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사상·제삼장 단자언호상(彖者言乎象)
義曰:神者,陰陽不測,幽微不可以測度,故曰神;無方者,不見所處,運動不息,是無方也。易者,即周易也;無體者,唯變所適,徃來不窮,是無體也。夫天地之道妙用無門,鬼神之道寂然無跡,春生夏長,藏徃知來,故不可以方隅而論之。夫大易之道總括天地,包含萬象,惟變所適,道無常用,既不可以象類索,又不可以形器求,是亦不可以定體而論之也。是大易之道與天地之道相凖,如鬼神之妙用也。
호애(胡瑗) 해석: 이른바 신(神)이란, 음양이 변화함을 추측하기 어렵고 유심세미(幽深細微)하여 헤아릴 데가 없음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신이라 칭한다. 이른바 무방(无方)이란, 그것이 고정되어 머무는 곳을 볼 수 없어서, 운행이 멈추지 않는다. 그러므로 방소가 없다. 역(易)이란, 곧 《주역》이다. 이른바 무체(无體)란, 그것은 다만 변화를 따라 가서, 오고 가기를 궁진함이 없다. 그러므로 고정된 형체가 없다. 천지의 도는 묘용이 무궁하여 문경(門徑)을 따를 수 없고, 귀신의 도는 적정무성(寂靜無聲)하여 흔적을 남기지 않으며, 봄에 생발하고 여름에 장양하여, 지나간 것을 거두어 들이고 미래를 미리 안다. 그러므로 어느 한 방위 구석을 들어서 그것을 한정할 수 없다. 《주역》의 도는 천지를 총괄하고 만상(萬象)을 포함하여, 다만 변화를 따라서 변화하고, 용법에 일성불변(一成不變)이 있지 않다. 이미 어느 한 부류의 물상에 의지하여 찾을 수 없고, 또한 유형의 기물에 의지하여 잡을 수 없으며, 똑같이 고정된 형체로써 토론할 수 없다. 보니 《주역》의 도는 천지의 도와 바로 상당하여, 곧 귀신과 같이 묘용이 무방하다.
一陰一陽之謂道。
경문에 이르되: 일음일양(一陰一陽)이 교대로 추이하여 서로가 작용이 된다. 이것을 곧 도(道)라고 부른다.
義曰:道者,自然之謂也。以數言之則謂之一,以體言之則謂之無,以開物通務言之則謂之通,以微妙不測言之則謂之神,以應機變化則謂之易,總五常言之則謂之道也。
호애(胡瑗) 해석: 이른바 도란, 곧 본래 이와 같아서 안배를 빌리지 않는 것이다. 수목(數目) 위에서 말하면, 그것을 '일(一)'이라 부른다. 본체(本體) 위에서 말하면, 그것을 '무(無)'라 부른다. 만물을 여닫이하고 사무를 관통하는 위에서 말하면, 그것을 '통(通)'이라 부른다. 정미난측(精微難測)의 위에서 말하면, 그것을 '신(神)'이라 부른다. 때에 따라 변함에 응하는 위에서 말하면, 그것을 '역(易)'이라 부른다. 인의예지신 오상을 합하여 말하면, 그것을 곧 '도(道)'라 부른다.
上既言天地之神、大易之道窮變盡神,妙用無方,不可以方隅形體而求之,此又言天地生成之道。夫獨陽不能自生,獨陰不能自成,是必陰陽相須,然後可以生成萬物。故於冬至之日,陽氣下施,散而為春夏,以生成萬物,以至洪者纎者、髙者下者皆遂其生,以盈滿於天地之間。然萬物既生,不可不成之,故於夏至之日,陰氣下施,散而為秋冬,以成就萬物,以至洪者纎者、髙者下者皆遂其性,以成就於天地之間。是一陰一陽互相推蕩,天覆而地載,日照而月臨,所以謂之道也。
윗 글은 이미 천지의 신묘·《주역》의 도가 변화와 신기(神機)를 궁진하고, 묘용이 방소에 구애되지 않으며, 방위형체에 의지하여 찾을 수 없음을 말하였으니, 이곳에 다시 천지가 생양하여 물을 이루는 도리를 말한다. 홀로 양만 있으면 스스로 생발할 수 없고, 홀로 음만 있으면 스스로 성취할 수 없다. 반드시 음양이 서로 빌려야, 그런 후에 비로소 생양하고 아울러 만물을 성취할 수 있다. 그러므로 동지(冬至) 이 하루에 이르면, 양기가 비로소 하강하여 베풀어, 퍼져서 춘하(春夏)가 되고, 이로써 만물을 생양하여, 큰 것·작은 것·높은 곳·아랫곳에 이르기까지 모두 각각 그 생을 따르게 하여, 천지 사이에 충만한다. 그러나 만물이 이미 생겨나면, 그것들을 성숙하게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하지(夏至) 이 하루에 이르면, 음기가 비로소 하강하여 베풀어, 퍼져서 추동(秋冬)이 되고, 이로써 만물을 성취하여, 큰 것·작은 것·높은 곳·아랫곳에 이르기까지 모두 각각 그 성을 따르게 하여, 천지 사이에서 자기를 완성한다. 일음일양이 이와 같이 서로 추이격탕하여, 하늘은 덮고 땅은 싣고, 태양은 비추고 달은 비추어 임한다. 이것을 곧 도라고 부른다.
繼之者善也。
경문에 이르되: 능히 이 일음일양의 도를 받아 이어서 그것을 연속하여 이어가는 것은, 곧 선(善)이다.
義曰:夫天地之道、陰陽之功生成萬物,千變萬化以盈滿於天地之間,使高者得其髙之分,卑者得其卑之理。聖人得天地之全性,繼天地生成之功,以仁愛天下之物,以義宜天下之眾,使居上者不陵於下,在下者不過其分,是聖人繼天養物之功以為善行也。故乾卦曰元者善之長,是言天以一元之氣為眾善之長,聖人繼其元善之功以理於物也。
호애(胡瑗) 해석: 천지의 도·음양의 공이 만물을 생양하여, 천변만화하여 천지 사이에 충만하고, 높은 곳에 처한 것을 각각 그 높은 분위를 얻게 하며, 아랫곳에 처한 것을 각각 그 아랫자리의 도리에 편안하게 한다. 성인은 천지의 완전한 본성을 품득하여, 천지가 생양하여 물을 이루는 공용을 계승한다: 인으로써 천하의 만물을 애호하고, 의로써 천하의 뭇 사람을 규범하여, 윗자리에 있는 자로 하여금 아래의 사람을 능멸하지 않게 하고, 아랫자리에 있는 자로 하여금 자기의 본분을 넘어 나가지 않게 한다. 이것이 곧 성인이 상천이 만물을 양육하는 공을 계승하여 성취하는 선행이다. 그러므로 《건》괘 《문언(文言)》에 '원(元)'은 뭇 선의 으뜸이라고 한다. 의사는 상천이 일원(一元)의 기로써 일체의 선의 개단을 삼고, 성인은 이 원시(元始)의 선의 공용을 계승하여, 이것으로써 만물을 다스린다.
成之者性也。
경문에 이르되: 능히 이 일음일양의 도를 자신 위에서 성취하여 내는 것은, 곧 성(性)이다.
義曰:性者,天所稟之性也。天地之性寂然不動,不知所以然而然者,天地之性也。然而元善之氣受之於人,皆有善性,至明而不昏,至正而不邪,至公而不私。聖人得天地之全性,純而不雜,剛而不暴,喜則與天下共喜,怒則與天下共怒,以仁愛天下之人,以義宜天下之物,繼天下之善性以成就己之性。既成就己之性,又成就萬物之性;既成就萬物之性,則於天地之性可參矣。是能繼天地之善者,人之性也。
호애(胡瑗) 해석: 이른바 성이란, 상천이 부여(賦與)하는 본성이다. 천지의 성은 적연하여 움직이지 않고, 그것이 무엇 때문에 이와 같은지 말해 내지 못하여도 자연이 이와 같다. 이것이 곧 천지의 성이다. 그런데 저 원시의 선기(善氣)가 일단 사람에게 품수되면, 사람마다 곧 모두 선한 본성을 가진다: 지극히 명철(明澈)하여 혼매(昏昧)하지 않고, 지극히 단정하여 사벽(邪僻)하지 않으며, 지극히 공정하여 편사(偏私)하지 않다. 성인은 천지의 완전한 본성을 품득하여, 순수하여 잡됨이 없고, 강건하여 폭력스럽지 않으며, 기뻐하면 곧 천하 사람과 함께 기뻐하고, 분노하면 곧 천하 사람과 함께 분노한다. 인으로써 천하의 사람을 사랑하고, 의로써 천하의 물건을 안돈하며, 천하가 공유하는 선성(善性)을 계승하여 자기의 성을 성취한다. 이미 자기의 성을 성취하고, 또 나아가 만물의 성을 성취한다. 이미 만물의 성을 성취하면, 곧 천지와 나란히 하여 셋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능히 천지의 선을 계승하는 것은, 바로 사람의 본성이라고 한다.
仁者見之謂之仁,知者見之謂之知。
경문에 이르되: 인후(仁厚)한 사람은 이 도를 보면, 곧 그것을 인(仁)이라 칭한다. 명지(明智)한 사람은 이 도를 보면, 곧 그것을 지(智)라 칭한다.
義曰:夫聖人得天性之全,故五常之道無所不備;賢人得天性之偏,故五常之道多所不備,或厚於仁而薄於義,或厚於禮而薄於信,是五常之性故不能如聖人之兼也。
호애(胡瑗) 해석: 성인은 천성(天性)의 전체를 품득하니, 그러므로 인의예지신 오상의 도가 하나라도 갖추지 않음이 없다. 현인은 다만 천성의 한 편을 품득하니, 그러므로 오상의 도에 흠결이 많다: 어떤 이는 인후하나 의가 부족하고, 어떤 이는 예를 중히 하나 신이 부족하다. 바로 품수한 바 오상의 성에 한 편으로 치우침이 있는 까닭에, 비로소 성인과 같이 겸비할 수 없다.
夫大易之道,卦於伏羲,重於文王,爻辭於周公,是三聖人垂萬世法則之書,其間寫天地水火風雷山澤之象,本凖擬於天地,統鬼神之妙用,惟變所適,量時制宜,故不可一義而求之也。若仁者見之則知聖人之仁,知者見之則知聖人之知,是各資其分而已矣。
《주역》의 도는, 괘획(卦畫)은 복희에서 나오고, 중괘(重卦)는 문왕에서 이루어지며, 효사는 주공에서 지어졌으니, 이 세 분의 성인이 만세에 남긴 법칙의 책이다. 책 속에 천지·수화·풍뢰·산택의 물상을 묘모한 것은, 본래 천지에 비의하여 지었고, 귀신의 묘용을 통섭하며, 다만 변화를 따라서 변화하고, 시세를 권형(權衡)하여 일을 따라 마땅한 것을 제정한다. 그러므로 다만 한 종류의 의사로써 풀이를 구할 수 없다. 인후한 사람이 그것을 읽으면, 보는 것은 성인의 인이다. 명지한 사람이 그것을 읽으면, 보는 것은 성인의 지이다. 이것은 다만 각 사람이 자기의 품분(禀分)에 의지하여 영회할 뿐이다.
百姓日用而不知,故君子之道鮮矣。
경문에 이르되: 백성들은 날마다 모두 이 도를 쓰나, 자기가 그것을 쓰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참으로 군자의 도를 체회(體會)할 수 있는 사람은 곧 심히 적다.
義曰:夫聖人得天地之正性,繼天地之行事,故無所不知,無所不明。賢人得天地之偏,又可以仰及於聖人之行事,然聖人之道至深至奧,賢人尚可以偏窺之;至於天下百姓常常之人,得天性之少者,故不可以明聖人所行之事。
호애(胡瑗) 해석: 성인은 천지의 순정한 본성을 품득하고, 천지의 작위를 계승한다. 그러므로 알지 못하는 곳이 없고 명백하지 않은 곳이 없다. 현인은 다만 천지의 성의 한 편을 품득하나, 오히려 또한 앙망(仰望)하여 성인의 행사에 이를 수 있다. 성인의 도는 지극히 깊고 지극히 오묘하여, 현인조차도 다만 한 개의 측면에서 엿볼 뿐이다. 천하의 심상한 백성에 이르러서는, 품수한 천성이 더욱 적어서, 그러므로 성인이 행하는 일을 명백히 할 수 없다: 그들은 날마다 이 도리가 가져오는 이로움을 받아 이어나, 그 가운데의 까닭을 말해 내지 못한다.
夫大易之道載聖人之行事,包乾坤之生育、鬼神之妙用、人道之終始,無不備於其間。聖人體其用,成其功業,發見於天下,則天下之人咸戴而行之,莫知所以然而然也。然而聖人君子雖能體易道以為用,觀易道以施化,然能悟君子之道者亦鮮矣。
《주역》의 도는 성인의 행사를 기재하고, 건곤이 생양하는 기능·귀신의 묘용·인도(人道)의 시종을 포함하여, 하나라도 그 가운데 완비하게 담기지 않음이 없다. 성인이 그 공용을 체찰하여, 자기의 공업을 성취하여, 천하에 나타내면, 천하 사람이 곧 모두 옹대(擁戴)하고 준행하나, 무엇 때문에 이와 같은지 말해 내지 못한다. 그러나, 성인군자가 비록 《주역》의 도를 체회하여 운용하고, 《주역》의 도를 관찰하여 교화를 추행할 수 있더라도, 참으로 군자의 도를 영오(領悟)할 수 있는 사람은, 필경 또한 심히 적다.
顯諸仁,藏諸用。
경문에 이르되: 인애를 밖으로 나타내고, 공용을 안으로 잠장(潛藏)한다.
義曰:上言神之所為,此論易道之大與神功不異也。顯諸仁者,言道之為體,顯見仁功,衣被萬物,是其顯也;藏諸用者,謂潛藏功用,不使物知,是藏諸用也。夫天地之道,乾剛坤柔,日臨月照,春生夏長,秋殺冬藏,使萬物綿綿而不絶者,天地生成之仁也,然不知天地生成之用也。
호애(胡瑗) 해석: 윗 글은 신묘한 힘의 작위를 말하고, 이곳은 곧 《주역》의 도의 굉대함이 저 신묘한 공과 아울러 다르지 않음을 논한다. 이른바 현제인(顯諸仁)이란, 도가 본체로서, 인애의 공효(功效)를 나타내 내어, 만물을 덮는다. 이것은 그것의 드러내는 한 면이다. 이른바 장제용(藏諸用)이란, 그것이 공용을 잠장하여, 만물로 하여금 알아차리지 못하게 한다. 이것은 그것의 감추는 한 면이다. 천지의 도는, 건이 강하고 곤이 유하여, 일월이 번갈아 비추어 임하고, 봄에 나고 여름에 자라며 가을에 죽이고 겨울에 저장하여, 만물로 하여금 면연(綿延)하여 끊이지 않게 한다. 이것은 천지가 생양하는 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천지가 구경 어떻게 이 몫의 공용을 베푸는지 알지 못한다.
夫聖人之道,恩涵澤浸,政漸仁煦,薄賦輕役,恤孤軫貧,使百姓安其土而不遷,勸其功而樂事者,聖人生成之仁也,然不知聖人生成之用也。夫大易之道,寂然不見其體,杳然不見其形,以之悅懌生民,功業萬世,施為徳澤,則可以衣被萬物,是顯諸仁也;及夫推究原本,測度云為,不見其跡,是藏諸用也。是大易之與天地鬼神無以異也。
성인의 도도 또한 이와 같다: 은덕이 인심에 침윤하고, 정령이 평완(平緩)하여 인의(仁意)가 온후(溫煦)하며, 부세를 가볍게 하고 역역(徭役)을 적게 징하며, 고약(孤弱)을 무휼(撫恤)하고 빈고(貧苦)를 체념하여, 백성으로 하여금 본토에 안거하게 하고 옮겨 다닐 필요 없게 하며, 그들을 격려하여 본업에 힘쓰고 일을 맡기를 즐기게 한다. 이것은 성인이 만민을 생양하는 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똑같이 성인이 구경 어떻게 이 몫의 공용을 베푸는지 알지 못한다. 《주역》의 도는, 적정하여 본체를 볼 수 없고, 유묘(幽渺)하여 형상을 볼 수 없다. 이것으로써 백성을 환열하게 하고, 만세의 공업을 성취하며, 은택을 시행하면, 곧 만물을 덮기에 족하다. 이것이 곧 인을 나타내 냄이다. 그런데 사람이 그 근본을 추구하고 그 작위를 촉도(揣度)할 때에는, 도리어 흔적을 찾아내지 못한다. 이것이 곧 공용을 잠장함이다. 보니 《주역》과 천지귀신은 아울러 다름이 없다.
鼔萬物而不與聖人同憂。
경문에 이르되: 천지는 만물을 고동하여 생장하게 하나, 성인과 같이 만물을 위하여 근심하지 않는다.
義曰:夫天地之道,以時而生,以時而殺,雷霆以鼔動之,風雨以滋潤之,使萬物洪者纎者、髙者下者皆遂其性。或萬物之中有夭折暴亡、凶荒札瘥者,皆任自然之理,不能憂恤之。
호애(胡瑗) 해석: 천지의 도는, 시령을 따라 생발하고, 시령을 따라 숙살한다. 뇌정으로써 만물을 고동하고, 풍우로써 만물을 자윤하여, 만물로 하여금 크고 작음·높은 곳과 아랫곳을 묻지 않고 각각 본성을 따르게 한다. 만물 가운데 만약 요절(夭折)·폭망(暴亡)·재황(災荒)·역병(疫病) 부류의 일이 나타나면, 천지는 일괄하여 자연의 이치에 맡기고, 아울러 그것들을 위하여 우려하고 무휼하지 않는다.
夫聖人代天牧民,繼天之善,以仁義之道生成於天下,物之夭折暴亡、凶荒札瘥者,常如己內於溝壑之中。是天地之道但能鼔舞於萬物,而不能憂恤於萬物也;聖人能生成於萬物,又能憂恤於萬民也。惜乎聖人所不得者,天地之權也。故大易之道載天地生成之理,而不能與聖人同憂也。老子曰:天地之道,氣猶槖鑰,以萬物為芻狗者,此也。
성인은 곧 상천을 대체하여 백성을 다스리고, 상천의 선의(善意)를 계승하여, 인의의 도로써 천하를 생양한다. 일단 사람이 요절폭망하고 재황역병을 당하는 것이 있으면, 그는 대개 자기가 사람을 곡혜 속에 밀어 넣은 것과 같이 여긴다. 보니 천지의 도는 다만 만물을 고동할 수 있을 뿐, 그러나 만물을 위하여 우려하지 않는다. 성인은 이미 능히 만물을 생양하고, 또한 능히 만민을 위하여 우려하고 무휼한다. 안타깝게도 성인이 부족한 것은, 천지와 같은 권능(權能)이다. 그러므로 《주역》의 도는 비록 천지가 생양하여 물을 이루는 도리를 기록하나, 성인과 같이 우환(憂患)의 마음을 품을 수 없다. 《노자(老子)》에 이르되: 천지 사이, 그 기는 풀무와 같이 부풀어 떨쳐 멈추지 않고, 그런데 천지는 만물을 보아 제사에 쓰는 풀로 엮은 개로 삼아, 그 스스로 나고 스스로 죽음에 맡긴다. 말하는 것은 바로 이 의사이다.
계사상·성덕대업지의재(盛德大業至矣哉)
盛徳大業至矣哉。
천지가 만물을 생양하는 덕성이 지극히 충성(充盛)하고, 성인이 성취하는 공업이 지극히 광대하니, 참으로 꼭짓점에 이르렀도다! 여기의 '성덕'은 낳고 또 나아 쉬지 않으며 날마다 새로워지는 덕성을 가리키고, '대업'은 천하에 부유(富有)하여 갖추지 않음이 없는 공업을 가리킨다.
義曰:此已下至「陰陽不測之謂神」為一章,此是十翼之中第五章。今註疏之說皆以謂「顯諸仁,藏諸用」而下至「道義之門」為一章。今觀「顯諸仁,藏諸用,鼔萬物而不與聖人同憂」三句,皆言上文天地不測之事,故自此「盛徳」已下至「陰陽不測之謂神」為一章;自「夫易廣矣大矣」而下至「易簡之善」為一章。
호애(胡瑗) 안(按): 여기서 아래로 내려가, '음양불측지위신(陰陽不測之謂神)' 한 구절에 이르기까지, 마땅히 합하여 한 장으로 해야 한다. 그것은 《역전(易傳)》 십익 속의 《계사상》의 제오장(第五章)이다. 당시 통행하는 주소본(注疏本)은 모두 '현제인, 장제용' 이하에서 곧장 '도의지문(道義之門)'에 이르기까지를 한 장으로 나누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현제인, 장제용, 고만물이불여성인동우' 이 세 구절은, 말하는 것이 모두 윗 글이 말한 바의 천지화육을 측도할 수 없는 일이어서, 어의(語意)가 여전히 윗 장에 속한다. 그러므로 마땅히 '성덕' 이 한 구절에서 아래로 내려가, '음양불측지위신'에 이르기까지를 한 장으로 헤아려야 한다. 다시 '부역광의대의(夫易廣矣大矣)'에서 아래로 내려가, '역간지선(易簡之善)'에 이르기까지를 따로 한 장으로 헤아린다.
「盛德大業至矣哉」者:夫天地之道,無所不生,無所不育,以生成之功言之,其徳至廣而其功至大也。聖人法天之用,廣生成之道,萬物由之而通,政教由之而理,而又作工巧以便器用,立商賈以通有無,為之綱罟則以畋以漁,為之耒耜則以耘以耨,天下之人至於昆蟲草木,無不被其賜者,是聖人充盛之徳、廣大之業至極矣哉。然必云「盛徳大業」者,蓋施於行則為徳,行於事則為業也。
'성덕대업지의재' 이 한 구절을 해석하면: 천지운행의 법칙은, 한 물건이라도 그것으로 말미암아 생겨나지 않음이 없고, 한 물건이라도 그것으로 말미암아 양육되지 않음이 없다. 다만 화생하여 성취하는 공효에 대하여 말하면, 그 덕성은 일체에 두루 미치고, 그 공용은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성인은 상천의 작용을 법으로 취하여, 이러한 생양성취의 도를 넓게 편다: 만물이 그것에 의지하여 창수(暢遂)를 얻고, 정령교화가 그것에 의지하여 정치(整治)를 얻는다. 또한 각종의 정교한 기구를 제작하여 민용(民用)을 편리하게 하고, 상무(商貿)를 설립하여 유무(有無)를 서로 통하게 한다. 망고(網罟)를 만들어 내면, 사람들이 곧 짐승을 사냥하고 고기를 잡을 수 있다. 뇌사(耒耜)를 만들어 내면, 사람들이 곧 경윤(耕耘)하고 풀을 뽑을 수 있다. 천하의 사람, 나아가 곤충초목에 이르기까지, 은택을 받지 않음이 없다. 이것이 곧 성인의 충성한 덕성·광대한 공업이 이미 극치에 도달한 것이다. 어찌하여 반드시 '성덕'과 '대업' 두 항목을 나누어 말하는가에 이르러서는, 같은 한 가지 일이면서, 자신의 수위(修爲)에 떨어져 이루어지면 곧 그것을 '덕'이라 부르고, 구체적인 사공(事功)에 추행되면 곧 그것을 '업'이라 부르는 까닭이다.
富有之謂大業。
있지 않는 곳이 없고 충실하여 가득 찬다. 이것을 곧 '대업'이라 부른다.
義曰:自此已下覆說「大業」「盛徳」,因廣明《易》與乾坤之事。夫天之生物盈滿於天地之間,則謂之富;聖人法天之行事,布其徳澤,施其教化,竭天下之財用,聚天下之民物,以為之富有,富有天下,措當世於不拔,故謂之大業也。
이 한 구절에서 아래로는, 돌아보아 앞 글의 '대업'과 '성덕'을 나누어 신설(申說)하고, 아울러 이것을 빌려 넓게 《주역》 및 건곤 두 괘의 도리를 천명한다. 상천은 만물을 화생(化生)하여, 천지 사이에 충새(充塞)한다. 이러한 있지 않는 곳이 없음을 곧 '부(富)'라 부른다. 성인은 상천을 본받아서 정사를 처리한다: 은택을 베풀고, 교화를 추행하며, 천하의 재화물력(財貨物力)을 모두 움직여 일으키고, 천하의 인민물산을 모두 모아 일으켜서, 국가를 이르러 부유하게 한다. 온 천하에 부유하고, 또한 능히 당세를 빼낼 수 없는 기업 위에 놓는다. 그러므로 이것을 '대업'이라 칭한다.
日新之謂盛徳。
하루에 비해 하루 새로워지고 오래도록 정체하지 않는다. 이것을 곧 '성덕'이라 부른다.
義曰:夫天地之道,日往月來,陰極陽生,四時更變,寒暑相推,一日復一日,其徳愈新,以至生成萬物,日日而盛大。聖人法此天地之道,増修其徳,持循政教,適時之變,量事制宜,使其徳日日盛大。
천지운행의 법칙은: 태양이 낙하하면 달이 솟아오르고, 음기가 극점에 이르면 양기가 곧 생발하며, 사계절이 번갈아 교대하고, 한서(寒暑)가 서로 추이하여, 하루가 하루에 이어지고, 그 덕성이 끊이지 않고 새로워져서, 이로 인하여 만물을 화생하여 성취하며, 하루에 비해 하루 성대해진다. 성인은 천지의 이 한 조의 법칙을 본받아, 끊이지 않고 자기의 덕행을 수양하여 증진하고, 정령교화를 견지하고 조정하며, 시세의 변화에 순응하고, 사정의 경중(輕重)을 형량하여 합의(合宜)한 조치를 제정하여, 자기의 덕성도 하루에 비해 하루 성대하게 한다.
生生之謂易。
낳고 또 낳아 화육이 끊이지 않는다. 이것을 곧 '역(易)'이라 부른다.
義曰:生生者,陰生陽,陽生陰也。天地之道、聖人之徳,以富有言之則謂之大業,以日新言之則謂之盛徳,而又生成之道,變化死生,生而復死,死而復生,使萬物綿綿而不絶者,天地聖人之徳業也。
이른바 '생생(生生)'이란, 음기가 양기를 낳아 내고, 양기가 또한 음기를 낳아 내어, 순환하여 서로 낳음을 말한다. 천지의 법칙·성인의 덕성은, 있지 않는 곳이 없다는 이 한 면에서 말하면 곧 '대업'이라 부르고, 날마다 새로워진다는 이 한 면에서 말하면 곧 '성덕'이라 부른다. 그런데 그것의 화생하여 성취하는 작용은, 또한 생사의 변화로 나타낸다 ― 낳고 또 죽고, 죽고 또 낳아서, 만물로 하여금 대대로 서로 이어지고 면연하여 끊이지 않게 한다. 이것이 바로 천지와 성인이 공유하는 덕과 업이다.
夫大《易》之道,盡七九八六之數,寫天地水火雷風山澤之象,總陰陽生殺之理,包人事萬物之宜,變而必通,終而復始,隨時之變,因事制宜,凖擬天地之間,則其功不異,是生生相續而不絶也。
《주역》 이 한 벌의 도리는, 소양(少陽) 칠(七)·노양(老陽) 구(九)·소음(少陰) 팔(八)·노음(老陰) 육(六) 이 네 종류의 점치는 시초가 얻는 수를 궁진하고, 천(天)·지(地)·수(水)·화(火)·뢰(雷)·풍(風)·산(山)·택(澤) 여덟 종류의 물상을 묘사하여 내고, 음양생장숙살의 원리를 총괄하며, 인사와 만물이 각자 마땅한 분촌을 함개(涵蓋)한다. 그것은 변화한 후에는 필연적으로 통달하고, 종결한 후에는 다시 시작하며, 시세를 따라 변통하고, 사정을 따라 합의한 법을 제정한다. 이것으로써 천지 사이의 운행에 비의하면, 공효가 천지와 조금도 다름이 없다 ― 이것이 곧 낳고 또 낳아 서로 이어져 끊절하지 않음이다.
成象之謂乾。
천지간의 강건한 물상을 화하여 이룬다. 이것을 곧 '건(乾)'이라 부른다.
義曰:乾者,健也。夫天以一元之氣,仰而望之,其色蒼蒼然,下周於地,其狀如倚杵。南樞入地三十六度,北樞出地三十六度,一書一夜凡行九十餘萬里,自古至今未嘗有毫釐之差忒,亦未嘗有分毫之不及,以至生成萬物,皆以乾健而神其用,以成就萬物之形狀。非剛健之功則不能如是也,故伏羲始畫乾卦,皆取健用為象也。
'건'의 의사는 곧 강건이다. 하늘은 한 덩이의 혼연한 원기로 이루어져서, 머리를 들어 바라보면 한 조각의 창창(蒼蒼)한 빛이며, 아래로 향하여 대지를 둘러싸고, 형상이 마치 한 개의 비스듬히 기댄 나무 방망이와 같다: 남천극(南天極)은 지평선 이하로 가라앉아 삼십육 도이고, 북천극(北天極)은 지평선 이상으로 높이 솟아 삼십육 도이며, 한 낮 한 밤에 구십여 만 리를 운전한다. 옛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운행이 일찍이 조금의 편차가 있은 적이 없고, 또한 일찍이 조금의 지체가 있은 적이 없다. 만물을 화생하여 성취함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 강건한 힘에 의지하여 신묘하게 작용을 발휘하여, 따라서 만물의 형체와 모양을 조취(造就)한다. 만약 강건의 기능이 아니면, 결코 이와 같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복희가 처음으로 건괘를 그릴 때, 취한 것은 바로 강건의 이 한 층의 작용으로써 상을 세운 것이다.
效法之謂坤。
상천을 본받아 생육을 싣는다. 이것을 곧 '곤(坤)'이라 부른다.
義曰:坤者,順也。夫坤地之道,承天之氣而始終萬物,無所不載,無所不生,皆效天而生育之,故伏羲畫坤之卦,亦皆取效坤順之義而名曰坤。然則必言「成象之謂乾,效法之謂坤」者,蓋萬物之生必由天道剛健,然後成其形象;地道柔順,必得陽氣,然後順其物理。以人事言之,乾則為君之象,坤則言臣之道,天下之事非君不能立,庶政之設非臣不能行也。
'곤'의 의사는 곧 유순이다. 대지의 도는, 상천의 기를 받아 이어서 시작을 이루고 끝을 이루어 만물을 양육하여, 한 물건이라도 그 실음을 받지 않음이 없고, 한 물건이라도 그것으로 말미암아 생겨나지 않음이 없다. 전부가 모두 상천을 본받아서 화육한다. 그러므로 복희가 곤괘를 그릴 때, 또한 이러한 본받아 순승하는 의를 취하여, 명명하여 '곤'으로 한다. 어찌하여 반드시 '성상지위건, 효법지위곤(成象之謂乾, 效法之謂坤)'을 나누어 말하는가에 이르러서는, 만물의 생산은, 반드시 먼저 천도의 강건이 있어야 비로소 형체물상을 엉겨 이룰 수 있다. 그런데 지도(地道)는 유순하여, 또한 반드시 양기를 얻어야 비로소 만물의 이치를 순수(順遂)할 수 있다. 만약 인사를 들어 배대(配對)하면, 건은 곧 군주의 상징이고, 곤은 곧 신하의 직분이다: 천하의 대사는, 군주가 없으면 따라서 확립될 수 없다. 각종의 정무는, 신하가 없으면 따라서 추행될 수 없다.
極數知來之謂占。
시책(蓍策)의 수를 궁구하여 미래를 미리 안다. 이것을 곧 '점(占)'이라 부른다.
義曰:夫大《易》之道,總包天地,動賾鬼神,天下之事不言而自知,吉凶之道未萌而先見,皆聖人以蓍象之數占其事物之理,逆知來事之意,考其行事之驗,以成其文也。故下文所謂「將有為也,問焉而以言,其受命也如響」,此之謂也。
《주역》 이 한 벌의 도리는, 천지를 통째로 포거하여 그 안에 넣고, 유심난견(幽深難見)한 곳과 귀신의 작용에 감통할 수 있어서, 천하의 일은 입을 열지 않아도 자연히 명료하고, 길흉의 나아감은 아직 맹아하지 않아도 먼저 볼 수 있다. 이것들은 모두 성인이 시초와 괘상이 얻는 수에 의지하여, 사물의 내재한 도리를 점측(占測)하고, 미리 장래의 동향을 추지(推知)하며, 다시 실제의 행사의 응험을 핵대(核對)하여, 이것들을 써서 괘효사로 삼은 것이다. 그러므로 아래 글에 '장차 무엇을 하고자 하여, 시구(蓍龜)에 발문하여 언사로써 가르침을 구하면, 그것은 문의를 받아들여 메아리와 같이 즉각 응답한다'고 한다. 가리키는 것은 바로 이 일이다.
通變之謂事。
변화를 통효하여 형세를 따라 추행한다. 이것을 곧 '사(事)'라 부른다.
義曰:夫暑徃則寒來,陽生則陰伏,物之所以理,事之所以通,生而後滋,周而復始,皆自於變化之力也。故黃帝通其變,使民不倦,神而化之,使民宜之,《易》窮則變,變則通,通則久,是皆自通變之道,然後成天下之事也。
더운 기운이 지나가면 찬 기운이 곧 오고, 양기가 생발하면 음기가 곧 잠복한다. 만물이 각각 그 이치를 얻는 까닭, 사정이 통행할 수 있는 까닭, 생겨난 후 또한 끊이지 않고 자라나며, 한 주가 끝나고 다시 시작하는 것은, 이것들은 모두 변화의 힘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계사하(繫辭下)》에 황제(黃帝)의 '기 변화를 통하여 백성으로 하여금 권태하지 않게 하고, 신묘하게 변화하여 백성으로 하여금 각각 그 마땅함을 얻게 한다(通其變, 使民不倦; 神而化之, 使民宜之)'를 말한다. 또한 《주역》의 도리는 궁진한 곳에 이르면 곧 변하고, 변하면 곧 통달하며, 통달하면 곧 오래갈 수 있다고 한다. 이것들은 모두 먼저 통변(通變)의 도를 장악하여, 그런 후에 비로소 천하의 사공을 성취할 수 있다.
陰陽不測之謂神。
음양이 오고 가는 작용이 심미(深微)하여 측도하기 어렵다. 이것을 곧 '신(神)'이라 부른다.
義曰:夫萬物之生,皆由天地陰陽之功以生成之。然生成之道,周而復始,極而復生,不言而信,不疾而行,以至變化之理及究其生育之形,不可得而知也。
만물의 생산은, 모두 천지음양의 공용에 의지하여 화생하여 성취한다. 그러나 이러한 화생의 도는, 한 주가 끝나고 다시 시작하며, 극점에 이르러 다시 맹생(萌生)한다. 그것은 한 마디를 발하지 않아도 만물이 자연히 신종(信從)하고, 그것이 급하게 뛰어다니는 것을 보지 않아도 이르지 않는 곳이 없다. 그 가운데의 변화의 원리, 및 만물이 형체를 이루는 과정을 추구함에 이르러서는, 사람은 끝내 완전히 알지 못한다 ― 이러한 심미하여 헤아릴 수 없음을, 곧 '신'이라 부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