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형(窩形)의 혈을 논함
작괘 안내: 풍수 현공비성 작괘, 황력
窩穴,即廖氏開口穴也,亦曰窟穴。《葬書》云“形如燕窠,法葬其窩,胙土分茅”是也。凡曰雞窩、鍋底、掌心、旋螺、金盆、銅鑼等形,皆窩穴之異名耳。乃穴星開口生兩掬者也。平地高山皆有之,而高山為多高山以窟為眞,平地以突為眞,故高山多。俗亦名仰天湖格。除星體另論外見穴星卷,而窩之為形,凡四格:曰深窩,曰淺窩,曰狹窩,曰闊窩。皆以左右兩掬均勻為正格,左右不同為變格。
「와혈(窩穴)」은 곧 요금정이 말한 이른바 「개구혈(開口穴)」이요, 또한 「굴혈(窟穴)」이라고도 부른다. 『장서』가 말하는 「형은 제비집과 같아 법에 그 굴에 장사하면 작토분모(胙土分茅)한다」는 것은 곧 이것을 말한 것이니――형상이 제비집과 같아 법에 따라 굴의 가운데에 장사하면 봉토수작을 얻을 수 있다. 무릇 닭굴·솥바닥·손바닥·소라·금분·동라 같은 명목으로 부르는 것은 모두 지나지 않는 와혈의 별칭이다. 그 모양은 혈성이 앞을 향해 한 입을 벌리고 좌우에 두 갈래 포환하는 팔뚝을 낸다. 평지와 고산에 모두 와혈이 있되 고산에 많다(원주, 고산은 굴이 있음을 참으로 하고 평지는 돌기가 있음을 참으로 하므로 고산에 와혈이 많다). 민간에서도 그것을 「앙천호격(仰天湖格)」이라 부른다. 성체의 분류는 따로 전권(專卷)에서 토론한다(원주, 본서의 혈성권을 보라). 다만 와의 형상에 대하여 말하면 모두 네 격이 있으니 심와(深窩)·천와(淺窩)·협와(狹窩)·활와(闊窩)이다. 네 격은 모두 좌우 양팔이 균일하게 상칭하는 것을 「정격(正格)」으로 하고 좌우가 같지 않은 것을 「변격(變格)」으로 한다.
而各有二體:一是左右交會,名曰藏口窩;一是左右不交會,名曰張口窩。四格之形,又各有俯仰不同。身俯則須窩中微有乳,穴就乳脈安扦;面仰則須窩中微有突,穴就窩心突頂安扦,此為最吉。廖氏云“凡開口之穴,靈光合聚於中,餘氣分行於外,雌雄相顧,血脈交通,所以謂之吉穴”是也。
매 격에는 또 각각 두 가지 체식이 있다. 좌우 양팔이 앞에서 서로 겹쳐 만나는 것을 「장구와(藏口窩)」라 부르고, 좌우 양팔이 교회하지 않고 입을 벌린 것을 「장구와(張口窩)」라 부른다. 네 격의 형상에는 또 각각 부(俯)·앙(仰)의 구별이 있다. 산 몸이 앞을 향해 엎드린 것은 굴 가운데 반드시 약간의 유형을 내어야 하고 하장할 때 유맥에 붙여 관목을 안치한다. 산 면이 위를 향해 우러른 것은 굴 가운데 반드시 약간의 돌기를 일으켜야 하고 하장할 때 굴 가운데 그 돌기의 꼭대기에 붙여 관목을 안치하면 이와 같이 가장 길하다. 요금정이 말하는 「무릇 입을 벌린 혈은 영광이 가운데 합취하고 여기가 밖으로 나뉘어 가며, 자웅이 서로 돌보고 혈맥이 교통하니, 이 까닭에 이를 길혈이라 한다」는 것은 바로 이 도리를 말한 것이다. 영수의 기가 굴 가운데 합취하고 여분의 기가 굴 밖으로 분산하며, 두 팔이 한쪽은 자(雌) 한쪽은 웅(雄)이 되어 피차로 조응하고 혈맥이 관통하므로 길혈이라 칭한다.
惟要弦稜伶俐,兩掬彎環,口中圓淨,窩內沖融;切忌落槽,最嫌偏陷。《經》曰“窠形須是曲如窩,左右不容少偏頗。偏頗不可名窩穴,倒側傾摧禍奈何”是也。又有懶坦、空亡、崩洪、破陷,謂之假窩、虛窩,務須詳辨。如誤下之,主淫亂少亡、貧窮絕嗣,不可不慎。若後龍眞的,入首明白,星辰合格,證佐分曉,此穴至貴。
와혈은 다만 몇 가지 일을 요구한다. 굴 입구 가장자리의 「현릉(弦棱)」이 청석하고 예리하며, 좌우 양팔이 굽이쳐 서로 포용하고, 굴 입구 안이 원정하고 청결하며, 굴 가운데 기상이 화융하여 충영해야 한다. 가장 기피하는 것은 굴 바닥이 한 줄기의 물골로 떨어지는 것이요, 특히 꺼리는 것은 한쪽이 편함하는 것이다. 『장경』이 말하는 「집 형태는 마땅히 굽어 굴 같아야 하고 좌우는 조금의 편파도 용납하지 않는다. 편파하면 와혈이라 이름할 수 없고 기울고 무너지면 재앙을 어찌하랴」는 바로 이 뜻이다. 굴 형태는 반드시 굽어 보듬어 둥지와 같아야 하고 좌우는 반점의 편사도 용납하지 않는다. 편사한 것은 와혈이라 부를 자격이 없고, 저 비뚤어지고 무너지는 형상은 다만 화를 부를 뿐이다. 이 밖에 또 한 가지 나른하고 평탄하며 가운데가 공망하고 산체가 붕탄하여 넘어진 이른바 「가와(假窩)」·「허와(虛窩)」가 있으니 반드시 자세히 분변해야 한다. 만약 잘못하여 그 가운데 장사하면 음란한 일과 소년의 요망 및 빈궁하여 대가 끊어짐을 생하니 신중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뒤의 내용이 진확하고 「입수」 한 절이 청초명백하며 성체가 합격하고 각종 좌증이 분명하면 그러면 와혈은 지극히 존귀하다.
窩形四格:深窩、淺窩、闊窩、狹窩 左為深窩圖。此深窩者,開口中深藏也。然窩既深藏,不宜太深坑陷,須是深得其宜。惟窩中有微乳、微突者,謂之陽中有陰,雖深不忌。若無乳突,切忌深陷。又須窩中圓淨,弦稜明白,兩掬弓抱,方為合格。若窩太深陷,又無乳突,弦稜不圓,左右偏頗,即是虛窩,不可下也。
도제(圖題)는 「와형사격(窩形四格): 심와·천와·활와·협와」라 한다. 원서 여기에는 본래 네 폭의 그림이 있었으나 지금 저본(底本)에는 다만 도제만 남고 도형은 이미 일(佚)했다. 첫째 폭은 심와의 그림이니 설명은 아래와 같다. 이른바 심와란 입을 벌린 굴이 깊이 속에 감추어진 것을 가리킨다. 굴이 비록 깊이 감춤을 요구하지만 깊어서 한 웅덩이가 되는 것을 꺼리고, 깊고 얕음이 마땅히 적절해야 한다. 다만 굴 가운데 따로 한 점의 미유(微乳) 혹은 미돌(微突)을 내는 것이 있어야 비로소 「양중유음(陽中有陰)」이라 부른다. 이와 같으면 곧 좀 깊어도 기피하지 않는다. 만약 굴 속에 이미 유도 없고 또 돌도 없으면 곧 깊이 함몰됨을 삼가야 한다. 이 밖에 또 굴 안이 원정하고 청결하며 「현릉」(굴 입구의 가장자리)이 청초분명하고 좌우 양팔이 활처럼 환포해야 합격으로 삼는다. 만약 굴이 너무 깊이 함몰하고 또 유돌이 없으며 현릉이 원정하지 않고 좌우가 편사하여 고르지 못하면 그것은 곧 「허와」이니 하장할 수 없다.
左為淺窩圖。此淺窩者,開口中平淺也。不宜太淺,太淺則不明。須是淺得其宜,如金盤,如荷葉之類,而又窩中弦稜明白,兩掬弓抱,方為合格。若窩中太淺,弦稜不明,懶坦無情,則非眞窩,不可下也。左為闊窩圖。此窩形之闊者,開口中寬闊也。窩既寬闊,不宜太深,須左右交會。要窩中有微乳、微突,就乳頭突頂安扦,方為合格。不然,多是空亡虛冷之窩,氣不凝聚。又須窩中圓淨,弦稜明白,兩掬彎抱,乃為合法。若窩形太闊,又無乳突,弦稜不明,左右偏頗,或兩掬不交,則不可下也。
둘째 폭은 천와의 그림이다(도형은 지금 일했고 겨우 도제와 설명만 남았다). 이른바 천와는 입을 벌린 곳이 평평하고 얕다. 다만 너무 얕은 것을 꺼린다. 너무 얕으면 곧 굴 형태가 나타나지 않는다. 얕음이 얕되 적당하여 금쟁반과 같고 연잎과 같으며, 동시에 굴 안의 현릉이 분명하고 좌우 양팔이 활처럼 환포해야 합격으로 삼는다. 만약 굴 가운데가 지나치게 얕고 현릉이 맑지 않으며 한결같이 나른하고 평탄하여 조금의 정의도 없으면 그것은 곧 참된 굴이 아니니 하장할 수 없다. 셋째 폭은 활와의 그림이다. 이른바 활와는 입을 벌린 곳이 넓고 활하다. 굴이 이미 넓고 활하면 곧 다시 깊은 것을 꺼리고, 또한 반드시 좌우 양팔이 앞에서 서로 겹쳐 만나야 한다. 또 굴 가운데 한 점의 미유 혹은 미돌을 내어 유두(乳頭)·돌정(突頂)에 붙여 하장해야 합격으로 삼는다. 그렇지 않으면 대부분 공망하고 허랭한 굴이어서 기가 모이지 않는다. 이 밖에도 여전히 굴 안이 원정하고 청결하며 현릉이 분명하고 양팔이 굽어 포용해야 합법으로 삼는다. 만약 굴 형태가 너무 활하고 또 유돌이 없으며 현릉이 맑지 않고 좌우가 편사하거나 혹은 양팔이 벌어져 교합하지 않으면 모두 하장할 수 없다.
左為狹窩圖。此窩形之狹者,開口中狹小也。窩雖狹小,亦要相停,不可太狹。太狹則恐開口不眞。須是狹小得中,如燕窩,如雞窩之類,而又窩中圓淨,弦稜明白,兩掬彎抱,方為合格。若窩中太狹小,口內不圓,弦稜不明,左右不抱,則非眞窩,不可下也。
넷째 폭은 협와의 그림이다(도형은 지금 일했고 겨우 도제와 설명만 남았다). 이른바 협와는 입을 벌린 곳이 좁고 작다. 굴이 비록 좁고 작아도 역시 온 성체의 규모와 상칭하여야 하고 지나치게 좁아서는 안 된다. 너무 좁으면 이 「개구」가 참이 아닐까 두렵다. 좁음이 좁되 적중하여 제비집과 같고 닭굴과 같으며, 동시에 굴 안이 원정하고 청결하며 현릉이 분명하고 좌우 양팔이 굽어 포용해야 합격으로 삼는다. 만약 굴 가운데가 지나치게 좁고 작고 입 안이 둥글지 않으며 현릉이 맑지 않고 좌우 양팔이 또 환포하지 않으면 그것은 곧 참된 굴이 아니니 하장할 수 없다.
以上窩形四格之圖。其左右兩掬均勻者,乃為正格,有五體。左右兩掬不均勻者,為變格,有二十體。圖具下:正格凡五格 上圖為正格,凡五體,乃左右兩掬均勻者也,下仿此。變格凡二十 以上變格,乃左右兩掬所轉不同,凡二十體,穴星仿此。帶曜凡八格 已上帶曜諸格,後皆仿此,圖繁,亦不重載。窩穴名地諸圖附後。
이상은 와형사격의 그림이다. 그 가운데 좌우 양팔이 균일하게 상칭하는 것은 「정격」에 속하여 모두 다섯 가지 체식이 있고, 좌우 양팔이 균일하지 않은 것은 「변격」에 속하여 모두 스무 가지 체식이 있으며, 그림은 아래에 나열한다(이하 세 벌의 그림은 저본에 다만 도제만 남고 도형은 모두 일했다). 한 벌은 「정격 무릇 다섯 격」이라 제하고 그 뒤에 설명하기를, 위에 나열한 것은 정격이니 모두 다섯 체이며 모두 좌우 양팔이 균일한 것이니 이하 각 종류는 이에 의하여 유추할 수 있다고 하였다. 한 벌은 「변격 무릇 스물」이라 제하고 그 뒤에 설명하기를, 이상은 변격이니 좌우 양팔이 전절하는 방향이 각각 같지 않음으로 나누어 모두 스무 체이며, 뒤에서 혈성을 강할 때도 이에 따라 유추한다고 하였다. 한 벌은 「대요(帶曜) 무릇 여덟 격」이라 제하고 그 뒤에 설명하기를, 이상 「요기」를 띤 각 격은 뒤에서 모두 이에 의하여 유추할 수 있으며 그림이 너무 번번하므로 다시 중복하여 간재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와혈의 명지 여러 그림은 뒤에 붙인다.
右地在吾邑南門外,與縣龍分脈後,起五星聚講,開帳入局,又大斷過脈,列芙蓉大帳。帳中穿心出脈,垂落清秀。入首結開口仰天窩穴。窩中圓淨,兩掬均勻,口中平坦,左右重重包裹,前朝秀麗,明堂融聚,水城繞抱,水口關鎖,繫艮龍,扦丙向,俗傳仰天湖,賴布衣下。後餘低出朝議大夫,數代清貴,至今福祉未艾。
오른쪽 이 땅은 우리 현성 남문 밖에 있다. 그 용맥은 현성의 주용과 갈라진 후 먼저 「오성취강」을 일으키고 장막을 펼쳐 본국(本局)에 들어오고, 또 한 번의 큰 단속맥(斷續脈)을 거쳐 한 줄의 부용(芙蓉) 같은 큰 장(帳)을 배출한다. 용맥은 장막의 정중앙에서 「천심(穿心)」하여 나와 처락하여 청수하여 볼 만하고, 「입수」의 곳에 이르러 한 개의 입을 벌려 위로 향한 앙천와혈(仰天窩穴)을 결성한다. 굴 안이 원정하고 청결하며 좌우 양팔이 균일하고 굴 입구가 평탄하며 사방이 층층이 포포하고, 앞면의 조산이 수려하고 명당이 기를 모으며 수성이 환요하여 포호하고 수구에 산이 관쇄한다. 이 땅은 간방(艮方)의 내용에 속하여 병향(丙向)을 세웠다. 민간에서 서로 전하여 「앙천호(仰天湖)」라 부르며 납포의(賴布衣)가 점한 곳이다. 뒤에 여씨(余氏)가 조의대부(朝議大夫)를 배출하여 몇 대가 모두 청귀한 집이 되었고 지금까지 복택이 아직 쇠하지 않았다.
朱國本問曰:餘氏此地,分幹大龍開帳,穿心中落結美穴,明堂、龍虎、朝對、水城、水口,無一不貴。艮龍丙向,又合天星。賴公所下,葬法又善,宜其貴列三公。乃僅止此,何也?儓仙曰:善哉!問此地龍穴、砂水俱上格,葬又合法,而貴不窮顯者,有二缺焉:少餘氣,無曜星矣。吳公云:“餘氣不去數十里,決然不是王侯地。”楊公云:“龍眞穴眞只無曜,空有星峰重疊照。”故大貴須有餘氣、曜星。此地缺此,《葬書》謂“十一不具,是為其次。”此地是也。
주국본(朱國本)이 발문하였다. 여씨의 이 땅은 간룡(干龍)의 큰 맥 위에서 갈라져 나와 장을 열고 용맥이 장심(帳心)을 뚫고 내려와 좋은 혈을 결성하였다. 명당·용호사·조산대안·수성·수구가 하나같이 귀하지 않은 것이 없다. 간방의 내용에 병향을 세운 것은 또 천성방위에 합한다. 더하여 납포의가 점한 곳이고 장법도 또한 타당하니, 도리에 비추어 마땅히 삼공의 지위까지 귀해야 할 것이 어찌하여 다만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대선(儓仙)이 회답하기를, 묻기를 잘했다. 이 땅은 용·혈·사·수가 모두 상격에 속하고 장법도 규구에 합한다. 그러나 귀기가 끝내 극진히 드러나지 못하는 것은 두 곳의 흠결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혈 뒤의 「여기(餘氣)」가 너무 짧고, 둘째는 「요성(曜星)」이 없는 것이다. 오경란이 말하기를 「여기가 수십 리를 가지 않으면 결연히 왕후의 땅이 아니다」고 하였다. 양균송이 말하기를 「용이 참이고 혈이 참이되 다만 요가 없으면 헛되이 성봉이 중첩하여 비출 뿐이다」――용이 참이고 혈이 참이되 요기를 결핍하면 비록 겹겹의 성봉이 조응하여도 소용이 없다. 그러므로 대귀의 땅은 반드시 여기가 길고 요성이 드러나야 한다. 이 땅은 바로 이 두 항목을 결핍하였다. 『장서』의 이른바 「열한 가지가 갖추어지지 않으면 이는 그 다음이 된다」는 것은 바로 이런 정형을 말한 것이다.
右地在泰寕,土名洪港口。其龍乃南幹正條,穿草坪峽後,少華大旺處,分正脈一派,巍峨廣袤,綿亙紆盤數百里,皆極其高大,非足力所能及。一枝一葉,亦甚長遠。入局起漲天水星,橫列十數里。帳之中垂落一脈,欲斷不斷,復頓高金,貼在帳下,圓滿光肥。兩畔帳帶,如垂絲串珠者數十條,護從繁華。
오른쪽 이 땅은 태녕현(泰寧縣)에 있고 지명을 홍항구(洪港口)라 한다. 그 용맥은 남간(南干)의 정조대룡(正條大龍)에 속하여 초평협(草坪峽)을 뚫고 지난 후 소화산(少華山)의 기세가 가장 왕성한 곳에서 한 지맥의 정맥을 갈라 내었는데, 산체가 외아하고 광활하여 반요면연하여 수백 리이고 곳곳이 지극히 고대하여 발길에 의지해서는 근본적으로 끝까지 걸을 수 없다. 그 한 가지 한 잎의 곁으로 난 작은 맥까지도 역시 모두 심히 길고 멀다. 본국에 들어온 후 먼저 한 좌의 「창천수성(漲天水星)」을 일으켜 가로로 펼쳐 십수 리의 길이이다. 장막의 정중앙에서 한 줄기의 용맥이 처락하여 끊어지는 듯하면서 끊어지지 않고, 접어 다시 한 좌의 고대한 금성을 일으켜 장 아래에 바짝 붙었는데 형체가 원만하고 광윤하며 풍비하다. 장막 양변의 「장대(帳帶)」는 처진 실타래로 구슬을 꿴 듯한 것이 몇십 줄이고 호위하여 따르는 산이 지극히 번성하다.
於高金星面,微開小窩,於上聚處結穴,弦稜伶俐,兩掬彎環,窩間平坦圓整,不深不闊,宛然如燕窠,僅可藏車隱馬。龍勢雄大,穴情巧小,眞貴格也。不假外山包裹,穴自周密藏聚,天然可愛。穴前又平坦數尺,下注嘉泉,廣不盈畝,四時不涸不溢。此池即內堂也。
곧 이 높은 금성의 정면에서 미미하게 한 개의 작은 굴을 열어 기가 상부에 모이는 곳에 혈을 맺었다. 굴 입구의 현릉이 청석하고 예리하며 좌우 양팔이 굽이쳐 서로 포용하고, 굴 안이 평탄하고 원정하여 깊지도 넓지도 않고 살아 있는 한 개의 제비집과 같아서, 크기가 겨우 수레 한 대를 감추고 말 한 필을 가릴 만하다. 내용의 기세가 웅대한데 혈정(穴情)은 도리어 작고 교묘하니 이것이 바로 참된 귀격이다. 그것은 반드시 바깥의 산을 빌려 포포할 필요가 없고 혈 자체가 주밀하게 장취하여 천연으로 가련하다. 혈 앞에 또 몇 자의 평지가 있고 아래로 한 웅덩이의 좋은 샘이 고여 있는데 면적이 한 이랑에 이르지 않고 일년 사계절에 마르지도 않고 넘치지도 않는다. 이 연못이 곧 내명당(內明堂)을 충당한다.
堂之前一山,近可攀摘,秀媚方平,不迫不欹,整然端拱。穴間惟見此山,其外洋及左右一切山水,俱所不見,恬然安靜,如坐密室。而後坐大帳,高貼有力,不啻端居幃幄之中。俗傳“珍珠涼傘蓋交椅”形,幞頭案,誠切當矣。從而檢點,外面諸山,重重疊疊,擁護羅列,合沓暗拱,有萬卒影從之勢。
명당 앞면에 한 좌의 산이 있는데 가깝기가 손을 뻗으면 닿을 만하고 형상이 수미(秀美)하고 방정하고 평정하여 핍압하지도 않고 외사하지도 않으며 단단정정하게 저곳에 공립(拱立)하고 있다. 혈 위에 앉으면 다만 이 한 좌의 산만 볼 수 있고 바깥의 대국 및 좌우 일체의 산수를 모두 바라볼 수 없어 안념하고 녕정하여 마치 밀실 가운데 앉은 것과 같다. 그리고 배후는 큰 장에 의지하여 높이 붙어 보호하니 심히 역량이 있어 곧장 장막의 한가운데 단좌한 것과 같다. 민간에서 그것을 「진주량산개교의(珍珠涼傘蓋交椅)」형이라 부르고 앞의 안(案)을 「복두안(幞頭案)」이라 칭하는데 이 이름 지은 것이 참으로 첩절하다. 다시 밖으로 한층한층 점검하면 외위의 뭇 산이 중중첩첩하여 옹렬(擁列)하여 층층첩첩으로 암중에 조공하여 마치 만 명의 사졸이 그림자처럼 따르는 듯한 기세가 있다.
混港,洪港兩溪夾送龍身,交會於五里外。水口諸山,皆大龍交纏。但穴結山腰,下鋪田畲,餘氣甚長,不免頓跌,勢似順局為異。然山勢高大,穴雖高,猶是山麓間。而登穴夷坦藏聚,不知為高,亦不知有外面傾跌之患,此所以為美也。但離鄉而貴,亦職此故爾。然龍勢牽連,煞氣未淨,高金結穴,又是武星。金旺於西,以庚脈入首,作卯向,宜其貴皆以武功。且正幹分受,鍾山川正氣,主忠貞而悠永不替焉。
혼항(混港)·홍항(洪港) 두 줄기의 계수가 한쪽은 왼쪽 한쪽은 오른쪽으로 용 몸을 협호하여 보내 와서 오 리 밖에서 교회한다. 수구 일대의 뭇 산은 모두 큰 용의 지각이 교착하여 전호한 것이다. 다만 이 혈이 산 허리 위에 맺히고 아래에 한 폭의 전여(田畲)를 펼쳐 여기가 끌린 것이 심히 길어 돈좌첩락이 면치 못하여 보기에 「순국(順局)」과 비슷하여 상격과 약간 다르다. 다만 산세가 본래 고대하여 혈이 비록 높은 곳에 있어도 여전히 산 뿌리 일대에 있는 것으로 헤아린다. 혈장에 오르면 사면이 평탄하여 기가 모이고 이미 높음을 느끼지 않으며 또 바깥에 경사첩락의 모병이 있음을 보아내지 못하니 이것이 바로 그 좋은 점이다. 다만 후인이 고향을 떠나야 비로소 귀가 발하는 것도 역시 이 연고에 기인한다. 다시, 용의 형세가 견련하여 아직 끊기지 않고 살기가 아직 다 제거되지 않았으며 또 높은 금성이 혈을 맺어 무성(武星)에 속한다. 금은 서방에서 왕하고 이 땅은 경방(庚方)의 맥으로 입수하여 묘향(卯向)을 세웠다. 그러므로 후인의 현귀가 모두 무공(武功) 위에서 나온다. 게다가 그가 품수한 것은 정간(正干)에서 갈라져 내린 맥이어서 산천의 정기를 응취하였으니, 그러므로 자손이 충정하고 복택이 유구하여 바뀌지 않음을 주재한다.
舊有記云:混港東,洪港西,裡有池塘外有溪言二水夾送眞龍,而結穴處裡有泉注,外有溪送。一如龍子去尋母老龍抽嫩枝,盤桓眷戀,又如龍母去盤兒大山包裹,小山結穴。遠看山斷卻不斷,近看子母不相離穴星貼大帳中。滿床牙笏渾閒事,百萬軍聲唱若齊言貴之多皆以武也。今鄉傳為楊筠松益避巢亂,過此愛之,求以葬母。後其孫有為麟州刺史者,值時亂,天下分南北,莫能歸,遂居太原,世為邊將雲。即楊無敵等,亦莫考其寔。
옛적에 한 단락의 겸기(鉗記)가 있어 말하기를 「혼항은 동쪽이요 홍항은 서쪽이오, 안에는 연못이 있고 밖에는 시내가 있다」――원주가 말하기를 이는 두 줄기의 물이 참용을 협송하고 결혈의 곳 안에는 샘물이 고여 있고 밖에는 시내류가 호송함을 말한 것이라 하였다. 「한편으로 용의 아들이 어미를 찾아가는 듯하다」――원주가 말하기를 이는 늙은 용이 연한 가지를 뽑아내어 배회하여 떠나지 않고 모산에 의련함을 말한 것이라 하였다. 「또한 용의 어미가 자식을 휘감는 듯하다」――원주가 말하기를 이는 큰 산이 밖에서 포포하고 작은 산이 가운데에서 혈을 맺음을 말한 것이라 하였다. 「멀리 보면 산이 끊긴 듯하나 도리어 끊기지 않고, 가까이 보면 자모가 서로 떠나지 않는다」――원주가 혈성이 큰 장 가운데 바짝 붙어 있음을 말한 것이라 하였다. 「침상 가득한 아호(牙笏)가 전혀 한가한 일이요, 백만 군사의 소리가 가지런히 부르는 듯하다」――원주가 말하기를 이는 부귀가 비록 많지만 도리어 모두 무공 위에서 얻음을 말한 것이라 하였다. 지금 고을에서 서로 전하기를, 이는 양균송이 황소(黃巢)의 난을 피하여 이 땅을 지나다가 그것을 사랑하여 이 땅을 얻어 어머니를 장사했다는 것이다. 뒤에 그 손자뻘 가운데 인주자사(麟州刺史)에 이른 자가 있었는데 마침 난세를 만나 천하가 남북으로 갈라져 고향으로 돌아갈 방법이 없어 이에 태원에 정주하여 대대로 변장(邊將)이 되었다. 이르기를 양무적(楊無敵)의 그 일파인지 아닌지도 역시 고증할 수 없다.
按:是地山勢麄雄,不見脫卸,而煞氣未除。兼以僻在萬山中,局甚逼窄,無龍虎明堂,不見外洋,不入俗眼。只是穴情一小窩可受,所謂璞中之玉,非哲師莫辨。傳疑楊無敵,宋初太原人。父信漢,麟州刺史。無敵名業,事劉崇,屢立戰功,時號無敵。太宗征太原,業勸其主繼禮降,以保生眾。太宗召見,以業為代州兼三交駐泊兵馬都部署,屢與契丹戰,被擒,不食而死。業不知書,忠烈武勇,有智謀,與士卒同甘苦,故士卒樂為之用。
안어(按語). 이 땅은 산세가 추광하고 웅장하여 층층의 박환탈탈의 흔적을 보아내지 못하고 살기가 아직 다 바래지지 않았다. 더하여 그것은 만산 가운데 외떨어져 있어 국면이 심히 핍측하여 용호사와 명당이 없고 바깥의 대국을 바라보지 못한다. 이 때문에 속인의 눈에 들지 않는다. 취할 수 있는 것은 다만 혈정 위의 그 한 개의 작은 굴이 생기를 승접할 수 있는 것이니, 바로 이른바 옥이 돌 속에 감추어져 고명한 스승이 아니면 분변해내지 못하는 것이다. 이하는 잠시 의설을 남긴 양무적의 사적이다. 양무적은 송 초의 태원 사람이다. 아버지 양신(楊信)은 후한 때 인주자사를 지냈다. 무적의 본명은 양업(楊業)인데 처음에 북한(北漢) 유숭(劉崇)을 섬겨 누차 전공을 세워 당시 사람들이 그를 「무적」이라 칭했다. 송 태종이 태원을 정토하자 양업이 그 군주 유계원(劉繼元)에게 예로써 귀항할 것을 권하여 뭇 사람의 생명을 보존하게 하였다. 태종이 소견한 후 양업을 대주자사 겸 삼교주박병마도부서(三交駐泊兵馬都部署)로 임명하였는데 그가 여러 번 거란과 교전하다가 뒤에 포로가 되어 단식하여 죽었다. 양업은 문묵에 통하지 않았으나 도리어 충렬하고 용무하며 심히 모략이 있어 사졸과 감고를 함께 하였다. 그러므로 사졸이 모두 기꺼이 그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
子延昭,太宗時以崇儀使知保州,屢敗契丹。後為商陽關副都部署,智勇善戰。契丹憚之,目為楊六郎。昭子文廣,從狄青南征,為廣西鈐轄,知宜、邕二州,英宗稱為名將。屢遷興州防禦使、秦鳳副總管。後徙定州,遷部軍都虞候。遼人爭地界,文廣獻陣圖,並取幽、燕策,未報而卒。其後世為邊帥。
그의 아들 양연소(楊延昭)는 태종 때 숭의사(崇儀使)의 신분으로 보주지주(保州知州)에 임명되어 여러 번 거란을 격파했다. 뒤에 상양관부도부서(商陽關副都部署)로 출임하여 지모가 있고 또 싸움을 잘하여 거란 사람들이 그를 두려워하여 그를 「양육랑(楊六郎)」이라 칭했다. 양연소의 아들 양문광(楊文廣)은 적청(狄靑)의 남정을 따라 광서령할(廣西鈐轄)에 임명되고 의주·옹주 두 주의 지주를 지냈으며 송 영종이 그를 명장이라 칭했다. 이후 여러 차례 승천하여 흥주방어사·진풍로부총관에 이르렀고 뒤에 또 정주로 옮겨 부군도우후(部軍都虞候)로 승임했다. 요 사람이 와서 지계를 다툴 때 양문광이 진도(陣圖)를 바치고 아울러 유주·연주를 수취할 방략을 진정하였으나 조정이 아직 회답하지 않았을 때 그가 세상을 떠났다. 그의 후대는 대대로 변강의 통수를 지냈다.
左地在豐城縣,土名堯坊筲箕窩,乃陸氏祖墓。其龍起自眞軍腦,沖天火星作祖而來。迢遞至堯坊,脫卸平崗,左棲右閃,逶迤活動。將入首,頓起走馬金星。數節大斷,起正體太陽金星,開口成大窩穴格。登穴視之,有似空曠粗大。殊不知逆水漲潮,妙在粗大。穴雖空曠,亦不足畏。下手廟山,收盡洋朝諸流之水,山川相等,四獸和平。陸氏葬後,人財聚發,時通公官侍御。夢麟侍御,夢豹主事;曰應川、曰策,登科甲,福祉未艾。
왼쪽 이 땅은 풍성현(豐城縣)에 있고 지명을 요방소기와(堯坊筲箕窩)라 하며 육씨(陸氏)의 조분이다. 그 용맥은 진군뇌(眞軍腦)에서 발원하여 한 좌의 충천의 화성을 조산으로 삼고 왔으며 멀리 이리하여 요방에 이르러 박환탈탈하여 평완한 산강(山崗)이 되어 홀연히 왼쪽 홀연히 오른쪽으로 천삽하고 섬짝거리며 위이하여 영활하다. 「입수」에 이르러려 할 때 한 좌의 주마금성(走馬金星)을 돈기하고 또 몇 마디의 큰 단속맥을 거쳐 한 좌의 정체태양금성(正體太陽金星)을 일으켜 앞을 향해 입을 열어 큰 와혈의 격국이 되었다. 혈장에 올라 한번 보면 마치 공활하고 조대한 듯 보이나, 특히 알지 못하리니 이 땅은 수류가 거슬러 와서 조하여 조수가 솟는 듯하여 묘처가 바로 조대한 데 있다. 그러므로 혈이 비록 공활하여도 또한 두려워할 만하지 않다. 하수(下手) 방향에 한 좌의 묘산(廟山)이 있어 바깥 바다에서 조하여 오는 각 길의 물을 모두 거두어들여 머물게 한다. 산과 물이 피차 균칭하고 사방의 호위산은 평화롭고 질서 있다. 육씨가 안장한 후 인정(人丁)과 재부가 함께 흥발하였다. 육시통(陸時通)이 관직이 시어사(侍御史)에 이르렀고 육몽린(陸夢麟)도 시어사를 지냈으며 육몽표(陸夢豹)는 주사(主事)를 지냈다. 이 밖에 육응천(陸應川)·육책(陸策)이 모두 과갑(科甲)에 합격했다. 복택이 지금까지 아직 쉬지 않았다.
右地在樂平縣南七十里,土名軍山。其龍來歷長遠,不詳述。將入局,平田廣野中崛起高山,勢侵雲漢,綿亙百餘里,雄冠一方。峰巒層疊,正脈中出,枝腳蕃衍。入首開大帳,帳中落脈,屈曲而下,走弄如蛇。抽出平崗,貼在邊帳之內。復起頂開窩結穴,窩中平淺如仰盤,弦稜圓整,天然可愛。兩掬彎抱有情,左臂一山逆抱過穴,為近案,以收大溪之水。隔溪遠山朝拱,四勢尊嚴,內堂緊夾,外洋寬暢,誠吉地也。取作漁翁撒網形,卯龍,庚酉向。許氏樂邑右族,而此地又許氏諸地之首稱。廖金精嘗讚美之曰:“行盡樂平路,無如許婆墓。”誠非虛譽。
오른쪽 이 땅은 낙평현 남쪽 칠십 리에 있고 지명을 군산(軍山)이라 한다. 그 용맥의 내력은 매우 멀어 여기서는 자세히 서술하지 않는다. 본국에 들어가려 할 때 평야 광야 가운데 돌연 한 좌의 높은 산이 일어나 기세가 곧장 구름 하늘에 꽂히고 면연하여 백여 리이며 한방에 웅거한다. 봉우리와 산줄기가 층층이 겹쳐 정맥이 가운데서 뽑혀 나오고 지각이 번연하여 많다. 「입수」의 곳에 이르러 큰 장을 벌리고 용맥이 장 속에서 떨어져 굽이쳐 내려가며 유주반요하기를 한 마리 뱀과 같이 하여 한 단락의 평평한 마루를 뽑아내어 가장자리 장 안에 바짝 붙었다. 이어서 또 한 좌의 산꼭대기를 일으켜 굴을 열어 혈을 맺었다. 굴 안이 평천하여 한 개의 거꾸로 놓인 쟁반과 같고 현릉이 원정하여 천연으로 가련하다. 좌우 양팔이 굽어 품어 정이 있고 왼쪽 팔의 그 산이 거꾸로 품어 혈 앞을 지나 가까운 안(案)을 당당하여 큰 시내의 물을 거두어들인다. 시내를 사이에 둔 먼 산이 앞으로 와서 조공하니 사면의 형세가 장엄하고 내명당이 긴주하며 외양이 넓게 열려 참으로 한 뙈기 길지이다. 이름을 지어 「어옹살망(漁翁撒網)」형이라 하고 묘방의 내용에 경유향(庚酉向)을 세웠다. 허씨(許氏)는 낙평현의 망족인데 이 땅은 또 허씨의 각처 분묘 가운데 가장 성명을 지은 것이다. 요금정이 일찍이 찬미하여 말하기를 「낙평의 길을 다 걸어도 허파의 무덤만한 것이 없다」고 하였으니 이것은 참으로 허예가 아니다.
葬後,自宋元以來,許氏出科第數十人,登仕籍者百餘人,且多忠貞節義雲。但穴後一水,春夏之交自帳上飛下,如瀑布百丈,乃白刃之象。此瀑布穴上不見,亦不聞聲,但自穴後飛下。故國初,許瑗以忠奮死節於太平府。太祖平定寰宇後,論功追封高陽候,是其應也。今人丁蕃衍,富貴未艾。按:瀑布泉乃如白刃之狀,宅墓俱不宜見,即吉地亦有兵刃之應。此水宜居水口間,謂之掛劍水,於內必有大地。如匡廬瀑布泉,乃西江水口也。
안장한 후 송·원 이래로 허씨는 수십 명의 등과한 사람을 배출하고 사적(仕籍)에 든 자가 백여 명이며 또한 충정절의의 선비가 많았다. 다만 혈 뒤에 한 줄기의 물이 있어 춘하가 교차할 때 장막 위에서 흘러날아 내려와 백 장의 폭포와 같으니 이것이 「백인(白刃)」의 상이다. 다행히 이 폭포는 혈 위에서 보이지도 않고 소리도 들리지 않으며 다만 혈 뒤에서 날아 떨어진다. 그러므로 본조 개국 초에 허원(許瑗)이 충분하여 분발하여 태평부(太平府)에서 순절하였다. 명 태조가 천하를 평정한 후 공을 논하여 그를 추봉하여 고양후(高陽侯)로 삼았으니 이것이 바로 그 폭포의 응험이다. 지금 허씨의 인정이 번연하고 부귀가 아직 쇠하지 않았다. 안어. 폭포천의 형상이 백인과 같으니 주택과 분묘가 모두 그것을 보아서는 안 되며 설령 길지라도 또한 도병(刀兵)의 응이 있다. 이런 물은 수구의 사이에 있는 것이 좋으니 그러면 곧 「괘검수(掛劍水)」라 부르고 그 안에 반드시 큰 땅이 있다. 예컨대 여산의 폭포천은 곧 서강의 수구에 해당한다.
右地在吾邑南門外五里,地名長塘。其龍與縣龍分脈後,起五星聚講,入局開五腦梅花帳,磊落數節,大斷穿田,起串珠金四座。又大斷走弄,三星結金星開口,成深窩穴格。窩既深,卻中垂微乳,穴安乳頭,賴公所下,取曰草蛇吐舌形。艮龍,扦癸山丁向。葬後,餘氏連登科甲,富貴雙全,迄今未艾。
오른쪽 이 땅은 우리 현성 남문 밖 오 리에 있고 지명을 장당(長塘)이라 한다. 그 용맥이 현성의 주용과 갈라진 후 먼저 「오성취강」을 일으키고 본국에 들어와 한 좌의 오뇌매화장(五腦梅花帳)을 벌리고 누락하여 기복하기를 몇 마디 하고 한 번의 큰 단절을 거쳐 밭을 지나가 네 좌의 꿰어진 구슬 같은 금성을 일으켰다. 다시 한 번 크게 끊기고 반요유주하여 세 좌의 성봉 뒤에 한 좌의 금성을 결성하여 앞을 향해 입을 열어 깊은 와혈의 격국이 되었다. 굴이 이미 깊은데 가운데 도리어 한 점의 미유를 처락하니 곧 혈을 유두 위에 안치했다. 이것은 납포의가 점한 곳으로 이름을 지어 「초사토설(草蛇吐舌)」형이라 한다. 간방의 내용에 계산정향(癸山丁向)을 세웠다. 안장한 후 여씨가 잇따라 과갑에 합격하여 부와 귀를 겸하여 얻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아직 쇠하지 않았다.
按:深窩格,窩既深,必有微乳,乃陽中又有陰,方有融結。否則,純陽無化氣,不能結穴,謂之空窩,葬之主絕人丁。但此等微乳,非哲師莫能辨。此地若以山勢星辰取形,全不類蛇。賴公乃命形曰“草蛇吐舌”,蓋全以穴情取之,其旨微矣妙矣。哲師之重穴如此,孰謂賴氏專於天星而不論形穴哉!
안어. 깊은 굴 이 격은 굴이 이미 깊으면 곧 반드시 한 점의 미유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비로소 「양 중에 또 음이 있다」이어야 능히 응결하여 혈을 이룬다. 그렇지 않으면 순양무음이어서 교감화생의 기가 없어 혈을 결성하지 못하니 「공와(空窩)」라 부른다. 장사하면 사람이 끊어짐을 주재한다. 다만 이런 미유는 지극히 세미하여 고명한 스승이 아니면 분변해내지 못한다. 이 땅을 만약 산세와 성체에 따라 형을 취하면 전혀 뱀과 비슷하지 않으나 납포의는 도리어 「초사토설」이라 명명하였으니 그것은 전연 혈정 위에서 착안하여 지은 이름이어서 용의가 정미하고 교묘하다. 고명한 스승이 혈을 중시하기가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누가 또 납씨는 다만 천성방위만을 강하고 형과 혈을 논하지 않는다고 말하겠는가.
以上開窩穴格,即廖金精開口穴也。姑附此數圖,以見其概。夫窩穴為穴法第一格,惟要大小深淺適得其宜,不可太小,不可太大,不可太深,不可太淺。大窩、深窩又須窩內有微乳微突,方有化氣。其小窩、淺窩,切有弦稜明白,兩掬彎抱,窩中平坦天然,此為融結得眞。如太小淺,恐開窩不明,又非眞結。務宜細察,不可潦草,慎之!慎之!
이상은 굴혈을 여는 각 격이니 곧 요금정이 말한 개구혈이다. 잠시 이 몇 폭의 그림을 붙여 그 대개를 보인다. 와혈은 혈법 가운데의 첫째 격으로 다만 대소심천이 모두 적절하기를 요구한다. 너무 작아서도 안 되고 너무 커서도 안 되며 너무 깊어서도 안 되고 너무 얕어서도 안 된다. 큰 굴과 깊은 굴은 또한 반드시 굴 안에 한 점의 미유 혹은 미돌이 있어야 비로소 교감화생의 기가 있다. 이르러 작은 굴과 얕은 굴은 반드시 현릉이 분명하고 좌우 양팔이 굽어 품으며 굴 가운데가 평탄하여 천연에서 나와야 비로소 참된 응결로 헤아린다. 만약 지나치게 작고 얕으면 굴을 여는 상이 드러나지 않을까 두려우니 그것도 역시 참된 결작이 아니다. 반드시 자세히 심찰하고 초솔하지 말아야 한다. 삼가 기억하라, 삼가 기억하라.
겸형(鉗形)의 혈을 논함
凡鉗中微有乳,宜就乳頭扦穴,忌乳頭峻急,腳下落槽。凡鉗中微有窩,宜就窩中扦穴。忌漏槽、貫頂、界水淋頭。鉗穴即廖氏開腳穴也。凡曰釵,曰虎口,曰合谷,曰夾穴,曰僊宮,曰單提、雙臂、單股、弓腳等形,皆鉗穴之異名耳。乃穴星開兩腳者也,平地高山皆有之。除星體另論外見穴星卷,而鉗之為形,凡八格,曰直鉗,曰曲鉗,曰長鉗,曰短鉗,曰雙鉗。此五者為正格。
그림 곁의 두 조 주어(注語)가 말한다. 무릇 겸구(鉗口) 가운데 미미하게 유형을 낸 것은 마땅히 유두에 붙여 하장하고 기피하는 것은 유두가 척준하고 급촉하며 발 아래가 물골로 떨어지는 것이다. 무릇 겸구 가운데 미미하게 굴이 있는 것은 마땅히 굴 속에 붙여 하장하고 기피하는 것은 「누조(漏槽)」(물골이 새어 빠짐)·「관정(貫頂)」(물이 꼭대기에서 곧장 솟음)과 「계수임두(界水淋頭)」이다. 이하는 본문이다. 겸혈은 곧 요금정이 말한 「개각혈(開脚穴)」이다. 무릇 채(釵)·호구(虎口)·합곡(合谷)·협혈(夾穴)·선궁(仙宮) 및 단제(單提)·쌍벽(雙臂)·단고(單股)·궁각(弓脚) 등등의 명목으로 부르는 것은 모두 지나지 않는 겸혈의 별칭이다. 그 모양은 혈성이 앞을 향해 두 갈래의 다리를 갈라 연다. 평지와 고산에 모두 있다. 성체의 분류는 따로 전권에서 토론한다(원주, 혈성권을 보라). 다만 겸의 형상에 대하여 말하면 모두 여덟 격이 있으니 직겸(直鉗)·곡겸(曲鉗)·장겸(長鉗)·단겸(短鉗)·쌍겸(雙鉗), 이 다섯 가지는 정격이다.
又有邊直邊曲,曰仙官;邊長邊短,曰單提;邊單邊雙,曰疊指。此三者為變格。八格各有二體,一是鉗中微有乳,乃乳穴之變來者,宜就乳頭插穴。要兩邊界水明白,頂頭圓正。切忌乳頭粗硬,腳下落槽,左右折陷,元辰直長。一是鉗中微有窩,乃窩形之變來者,宜就窩間扦穴。要弦稜分明,頂頭圓正。切忌漏槽、貫頂、界水淋頭,不可不審。
이 밖에 또 한쪽은 곧고 한쪽은 굽은 것이 있어 「선관(仙官)」이라 부르고, 한쪽은 길고 한쪽은 짧은 것을 「단제(單提)」라 부르며, 한쪽은 홑이고 한쪽은 겹인 것을 「첩지(疊指)」라 부른다. 이 세 가지는 변격이다. 여덟 격은 각각 두 가지 체식이 있다. 한 가지는 겸구 가운데 미미하게 유형을 낸 것이니 그것은 유혈로부터 변화하여 온 것이니 마땅히 유두에 붙여 하장한다. 양변의 「계수」가 분명하고 꼭대기가 원정함을 요구하며 삼가 꺼리는 것은 유두가 조경하고 발 아래가 물골로 떨어지며 좌우가 함몰하고 혈 앞의 「원진수(元辰水)」가 곧바로 길게 쏟아지는 것이다. 다른 한 가지는 겸구 가운데 미미하게 굴이 있는 것이니 그것은 와형으로부터 변화하여 온 것이니 마땅히 굴 가운데에 붙여 하장한다. 굴 입구의 현릉이 분명하고 꼭대기가 원정함을 요구하며 삼가 꺼리는 것은 누조·관정과 계수임두이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세찰하지 않을 수 없다.
八格之形,又各有俯仰不同。身俯則須微乳,面仰多是微窩,葬同前推。廖氏云 “凡開腳之穴,靈光向內而潛藏,餘氣貼身而護衛,左右或有不齊,上下初無二用,所以謂之吉穴”是也。大要頂上端圓,鉗中藏聚,弓腳必須逆水,單股切忌直長。最怕漏槽貫頂,界水淋頭,元辰傾瀉,堂水卷廉。
여덟 격의 형상은 또 각각 부·앙의 구별이 있다. 산 몸이 앞을 향해 엎드린 것은 겸 가운데 마땅히 미유가 있어야 하고, 산 면이 위를 향해 우러른 것은 겸 가운데 대부분 미와(微窩)이다. 하장의 방법은 앞에서 말한 것과 같아 유추할 수 있다. 요금정이 말하는 「무릇 발을 연 혈은 영광이 안을 향해 잠장하고 여기가 몸에 붙어 호위하며, 좌우가 혹 고르지 않아도 상하는 처음부터 두 쓰임이 없으니, 이 까닭에 이를 길혈이라 한다」――영수의 기가 안을 향해 잠장하고 여분의 기가 산 몸에 붙어 호위를 당당하며 좌우 두 다리가 때로 길고 짧아 고르지 않아도 상하로 서로 이어 쓰는 법이 시종 일치하므로 길협이라 칭한다. 총괄적인 요구는 꼭대기가 단정하고 혼원하며 겸 가운데 기를 감추어 견디고, 활 같은 다리가 반드시 수세를 거슬러 도회(兜回)하며, 홑다리 한쪽은 삼가 곧고 김을 꺼린다.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누조·관정·계수임두·원진수가 경사하여 곧장 나가는 것과 명당의 물이 반대로 말려 가는 것(「권렴(卷簾)」)이다.
《經》曰:“鉗穴如釵掛壁隈,惟嫌頂上有水來。釵頭不圓多破碎,水傾穴內必生災。”吳公《秘訣》云“鉗穴元辰多不收,莫教直瀉退田牛。明堂融聚財砂遶,定有榮名播九州島”是也。又有橈棹之間、枝葉之內、界水之中,多有直鉗,謂之假鉗、虛鉗,務須詳辨。如誤下之,主退敗資財,多出疾病幼孤老寡,隨以絕滅,不可不慎。若後龍眞的,入首明白,星辰合格,證佐分曉,此穴最貴。
『장경』에 이르기를 「겸혈은 채(釵)가 벽 모퉁이에 걸린 듯하니, 다만 꼭대기에 물이 오는 것을 꺼린다. 채의 머리가 둥글지 않고 깨진 것이 많으면 물이 기울어 혈 안에 들어가면 반드시 재앙을 생한다」――겸혈의 형태는 옥채가 벽 모퉁이에 걸린 것과 같아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꼭대기에 물이 쏟아져 내리는 것이다. 채의 머리가 둥글지 않고 깨진 것이 많으면 물이 한번 혈 안에 기울어 들어가면 반드시 재화를 생한다. 오경란의 『비결』에 이르기를 「겸혈의 원진은 대부분 거두지 못하니 곧장 쏟아내어 전우(田牛)를 물러나게 하지 마라. 명당이 융취하고 재사(財砂)가 에워싸면 반드시 영명이 구주에 퍼질 것이다」――겸혈의 원진수는 대부분 수습하여 머물지 못하니 삼가 그것을 곧장 쏟아내게 하지 마라. 그러면 전산을 쇠퇴하게 한다. 만약 명당이 기를 모으고 재사가 에워싸면 곧 반드시 영명이 구주에 전파된다(저본은 「구주」가 잘못 번연하여 「구주도」가 되었으나 그대로 옮겨 적는다). 그 밖에 「요도」의 지각 사이와 가지잎 속과 계수 가운데에도 종종 곧은 겸의 모양이 나타나니 그것을 「가겸(假鉗)」·「허겸(虛鉗)」이라 부른다. 반드시 자세히 분변하라. 만약 잘못하여 그 가운데 장사하면 집 재물이 쇠퇴하고 질병을 많이 내며 또한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은 고아와 과부를 지키는 늙은 여인을 내고 뒤이어 곧 대가 끊어짐을 고하니 신중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뒤의 내용이 진확하고 입수가 청초하며 성체가 합격하고 좌증이 분명하면 그러면 겸혈은 가장 존귀하다.
鉗形八格:直鉗、曲鉗、短鉗、長鉗、雙鉗,以上五者正格也;邊曲邊直鉗、邊長邊短鉗、邊單邊雙鉗,以上三者,變格也。直鉗圖 曲鉗圖 長鉗圖 短鉗圖 凡直鉗者,左右兩腳皆直也。兩腳既直,切忌長硬,須是婉媚短小為佳。若近前有案橫攔為美。大要頂上端圓,鉗中藏聚,方為合格。若兩腳直長,拖拽太重,而上不周正,下復陡瀉,內氣既傾,外無闌截,則非融結,不可下也。凡曲鉗者,左右兩腳彎曲抱內也。兩腳既曲,最要彎如牛角,弓抱穴場,左右交牙猶妙。大要頂上端圓,鉗中藏聚,方為合格。若兩腳雖曲,頂不端圓,界水淋頭,則非眞結,不可下也。
겸형 팔격은 직겸·곡겸·단겸·장겸·쌍겸이니 이 다섯 가지를 정격으로 하고, 변곡변직겸·변장변단겸·변단변쌍겸이니 이 세 가지를 변격으로 한다. 이하 네 폭의 도제는 「직겸도」·「곡겸도」·「장겸도」·「단겸도」이고 저본의 도형은 이미 일하여 겨우 도제와 격마다의 설명만 남았다. 먼저 직겸을 말한다. 이른바 직겸은 좌우 두 다리가 모두 곧바르다. 두 다리가 이미 곧으면 곧 삼가 길고 딱딱함을 꺼려 마땅히 유완하고 짧고 작은 것이 좋다. 만약 가까운 앞에 안산이 가로막고 있으면 더욱 아름답다. 총괄적인 요구는 꼭대기가 단정하고 혼원하며 겸 가운데 기를 감추어 견디면 비로소 합격으로 삼는다. 만약 두 다리가 또 곧고 또 길며 끌려 나간 것이 지나치고 위가 또 주정하지 않으며 아래가 또한 돌연 경사하여 내기가 이미 기울어 빠지고 밖에 또 차란수속이 없으면 그것은 참된 결작이 아니니 하장할 수 없다. 다시 곡겸을 말한다. 이른바 곡겸은 좌우 두 다리가 굽어 안을 향해 환포한다. 두 다리가 이미 굽으면 가장 긴요한 것은 굽기가 쇠뿔과 같이 하여 활 몸이 혈장을 품어 안는 것이다. 만약 좌우 두 다리가 또한 능히 이빨처럼 교착하여 맞물리면 그것은 더욱 묘하다. 마찬가지로 꼭대기가 단정하고 혼원하며 겸 가운데 기를 감추어 견디면 비로소 합격으로 삼는다. 만약 두 다리가 비록 굽지만 꼭대기가 도리어 단정하고 혼원하지 않고 또 계수가 꼭대기에서 내려 적시면 그것은 참된 결작이 아니니 하장할 수 없다.
凡長鉗者,左右兩腳皆長也。兩腳既長,切忌直硬,亦不可太長,太長則元辰直瀉,牽動土牛。須是長得其宜,而婉媚為佳。惟近有低案橫抱,則不忌長。大要頂上周圓,鉗中藏聚,方為合格。若兩腳長硬,元辰傾瀉,內氣不收,外復曠野,則無融結,不可下也。
이른바 장겸은 좌우 두 다리가 모두 길다. 두 다리가 이미 길면 곧 삼가 곧고 딱딱함을 꺼리고 또한 지나치게 길어서도 안 된다. 너무 길면 곧 혈 앞의 원진수가 곧바로 쏟아져 달아나 지기를 견동하여 밖으로 흐르게 한다. 길이가 길되 적당하고 또한 자태가 유완한 것이 좋다. 다만 한 가지 예외가 있으니 가까운 앞에 만약 낮은 안산이 가로로 품고 있으면 그것은 김을 꺼리지 않는다. 총괄적인 요구는 꼭대기가 주정하고 혼원하며 겸 가운데 기를 감추어 견디면 비로소 합격으로 삼는다. 만약 두 다리가 또 길고 또 딱딱하며 원진수가 경사하여 나가고 내기가 수습되어 머물지 못하며 밖이 또 한 편의 광야이면 그것은 결작이 없으니 하장할 수 없다.
凡短鉗者,左右兩腳皆短也。不宜太短,太短則護穴不過,開腳不眞。須是短得其中,或外有抱衛,方為合格。若短不護穴,至於漏胎。若外無包裹,穴必孤寒。兼以星頭峻急,或不周圓,皆非眞結。況短鉗之穴,最忌粗大。惟嫩巧婉媚,頭面光彩,四應有情為美。若反此則無融結,不可下也。
이른바 단겸은 좌우 두 다리가 모두 짧다. 다만 너무 짧은 것을 꺼린다. 너무 짧으면 곧 혈을 호위하지 못하고 「개각」의 상도 또한 참이 아니다. 짧음이 짧되 적중하거나 혹은 밖에 따로 산이 와서 환포하여 호위하면 비로소 합격으로 삼는다. 만약 짧아져서 혈을 호위하지 못하면 곧 「누태(漏胎)」――태식의 기가 밖으로 샌다. 만약 밖에 또 포포가 없으면 혈이 곧 반드시 고단하고 한박하다. 거기에 더하여 성봉의 머리가 척준하고 급촉하거나 혹은 주정하고 혼원하지 못하면 그것은 모두 참된 결작이 아니다. 하물며 단겸의 혈은 가장 조대를 꺼려 오로지 눈교하고 유완하며 두면(頭面)이 광윤하고 사방이 조응하여 정이 있어야 비로소 아름다움으로 삼는다. 만약 이와 상반하면 곧 결작이 없으니 하장할 수 없다.
凡直鉗、長鉗,皆緊夾貼身,入穴抱掬有情。不似龍虎推車,長直無情之比,方為眞格。雙鉗圖一 雙鉗圖二 雙鉗圖三 此兩邊齊對,一長一短,不相閗競,乃為吉。 此兩宮弓抱,一前一後,穿牙護穴,不相尖射,乃為吉。 此內兩臂甚短小,名曰夾勢,忌其尖射,名曰夾刃,凶也。
무릇 직겸·장겸은 두 다리가 모두 빈빈히 협호하여 산 몸에 붙고 나아가 혈 앞에 이를 때 능히 환포하여 도구(兜掬)하고 정이 있음을 나타내며, 「용호추차(龍虎推車)」처럼 또 길고 또 곧아 조금의 정의도 없는 것과 비슷하지 않아야 비로소 참된 격으로 삼는다. 이하 세 폭의 도제는 「쌍겸도 일」·「쌍겸도 이」·「쌍겸도 삼」이고 저본의 도형은 이미 일하여 겨우 도제와 각 그림의 설명만 남았다. 첫째 폭은 양변이 가지런히 서로 대하고 하나는 길고 하나는 짧으며 피차 다투지 않으니 이는 길하다. 둘째 폭은 양측의 다리가 활처럼 굽어 서로 품고 하나는 앞 하나는 뒤여서 이빨이 교착한 듯 혈장을 호위하고 피차 뾰족한 뿔로 서로 쏘지 않으니 이는 길하다. 셋째 폭은 안쪽의 그 두 갈래 팔뚝이 심히 짧고 작아 「협세(夾勢)」라 부른다. 다만 그것들이 뾰족한 뿔로 서로 쏘는 것을 삼가 꺼려야 하니 그러면 「협인(夾刃)」이라 부르니 이는 흉하다.
凡雙鉗者,兩腳左右皆生雙枝者也。或三或四以上皆同。但鉗多必須交牙為美,否則元辰太長,眞氣不聚。凡雙鉗之格,有三體。有左右皆雙到者,要彎曲有情,不成相閗。有左右一前一後到者,要交牙弓抱,不相尖射。有內兩臂短小者,廖氏謂之夾勢。不可尖射,尖射則為夾刃。夾勢貴,夾刃凶。宜用工鋤去尖利,作馬蹄形則吉。大抵雙鉗,宜左右相護交牙,方為合格。若兩宮對射,或閒曠不交,皆非吉穴,不可謂其合雙鉗而用之也。
이른바 쌍겸은 좌우 두 다리가 각각 또 두 갈래의 가지를 낸 것이다. 세 갈래·네 갈래 내지 더 많은 것을 내도 도리가 같다. 다만 겸각(鉗脚)이 한번 많으면 반드시 피차 교착하여 맞물려야 아름답다. 그렇지 않으면 원진수의 길이 너무 길어 진기가 모이지 못한다. 쌍겸 한 격에는 모두 세 가지 체식이 있다. 한 가지는 좌우가 모두 겹을 이루어 오는 것이니 굽어 정이 있고 서로 다투지 않아야 한다. 한 가지는 좌우가 하나는 앞 하나는 뒤로 오는 것이니 교착하여 활처럼 품고 뾰족한 뿔로 서로 쏘지 않아야 한다. 한 가지는 안쪽의 그 두 갈래 팔뚝이 짧고 작은 것이니 요금정이 이를 「협세」라 칭한다. 역시 뾰족한 뿔로 서로 쏘아서는 안 되니 한번 서로 쏘면 곧 「협인」이 된다. 협세는 귀를 주재하고 협인은 곧 흉하니 이 때 마땅히 공사하여 뾰족한 곳을 깎아 없애고 마제형(馬蹄形)으로 수성하면 곧 길하다. 대체로 쌍겸은 마땅히 좌우가 서로 호위하고 교착하여 맞물려야 비로소 합격으로 삼는다. 만약 양측이 뾰족한 뿔로 마주 보고 서로 쏘거나 혹은 공활하게 흩어져 서로 맞물리지 않으면 모두 길혈이 아니니 그것이 「쌍겸」이라는 이름에 부합한다고 해서 망령되이 사용할 수 없다.
鉗形變格 邊曲邊直圖 邊長邊短圖 邊單邊雙 此右曲左直,名曰右仙官,亦曰右官腳。 此左曲右直,名曰左仙宮,亦曰左官腳。 此右長左短,名曰左單提。 此左長右短,名曰左單提。 此右雙左單鉗穴,名曰右疊指。 此左雙右單鉗穴,名曰左疊指。
이하는 겸형의 변격이니 세 폭의 도제는 각각 「변곡변직도」·「변장변단도」·「변단변쌍」이고 저본의 도형은 이미 일하여 겨우 도제와 여섯 조의 도주만 남았다. 도주는 차례로, 오른쪽이 굽고 왼쪽이 곧바른 것을 「우선관(右仙官)」이라 하고 또한 「우관각(右官脚)」이라고도 하며, 왼쪽이 굽고 오른쪽이 곧바른 것을 「좌선궁(左仙宮)」이라 하고 또한 「좌관각」이라고도 하며, 오른쪽이 길고 왼쪽이 짧은 것을 「좌단제(左單提)」라 하고, 왼쪽이 길고 오른쪽이 짧은 것도 「좌단제」라 하며(두 조의 도주 원문이 이와 같으니 한 이름이 겸하여 두 식을 가리킨다), 오른쪽이 겹을 이루고 왼쪽이 홑줄기인 겸혈을 「우첩지(右疊指)」라 하고, 왼쪽이 겹을 이루고 오른쪽이 홑줄기인 겸혈을 「좌첩지」라 한다.
此鉗之左右不均,邊曲邊直者。廖氏名曰弓腳,乃左右之腳,或左曲右直,或右曲左直。亦名仙宮。必須曲股逆水,乃為合格。若曲股順水,加以尖利走竄,最為不吉。卜氏云:“東宮竄過西官,長房敗絕;右臂尖射左臂,幼子貧寒。”極驗,不可下也。
이 한 식은 겸의 좌우가 고르지 않고 한쪽은 굽고 한쪽은 곧바른 것이다. 요금정이 그것을 「궁각」이라 부르니 좌우 두 다리가 혹은 좌곡우직이거나 혹은 우곡좌직인 것을 가리켜 또한 「선궁」이라고도 한다. 그것은 반드시 굽는 그 한 줄기를 수세를 거슬러 도회하게 해야 비로소 합격으로 삼는다. 만약 굽는 한 줄기가 물을 따라 달아나고 거기에 더하여 다리 머리가 뾰족하고 달아나고 달리는 형세가 있으면 그것은 가장 불길하다. 복응천이 말하기를 「동궁(東宮)이 서관(西官)을 달아나 지나가면 장방(長房)이 패절하고, 우파(右臂)가 뾰족하게 좌파를 쏘면 유자(幼子)가 빈한하다」――왼쪽의 사(砂)가 오른쪽으로 달아나 지나가면 장방이 곧 쇠락하여 대가 끊어지고, 오른쪽 팔이 뾰족한 뿔로 왼쪽 팔을 쏘면 어린 아들이 곧 빈한하다. 이 말이 지극히 영험하니 이런 형세를 만나면 하장할 수 없다.
此鉗之左右不均,邊長邊短者。廖氏名曰單股,乃左右之腳,或左長右短,或左短右長。亦謂之單提。必須長股逆水,方為合格。若長股順水,則非吉穴。此鉗之左右不均,邊單邊雙者。廖氏名曰疊指,乃左右之腳,或左單右雙,或右單左雙是也。雖其左右單雙不均,卻要穴上見其均勻為佳。又須雙邊逆水,外股長曲弓抱,方為合格。若長枝順水,有飛走之勢,不可下也。此穴形類疊指,主人戲樂無度,愛賭博。然龍眞穴的,決不破家。直至龍盡氣止,福力已竭,亦以賭錢而敗。主生六指之人。
이 한 식은 겸의 좌우가 고르지 않고 한쪽은 길고 한쪽은 짧은 것이다. 요금정이 그것을 「단고(單股)」라 부르니 좌우 두 다리가 혹은 좌장우단이거나 혹은 좌단우장인 것을 가리켜 또한 「단제」라고도 한다. 그것은 반드시 긴 그 한 줄기를 수세를 거슬러 도회하게 해야 비로소 합격으로 삼는다. 만약 긴 한 줄기가 물을 따라 내려가면 곧 길혈이 아니다. 또 한 식은 겸의 좌우가 고르지 않고 한쪽은 홑줄기이고 한쪽은 겹줄기인 것이다. 요금정이 그것을 「첩지」라 부르니 좌우 두 다리가 혹은 좌단우쌍이거나 혹은 우단좌쌍인 것을 가리킨다. 비록 좌우의 홑겹이 고르지 않으나 도리어 혈 위에 서서 보기에 균일하게 나타나기를 요구한다. 또한 겹을 이루는 그 한쪽이 역수하고 바깥쪽 한 줄기가 길고 굽어 활처럼 품어 와야 비로소 합격으로 삼는다. 만약 긴 지각이 물을 따라 가서 날아 달아나는 형세를 띠면 곧 하장할 수 없다. 이런 혈은 형상이 겹쳐진 손가락과 같아 사람이 놀기를 탐하여 법도가 없고 도박을 좋아함을 주재한다. 다만 용이 참이고 혈이 참이면 끝내 집을 깨지 않고 곧장 용맥이 다 걷히고 지기가 쉬고 복력이 소모될 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여전히 도박으로 인하여 쇠락한다. 이 격은 또한 손가락이 여섯인 사람을 낳음을 주재한다.
凡鉗穴,各有二體。一是鉗中微有乳,一是鉗中惟有窩。其鉗之曲直長短等格,又各有左右轉金、轉火、轉水、轉木、轉土,及一腳轉金,一腳轉木,一腳轉水,一腳轉火,一腳轉土,凡二十五格,及帶曜穴格,各與前窩穴相類。圖繁不載,學者例推之可也。鉗穴名地諸圖附後。
무릇 겸혈은 모두 각각 두 가지 체식이 있다. 한 가지는 겸 가운데 미미하게 유형을 내고, 한 가지는 겸 가운데 다만 한 개의 굴만 있다. 겸의 곡·직·장·단 등 각 격은 또 각각 좌우 두 다리가 함께 금형으로 돌거나 함께 화형으로 돌거나 함께 수형으로 돌거나 함께 목형으로 돌거나 함께 토형으로 도는 구별과, 한 다리는 금으로 돌고 다른 한 다리는 목으로·수로·화로·토로 도는 따위의 배합이 있어 모두 스물다섯 격이다. 이 밖에 또 「요기」를 띤 각종 혈격이 있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앞에서 와혈을 강할 때의 구분법과 비슷하다. 그림이 너무 번번하므로 다시 간재하지 않으니 배우는 자는 예에 의하여 유추하면 그만이다. 겸혈의 명지 여러 그림은 뒤에 붙인다.
右地在京山縣南二十里,土名歐家沖。其龍來遠,不詳述。入局起御屏土星,正脈中落,逶迤數節,到頭復束氣,起金星,開鉗結穴。鉗腳掬抱,彎曲有情。下吐餘氈平坦,明堂田源之水特朝。前沙天馬、貴人、旗鼓、排衙羅列,水口交固,而兌峰卓立特秀,乃催貴之地。王氏葬御史虹塘公,宗茂公女配太史李公維楨,以茂齡膺誥封,是其應也。今福祉方隆。凡巽、離、兌三位之峰特秀者,主出女貴。此地兌峰獨秀,甲於群山,故女貴應之。
오른쪽 이 땅은 경산현(京山縣) 남쪽 이십 리에 있고 지명을 구가충(歐家冲)이라 한다. 그 용맥이 온 것이 매우 멀어 여기서는 자세히 말하지 않는다. 본국에 들어와 먼저 한 좌의 어 병풍 같은 토성을 일으키고 정맥이 가운데서 내려와 위이하여 몇 마디 하고 끝에 이르러 또 수속하여 기를 이루며 한 좌의 금성을 일으켜 앞을 향해 겸을 열어 혈을 맺었다. 겸각이 도포(兜抱)하여 환공하고 굽어 정이 있다. 혈 아래에 한 편의 평탄한 여전(餘氈)을 토출하고 명당 속 전원의 물이 특별히 와서 조한다. 앞면의 사산에 천마·귀인·기고 등의 형상이 있어 아역이 반을 배열한 듯 나열되고 수구가 교착하여 긴고하다. 그리고 서방 태위(兌位)의 산봉이 탁연히 우뚝 서고 격외로 수려하니 이것은 귀기를 최발하는 땅이다. 왕씨가 어사(御史) 무당공(虹塘公)을 여기에 장사하고 뒤에 종무공(宗茂公)의 딸이 태사(太史) 이유정(李維楨)에게 시집가 나이가 심히 어려서 고봉(誥封)을 받았으니 이것이 바로 그 응험이다. 지금 복택이 바야흐로 흥한다. 무릇 손(巽)·리(離)·태(兌) 세 방위의 산봉이 격외로 수려한 것은 현귀한 여자를 낳음을 주재한다. 이 땅은 홀로 태봉이 가장 수려하여 뭇 산에 우뚝하니 그러므로 여귀(女貴)에 응한다.
左地在承天府北四十里,地名老人倉。龍遠不述。入局平崗開帳過峽,牽連如浪湧,擺折活動。入首成太陰金星,開兩鉗結穴。頂圓而鉗腳直夾,細嫩嫵媚。穴下平坦如掌心,四勢和平。葬後第四代出端愍公,大節登進士,官至兵部左侍郎,贈尚書。今世宦未艾。
왼쪽 이 땅은 승천부(承天府) 북쪽 사십 리에 있고 지명을 노인창(老人倉)이라 한다. 용맥이 온 것이 멀어 여기서는 서술하지 않는다. 본국에 들어온 후는 한 단락의 평완한 산마루로 장을 벌리고 협을 지나 견련하여 기복하기가 파랑이 용동하는 듯하고 절추전절하여 영활하다. 「입수」의 곳에 이르러 한 좌의 태음금성을 이루고 앞을 향해 두 겸을 열어 혈을 맺었다. 성정(星頂)이 혼원하고 두 갈래의 겸각이 곧바로 협호하며 형체가 세눈하고 무미하다. 혈 아래가 평탄하기가 손바닥과 같고 사면의 형세가 화평하고 균칭하다. 안장한 후 제사대(第四代)에 단민공(端愍公)을 배출하여 대절로 이름이 났고 진사에 급제하여 관직이 병부좌시랑(兵部左侍郞)에 이르고 죽은 후 상서를 추증받았다. 지금 이 집안은 여전히 대대로 벼슬하여 아직 쇠하지 않았다.
左地在莆田城北一里。其龍分府幹旺氣,奔騰磊落。入首起金星,開鉗結穴。後坐九華,前對壼山,穴甚尊貴。但兩鉗既長,前鋪餘土,壅塞內堂。葬後三代,偶去穴前之土,二泉公澄源即登會魁,官至方伯。今人文濟濟,福祉未艾。按:是地龍旺穴秀,撞脈安棺,極善。去其餘土,亦天啟其衷耳。造化福善,豈偶然哉!
왼쪽 이 땅은 포전성(莆田城) 북쪽 일 리에 있다. 그 용맥은 부성 간룡의 왕기에서 갈라져 분등누락하여 와서 「입수」의 곳에 이르러 한 좌의 금성을 일으켜 앞을 향해 겸을 열어 혈을 맺었다. 배후는 구화산(九華山)을 등지고 앞면은 호산(壺山)을 대하여 혈의 자리가 십분 존귀하다. 다만 두 갈래의 겸각이 이미 길고 혈 앞에 또 여분의 흙을 쌓아 깔아 내명당을 옹색하게 하였다. 안장한 후 삼대를 지나 우연히 혈 앞의 그 흙더미를 제거하니 이천공(二泉公) 정징원(鄭澄源)이 곧 회시 제일에 급제하여 관직이 방백(方伯, 포정사)에 이르렀다. 지금 이 집안은 인재가 제제하고 복택이 아직 쉬지 않았다. 안어. 이 땅은 용기가 왕하고 혈형이 수려하며 또한 맥기에 부딪혀 관목을 안치하여 지극히 타당하다. 이르러 여분의 흙을 제거한 것도 역시 하늘이 주인의 심의를 계발한 것이다. 조화가 선인에게 복을 내림이 어찌 우연이겠는가.
右地在興化府治南三里。其龍分府龍之旺,磅礴綿亙,氣勢雄偉。比入首,大斷穿田,變為平岡。枝腳均勻合格,結倒地木星節包之穴。開鉗明白,兩掬微茫高尺許,彎抱有情。穴上吐出氈唇,證佐分曉。明堂融聚,水口一墩,關鎖交固,誠美地也。葬後,出梅峰公珩,登進士,官方伯。子曰士賓,登會魁,官正郎。孫荊坡公九金,以少年登嘉靖戊辰進士,累任僉憲。人才迭出,富貴方隆。
오른쪽 이 땅은 흥화부아(興化府衙) 남면 삼 리에 있다. 그 용맥은 부성 주용의 왕기에서 갈라져 방박면연하고 기세가 웅위하다. 「입수」에 이르러려 할 때 한 번의 큰 단절을 거쳐 밭을 지나 평완한 산마루로 변하고 지각이 균일하여 합격하며 한 개의 「도지목성(倒地木星)」의 절포혈(節苞之穴)을 결성했다. 겸을 여는 형상이 분명하고 좌우 양팔이 다만 은약하여 한 자 남짓 높이 나왔으나 도리어 굽어 품어 정이 있다. 혈 위에 여전과 입술(氈唇)을 토출하고 각종 좌증이 청초하다. 명당이 기를 모으고 수구에 한 좌의 토돈(土墩)이 있어 관쇄가 교고하여 엄밀하니 참으로 한 뙈기 좋은 땅이다. 안장한 후 매봉공(梅峰公) 방형(方珩)을 배출하여 진사에 급제하고 관직이 방백에 이르렀다. 그의 아들 방사빈(方士賓)이 회시 제일에 급제하여 관직이 정랑(正郞)에 이르렀고 손자 형파공(荊坡公) 방구금(方九金)은 소년 때 곧 가정 무진과 진사에 급제하여 첨도어사(僉都御史)를 역임했다. 인재가 대대로 나와 부귀가 바야흐로 흥성하다.
右地在臨海縣西南五里。其龍發自望海峰左枝,頓起大帳。中有沖天木星,番身轉換,抽出水木,連行數節。兩畔送從齊來。中脈跌斷過峽,有扛夾。再起大帳,落脈做穴,開鉗分明,坐辰向戌,乘幹氣入首。前案如屏如幾,逆水有情。大江橫繞,隔江幘山挺然,臨江雙塔秀異。明堂平坦,又有小水交鎖。登穴觀之,諸峰逞異,雖俗眼亦知其吉地。蓋陽龍陽向,結成陽局,形勢雄勇,力量必大,此其證也,孰謂辰戌可棄諸?但要避其金氣為妙耳。
오른쪽 이 땅은 임해현(臨海縣) 서남 오 리에 있다. 그 용맥은 망해봉(望海峰)의 좌측 한 가지에서 나와 한 좌의 큰 장을 돈기했다. 장 속에 한 좌의 충천목성이 있어 몸을 뒤집어 방향을 전환하고 수성·목성이 서로 섞인 맥을 뽑아내어 연행하여 몇 마디 하니 양측의 호송산이 머리를 나란히 하고 나아간다. 중맥이 첩단하여 협을 지나고 양옆에 짊어지고 협은 산의 호지가 있다. 다시 한 좌의 큰 장을 일으켜 맥을 내려 혈을 만들었으니 겸을 여는 형상이 분명하다. 이 혈은 진(辰)에 앉고 술(戌)을 향하여 건방(乾方)의 기를 승접하여 입수한다. 앞면의 안산이 병풍과 같고 안(案)과 같아 수세를 거슬러 오니 심히 정이 있다. 큰 강이 혈 앞을 가로로 휘돌고 강을 사이에 두고 책산(幘山)이 우뚝 서며 강에 임한 두 좌의 탑이 더욱 수이하다. 명당이 평탄하고 또 작은 물이 교착하여 쇄호한다. 혈장에 올라 보면 뭇 봉우리가 각각 이상한 태도를 뽐내어 바깥 사람이라도 한 뙈기 길지임을 보아낸다. 이것은 양용이 양향을 배하여 양국(陽局)을 결성하고 형세가 웅장하고 용맹하여 역량이 반드시 심히 크기 때문이니 이 땅이 곧 밝은 증거다. 누가 진·술 두 방위는 마땅히 일괄 버려야 한다고 말하겠는가. 다만 요령 있게 그 가운데의 금기를 피하면 비로소 묘하다.
四金者,辰戍丑未是也。辰有亢金,戍有婁金,丑有牛金,未有鬼金。乘氣分金,必避此亢、婁、牛、鬼之度。然天度五行,又有微妙。四金宿間,復有屬土屬水者,尤為吉度,不可一概謂金氣也。故丑未勝於辰戍。辰戍亦有大吉之度,必眞傳者能知之,能用之耳。此台州王車溪公墓,出五代連登進士。石樑公官太守。曰王宗,會魁、進士,官知府。曰文,進士,官參政。曰冕,鄉魁。曰願,刑部員外。曰璘,進士。曰度,進士、知府。曰胤東、曰亮,進士。福祉未艾。
이른바 「사금(四金)」은 진·술·축·미 네 방위를 가리킨다. 진위에는 항금룡(亢金龍)이 있고 술위에는 누금구(婁金狗)가 있고 축위에는 우금우(牛金牛)가 있고 미위에는 귀금양(鬼金羊)이 있다. 지기를 승접하고 좌도(坐度)를 나누어 정할 때 반드시 항·루·우·귀 이 몇 수(宿)가 차지하는 도수(度數)를 피해야 한다. 다만 천상 도수가 배하는 오행에 또 따로 미묘한 곳이 있다. 이 네 금수(金宿)의 사이에 여전히 토에 속하고 수에 속하는 도수가 끼어 있으니 그것은 도리어 가장 길한 도이니 일괄하여 금기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므로 축·미 두 자리는 진·술 두 자리에 비해 좋다. 그리고 진·술 가운데에도 역시 대길의 도수가 있어 다만 참전을 얻은 사람만이 알고 쓸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태주 왕거계공(王車溪公)의 분묘인데 잇따라 오대가 모두 진사를 배출했다. 석량공(石梁公)은 관직이 태수에 이르렀고 왕종중(王宗中)은 회시 제일에 진사가 되어 관직이 지부에 이르렀으며 왕문성(王文成)은 진사로 관직이 참정(參政)에 이르렀고 왕면(王冕)은 향시 제일에 합격했고 왕원(王愿)은 형부원외랑이 되었고 왕린(王璘)은 진사가 되었고 왕도(王度)는 진사가 되어 지부가 되었고 왕윤동(王胤東)·왕량(王亮)도 모두 진사가 되었다. 복택이 지금까지 아직 쉬지 않았다.
右地在龍泉縣東北三里。其龍分縣龍旺氣,開帳過峽,連起三節金星,即結二穴,皆吉。而右為正穴,乃御史父地。左穴其祖也,曜氣發揚,不利初年。葬後稍不吉,三十年後出貴,大旺,主顯貴鉅富,今福祉方亨。按:是地也,龍分縣脈旺氣,開帳過峽,數節結穴,穴情明白,曜氣發揚,誠吉地也。左穴力差輕。右為正穴,其葬未久,福祉猶未發越。御史公名元啟,號文峰。
오른쪽 이 땅은 용천현(龍泉縣) 동북 삼 리에 있다. 그 용맥은 현성 주용의 왕기에서 갈라져 장을 벌리고 협을 지나 잇따라 세 마디의 금성을 일으키고 곧 두 개의 혈을 결성했는데 모두 길혈이다. 그 가운데 오른쪽은 정혈이니 장사한 것은 어사의 아버지이고 왼쪽의 그 혈에는 그의 할아버지를 장사했는데 「요기」가 발로하여 드러나므로 처음 몇 해는 불리하여 안장한 후 약간 순탄하지 않았으나 삼십 년 뒤에 비로소 귀인을 배출하여 가세가 크게 왕하고 현귀와 거부를 주재하여 지금 복택이 바야흐로 형통하다. 안어. 이 땅의 용맥은 현맥의 왕기에서 갈라져 장을 벌리고 협을 지나 몇 마디 뒤에 혈을 맺었으니 혈정이 청초명백하고 요기가 발로하여 드러나니 참으로 한 뙈기 길지이다. 왼쪽 혈의 역량은 약간 가볍다. 오른쪽은 정혈인데 안장한 시간이 아직 길지 않아 복택이 아직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다. 이 어사의 이름은 원계(元啟)요 호는 문봉(文峰)이다.
