底本은 「矛防」)과 화살과 돌의 상처를 입은 자가 길에서 부축되어 올려졌다. 그러므로 세상이 사람 머리를 베고, 사람 고기를 먹고, 사람 피를 마시며, 이를 추환(芻豢)에 절임(底本은 「廿」)하는 데 이르렀다. 그러므로 삼대(三代) 이후, 아직 그 정성을 편안히 하고 그 풍속을 즐기며, 그 수명을 보전하고, 남의 학대에 요절하지 않은 것을 얻지 못하였다.】. 지금, 중국이 일통(一統)을 이루었는데 방내(方內)가 편안하지 않은 것은, 이는 요역(繇役)【주음:「繇」는 요】이 멀어 밖과 안이 번거롭기 때문입니다. 옛날에는 해를 넘는 요역(繇役)【주음:「繇」는 요】이 없고, 때를 넘는 부역(役)이 없었습니다【《시전(詩傳)》에 말합니다: 태평(太平)의 때, 백성이 행역(行役)하는 자는 때를 넘지 않고, 남녀가 때를 잃지 않아 이로써 짝하고, 효자가 때를 잃지 않아 이로써 봉양하며, 밖에 과부(曠夫)가 없고, 안에 원녀(怨女)가 없으며, 위에 자애롭지 않은 아버지가 없고, 아래에 효하지 않은 아들이 없어, 부자가 서로 이루고, 부부가 서로 보전하여, 천하가 평화하고 국가가 안녕하다.】. 지금, 가까운 자는 수천 리, 먼 자는 만 리를 넘고, 두 기한을 지나니, 맏아들【주음:「長」는 장】이 돌아오지 않아, 부모가 수심하고 근심하며, 처자식이 탄식하고, 분민(憤懣)【주음:「懣」는 민】의 원한이 마음에서 발동하고, 사모의 쌓임이 골수에 아픕니다. 곧 이는 《지두(杕杜)》와 《채미(采薇)》가 지어진 까닭입니다【《시서(詩序)》에 말합니다: 문왕(文王)의 때, 서쪽에 곤이(昆夷)의 근심이 있고, 북쪽에 험윤(猃狁)의 재난이 있어, 천자의 명으로 장수에게 명하여 수역(戍役)을 보내 이로써 중국을 수호하게 하였으니, 그러므로 《채미(采薇)》를 노래하여 이로써 이를 보내고, 《출거(出車)》로 돌아옴을 위로하고, 《지두(杕杜)》로 돌아옴을 근면하게 하였다.】.
險固第五十
험고제오십(險固第五十)
大夫曰虎兕所以能執熊羆服群獸者爪牙利而攫【音腳】便也秦所以超諸侯吞天下並敵國者險阻固而勢居然也故蜯有介狐貉不能禽【通作擒】蝮蛇有螫【音式】人忌而不輕故有備則制人無備則制於人【韓非子曰虎豹之所以能勝人執百獸者以其爪牙也當使虎豹失其爪牙則人必制之矣今勢重者人主之爪牙也君人而失其爪牙虎豹之類也】故仲山甫補袞職之闕公築長城之固所以備冦難【去聲】而折沖萬里之外也【詩曰袞職有闕維仲山甫補之匈奴傳曰秦滅六國始皇帝使防恬將數十萬之眾北擊胡悉收河南地因河為塞築四十四縣城臨河徙適戎以充之而通直道自九原至雲陽因邊山險塹谿谷可繕者繕之起臨洮至遼東萬餘里又度河據陽山北假中匈奴單于曰頭曼頭曼不勝秦北徙十有餘年】今不固其外慾安其內猶家人不堅垣牆狗吠夜驚而闇昧妄行也【韓非子曰不謹其閉不固其門虎乃將存不慎其事不掩其情賊乃將生】
대부(大夫)가 말하였습니다: 호시(虎兕)가 능히 웅비(熊羆)를 잡고 뭇 짐승을 복종시키는 까닭은, 이는 발톱과 이빨이 날카롭고 격(攫)【주음:「攫」는 각】이 편리하기 때문입니다. 진(秦)이 제후를 넘고, 천하를 삼키고, 적국을 합한 까닭은, 이는 험조(險阻)가 굳고 형세가 거연(居然)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거북과 방합(底本의 「龜」은 생벽자로 전록 후 분실)은 등딱지가 있어, 여우와 담비가 사로잡지【「擒」과 통함】 못하고, 복사(蝮蛇)는 침【주음:「螫」는 석】이 있어, 사람이 꺼려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대비가 있으면 곧 남을 제어하고, 대비가 없으면 곧 남에게 제어됩니다【한비자(韓非子)가 말합니다: 호표(虎豹)가 능히 사람을 이기고 백수(百獸)를 잡는 까닭은, 그 발톱과 이빨 때문이다. 만약 호표(虎豹)로 하여금 그 발톱과 이빨을 잃게 하면, 곧 사람이 반드시 이를 제어한다. 지금, 형세가 무거움은 이는 임금의 발톱과 이빨이요, 사람의 임금으로서 그 발톱과 이빨을 잃으면, 곧 호표(虎豹)의 무리이다.】. 그러므로 중산보(仲山甫)는 곤직(袞職)의 결함을 메웠고, 몽공(蒙公, 底本 이 글자는 생벽자로 전록 후 분실)은 장성(長城)의 견고를 쌓았으니, 이로써 구난(寇難)【주음:「難」는 거성】에 대비하여 만 리 밖에서 충돌을 꺾는 까닭입니다【《시경(詩)》에 말합니다: 곤직(袞職)에 결함이 있으면, 오직 중산보(仲山甫)가 이를 메우네. 《흉노전(匈奴傳)》에 말합니다: 진(秦)이 육국을 멸하고, 시황제(始皇帝)가 몽염(蒙恬, 底本은 「防恬」)으로 하여금 수십만의 무리를 거느려 북쪽으로 호(胡)를 치게 하여, 하남(河南)의 땅을 모두 거두고, 하(河)에 의지하여 새(塞)를 삼고, 마흔네 개의 현성(縣城)을 쌓아 하(河)에 임하고, 적수(謫戍)를 옮겨 이로써 이를 채우며, 직도(直道)를 통하여 구원(九原)에서 운양(雲陽)에 이르고, 변산(邊山)의 험준한 골짜기와 계곡 중 수선할 수 있는 곳에 의지하여 이를 수선하여, 임도(臨洮)에서 일어나 요동(遼東)에 이르기를 만여 리이며, 또 하(河)를 건너 양산(陽山)과 북가중(北假中)을 점거하였다. 흉노(匈奴)의 선우(單于)를 두만(頭曼)이라 한다. 두만(頭曼)이 진(秦)을 이기지 못하여, 북쪽으로 옮기기를 십여 년이었다.】. 지금, 그 바깥을 굳히지 않고 그 안을 편안하게 하려는 것은, 마치 집안 사람이 담장을 굳히지 않아, 개가 짖어 밤에 놀라고 어두워 함부로 행함과 같습니다【한비자(韓非子)가 말합니다: 그 닫힘을 삼가지 않고, 그 문을 굳히지 않으면, 범이 곧 장차 있을 것이다. 그 일을 삼가지 않고, 그 정을 덮지 않으면, 도적이 곧 장차 생길 것이다.】.
文學曰秦地左餚【音殽】函【音鹹】右隴阺【音低】前蜀漢後山河四塞以為固金城千里良將【去聲】勇士設利器而守陘【音形】隧【音遂】墨子守雲梯之械也【修務訓曰昔者楚欲攻宋墨子聞而悼之自魯趨而十日十夜足重繭而不休息裂衣裳裹足至於郢見楚王曰臣聞大王舉兵將攻宋計必得宋而後攻之乎忘其苦眾勞民頓兵挫銳負天下以不義之名而不得咫尺之地猶且攻之乎王曰必不得宋又且為不義曷為攻之墨子曰臣見大王必傷義而不得宋王曰公輸天下之巧士作雲梯之械設以攻宋曷為弗取墨子曰令公輸設攻臣請守之於是公輸般設攻宋之械墨子設守宋之備九攻而墨子九卻之弗能入於是乃偃兵輟不攻宋】以為雖湯武復生蚩尤復起不輕攻也然戍【音絮】卒陳勝無將【去聲】帥之任師旅之眾奮空拳而破百萬之師無牆籬之難【賈誼曰始皇奮六世之餘烈振長防而御宇內吞二週而亡諸侯履至尊而制六合執敲樸以鞭笞天下威振四海南取百粵之地以為桂林象郡百粵之君俛首繫頸委命下吏乃使防恬北築長城而守藩籬卻匈奴七百餘里胡人不敢南下而牧馬士不敢彎弓而報怨於是廢先王之道燔百家之言以愚黔首墮名城殺豪俊收天下之兵聚之咸陽銷鋒鍉鑄以為金人十二以弱天下之民然後踐華為城因河為池據億丈之城臨不測之谿以為固良將勁弩守要害之處信臣精卒陳利兵而誰何天下已定始皇之心自以為闗中之固金城千里子孫帝王萬世之業也始皇旣沒餘威振於殊俗然而陳涉甕牗防樞之子氓之人而遷徙之徒也材能不及非有仲弓墨翟之賢陶朱猗頓之富躡足行伍之間俛起阡陌之中卒疲散之卒轉而攻秦斬木為兵揭竿為旗天下雲合而響應褁糧而景從山東豪傑遂並起而亡秦族矣】故在徳不在固誠以行【去聲】義為阻道徳為塞賢人為兵聖人為守則莫能入如此則中國無狗吠之警而邊境無鹿駭狼顧之憂矣夫【音扶】何妄行之有乎【魏武侯浮西河而下中流顧謂呉起曰美哉乎河山之固也此魏國之寳也呉起對曰在徳不在險昔三苗氏左洞庭右彭蠡徳義不修而舜滅之夏桀之居左河濟右太華伊闕在其南羊腸在其北修政不仁湯放之殷紂之國左孟門而右太行常山在其北大河經其南修政不徳武王伐之由此觀之在徳不在險若君不修徳船中之人盡敵國也武侯曰善左思曰劒閣雖嶛憑之者蹶非所以深根固蔕也洞庭雖濬負之者北非所以愛人治國也詩傳曰今有堅甲利兵不足以施敵破虜弓良矢調不足射逺中微與無兵等爾有民不足強用嚴敵與無民等爾故盤石千里不為有地愚民百萬不為有民詩曰維南有箕不可以簸揚維北有鬥不可以挹酒漿莊辛曰居不為垣牆人莫能毀傷行不從周衞人莫能暴害此君子之行也】
문학(文學)이 말하였습니다: 진(秦)의 땅은 왼쪽에 효(肴)【주음:「肴」는 효】・함(函)【주음:「函」는 함】, 오른쪽에 농지(隴坻)【주음:「阺」는 저】, 앞에 촉한(蜀漢), 뒤에 산하(山河)이니, 사새(四塞)로써 견고를 삼고, 금성(金城) 천 리입니다. 좋은 장수【주음:「將」는 거성】와 용사가 날카로운 연장을 설치하여 형(陘)【주음:「陘」는 형】과 수(隧)【주음:「隧」는 수】를 지켰습니다. 묵자(墨子)가 운제(雲梯)의 기계를 막았습니다【〈수무훈(修務訓)〉에 말합니다: 옛적, 초(楚)가 송(宋)을 공격하려 하니, 묵자(墨子)가 듣고 이를 슬퍼하여, 노(魯)에서 달려 십 일 십 야, 발에 굳은살이 겹쳐도 쉬지 않고, 의상을 찢어 발을 싸며, 영(郢)에 이르러, 초왕(楚王)을 뵈어 말합니다: 신이 듣건대, 대왕이 군사를 들어 장차 송(宋)을 공격하시는데, 꾀에 반드시 송(宋)을 얻은 뒤에 이를 공격하시겠습니까? 그 무리를 괴롭히고 백성을 수고롭게 하고, 군사를 무디게 하고 날카로움을 꺾으며, 천하에 불의(不義)의 이름을 짊어지고 지척(咫尺)의 땅을 얻지 못함을 잊고서, 오히려 이를 공격하시겠습니까? 왕이 말합니다: 반드시 송(宋)을 얻지 못하고 또 불의(不義)를 하면, 어찌하여 이를 공격하겠는가? 묵자(墨子)가 말합니다: 신은 대왕이 반드시 의(義)를 상하고 송(宋)을 얻지 못함을 봅니다. 왕이 말합니다: 공수(公輸)는 천하의 교사(巧士)요, 운제(雲梯)의 기계를 만들어 설치하여 이로써 송(宋)을 공격하니, 어찌하여 취하지 않겠는가? 묵자(墨子)가 말합니다: 공수(公輸)로 하여금 공격을 설치하게 하고, 신이 청컨대 이를 지키겠습니다. 이에 공수반(公輸般)이 송(宋)을 공격하는 기계를 설치하고, 묵자(墨子)가 송(宋)을 지키는 대비를 설치하여, 아홉 번 공격하니 묵자(墨子)가 아홉 번 이를 물리치고, 능히 들어가지 못하였다. 이에 곧 군사를 거두고, 그치어 송(宋)을 공격하지 않았다.】. 이로써 비록 탕무(湯武)가 다시 나고, 치우(蚩尤)가 다시 일어나도, 가볍게 공격하지 못할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수졸(戍卒)【주음:「戍」는 수】 진승(陳勝)은, 장수【주음:「將」는 거성】의 직책과 군사의 무리가 없이, 빈 주먹을 떨쳐 백만의 군사를 깨니, 담장과 울타리의 어려움이 없었습니다【가의(賈誼)가 말합니다: 시황(始皇)이 육세(六世)의 남은 업적을 떨치고, 긴 채찍(底本은 「長防」)을 휘둘러 우내(宇內)를 다스리며, 이주(二周)를 삼키고 제후를 멸하고, 지존(至尊)에 밟아 육합(六合)을 제어하고, 자부(敲扑)를 잡아 이로써 천하를 채찍질하니, 위엄이 사해(四海)에 떨치고, 남쪽으로 백월(百越)의 땅을 취하여 이로써 계림(桂林)・상군(象郡)을 삼으니, 백월(百越)의 임금이 머리를 굽히고 목에 끈을 매어, 목숨을 하리(下吏)에게 맡기고, 곧 몽염(蒙恬, 底本은 「防恬」)으로 하여금 북쪽에 장성을 쌓고 울타리를 지키게 하여, 흉노(匈奴)를 물리치기를 칠백여 리, 호인(胡人)이 감히 남쪽으로 내려와 말을 방목하지 못하고, 선비가 감히 활을 당겨 원한을 갚지 못하였다. 이에 선왕(先王)의 도(道)를 폐하고, 백가(百家)의 말을 불살라 이로써 검은 머리 백성을 어리석게 하고, 명성(名城)을 헐고, 호준(豪俊)을 죽이며, 천하의 병기를 거두어 함양(咸陽)에 모아, 날끝과 화살촉을 녹여, 부어 이로써 금인(金人) 열두를 만들어, 이로써 천하의 백성을 약하게 하였다. 그런 뒤에 화산(華山)을 밟아 성으로 삼고, 황하(河)에 의지하여 연못으로 삼으며, 억 장의 성을 점거하고, 헤아릴 수 없는 계곡에 임하여 이로써 견고로 삼으며, 좋은 장수와 강한 쇠뇌가 요해(要害)한 곳을 지키고, 믿을 수 있는 신하와 정예 병졸이 날카로운 병기를 벌여 누가 오는가 물었다. 천하가 이미 평정되니, 시황(始皇)의 마음이 스스로 관중(關中)의 견고함과 금성(金城) 천 리로, 자손이 제왕(帝王)하여 만세(萬世)의 업으로 여겼다. 시황(始皇)이 이미 죽어도, 남은 위엄이 다른 풍속에 떨쳤다. 그러나 진섭(陳涉)은 항아리 창과 새끼줄 문고리(底本은 「防樞」)의 아들, 망리(氓隸, 底本 이 글자는 생벽자로 전록 후 분실)의 사람이요 옮겨가는 무리로, 재능이 미치지 않고, 중궁(仲弓)・묵적(墨翟)의 어짐도 없고, 도주(陶朱)・의돈(猗頓)의 부도 없이, 행오(行伍) 사이에 발을 디디고, 천맥(阡陌) 가운데에서 몸을 굽혀 일어나, 지치고 흩어진 졸(卒)을 거느려 돌아 진(秦)을 공격하여, 나무를 베어 병기로 삼고, 장대를 들어 깃발로 삼으니, 천하가 구름처럼 모여 호응하고, 양식을 싸서 그림자처럼 따르니, 산동(山東)의 호걸이 마침내 함께 일어나 진족(秦族)을 멸하였다.】. 그러므로 덕에 있지 견고함에 있지 않습니다. 진실로 행의(行義)【주음:「行」는 거성】을 험조로 삼고, 도덕(道徳)을 막힘으로 삼으며, 현인(賢人)을 군사로 삼고, 성인(聖人)을 지킴으로 삼으면, 곧 능히 들어올 자가 없습니다. 이와 같으면 곧 중국에 개가 짖는 경보가 없고, 변경에 사슴이 놀라고 이리가 돌아보는 근심이 없습니다. 문두의 부(夫)【주음:「夫」는 부】: 무슨 망행(妄行)이 있겠습니까【위무후(魏武侯)가 서하(西河)에 떠내려가, 중류에서 돌아보아 오기(吳起)에게 말합니다: 아름답도다 하산(河山)의 견고함이여, 이는 위(魏) 나라의 보물이다. 오기(吳起)가 대답하여 말합니다: 덕에 있지 험준함에 있지 않다. 옛적, 삼묘씨(三苗氏)는 왼쪽에 동정(洞庭), 오른쪽에 팽려(彭蠡)이었으나, 덕의(德義)가 닦이지 않아 순(舜)이 이를 멸하였다. 하걸(夏桀)의 거처는 왼쪽에 하제(河濟), 오른쪽에 태화(太華), 이궐(伊闕)이 그 남쪽에 있고, 양장(羊腸)이 그 북쪽에 있었으나, 정치를 닦아 인(仁)하지 않으니, 탕(湯)이 이를 내쫓았다. 은주(殷紂)의 나라는 왼쪽에 맹문(孟門), 오른쪽에 태행(太行), 상산(常山)이 그 북쪽에 있고, 대하(大河)가 그 남쪽을 지났으나, 정치를 닦아 덕이 없으니, 무왕(武王)이 이를 쳤다. 이로부터 보면, 덕에 있지 험준함에 있지 않다. 만약 임금이 덕을 닦지 않으면, 배 안의 사람이 모두 적국이다. 무후(武侯)가 말합니다: 좋다. 좌사(左思)가 말합니다: 검각(劍閣)이 비록 높아도, 이에 의지하는 자는 넘어지니, 깊은 뿌리와 굳은 뿌리를 삼는 까닭이 아니다. 동정(洞庭)이 비록 깊어도, 이에 의지하는 자는 패하니, 사람을 사랑하고 나라를 다스리는 까닭이 아니다. 《시전(詩傳)》에 말합니다: 지금, 견고한 갑옷과 날카로운 병기가 있어도 이로써 적에게 베풀고 포로를 깨기에 족하지 않고, 활이 좋고 화살이 맞아도 멀리 쏘고 미묘함에 맞추기에 족하지 않으면, 병기가 없음과 같다. 백성이 있어도 이로써 엄한 적을 강하게 쓰기에 족하지 않으면, 백성이 없음과 같다. 그러므로 반석(盤石) 천 리는 땅이 있다고 하지 않고, 어리석은 백성 백만은 백성이 있다고 하지 않는다. 《시경(詩)》에 말합니다: 오직 남쪽에 키가 있으나, 이로써 까부를 수 없고, 오직 북쪽에 북두가 있으나, 이로써 술과 물을 뜰 수 없네. 장신(莊辛)이 말합니다: 사는 데 담장을 두지 않아도, 사람이 능히 헐고 상하지 못한다. 행하는 데 주위(周衛)를 따르지 않아도, 사람이 능히 포학하여 해치지 못한다. 이는 군자의 행이다.】.
大夫曰古者為國必察土地山陵阻險天時地利然後可以王伯【音霸】故制地城郭飭溝壘【音磊】以御冦固國春秋曰冬浚洙【音朱】修地利也【春秋曰冬浚洙公羊傳曰洙者何水也浚之者何深之也曷為深之畏齊也曷為畏齊辭殺子紏也穀梁傳曰浚洙者深洙也著力不足也】三軍順天時以實擊虛然固於阻險敵於金城楚莊之圍宋秦師敗崤【音爻】嶔【音欽】巖是也【宋世家曰文公十七年楚以圍宋五月不解宋城中急無食華元乃夜私見楚將子反子反告莊王王問城中何如曰析骸而炊易子而食莊王曰誠哉言我軍亦有七日糧以信故遂罷兵去公羊傳曰秦伯將襲鄭百里子與蹇叔子諫曰千里而襲人未有不亡者也秦伯怒曰若爾之年者宰上之木拱矣爾曷知師出百里子與蹇叔子送其子而戒之曰爾即死必於殽之嶔巖是文王之所闢風雨者也吾將屍爾焉子揖師而行百里子與蹇叔子從其子而哭之秦伯怒曰爾曷為哭吾師對曰臣非敢哭君師哭臣之子也髙者鄭商也遇之殽矯以鄭伯之命而犒師焉或曰往矣或曰反矣然而晉人與姜戎要之殽而撃之匹馬隻輪無反者也】故曰天時地利羌胡固近於邊今不敢取必為四境長患此季孫之所以憂顓臾有勾踐之變而為強呉之所悔也
대부(大夫)가 말하였습니다: 옛날 나라를 세우는 자는 반드시 토지와 산릉(山陵)과 조험(阻險), 천시(天時)와 지리(地利)를 살핀 뒤에야 이로써 왕패(王霸)【주음:「伯」는 패】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땅을 제어하여 성곽을 짓고, 도랑과 보루【주음:「壘」는 뇌】를 정돈하여 이로써 적을 막고 나라를 굳혔습니다. 《춘추(春秋)》에 말합니다: 겨울에 주(洙)【주음:「洙」는 주】를 준설하였다, 이는 지리(地利)를 닦은 것입니다【《춘추(春秋)》에 말합니다: 겨울에 주(洙)를 준설하였다. 《공양전(公羊傳)》에 말합니다: 주(洙)는 무엇인가? 물이다. 이를 준설함은 무엇인가? 이를 깊게 한 것이다. 어찌하여 이를 깊게 하였는가? 제(齊)를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제(齊)를 두려워했는가? 글이 자규(子糾)를 죽이려 한 것이다. 《곡량전(穀梁傳)》에 말합니다: 주(洙)를 준설함은, 주(洙)를 깊게 한 것이다. 이는 힘을 씀이 족하지 않다.】. 삼군(三軍)이 천시(天時)를 따르고, 실(實)로 허(虛)를 치며, 그러나 조험(阻險)에 굳고, 금성(金城)에 대적합니다. 초장(楚莊)이 송(宋)을 포위하고, 진(秦)의 군사가 효산(崤山)【주음:「崤」는 효】의 흠암(嵚岩)【주음:「嵚」는 흠】에서 패한 것은, 곧 이것입니다【《송세가(宋世家)》에 말합니다: 문공(文公) 십칠 년, 초(楚)가 송(宋)을 포위하기를 다섯 달에 풀리지 않으니, 송(宋) 성 안이 급하여 먹을 것이 없었다. 화원(華元)이 곧 밤에 몰래 초(楚) 장수 자반(子反)을 만나니, 자반(子反)이 장왕(莊王)에게 고하였다. 왕이 성 안이 어떠한가 물으니, 말합니다: 해골을 쪼개어 삶고, 자식을 바꾸어 먹는다. 장왕(莊王)이 말합니다: 진실하도다 말이여. 우리 군사도 또한 칠 일의 양식이 있다. 신실함으로, 마침내 군사를 거두어 떠났다. 《공양전(公羊傳)》에 말합니다: 진백(秦伯)이 장차 정(鄭)을 습격하려 하니, 백리자(百里子)와 건숙자(蹇叔子)가 간하여 말합니다: 천 리를 가서 남을 습격하는 것은, 아직 망하지 않은 적이 없다. 진백(秦伯)이 노하여 말합니다: 너희의 나이 같은 자는, 묘정(宰上)의 나무가 두 팔로 껴안을 만큼 자랐는데, 너희가 어찌 아는가? 군사가 나가니, 백리자(百里子)와 건숙자(蹇叔子)가 그 아들을 배웅하여 이를 경계하여 말합니다: 너희가 곧 죽으면, 반드시 효(殽)의 흠암(嵚岩)에 있을 것이니, 이는 문왕(文王)이 비바람을 피한 곳이다. 내가 장차 너희를 거둘 것이다. 아들이 군사에게 읍하고 갔다. 백리자(百里子)와 건숙자(蹇叔子)가 그 아들을 따라 이를 곡하였다. 진백(秦伯)이 노하여 말합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 군사를 곡하는가? 대답하여 말합니다: 신이 감히 임금의 군사를 곡한 것이 아니요, 신의 아들을 곡한 것이다. 현고(弦高, 底本 이 글자는 생벽자로 전록 후 분실)는 이는 정(鄭)의 상인으로, 이를 효(殽)에서 만나, 정백(鄭伯)의 명을 가장하여 이로써 군사를 위로하였다. 혹은 간다고 하고, 혹은 돌아간다고 하였다. 그러나 진(晉) 사람과 강융(姜戎)이 이를 효(殽)에서 요격하여 이를 치니, 짝말과 한 수레바퀴도 돌아온 자가 없었다.】. 그러므로 천시지리(天時地利)를 말합니다. 강호(羌胡)는 본래 변경에 가까우니, 지금, 감히 취하지 않으면, 반드시 사경(四境)의 오랜 근심이 될 것입니다. 곧 이는 계손(季孫)이 전욱(顓臾)를 근심한 까닭이요, 구천(句踐)의 변(變)이 있어 강오(強吳)가 후회하는 곳이 된 것입니다.
文學曰地利不如人和武力不如文徳【闘防謂莫敖曰師克在和不在眾商周之不敵君之所聞也成軍以出又何濟焉孫卿曰夫兵之要在附親士民而已六馬不和造父不能以致逺弓矢不調羿不能以中微士民不親附湯武不能以戰勝由此觀之要在於附親士民而已矣兵略曰駟馬不調造父不能以致逺弓矢不調羿不能以必中君臣乖心則孫子不能以應敵呉子曰不和於國不可以出軍不和于軍不可以出陣不和於陣不可以進戰不和於戰不可以決勝】周之致逺不以地利以人和也百世不奪非以險以徳也【婁敬曰武王伐紂不期而防孟津上八百諸侯遂滅殷成王即位周公之屬傅相焉乃營成周都雒以為此天下中諸侯四方納貢職道里鈞矣有徳則易以王無徳則易以亡凡居此者欲令務以徳致人不欲阻險令後世驕奢以虐民也汜論曰武王克殷欲築宮於五行之山周公曰不可夫五行之山固塞險阻之地使我徳能覆之則天下納其貢職者廽也我有暴亂之行則天下之伐我難矣此所以三十六世而不奪也周公可謂能持滿矣許慎曰廻迂難也廻或作固固必也周公言我有暴亂之行則天下當來伐我我無為於五行之山使天下來伐我者難也言其依徳不恃險也】呉有三江五湖之難而兼于越楚有汝淵滿堂之固而滅於秦秦有隴阺【音低】崤【音餚】塞而亡於諸侯晉有河華【去聲】九河而奪於六卿齊有泰山巨海而負于田常桀紂有天下兼有濟亳【音薄】秦王以六合困於陳渉非地利不固無術以守之也釋邇憂逺猶呉不內定其國而西絶淮山與齊晉爭強也越因其罷【音疲】擊其虛【蔡澤曰呉王夫差兵無敵於天下勇猛以輕諸侯陵齊晉故遂以殺身亡國】使呉王用申胥修徳無恃極其眾則勾踐不免為藩臣海崖何謀之敢慮也【呉語解曰申胥楚大夫伍奢之子子胥也名員魯昭二十年奢誅於楚員奔呉呉子與之申地故曰申胥】大夫曰楚自巫山起方城屬巫黔【音鉗】中設扞關以距秦秦包商洛崤【音爻】函【音鹹】以御諸侯韓阻宜陽伊闕要成臯太行【音杭】以安周鄭魏濵洛築城阻山帶河以保晉國趙結飛狐句注孟門以存荊代燕塞碣石絶邪谷繞援遼齊撫阿甄關榮歴倚太山負海河關梁者邦國之固而山川社稷之寳也徐人滅舒春秋謂之取惡【音汙】其無備得物之易【音異】也【春秋曰徐人取舒公羊傳曰其言取之何易也】故恤來兵仁傷刑君子為國必有不可犯之難【去聲】易曰重門擊柝以待暴客言備之素修也
문학(文學)이 말하였습니다: 지리(地利)는 인화(人和)만 못하고, 무력(武力)은 문덕(文德)만 못합니다【두렴(鬬廉, 底本은 「闘防」)이 막오(莫敖)에게 말합니다: 군사가 이기는 것은 화(和)에 있지, 많음에 있지 않다. 상주(商周)가 대적하지 못함은, 임금이 들은 바다. 이루어진 군사로 나가도, 또 무슨 도움이 있겠는가? 손경(孫卿)이 말합니다: 군사의 요는 사민(士民)을 붙여 친하게 함에 있을 뿐이다. 여섯 말이 화하지 않으면, 조부(造父)도 이로써 멂을 이를 수 없다. 활과 화살이 맞지 않으면, 예(羿)도 이로써 미묘함에 맞출 수 없다. 사민(士民)이 친하여 붙지 않으면, 탕무(湯武)도 이로써 싸워 이길 수 없다. 이로부터 보면, 요는 사민(士民)을 붙여 친하게 함에 있을 뿐이다. 〈병략(兵略)〉에 말합니다: 네 마리 말이 맞지 않으면, 조부(造父)도 이로써 멂을 이를 수 없다. 활과 화살이 맞지 않으면, 예(羿)도 이로써 반드시 맞출 수 없다. 군신이 마음이 어그러지면, 곧 손자(孫子)도 이로써 적에 응할 수 없다. 오자(吳子)가 말합니다: 나라에 화하지 않으면 이로써 군사를 낼 수 없고, 군사에 화하지 않으면 이로써 진을 낼 수 없으며, 진에 화하지 않으면 이로써 싸움을 나아갈 수 없고, 싸움에 화하지 않으면 이로써 승을 결할 수 없다.】. 주(周)가 멂을 이른 것은 지리(地利)로써 하지 않고, 인화(人和)로써 하였으며, 백 세(百世) 빼앗기지 않은 것은 험준으로써가 아니요, 덕으로써 하였습니다【누경(婁敬)이 말합니다: 무왕(武王)이 주(紂)를 치니, 기약하지 않고 회(會, 底本은 「防」)한 것이 맹진(孟津) 위에 팔백 제후요, 마침내 은(殷)을 멸하였다. 성왕(成王)이 즉위하여, 주공(周公)의 무리가 보좌하고, 곧 성주(成周)를 짓고 낙(雒)에 도읍하여, 이로써 이는 천하의 가운데로 여겨, 제후가 사방에서 공직(貢職)을 바치는 데, 도리(道里)가 균일하게 하였다. 덕이 있으면 곧 이로써 왕하기 쉽고, 덕이 없으면 곧 이로써 망하기 쉽다. 무릇 여기에 사는 자는, 힘써 덕으로 사람을 이르게 하고자 하여, 조험(阻險)으로 후세로 하여금 교만하고 사치하여 백성을 학대하게 하고자 하지 않았다. 〈범론(泛論)〉에 말합니다: 무왕(武王)이 은(殷)을 이기고, 오행산(五行山)에 궁을 쌓으려 하였다. 주공(周公)이 말합니다: 안 된다. 오행산(五行山)은 이는 견고하고 막히고 험준한 땅이다. 우리 덕으로 하여금 능히 이를 덮게 하면, 곧 천하가 그 공직(貢職)을 바치는 것은 광풍과 같다. 우리에게 포란(暴亂)한 행실이 있으면, 곧 천하가 우리를 치는 것이 어렵다. 곧 이는 삼십육 세(世)를 하여 빼앗기지 않은 까닭이다. 주공(周公)은 이로써 능히 가득 참을 지킨다고 할 만하다. 허신(許慎)이 말합니다: 회(廻)는 우난(迂難)이다. 회(廻)는 혹 고(固)로 쓰니, 고(固)는 필(必)이다. 주공(周公)이 말한 것은, 우리에게 포란(暴亂)한 행실이 있으면 곧 천하가 마땅히 와서 우리를 칠 것이니, 반드시 오행산(五行山)을 점거하여 천하로 하여금 와서 우리를 치게 하는 자가 어렵다고 하지 않는다. 이는 그 덕에 의지하고 험준을 믿지 않음을 말한다.】. 오(吳)는 삼강오호(三江五湖)의 험난이 있어도 월(越)에게 겸병되고, 초(楚)는 여연당당(汝淵滿堂)의 견고가 있어도 진(秦)에게 멸했으며, 진(秦)은 농지(隴坻)【주음:「阺」는 저】와 효새(崤塞)【주음:「崤」는 효】가 있어도 제후에게 망했고, 진(晉)은 하화(河華)【주음:「華」는 거성】와 구하(九河)가 있어도 육경(六卿)에게 빼앗겼으며, 제(齊)는 태산(泰山)과 거해(巨海)가 있어도 전상(田常)에게 졌습니다. 걸주(桀紂)는 천하를 겸하여 있어도 제박(濟亳)【주음:「亳」는 박】에 곤란하고, 진왕(秦王)은 육합(六合)으로 진섭(陳涉)에게 곤란하니, 함께 지리(地利)가 견고하지 않은 것이 아니요, 이는 꾀가 없어 이로써 이를 지킨 것입니다. 가까움을 버리고 먼 것을 근심함은, 마치 오(吳)가 그 나라를 안으로 정하지 않고 서쪽으로 회산(淮山)을 끊어 제(齊)와 진(晉)과 강함을 다투고, 월(越)이 그 지침【주음:「罷」는 피】에 의지하여 그 허(虛)를 침과 같습니다【채택(蔡澤)이 말합니다: 오왕부차(吳王夫差)의 군사가 천하에 적이 없고, 용맹하여 제후를 가볍게 여기고 제(齊)와 진(晉)을 능멸하니, 그러므로 마침내 이로써 몸이 죽고 나라가 망하였다.】. 만약 오왕(吳王)이 신서(申胥)를 써서 덕을 닦고, 그 무리를 극에 믿지 않았으면, 곧 구천(句踐)이 번신(藩臣)이 되어 바다 가에 있는 것을 면하지 못하여, 무슨 꾀를 감히 꾀했겠습니까【《오어(吳語)》의 해설: 신서(申胥)는 이는 초(楚)의 대부(大夫) 오사(伍奢)의 아들 자서(子胥)요, 이름이 원(員)이다. 노소(魯昭) 이십 년에 사(奢)가 초(楚)에서 주살되니, 원(員)이 오(吳)로 달아나니, 오자(吳子)가 이에게 신(申)의 땅을 주었으니, 그러므로 신서(申胥)라 부른다.】. 대부(大夫)가 말하였습니다: 초(楚)는 무산(巫山)에서 방성(方城)을 일으켜, 무검중(巫黔中)【주음:「黔」는 겸】에 잇고, 한관(捍關)을 설치하여 이로써 진(秦)을 막았습니다. 진(秦)은 상낙(商洛)・효(崤)【주음:「崤」는 효】・함(函)【주음:「函」는 함】을 싸서 이로써 제후를 막았습니다. 한(韓)은 의양(宜陽)・이궐(伊闕)을 의지하고, 성고(成皋)・태행(太行)【주음:「行」는 항】을 요하여 이로써 주(周)와 정(鄭)을 편안하게 하였습니다. 위(魏)는 낙(洛)에 가까이 성을 쌓고, 산을 의지하고 하(河)를 띠어 이로써 진(晉) 나라를 보전하였습니다. 조(趙)는 비호(飛狐)・구주(句注)・맹문(孟門)을 맺어 이로써 형대(荊代)를 존하였습니다. 연(燕)은 갈석(碣石)을 막고, 사곡(邪谷)을 끊고, 원료(援遼)를 둘렀습니다. 제(齊)는 아견(阿甄)을 어루만지고, 영역(榮歷)을 관하며, 태산(泰山)을 기대고, 해하(海河)를 짊어졌습니다. 관량(關梁)은 이는 국가의 견고함이요, 산천은 이는 사직(社稷)의 보물입니다. 서(徐) 사람이 서(舒)를 멸하니, 《춘추(春秋)》가 이를 취(取)라 하니, 그 대비가 없고 물건을 얻음이 쉬움【주음:「易」는 이】을 꺼립니다【주음:「惡」는 오】【《춘추(春秋)》에 말합니다: 서(徐) 사람이 서(舒)를 취하였다. 《공양전(公羊傳)》에 말합니다: 그 취하였다고 말함은 무엇인가? 쉬움이다.】. 그러므로 온 군사를 불쌍히 여기고, 상형(傷刑)을 인(仁)으로 여깁니다. 군자가 나라를 지음에 반드시 범할 수 없는 어려움【주음:「難」는 거성】이 있습니다. 《역경(易)》에 말합니다: 문을 겹치고 탁(柝)을 쳐서 이로써 폭객(暴客)을 기다리니, 이는 대비를 평소에 닦음을 말한다.
文學曰阻險不如阻義昔湯以七十里為政於天下舒以百里亡於敵國此其所以見惡【音汙】也【泰族訓曰天子得道守在四夷天子失道守在諸侯諸侯得道守在四鄰諸侯失道守在四境故湯處亳七十里文王處鄷百里皆令行禁止於天下週之衰也戎伐凡伯於楚丘以歸故得道則以百里之地令於諸侯失道則以天下之大畏於兾州故曰無恃其不吾奪也恃吾不可奪行可奪之道而非簒殺之行無益於恃天下矣汜論曰堯無百戸之郭舜無置錐之地以有天下禹無十人之眾湯無七里之分以王諸侯文王處岐周之間也地方不過百里而立為天子者有王道也夏桀殷紂之盛也人跡所至舟車所通莫不為郡縣然而身死人手而為天下笑者有亡形也故得王道者雖小必大有亡形者雖成必敗趙襄子以晉陽之城霸智伯以三晉之地擒湣王以大齊亡田單以即墨有功故國之亡也雖大不足恃道之行也雖小不可輕由此觀之存在得道而不在於大也亡在失道而不在於小也】使關梁足恃六國不兼於秦河山足保秦不亡於楚漢由此觀之沖隆不足為強髙城不足為固行善則昌行惡則亡【詩傳曰堅甲利兵不足以為武髙城深池不足以為固嚴令繁刑不足以為威由其道則行不由其道則廢昔楚人蛟革犀兕以為甲堅如金石宛如鉅蛇慘若蜂蠆輕利剛疾卒如飄風然兵殆於垂沙唐子死莊蹻走楚分為三四者此豈無堅甲利兵也哉所以統之非其道故也汝淮以為險江漢以為池縁之以方城限之以鄧林然秦師至於鄔郢舉若振槁然是豈無固塞限險也哉其所以統之者非其道故也紂殺比干而囚箕子為炮烙之刑殺戮無時群下愁怨皆莫兾其命然周師至令不行乎左右而豈其無嚴令繁刑也哉其所以統之者非其道故也若夫明道而均分之誠愛而時使之則下之應上如影響矣】王者博愛逺施外內合同四海各以其職來祭何擊柝而待傳【去聲】曰諸侯之有關梁庶人之有爵祿非昇平之興蓋自戰國始也
문학(文學)이 말하였습니다: 조험(阻險)은 조의(阻義)만 못합니다. 옛적, 탕(湯)은 칠십 리로 천하에 정치를 하고, 서(舒)는 백 리로 적국에 망했으니, 곧 이는 그 악(惡)【주음:「惡」는 오】을 보인 까닭입니다【〈태족훈(泰族訓)〉에 말합니다: 천자가 도(道)를 얻으면, 지킴이 사이(四夷)에 있다. 천자가 도(道)를 잃으면, 지킴이 제후에 있다. 제후가 도(道)를 얻으면, 지킴이 사린(四鄰)에 있다. 제후가 도(道)를 잃으면, 지킴이 사경(四境)에 있다. 그러므로 탕(湯)은 박(亳)에 처하여 칠십 리이고, 문왕(文王)은 풍(豐)에 처하여 백 리이나, 모두 명령이 행하고 금지가 그침을 천하에 하였다. 주(周)가 쇠하여, 융(戎)이 범백(凡伯)을 초구(楚丘)에서 쳐서 이로써 돌아갔다. 그러므로 도(道)를 얻으면 곧 백 리의 땅으로 제후에게 명령하고, 도(道)를 잃으면 곧 천하의 큼으로 기주(冀州)를 두려워한다. 그러므로 말한다: 그 나를 빼앗지 않음을 믿지 말고, 나의 빼앗길 수 없음을 믿어라. 빼앗길 수 있는 도(道)를 행하여 찬살(篡殺)의 행실이 아니면, 천하를 믿는 데 이익이 없다. 〈범론(泛論)〉에 말합니다: 요(堯)에게는 백 호의 성곽이 없고, 순(舜)에게는 송곳을 꽂을 땅이 없으나, 이로써 천하를 가졌다. 우(禹)에게는 열 사람의 무리가 없고, 탕(湯)에게는 칠 리의 나눔이 없으나, 이로써 제후에 왕이 되었다. 문왕(文王)은 기주(岐周) 사이에 처하여, 땅이 백 리를 넘지 않고서 서서 천자가 되었으니, 이는 왕도(王道)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걸(夏桀)과 은주(殷紂)의 성함이여, 사람 발자취가 이른 곳, 수레와 배가 통한 곳에, 군현(郡縣)이 되지 않는 곳이 없었으나, 그러나 몸이 남의 손에 죽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으니, 이는 망할 형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왕도(王道)를 얻으면 곧 비록 작아도 반드시 크고, 망할 형체가 있으면 곧 비록 이루어도 반드시 패한다. 조양자(趙襄子)는 진양(晋陽)의 성으로 패(霸)하고, 지백(智伯)은 삼진(三晋)의 땅으로 사로잡혔으며, 민왕(湣王)은 대제(大齊)로 망하고, 전단(田單)은 즉묵(即墨)으로 공이 있었다. 그러므로 나라가 망함은, 비록 커도 믿을 만하지 않다. 도(道)가 행해짐은, 비록 작아도 가볍게 여길 수 없다. 이로부터 보면, 존재는 도(道)를 얻음에 있지 큼에 있지 않고, 망함은 도(道)를 잃음에 있지 작음에 있지 않다.】. 관량(關梁)을 믿을 만하게 하면, 육국이 진(秦)에게 겸병되지 않았을 것이고, 하산(河山)을 보전할 만하게 하면, 진(秦)이 초한(楚漢)에게 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로부터 보면, 충륭(衝隆)은 이로써 강함을 삼기에 족하지 않고, 높은 성은 이로써 견고함을 삼기에 족하지 않으며, 착함을 행하면 곧 창하고, 악함을 행하면 곧 망합니다【《시전(詩傳)》에 말합니다: 견고한 갑옷과 날카로운 병기는 이로써 무(武)를 삼기에 족하지 않고, 높은 성과 깊은 못은 이로써 견고함을 삼기에 족하지 않으며, 엄한 명령과 많은 형벌은 이로써 위엄을 삼기에 족하지 않다. 그 도(道)를 따르면 곧 행해지고, 그 도(道)를 따르지 않으면 곧 폐한다. 옛적, 초(楚) 사람은 상어 가죽과 코뿔소 가죽으로 갑옷을 삼으니, 굳기가 금석과 같고, 굽은 것이 큰 뱀과 같고, 심한 것이 벌과 전갈과 같아, 가볍고 날카롭고 굳세고 빠르며, 졸(卒)함이 회오리바람과 같았으나, 그러나 군사가 수사(垂沙)에서 위태로워, 당자(唐子)가 죽고, 장교(莊蹻)가 달아나니, 초(楚)가 나뉘어 서넛이 되었다. 이 어찌 견고한 갑옷과 날카로운 병기가 없었는가? 이를 통솔하는 까닭이 그 도(道)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수(汝水)와 회수(淮水)를 험준으로 삼고, 장한(江漢)을 연못으로 삼으며, 이를 방성(方城)으로 둘러싸고, 이를 등림(鄧林)으로 한정하였으나, 그러나 진(秦)의 군사가 언영(鄢郢)에 이르러, 들기가 마른 것을 털듯 하였다. 이 어찌 견고한 막힘과 험준함이 없었는가? 그 이를 통솔하는 까닭이 그 도(道)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주(紂)가 비간(比干)을 죽이고 기자(箕子)를 가두며, 포락(炮烙)의 형벌을 지어, 죽이고 베는 것이 때가 없으니, 아랫사람들이 근심하고 원망하여, 모두 그 목숨을 바라지 않았으나, 그러나 주(周)의 군사가 이르니 명령이 좌우에 행해지지 않았다. 어찌 그 엄한 명령과 많은 형벌이 없었는가? 그 이를 통솔하는 까닭이 그 도(道)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만약 도(道)를 밝혀 고르게 이를 나누고, 진실로 사랑하여 때에 이를 부리면, 곧 아래가 위에 응함이 그림자와 메아리와 같다.】. 왕자(王者)가 널리 사랑하고 멀리 베풀어, 밖과 안이 함께 맞고, 사해(四海)가 각각 그 직분으로 와서 제사하면, 무엇을 탁(柝)을 쳐서 기다리겠습니까? 전(傳)【주음:「傳」는 거성】에 이르기를: 제후에게 관량(關梁)이 있음과, 서인(庶人)에게 작록(爵祿)이 있음은, 함께 승평(升平)의 흥함이 아니요, 대개 이는 전국(戰國)에서 시작하였다.
論勇第五十一
논용제오십일(論勇第五十一)
大夫曰荊軻懐數年之謀而事不就者三尺匕【音比】首不足恃也秦王憚於不意列斷賁育介尺之利也【燕丹子曰荊軻刺秦王右手執匕首左手把其袖秦王曰乞聼琴聲而死琴女奏曲雲羅縠單衣可掣而絶三尺屏風可超而越鹿盧之劒可負而防王從其計軻不解琴故及於難】使專諸空拳不免於為禽【左傳作鱄設諸禽通作擒】要離無水不能遂其功【刺客傳曰伍子胥知公子光之慾殺呉王僚乃曰彼光將有內志未可說以外事乃進專諸於公子光光既得專諸善客待之九年而楚平王死春呉王僚欲因楚防使其二弟公子蓋餘屬庸將兵圍楚之潛使延陵季子於晉以觀諸侯之變楚發兵絶呉將蓋餘屬庸路呉兵不得還於是公子光謂專諸曰此時不可失不求何獲且光真王嗣當立季子雖來不吾廢也專諸曰王僚可殺也母老子弱而兩弟將兵伐楚楚絶其後方今呉外困於楚而內空無骨鯁之臣是無如我何公子光頓首曰光之身子之身也四月丙子光伏甲士於窟室中而具酒請王僚王僚使兵陳自宮至光之家門戸階陛左右皆王僚之親戚也夾立侍皆持長鈹酒既酣公子光為足疾入窟室中使專諸置匕首魚炙之腹中而進之既至王前專諸擘魚因以匕首刺王僚王僚立死左右亦殺專諸王人擾亂公子光出其伏甲以攻王僚之徒盡滅之遂自立為王是為闔閭乃封專諸之子以為上卿呉越春秋曰呉王欲殺王子慶忌而莫之能殺呉王患之要離曰臣能之呉王曰汝惡能乎吾嘗以六馬逐之江上矣而不能及射之矢左右滿把而不能中今汝防劒則不能舉臂上車則不能登軾汝惡能要離曰士患不勇耳奚患而不能王誠能助臣請必能呉王曰諾明旦加要離罪焉摯執妻子焚之而其灰要離走往見王子慶忌於衞王子慶忌喜曰呉王之無道也子之所見也諸侯之所知也今子得免而去之亦善矣要離與王子慶忌居有間謂王子慶忌曰呉之無道也愈甚請與王子往奪之國王子慶忌曰善乃與要離俱渉於江中江防劒以刺王子慶忌捽之投之於江浮則又取而投之如此者三其卒曰汝天下之國士也幸汝以成而名要離得不死歸於呉呉王大說請與分國要離曰不可臣請必死呉王止之要離曰夫殺妻子焚之而其灰以便事也臣以為不仁夫為故主殺新主臣以為不義夫捽而浮乎江三入三出特王子慶忌為之賜而不殺耳臣已為辱矣夫不仁不義又且已辱不可以生呉王不能止果仗劒而死要離可謂不為賞動矣故臨大利而不易其義可謂廉矣亷故不以富貴而忘其辱】世言強楚勁鄭有犀兕之甲棠谿之鋌【音挺】也內據金城外任利兵是以威行諸夏強服敵國故孟賁奮臂眾人輕之怯夫有備其氣自倍【語曰騏驥之衰也駑馬先之孟賁之倦也女子勝之】況以呉楚之士舞利劒蹶【音決】強弩以與貉虜騁【音逞】於中原一人當百不足道也夫【音扶】如此則胡無守谷谿無交兵力不支漢其勢必降此商君之走魏而孫臏之破梁也【衞鞅傳曰孝公二十二年使衞鞅將而伐魏魏使公子卬將而擊之軍既相距衞鞅遺魏將公子卬書曰吾始與公子驩今俱為兩國將不忍相攻可與公子曲相見盟樂飲而罷兵以安秦魏魏公子卬以為然防盟已飲而衞鞅伏甲士而襲虜魏公子卬因攻其軍盡破之以歸秦魏惠王兵數破於齊秦國內空日以削恐乃使使割西河之地獻於秦以和而魏遂去安邑徙都大梁孫臏傳曰宣王二年魏與趙攻韓韓告急於齊齊使田忌將而往直走大梁魏將龎涓聞之去韓而歸齊軍既已過而西矣孫子謂田忌曰彼三晉之兵素悍勇而輕齊齊號為怯善戰者因其勢而利導之兵法百里而趨利者蹶上將三十里而趨利者軍半至使齊軍入魏地為十萬灶明日為五萬灶龎涓行三日大喜曰我固知齊軍怯入吾地三日士卒亡者過半矣乃棄其歩軍與其輕銳倍日並行逐之孫子度其行暮當至馬陵馬陵道狹而旁多阻隘可伏兵乃斫大樹白而書之曰龎涓死於此樹之下於是令齊軍善射者萬弩夾道而伏期日暮見火舉而俱發龎涓果夜至斫木下見白書乃鑚火燭之讀其書未畢齊軍萬弩俱發魏軍大亂相失龎涓自知智窮兵敗乃自剄曰遂成豎子之名齊因乗勝盡破其軍虜魏太子申以歸孫臏以此名顯天下世傳其兵法】
대부(大夫)가 말하였습니다: 형가(荊軻)가 여러 해의 꾀를 품었으나 일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이는 삼 척의 비수(匕首)【주음:「匕」는 비】가 믿을 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진왕(秦王)이 뜻밖에 두려워하여, 분육(賁育)을 갈라 끊은 것은, 이는 갑지척(介咫, 底本 이 글자는 생벽자로 전록 후 분실) 척의 날카로움입니다【《연단자(燕丹子)》에 말합니다: 형가(荊軻)가 진왕(秦王)을 찌르니, 오른손은 비수(匕首)를 잡고, 왼손은 그 소매를 잡았다. 진왕(秦王)이 말합니다: 거문고 소리를 듣고 죽기를 청한다. 거문고 여자가 곡을 연주하여 말합니다: 비단 옷은 잡아당겨 끊을 수 있고, 삼 척 병풍은 넘어갈 수 있으며, 녹로(鹿盧)의 칼은 지고 뽑을(底本은 「防」) 수 있다. 왕이 그 꾀를 따르니, 가(軻)가 거문고를 알지 못하여, 그러므로 재난에 이르렀다.】. 전제(專諸)로 하여금 빈 주먹이면, 사로잡힘【《좌전(左傳)》은 「鱄設諸」으로 쓴다. 「禽」은 「擒」과 통한다.】을 면하지 못하고, 요리(要離)는 물이 없으면, 그 공을 이룰 수 없습니다【《자객전(刺客傳)》에 말합니다: 오자서(伍子胥)가 공자광(公子光)이 오왕료(吳王僚)를 죽이고자 함을 알고, 곧 말합니다: 저 광(光)은 장차 안의 뜻이 있으니, 아직 바깥 일로 말할 수 없다. 곧 전제(專諸)를 공자광(公子光)에게 바쳤다. 광(光)이 이미 전제(專諸)를 얻어, 좋은 손님으로 이를 대우하였다. 구 년에 초평왕(楚平王)이 죽었다. 봄, 오왕료(吳王僚)가 초(楚)의 상(喪, 底本은 「楚防」)을 따라 그 두 아우 공자개여(公子蓋餘)・속용(屬庸)으로 하여금 군사를 거느려 초(楚)의 잠(潜)을 포위하게 하고, 연릉계자(延陵季子)를 진(晉)에 보내어 이로써 제후의 변(變)을 살피게 하였다. 초(楚)가 군사를 내어 오(吳) 장수 개여(蓋餘)・속용(屬庸)의 길을 끊으니, 오(吳) 군사가 돌아갈 수 없었다. 이에 공자광(公子光)이 전제(專諸)에게 말합니다: 이 때는 잃을 수 없으니, 구하지 않으면 무엇을 얻겠는가? 또 광(光)은 참된 왕의 후사(嗣)로 마땅히 서야 하고, 계자(季子)가 와도 나를 폐하지 않는다. 전제(專諸)가 말합니다: 왕료(王僚)는 죽일 수 있다. 어머니는 늙고 아들은 어리며, 두 아우는 군사를 거느려 초(楚)를 치고, 초(楚)가 그 뒤를 끊었다. 지금 오(吳)는 밖으로 초(楚)에게 곤란하고 안이 비어 골경(骨鯁)의 신하가 없으니, 이는 나를 어찌할 수 없다. 공자광(公子光)이 머리를 조아려 말합니다: 광(光)의 몸은, 그대의 몸이다. 사월 병자(丙子), 광(光)이 갑사(甲士)를 굴실(窟室) 안에 매복하고 술을 갖추어 왕료(王僚)를 청하였다. 왕료(王僚)가 군사로 하여금 궁에서 광(光)의 집에 이르도록 벌리게 하니, 문과 대문과 층계의 좌우가 모두 왕료(王僚)의 친척이며, 양옆에 서서 시중드는 자가 모두 긴 피(鈹)를 들었다. 술이 이미 취하니, 공자광(公子光)이 발의 병을 들어 굴실(窟室) 안에 들어가고, 전제(專諸)로 하여금 비수(匕首)를 생선구이 뱃속에 넣어 이를 올리게 하였다. 이미 왕 앞에 이르니, 전제(專諸)가 생선을 쪼개고, 이에 비수(匕首)로 왕료(王僚)를 찔렀다. 왕료(王僚)가 곧 죽고, 좌우도 또한 전제(專諸)를 죽였다. 왕의 사람들이 어지러워하니, 공자광(公子光)이 그 매복한 갑사(甲士)를 내어 이로써 왕료(王僚)의 무리를 공격하여, 모두 이를 멸하고, 마침내 스스로 서서 왕이 되니, 이를 합려(闔閭)라 한다. 곧 전제(專諸)의 아들을 봉하여 이로써 상경(上卿)으로 삼았다. 《오월춘추(吳越春秋)》에 말합니다: 오왕(吳王)이 왕자경기(王子慶忌)를 죽이고자 하나 이를 죽일 수 있는 자가 없어, 오왕(吳王)이 이를 근심하였다. 요리(要離)가 말합니다: 신이 능히 하겠습니다. 오왕(吳王)이 말합니다: 네가 어찌 능히 하겠는가? 내가 일찍이 여섯 마리로 이를 강 위에서 쫓아도 미치지 못하고, 이를 쏘니 화살이 좌우로 한 움큼에 차도 맞출 수 없었다. 지금, 네가 칼을 뽑으면(底本은 「防劍」) 곧 팔을 들 수 없고, 수레에 오르면 곧 식(軾)에 오를 수 없는데, 네가 어찌 능히 하겠는가? 요리(要離)가 말합니다: 선비는 용하지 않음을 근심할 뿐이니, 무엇을 능하지 못함을 근심하겠습니까? 왕이 진실로 능히 신을 도우면, 청컨대 반드시 능히 하겠습니다. 오왕(吳王)이 말합니다: 알았다. 다음 날 아침, 요리(要離)에게 죄를 더하여, 아내와 자식을 잡아 묶어, 이를 불사르고 그 재를 날렸다(底本 이 글자는 생벽자로 전록 후 분실). 요리(要離)가 달아나 위(衛)의 왕자경기(王子慶忌)에게 가서 보았다. 왕자경기(王子慶忌)가 기뻐하여 말합니다: 오왕(吳王)의 무도(無道)는, 그대가 본 바요, 제후가 아는 바이다. 지금, 그대가 면함을 얻어 이를 떠난 것도 또한 좋다. 요리(要離)와 왕자경기(王子慶忌)가 산 지 얼마 되어, 왕자경기(王子慶忌)에게 말합니다: 오(吳)의 무도(無道)가 더욱 심하니, 청컨대 왕자와 함께 가서 그 나라를 빼앗으려 합니다. 왕자경기(王子慶忌)가 말합니다: 좋다. 곧 요리(要離)와 함께 강을 건너는데, 강 가운데에서 칼을 뽑아(底本은 「江防劍」) 이로써 왕자경기(王子慶忌)를 찌르고, 이를 잡아 강에 던지니, 뜨면 또 잡아 이를 던지기를, 이와 같이 세 번 하였다. 그가 마침내 말합니다: 너는 천하의 국사(國士)니, 너를 다행으로 이루어 이름을 짓게 하리라. 요리(要離)가 죽지 않음을 얻어, 오(吳)에 돌아왔다. 오왕(吳王)이 크게 기뻐하여, 청컨대 나라를 함께 나누려 하였다. 요리(要離)가 말합니다: 안 됩니다. 신이 청컨대 반드시 죽겠습니다. 오왕(吳王)이 이를 그쳤다. 요리(要離)가 말합니다: 아내와 자식을 죽이고 이를 불사르고 그 재를 날려 이로써 일에 편하게 한 것은, 신은 이를 불인(不仁)이라 여깁니다. 옛 주인을 위하여 새 주인을 죽인 것은, 신은 이를 불의(不義)라 여깁니다. 잡혀 강에 뜨고, 세 번 들어가고 세 번 나와, 특히 왕자경기(王子慶忌)를 위하여 사하여 죽이지 않았을 뿐이니, 신은 이미 욕되었습니다. 불인(不仁) 불의(不義)하고 또 이미 욕되었으니, 이로써 살 수 없습니다. 오왕(吳王)이 그칠 수 없어, 과연 칼을 들고 죽었다. 요리(要離)는 이로써 상(賞)에 움직이지 않는다고 할 만하다. 그러므로 큰 이익에 임하여도 그 의(義)를 바꾸지 않으면, 이로써 염(廉)이라 할 만하다. 염(廉)하므로 이로써 부귀(富貴)에 그 욕을 잊지 않는다.】. 세상에 강초(強楚)와 정(鄭)이 서시(犀兕)의 갑옷과 당계(棠谿)의 정(鋋)【주음:「鋋」는 정】이 있어, 안으로 금성(金城)을 점거하고, 밖으로 날카로운 병기를 맡기어, 이로 말미암아 위엄이 제하(諸夏)에 행해지고, 강하게 적국을 복종시켰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맹분(孟賁)이 팔을 떨치면, 뭇 사람이 이를 가볍게 여기고, 겁 많은 자는 대비가 있으면, 그 기(氣)가 스스로 갑절이 됩니다【속어에 말합니다: 기량(騏驥)의 쇠함은, 노마(駑馬)가 이를 앞선다. 맹분(孟賁)의 지침은, 여자가 이를 이긴다.】. 하물며 오(吳)와 초(楚)의 선비로 날카로운 칼을 휘두르고 강한 쇠뇌를 당겨【주음:「蹶」는 결】 이로써 맥로(貉虜)와 중원(中原)에서 달리면【주음:「騁」는 빙】, 한 사람이 백을 당하여 말할 만하지 않습니다. 문두의 부(夫)【주음:「夫」는 부】: 이와 같으면 곧 호(胡)는 지킬 골짜기가 없고, 계곡에 군사를 맞댈 것이 없으며, 힘이 한(漢)을 버티지 못하고, 그 형세가 반드시 항복할 것입니다. 곧 이는 상군(商君)이 위(魏)로 달아난 것과 손빈(孫臏)이 양(梁)을 깬 것입니다【《위양전(衛鞅傳)》에 말합니다: 효공(孝公) 이십이 년에 위양(衛鞅)으로 하여금 장수로 위(魏)를 치게 하니, 위(魏)가 공자앙(公子卬)으로 하여금 장수로 이를 치게 하였다. 군사가 이미 서로 막으니, 위양(衛鞅)이 위(魏) 장수 공자앙(公子卬)에게 편지를 보내어 말합니다: 내가 처음에 공자와 즐거웠는데, 지금 함께 두 나라의 장수가 되어, 서로 공격함을 차마 못하니, 공자와 굽힌 자리에서 서로 만나, 맹하고 즐겁게 마시고 군사를 거두어 이로써 진(秦)과 위(魏)를 편안하게 하려 합니다. 위(魏) 공자앙(公子卬)이 옳다 하여, 회맹(會盟, 底本은 「防」)하여 이미 마셨는데, 위양(衛鞅)이 갑사(甲士)를 매복하여 습격하여 위(魏) 공자앙(公子卬)을 사로잡고, 이에 그 군사를 공격하여 모두 이를 깨어 이로써 진(秦)에 돌아왔다. 위혜왕(魏惠王)의 군사가 여러 번 제(齊)와 진(秦)에게 깨지고, 국내가 비어, 날로 깎이니, 두려워하여, 곧 사자를 보내어 서하(西河)의 땅을 베어 진(秦)에 바쳐 이로써 화해하게 하고, 위(魏)가 마침내 안읍(安邑)을 떠나, 대량(大梁)에 도읍을 옮겼다. 《손빈전(孫臏傳)》에 말합니다: 선왕(宣王) 이 년, 위(魏)가 조(趙)와 함께 한(韓)을 공격하니, 한(韓)이 급함을 제(齊)에 알렸다. 제(齊)가 전기(田忌)로 하여금 장수로 가게 하니, 곧바로 대량(大梁)으로 달렸다. 위(魏) 장수 방연(龐涓)이 이를 듣고, 한(韓)을 떠나 돌아왔다. 제(齊) 군사가 이미 지나 서쪽으로 갔다. 손자(孫子)가 전기(田忌)에게 말합니다: 저 삼진(三晋)의 군사는 본래 강하고 용맹하여 제(齊)를 가볍게 여기니, 제(齊)는 겁이 많다고 불린다. 잘 싸우는 자는 그 형세를 따라 이롭게 이끈다. 병법(兵法): 백 리를 가서 이익을 향하는 자는 상장(上將)을 넘어뜨리고, 삼십 리를 가서 이익을 향하는 자는 군사가 절반이 이른다. 제(齊) 군사로 하여금 위(魏) 땅에 들어가게 하여 십만의 아궁이를 만들고, 다음 날은 오만의 아궁이를 만들었다. 방연(龐涓)이 간 지 삼 일에 크게 기뻐하여 말합니다: 내가 본래 제(齊) 군사가 겁이 많음을 알았는데, 우리 땅에 들어온 지 삼 일에, 사졸(士卒)이 도망한 자가 절반을 넘었다. 곧 그 보병(步軍)을 버리고, 그 가볍고 날랜 자와 밤낮을 겹쳐 나란히 이를 쫓았다. 손자(孫子)가 그 행함을 헤아리니, 저녁에 마릉(馬陵)에 이를 것이었다. 마릉(馬陵)의 길이 좁고 곁에 험준하고 좁은 곳이 많아, 군사를 매복할 수 있었다. 곧 큰 나무를 쪼아 하얗게 하고 이에 글을 써서 말합니다: 방연(龐涓)이 이 나무 아래에서 죽는다. 이에 제(齊) 군사 중 잘 쏘는 자 만 개의 쇠뇌로 하여금 길을 양옆으로 매복하게 하고, 저녁에 불이 든 것을 보고 함께 쏘기를 기약하였다. 방연(龐涓)이 과연 밤에 쪼아낸 나무 아래에 이르러, 흰 글씨를 보고, 곧 불을 피워 이를 비추었다. 그 글을 읽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제(齊) 군사의 만 개 쇠뇌가 함께 쏘니, 위(魏) 군사가 크게 어지러워 서로를 잃었다. 방연(龐涓)이 스스로 지혜가 다하고 군사가 패함을 알고, 곧 스스로 목을 그어 말합니다: 마침내 어린 놈의 이름을 이루었구나. 제(齊)가 이에 이김을 타서 그 군사를 모두 깨고, 위(魏) 태자 신(申)을 사로잡아 이로써 돌아왔다. 손빈(孫臏)이 이로써 이름이 천하에 드러나고, 세상에 그 병법(兵法)을 전하였다.】.
文學曰楚鄭之棠谿墨陽非不利也【蘇秦曰棠谿墨陽皆陸斷牛馬水截鵠鴈者也許慎曰二者皆利劒名或曰皆地名出美劒者也】犀防【音逐】兕甲非不堅也然而不能存者利不足恃也秦兼六國之師據崤【音餚】函【音鹹】而御宇內金石之固莫耶【古本作邪】之利也【莫邪呉王劒名干將妻之所造也干將妻曰莫邪故名其劒曰莫邪】然陳勝無士民之資兵甲之用鉏【音鋤】耰棘橿【音姜】以破沖隆武昭【音韶】不撃烏號不發【許慎曰沖臨沖也所以臨敵城沖突壤之者也隆髙也劉熈曰隆隆強也言體隆而強也樂書曰韶蕭韶也舜之樂也武大武也武王之樂也應劭曰烏號弓也楚有柘桑其材堅勁鳥峙其上及其將飛枝必撓下勁能復起巢鳥隨之鳥不得飛欲墮而號伐其枝以為弓因曰烏號之弓也張揖曰黃帝鑄鼎於荊山鼎湖得道而仙乗龍上天小臣不得上挽悉持龍髯防墮黃帝之弓百姓仰望抱弓而號故後世名其弓曰烏號也兵略曰二世皇帝勢為天子富有天下人跡所至舟檝所通莫不為郡縣然縱耳目之欲窮侈靡之變不顧百姓之飢寒窮匱也興萬乗之駕而作阿房之宮發閭左之戍牧太半之賦百姓之隨逮肆刑挽輅首路死者一旦不知千萬之數天下敖然若焦熱傾然若苦烈上下不相寜吏民不相憀戍卒陳勝興於大澤攘臂右稱為大楚而天下響應當此之時非有牢甲利兵勁弩強沖也伐棘棗而為矜周錐鑿而為刃剡摲筡奮儋钁以當修防強弩攻城略地莫不降下天下為之麋沸螘動雲徹席捲方數千裡勢位至賤而器械甚不利然一人唱而天下應之者積怨在於民也】所謂金城者非謂築壤而髙土鑿地而深池也所謂利兵者非謂呉越之鋌【音挺】干將之劒也【呉越春秋曰呉王闔閭請干將作劒干將者呉人其妻曰莫邪干將採五山之精六金之英天地伺隂陽百神臨視而金鐵之精未流夫妻乃剪髮及爪而投之罏中金鐵乃濡遂成二劒陽曰干將而作文隂曰莫邪而作漫理干將匿其陽出其隂以獻闔閭闔閭甚寳重之】言以道徳為城以仁義為郭莫之敢攻莫之敢入文王是也以道徳為防【音逐】以仁義為劒莫之敢當莫之敢御湯武是也今不建不可攻之城不可當之兵而欲任匹夫之役而行三尺之刃亦細矣【道應篇曰齊楚呉越皆嘗勝矣然而卒取亡焉不通乎持勝也唯有道之主能持勝孔子勁杓國門之關而不肯以力聞墨子為守攻公輸般服而不肯以兵知善持勝者以強為弱故老子曰道沖而用之又弗盈也惠孟見宋康王蹀足謦欬疾言曰寡人所說者勇有功也不説為仁義者也客將何以教寡人惠孟對曰臣有道於此人雖勇刺之不入雖巧有力擊之不中大王獨無意邪宋王曰善此寡人之所欲聞也惠孟曰夫刺之而不入擊之而不中此猶辱也臣有道於此使人雖有勇弗敢刺雖有力不敢擊夫不敢刺不敢擊非無其意也臣有道於此使人本無其意也夫無其意未有愛利之心也臣有道於此使天下丈夫女子莫不歡然皆欲愛利之心此其賢於勇有力也四累之上也大王獨無意耶宋王曰此寡人所欲得也惠孟對曰孔墨是已孔丘墨翟無地而為君無官而為長天下丈夫女子莫不延頸舉踵而願安利之者今大王萬乗之主也誠有其志則四境之內皆得其利矣賢於孔墨也逺矣宋王無以應惠孟出宋王謂左右曰辯矣客之以説勝寡人也故老子曰勇於不敢則活由此觀之大勇反為不勇耳揚雄曰六經之治貴於未亂兵家之勝貴於未戰】
문학(文學)이 말하였습니다: 초(楚)와 정(鄭)의 당계(棠谿)・묵양(墨陽)은 함께 날카롭지 않은 것이 아니며【소진(蘇秦)이 말합니다: 당계(棠谿)・묵양(墨陽)은 모두 뭍에서는 소와 말을 끊고, 물에서는 기러기를 자른다. 허신(許慎)이 말합니다: 둘은 모두 날카로운 칼의 이름이다. 혹 말한다: 모두 땅의 이름으로, 아름다운 칼을 낸다.】. 서시(犀兕)의 갑옷【底本의 「犀」 아래에 「防」자가 있고 음이 축(逐)인데, 착자(衍字)인지 또는 바른 글자를 정하지 못함】는 함께 견고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능히 존하지 못한 것은, 이는 날카로움이 믿을 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진(秦)은 육국의 군사를 겸하여, 효(崤)【주음:「崤」는 효】・함(函)【주음:「函」는 함】을 점거하여 우내(宇內)를 다스리니, 금석(金石)의 견고함과 막야(莫耶)【고본은 「邪」로 씀】의 날카로움입니다【막야(莫邪)는 이는 오왕(吳王)의 칼 이름이요, 간장(干將)의 아내가 만든 것이다. 간장(干將)의 아내를 막야(莫邪)라 하니, 그러므로 그 칼을 이름하여 막야(莫邪)라 한다.】. 그러나 진승(陳勝)은 사민(士民)의 자본과 병갑(兵甲)의 쓰임이 없이, 우(鉏)【주음:「鉏」는 서】・우(耰)와 극(棘)・강(橿)【주음:「橿」는 강】으로 충륭(衝隆)을 깨니, 무소(武昭)【주음:「昭」는 소】는 치지 않고, 오호(烏號)는 쏘지 않았습니다【허신(許慎)이 말합니다: 충(衝)은 이는 임충(臨衝)으로, 이로써 적성(敵城)에 임하여, 충돌하여 이를 부순다. 융(隆)은 이는 높음이다. 유희(劉熙)가 말합니다: 융(隆)은 이는 융강(隆強)으로, 몸이 융기하여 강함을 말한다. 《악서(樂書)》에 말합니다: 소(韶)는 이는 소소(蕭韶), 순(舜)의 악이다. 무(武)는 이는 대무(大武), 무왕(武王)의 악이다. 응소(應劭)가 말합니다: 오호(烏號)는 이는 활이다. 초(楚)에 뽕나무가 있는데, 그 재목이 굳고 질겨, 새가 그 위에 서고, 그 장차 날려 함에 이르면, 가지가 반드시 아래로 휘어지며, 질겨 능히 다시 일어나니, 둥지의 새가 이를 따라, 새가 날지 못하고, 떨어지려 하여 울부짖으니, 그 가지를 베어 이로써 활을 삼아, 이에 인하여 오호지궁(烏號之弓)이라 한다. 장읍(張揖)이 말합니다: 황제(黃帝)가 형산(荊山) 정호(鼎湖)에서 솥을 부으니, 도(道)를 얻어 신선이 되어, 용을 타고 하늘에 오르니, 작은 신하가 오르지 못하고, 모두 용의 수염을 잡아당기니, 뽑혀(底本은 「防」) 황제의 활을 떨어뜨리니, 백성이 우러러 활을 안고 우니, 그러므로 후세가 그 활을 이름하여 오호(烏號)라 한다. 〈병략(兵略)〉에 말합니다: 이세황제(二世皇帝)가 형세가 천자가 되어, 부가 천하를 가졌으니, 사람 발자취가 이른 곳, 배가 통한 곳에 군현(郡縣)이 되지 않는 곳이 없었으나, 그러나 이목(耳目)의 욕심을 마음대로 하고, 사치와 사치한 변화를 다하며, 백성의 주림과 추위와 곤궁함을 돌아보지 않고, 만승(萬乘)의 수레를 일으켜 아방(阿房)의 궁을 짓고, 여좌(閭左)의 수(戍)를 발하며, 태반(太半)의 부(賦)를 거두니, 백성이 체(逮)에 따라 형(肆刑)을 받고, 수레를 끌고 길을 가다 죽은 자가 하루에 천만의 수를 알지 못하였다. 천하가 오연(敖然)하여 타는 듯 뜨겁고, 경연(傾然)하여 쓰고 매운 듯하며, 상하가 서로 편안하지 않고, 관리와 백성이 서로 기뻐하지 않았다. 수졸(戍卒) 진승(陳勝)이 대택(大澤)에서 일어나, 팔을 걷고 크게 외쳐(底本 이 글자는 생벽자로 전록 후 분실) 대초(大楚)라 칭하니 천하가 호응하였다. 이 때에 당하여, 튼튼한 갑옷과 날카로운 병기, 강한 쇠뇌와 굳센 충(衝)이 있지 않고, 가시나무와 대추나무를 베어 자(矜)를 삼고, 송곳과 끌을 갈아 칼날을 삼으며, 첨도(剡摲)와 도(筡)와 담(儋)과 결(镢)을 떨쳐 이로써 긴 창(底本은 「修防」)과 강한 쇠뇌를 당하니, 성을 공격하고 땅을 약탈하여 항복하지 않는 자 없고, 천하가 이로 말미암아 끓는 사슴과 움직이는 개미처럼 하며, 구름을 걷고 자리를 말기를 네모 수천 리였다. 형세와 지위가 지극히 천하고 기계가 심히 날카롭지 않았으나, 그러나 한 사람이 부르니 천하가 이에 응하였으니, 이는 쌓인 원한이 백성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금성(金城)은, 흙을 쌓아 높이 하고, 땅을 파서 못을 깊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른바 날카로운 병기는, 오월(吳越)의 정(鋋)【주음:「鋋」는 정】과 간장(干將)의 칼이 아닙니다【《오월춘추(吳越春秋)》에 말합니다: 오왕합려(吳王闔閭)가 간장(干將)으로 하여금 칼을 만들게 하였다. 간장(干將)은 이는 오(吳) 사람이요, 그 아내를 막야(莫邪)라 한다. 간장(干將)이 오산(五山)의 정(精)과 육금(六金)의 영(英)을 캐고, 천지를 기다리고(底本 이 글자는 생벽자로 전록 후 분실) 음양을 엿보니, 백신(百神)이 내려다보아도 금철(金鐵)의 정(精)이 아직 흐르지 않으니, 부부가 곧 머리카락과 손톱을 잘라 이를 풀무 속에 던지니, 금철(金鐵)이 곧 녹아, 마침내 두 칼이 되었다: 양(陽)을 간장(干將)이라 하여 거북 무늬(底本 이 글자는 생벽자로 전록 후 분실)를 만들고, 음(陰)을 막야(莫邪)라 하여 만리(漫理)를 만들었다. 간장(干將)이 그 양(陽)을 감추고, 그 음(陰)을 내어 이로써 합려(闔閭)에게 바치니, 합려(闔閭)가 심히 이를 보배로 중하게 여겼다.】. 이는 도덕(道德)으로 성을 삼고, 인의(仁義)로 외곽을 삼으면, 이를 감히 공격할 자 없고, 이를 감히 들어갈 자 없으니, 문왕(文王)이 곧 이것입니다. 도덕(道德)으로 방(防)【주음:「防」는 축】(底本 이 글자는 「防」으로 쓰고 음이 축(逐)인데 바른 글자를 정하지 못함)을 삼고, 인의(仁義)로 칼을 삼으면, 이를 감히 당할 자 없고, 이를 감히 막을 자 없으니, 탕무(湯武)가 곧 이것입니다. 지금, 공격할 수 없는 성과 당할 수 없는 군사를 세우지 않고, 필부(匹夫)의 역(役)을 맡겨 삼 척의 칼날을 행하려 하면, 또한 작습니다【〈도응편(道應篇)〉에 말합니다: 제(齊)・초(楚)・오(吳)・월(越)이 모두 일찍이 이겼으나, 그러나 졸(卒)히 망함을 취하였으니, 이는 이김을 지킴에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직 도(道)가 있는 임금만이 능히 이김을 지킨다. 공자(孔子)는 굳세어 국문(國門)의 빗장을 들어도 이로써 힘으로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았고, 묵자(墨子)는 지키고 공격함을 하여 공수반(公輸般)이 복종하였어도 이로써 군사로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았다. 잘 이김을 지키는 자는 강함으로 약함을 삼는다. 그러므로 노자(老子)가 말합니다: 도(道)는 비어 있어 이를 써도 또한 차지 않는다. 혜맹(惠孟)이 송강왕(宋康王)을 뵈니, 강왕(康王)이 발을 구르고 재채기를 하며 빨리 말하여 이르기를: 과인이 좋아하는 것은 용맹하여 공이 있음이요, 인의(仁義)를 행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손님은 장차 무엇으로 과인을 가르치겠는가? 혜맹(惠孟)이 대답하여 말합니다: 신이 여기에 도(道)가 있으니, 사람이 비록 용맹하여 이를 찔러도 들어가지 않고, 비록 교묘하여 힘이 있어 이를 쳐도 맞지 않는데, 대왕이 홀로 뜻이 없습니까? 송왕(宋王)이 말합니다: 좋다. 이는 과인이 듣고자 하는 바이다. 혜맹(惠孟)이 말합니다: 이를 찔러도 들어가지 않고, 이를 쳐도 맞지 않음은, 이는 오히려 욕됨이다. 신이 여기에 도(道)가 있으니, 사람으로 하여금 비록 용맹이 있어도 감히 찌르지 않고, 비록 힘이 있어도 감히 치지 않게 하겠습니다. 감히 찌르지 않고 감히 치지 않음은, 그 뜻이 없는 것이 아니다. 신이 여기에 도(道)가 있으니, 사람으로 하여금 본래 그 뜻이 없게 하겠습니다. 그 뜻이 없음은, 아직 사랑하고 이롭게 하는 마음이 없음이다. 신이 여기에 도(道)가 있으니, 천하의 남자와 여자로 하여금 모두 기뻐하며 다 사랑하고 이롭게 하는 마음이 있게 하겠습니다. 이는 그 용맹하고 힘 있음보다 어질어, 사루(四累) 위에 있습니다. 대왕이 홀로 뜻이 없습니까? 송왕(宋王)이 말합니다: 이는 과인이 얻고자 하는 바이다. 혜맹(惠孟)이 대답하여 말합니다: 공묵(孔墨)이 곧 이것입니다. 공구(孔丘)・묵적(墨翟)은 땅이 없이 임금이 되고, 벼슬이 없이 우두머리가 되니, 천하의 남자와 여자가 목을 늘리고 발꿈치를 들어 편안하고 이롭게 하기를 바라지 않는 자가 없었습니다. 지금, 대왕은 만승(萬乘)의 임금이니, 진실로 그 뜻이 있으면, 곧 사경(四境) 안이 모두 그 이익을 얻어, 공묵(孔墨)보다 어짊이 멉니다. 송왕(宋王)이 이로써 응할 것이 없었다. 혜맹(惠孟)이 나가니, 송왕(宋王)이 좌우에게 말합니다: 변론하였도다, 손님이 말로써 과인을 이겼다. 그러므로 노자(老子)가 말합니다: 감히 하지 않는 데 용맹하면 곧 산다. 이로부터 보면, 큰 용맹이 도리어 용맹하지 않음이 됩니다. 양웅(揚雄)이 말합니다: 육경(六經)의 다스림은 어지러워지기 전을 귀하게 여기고, 병가(兵家)의 이김은 싸우기 전을 귀하게 여긴다.】.
大夫曰荊軻提【音比】首入不測之強秦秦王惶恐失守衞者皆懼【刺客傳曰燕太子質於秦亡歸見秦且滅六國兵已臨易水恐其禍至丹患之因田光以交荊軻於是尊荊軻為上卿令秦武陽為副俱入秦刺秦王臨發太子及賔客知其事者皆白衣冠以送之至易水上既祖取道髙漸離擊築荊軻和而歌為變徵之聲士皆垂淚涕泣又前而為歌曰風蕭蕭兮易水寒壯士一去兮不復還復為羽聲慨慷士皆瞠目髪盡上沖冠於是荊軻遂就車而去終已不顧既至秦秦王聞之大喜乃朝服設九賔見燕使者咸陽宮荊卿進樊於期之頭函而秦武陽奉地圖匣以次進至陛軻取圖奉之秦王發圖圖窮而匕首見因左手把秦王之袖而右手持匕首揕之未至身秦王驚自引而起袖絶環柱而走群臣驚焉乃以手共之是時侍醫夏無且以其所奉藥囊提荊軻秦王方環柱走卒惶急不知所為左右乃曰王負劒王負劒遂防以撃荊軻斷其左股荊軻廢乃引其匕首以提秦王不中中柱秦王復擊軻軻被八創軻自知事不就倚柱而笑箕踞以罵曰事所以不成者乃欲以生刼之必得約契以報太子也】專諸手劒歴萬乗【去聲】刺呉王屍孽立正鎬冠千里【呉世家曰伍子胥之初奔呉說呉王僚以伐楚之利公子光曰胥之父兄為僇於楚欲自報其仇耳未見其利於是伍員知光有他志乃求勇士專諸見之光喜乃客伍子胥子胥退而耕於野以待專諸之事十二年冬楚平王卒十三年春呉欲因楚防而伐之使公子蓋餘燭庸以兵圍楚之六灊使季札於晉以觀諸侯之變楚發兵絶呉兵後呉兵不得還於是呉公子光曰此時不可失也告專諸曰不索何獲我真王嗣當立吾欲求之季子雖至不吾廢也專諸曰王僚可殺也母老子弱而兩公子將兵攻楚楚絶其路方今呉外困於楚而內空無骨鯁之臣是無奈我何光曰我身子之身也四月丙子光伏甲士於窟室而謁王僚飲王僚使兵陳於道自王宮至光之家門階戸席皆王僚之親也人夾持鈹公子光詳為足疾入於窟室使專諸置匕首於炙魚之中以進食手匕首刺王僚鈹交於匈遂殺王僚公子光竟代立為王是為呉王闔廬闔廬乃以專諸子為卿】聶政自衞由韓廷刺其主功成求得退自刑于朝【音潮】屍於市【韓防曰韓傀相韓嚴遂重於君二人相害也嚴遂政議直指舉韓傀之過韓傀以之叱之於朝嚴遂防劒趨之以救解於是嚴遂懼誅亡去遊求人可以報韓傀者至齊齊人或言軹深井裡聶政勇敢士也避仇隠於屠者之間嚴遂隂交於聶政以意厚之聶政問之曰子欲安用我乎嚴遂曰吾得為役之日淺事今薄奚敢有請於是嚴遂乃具酒自觴聶政母前仲子奉黃金百鎰前為聶政母夀聶政驚愈恠其厚固謝嚴仲子仲子固進而聶政謝曰臣有老母家貧客遊以為狗屠可旦夕得甘脆以養親親供養備義不敢當仲子之賜嚴仲子闢人因為聶政語曰臣有仇而行遊諸侯眾矣然至齊聞足下義甚髙故直進百金者特以大人麤糲之費以交足下之讙豈敢以有求邪聶政曰臣所以降志辱身居市井屠者幸以養老母老母在前政身未敢以許人也嚴仲子固讓聶政竟不肯受然仲子卒備賔主之禮而去乆之聶政母死既葬除服聶政曰嗟乎政乃市井之人鼓刀以屠而嚴仲子乃諸侯之卿相也不逺千里枉車騎而交臣臣之所以待之者至淺矣未有大功可以稱者而嚴仲子舉百金為親壽我義不受然是深知政也夫賢者以感忿睚眥之意而親信窮僻之人而政獨安可嘿然而止乎且前日要政政徒以老母老母今以天年終政將為知己者用遂西至濮陽見嚴仲子曰前日所以不許仲子者徒以親在今親不幸而死仲子所欲報仇者請得從事焉嚴仲子具告曰臣之仇韓相韓傀傀又韓君之季父也宗族盛多居處兵衞甚設臣使人刺之終莫能就今足下幸而不棄請益具車騎壯士以為羽翼政曰韓與衞相去中間不逺今殺人之相相乂國君之親此其勢不可以多人多人不能無生得失生得失則語洩語洩則韓舉國而與仲子為讐也豈不殆哉遂謝車騎人徒辭獨行仗劒至韓韓適有東孟之防韓王及相皆在焉持兵防而衛侍者甚眾聶政直入階刺殺韓傀韓傀走而就列侯聶政刺之兼中列侯左右大亂聶政大呼所擊殺者數十人因自麵皮抉眼屠腸遂以死韓取聶政屍暴於市縣購之千金乆之莫知誰政姊嫈聞之曰吾弟至賢不可愛妾之軀滅吾弟之名非弟意也乃之韓視之曰勇哉氣矜之隆是其軼賁育髙成荊矣今死而無名父母既歿矣兄弟無有此為我故也夫愛身不揚弟之名吾不忍也乃抱屍而哭之曰此吾弟軹深井裡聶政也亦自殺於屍下晉楚齊衞聞之曰非獨聶政之能乃其姊者列女也聶政之所以名施於後世者其姊不避葅酢之誅以揚其名也唐睢曰専諸之刺王僚也彗星襲月聶政之刺韓傀也白虹貫日要離之刺慶忌也倉鷹擊於殿上此三子皆布衣之士也懐怒未發休防降於天呂氏春秋曰豫讓必死於襄子而趙氏皆恐成荊致死於韓王而周人皆畏】今誠得勇士乗強漢之威凌無義之匈奴制其死命責以其過若曹劌【音貴】之負齊桓公遂其求【雜事篇曰昔者齊桓公與魯莊公為柯之盟魯大夫曹劌謂莊公曰齊之侵魯至於城下城壞壓境君不圖與莊公曰嘻寡人之生不若死曹劌曰然則君請當其君臣請當其臣及防兩君就壇兩相相揖曹劌手劍防刃而進廹桓公於壇上曰城壞壓境君不圖與管仲曰然則君何求曹劌曰願請汶陽田管仲謂桓公曰君其許之桓公許之曹劌請盟桓公遂與之盟已盟標劒而去左右曰要盟可倍曹劌可讐請倍盟而討曹劌管仲曰要盟可負而君不負曹劌可讐而君不讐著君天下矣遂不倍天下諸侯翕然而歸之為鄄之防幽之盟諸侯莫不至焉為陽穀之防貫澤之盟逺國皆來南伐強楚以致菁茅之貢北伐山戎為燕開路三存亡國一繼絶世尊事周室九合諸侯一匡天下功次三王為五伯長本信起乎柯之盟也】推鋒拊【音府】銳穹廬擾亂上下相遁因以輕銳隨其後匈奴必交臂不敢格也
대부(大夫)가 말하였습니다: 형가(荊軻)는 비수(匕首)【주음:「匕」는 비, 底本 이 글자는 생벽자로 전록 후 분실】를 들고 측할 수 없는 강한 진(秦)에 들어가니, 진왕(秦王)이 황공하여 수위를 잃은 자들이 모두 두려워하였습니다【《자객전(刺客傳)》에 말합니다: 연태자(燕太子)가 진(秦)에 볼모로 있다가 달아나 돌아와, 진(秦)이 장차 육국을 멸할 것을 보고, 군사가 이미 역수(易水)에 임하였으니, 그 화가 이를 것을 걱정하였다. 단(丹)이 이를 걱정하여, 이에 전광(田光)으로 형가(荊軻)와 사귀게 하여, 이에 형가(荊軻)를 존귀하게 하여 상경(上卿)으로 삼고, 진무양(秦武陽)으로 부사가 되게 하여, 함께 진(秦)에 들어가 진왕(秦王)을 찌르려 하였다. 떠남에 임하여, 태자와 그 일을 아는 빈객이 모두 흰 옷과 관으로 이를 배웅하여, 역수(易水) 위에 이르렀다. 이미 조제(祖祭)를 지내고 길을 떠나니, 고점리(高漸離)가 축(筑)을 치고, 형가(荊軻)가 화하여 노래하여, 변치(變徵)의 소리를 하니, 선비들이 모두 눈물을 흘려 우니라. 또 나아가 노래하여 말합니다: 바람이 쓸쓸하고 역수(易水)가 차니, 장사가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네. 다시 우성(羽聲)으로 강개(慷慨)하니, 선비들이 모두 눈을 부라리고, 머리카락이 다 위로 솟아 관을 들었네. 이에 형가(荊軻)가 마침내 수레에 올라 떠나니, 끝내 돌아보지 않았다. 이미 진(秦)에 이르니, 진왕(秦王)이 이를 듣고 크게 기뻐하여, 곧 조복을 입고 구빈(九賓)을 베풀어 연(燕) 사자를 함양궁(咸陽宮)에서 보았다. 형경(荊卿)은 번우기(樊於期)의 머리 함을 올리고, 진무양(秦武陽)은 지도 함을 받들어 차례로 올렸다. 층계에 이르니, 가(軻)가 지도를 가져다 바치고, 진왕(秦王)이 지도를 펴니, 지도가 다하여 비수(匕首)가 드러났다. 이에 왼손으로 진왕(秦王)의 소매를 잡고 오른손으로 비수(匕首)를 들어 이를 찔렀으나, 몸에 미치지 못하였다. 진왕(秦王)이 놀라, 스스로 당겨 일어나니, 소매가 끊어지고, 기둥을 돌아 달렸다. 신하들이 놀라, 곧 손으로 함께 이를 쳤다(底本 이 글자는 생벽자로 전록 후 분실). 이 때 시의(侍醫) 하무저(夏無且)가 그가 받드는 약주머니로 형가(荊軻)를 쳤다. 진왕(秦王)이 바야흐로 기둥을 돌아 달려, 졸황급하여 하는 바를 알지 못하였다. 좌우가 곧 말합니다: 대왕이여, 칼을 지세요! 칼을 지세요! 곧 뽑아(底本은 「防」) 형가(荊軻)를 쳐서, 그 왼쪽 넓적다리를 끊었다. 형가(荊軻)가 폐하여, 곧 그 비수(匕首)를 들어 진왕(秦王)에게 던졌으나, 맞지 않고 기둥에 맞았다. 진왕(秦王)이 다시 가(軻)를 치니, 가(軻)가 여덟 상처를 입었다. 가(軻)가 스스로 일이 이루어지지 않음을 알고, 기둥에 기대어 웃으며, 기거(箕踞)하여 꾸짖어 말합니다: 일이 이루어지지 않은 까닭은, 곧 살려 이를 겁박하여, 반드시 약계(約契)를 얻어 태자에게 보답하려 하였기 때문이다.】. 전제(專諸)는 손에 칼을 들고, 만승(萬乘)【주음:「乘」은 거성】의 자리를 지나 오왕(吳王)을 찌르니, 시체와 어린 업이 곧바로 서고, 호관(鎬冠)이 천 리에 미쳤습니다【《오세가(吳世家)》에 말합니다: 오자서(伍子胥)가 처음 오(吳)로 달아나, 오왕료(吳王僚)에게 초(楚)를 치는 이익을 말하였다. 공자광(公子光)이 말합니다: 서(胥)의 아버지와 형이 초(楚)에서 주살되었으니, 자기 그 원수를 갚고자 할 뿐이요, 아직 그 이익을 보지 못하였다. 이에 오원(伍員)이 광(光)에게 다른 뜻이 있음을 알고, 곧 용사 전제(專諸)를 찾아 이를 보게 하였다. 광(光)이 기뻐하여, 곧 오자서(伍子胥)를 손님으로 대우하였다. 자서(子胥)가 물러나 들에 농사하며, 이로써 전제(專諸)의 일을 기다렸다. 십이 년 겨울, 초평왕(楚平王)이 죽었다. 십삼 년 봄, 오(吳)가 초(楚)의 상(喪, 底本은 「楚防」)을 따라 이를 치려 하여, 공자개여(公子蓋餘)・속용(燭庸)으로 하여금 군사로 초(楚)의 육(六)・섬(灊)을 포위하게 하고, 계찰(季札)을 진(晉)에 보내어 제후의 변(變)을 살피게 하였다. 초(楚)가 군사를 내어 오(吳) 군사의 뒤를 끊으니, 오(吳) 군사가 돌아갈 수 없었다. 이에 오(吳) 공자광(公子光)이 말합니다: 이 때를 잃을 수 없다. 전제(專諸)에게 고하여 말합니다: 찾지 않으면 무엇을 얻겠는가. 나는 참된 왕의 후사로 마땅히 서야 하고, 내가 이를 구하려 한다. 계자(季子)가 와도 나를 폐하지 않는다. 전제(專諸)가 말합니다: 왕료(王僚)는 죽일 수 있다. 어머니는 늙고 아들은 어리며, 두 공자가 군사를 거느려 초(楚)를 치는데, 초(楚)가 그 길을 끊었다. 지금 오(吳)는 밖으로 초(楚)에게 곤란하고 안이 비어 골경(骨鯁)의 신하가 없으니, 이는 우리를 어찌할 수 없다. 광(光)이 말합니다: 나의 몸은 그대의 몸이다. 사월 병자(丙子), 광(光)이 갑사(甲士)를 굴실(窟室)에 매복하고 왕료(王僚)에게 알현하여 마시게 하였다. 왕료(王僚)가 군사로 하여금 길에 벌리게 하여, 왕궁에서 광(光)의 집에 이르기까지, 문과 층계와 문과 자리가 모두 왕료(王僚)의 친척이며, 사람이 양옆에서 피(鈹)를 잡았다. 공자광(公子光)이 자세히 발병을 가장하여 굴실(窟室)에 들어가고, 전제(專諸)로 하여금 비수(匕首)를 생선구이 속에 넣어 이로써 음식을 올리게 하여, 손에 비수(匕首)로 왕료(王僚)를 찌르니, 피(鈹)가 가슴에 교차하였으나, 마침내 왕료(王僚)를 죽였다. 공자광(公子光)이 마침내 대신하여 왕이 되니, 이를 오왕합려(吳王闔廬)라 한다. 합려(闔廬)가 곧 전제(專諸)의 아들로 하여금 경(卿)으로 삼았다.】. 섭정(聶政)은 위(衛)에서 나와, 한(韓) 조정에 이르러 그 주인을 찔러, 공을 이루고 구하는 바를 얻고, 물러나 조정【주음:「朝」은 조】에서 스스로 형하고, 시체를 저자에 폭로(底本 이 글자는 생벽자로 전록 후 분실)하였습니다【《한책(韓策)》(底本은 「韓防」)에 말합니다: 한괴(韓傀)가 한(韓)의 재상이고, 엄수(嚴遂)가 임금에게 중용되어, 두 사람이 서로 해쳤다. 엄수(嚴遂)가 바른 의론으로 직접 가리켜, 한괴(韓傀)의 허물을 들추니, 한괴(韓傀)가 이로 인하여 조정에서 이를 꾸짖었다. 엄수(嚴遂)가 칼을 뽑아(底本은 「防劍」) 이에게 달려드니, 이로써 구원하여 풀었다. 이에 엄수(嚴遂)가 주살을 두려워하여 달아나 가고, 떠돌며 한괴(韓傀)에게 보답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하였다. 제(齊)에 이르니, 제(齊) 사람이 혹 말하기를, 지(軹)의 심정리(深井里) 섭정(聶政)은 용감한 선비로, 원수를 피하여 도살자 사이에 숨었다 하였다. 엄수(嚴遂)가 은밀히 섭정(聶政)과 사귀어, 뜻으로 이를 후하게 하였다. 섭정(聶政)이 이에게 물어 말합니다: 그대는 어찌 나를 쓰려 하는가? 엄수(嚴遂)가 말합니다: 내가 일을 맡은 날이 얕고, 일이 이제 박하니, 어찌 감히 청함이 있겠는가. 이에 엄수(嚴遂)가 곧 술을 갖추어 스스로 섭정(聶政)의 어머니 앞에서 술잔을 올리고, 중자(仲子)가 황금 백 일(鎰)을 받들어 앞으로 섭정(聶政) 어머니의 수를 하였다. 섭정(聶政)이 놀라, 더욱 그 후함을 괴이하게 여겨, 굳이 엄중자(嚴仲子)에게 사양하였다. 중자(仲子)가 굳이 올리니, 섭정(聶政)이 사양하여 말합니다: 신에게 늙은 어머니가 있고, 집이 가난하여 객지에 떠돌며, 이로써 개 잡는 자가 되어, 이로써 아침저녁으로 달고 바삭한 것을 얻어 어버이를 봉양할 수 있습니다. 어버이의 공양이 갖추어지면, 의로 감히 중자(仲子)의 하사를 받지 않습니다. 엄중자(嚴仲子)가 사람을 물리치고, 이에 섭정(聶政)에게 말하여 이릅니다: 신이 원수가 있어 떠돌아다니기를 제후들에게 많았으나, 그러나 제(齊)에 이르러 족하의 의가 심히 높음을 들었으니, 그러므로 곧바로 백 금을 올리는 것은, 다만 이로써 대인의 조립(粗糲) 비용으로 삼아 이로써 족하의 기쁨을 사귀려 할 뿐이요, 어찌 감히 구함이 있겠습니까? 섭정(聶政)이 말합니다: 신이 뜻을 낮추고 몸을 욕되게 하여 저자 도살자에 사는 까닭은, 다행히 이로써 늙은 어머니를 봉양하려 함입니다. 늙은 어머니가 앞에 계시면, 정(政)의 몸은 아직 감히 이로써 남에게 허락하지 않습니다. 엄중자(嚴仲子)가 굳이 양보하였으나, 섭정(聶政)이 마침내 받기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중자(仲子)가 마침내 빈주의 예를 갖추고 떠났다. 오래 되어 섭정(聶政)의 어머니가 죽고, 이미 묻고 상복을 벗었다. 섭정(聶政)이 말합니다: 아! 정(政)은 다만 저자의 사람이요, 칼을 두드려 도살하는 자인데, 엄중자(嚴仲子)는 다만 제후의 경상(卿相)이요, 천 리를 멀다 하지 않고 수레를 굽혀 신과 사귀었습니다. 신이 이를 대접한 까닭이 지극히 얕고, 아직 칭할 만한 큰 공이 없는데, 엄중자(嚴仲子)가 백 금을 들어 어버이의 수를 하였으니, 비록 의로 받지 않았으나, 그러나 이는 정(政)을 깊이 아는 것입니다. 어진 자는 감분하고 아자(睚眦)의 뜻으로 궁벽한 사람을 친하게 믿는데, 정(政)이 홀로 어찌 묵묵히 그칠 수 있겠습니까? 또 전날 정(政)을 청하였으나, 정(政)은 다만 늙은 어머니 때문이었습니다. 늙은 어머니가 이제 천수를 다하였으니, 정(政)은 장차 아는 이를 위하여 쓰이겠습니다. 곧 서쪽으로 복양(濮陽)에 이르러 엄중자(嚴仲子)를 보고 말합니다: 전날 중자(仲子)를 허락하지 않은 까닭은, 다만 어버이가 계셨기 때문입니다. 지금 어버이가 불행하게 돌아가셨으니, 중자(仲子)가 원수를 갚고자 하는 바를, 청컨대 일에 종사하겠습니다. 엄중자(嚴仲子)가 자세히 고하여 말합니다: 신의 원수는 한(韓) 재상 한괴(韓傀)요, 괴(傀)는 또한 한(韓) 임금의 계부(季父)이며, 종족이 성하여 많고, 사는 곳에 군사와 수위가 심히 설치되어 있습니다. 신이 사람을 시켜 이를 찔러도, 끝내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족하가 다행히 버리지 않으시면, 청컨대 더욱 수레와 기병과 장사를 갖추어 이로써 날개를 삼으십시오. 정(政)이 말합니다: 한(韓)과 위(衛)의 사이가 멀지 않습니다. 지금 사람의 재상을 죽이는데, 재상은 또한 국군의 친척이니, 이는 그 형세가 사람을 많이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을 많이 하면 능히 득실을 내지 않을 수 없고, 득실을 내면 곧 말이 새며, 말이 새면 곧 한(韓)이 온 나라를 들어 중자(仲子)와 함께 원수가 되니, 어찌 위태롭지 않겠습니까? 곧 수레와 기병과 사람을 사양하고, 홀로 가겠다고 사양하여, 칼을 의지하고 한(韓)에 이르렀다. 한(韓)이 마침 동맹(東孟)의 모임(底本은 「東孟之防」)이 있어, 한왕(韓王)과 재상이 모두 거기에 있고, 병극(兵戟)을 들고(底本은 「兵防」) 호위하고 시중드는 자가 심히 많았다. 섭정(聶政)이 곧바로 들어가 층계에 올라, 한괴(韓傀)를 찔러 죽였다. 한괴(韓傀)가 달아나 열후(列侯)에게 다가가니, 섭정(聶政)이 이를 찔러 겸하여 열후(列侯)에 맞았다. 좌우가 크게 어지러워지니, 섭정(聶政)이 크게 외치며, 쳐 죽인 자가 수십 명이고, 이에 스스로 얼굴 가죽을 벗기고 눈을 파고 창자를 도려내어 마침내 이로써 죽었다. 한(韓)이 섭정(聶政)의 시체를 거두어 저자에 폭로하고, 현가(懸貨)하기를 천 금으로 하였으나, 오래도록 이를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었다. 정(政)의 누나 영(嫈)이 이를 듣고 말합니다: 우리 아우는 지극히 어질어, 아첩의 몸을 아껴 우리 아우의 이름을 멸할 수 없으니, 아우의 뜻이 아니다. 곧 한(韓)에 가서 이를 보고 말합니다: 용맹하도다, 기세의 높음이여, 이는 그 분육(賁育)을 뛰어넘고, 성형(成荊)보다 높도다. 지금 죽어 이름이 없고, 부모는 이미 돌아가시고, 형제가 있고 없고(「兄弟無有」는 생략 어법) 이는 나 때문이다. 몸을 아껴 아우의 이름을 드러내지 않으면, 나는 참지 못하겠다. 곧 시체를 안고 이를 울며 말합니다: 이는 우리 아우 지(軹)의 심정리(深井里) 섭정(聶政)이다. 또 시체 아래에서 자살하였다. 진(晋)・초(楚)・제(齊)・위(衛)가 이를 듣고 말합니다: 오직 섭정(聶政)의 능함만이 아니요, 곧 그 누나도 또한 열녀이다. 섭정(聶政)의 이름이 후세에 베푼 까닭은, 그 누나가 조육(葅醢)의 주살을 피하지 않고 이로써 그 이름을 드러내었기 때문이다. 당저(唐雎)가 말합니다: 전제(專諸)가 왕료(王僚)를 찔렀을 때, 혜성이 달을 덮쳤고. 섭정(聶政)이 한괴(韓傀)를 찔렀을 때, 흰 무지개가 해를 꿰뚫었고. 요리(要離)가 경기(慶忌)를 찔렀을 때, 창응(倉鷹)이 전상(殿上)에서 쳤다. 이 세 사람은 모두 포의(布衣)의 선비로, 분노를 품고 아직 발하지 않았으니, 휴침(休祲, 底本은 「休防」)이 하늘에 내렸다. 《여씨춘추(呂氏春秋)》에 말합니다: 예양(豫讓)은 반드시 양자(襄子)에게 죽어 조씨(趙氏)가 모두 두려워하였고, 성형(成荊)은 죽음을 바쳐 한왕(韓王)에게 주(周) 사람이 모두 두려워하였다.】. 지금, 진실로 용사를 얻어, 강한 한(漢)의 위엄을 타고, 의 없는 흉노(匈奴)를 능멸하여, 그 죽을 목숨을 제어하고, 그 허물로 꾸짖으면, 조예(曹刿)【주음:「刿」는 귀】가 제환공(齊桓公)을 저당잡힌 것과 같아, 마침내 그 구하는 바를 얻을 것입니다【〈잡사편(雜事篇)〉에 말합니다: 옛적, 제환공(齊桓公)과 노장공(魯莊公)이 가(柯)의 맹약을 하였다. 노(魯) 대부(大夫) 조예(曹刿)가 장공(莊公)에게 말합니다: 제(齊)가 노(魯)를 침범하여 성 아래에 이르렀고, 성이 무너져 경계를 압박하니, 임금이 도모하지 않겠습니까? 장공(莊公)이 말합니다: 희, 과인의 삶은 죽음만 못하다. 조예(曹刿)가 말합니다: 그러하면 임금은 청컨대 그 임금에 맞서고, 신은 청컨대 그 신하에 맞서겠습니다. 회맹(會盟, 底本은 「防」)하여 두 임금이 단에 오르고, 두 재상이 서로 읍하니, 조예(曹刿)가 손에 칼을 들고 칼날을 눌러(底本은 「防刃」) 나아가, 환공(桓公)을 단 위에서 핍박하여 말합니다: 성이 무너져 경계를 압박하니, 임금이 도모하지 않겠습니까? 관중(管仲)이 말합니다: 그러하면 임금은 무엇을 구하겠는가? 조예(曹刿)가 말합니다: 원컨대 문양(汶陽)의 밭을 청하겠습니다. 관중(管仲)이 환공(桓公)에게 말합니다: 임금은 그를 허락하십시오. 환공(桓公)이 이를 허락하였다. 조예(曹刿)가 맹약을 청하니, 환공(桓公)이 마침내 그와 맹약하였다. 이미 맹약하고, 칼을 표하고 갔다. 좌우가 말합니다: 겁박한 맹약은 배신할 수 있고, 조예(曹刿)는 원수로 삼을 수 있으니, 청컨대 맹약을 배신하고 조예(曹刿)를 토벌하십시오. 관중(管仲)이 말합니다: 겁박한 맹약은 저버릴 수 있으나 임금이 저버리지 않고, 조예(曹刿)는 원수로 삼을 수 있으나 임금이 원수로 삼지 않는 것은, 이는 신의(信義)를 천하에 드러내는 것이다. 마침내 배신하지 않았다. 천하의 제후가 화합하여 이에게 돌아와, 전(鄄)의 회합(底本은 「鄄之防」)・유(幽)의 맹약을 하니, 제후가 오지 않는 자가 없었고. 양곡(陽谷)의 회합(底本은 「陽谷之防」)・관택(貫澤)의 맹약을 하니, 먼 나라가 모두 왔다. 남쪽으로 강한 초(楚)를 쳐서 정모(菁茅)의 공물을 가져오게 하고, 북쪽으로 산융(山戎)을 쳐서 연(燕)을 위하여 길을 열고, 세 번 망한 나라를 보존하고, 한 번 끊어진 세를 이어, 주실(周室)을 존경하여 섬기고, 아홉 번 제후를 모으고, 한 번 천하를 바로잡으니, 공은 삼왕(三王)에 다음하고, 오패(五伯)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근본은 신의(信義)에서 가(柯)의 맹약으로 일어났다.】. 날끝을 미루고 예기를 어루만지면【주음:「拊」은 부】, 궁려(穹廬)가 어지럽고, 위아래가 서로 달아나니, 이에 가벼운 날랜 군사로 그 뒤를 따르면, 흉노(匈奴)는 반드시 팔을 교차하여 감히 맞서지 못할 것입니다.
文學曰湯得伊尹以區區之亳【音薄】兼臣海內文王得太公廓鄷鄗以為天下齊桓公得管仲戚以伯【音霸】諸侯秦穆公得百里奚由余西戎八國服【姚賈説秦王曰太公望齊之逐夫朝歌之廢屠子良之逐臣棘津之售不庸文王用之而王管仲其鄙人之賈人也南陽之敝幽魯之免囚桓公用之而霸百里奚虞之乞人傳賣以五羊之皮穆公相之而朝西戎孔子曰賢不肖者材也遇不遇者時也今無有時賢安所用哉伊尹故有莘氏僮也負鼎操爼調五味而立為相其遇湯也呂望行年五十賣食棘津年七十屠於朝歌九十乃為天子師則遇文王也管夷吾束縛自檻車以為仲父則遇齊桓公也百里奚自賣五羊之皮為秦伯牧羊舉為大夫則遇秦繆公也冉有曰夫百里奚齊之乞者也逐於齊西無以進自賣五羊皮為一軛車見秦穆公立為相遂霸西戎太公望少為人壻老而見去屠牛朝歌賃於棘津釣於磻溪文王舉而用之封於齊管仲親射桓公遂除報讐之心立以為相存亡繼絶九合諸侯一匡天下鄒子説梁王曰伊尹故有莘氏之媵臣也湯立以三公天下之治太平太公望故老婦之出夫也朝歌之屠佐也棘津迎客之舍人也年七十而相周九十而封齊管仲故成隂之狗盜也天下之庸夫也齊桓公得之為仲父百里奚道之於路傳賣五羊之皮秦穆公委之以政戚故將車人也叩轅行歌於康之衢桓公任以國故詩曰緜緜之葛在於曠野良工得之以為絺紵良工不得枯死於野此七士者不遇明君聖主防行乞丐枯死於中野譬猶緜緜之葛矣李康曰伊尹有莘氏之媵臣也而阿衡於商太公渭濵之賤老也而尚父於周呂氏春秋曰百里奚處乎虞而虞亡處乎秦而秦霸百里奚之處乎虞知非遇也其處於秦非加益也秦紀曰戎王使由余於秦秦後歸由余繆公又使人間要由余遂去降秦繆公以客禮禮之秦用由余謀伐戎王益國十二開地千里遂霸西戎尊賢篇曰國不務大而務得民心佐不務多而務得賢俊得民心者民往之有賢佐者士歸之語曰得十良馬不若得一伯樂得十良劒不若得一歐冶得地千里不若得一聖人】聞得賢聖而蠻貊來享未聞刼殺人主以懐逺也【周書曰惟克商遂通道於九夷八蠻西旅底貢厥獒大保乃作旅獒用訓於王曰嗚呼明王慎徳四夷鹹賔無有逺邇畢獻方物】詩云惠此中國以綏四方故自彼氏羌莫敢不來王非畏其威畏其徳也故義之服無義疾於原馬良弓徳之召逺疾於馳傳【去聲】重驛【孔子曰徳之流行速於置郵而傳命】
문학(文學)이 말하였습니다: 탕(湯)은 이윤(伊尹)을 얻어, 하찮은 박(亳)【주음:「亳」은 박】으로 천하를 겸하여 신하로 삼았고. 문왕(文王)은 태공(太公)을 얻어, 풍호(豐鎬)를 넓혀 이로써 천하로 삼았고. 제환공(齊桓公)은 관중(管仲)・영척(寧戚, 底本 이 글자는 생벽자로 전록 후 분실)을 얻어 이로써 제후에 패(霸)【주음:「伯」은 패】하였고. 진목공(秦穆公)은 백리해(百里奚)・유여(由余)를 얻어, 서융(西戎) 여덟 나라가 복종하였습니다【요가(姚賈)가 진왕(秦王)에게 말합니다: 태공망(太公望)은, 제(齊)의 쫓겨난 남편, 조가(朝歌)의 버려진 도살자, 자량(子良)의 쫓겨난 신하, 극진(棘津)의 팔려도 쓰이지 않은 자인데, 문왕(文王)이 이를 써서 왕이 되었다. 관중(管仲)은, 그 비인(鄙人)의 장사꾼, 남양(南陽)의 곤궁한 갇힘, 노(魯)의 풀려난 죄수인데, 환공(桓公)이 이를 써서 패하였다. 백리해(百里奚)는, 우(虞)의 거지로, 전하여 팔기를 양 가죽 다섯 장이었는데, 목공(穆公)이 이를 재상으로 삼아 서융(西戎)에 조회하게 하였다. 공자(孔子)가 말합니다: 어질고 어리석음은 재주요, 만나고 만나지 못함은 때이다. 지금 때가 없으면, 어진 자를 어찌 쓰겠는가? 이윤(伊尹)은 본래 유신씨(有莘氏)의 동종(僮)으로, 솥을 메고 도마를 잡고 오미(五味)를 조리하여 일어서 재상이 되었으니, 이는 탕(湯)을 만난 것이다. 여망(呂望)은 행년 오십에 극진(棘津)에서 음식을 팔고, 나이 칠십에 조가(朝歌)에서 도살하고, 구십에 이르러야 천자의 스승이 되었으니, 이는 문왕(文王)을 만난 것이다. 관이오(管夷吾)는 묶여 함거(檻車)에서 나아가 중부(仲父)가 되었으니, 이는 제환공(齊桓公)을 만난 것이다. 백리해(百里奚)는 스스로 팔기를 양 가죽 다섯 장으로 진백(秦伯)을 위하여 양을 치다가, 들어올려 대부(大夫)가 되었으니, 이는 진목공(秦繆公)을 만난 것이다. 염유(冉有)가 말합니다: 백리해(百里奚)는, 제(齊)의 거지로, 제(齊)에서 쫓겨나고, 서쪽으로는 나아갈 바가 없어, 스스로 팔기를 양 가죽 다섯 장으로 한 멍에 수레를 하여, 진목공(秦穆公)을 보고, 일어서 재상이 되어, 마침내 서융(西戎)에 패하였다. 태공망(太公望)은 젊어서 남의 사위가 되고, 늙어 버림받아, 조가(朝歌)에서 소를 도살하고, 극진(棘津)에 세들고, 반계(磻溪)에서 낚시하였으나, 문왕(文王)이 들어 이를 쓰고, 제(齊)에 봉하였다. 관중(管仲)은 친히 환공(桓公)을 쏘았으나, 마침내 원수 갚는 마음을 없애고, 세워 이로써 재상으로 삼아, 망한 것을 보존하고 끊어진 것을 이어, 아홉 번 제후를 모으고, 한 번 천하를 바로잡았다. 추자(鄒子)가 양왕(梁王)에게 말합니다: 이윤(伊尹)은 본래 유신씨(有莘氏)의 장부 드리우는 신하였으나, 탕(湯)이 세워 이로써 삼공(三公)이 되니, 천하가 다스려지고 태평하였다. 태공망(太公望)은 본래 늙은 부인의보낸 남편, 조가(朝歌)의 도살 보조, 극진(棘津)의 손님을 맞이하는 객사(舍人)였으나, 나이 칠십에 주(周)의 재상이 되고, 구십에 제(齊)에 봉해졌다. 관중(管仲)은 본래 성음(成陰)의 개 도둑, 천하의 용부(庸夫)였으나, 제환공(齊桓公)이 이를 얻어 중부(仲父)로 삼았다. 백리해(百里奚)는 길에서 길을 가다가, 전하여 양 가죽 다섯 장에 팔렸으나, 진목공(秦穆公)이 이에게 정사를 맡겼다. 영척(寧戚)은 본래 수레를 모는 사람으로, 수레 멍에를 두드려 강(康)의 큰길에서 노래를 불렀으나, 환공(桓公)이 이에게 나라를 맡겼다. 그러므로 《시경(詩)》에 말합니다: 길게 늘어진 칡이여, 넓은 들에 있네. 좋은 장인이 이를 얻으면 이로써 삼베와 저포(𫄨纻)로 삼고, 좋은 장인이 얻지 못하면, 들에 마르고 죽네. 이 일곱 선비가 만약 밝은 임금과 어진 주인을 만나지 못하였으면, 곧(底本은 「防」) 가서 걸식하여, 가운데 들에 마르고 죽었으리니, 비유하면 길게 늘어진 칡과 같다. 이강(李康)이 말합니다: 이윤(伊尹)은, 유신씨(有莘氏)의 장부 드리우는 신하로서, 상(商)에서 아형(阿衡)이 되었고. 태공(太公)은, 위수(渭水) 물가의 천한 늙은이로서, 주(周)에서 상보(尚父)가 되었다. 《여씨춘추(呂氏春秋)》에 말합니다: 백리해(百里奚)가 우(虞)에 있을 때 우(虞)가 망하고, 진(秦)에 있을 때 진(秦)이 패하였다. 백리해(百里奚)의 우(虞)에 있음은, 슬기롭지 않은 것이 아니요. 그의 진(秦)에 있음은, 더 보탠 것이 아니다. 《진기(秦紀)》에 말합니다: 융왕(戎王)이 유여(由余)를 진(秦)에 사신으로 보내니, 진(秦)이 뒤에 유여(由余)를 돌려보내고, 목공(繆公)이 또 사람을 시켜 사이에서 유여(由余)를 요청하니, 마침내 떠나 진(秦)에 항복하였다. 목공(繆公)이 객례로 이를 예우하였다. 진(秦)이 유여(由余)의 꾀로 융왕(戎王)을 쳐서, 나라를 열두를 늘리고, 땅을 천 리를 열어, 마침내 서융(西戎)에 패하였다. 〈존현편(尊賢篇)〉에 말합니다: 나라는 큼을 힘쓰지 않고 민심을 얻는 것을 힘쓰며, 보좌는 많음을 힘쓰지 않고 어진 영걸을 얻는 것을 힘쓴다. 민심을 얻는 자는 백성이 이에게 가고, 어진 보좌가 있는 자는 선비가 이에게 돌아간다. 속담에 말합니다: 열 필의 좋은 말을 얻는 것은 한 명의 백락(伯樂)을 얻는 것만 못하고, 열 자루의 좋은 칼을 얻는 것은 한 명의 구야(歐冶)를 얻는 것만 못하고, 땅 천 리를 얻는 것은 한 명의 성인(聖人)을 얻는 것만 못하다.】. 다만 어진 성인을 얻어 만막(蠻貊)이 와서 향사(享)하는 것을 들었을 뿐이요, 아직 임금을 겁박하여 죽여 이로써 먼 자를 회유한 것을 듣지 못하였습니다【《주서(周書)》에 말합니다: 오직 상(商)을 이기고, 마침내 구이팔만(九夷八蠻)에 길을 통하게 하였다. 서려(西旅)가 그 토(獒)를 바쳐 공물하니, 태보(太保)가 곧 《려오(旅獒)》를 지어 이로써 임금에게 훈하여 말합니다: 아, 밝은 임금이 덕을 삼가면, 사이(四夷)가 모두 빈(賓)하여, 멀고 가까움 없이, 모두 그 땅의 물산을 바친다.】. 《시경(詩)》에 말합니다: 이 중국(中國)에 은혜를 베풀어, 이로써 사방을 안정하네. 그러므로 저 씨강(氏羌)으로부터, 감히 왕에게 오지 않는 자가 없으니, 그 위엄을 두려워함이 아니요, 이는 그 덕을 두려워함이다. 그러므로 의(義)가 의 없음을 복종시킴은, 들판 말과 좋은 활보다 빠르고, 덕이 먼 자를 부름은, 달리는 역마(馳傳)【주음:「傳」은 전】와 겹치는 역보다 빠릅니다【공자(孔子)가 말합니다: 덕의 류행(流行)은, 치우(置郵)에 명을 전함보다 빠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